21. 발 없는 천리마 (2)
조선국이야 뒤집히든 말든 산 사람은 살아가야 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양주 고리백정 가도치는 오늘도 아비 말대가리와 함께 양주목 일대를 돌면서 그간 짜둔 고리를 바치고 있었다.
“아버지. 우리도 옆 동리 언청이네처럼 장시에서 고리 팔면 아니 되오? 꽤나 재미를 본다던데.”
새살림 차린 홍 생원 아들 집에 옷고리와 반짇고리 따위를 바치고 나오던 길에 가도치가 문득 물었다.
“되었다. 우리는 이만큼만 살아도 과분하다.”
몇 해 전 안 진사 댁에 고리 바치러 갔다가 그 집 개에게 손을 물린 이래로 말대가리는 옛날만큼 손재주를 부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이도 벌써 마흔을 넘겨 백정 기준으로 언제 급사해도 딱히 이상하지 않을 나이기도 했고, 눈도 슬슬 침침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두 다리와 허리는 멀쩡하였고, 또 가도치 혼자 보내기에는 백정 대하는 인심이 너무나 야박하였던 고로 이렇게 같이 다니고 있었다.
“그야 그렇지만서도... 장시에서 물건 팔면 적어도 제값을 제때 받지 않겠소?”
홍 생원댁은 집안의 전답이 그리 넓지 않아 양반 치곤 살림이 넉넉하지 못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양주 사족들끼리 곡식을 모아 향야기인지 향약인지를 만든다는데 한몫 거들게 되어 당장 값을 치르기 곤란하게 되었다 했다.
양반이 그렇다는데 백정이 무어라 하겠는가. 고스란히 외상으로 달아두고 빈손으로 나오게 되었다. 양반댁 외상이라 하면 떼어먹힐 공산이 절반은 족히 넘었다.
그것이 억울하여 장시 얘기를 꺼내는 가도치였는데, 말대가리는 콧방귀로 대꾸하였다.
“흥, 이놈아. 백정이 너무 잘 살면 화를 당한다. 언청이 그놈도 지금은 벌이가 좋은 것 같지? 흉년이라도 또 지독하게 들어봐라. 주변 양민들이 굶주리면 백정 집 곳간을 퍽이나 멀쩡히 내버려 두겠다. 더구나 우리 집엔 꺽정이 그놈이 보내주는 것도 있지 않으냐.”
“후, 그야 그렇소.”
아우 배도치 이야기가 나오니 가도치 입에서도 한숨이 나왔다.
시시한 백정으로 끝나지 않고 글공부까지 하겠다며 떠난 이래 꺽정이는 양주 집에 도통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그 스승인지가 죽었다며 잠시 집에 들렸던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 이후로 황해도에서 새로 일감을 얻었다며, 종종 비단이나 포목 따위를 보내왔는데, 멋모르는 주변 백정들은 참 부럽다고들 하였다.
황해도에서 백정이 일감을 얻었다면 바로 양수척이고 재인(才人)이고 싸움만 잘 하면 받아준다는 의민당이었다. 아마 거기서 무슨 조그만 자리라도 하나 얻은 모양이라고 백정들은 떠들곤 하였다.
그 덕에 흉년이 들어서 인심 사납고 벌이는 끊어졌을 때도 그들은 연명할 수 있었다. 동네 백정들을 모아다가 송도까지 가서 – 가까운 한양 도성은 백정끼리 가서 물건 팔기에는 조금 무서웠다 - 비단이며 오승포며 야무지게 잡곡으로 바꾸어와 견뎠던 것이다.
동네 한구석에 백정들 여럿이 모여 살고 있었기에 양민 이웃들에게 딱히 드러내지 않으면서 버틸 수 있었는데, 말대가리와 가도치 모두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나쁘게 말하면 겁이 많은 고로 그 비단을 모아다 무슨 다른 일의 밑천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못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제 의민당도 해산하였다는데, 배도치 녀석은 뭐 하고 사나 모르겠소. 나이도 이제 스물께나 되었을 텐데, 배 맞은 처자라도 어디 있으려나.”
“이놈아. 아무리 꺽정이가 걱정거리 몰고 다닌다지만 뭐 그런 걱정까지 하느냐. 비단 안 끊기는 걸 보니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 또 아느냐? 황해도 난리통에 어디 양갓집 규수 하나 보쌈해서 살고 있을지도.”
