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90화 (190/259)

56. 만인지적 (3)

한양의 성곽이 아직 함락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저쪽이 굳이 함락시키려 하지 않았기 때문. 이 무렵에는 양측의 일개 군졸까지도 아는 사실이었다.

잊을 만하면 울리는 화포의 벽력소리와 먼지로 화하여 흩뿌리는 성가퀴는 이를 더욱 단단히 새겨주었고, 그렇게 도성 안의 전의(戰意)는 깎여나갔다.

또한 저들이 비록 성을 넘지 않으려 한다지만, 그럼에도 여기저기서 간혹 사다리를 걸친다던가, 성벽 무너진 쪽으로 수백 명 정도가 우르르 몰려와 기웃거린다던가 하며 슬그머니 건드리는 것은 그치지 않았고, 고작 며칠 사이에 성 안의 관군과 흑의군은 피로에 물들게 되었다.

저들 인민군이 매일같이 외치는 것은 간단하였다.

인민의 정부를 세우자. 백성의 공론을 받들겠다며 세운 나라의 제도들, 헌법으로 마침내 반듯이 서게 된 그 제도의 운영을, 민주당과 탕평당 두 당이 야합하여 제멋대로 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저들 인민군이 이긴다 한들 그 화가 자신들에게까지는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될지도.

그러한 마음이, 굳건하던 전의에 가기 시작한 틈 사이에서 부지불식간에 싹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금은 그저, 머리 한 번 흔들어 떨쳐낼 수 있는 가벼운 미혹에 불과하나, 이대로 더 지나면 어찌 될 지 모르는 일.

이를 모르지 않는 이준경과 이지함은, 그러므로 성 밖의 인민군이 기이한 움직임 보인다는 급보를 받고 (아직은 버티고 있는) 문루 위에 올랐을 때 크게 안도하였다.

“그대의 중책(中策)이 이제 절반 남짓 이루어졌구려. 단판 싸움만 남았소.”

부서진 곳과 시석(矢石) 날아들 만한 틈마다 급히 널판지 따위를 덧대어, 안에서나 밖에서나 보기 흉하게 된 문루에 올라 백리안(망원경)으로 주변 살피던 이준경이 말했다.

지금껏 조총은 물론이요 도성 안의 어떤 총통도 – 급히 성 안으로 후퇴하느라 그나마 얼마 되지도 않았다 - 닿지 않는 곳에서 성곽을 때려부수던 화포들은 모두 다른 쪽으로 옮겨졌다.

뿐만 아니라 도성을 에워싸고 있던 인민군의 수효도 부쩍 줄었는데, 그들은 어디 멀리 가는 대신 반대편, 그러니까 도성 바깥쪽을 바라보며 새로 목책 따위를 만들고 있었다.

허나 이준경이 건네준 백리안 – 본디 사업당의 물건이었으나 이번 일을 당하여 경군 군관들에게도 스무 명에 하나 꼴로 나누어주었다 – 을 들고 적의 형세 살핀 이지함은, 찡그린 미간을 펴지 않았다.

“화포는 모조리 동쪽으로 옮긴 듯하군요.”

“동쪽이라면, 북병이 양주목 경내를 거쳐 들어온다는 뜻 아니겠소? 즉 이미 임진강을 넘어, 저들이 저토록 급히 대비를 해야 할 만큼 지척에 닿았다는 것이겠지.”

주변의 군관들도 이준경과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는지, 간만에 표정이 밝았다.

“대감의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이제 길어도 사흘 안으로 도성에 이르겠지요. 아무리 저들의 수가 많다 하나, 어찌 북병의 날카로운 기세를 당해내겠습니까?”

그리 말하니, 이미 밝아진 군관들의 표정은 더욱 밝아졌다. 이지함과 이준경 두 사람이, 이제 곧 이겨낼 것임을 확언하였으니 어찌 기껍고도 반갑게 여기지 않을까.

그러던 차, 이지함이 곁을 지키는 권율에게 묘한 손짓을 하였다. 그것을 놓치지 않은 권율은, 절묘한 핑계를 내세워 기뻐하는 군관들을 모두 데리고 문루 아래로 내려갔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무너지고 흠이 난 사기에 겨우 새살이 돋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씁쓸한 이야기는 남들 귀를 물린 뒤에 하는 것이 옳았다.

