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빛은 동방에서 (2)
조선 사람들이 중추원과 통의부, 공회를 합쳐 ‘삼문(三門)’이라 부르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지, 또 누구에게서 기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위로는 나랏님을, 아래로는 백성을 모시고 위하는 세 곳을 통틀어 부르는 것이라고 후에 가져다붙이기는 하였으나, 실제로는 몸고생 아니하고 출세하는 세 길을 문에 빗대어 일컫는 말이었다.
가장 어렵지만 위세도 높은 중추원, 즉 조정이 정문(正門)이요, 문장에는 밝지 않아도 괜찮으나 송사에 관여하려면 율학(律學)에도 해박하고 재치도 있어야 하는 통의부가 서협문(西夾門)이요, 고을 인심만 얻으면 누구든 – 당장 양주 공임 임가도치만 해도 백정 아니던가 - 공임으로 추대될 수 있는 공회가 곧 동협문(東夾門)이었다.
이 외에도 요새는 계사를 꾸려 사업을 벌리는 것, 아예 먼바다로 나가 돈벌이를 하는 것, 무관으로 나아가 나라 지키며 봉록 받아먹는 것 등등 몸고생할 각오만 하면 출세할 길은 많이 열려 있었다. 허나 조선 풍속이 아직 몸을 쓰는 것을 낮게 여기므로 삼문으로 출세하기를 바라는 이는 끊이지 않았다.
꺽정이가 일본으로 향할 무렵부터 한양 공회가 떠들썩해져 지금껏 차분함을 되찾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민주당과 탕평당 두 당이 합하면 능히 저들이 세운 헌법도 갈아치울 수 있을 만큼 한쪽으로 기울어진 공회 형국을 한바탕 뒤엎어보고자, 나이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않을 뿐 실제로는 누가 보아도 당수인 정여립이 못된 꾀를 하나 낸 것이다.
“권점을 아무나 하지 못하도록 법을 정한다?”
돌아가는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히데요시의 통변 통해 물었다.
“그렇다오. 정여립이 그놈이 나이도 어린 주제에 머리가 꽤 잘 돌아간단 말이지.”
저 배고프다며 입맛 없는 요시테루까지 데리고 가까운 밥집 들어가 국밥 한 사발 후루룩 말아먹던 꺽정이가 숟가락 내려놓으며 대꾸했다.
“그래도 이렇게 시끄럽게 논란 번질 줄은 그이도 몰랐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요새 반자(한옥의 천장)와 공회에 같은 점이 있다는 못된 우스갯소리도 돈답니다.”
임 당수 도울 겸, 조자룡 헌 창 쓰듯 검을 다룬다는 이웃나라 대군 구경도 할 겸 따라나온 권율이 거들었다.
“반자하고 공회하고 대체 무엇이 비슷하단 말이냐?”
“반자라 하면 반자틀 위에 개판(蓋板)을 얹지 않습니까. 지금 공회도 딱 그런 형세라는 말이지요.”
곁에서 열심히 조선말과 일본말을 옮기고 있는 히데요시를 당황케 하는 말장난이었다.
정여립 생각에, 아직까지도 각 고을 향회에서 알음알음 운영하던 권점의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나라의 이익과 의리에도 맞거니와, 선비의 당인 탕평당과 오만 잡것들 당인 민주당 사이를 갈라놓는다는 점에서 대동당 이익에도 맞았다.
허나 그가 알지 못한 것은, 바로 그가 그득 쌓인 화약 더미에 불씨 던진 것과 같은 짓을 하였다는 점이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오복을 의권으로서 누려야 한다면, 빈한한 집안의 선비만큼이나 가멸찬 집안의 상놈도 권점에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내훈(內訓)』은 물론이요 『격몽요결』까지 뗀 반가 규수라면 그런 상놈보다도 더 국정과 고을 일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껏 각 고을 내에서만 조용히 얘기 오가고 눈치껏 적당히 합의되었던 것을 온 나라의 공론으로 정해야 할 일로 끌어올린즉, 관계된 모든 이 – 즉 어지간한 백성 전원 – 들이 한 마디씩만 하여도 온 저자가 시끌벅적해졌다.