“하기야, 어차피 양주 백정들 사이에선 혼처 못 구할 팔자였으니...”
백정들이 아무리 무슨 예절 차리지 않고 남녀가 눈 맞고 배 맞으면 그냥 그대로 혼례 치른다지만, 그래도 부모가 자식 걱정하는 마음은 여느 양민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꺽정이 악명을 아는 양주 백정들 치고 그 딸을 허락할 사람은 없었다.
허나 뜨내기 도적도,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거렁뱅이도 그럴듯한 무언가가 될 수 있었다는 황해도 의민당에서라면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가도치 마음 속에 지금껏 있는 줄도 몰랐던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나도 꺽정이 따라 황해도 갔더라면...’
그러나 이미 그는 양주 고을에 매인 몸이요, 안사람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도 걱정해야 하였다.
그렇게 잡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어느새 두 사람은 양주목 읍내에 접어들고 있었다.
“훈도댁에만 들리면 오늘은 끝이지?”
“아버지 말씀이 맞소. 그쪽도 향야긴지 항아리인지를 한답시고 외상으로 달아두라 하면 어쩐다...”
그런데 읍내가 영 부산한 것이, 뭔가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
“오늘이 장날은 아닐 텐데...?”
“그 학당인지 뭔지 때문에 또 시끄러운 일이 생긴 것 아니오?”
양주에서 파주만 지나면 바로 옆이 교하다. 그러니 양주목 안에도 윤원형이 꾸린 농장이 적잖이 있었는데, 도성 소식에 밝은 양주 아전들은 재빨리 그것을 낚아채 민주당 이름으로 학당 세운다고 떠들고 있었다.
학당에서 글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장사치 재주까지 가르친다 하여, 백정들 사이에서도 이러다가 고리 짜는 것 가르치는 학당도 생기는 것 아니겠느냐 농담을 하곤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일로 향리들과 사족들 사이 싸움이 거하게 붙어, 남양 홍씨와 토성(土姓)인 한씨 사람들끼리 드잡이질도 하고, 북쪽 모랫내(沙川)의 토호 경씨네와 동쪽 풍양의 조문(趙門)은 아예 연을 끊기로 했다고까지 하였다.
자칫하면 마을 사이로 돌아다니다가 억울하게 몰매 맞을 수 있는 사안이라, 백정들 역시 이 일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눈이 침침해서 잘 보이진 않는데, 저기서 무슨 종이조각 나누어주고 있는 것 같지 않으냐?”
“어라? 맞소. 뭔진 몰라도 구경이나 하러 갑시다, 아버지.”
“아서라. 괜히 휘말릴라.”
“딱 보아도 싸우는 모양새는 아니지 않소?”
결국 아비는 아들을 못 이겼다.
“공보! 공보 받아가시오들! 윤원형이 죽었소! 공보를 보시오!”
요새 경저리(京邸吏)로 일한다는 호방 한가네 둘째 아들이 단상 위에서 목청 터져라 외치고 있고, 그 아래에서는 포목과 쌀 따위를 받고서 무슨 종이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윤원형 이름은 백정들도 아는지라, 귀가 퍼뜩 뜨였다.
“여봐라! 한가 이놈! 아무리 서원군이 오욕스러운 일을 많이 했다지만 저자의 상민들 앞에서 그 이름을 이렇게 상스럽게 입에 담는 도리가 어디 있느냐! 네놈이 정녕 장사치들과 어울리더니 품성이 천해진 모양이구나!”
한씨와 이번에 척지게 된 홍씨 집안 사람인 듯한 서생 하나가 외치니, 주변의 이목이 쏠렸다.
“흥, 싫으면 보지 마시오! 자, 나머지 분들! 서원군 윤원형이 과오를 뉘우치고 재산을 헌납한 다음 마침내 목숨을 끊었으니, 의민당이 도성 함락한 이래 가장 중대한 일이라 할 수 있겠소! 이 엄청난 일의 전말을 글로 적어 펴내었는데, 그 값이 고작 상목 한 필이오!
또한 한 동(=50필)을 내면 한 해 동안 문전(門前)까지 직접 가져다 드릴 것이오! 집안에 앉아 도성 소식을 정갈하게 정리된 글로 볼 수 있으니 이만한 기화(奇貨)가 없소!”