“무엇인가?”

“저들의 대처가 너무 빠릅니다. 만약 위에서부터 당황하여 흔들리고 있다면 그 아래 또한 바로 서기 어려울 터. 비록 부산히 움직이고는 있으나, 기율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흠...”

이준경이 다시 백리안을 건네받아 저쪽, 흥인지문 너머 성저십리에 펼쳐진 적진의 동향을 재차 살폈다.

“자네 걱정에도 일리가 있네.”

『생살부』에 ‘생(生)’으로 이름 올린 군관들 중 그 자질이 특출한 자는 없었다. 애초에 그런 자라면 굳이 수상한 모의에 가담할 이유도 없었고, 또 주변의 질투를 받기 마련이었으므로 어지간하면 가담시켜주지 않을 터.

허나 그렇다고 지난 며칠간 저들이 보인 군의 움직임이 허술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면에서 범상하였으나, 오히려 때로는 그것이 더욱 무서울 수도 있는 법.

지금까지 저들은, 성을 에워싸고 그 안을 괴롭고 지치도록 만든다는 큰 그림에 맞추어, 마치 한몸처럼 움직여 왔다. 어찌 보면, 정병(正兵)의 극치라 할 만하였다. 만일 위에, 아랫사람 목숨을 자신의 군공보다 가볍게 여기는 이가 있었더라면 저러한 움직임은 나오지 못하였을 터.

“허나 정(正)으로는 맞붙을 수는 있어도 이길 수는 없는 법일세.”

“저들은 굳이 이길 필요도 없습니다.”

아마 저들이 노리는 것도 그 부분일 테다. 처음부터 그것을 노렸는지, 아니면 북병이 이미 임진강 남쪽까지 내려왔음을 깨닫고 기민하게 응변(應變)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들은 그저 굳건히 지키기만 하면 됩니다. 도체찰사 대감이 이끄는 북병의 예기(銳氣)가 조금이라도 꺾여, 단판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도록 만들기만 하면, 도성 안의 이미 흔들린 사기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입니다.

하졸(下卒)들이라면 모를까, 우리는 아직 안도해서는 안 됩니다, 대감. 전세가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우리 쪽에서도 출성하여 적의 뒤를 쳐야 할 것이요, 그마저도 궁색하다면 아직 저들의 군세가 한쪽에 매여 있는 동안 반대편으로 뚫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지함의 하책. 도성을 버리고 주상은 몽진하여, 근왕의 기치를 내걸고 병력을 모아 반격한다는 것. 자칫 나라 전체에 큰 해를 입힐 수 있는 계책이지만, 적어도 성이 그대로 무너지고 그들 모두가 저 ‘인민군’에게 붙잡히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래, 그래야겠지... 허나 염려가 지나쳐 지금과 같은 때에 평정을 잃는 것 또한 옳지 않으이. 사사롭게는 형이 되는 도체찰사 대감은, 장재(將材)가 이 사람보다도 나으니.

저들이 비록 군을 이끄는 데 있어 병법에 어긋남이 없다 하나, 그래본들 정병(正兵)에 충실할 뿐, 기병(奇兵)에는 당해낼 수 없을 것일세. 그리고 도체찰사의 지략은 바로 그런 기병을 내는 데 있고.”

그러나 이준경이 그렇게 소망 담은 말을 동녘 바라보며 할 무렵, 이윤경은 포천 관아에 앓아누워 있었다.

북변의 삶은 고달프고도 고되니, 예순 먹은 노인이 말을 타고 전력으로 달린다면 이는 아직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전사라는 뜻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죽거나 병석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으므로.

그러므로 압카이 아파시 구룬의 수러 버일러 니탕카이와, 이번 구룬이아찬(나라의 모임)에서는 실패했지만 다음에는 기어코 수러 버일러 자리 얻겠노라 다짐하며 손수 전사들 이끌고 온 교창아를 따르는 이들은 모두 젊은이뿐이었다.

마찬가지 이치로, 미리 언질을 받고 대기하다 마침내 부름을 받고 남녘으로 말 달려온 평안도와 함경도 병사들 중에도 노인은 별로 없었고, 간혹 쉰을 넘긴 이들도 삼남의 서른 살 농군 이상으로 강건하였다.

