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199화 (199/259)

60. 거경궁리 (3)

조선 사람들은 남이 저 없는 곳에서 제 험담을 하면 귀가 가렵다고 하는데, 일본 사람들은 그럴 때면 통상 재채기를 하곤 했다.

“에취!”

소 모리타네가 같은 영수이자 (일단은) 히라도의 영주인 마츠라 타카노부가 두 마음 품었음을 막 린죠 히데요시에게 고변하려던 무렵, 히라도 성에서 느닷없는 재채기 소리가 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겨울 바람 차가우니 조심하시오.”

히라도에 찾아온 시마즈 씨 사람 중 가장 서열 높은 시마즈 타다히라(島津忠平, 훗날의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가 타카노부를 걱정하는 시늉을 해 주었다.

“서로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하지 마십시다.”

“그쪽이 그리 원한다면야.”

사츠마 사람 말투 거친 것이야 잘 알려진 바요, 마츠라 타카노부도 조선과 명국 사람들과 하도 부대끼다 보니 성정이 물들어 겉으로 나오는 소리와 속마음 다른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 그대 주군을 배신하겠다, 그런 말 하려고 부른 것 아니오? 저 카쿠부츠(격물)인가 하는 것을 함께 막아세우자고.”

“역시 말이 잘 통하는군. 굳이 따지자면 위에서 먼저 아래를 배신한 셈인데, 여기에 대해서도 굳이 설명할 이유는 없으리라 믿소.”

“뭐, 그렇겠지. 그대 주군 뜻대로 되면 가장 먼저 이 성에서 쫓겨날 사람이 그대일 테니.”

농민에게는 일공구민으로 세곡을 걷고, 이곳저곳 오가는 장사치들에게도 세금을 면하다시피 한다. 고작 일 년만 그렇게 하더라도, 실제로는 일 년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당장 그 이듬해부터, 그 전까지는 그저 무사들에게 고개 조아리던 것들이 고개 빳빳이 들고, 이왕 이렇게 된 것 앞으로도 계속 이대로 하면 어떻겠느냐, 그런 무엄한 말을 꺼내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해가 지나면, 상인 몇몇이 아니라 일개 농사꾼들도 그런 말을 꺼낼 것이요, 다시 한 해가 더 지나면 그때부터는 마치 사민(四民)이 늘 대등하였던 것처럼 거리낌조차 없이 떠들게 되리라.

“이미 망한 오우치나 쇼니 씨, 그리고 이미 저의 영지를 하야시(林) 씨에게 넘기다시피 한 소 씨를 제하면, 아마 우리 마츠라 당만큼 조선에 대해 잘 아는 이들도 일본 땅에 없을 것이오. 그리고 저 조선이 우리 아버지 대까지만 해도 어떤 나라였는지 기억하는 이도, 별로 없지.

불과 십 년. 길게 보아도 십오 년. 그사이에 조선이 한바탕 뒤집혔소. 그리고 조선에 들이닥친 너울(荒波)은 이 땅에 닿을 때면 쓰나미(津波)가 되겠지.”

임 당수는 고작해야 자신과 천하의 궁금함을 풀기 위해 벌이는 일이라 하였으나, 마츠라 타카노부는 이를 믿지 않았다.

헌법이라는 것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조선과 명 사이의 대립. 반드시 그것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조선에서 일으킨 변화가 틀리지 않았음을 보이기 위해 조선의 천하인은 거리낌없이 일본을 뒤집어엎을 것이다.

“결코 쉽지 않을 것이오. 상대는 조선 천하인이란 말이지.”

“그 말대로요. 하야시 쇼군이 개입하기 전에 마츠라는 류조지를 치고, 시마즈는 인근의 크고 작은 세력을 모두 정리하고, 그 뒤에 양측이 오토모를 협공하여 규슈의 절반 넘게는 차지해야 하오.”

며칠 사이에 급조한 계획은 이러하였다.