한낱 죄인이 도성 살곶이벌에서 참형을 당하는 것도 구경이라고 구름처럼 우르르 몰려드는 조선국 사람들이다. 하물며 나라의 대신으로서 그 위세가 드높던 윤원형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에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이야기꾼이 포목이나 쌀 받으며 그 사설을 풀어내어도 사람이 몰릴 판에, 그것을 글로 적어 판다고 하니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구경꾼 대부분은 눈앞에 그 종잇조각이 있다 한들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누군가 그것을 사들고 갈 때 그 옆에 붙어서 좀 읽어달라 청하면 될 일 아니겠는가.
그러나 홍씨 서생은 그것이 끝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도성이 지척인데 무슨 허황된 장사를 하려느냐! 이것이 도적질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 당장 관아에 고하여 치도곤을 맞힐 것이다!”
“도적질이라니? 이 모두 민주당 임 당수가 보증하는 사실만을 적은 것이오! 지금 임 당수를 도적이라 말하는 것이오? 내 당장 내일모레 상경하여 양주 유생 홍 아무개가 그리 말하더라 고하여도 되겠소?”
오만 관군을 신묘한 책략으로 제압하고 도성까지 하루아침에 함락시켜, 마침내 저의 억울한 죄를 벗고 황해도 백성들도 구해내었다는 천하장사 임 당수 이름이 거론되니, 홍씨 서생도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틈을 타고, 말대가리가 조용히 가도치에게 말했다.
“저 보아라. 결국 싸움이 붙지 않았느냐? 잠깐 주춤하였으니 얼른 빠지자꾸나.”
“그게 좋겠소.”
혹여나 싸움이라도 터져서 거기 휘말렸다가 등에 짊어진 유기가 짓눌리거나 밟히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아비 말을 듣고 퍼뜩 정신 차린 가도치도 몸을 빼돌려, 향교 옆 훈도댁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향교는 그 공보인지 뭣인지 하는 종잇조각으로 시끄러운 곳과는 꽤 거리가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이곳도 영 시끄러웠다. 집안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었는데, 그렇다 한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대문 앞에 선 말대가리는 목청을 몇 번 가다듬고는 외쳤다.
“훈도 나리 계십니까? 백정 말대가리가 버들고리를 바치러 왔습니다!”
곧 노복 둘이 나와 문을 열어주었다.
“훈도 나리께서는 향교에 계시오. 고리는 여기 내려놓고 가시오. 나리께서 돌아오시면 내 말씀 올리리다.”
저의 주인 따라 말투가 제법 점잖은 늙은 종이 말하였다.
그러나 값을 치른다는 말은 없었으므로, 가도치 얼굴이 절로 어두워졌다.
“아니, 암만 우리가 백정이라지만, 그래도 이건 좀...”
“흠흠, 우리 사이 이야기지만, 이쪽 집안도 지금 살림이 썩 여유롭지 못하오. 체통이라는 것이 있으니, 더 말하지 말고 그냥 가시오.”
“그 향양인가 하는 것 때문이오?”
“얘, 그냥 가자꾸나.”
일대의 사족들은 구휼과 여타 잡무를 위한 재정 마련을 위해 쌀와 무명 등을 잔뜩 모으고 있었다.
물론 평소 농장을 경영하고 노비의 호구를 늘리는 데 힘써 사정이 여유로운 집안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그렇지 못한 집안들도 체통을 위하여 적잖이 곳간을 헐어야 했다.
당장 저 향리와 토호들이 윤원형의 농장을 처분하여, 민주당 위세를 등에 업고 횡행하려 하는데 고을의 명족(名族) 자부하는 이들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내 마님께 꼭 말씀드리도록 하겠소. 그러니 금일은 그냥 가시오.”
그때, 눈치 없는 다른 종놈 하나가 족히 한 동은 될 법한 상목을 짊어지고 나타났다.
“아, 거 읍내 지나서 오셨소들? 그 공보인가 하는 것 장사하는 무리가 저자에 그대로 남아 있습디까?”
“그렇소만...?”
“다행이로구만. 주인마님께서 그 공보를 계속 받아보아야 하겠다 말씀하셔서 말이오. 지금도 저기 향교에서 학도들과 돌려보시느라 바쁘시다오.”