안타깝게도 이윤경은 그렇지 못하였다. 황해도에서 신씨와 명희, 서림이 나누어 한 일을, 비록 아우 이준경이 해놓은 밑바탕이 있다 하나 혼자서 도맡아야 했고, 뒤이어 늙은 몸으로 북병과 함께 쏜살같이 산과 물을 넘었으니 마침내 포천에서 여독이 그를 따라잡은 것이다.

그러니 포천에서 하룻밤 쉬고 다음날 한양 앞에 당도한 뒤 모레쯤 결전 벌이리라 내심 짐작하던 양도 군관들은, 이윤경이 그날 아침 이마가 불덩이 되어 거동을 못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 다들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나라고 네놈들 눈빛을 못 알아볼 줄 아느냐.”

급히 도원수 나리의 소집을 받아 포천 동헌에 모인 군관들에게 임꺽정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놈들 머릿속이야 훤하지, 무어.”

도원수 임꺽정은 무용이 뛰어나다 한들 본디 도적 우두머리요, 장수의 자질은 없었다.

물론 무령왕 서달(徐達)은 본디 목동이었고, 회음후 한신(韓信)은 저자 비렁뱅이였으니, 어디 양주 백정이라고 천하의 명장 되지 말라는 법이야 있겠냐만, 임꺽정이 지금까지 보인 행적을 샅샅이 살피면 슬프게도 그 이름이 저 두 사람과 같은 반열에 들지 못할 것이 명백하였다.

스스로 내는 군략(軍略)은 비록 기발하다 하나 따지고 보면 적의 의표를 찔러 승리를 훔쳐내는 것 하나일 뿐이요, 그 아래의 모주(謀主), 백의재상 이지함이나 백의호판 서림 같은 자들이 없으면 그마저도 사상누각이었다.

“... 라고들 여기고 있다지?”

모두들 어찌 알았냐는 듯한 눈치. 탓한다면, 순박해 빠져서 입단속이라곤 도통 못하는 토관(土官, 토착민 출신 하급 군관 또는 향리)들과 그들이 다른 군관에게 들었다며 떠드는 이야기를 모조리 훔쳐듣고는 고대로 일러바친 도키치로를 탓해야 하리라.

“분명 나는 장수 노릇하기에는 영 모자란 것이 많다. 허나 이리저리 구르면서 보고 들은 것은 많지. 네놈들은 그저, 평소 열심히 싸우든 조련을 하든 하면서 닦은 그 재주를 가감없이, 흐트러짐 없이 명에 따라 선보이기만 하면 된다.“

분명 도원수 직함은, 두리손 그놈과 그 아랫것들이 임꺽정 저의 이름에 집착하여, 어떻게든 한 판 싸움에 나서도록 만들기 위한 겉치레 술수였을 터.

허나 봉산에서 명희에게 한 소리 들은 이래 꺽정이는 내내 생각하였다.

“이미 내가 평양에서 도체찰사 대감을 만났을 때 그 어르신께 제법 괜찮다는 소리 들은 계책이다. 그리고 내가 손수 겪으면서, 효험 있음을 깨달은 것이기도 하지. 아마 니탕카이랑 교창아 네놈들은 알 것이다.”

여진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고작 그 정도로는 군관들을 안심시킬 수 없었다.

좌중 번쩍 손 드는 사람이 있어 쳐다보니, 의외로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사이 제법 고생을 했는지 얼굴은 조금 삭았으나, 사람 좋은 그 인상은 그대로였다.

“소관 유극량이 감히 도원수께 여쭙습니다.

저희가 도원수의 장재를 의심하는 것은, 결코 도원수를 믿지 못하거나 업신여겨서가 아닙니다. 곧 닥칠 싸움은 크게는 사직의 안위에 관한 것이요, 작게는 이 나라를 지키는 북병 장졸들의 목숨과도 얽힌 일입니다.

생각건대 도원수께서 품으신 바 계책을 저희에게 알려주실 수 있으신 만큼 알려주신다면, 비로소 상하 간의 믿음이 북돋아지고 마침내 하나된 마음으로 싸움에 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 나서서 물어야 할 물음이라 여기고, 이 자리에 모인 군관들 중 감히 도원수에게 말 붙였다가 허리가 반으로 접히지 않을 사람은 그와 연 있는 자신뿐이라 짐작하고서 나선 것일 테다. 이윤경이 자못 무재와 장재 겸비한 젊은이라 칭찬한 것이 무색하게, 닥쳐올 후과를 두려워하며 눈 질끈 감고 있는 저 모습만 보아도 그 머릿속이 짐작되었다.