이대로 조선 민주당이 다이묘들의 야심을 망상으로 만들어버리고, 무사와 평민의 엄격한 위계를 제멋대로 흩뜨리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서로 넘어야 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음을 보여야 한다.

조선의 속사정과 민주당의 속셈을 조금이나마 안다 자부할 수 있는 마츠라, 그리고 류큐의 일로 저들도 모르는 사이 피해를 입은 시마즈 정도나 민주당의 진의를 곧장 의심할 뿐, 다른 세력들은 아직 이 해괴한 제안에 반신반의하고 있을 것이다.

고작 일 년인데 무슨 일이야 있겠느냐 생각도 하고 있을 것이요, 특히 오토모 씨는 소문이 퍼져 시고쿠나 주고쿠에서 영민들이 대거 유입될 것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마츠라와 시마즈는 그 틈을 노린다.

물론, 마츠라는 자신과 시마즈의 힘을 결코 과대평가하지는 않았다.

“성공할 공산이 얼마나 된다 보시오?”

“오토모나 다른 규슈의 집안들이 쇼군의 말만 믿고 그대로 방심한다 가정하더라도, 모든 것이 뜻대로 될 공산은 잘 쳐봐야 열에 두셋이나 될까.”

“하기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천수각(天守閣) 무너지는 것을 좌시하느니, 차라리 들판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칼을 빼들어야겠지. 그게 무사니까.”

아마 몇 달 안으로 하야시 쇼군의 보복이 규슈에 내릴 것이다. 어떤 보복일지, 타카노부는 감히 헤아릴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가장 아픈 곳을 찔러 들어올 것이요, 설령 그들이 미리 안다 한들 딱히 막지는 못할 것임을 능히 알 수 있었다.

그 전까지, 그들이 민주당의 대계를 가로막을 수는 없어도 적어도 조금이나마 망칠 수 있는 힘 정도는 지니고 있음을 보인다.

“물론 우리가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뒤에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교섭에 나서야 할 것이오. 자존심은 전장에서만 세우고, 협상에 임할 때는 모두 버려야겠지. 어쩌면 시마즈 가에서 민주당에 인질을 보내거나, 아니면 저 북변에 용병이라는 명목으로 병력을 보내야 할 수도 있소. 아니면 누구 하나 할복을 하거나.”

“하, 그것 참. 상락(上洛)을 할 때보다도 더한 각오를 해야 한다니.”

“여하간 돌아가는 대로 출병을 준비해야 할 것이오. 굳이 시일을 맞추거나 할 것도 없이, 준비되는 대로 바로 옆을 치는 것으로.”

“그리 전하겠소. 시마즈 사나이들도 히젠노카미 그대의 말을 전해들으면 그 누구도 반발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열렬히 떨쳐 일어날 것이오.”

다들 잘 살 수 있는 방도가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하니, 더도 덜도 아니요 딱 일 년만 싸움을 멈추고 조세를 덜자는 제안.

그 제안이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배신을 떠올리고 있으니, 왜인들은 대개 간사하여 믿을 수 없다는 조선 사람들의 편견이 꼭 잘못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일이었다.

허나 반대로, 짧게는 백여 년, 길게는 사백여 년간 무가(武家)의 나라였던 일본의 법도를 제멋대로 비트는 그러한 제안을 받아든 무가들로서는 가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뒤로도 시일은 흘러, 어느새 에이로쿠 5년(1562) 봄이 되었다.

예상대로 오토모 씨의 바닷가 영지에는, 벌써부터 실오라기 같은 희망 품고 넘어오는 다른 영지 백성들이 급류처럼 들이닥쳤고, 모리 씨의 바다 건너 주고쿠 땅에서는 왜 규슈 쪽에만 일공구민을 하느냐는 항의가 잇따랐다.

그러자 모리 모토나리는 선심 쓰듯, 만약 규슈 땅에서의 ‘격물’이 성공을 거둔다면 에이로쿠 6년부터는 간몬(關門) 동쪽의 영지에도 조금씩 그 ‘하야시 세법(稅法)’을 적용하겠노라 공언하였다.

