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꺽정은 살아있다-234화 (234/259)

70. 해서파관 (3)

“생각보다 빨리 돌아오셨구려.”

서계가 홍병위와 동창을 따돌리고 사라진 지 두 달쯤 지날 무렵, 응천순무 해서는 다시금 북경으로 돌아와 장거정을 만났다.

“죄인을 놓쳤으니, 수보 대인을 뵐 면목이 없소이다.”

서계가 백성의 토지를 마음대로 빼앗았다는 홍병위의 고변은 서계 본인이 도망치며 유야무야되었으나, 그 대신 국법의 지엄함을 피하여 도망친 죄가 붙었다.

장거정이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이 나라에서, 국법을 능멸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반역과 다름이 없었다. 황제의 권세와 위엄은 무한하고, 그런 무한함을 빌려 국정을 돌보는 것이 조정이었으므로, 그 조정에서 내리는 정령(政令)과 국법은 지엄한 황명에 버금가는 위엄을 지니는 것이었다.

“악적 임거정의 수완이 범인의 상정을 벗어난 탓이지, 어찌 그대의 잘못이겠소이까.”

장거정이 태연히 대꾸하였다. 이런 일에 일일이 대응하기에, 천조 대명의 내각수보는 너무나 바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곧 닥칠 전란이었다. 그런 장거정의 마음을 대변하듯, 장래를 촉망받던 (그러나 이제는 생사를 알 수 없는) 동창의 인재 진린이 동래에서 빼낸 군기(병기)의 도안들이 그의 서안 위에 낭자하였다.

진린이 화정현에서 중화를 배신하였다는 보고는 장거정도 받아보았다. 그러나 장거정은 그것이야말로 거짓일 것이라 예상했다. 정말 진린이 배신하였다면, 차라리 그 정체를 감추고 동창 안의 세작(첩자)으로 남게끔 하는 쪽이 이득일 터였으므로.

따라서 진린이 동래에서 구해온 이 도안들도 절반 이상은 진짜일 것이었다. 그중 열에 하나만 장차 요동에 모습을 드러낸다 하더라도 실로 경천동지할 위력을 발휘할 것이었으니, 어찌 경계하지 않겠는가?

동창에서는 조선과 일본에서 속속들이 군사와 군량이 모이고, 동래에 있어야 할 전선들은 조심스레 서쪽, 충청도와 황해도로 옮겨가고 있음을 매일같이 전하고 있었다. 이미 먼 지 오래인, 조선을 향한 동창의 눈과 귀에까지 그런 동향이 들어오고 있으니, 필시 큰일이 임박한 것이었다.

군관인 척계광과 오다 노부나가마저 걱정할 만큼 병세(兵稅, 국방세)를 새로 걷고, 이쪽에서도 대응하기 위한 군기를 창안하고 양산하는 데 천금 흩뿌리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헌데 이제 살피니, 고작 그 이야기만을 위하여 상경한 것은 아닌 듯하구려.”

“그렇소.”

‘참으로 총명하시오’나 ‘역시 수보 대인의 혜안은 뛰어나구려’ 따위 아첨은 애초에 입에 올릴 생각도 하지 않는 해서였다.

하물며 남경에서의 그 일이 있고 난 지금은 더 말해 무엇하리오.

“우리 내각의 이름을 걸고 중화 대일통의 앞날을 가로막는 자라고 칭하였던 악적 이지(이탁오)를 만났소.”

거기까지는 예상치 못하였던 장거정의 눈 – 근래 갈수록 늘어나는 업무로 말미암아, 나이가 무색하게 하루하루 침침해지고 있었다 - 이 크게 뜨였다.

“처음 그자가 임거정과 함께 강남에 닿았을 때, 이 사람 앞으로 보낸 서한이 하나 있었소. 말하기를, 서 대인이 도망친 다음에 열어보라 하였지.”

누가 도적 무리와 어울리는 광유(狂儒) 아니랄까 봐, 서한을 보낼 때도 수작을 부려 일부러 늦게 전해지게끔 하였다. 

그 글의 서두는 이러하였다.

‘이 글을 읽고 계실 즈음에는, 이미 서계 대인이 진린과 심유경이라는 작자들과 더불어 도망하였다는 급보가 순무 대인께 닿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미는 이러하였다.