“좋다, 잘 물었다.”

“부디 목숨... 예?”

“어이, 도키치로야, 그 지도 가져와보거라!”

“예! 당수, 아니, 장군, 아니, 도원수!”

양주 불곡산에서 나오는 시냇물은 양주 경내를 거치며 불어나, 녹양평을 지날 때는 두험천(豆驗川)이라 불리게 되고 도성 동쪽에 이르러서는 중량천(中梁川, 現 중랑천)이라 불리게 된다.

그 중량천이 청계천과 만나는 곳부터 야트막한 아차산이 있는 곳까지, 그 사이에 제법 널따란 들판이 있으니, 살곶이벌(箭串坪)이라고도 하고 뚝섬이라고도 불렀다.

이름이 벌판이기도 하고 섬이기도 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장마철만 되면 물이 불어나 툭하면 잠겼으므로, 도성 근교임에도 불구하고 고작해야 목장과 갈대밭 따위가 전부였다.

허나 계절은 한창 가무는 봄이요, 때는 나라의 앞날을 두고 – 또는 앞날 자체보다는 그 앞날을 좌지우지할 힘을 두고 – 싸우는 시절이라, 갈대 대신 급히 세운 목책이 벌판을 두르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 모습 훤히 보이는, 나날이 뻗어나가는 성저십리 가장자리의 어느 민가에 인민군 군교들이 모였다. 원수의 막부에 들지 못하는, 당장 싸움터 일선에 서서, 많게는 병사 일이백, 적게는 수십을 이끌 그런 자들이었다.

곧 닥칠 싸움을 두려워하는 이들, 섣부른 욕심으로 기뻐하는 이들. 모두가 그 마음 감추고자 애써 웅성대는데, 어느 순간 딱 그쳤다.

그들 사이로 들어온 이는, 파총(把摠) 하나. 새로 개편된 군제에서는 고작해야 오백 명 정도를 거느리는 군관이지만, 실제로는 막료 중 하나로서 이들이 속한 영(營)의 운주(運籌, 작전계획)를 맡는 이였으므로 모두들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모두 들어라. 이르면 내일, 늦어도 글피 안으로 적이 양주 경내를 지나 이곳 도성 앞까지 당도할 것이다.

지금부터 원수와 이하 막료들이 궁리하여 마련한, 곧 닥칠 싸움의 계책을 너희에게 하달하겠다. 반드시 깊게 헤아려 듣고, 하졸(下卒)이 묻는다면 설명하되 말할 것과 말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리도록.”

정밀한 지도는 고작해야 원수와 그를 마주 대하는 몇몇 군교들이나 쓸 수 있는 것이요, 이들에게는 학당 구석에 붙어 있을 법한 조악한 지도조차 없었다. 허나 어차피 어디 멀리서 복잡하게 움직여가며 싸울 것은 아니었다.

“먼저 양측의 수효다...”

교동 경기수영과 강화도, 통진을 지키고 있는 수군. 북병이 너무나 빨리 남하하여, 미처 도성 주변에 모이지 못한 사방의 인민군. 그리고 저들이 고양 쪽으로 우회하지 못하도록 막을 군세와 성저십리를 에워싸고 포위의 형세를 유지해야 할 군세까지.

이들을 제외하고 모을 수 있는 군사를 모두 모으니 이만오천이 나왔다.

저들이 포천에서 하루 쉬는 사이 정탐한 바에 따르면, 저쪽 수효는 일만에서 일만오천.

이만오천에서 일만오천을 제하면 딱 일만. 이쪽에는 없고 저쪽에만 있는 임꺽정까지 셈하면, 대충 임꺽정 하나가 일만을 상대하는 격이다.

만인지적(萬人之敵)이라. 확실히 작금의 세인(世人) 가운데 그 말 가장 어울리는 자를 찾는다면, 임꺽정 석 자가 아니 나올 수 없으리라.

“저쪽은 모두 마병이라 한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이들은 지금쯤 안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반으로 출세하려는 이가 아닌 이상에야, 북변의 사정을 알 리 없었다. 기껏해야 수령의 아병으로 있다가 경장 이후 대장(隊長)이나 기총(旗摠) 같은 말단 자리를 얻은 이들은 영 깜깜한 눈치였다.