정사에 대해 백날 떠들어도 별 효험이 없던 그 시절에도 매일같이 한양의 고관대작들이 어쩌고, 나라의 앞날이 저쩌고 떠드는 것을 버릇으로 삼던 조선 사람들에게는 이만한 논쟁거리가 없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말다툼에 지쳐서 올해 석전에는 유별나게 사람이 덜 다쳤다는 말이 나돌까.
당장 꺽정이 일행이 있는 이곳 주막 밖에서도 – 이곳 코앞에서 공회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 논쟁이 끝없이 이어져 언성이 낮아질만 하면 도로 올라가곤 하였다.
“아낙은 집에서 애나 보아야지, 무슨 국사를 논한다는 말이야! 숭어 뛴다고 망둥이도 뛰는 꼬락서니하곤.”
“뭐야? 그러는 네놈이야말로 지난해 권점에 너희 집 형수에 며느리까지 데리고 나오지 않았느냐?”
“반가의 규수와 여염집 아낙이 같으냐? 하기야, 네놈의 식견이 그뿐이니 지난 권점에도 목불식정(目不識丁) 무식쟁이들과 함께 우르르 권점하러 나온 것이겠지. 아니, 네놈의 친척들이었던가? 워낙 둘이 비슷하다 보니 잘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네 이놈, 말 다 하였느냐! 그러는 너야말로 생긴 것이나 하는 짓이나 백정과 다름없지 않으냐? 너희 친가와 외가 중 어느 쪽이 그쪽과 근연(近緣)하더냐?”
“지나가는 백정놈도 한 마디 하겠소! 내가 아는 것은 고리 짜는 법뿐이지만, 이래 봬도 우리 큰 어르신 임가도치 공(公)께 호형(呼兄)하는 사람이오! 지금 떠든 말 도로 집어넣으시오! 아니 그리하면 내가 직접 집어넣어 드리겠소이다!”
딱 보아도 눈앞에서 허튼소리 하면 명줄이 위태롭겠구나 싶은 인상의 꺽정이와, 사카이에서 겨우 수습한 수하 몇 명과 함께 평복하고 있는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주막 안쪽에서야 함부로 못 떠들지만, 담장 반대편에서는 이를 알지 못하니 제멋대로 떠들 뿐.
그러나 굳이 히데요시에게 물어 저 소란 속에서 행인들이 무어라 떠드는지를 전해들은 요시테루의 진중한 눈빛은, 한심함이나 답답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쯤이면 움직여도 되겠군. 자, 들어가십시다.”
그런 심리 개의치 않는 꺽정이가 국물을 마저 들이키고는 그릇 내려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직 수산 선생으로부터 답이 오지 않았는데요.”
“내가 아는 우리 사형이라면 지금쯤 얘기를 마쳤을 게요. 아, 저기 오는군.”
오늘도 발품 파는 탕평당 심의겸이 멀찌감치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로부터 반나절 전, 탕평당 영수 이준경의 집에서는 그보다 한참 점잖은 모임이 열렸다.
빌린 곳은 이준경의 집이되, 사람 부르는 일은 이 모임 주동한 이지함이 맡았다. 각 당에 속한 공임들 중에서도 제법 인망 있는 이들, 그리고 어쨌든 공회 안에 있는 한 당을 이끄는 몸이요 세상 시끄럽게 하는 데는 짧은 몇 달 사이 놀라운 재주를 보인 대동당 정여립까지.
“지난 보름간 미루어 온 일본국 국서의 일을 논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지함이 운을 떼었다.
일본국 정이대장군(쇼군) 족리의휘(足利義輝, 요시테루)가 보낸 국서는 아직 조정 바깥으로 나가지 않았다. 공회가 영 시끄럽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이 국서에 담긴 내용이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내막을 아는 이들은 하나같이 침음성을 흘렸다.
식자들 중에서도 특히 견식 있는 이들은 이 모든 것이 구풍(태풍) 찾아오기 전의 정적과도 같을지 모른다는 불안을, 막연하게든 확연하게든 품고 있었다.
그러나 암만 멀리서 전운(戰雲)이 일어난다 한들,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구름일 뿐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작금 천하에서 조선은 홀로 태평하였다. 오죽 태평하면 공회에서 멱살잡이로 소일을 하겠는가.