‘... 이상이 소생이 예상하는 내각수보의 반응입니다. 만일 소생이 잘못 예측하였다면 그때는 남경의 성문을 닫아걸고 저희 일행을 모두 추포하셔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단, 소생의 예측이 맞아떨어진다면, 그때는 순무 대인께서도 인정하셔야만 하실 것입니다. 저희를 그대로 보내주는 것이야말로 충군(忠君)이요 보국(報國)임을 말입니다.

곧 뵙겠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탁오의 예상은 맞았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늦게 답신을 보낼 것을 그랬군.”

“끝끝내 그대가 지나쳤다고는 하지 않는구려.”

“지나치다니. 오직 정도(正道)를 지킬 뿐이외다.”

장거정이 담담하게, 그러나 당당하게 대꾸했다.

국법의 지엄함은 지켜져야 한다. 대일통을 위하여 왼쪽 소매를 걷은(左袒) 이들은 그 위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장거정은, 이 사건, 자신의 옛 스승이 짓지도 않은 죄를 피해 달아난 이번 일을, 온 중원에서 나라에 불만 품은 자들을 솎아내는 계기로 삼기로 작정하였다.

문명(文明)한 정령은 받들지 않고, 교화의 바탕인 국법은 가볍게 여기니, 문화(文化) 양면에서 국인들의 기강을 제대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응천순무 해서뿐 아니라 전국에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 사람은 상경하면서, 그대가 수보로서 내각의 이름을 걸고 내린 명이 벌써 홍병위 그 적자(賊子)들에게까지 닿아, 곳곳이 불타고 노략질당하는 것을 보았소. 그것이 어딜 보아서 정도라는 말인가!”

끝내 두 사람 모두 언성을 올리고야 말았다.

“이것이 정도가 아니면 무엇이 정도요? 짧으면 삼 년, 길어도 오 년이오. 그것만 견디면 백 년의 화평과 번영이 찾아올 터인데, 저의 집안 일문(一門)을 위해서도 능히 견딜 수 있는 수고를 어찌하여 이 위대한 중화를 위해서는 견디지 못한다는 말인가!”

삼에서 오 년이란, 척계광과 오다 노부나가 두 사람이 계산한 기간이었다.

한양과 동래를 점거하여 동방 삼국이 하나로 힘을 합하거나 그 전력을 확충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그러고도 저들이 투항하지 않는다면 에스파냐 수군, 그리고 그 무렵이면 완성될 대명의 새로운 대양수사(大洋水師)로 일본을 친다는 웅대한 계책. 

대명의 이백만 대군 중 일백만 정도를, 이십만 씩 다섯 파(波)로 나누어 번갈아가며 밀어붙인다면 능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죄인 서계의 일을 기화삼아, 그 삼에서 오 년 사이에 감히 대명 조정의 발목을 잡을 이들을 미리 쳐내는 것이외다! 이것만 이루어내면, 그 뒤로는 이 사람이 목놓아 부르짖었던 대일통은 마침내 절반 넘게 이루어지는 것이오! 

이미 그 턱만큼이나 콧대도 높던 에스파냐 놈들은 허리가 부러지려 하고 있소. 저들이 온 세상을 지배한다고 자부하던 이들이, 이제 우리 중화와 교역하지 않고서는 그 잘난 나라와 군사를 유지할 길이 없어졌다는 말이오! 오추마(烏騅馬)가 스스로 다리를 굽히고 저의 주인 될 이를 찾는데, 이때를 놓칠 심산인가!”

그 외침을 끝으로, 장거정의 서재에 침묵이 돌아왔다.

금방 벌떡 일어날 것만 같던 해서의 다리에도 힘이 풀렸다.

그리고, 정화현에서 서계의 머릿속을 스쳤던 깨달음이 해서에게도 닿았다.

그렇다. 기간으로 따지면 삼에서 오 년. 버리는 것은 고작해야 가장 먼저 조정의 정령에 반발한 괘씸한 향신과 백성 수십만의 재산과 (어쩌면) 목숨.

병비(兵備)를 급히 늘리느라 빠르게 바닥을 드러내는 국고를 다시 채우고, 늘어나는 세금에 가장 먼저 반발하고 나설 무리들을 미리 진압한다.