“북변을 비우다시피 하지 않는 한, 일만오천 마병을 그토록 빨리 낼 수는 없다. 그저 대로에 인접한 고을에서, 차출할 수 있는 이들만 차출하여 말 위에 태워 겨우 머릿수를 늘린 것이다.

진짜로 창과 활을 놀리는 무사와 마병도 없지 않을 것이요, 어쩌면 역당(逆黨)이 야인들과 결탁하여 그들까지 끌어들였을 수는 있다. 허나 그 외는 말을 타고 너희보다 조금 더 무예에 능한 것을 제하면 그저 일개 보병과 다름없다는 말이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총통이 있고, 또 조총이 있으며, 지난 하루이틀 동안 열심히 세운 목책이 있다.“

그보다 조금 전, 같은 하늘 아래 다른 곳에서는 임꺽정이 지도를 짚으며 말을 잇고 있었다.

“적은 이곳, 살곶이벌에서 한 판 붙으려 할 것이다. 이것은 내 혼자 짐작한 게 아니라, 도체찰사 어르신께서 짚어주신 부분이니 귀찮게 묻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귀찮게 묻는 이 있으니 – 주변의 반응을 보면, 눈치 없는 언행이 하루이틀이 아닌 듯했다 – 유극량과 얼추 비슷한 연배인 듯한 젊은 군관이었다.

“권관(종9품)으로 있다 도체찰사 대감의 부름을 받고 온 신각(申恪)이 도원수께 감히 여쭤도 되겠습니까?”

“어째서 살곶이벌에 놈들이 있을 것이라 장담하느냐, 그것을 물으려는 것이겠지?”

“그렇습니다.”

“잘 들어보아라. 놈들에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니...”

살곶이벌 옆에서도 비슷한 물음이 나온다.

“너희는 알 것 없다고 하고 싶지만... 위에서는 너희 하나하나가 다 금번 싸움의 계책을 숙지토록 하라고 하더군. 좋다, 알려주마.

살곶이벌은 너희가 물은 것처럼, 우리가 싸우기에는 가장 불리한 곳이다.“

한양 주변에서 마병이 날뛰기에는 이만한 곳이 드물다. 나머지는 모두 산지거나 바닷물 드나드는 뻘밭이고, 그렇지 않은 곳에는 마을이 있거나 논밭으로 가득 메워져 있을 뿐이므로.

더구나 바로 뒤는 한강이요 서쪽은 도성 성곽이니, 배수진도 이만한 배수진이 없다.

“... 그렇기 때문에 저들은 반드시 이곳으로 올 것이다.”

한양을 두고 벌이는 싸움은 양측 어느 쪽도 피할 수 없는 일전. 그 일전을 그나마 유리한 곳에서 벌일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일만오천 대 이만오천. 지친 군사와 덜 지친 군사. 제대로 된 총통조차 없이 급히 달려온 북병과 이미 도성을 치기 위해 모든 준비를 갖추었으며 지난 몇 년 간 조총까지 충분히 확보한, 아니, 이제는 조총이 거의 주력이라 할 수 있을 인민군.

북병이라는, 임꺽정이라는 그럴듯한 이름 뒤에 가려진 이러한 불리함을 그나마 뒤집을 수 있는 곳은 이 살곶이벌 뿐이었다.

“우리가 저 살곶이벌에서 진을 치고 있으면, 임거정은 반드시 모든 북병을 몰고 우리에게 달려들 수밖에 없다. 설령 의심하더라도, 우리를 격파하지 않고는 한양을 구원할 수 없으니, 오직 몰아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꺽정은 무엇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천하의 화근덩어리니, 제멋대로 움직일 여지를 남겨놓지 말아야 한다. 어려운 말을 쓰면, 기(奇)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으므로, 오로지 우직한 정(正)으로 승부를 본다. 이 뜻이다.”

무언가 더 묻고자 하는 바가 있느냐, 파총이 막 말을 이으려던 차, 나팔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놈들이 온다!”

“반나절 안으로 놈들이 당도한다! 모두 준비하라!”

수락산이나 도봉산쯤에 나가 있는 척후들이 돌아온 듯하였다.