헌법을 두고 사이 틀어진 조선과 천조 대명 사이만 해도 그러하였다. 어쨌든 겉으로 드러나기에 조선을 핍박하고 미워했던 것은 작고한 선황이요, 또 그 나라 안에서도 무슨 공사를 세우니 향신을 억누르니 하며 바빴다.
사황제(嗣皇帝, 황위를 갓 물려받은 황제)의 성정이 어떠한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어쨌든 선황보다는 현량하고 치세의 재간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조선이 대국과 모든 것을 건 전쟁을 벌인다는 생각을 차마 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저들의 바라는 바가 많이 섞인 생각을 하며 거기서 그치곤 했다.
“일본의 동군 뒤에 대국 동창이 있고, 그 뒤에는 내각수보 장 대인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서군을 도와 일본국에도 개명된 제도를 세우게 한다면, 필시 후과가 있을 터입니다. 민주당만 몰래 넘어가 돕는다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더욱 그렇겠지요.”
일동 중 가장 입 가벼운 정여립이, 우물쭈물하는 선우당 사람들까지 대신해 물었다.
“청와(정여립)의 말에 일리가 있소. 국서의 내용을 널리 알리고, 나라의 곳간을 열어 대군을 돕는 것이 나라 사이의 도리로는 마땅한 일이겠지만, 국서의 이면에 얽힌 사정을 백성에게 함께 알린다면 반드시 세론(世論)이 크게 어지러워질 것이오.”
좌중에서 가장 나이 지긋한 이준경이 이어받아 정리하니,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꺽정이와 민주당이 온 세상을 제멋대로 헤집고 다니는데 이를 조선 안의 그 누구도 제지하려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이들을 제지하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였으나, 민주당 쪽에서도 눈치껏 – 정확히는 꺽정이는 아니고, 이지함과 서림이 - 선을 지켜온 덕이었다.
그들 당의 사업 전모까지 밝히지는 않아도, 적어도 조선에 당장 얽힐 만한 일이라면 기꺼이 미리 알리곤 하였으며, 대개는 (한숨 섞인) 동의를 받곤 했다. 한쪽에서는 조정과 다른 당이 이것만은 아니 된다며 가로막고 나설 만큼의 일은 벌이지 않고 (또는 들키지 않게 몰래 벌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조금 거슬리는 정도까지는 참는 식으로 지난 이삼 년을 보내왔다.
그러나 일본국 대군의 국서에 담긴 청은, 분명 그런 선을 넘는 것이었다.
“그... 송구스러우나... 이길 수 있는 싸움인지요?”
공회에 들기 전까지만 해도, 대명과 조선 사이 파인 골이 그리 깊은 줄 모르고 있던 선후당 공임 하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비단 소생뿐 아니라 온 국인(國人)이 그리 물을 것입니다.”
물론 국서의 내용에 대하여 국인의 눈을 가릴 수는 있을 것이다. 몰래 조정의 곳간을 열어, 조선 사람이 다치지 않는 한에서 일본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 그 누구도 백성을 속일 생각은 차마 하지 못하였다. 자칫 사직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일에서까지 국인을 속인다면, 그들이 선대(先代)의 낡은 사람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승산이 많다고만은 할 수 없소.”
이지함은 순순히 인정하였다.
“대명은 비록 근래 안팎으로 어지러움이 있다지만 명색이 대국이오. 이 동방뿐 아니라 지구 전체를 둘러보아도, 그 인구와 물산이 제일이니 에우로파 하나를 합친 것과 비슷하오. 더구나 명의 다음으로 강성한 나라인 에스파냐가 또한 그 편을 들고 있소이다. 실로 하늘과 땅이 열린 이래 가장 거대한 전란이 될 것이오.”
이 또한 알 만한 이들은 다 알지만, 어디 가서 함부로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 이야기였다. 모두의 어깨가 한층 더 무거워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지금껏 우리 당은 온갖 계책을 음지와 양지에서 공히 베풀어, 그 승산을 조금이라도 올리려 노력해 왔소. 일본국 대군의 국서 또한 그 일환으로, 장차 일본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함이오.
허나 감히 단언하자면, 곧 닥쳐올 전란에 대해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아국 조선이 이길 수 있느냐가 아니라고 하겠소.”