물론 모토나리 마음 속에 느닷없는 선량함이 샘솟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보다는, 나라의 모든 다이묘들의 세수가 반토막난다면 이와미 은광을 지닌 모리 자신에게는 오히려 이득이 될 것이라는 셈을 진작에 마쳐두었기 때문이었다.

그 공언하는 것이 너무나 요란하여, 마치 이웃한 다른 다이묘의 영지까지 작정하고 소문을 퍼뜨리려는 것처럼 오해할 법하였다. 만일 모리 본인에게 찾아가 묻는다면야 당연히 극구 부인하겠지만.

“맙소사...”

“흐흐, 제 수완에 감탄하신 것이라 여기겠습니다.”

그러한 사정의 대부분이 그대로 공보에 실렸고, 또 미처 실리지 못한 사정도 행간에는 그대로 드러나다시피 하였다. 종잇장 내려놓으며 소 모리타네가 한탄인지 감탄인지 애매한 탄식을 흘린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리타네가 놀라는 것은 그 때문만이 아니었다.

“자유민주당이 민주당 산하인 것처럼, 마찬가지로 한양의 공보를 본뜬 히라도의 공보가 나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 제도는 한양에서 나오는 조선 공보를 본땄으되, 실리는 것은 일본의 소식이요 쓰이는 것도 일본의글이라고 당당히 알리는『히라도 신문공보(平戶新聞公報)』. 여관 옆 건물까지 빌려, 목판 파랴, 옮기랴, 찍어내랴 온갖 부산스러움을 다 떨고 있었다.

한양의 공보 본사에서는 이번 격물을 맞이하여 히라도의 여관 한 곳을 통째로 빌렸다. 그러고는 동래에서 초모한 조선말 아는 일본인들을 부려 그들로 하여금 규슈 곳곳을 돌며 소문을 모으도록 하고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마다 경호하는 병사들이 따로 붙었다.

그런데도 정작 공보 쪽에서는 은 한 푼 쓰지 않고 있었는데,

‘가라츠(唐津)에서 가장 품질 좋은 포목을 취급하는 오노야(大野屋)의 주인은 밝히기를, 금년에 규슈의 모든 무가에서 세법을 시험 삼아 개역(改易)한다 한 이래로 그 소득이 두 배 넘게 올랐다 하였다.

또한 하카타(博多)에서 다섯 대 동안 미곡상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누구를 속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코마츠야(小松屋) 주인은 이르기를...’

이렇게 홍보해주는 대가로 규슈 각지 상인들에게 오히려 은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여, 조선에는 이 전무후무한 격물 – 물론 격물이라는 것 자체가 그리 오래된 제도는 아니지만 – 의 세세한 사정을 전하고, 규슈와 사카이 등지에는 거기에 살을 붙이고 아예 그림까지 첨부한 광고를 내는 등 한껏 부풀린 ‘신문공보’를 팔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석 달 사이에 이루어졌다는 말이오?”

“석 달이라뇨. 미리 조선에서부터 준비하였으니 그것보다는 조금 더 걸렸습니다. 목판 파는 장인들이야 요새는 온 천하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종이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마냥 쉽게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니까요.”

석 달이 아니라 삼 년 사이에 벌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놀라워해야 할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제가 임 당수를 모시기 전부터 이미 벌어지던 일이라 해야 할지도요.”

그 옛날, 판옥전선 한 척과 대맹선 두 척이 임꺽정과 이명희, 이이 세 사람을 태우고 히라도에 찾아왔을 때부터 씨앗이 뿌려진 일이라 할 수도 있었다.

그 이후로 자유민주당이 세워지고, 조선과 나머지 천하의 재보가 히라도를 오갔다. 만지는 물산의 종류가 폭발하듯 늘어나고 그 값어치가 껑충 치솟는 만큼, 그 재물을 직접 다루는 이들의 생각도 트여갔다.