“이거 내 조금만 늦었더라면 네놈들은 깜깜이인 채로 싸움에 임하게 될 뻔하였군. 자, 더 물을 것 없으면, 이대로 흩어져서 네놈들 아랫것들을 데리고 저 벌판으로 움직여라. 얼른!”

그 말과 함께, 모두들 빠르게 흩어졌다.

구름과 같이, 성저십리를 새로 메운 민가 곳곳을 막사 삼아 머물던 인민군들이 바로 서쪽의 살곶이벌로 몰려나왔다.

잠시 시끄럽던 이만오천 군세는, 신속하게 자리를 잡았다. 줄을 서고, 방진을 짜며, 혼란은 있더라도 금방 단속된다.

청계천과 중량천이 합류하는 곳 옆의 작은 언덕에서, 저의 막료들과 함께 그 모습 바라보는 두리손은, 내심 만족하였으나 웃음을 보이지는 않았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어째 늦는군.”

“포천에서 하루 머문 것만으로는 군졸과 병마의 피로가 다 풀리지 않은 것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군세를 나누어 병진(竝進)하고 있기에, 다른 한쪽을 기다리는 것일지도요.”

“상관 없소이다. 어차피 우리보다 적은 수인데, 쪼갠다면 더욱 약해질 뿐이오. 설령 병진을 한다 한들, 이곳 살곶이벌 앞에서 합류한 다음 한 덩이 이루어 달려드는 수밖에 없을 터.”

막료들이 다시금 그들 계책의 유불리를 논하려 할 무렵 – 두리손 본인이 권장한 일이었다 - 서쪽, 도성의 성벽 위에서 환호하는 함성이 울려왔다.

“원수, 동쪽을 보십시오!”

함성은 서쪽에서 났는데, 어찌하여 동쪽을 보라 하는가? 아차산 위에 깃발 둘이 휘날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눈이 좋아도 동대문에서 족히 십 리는 넘게 떨어진 아차산에 세워진 깃발의 글자를 읽을 수는 없을 것이지만, 지금, 굳이 이때 아차산에서 휘날리는 깃발이라면 눈이 어둡다 못해 소경에 가깝더라도 능히 누구의 깃발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조선국 도원수 임거정’

한쪽에는 그렇게 진서로 적히고, 그 옆에는 무식하게 큼직한 언문 글씨로,

‘임꺽정’

석 자가 쓰여 있었다.

근래 한양과 그 주변 민호가 늘고, 구들장 깐 이들도 늘어나면서 아차산의 나무는 몇 년 전보다 눈에 띄게 듬성듬성해졌다. 그러나 아직 모두 베이지는 않았으므로, 언덕에 가까운 야트막한 산 위에 얼마나 많은 적이 서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바레투! 그대들의 총통으로 속히 저 깃발 있는 곳을 쏘시오! 저들은 아직 우리 총통 있는 것을 모를 테니, 이토록 멀리 나간다는 것도 모르겠지!”

멀리서 쏜 대포에 ‘동 림’이 맞아 죽는다는 것은 어째 싱거웠으나, 리스본과 고아에 있는 상관들은 과정보다는 결과를 더 선호할 것이다. 바레투는 현장 지휘관인 ‘동 두리송’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곧 콜루브리나 네 문이 동시에 불을 뿜고, 그 중 한 발이 깃발 세워졌던 곳에 적중하였다.

“맞추었다!”

“와아아!”

운 좋게 두 깃발이 모두 꺾였다. 하나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는지 보이지 않고, 다른 하나는 잠시나마 붕 떴다가 떨어지는 것이 눈 밝은 이들에게 보였다.

“싸움은 이제부터다! 모두 평소 훈련한 대로, 또 미리 일러준 대로만 하면 된다!”

두리손 저도 그 모습에 왠지 모르게 격앙되어, 목소리가 높아졌다.

“예, 원수!”

그때였다.

“깃발이 다시 세워졌습니다!”

“무어라?”

“우리 쪽 마병을 보내어 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니, 복병이 있을 수도 있소.”

얕은 술수에 불과하다. 보나마나 깃발 여럿을 가져다 놓고, 이쪽의 사기를 꺾으려는 작정일 터. 만약 그렇다면, 서양 총통의 위력만 들통난 셈이다.

“무엇을 노리고 있느냐...”