“어째서 우리 조선이 이겨야 하느냐, 그것이겠군.”
“그렇습니다, 동고 대감. 설령 우리가 승리한다 한들, 그것은 매우 값비싼 승리가 될 것입니다. 아주 잘 풀려도 막대한 전비가 수용(需用, 소요)될 것이요, 조금 흔들릴 때마다 우리 국인의 피가 되와 말로는 헤아릴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흐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께 여쭙고자 합니다. 일본국의 대군을 돕는 일은, 곧 닥쳐올 전란의 발단이라 할 만합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는 어디까지 감수해야 하겠습니까? 얼마나 큰 각오로 임하여야 하겠습니까?”
하늘은 청명하였으나, 지나가는 날짐승조차 우짖지 않는 듯하였다. 모두의 미간이 좁혀지고, 불안함과 단호함, 의심과 결심이 동시에 마음 속에서 피어났다.
“당장 이 자리에서 답을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우리들이 이 자리에서 바로 답하면 안 되는 물음이지요.”
이미 수 년 전부터 오늘이 당도할 것을 알았던, 그러나 몇 년이라도 더 지난 뒤에 오기를 바랐던 이지함 또한 심란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연한 말투를 내려놓지 않는 것은, ‘백의재상’이라는 말에 부끄럽지 않게 처신하고자 하는 뜻이 그만큼 굳기 때문이리라.
“삼가 청합니다. 동고 대감께서는 성상께 말씀을 올려주시고, 조정의 뜻을 모아주십시오. 또한 각 당에서도 공회 안에서, 또 각지 군현의 향회 안에서 공론을 모아주십시오. 그리하여 반 년 안으로 일본국에 대해, 나아가 닥쳐올 전란에 대해 우리 조선의 국인들이 어찌 임해야 할지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반 년이라. 그간 그대의 당은 어찌할 심산이오?”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여론을 움직이고자 나설 것입니다. 허나 저와 임 당수의 이름을 걸고 단언컨대, 조정과 다른 당에 대해 그 어떤 간섭도 하지 않겠습니다. 전란에 대한 물음의 답은 반드시 모든 국인의 마음에서 우러나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판단은 여러분들, 나아가 위로는 성상부터 아래는 여염 백성까지 모두의 몫입니다.”
눈길이 오가고, 조심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고는, 다들 저도 모르는 사이 한결 단호해진 발걸음으로 이준경의 집을 나섰다.
단 한 명은 제외였는데, 멋모르고 탕평당의 일로 찾아와 대문 밖에서 기다리다가 이지함 눈에 띄어 졸지에 엉뚱한 민주당 일로 발품을 팔게 된 심의겸이었다.
공회가 열리는 서도대(瑞圖臺)는 말만 그럴듯하지, 실지로는 별것 없었다. 언제까지 흑의영을 빌려 쓸 수는 없었기에 도성 안쪽에 공터를 만들고 석대 쌓은 뒤 창고와 본당 짓고 담장만 두른 정도여서, 신축한 건물의 단아하고 정갈한 멋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허나 그 어떤 고대광실(高臺廣室)을 공회 열리는 장으로 삼는다 한들 풍광이 그리 아름답지는 못할 터였다. 바깥에서만큼 상소리 주고받지 않을 뿐 권점의 자격을 두고 여전히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갑론을박 이어지던 도중 느닷없이 그 흐름이 툭 끊겼다.
사람 둘이 마당에 서 있고, 방금 전까지 드잡이질 하던 것 같던 이들은 급히 헛기침하며 옷매무새 가다듬고 흙먼지를 터는 것이었다.
“자, 얼른 말하시오.”
임꺽정이 저의 옆에 선 사람 – 영락없는 왜인인데, 그 기세가 범상치 않아 공경대부의 반열에 든 자 같았다 -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곁의 왜인이 아주 더듬더듬, 어색한 조선말로 암만 들어도 미리 외워온 듯한 말을 주워섬기는 것이었다.
“아, 흠흠. 이것이 조선에서 공론을 모으는 절차입니까? 실로 제도가 아름답습니다. 우리 일본 또한 이러한 개명된 법도를 세우고자 합니다.”