그러고서는 곧장 가도치와 말대가리를 지나쳐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 뒷모습을 원망스레 바라보는 가도치였다.
“그냥 저것으로 고릿값을 치르면 될 것을...”
“이놈아, 쉿!”
말대가리가 그 입 닫으라 눈치를 주고는, 늙은 종에게 수고하시라 인사 한 번 하고서는 곧장 아들 녀석을 끌고 나갔다.
그렇게 빈손으로 터덜터덜 돌아가게 되니, 아무리 아우보다 성정 온순한 가도치라지만 성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 내 이대로는 억울해서 못 살겠소. 백정이라고 천대받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사람이 일을 하면 그 품만큼 삯은 받아야 하지 않소?”
“이놈아, 내 말하지 않았느냐? 우리는 그래도 꺽정이가 보내오는 것이 있으니...”
“먹고사는 것 얘기하는 게 아니잖소, 아버지.”
돌아가는 발걸음이 어느새 앞서 공보 팔이하던 한가네 둘째아들 앞까지 와서 닿았다. 임 당수 이름을 댄 것이 효험 있었는지, 훼방 놓으려던 홍씨 서생은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뭔가 떠오른 가도치가, 무엇에 홀린 듯 연단 앞으로 향했다.
“얘, 어딜 가느냐?”
“아버지, 내 고리백정 관두고 싶어졌소.”
“이놈아,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지, 큰일 날 소리 하지 말거라.”
“저 공보라는 것, 지금껏 없던 물건인 듯한데, 백정 아들은 백정이고 아전 아들은 아전이라지만 공보 나르는 일은 아직 정해진 주인이 없지 않겠소?
고릿값은 안 내려는 양반님네들도 공보는 사서 볼 심산인 듯하니, 저것을 문전에 갔다놓는 일을 한다면 적어도 품삯 떼어먹히진 않겠지.”
말대가리의 만류에도 성큼성큼 한가네 아들 향해 걸어가는 가도치였다.
“꺽정이 그놈도 의민당 들어가서 신세 고쳤지 않소? 소식이야 통하지 않지만, 그렇게 계속 비단이고 면포고 보내오는 것만 보아도 족히 알 수 있잖소. 너무 걱정은 마시오. 영 위태롭다 싶으면 언제든 관두고 도로 백정 노릇하면 될 일이지.”
누가 그 아우에 그 형 아니랄까봐, 한 번 마음먹은 것을 쉽사리 고치지 않는 그 고집은 꼭 닯았다.
“옘병. 그놈의 의민당인지 임 당수인지가 헛바람 거하게 불어넣는구나.”
두 발로 걸을 때까지 명줄 붙어있던 자식이라곤 가도치와 배도치 둘 뿐인데, 그나마 속 덜 썩이던 녀석까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저런다는 말인가. 말대가리 홀로 혀를 찰 뿐이었다.
서원군 윤원형의 상은 한때 조선을 좌지우지했던 권신의 최후라 하기에는 너무나 조촐하게 치러졌다.
임꺽정은 약속을 지켜, 윤원형 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해코지도 하지 않았지만, 눈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제 윤원형의 가계에서 현달한 사람이 더 나올 수 없음을 족히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한때 윤원형의 말이라면 마치 지존의 옥음과 같이 여기던 소인(小人)들은 고개조차 내밀지 않았다. 당장 윤원형의 가장 새로운 심복이었던 진복창조차 관군이 해산되자마자 탄핵당하여 곧 통의부에 서게 될 지경이었으니, 출세의 길목에서 소윤에 붙어서 영달을 노렸던 이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칩거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귀가 있었고, 유폐되어 있던 윤원형의 집에 임 당수가 드나들었다는 소식은 암암리에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영달이고 무엇이고, 언제 비명횡사할 줄 모르는 판이었으므로, 대신들은 문상을 하기는커녕 갑자기 칭병하며 벼슬을 내려놓고 지방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또한 윤원형이 애써 적실 소생으로 만들어둔, 윤원형과 정난정의 소생들은 숨죽이고 평생 교하에서 조용히 살아야 할 운명이었고, 윤원형의 조카뻘 되는 이들은 윤원형의 덕을 보기보다는 오히려 해만 입었기에 그들의 숙부를 애도하지 않았다.
사정 모르는 어수룩한 윤원형의 형 윤원량만 밤새 통곡하다 혼절하였을 뿐이었다.