노리는 것은, 허울뿐인 위명도, 아무런 보람 없는 오랑캐 복속도 아니요, 온 천하에 중화의 힘을 닿게끔 하는 것.

그 수완으로 보나, 저의 수완을 거리낌없이 능수능란하게 휘두르는 솜씨로 보나, 장거정은 이 나라 대명이 세워진 이래,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상이었다. 

“거짓 중화는 참된 중화로 거듭나야 하오. 이 사람은 널리 보고 배워, 지금 그리고 여기서 행하는 이것이 가장 적은 수용(비용)으로 가장 큰 효험을 거둘 수 있는 일이라는 결론에 당도하였을 뿐이오.

이미 더 넓은 세상이, 중화에게 복속되는 것이 마땅할 세상이 펼쳐져 있음을 깨달았는데도 작금의 현실에 안주한다면, 이는 당명황(唐明皇, 당 현종)의 어리석음이오.

그 넓은 세상을 어찌 복속하고 교화를 베풀지, 시기도 방도도 알지 못하고 달려든다면, 이는 곧 수양제(隋煬帝)의 어리석음이오.

두 어리석음 모두, 조정의 녹을 받고 황상의 위엄을 빌려 국정 돌보는 자는 피해야 하는 것이오. 지금 일억 명(십만)이 죽는 것이, 몇 년에 걸쳐 일조 명(백만)이 죽는 것보다는 낫고, 지금 백성에게서 일조 냥을 빼앗는 것이 훗날 조세라는 이름으로 그 곱절을 빼앗는 것보다 낫소.”

장거정이 지난 수년간 하였던 것은, 대명의 조정이 본디 하도록 설계되었던 그 일, 그러나 번갈아 즉위하는 혼군(昏君)과 부패한 환관과 간신의 무리, 그리고 바깥 세상에 무지한 사대부들에게 발목 잡혀 하지 못하였던 일. 지금껏 인의와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변명하기에 급급하여 방치하였던 일.

금상 천자가 언제고 그 보위에 걸맞는 인재임을 보이든, 아니면 이제 황태자로 책봉된 전 유왕세자(후대의 만력제 주익균)가 그런 인물로 자라나든, 이렇게 만들어진 대명의 패권 위에서 진정한 천하의 임금으로 군림할 수 있을 터.

뛰어난 재상이, 그 어떤 폐행(嬖幸, 아첨꾼)이나 내각의 정적(政敵), 심지어 위에 모시는 황상의 간섭조차 받지 않고, 자신이 본디 속한 조정과 나라의 목적을 스스로 깨우쳐 앞으로 나아간다. 

그 나아가는 길이 이토록 참혹하고 부당한 것은, 사람의 잘못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잘못 세워지고 제때 고치지 못한 나라의 잘못인가.

인의와 도덕, 옳고 그름을 한결같이 따져왔던 해서의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그러나 독주를 연거푸 마신 듯 혼탁해진 머리로도, 한 가지 결론은 내릴 수 있었다. 

“그대가 틀렸소.”

해서는 풀린 오금에 억지로 힘을 돌리며, 겨우 책상을 짚고 일어났다.

“이 사람이 틀렸다?”

“아니, 한 가지는 인정하겠소. 나라를 위한 길로만 말한다면, 그대와 같은 재상을 얻은 것이 우리 조종의 홍복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오.

그러나, 그대가 대일통의 기치를 든 이래 매일같이, 매 시진마다 외쳐온 중화의 이름. 그것을 그대는 스스로 걷어찼소. 

당장 보정(保定, 現 바오딩)까지만 나가서, 거들먹거리는 홍병위들과 그들에게 결탁한 더러운 잡배들, 차마 선비라 부를 수 없는 향신들이 올바른 사람들을 핍박하는 꼴을 보시오. 아예 재산을 빼앗기고 그대로 죽어가는 이들을 보시오. 그 어디에 문명이 있소?

중화가 처음 그 이름을 얻을 때 세운 윤집궐중(允執厥中)의 뜻을 잃었고, 화하(華夏)는 더 이상 이적(夷狄)과 다를 바 없게 되었소. 그러니 중화는 이미 그 빛을 잃은 것이오.”