“그렇다고 하는군. 자, 얼른 적으시오.”
이제 보니 두 사람 뒤에는 또 사람 몇몇이 따라와 있었는데, 코쟁이 장인들의 특산품으로 한양이나 인천, 동래 같은 번화한 곳에서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연필(鉛筆)를 놀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필시 공보, 그것도 어디 한미한 고을이 아닌 사업당 아래 바로 딸린 그런 곳에서 나온 이일 테다.
“자, 들으신 대로 여기 있는 일본국 대군께서 그대들이 화목하게 국사 논하는 것을 참으로 아름답다 하였소이다. 그렇게들 알고, 하던 것 마저 하면 된다오.”
그러나 다들 뜻밖의 사태에 넋이 나간 고로, 하던 일을 재개하는 이는 없었다.
“어허, 왜들 이러시나.”
그제야 정신 차린 이들이 헛기침 한두 번 하고는 방금 전까지 훨씬 점잖게 앞서 하던 말을 이어갔다. 친척과 외척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는 내려놓고, 정말 임 당수 말씀마따나 화목하게 서로의 주장이 잘못된 바 있음을 지적하니, 방금 전까지 재밌게 구경하던 이가 있었다면 심심하다고 할 만하였다.
그렇게 한참 마음에도 없고 혀에도 맞지 않는 어색한 조선말 찬사를 늘어놓고 뒤돌아 나가니, 시각으로 치면 한 각이 채 되지 않았다.
“어떻소? 별것 아니지 않소?”
요시테루가 툴툴대었다.
“일본의 무장들이 패배를 앞두고 할복을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을 면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 생각뿐이오.”
“우리 조선 사람들은 남에게 배째라는 말은 해도 저의 배를 알아서 쨀 생각은 못 하는데.”
“그 얘기가 아니잖소.”
히라도에 잠시 머물고 있는 자신을 끌고 한양으로 오는 길에 ‘하야시 쇼군’은 말하기를, 이 계책대로만 행하면 반드시 온 조선이 서군의 토막을 돕기 위하여 들고 일어날 것이라 하였다.
조선 말로 밑져야 본전이라, 큰 기대 없이 평복 차림으로 따라온 요시테루였다.
곧 예조에서 달려와 일본국 대군께서 여기 무슨 일이시냐 물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요시테루는,
‘조선의 개명된 법도를 이 두 눈으로 직접 보기를 원하여 이렇게 잠행을 하게 되었소이다.’
밝히고는 그제야 쇼군의 복식으로 환복하고는 간략하게나마 국빈의 대우를 받을 예정이었다.
“그래도 이 계책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의심하는 말은 아니 하시는구려?”
“후, 모르겠소. 한편으로는 우리 일본마저 이 꼴이 날까 두렵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든든하기도 하군.”
“든든하다?”
공론을 주의로 삼는다는 것. 그저 말로만 백성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나라가 백성을 위하고 백성은 나라를 위하는 것.
한양의 길목 곳곳에서 오가는 논쟁, 그리고 눈앞에서 펼쳐진 저 난장판. 살아 숨쉬며 꿈꾸고 욕심내는 사람들의 드잡이질.
멀리서 보면 그저 시끄럽고 추할 뿐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볼수록 요시테루의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저 모든 다툼이, 임 당수 그대가 세웠든, 그대로 말미암아 세워졌든 한 법도를 두고 벌이는 짓거리 아니오? 대개 상인은 금을 귀하게 여기므로 이를 두고 다투곤 하지만, 도둑이 나타나 저들의 금을 송두리채 훔쳐갈 것 같으면 원수지간이라도 금방 화해하고 다 같이 몽둥이 들고 뛰쳐나가곤 하지.
그대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 위로는 공경부터 아래로는 농민까지 모두에게 제멋대로 떠들고 저의 뜻대로 살며, 나아가 그 뜻을 나머지 세상에 펼칠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주었소. 불과 이십 년 전만 해도 꿈꾸지 못하였을 것이지만, 이제는 천금을 주더라도 빼앗지 못하겠지.
그러니 만약 임 당수 그대 뜻에 저 백성들이 응하게 된다면, 그만큼 든든한 지원군이 없을 것이오. 저렇게 욕심 부리며 드잡이질하는 그 힘이 바깥으로 온전히 향하게 될 테니.