달라진 것이라면, 고작해야 한 가지. 그 전까지 알게 모르게 물들었던 이들을, 이제는 드러내 놓고 움직이려 한다는 점뿐일 테다.

“올해 어떤 격물을 하는지, 규슈 전역에 널리 알려 오해가 없도록 하겠노라고 일전에 다들 공언하지 않았습니까. 무언가 불온한 생각을 널리 퍼뜨리기에 이만한 기회도 없겠지요. 지금이야 그저 소소한 이야기만 실으며 슬슬 건드리고 있지만, 이제 적당히 달아올랐으니 조금 다른 이야기를 섞어넣을 예정입니다.”

“다른 이야기라면, 설마?”

“영수께서도 이미 영수의 영지에 ‘권점을 시행하는 것이 좋겠다’ 한 말씀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나머지 쿠니들도 권점이 무엇인지, 그것을 할 수 있는 근거인 만민의 의권이란 무엇인지, 다들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리석은 백성들이야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대신 일본에는 백성들에게 애써 그것을 이해시켜 저의 편으로 만들고자 할 만한 이들이 많이 있었다. 전국을 오가는 장사치들 중 상인들이 스스로 다스리는 사카이를 몰래 부러워하는 자가 어찌 없겠는가. 마찬가지로 드러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백성이 다스리는 나라’ 카가(加賀)를 부러워하는, 야심만만한 일향종 승려들도 없지 않았다.

“결국 일 년 간의 카쿠부츠란 말은 거짓이었군. 당수께서는 정녕 이 나라를 원하시는가?”

“나라를 차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조선부터 제대로 집어삼키지 않았겠습니까? 설마 영수께서도 ‘하야시 쇼군’이라는 게 정말 진지하게 막부의 쇼군과 같은 것이라고 여기시지는 않으시겠지요.”

천하를, 그리고 시대를 통째 훔쳐야만 직성이 풀릴, 하늘과 땅이 열린 이래 가장 대담하고 가장 뻔뻔한 도적. 그런 도적에게 고작 나라 하나가 무엇이 중하겠는가.

“이제 슬슬 때가 되었습니다. 모내기철이 지나는 대로 저쪽도 움직이겠지요.”

“그러면 이제 우리도 움직이는 것인가?”

“아뇨. 그저 가만 앉아 지켜보면 그만입니다.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으니까요.”

시마즈 씨의 4형제는, 장차 집안을 일으켜 온 천하에 이름 떨칠 주역으로 여겨지는 이들로 하나같이그 장래가 촉망받곤 했다.

개중 셋째인 토시히사(島津歳久)는 모든 일에 있어 이해(利害)를 따지는 데 실로 견줄 자 없다는 평을 받았는데, 그렇기에 이번 거병에 대해서도 끝까지 반대하였다.

그의 형제들은 물론이요, 그들의 자초지종 해설을 들은 가신들조차, 마츠라 당의 해적 두목 타카노부가 웬일로 무사다운 생각을 했다면서, 사민의 법도가 흐트러지는 것을 좌시하느니 차라리 한 판 붙는 것이 시마즈다운 것이라 여겼다.

‘허나 이 나라의 무사도 처음에는 그저 섬기는 자(侍, 사무라이) 아니었던가? 시대가 변하면 지위는 바뀌는 것이요, 또 영예를 얻을 방법도, 부귀를 얻을 방법도 바뀌는 것일 텐데...’

그렇지만 그 혼자 집안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좋게 여기자꾸나. 이번 일이 정말 제대로 성사만 된다면, 아니, 설령 실패하더라도 그 뒷처리만 잘 한다면 시마즈 씨도 천하대사를 논하는 자리의 말석에나마 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신문공보’인가 하는 것이 나오기 한참 전부터 조선에서 나오는 공보를 챙겨 읽었던 토시히사였다. 물론 다른 형제들도 ‘신주 예순여섯 나라’가 천하의 전부라는 고리타분한 생각은 버린 지 오래였지만, 토시히사는 특히 바깥 세상 이야기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 바깥 세상의 이치도 일본 안쪽과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그 규모가 아득하니 다를 뿐, 결국 힘과 돈,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있어야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러니, 시마즈가 어떻게든 지금보다 더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너무 늦는구나.”