혼잣말을 할 무렵, 마침내 북쪽에서 흙먼지가 일어났다.

“옵니다!”

중량천을 오른쪽에 두고, 북병들이 남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맞이하는 포화 소리.

“예상대로군.”

저쪽에서 그대로 서쪽으로 틀어, 정릉(貞陵, 現 성북구 정릉동 일대) 쪽으로 넘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그리하려면 야트막할지언정 나름 언덕이라는 이름값은 하는 능선을 넘어, 이미 목책 따위로 틀어막은 성저십리 저자까지 돌파해야 한다.

방금 전, 그쪽을 지키는 별군(別軍)에서 멀찌감치 화포를 쏜 것은 그것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이미 저들은, 저들도 모르는 사이 한쪽으로, 이곳 살곶이벌로 몰리고 있었다.

“동쪽에서도 옵니다!”

아차산, 여전히 깃발이 휘날리는 중턱 아래쪽으로, 강과 맞닿은 좁은 길목 통해 일군의 마병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 넓지는 않은 중량천 골짜기를 조금 더 북쪽에서 틀어막지 않고, 이곳 살곶이벌까지 무사히 당도하도록 내버려둔 것과 같은 이치로, 그쪽 길목도 막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모든 일이 뜻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야인들입니다!”

서쪽과 서북쪽은 청계천과 중량천이 합류하여 생긴 개울로, 남쪽은 한강수로 막힌 살곶이벌. 그 북쪽과 동쪽에서 북병과 여진 야인들이 나타났다. 부채꼴로 이쪽 진영을 넓게 감싸는 형세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는 뒤집어 말하면, 조총의 불벼락을 내릴 수 있는 면이 훨씬 넓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리의 계책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원수. 두려워 마시지요.”

“누가 두려워하는가? 자네야말로 식은땀이 나고 있는데.”

애써 내놓는 어색한 농지거리가 군막을 오간다. 모두의 눈길은 저쪽 북병과, 그 뒤 아차산에서 여전히 휘날리는 깃발에 가 있다.

다시 한번 화포가 몇 번 불을 뿜고, 저쪽 진형 앞에 맞았다. 몇몇 재수 없는 자들이 맞았을 법도 했다. 물론 포환에 맞아 절명한 자보다는, 말이 놀라는 바람에 낙마한 자가 더 많겠지만.

“옵니다!”

두리손 그는 틀리지 않았다.

살곶이벌은 겉보기에만 벌일 뿐, 실제로는 섬과 다름없다. 풀이 무성한 곳 사이에 얕은 물이 흐르는 곳, 숫제 늪에 가까운 곳, 모두 섞여 있다. 말을 달리려면 달릴 수야 있겠지만, 마병을 몰고 이쪽을 들이칠 만한 빠르기로는 달리기 어려울 테다.

그러므로 그는 틀리지 않았다. 눈부신 승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야인들이다!”

알 수 없는 말로 시끄럽게 외치는 자들이, 돼지꼬리같은 그 해괴한 상투를 휘날리며 맨 앞으로 달려나온다. 저들의 기세를 보라는 양, 좌우로 어지럽게 날뛰며, 비스듬히 다가온다.

서양 코쟁이들도 심심찮게 돌아다니는 세상에, 고작 야인을 두고 도깨비 사촌 정도로 여기는 어리석은 병사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세우기 전까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전쟁과 같았던, 그런 북변의 별세상에서 온 자들의 흉험하고도 날센 기세에는, 평안한 삶을 살아온 자들을 억누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명을 내려라.”

“예, 원수!”

그러나, 두리손 그는 틀리지 않았다. 그의 막료들도 틀리지 않았다. 그들은 주어진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

“하화약(下火藥, 총구 안에 화약을 넣음)!”

“하화약!”

“송약실(送藥實, 꽂을대로 화약을 마저 밀어넣음)”

“송약실!”

저들의 말은, 생각보다도 형편없다. 몽고마라 하여 무슨 한혈마쯤 되는 명마일 줄 알았으나, 고작 조선의 조랑말보다 조금 나은 덩치. 물론 그 나름의 장점은 있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였던 것, 억센 마병으로 곧장 돌격해 진형을 무너뜨려 버리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북병 마병들도 마찬가지. 가까이 드러난 모습을 보면, 기창(마상창)은 드물고, 대개는 편곤 – 다른 군관은 몰라도, 두리손은 그것을 고작 도리깨라고 무시하지는 않았다 – 이나 궁시를 들었다.