“참으로 권세가 무상하지 않은가.”
한양 적선방 중추부 앞에서 ‘임 별장’을 만난 이준경이, 문제의 그 ‘공보’를 접어 소매에 넣으며 꺽정이에게 말했다.
오늘 이곳에서 처음으로 국정을 논하게 될 터였는데, 일전 통의부의 일과 마찬가지로 전례 없는 행사이다 보니 본디 예정하였던 것보다 반나절쯤 늦춰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한가롭게 이야기 나눌 겨를도 생기게 되었다.
“한때의 권신은 그렇게 스러지고, 그 행적은 패관(稗官)의 손에 뒤틀리고 산삭(刪削)되어, 세인(世人)의 우스갯소리로 떨어지게 되니.”
사대부가 마땅히 알아야 할 조정의 정사만을 기록한 조보와는 달리, 마치 요새 유행하는 『삼국지연의』 따위의 잡문(雜文)처럼 쓸데없는 기사가 가득 들어있고 문장은 조악하였다.
허나 선비들은 눈살 찌푸리면서도 때로는 남몰래, 때로는 남들과 함께 그것을 읽고, 경전에는 밝지 않으나 진서에는 익숙한 중인(中人) 무리는 벌써부터 다음 회 공보를 기다리며 저자에 모일 때마다 그것에 대해 논하고는 하였다.
“그리 따지면 하늘 아래 땅 위에 무상하지 않은 게 어디 있소? 사람 인생도 한 번 살다 죽으면 끝이요, 가멸찬 재산도 죽은 뒤에는 하등 쓰임이 없소. 그래도 사람들은 하루라도 더 살아보려 아등바등 발버둥치고 재산은 재산대로 쌓으려고 난리법석을 떨더이다.
그러니 권세가 무상하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그것을 얻으려 애쓰는 이들은 부나방처럼 계속 나올 터인데.”
배움은 얕고 말투는 거친 임거정이었다.
본디 어느 고을의 사람이며, 그 아버지는 누구인가? 그 조상 중 현달한 이는 누가 있으며, 스승 서경덕을 모시기 전에는 어디에서 학문을 익혔는가? 임거정이 도성을 점거한 이래 수많은 이들이 알아보려 힘썼건만 끝내 허탕을 친 바 있었다.
허나 오히려 그러하였기에, 임거정과 말을 나누게 되면 마치 기인(奇人)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조선국 어디서도 나눌 수 없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자네는 어떤가, 임 별장? 자네도 그렇게 권세를 누리려 하는가?”
“하, 나는 뭘 훔치고 빼앗는 것을 즐길 뿐이오.”
“그래, 확실히 이 공보의 일을 겪으니, 그것은 족히 알 수 있게 되었네.”
민주당이 조자소의 공인(工人)을 모조리 빼돌리는 바람에 『여씨향약』을 간행하기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처럼 무지막지한 일을 벌일 줄은 몰랐던 이준경이었다.
윤원형의 죽음을 포장하여 저들 입맛대로 꾸미는 것은 발단에 불과하였다.
경저리들이 도성으로 전해오는 각지 군현의 소식은 그대로 공보에 올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승정원의 녹사(錄事)와 서리들, 지금껏 조정 대신들 중 누구도 크게 눈여겨보지 않았던 이들은 그 무관심 속에서 임거정과 서림에게 포섭되어 공보의 나머지 빈칸을 채울 이야기를 솔솔 풀어놓았다.
임거정과 흑의군이 궁궐을 나선 뒤에 기강을 바로잡으면 될 일이라 생각했건만, 이 공보가 팔도에 퍼져나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 뒤에야 또 한 번 임거정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였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금일 이곳 중추부에서 거론될 사안 중 하나가 바로 이 공보의 일이기도 하다네.”
“국법으로 막을 생각이시오?”
“하하, 흑의군이 아직 금궁을 지키고 있거늘 어찌 그러겠는가.”
이준경의 말에서 씁쓸함이 묻어나왔다.
“아니, 막지 않을 생각일세. 오히려 몇몇 사람들은 이 공보를 능히 교화의 도구로 삼을 수 있다며 좋게 보더군. 다만 몇 가지 금제를 두어 자칫 나라의 긴요한 사정이 바깥에 알려지는 폐단이 생기지 않도록 막기만 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중론이라네.