어느새 슬쩍 기운 태양의 햇살이 때맞추어 그의 눈을 찔렀기에, 토시히사는 상념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다.

“송구스럽습니다. 즉시 사람을 보내어 재차 채근토록 하겠습니다.”

이 무렵에는 시마즈 가도 다른 집안들, 예컨대 모리나 오다 씨처럼 군사를 제때제때 소집하는 대신 항상 일정한 수의 군사를 두는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류큐가 시마즈의 손아귀를 벗어나, ‘백사은(白沙銀)’이라고도 불리는 사탕(설탕) 장사를 시작한 덕에 그 과실이 조금은 시마즈에게도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이번 출병은, 무엇보다도 하루하루를 허투루 쓰지 않는 것이 중하였다.

대국 천자와도 맞먹고 서방에서는 제멋대로 나라의 임금을 죽이고 세웠다는 – 심지어 ‘스에츠(須津, 수에즈)’라는 곳에서는 바위를 꿰뚫어 두 바다를 하나로 합쳤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 하야시 쇼군의 뜻에 반하는 일. 언제 어떤 보복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았으므로, 애초에 그런 보복이 들어올 여유를 주지 말아야 했다.

헌데 이를 위해 모내기철 끝나기만 기다려 대군을 소집했는데, 좀처럼 군사와 짐꾼들이 모이지 않았다.

“아니다. 소식이 돌아오지 않은 마을이 절반을 훌쩍 넘지 않더냐. 내 직접 가보아야겠다.”

“예! 바로 명을 전하겠습니다.”

어차피 이 일대는 그들을 기습할 만한 세력도 없는, 시마즈 가의 오랜 영지. 그러므로 당장 그를 시위하는 일이백 무사들만 거느린 채 가장 가까운 마을로 달려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행은 마을에 닿았다. 그러나 마을에 이르기 한참 전부터,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마츠리(祭り, 마을 제사 겸 축제) 철은 아직 멀었건만, 조악한 북소리에 맞추어 여럿이 떠들고 외치는 노랫소리가 반 리(약 2km) 바깥에까지 울렸던 것이다.

“만국(萬國)의 사람들이 함께 맹세하니 경사가 일어나려는구나!”

암만 보아도 농민은 아닌 자 하나가 선창하고,

“좋지 아니한가(ええじゃないか)!”

모여든 마을 사람들이 남녀노소 어우러져 한입으로 외쳤다.

“사람 죽는 시대는 끝나고 사람 사는 시대가 왔구나!”

“좋지 아니한가!”

한참 웃고 떠들던 이들 중 누군가가 마침내 마을 바깥의 군대를 알아보았다.

“와아! 오셨다! 귀하신 분께서 오셨다!”

“어서 오십시오! 이 좋은 날 함께 즐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굴 드러나지 않는 것을 틈타 무엄한 말을 외치고,

“저희는 그저, 이대로라면 이듬해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이 좋은 시절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모자란 자들의 소동에 불과하니 부디 참작해주십사...”

후다닥 달려나와 고개 조아리는 늙은이조차 조금 더 공손할 뿐, 저들의 잘못은 전혀 입에 담지 않았다.

“이 마을에는 출병의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는가?”

곁을 지키는 무사가 날카롭게 물었다.

“아이고, 저희는 그저...”

“되었다. 사람의 심성이란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마련. 이처럼 들뜬 마당에 출병의 소식이 들려온다면 그것이야말로 헛소문이라 치부하지 않겠느냐.”

올 한 해는 전쟁이 없다. 세곡도 일공구민이다.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철석같이 믿게 된 이들에게 다가가, 전쟁을 벌여야 하니 마을의 아시가루는 창을 들고 나오고, 짐꾼들은 바칠 군량과 함께 모이라 하면 어찌 되겠는가.