나아가 당수 탓에 어울리게 된 이 정부 놀음도, 어쩌면 단순한 놀음을 넘어 그 어떤 막부보다도 더욱 견고하면서도 강성한 무언가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꺽정이와 히데요시, 권율이 그 말의 함의를 되새기기도 전에, 예조 관원이 후다닥 달려와 맥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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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언급된 반자는, 서까래 등 지붕 안쪽 구조물을 보이지 않게 하고 지붕 틈새로 떨어지는 오물이나 낙수를 막기 위한 천장의 일종입니다. 간혹 선비들은 이 반자에도 태극도나 성수도(星宿圖)를 그려넣었다고 전해집니다. 개중 가장 공이 많이 들어가는 유형은 반자를 지탱하는 틀을 가로와 세로 두 방향으로 촘촘히 맞추어 짜고 그 위에 개판을 얹는 우물반자(또는 소란반자, 천정天井 등)였는데, 그렇게 짜게 되면 아래에서 보았을 때 형상이 우물 정(井) 자와 같이 보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천장’과 ‘천정’이 한국어 입말에서 딱히 구별되지 않고 혼합되어 쓰였던 것은, 음운상의 유사성뿐 아니라 실제로 ‘천정’이 천장으로 많이 쓰이는 유형이었던 역사적 맥락 때문이기도 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본디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은 조선이나 중국에 대하여 ‘일본국왕(日本國王)’을 자처하였습니다. 이는 무로마치 막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滿)가 대명무역을 위해 일본국왕으로 책봉받은 – 이로 인해 일본 내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 데서 기인하였는데, 조선과 중국 조정과 지식인들 입장에서도 복잡다단한 막부 체제를 이해하려 노력하느니 그냥 ‘대충 쇼군이 국왕이다’ 여기고 넘어가는 쪽이 편했기 때문에 어물쩍 이것이 관례로 굳어지게 됩니다.
이후 에도 막부에서도 이러한 관행이 이어질 뻔했으나, 이미 임진왜란 및 전후교섭 과정에서 조일 양측은 과거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서로 잘 알게 되었고, 결국 ‘일본국왕’ 문제가 불거지게 됩니다. 중간에서 쇼군의 국서를 조작하던 대마도 소 씨의 행적이 발각된 야나가와 사건(야나가와 잇켄, 柳川一件) 이후 막부가 직접 외교문서 관련 업무를 처리하게 되면서, 일본 국내에 알려져도 문제가 되지 않을 법한 표현으로 ‘일본국 대군’을 쇼군의 대외 명칭으로 사용하게 되지요. 이후 조선국왕과 일본 쇼군은 국가 수반으로서 동등한 지위를 암묵적으로 서로 인정하고, 통신사를 통해 오간 국서에도 이러한 인식이 상호 반영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 역시 불완전한 것이었는데, 일본 내에서는 조선에서 국왕의 적자를 뜻하는 대군이 쇼군의 명칭으로 쓰이는 데 불만이 제기되었고, 조선 내에서는 조선 국왕과 일본 쇼군이 동등하게 교섭할 경우 일본의 천황이 조선 국왕의 윗사람이라고 주장할 여지가 생긴다는 점이 지적되었습니다. 결국 이는 메이지 유신 이후 조선이 공식적으로 천황을 수장으로 삼는 일본 신정부의 국서를 접수하지 않는 결과로 이어졌고, 운요호 사건의 한 가지 원인이 됩니다.
작중 등장한 연필은 원 역사에서도 비슷한 시점에 유럽에서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가장 큰 계기는 16세기 중반 잉글랜드에서 석탄 광업이 활성화되면서 부산물로 흑연이 대량으로 채굴된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보로데일(Borrowdale) 광산에서 나오는 흑연은 처음에는 납의 일종으로 – 흑연(黑鉛, 검은 납)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 오인될 만큼 그 품질이 좋았는데, 연필심으로 가공하기에 적합하였습니다. 작중 조선은 이미 평양 일대에서 조금씩 석탄 채굴이 이루어지고 있기에, 평양 북부 탄전에서 연필에 쓸 만한 흑연이 발견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