그러나 이미 장거정은 해서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이미 마음이 떠난 이를 붙잡는데 힘을 낭비하기에는, 대명 내각수보의 하루는 너무나 귀했다. 

해서가 아니더라도 일할 사람은 많이 있었다. 그만큼 청렴하지도, 강직하지도 않을 테지만, 그 정도야 관제와 법령을 바르게 한다면, 인사(人事)를 정의(情誼) 대신 효험만을 바라보며 처결한다면 족히 다스릴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었다. 

이미 조선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던가. 오직 공효(功效) 하나만을 바라보며 운영하는 조정.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도덕은, 가장 위에 있는 내각 학사들 외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덕목이었다. 

“중(中)이 없으면, 충(忠)도 있을 수 없는 법.”

“사직하겠다는 것으로 알겠소.”

“장거정이여, 장거정이여, 어디 그뿐이겠는가.”

호 대신 이름으로 한때 문연각에서 함께 정사를 돌보았던 이를 일컬으며, 해서는 등을 돌리고 나갔다.

그로부터 다시 두 달 뒤, 한양 사업당.

“... 그리고 그렇게 북경을 떠난 전 응천순무 해 대인은 천진에서 고향 경산(瓊山, 現 하이난 성 하이커우)으로 돌아가는 배편을 구했습니다.”

백련교 두목이자, 개전을 앞두고 간자(間者, 간첩) 총책 노릇을 바짝 하느라 아예 한양에 살림을 새로 차리다시피 한 조전이 자랑스레 말했다.

“정말로 온 중원의 인재가 장강 이남에서 나오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흐흐.”

마닐라에서 에스파냐군에게 참패한 이래 풀이 죽어 있다 간만에 공 하나 세운 자유민주당 서해가 딴에는 해맑은 (즉 보기에는 영 음험한) 웃음을 지었다.

서해와 그 수하 해적들은 마닐라를 공격하다가 제법 많은 병력과 배를 잃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무사 군대와 그 일족까지 모두 옮긴 뒤로 발해 일대를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에스파냐 함대는 언감생심이요, 포토시 은광에 무슨 일이라도 났는지 요새는 조금 뜸해진 마닐라 갈레온도 함부로 노리기는 어려워졌다.

그러나 아무리 큰 타격을 입었다 한들, 명의 아직 보잘것없는 수사쯤은 자면서도 농락할 수 있었다. 대명 수사도 천주나 복주 등지에서 열심히 에우로파 배를 본따서 새 전선을 만들고는 있었지만, 민주당도 동래에 선소 세운 지 십여 년 만에 겨우 카락을 만드는 흉내라도 내는 판이었으니 아예 맨땅에 머리 들이박는 식인 명나라 수사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털끝 하나 건드리면 안 된다는 내 말은 잘 따랐으리라 믿는다.”

“아이고, 물론입죠, 당수.”

모주 이지함은 서생답게 ‘해 대인이 탄 배를 나포하게 되면, 우리 쪽의 제의만 잘 전하고 노잣돈까지 두둑하게 드린 뒤 그대로 보내드리시오’라고만 하였다. 

허나 같은 도둑놈의 머릿속을 잘 아는 꺽정이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라 직감하였다.

도적들끼리 통하는 말로, 만일 서해의 아랫것들이 해서를 건드리는 일이 생길 경우 서해 본인에게 닥칠 위해에 관하여 소상하고도 상냥하게 전해준바, 해서 본인은 (꽤 많이) 얼떨떨할지언정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발부는 모두 멀쩡한 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 곁에는, 광동 사람 중에서 가려 뽑은 백련교 교인 하나가 새 하인으로 따라붙어 있었다. 곧 강남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질 것인데, 그때 저들 민주당에게 연통을 넣고 싶다면 이 하인에게 전해주면 된다는 이탁오의 서한이 그 손에 들려 있었다.

“아마 지금쯤이면 고향집에 무사히 잘 들어가셨을 것입니다.”

“그래,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자, 응?”

이것이 천하의 앞날을 결정지을 민주당 및 관련자들의 진중하고도 심각한 모임인지, 아니면 시정잡배들끼리 모여서 떠드는 자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말투로 대화가 오갔다.