때마침 이 중추부를 열면서 무슨 국정을 논할 것인가, 이를 두고 잠시나마 설왕설래한 바 있었는데, 자네가 공보라는 것을 만든 덕에 논의를 나눌 자리는 있으나 논의할 거리는 없는 그러한 일은 면할 수 있게 되었지.”
이준경이 말을 마칠 즈음 사람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대저 중추부는 문무 당상관 중 관직 없는 자를 모아, 유사시 언제든 다른 자리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취지가 있는 관서였다. 그러므로 실제로 국정을 논하기에는 나이가 많아 힘이 부치거나, 그저 자리만 지키는 데 온 마음이 쏠려 있거나 한 자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들을 추려내고 여차하면 관직을 바꾸기까지 하다 보니 준비하는 데 시일이 조금 걸렸다.
그렇게 노신들이 하나씩 들어왔는데, 해배되자마자 벼슬을 제수받아 이곳에 서게 된 이언적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논의할 바가 없다?”
“물론 한때 그러하였다는 것일세. 자네가 결코 녹록지 않은 적수임을 깨닫게 되었으니 어찌 국정의 사안을 하나라도 허투루 흘려보낼까. 이왕 이처럼 좋은 자리를 만들게 되었으니, 우리가 논의하여야 할 바가 차고도 넘친다네.”
그 말을 들었는지, 어느새 자리에 앉은 이언적이 눈빛을 번뜩였다.
“당장 삼남의 장시를 단속하는 일부터, 전국에 향약을 시행할 때 지켜야 할 절목을 제정하는 일 등등, 나랏일이 적지 않게 산적해 있다네.
서원군의 별세 소식도 그처럼 공보를 통하여 전국에 알렸는데, 이와 같이 나라에 중한 사안을 우리가 상의하고 있다는 것 역시 공보를 통해 전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결국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꺽정이는 혼자였고, 나머지는 모두 사림의 사람들이었다.
처음 한 번은 당했을지 몰라도, 결국 나라 안에서 여론을 만들어내고 이끌어내는 것은 선비들 아니겠는가.
“물론이오.”
헌데 임거정이 어째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경과 이언적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마음 뒷전으로 넘기면서, 중추부영사 심연원에게 동시에 눈길을 보내었다.
“가정(嘉靖) 30년 삼월 오일 계사(癸巳)일. 중추부의 회의를 거행토록 하겠소이다.”
심연원이 가래 한 번 삼키고서 말을 꺼내니, 구석에 있던 서리가 급히 붓을 놀렸다.
“금일 이 자리에서 논의할 의제는 다음과 같소이다...”
미리 이언적과 이준경이 말을 맞추어놓은 대로, 여러 안건들이 하나둘씩 거론되었다.
“... 이상이외다. 혹여 지금껏 본관이 언급한 항목 중 누락된 바가 있거나, 제공(諸公) 가운데서 금일 덧붙여 논의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면 지금 말씀하시기 바라오.”
마침내 열거하기를 마친 심연원이 두루마리를 내려놓았다.
그때, 꺽정이의 손이 번뜩 올라갔다.
“두 가지가 있소.
서원군 윤원형 대감이 비명에 이승을 하직하였으니, 대비전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소? 하룻밤 사이 골육(骨肉)을 잃으셨지 않소.
헌데 내 듣기로 대비전께서 평소 꾀하시던 바가 있으니, 바로 승과(僧科)를 설치하여 불교를 흥성케 하는 일이라 하였소.”
승과 두 글자에 그 자리에 앉은 모든 선비들의 몸과 얼굴이 굳었다.
“이미 봉은사의 중 보우라는 이가 세세한 절목은 모두 고안해두었고, 조정에서 승낙하여 이를 거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들었소이다. 내 듣기로 그 취지가 참으로 좋은데, 이때를 맞이하여 실행케 한다면 안으로는 국모(國母)의 상심한 바를 달래고 밖으로는 백성과 승려들에게 고루 이로운 일이 될 것이오.”
“이보게, 임 별장! 그것은...”
“그리고 안건이 하나 더 있소이다.