물론 창칼은 그들 무사들에게 들려 있으니, 위협하여 대군을 모으고 그들 먹일 군량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모은 군대로, 과연 조선 쪽에서 움직이기 전까지 규슈 남쪽을 모두 평정할 수 있겠는가?

“다만 한 가지만 묻자꾸나. 너희에게 이 경사스러운 소식을 전한 것이 누구냐?”

“저희 마을에 종종 찾아오는 상인이 있었습니다. 말하기로는 그 히라도라는 곳까지 오가는, 발 넓은 이라고 하였는데... 그이가 그런 말을 전하였습니다.”

“내 마저 맞추어 보마. 그렇게 좋은 소식이니 널리 알리라 전하고서는, 다른 마을에도 소식 전하겠다며 금방 사라졌겠지?”

어찌 아셨냐는 듯, 노인은 깜짝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상인들의 움직임이 빨랐다. 고작 한둘이 꾀를 부린 것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당(黨)처럼 히라도에서부터 내려온 지시에 여럿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것일 테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또 하나 있었다. 상인들이 처음에는 그저 민주당에 연줄 만들고자 따랐다가, 이제는 제법 진심으로 믿는 도가 있다고 하던가.

“혹시 그자가 처음 보는 목걸이를 하고 있지 않던가? 저기, 우리 시마즈 가의 쥬지몬(十文字, 십자 문양)처럼 생긴 목걸이였을 텐데.”

“실로 영명하십니다. 저희 같은 무지렁이들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지혜로움을...”

연신 아첨하듯 주워섬기는 노인을 보며, 토시히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얼른 형님께 가자꾸나. 이미 이 싸움은 시작하기도 전에 졌으니, 후일을 도모하든, 아니면 바짝 엎드리고 승자를 맞이하든, 빠르게 결단해야 할 것이라고 전해야지.”

같은 시각, 히라도 성.

마츠라 가문의 깃발 대신, 어떤 문양도 없이 ‘히라도 사업당 분주(分主, 주주) 총회’라는 글자만 적힌 기묘한 깃발이 휘날렸다.

“우리는 마츠라 당의 최근 운영에 대해 정당한 이의를 제기하는 바입니다.

히젠노카미께서는 마츠라 당의 정당한 당주시지만, 자유민주당의 영수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자유민주당은 민주당 산하에 있고, 우리는 민주당의 일부인 사업당의 분주 자격을 지닌 상인들이자 이 히라도 백성들을 절반쯤 먹여살리는 이들입니다.”

타카노부는 그저, 병력을 모으라는 지시를 내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불과 반나절 뒤, 성은 함락당하는 줄도 모른 채 함락당했다.

히라도를 다스릴 권리를 절반쯤 누리고 있던 상인들이, 당주께 긴히 아뢸 것이 있다고 우르르 몰려왔고, 그들을 막아세워야 할 무사들은 이미 린죠 히데요시에게 두둑한 뇌물을 받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처럼 막중한 책무를 진 이들로서, 스스로 다스리지 못하는 이들을 갈음하여 이 자리에 섰습니다. 무가와 상인들이 함께 일군 이 도시가 이대로 화란에 직면토록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너희가, 너희가 어찌 감히 내게 이럴 수 있느냐?”

분노에 찬 일갈에, 아직은 무가 아래서 고개 조아리던 그 버릇 다 못 버린 상인들은 일순 움찔하였다.

“그러는 영수께서는 어찌 감히 당수께 이럴 수 있습니까?”

그때 상인들 사이를 뚫고 나오는 왜소한 젊은이가 있었으니, 바로 원수 같은 린죠 히데요시였다.

“무가가 무가로 남기 위해서는, 주군에게 칼 한 번 뽑아 대들 수도 있는 것 아니더냐? 그러지 않고 칼날 부러뜨리는 것을 감수한다면 어찌 무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으랴.”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뿐이므로 우리가 무가를 그 제 자리에 돌려놓으려는 것입니다.”