모인 작자들 면면을 볼작시면 꺽정이와 이탁오, 서림 등등, 점잖음과는 만리장성을 두 겹에서 최대 다섯 겹쯤 쌓은 사람들이요, 선비다운 사람들은 어째 얼굴을 보이지 않고 있었으며, 유일한 예외는 꺽정이 옆에 앉아 난저(卵藷, 감자) 굽고 있는 명희였다.

하필 며칠 전, 히데요시가 싹 난 난저를 먹었다가 배앓이를 하는 바람에, 모두가 께름칙하게 여기는 난저였다.

허나 ‘한 번 먹어보시라’ 하고 명희가 손수 화로 들고 와 구워주니 – 명희와 신씨 부인은 이 난저의 큰 효험을 꿰뚫어보고, 이원수부터 시작하여 모든 이들에게 이것을 먹이고 익숙하게 하는 것을 사명처럼 여기고 있던 것이다 – 다들 난색 표하면서도 어거지로 먹고들 있었다.

명희를 잘 모르는 조전은 임 당수 안사람이 권하니 먹고, 명희를 잘 아는 나머지 사람들은 저들 몸뚱아리에 팔자에 없는 바람구멍 날 것을 두려워하여 호호 불어가며 힘 닿는 한 맛나게들 먹는 중이었다.

딴에는 사내답게 먹는답시고 꿀꺽 난저를 삼킨 꺽정이는 된통 입안을 데였는데, 호-호 하는 꼬락서니를 보이기 싫어 급히 물을 들이키고는, 어색함 깨뜨리고자 아무 말이나 하였다.

“그나저나 사형은 왜 아니 오나 모르겠네. 서계 어르신 대접하느라 바쁜가?”

“그 일은 오라버니가 맡기로 했잖아요.”

저의 이름을 감춘 채 조선으로 넘어온 서계는, 원래 이상한 복식의 사람들 드나드는 일이 많아 주변의 의심을 받지 않는 계월당 상씨네 집에 객으로 머물고 있었다.

어차피 몇 년 내로 중원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하니, 이미 자신이 탈 배를 정한 서계 또한 군말없이 받아들였다. 그 또한 한 사람의 문사로서, 중원에도 이름 높은 수산 선생이나, 그 옛날 북경에서 본 이래 문명이 동방에 진동하게 된 율곡을 만나 필담 한 번쯤 나눠보고 싶기도 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본인이 화를 자초하는 것이었으므로, 속사정 아는 이들도 이이와의 필담을 굳이 만류하지는 않았다.)

“오는 길에 누굴 만나기라도 했나?”

서림이 눈치껏 문 열고 나가 사람을 부르려던 차, 때맞추어 이지함이 들어왔다.

명희가 기다렸다는 듯 이지함에게도 난저를 내밀었는데, 이지함은 솜씨 좋게 선비다운 체통을 잃지 않으면서 그 난저를 잘만 먹었다. 

병해의 기학도들이 난저를 키우면서, 싹 튼 난저에 독이 생긴다는 것을 아주 세세하게 기록하여 수본으로 올린 바 있었다. 그 수본이 과하게 상세하여, ‘실로 훌륭한 글이오’ 하고 읽지는 않은 자들이 제법 많았는데, 이지함은 그중 하나가 아니었던 것이다.

“역시 사형은 대단하시오.”

아무래도 사내들이 모여 있다 보면 이런 하잖은 데서도 묘하게 서로 견주기 마련이었는데, 이지함이 그것도 모르고 단번에 눈치싸움을 끝내버린 것이다.

“무엇이 말이냐?”

“아니, 모르면 되었소. 그나저나 어쩌다 늦으셨소?”

“동고 대감과 이야기 나누던 것이 길어졌다. 이번에 북경 사신행을 할 인선에 어려움이 있어서 말이다.”

가을로 예정된 출병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다. 군사와 군량은 동래와 인천에 당도하고, 조선과 일본, 여진 사람들은 말과 글로써 그들이 일구어낸 개명된 법도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다지고, 싸워서 이것을 지켜낼 것이라 다짐하였다.

그리하여 이제 전서 보내는 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번국이 상국을 치는 일은 고금을 통틀어 드물었고, 더구나 그런 중한 사안을 알리고자 적진이 될 예정인 북경 한가운데를 들어갔다 오려는 이도 드물었다.