내 선비의 무리에 들지 않아 풍문에 밝지는 않으나, 옛날 기묘년에 화를 당한 선비들이 참으로 좋은 뜻을 품었음에도 억울하게 죄를 받았다 들었소이다. 벌써 삼십 년 넘는 세월이 지나 통의부에서 이를 재심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조정의 직권으로 이를 신원하면 어떻겠소이까?
이상이오.”
“아...”
모두가 생각만 하고 있었으나 후환이 걱정되어 신중하게 움직이려던 기묘명현의 신원.
그러나 선비도 아니요, 후환 따위 걱정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실직조차 없어 저의 손으로 실무를 맡아볼 일도 없는 꺽정이는 그런 사정 따위 염두에 둘 필요 없이 마구 말을 꺼낼 수 있었다.
이지함이 이이의 관례를 위해 파주로 내려가기 전, 서림은 물론이요 봉은사의 병해까지 불러와 어떻게 하면 가장 화끈하게 전국 식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을까 고심한 끝에 나온 두 가지 안건을 동시에 던진 데는 그러한 속사정이 있었다.
효과는 굉장하여, 화약 수만 근을 땅에 묻었다가 일시에 터뜨린 것처럼 여러 중신들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적 사이로, 회의의 내용을 기록하는 서리의 붓만이 여전히 잽싸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기록된 바는, ‘민주당 당수 임거정이 말하기를...’ 이라는 서두가 붙은 채로 다음 번 공보에 그대로 실리게 될 터였다.
공보의 매출은 그로 인하여 한 달 사이 네 곱절로 늘어나게 되었으니, 끝내 아비 말대가리가 말리는 것을 무시하고 양주 고을 안에서 공보 돌리는 일을 맡기로 한 가도치에게는 참으로 잘 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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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성화되는 각종 계(契)에 비하면 그러한 면모가 두드러지지 않았기에 다소 잊히는 면이 있으나, 조선 중기에 확산된 향약 역시 경제적 상호부조 조직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율곡 본인이 만들었던 해주향약의 경우, 향약의 정기적인 모임과 회원가입 요건 등을 명시한 뒤 바로 이어서 금전의 출납과 상호부조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즉 첫 가입시 무명과 삼베 한 필씩, 그리고 쌀 한 말씩을 내게끔 하고, 정기적으로 매년 11월 쌀 한 말씩을 계속 내도록 한 뒤 이를 백성들에게 빌려주어 이자수입을 얻도록 – 연 20% 이율이라는,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저렴한 금리였습니다 – 명시한 것이지요. 쌀 한 말의 가치를 생각하면 어지간한 양반가 기준으로 그렇게까지 부담이 되지는 않는 액수였을 듯합니다.
그러나 작중에서는 임꺽정의 부추김과 윤원형의 농장 처분, 학당 설립이라는 그럴듯한 ‘떡밥’으로 인해 본디 조선 후기에나 벌어져야 했을 향전(鄕戰)이 훨씬 조기에 벌어질 기색을 보이고 있고, 이로 인해 재지사족들이 받고 있는 압박도 훨씬 심해지게 되었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양주의 사족과 향리 집안들은 『세종실록지리지』를 참고하였습니다. 여담으로, 모랫내(사천현) 경씨 집안과 대립한다고 언급된 풍양 조씨는 세도정치 시기에 등장하는 그 풍양 조씨 집안이 맞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 개국공신인 시조 조맹의 대부터 풍양에 살았다고 되어 있는, 말 그대로 토박이 중의 토박이 집안이지요. 물론 안동 김씨 중 실제로 세도를 누린 장동 김씨 집안 사람들은 극히 소수였듯, 작중에 등장하는 조씨 집안 역시 수백 년 뒤에 등장할 세도가 풍양 조씨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지난 화부터 언급되었던 중추부는 본디 왕명의 출납과 군사 관련 업무, 그리고 궁궐 숙위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기구로서 조선 초에 출범한 기구입니다. 그러나 관제가 계속 개편되면서 중추원의 기능은 하나씩 다른 부처로 이관되었고, 정종 연간에 왕명 출납 기능까지 승정원으로 넘어가면서 정말로 아무런 기능이 없는 기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중추부는 계속 남아, 문무 고위 관료들 중 발령대기 상태에 있는 이들이 머무는 자리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중추부 소속 당상관들이 국정회의인 상참(常參)에 참여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는데, 이는 관직이 없는 고위 관료들도 꾸준히 자문을 통해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조언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수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