“무어라? 제 자리?”

“히노모토 예순여섯 주가 무가(武家)의 것이 된 지도 어언 사백 년이던가요.”

오와리에서 오다 그자에게 쏘아붙이고 싶었던 말. 가족이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가라앉았던 그 말이 이 자리에 서자 다시 떠올랐다.

배움이 부족하다 여겨, 처음 임 당수 앞에서 일본의 앞날을 논한 이후로 스스로 공부하고 또 고민하였다. 그리하여 그때 떠오른 그 생각을, 이제는 제법 논리정연하게 밝힐 수 있었다.

“그 사이에도 농사꾼들은 세곡을 뜯기면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황무지를 개간하고, 장사꾼들은 어려운 사정 속에서도 이문 남기려고 남쪽 바다부터 에조치(蝦夷地, 홋카이도)까지 누볐습니다. 그런데 무가는 대체 무엇을 이루었습니까? 이 땅의 재화를 빌려주어 불려내기를 했습니까? 스스로 궁구하여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를 했습니까?”

시시각각 붉게 물드는 타카노부의 면상을 보니, 효험이 꽤 있는 듯하였다.

“영 실적이 좋지 않으니, 이제는 한바탕 갈아치울 때가 되었지요. 자, 마츠라 상(さん). 마츠라 상은 오늘부로 해고입니다. 히라도의 진짜 주인들을 대신하여 제가 이렇게 통보하겠습니다.”

“우리 마츠라 당의 가신들이 주군이 하루아침에 근본 없는 상인들에게 쫓겨나는 것을 방관만 할 것 같으냐?”

“마츠라의 후다이(譜代, 대대로 같은 집안을 섬기는 무사)라 해보아야 솔직히 말해 다 해적 무리 아닙니까? 그리고 그 해적들이 타고 있는 배며, 그 배 몰기 위해 이곳저곳에 손 벌리며 빌리는 돈이며, 모두 누구의 것입니까? 충성이야 물귀신 되기 싫으면 지켜야 하겠지만, 그 대상이 마츠라 당은 아니겠지요.”

뿌드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렸으나, 뒤의 상인들이라면 모를까 히데요시에게는 먹힐 리 없었다.

“그래도 그간 우리 민주당과 자유민주당에 공을 많이 세웠으니, 간죠(感狀, 추천서) 한 장은 써 드리겠습니다. 때마침 사업당과 협력하는 사이인 류큐 진량사에서 농장 관리할 사람을 뽑는다더군요. 이미 시마즈 씨와 합을 맞춰보셨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일지도요.”

“나를, 이 마츠라 가문을 이렇게 농락하다니...”

“그러면 어디로 가시렵니까? 모리 씨는 이미 우리와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이와미 은광을 틀어쥔 쪽에서 생각하면, 서국 제일의 무벌(武閥)보다는 일본 제일의 재벌(財閥)이 더 나으니까요.

그보다 더 동쪽으로? 오와리의 오다 씨야 요새 워낙 세를 빨리 불리고 있으니 새 주군으로 삼을 만도 하겠군요. 그곳을 제외하면 글쎄, 기나이의 미요시 씨는 검호 쇼군(아시카가 요시테루, 足利義輝)과 드잡이질하기에 바빠 바깥 세상 어찌 돌아가는지 살필 여력도 없을 테고요. 카이의 호랑이(甲斐の虎, 다케다 신겐) 정도라면 그나마 낫겠네요.”

그러고서는, 마치 중요한 계약 문기의 가장 중요한 – 그러므로 가장 알아보기 어려운 구석에 흘려 쓰는 – 문구를 읽듯 말을 이어가는 히데요시였다.

“그리고 아마 모내기철 동안에도 출전을 준비한다고 이것저것 모으셨을 텐데, 그것도 이곳 히라도 상인들이 받아 감사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따로 모으는 대신, 열심히 흩뿌려 무사부터 농민까지 모두 조금씩은 얻어갈 수 있도록 하지요.”