이쪽 진형이 다 무너진 뒤라면 모를까, 저것만으로 제대로 된 타격을 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 송지(下紙, 送紙, 총구에 종이를 넣고 꽂을대로 마저 밀어넣음)!”

“하지!”

“송지!”

“개화문(開火門, 화약접시 덮개를 엶)!”

“개화문!”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군막 안의 모두가, 아군과 적군 사이의 그 거리, 그리고 점점 빨라지는 인민군 포수들의 동작만을 보고 있을 무렵.

아무도 모르는 사이 아차산 중턱에 세 번째 깃발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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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에서 발원해 의정부와 서울을 거쳐 한강에 합류하는 중랑천은 역사적으로, 또 구간 별로 여러 이름으로 불려 왔습니다. 그 중 중랑천은 청계천과 합류하기 전 가장 마지막 구간을 이르는 말로, ‘중량천’과 혼용되어 쓰였습니다. 그러나 『대동여지도』에서 중량포(中梁浦)라는 지명을 언급하는 것을 보면, 적어도 조선 후기에는 ‘중량천’이 조금 더 널리 쓰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명칭이 ‘중랑천’으로 통일되었는데, 이로 인해 후대에 중랑천이 일제가 지은 이름이라는 오해가 퍼지기도 했지요.

뚝섬/살곶이벌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한성부 남부 두모방에 속한 성저십리의 일부였지만, 제대로 개발이 시작된 것은 어느 정도 근대 건축기술이 도입되고 한강 치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19세기 후반부터로 추정됩니다. 그 전에는 군사훈련이나 말 목장 등으로 쓰였고, 종종 선비들이 경치 구경을 나오는 정도였지요.

작중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 ‘정’과 ‘기’는, 『손자병법』 <병세> 편에서 언급된 이후 다른 동아시아 군사이론서에서도 계속 다루어지는 개념입니다. 정은 정공법 또는 정석, 기는 전술적 또는 전략적인 임기응변을 각각 뜻하는데, 손자는 이 둘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지만 동시에 직접적으로 전투의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기’라고 주장했습니다. 소모전보다는 속전속결을, 그리고 그보다는 아예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선호했던 손자다운 주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후대의 병서에서는 반대로 ‘정’의 우위를 주장하는 경우 -대표적으로 『이위공문대』-도 나타나는데, 전쟁의 성격이 변화하면서 발생한 관념 변화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작중 언급되는 조총 사격 절차는 『신기비결』(1603)에 나오는 14개 절차를 인용한 것입니다. 다만 흑의군과 직접 구르면서 (또는, 굴리면서) 이러한 절차를 체득/수립한 명희의 경우, 한자가 아닌 우리말 구령을 사용하는 차이가 있습니다.

원 역사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육전에서 최초의 승전보를 올린 것으로 유명한 신각은, 그 생년이 전하지 않습니다. 다만 1574년 경상좌수사를 역임하였다는 점, 그리고 1592년 그가 억울하게 사망했을 때 그 노모가 90세에 달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작중 시점인 1560년에는 막 군 생활을 시작해 위로 올라가는 정도일 것이라 짐작해볼 수 있겠습니다. 그는 한강 방어가 실패하고 임진강으로 후퇴하던 중 군사를 수습해 양주 인근에서 일본군 소부대를 급습(해유령 전투)하였는데, 정작 승전보를 올리는 것이 지연되어 당시 다른 많은 장수들처럼 싸우지도 않고 도주하였다는 오해를 받게 됩니다. 그 결과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죄를 받아 처형당하고야 말았지요.

여러 정황을 참작하면, 그는 비록 훌륭한 무인이기는 했지만, 바로 그 점으로 인해 정치적 식견이 부족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이은 패전으로 선조뿐 아니라 조정의 다른 신료들도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서 있었음을 감안하면 장계가 조금이라도 늦어질 경우 어떤 오해를 받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지요. 신각 입장에서는, 소소한 승리에 연연하지 않고 속히 임진강 방어선에 합류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장계를 올리는 데 조금 소홀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 그리고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것이 더 맞는 판단이었겠지만 – 그것이 결국 그의 죽음을 초래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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