이것이 바로, 이번 격물이 반드시 민주당 노린 대로 풀릴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벌써부터 이렇게 온 백성들이 부유하게 될 기미가 보입니다. 우리 당수가 던진 질문이 어떤 답을 얻을지, 슬슬 그려지는 듯하지 않습니까?”

시중에 풀리는 재물 자체가 많으니, 결국 돌아오는 세금도 늘어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 세금의 태반은 본디 세금을 거두는 무가의 것일 테지만, 그게 억울하다면 다이묘들도 공보를 차려서 천하에 하소연하면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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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아니한가(ええじゃないか, 에에쟈나이카)’는 원 역사에서는 1867년~1868년 사이 서일본에서 유행한 미스테리한 구호입니다. 보신 전쟁(무진전쟁)을 앞두고 막부와 웅번 사이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던 시기, 느닷없이 서일본, 특히 간사이 일대의 농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현상이지요. 어디선가 영험한 부적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소문이 돌고, 갑자기 마츠리(祭り)와 비슷한 축제가 인근 마을에서 열리며, 마을 사람들이 모두 거리로 뛰쳐나오거나 근처의 절이나 신사에 모여 ‘좋지 아니한가’ 구호를 외치면서 즐기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습니다. 이 현상이 어째서, 또 누구에 의해 벌어졌는지는 아직도 정확히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대체로 에도 막부의 몰락을 직감하였거나 지지하는 민심의 발로였다고 해석됩니다.

사츠마 일대를 다스리던 시마즈 가문은, 흔히 ‘시마즈에 암군(暗君) 없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유능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했습니다. 그 덕에 어지간한 명가들도 휘하 가신이나 심지어 힘을 키운 상인 출신들에게 배신당해 몰락하는 일이 늘어나던 전국시대 말기에도 살아남았고, 그 이후에도 끝까지 버텨 지금도 일본 왕실과 인척 관계를 맺는 명문가로 버티고 있습니다. (전대 일왕 아키히토의 외조모가 바로 폐번치현 전의 마지막 번주 타다요시의 딸이지요.) 특히 작중에 등장한 시마즈 요시히로와 토시히사, 그리고 장남 요시히사와 막내 이에히사 이렇게 네 사람은 ‘시마즈 4형제’로 불리며, 시마즈 가문이 규슈 남쪽을 정복하고 이어지는 혼란기에도 버틸 수 있게끔 하는 기반을 쌓았다는 평을 받습니다. 이 중 시마즈 요시히로는 임진왜란에도 참전하여, 명과 조선 쪽 기록에도 그 이름을 남겼습니다. 도공 납치의 원흉이기도 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조선 입장에서는 좋게 볼 수 없는 인물이지만요.

원 역사의 일본에서도, 전국시대의 혼란이 끝나자마자 출판 문화가 꽃피었습니다. 가나 문자의 특성상 활자인쇄는 들어오자마자 퇴출되었고, 대신 목판인쇄가 활성화되어 에도 시대의 화려한 서민 문화를 이끄는 한 원동력이 되지요. 지난 화에 언급된 높은 세율로 인해 빠르게 꽃핀 도시 문화와 맞물려, 온갖 종류의 서적과 판화(우키요에) 등이 널리 보급되게 됩니다. 작중에서는 그러한 변화가 조금 일찍, 그리고 인위적인 개입을 통해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간에 지나가듯 언급된, 카가 국의 ‘백성이 다스리는 나라’는 지금의 오카야마 일대에 세워졌던 일종의 자치 공동체로, 전국시대 전체에 걸쳐 벌어졌던 일향종의 봉기(잇코잇키) 중 유일하게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다이묘와 그 가문을 쫓아내고, 유력한 무사 집안들과 일향종 승려들이 집단지도체제 비슷한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었지만요. 그 이후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비슷한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지만 카가 국의 자치는 그대로 유지되어,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무너지고 마에다 가문의 봉지가 될 때까지 약 90여 년간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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