역관들이야 이번에 다녀오면 후하게 조정에서 포상을 베풀겠다 하면 그만이지만, 자칫 어떤 트집을 잡혀 곤욕을 치를지 모르는 – 심지어 목이 날아가거나 어디 멀리 귀주(貴州)나 난주(蘭州) 쯤으로 귀양을 가게 될지도 모르는 – 정사와 부사, 서장관의 인선은 자못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저쪽에서 마지막 남은 한 가닥 정의(情誼)를 지킨다면, 우리 쪽에서도 지켜야 할 것이요, 반대로 저쪽에서 곧장 우리를 억누르고 괴롭힌다면, 우리 쪽에서도 참지 않고 저들이 베푼 만큼 갚아주어야 할 것이다. 허나 그 중도를 찾기가 어려우니,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조선 선비의 의기야, 예로부터 과할 만큼 넘쳐흘렀으니, 자원하고 나선 사람이야 없지 않았다. 

허나 그 필두에 있는 조식 같은 이를 정사로 내보냈다가는, 훗날 사서에 ‘조선이 족히 정벌당할 만한 언행을 하였다’ 하는 기록이 남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꺽정이 생각에, 그런 고민은 일을 과하게 꼬아서 생각한 탓에 생긴 것이었다.

“사형처럼 머리 좋은 사람들이 간혹 이럴 때가 있다니까. 장꺽정 형으로 하여금 부아가 치밀어오르도록 만들면 그만 아니겠소? 꾸준히 샅바싸움 걸면서 속을 긁고 또 긁다 보면, 언제고 먼저 주먹을 들겠지. 그러면 우리 쪽도 명분이 생기는 것 아니겠소?”

“그래, 그리고 그만큼 사신들을 멀쩡히 돌려보내지 않을 명분도 생기겠지. 아무리 그래도 남명 선생 같은 분을 뻔히 사지로 들이밀 수는 없지 않겠느냐?”

“그것도 맞는 말이오. 그럼 까짓거, 내가 다녀오지, 무어.”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떠나냐는 원망 섞인 눈빛이 돌아오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뒤늦게나마 일시 두려워하며 명희의 안색을 살폈는데, 오히려 고개를 끄덕였다.

저것이 지아비의 대업을 위한 일이므로 기꺼이 양해해주는 눈빛인지, 아니면 ‘낭군께서 벌인 일이니 결자해지가 마땅하지요, 암.’하는 눈빛인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농으로 하는 소리냐?”

“아니, 진담이오.”

“이번 북경행은, 일전에 왕직 그자를 데리고 다녀왔을 때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꺽정아.”

이지함이 걱정스레 말했다.

당장 사신이 갈 것임을 알리는 신문(申文)부터 일부러 양식을 틀리게 할 예정으로, ‘삼가 알립니다(勤申)’를 그저 ‘알립니다(申)’로 쓰는 등, 어쨌든 아직까지는 상국인 명 조정의 심기를 박박 긁을 예정이었다.

겉으로 내세운 핑계야, 명이 조선의 상국이지, 일본국왕(즉 쇼군)을 겉치레로나마 폐한 일본이나 애초에 제대로 책봉도 못 받은 여진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으나, 그 핑계 뒤의 속내를 못 알아볼 장거정이 아니었다.

그 옛날, 성미의 더러움으로는 임꺽정과 맞먹던 영락제 정도라면 ‘네놈들이 그리도 조빙(朝聘)을 원한다면 내 압록강까지 군사를 이끌고 가 맞이해주겠노라’ 하며 즉시 군을 일으켰을 법한 일. 

거기에 임꺽정까지 떡하니 낀다면, 그때는 장거정이 무슨 일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을 테다.

“매를 벌었으면 가끔은 맞는 시늉이라도 해줘야지. 이래봬도 장딴지 맷집으로는 조선국에 아직 나 만한 사람이 없을 게요.

그리고 이대로 매 맞다 보면 장독 올라 죽겠다, 그런 느낌이 팍 올 것 같으면 아예 판을 뒤엎고 도망치든, 매질하는 놈 팔목 비틀어 그 매를 빼앗든 해야 할 텐데 그것도 나만큼 잘 하는 사람이 없지 않겠소?”

“너는 꼭 이럴 때면 일리 있는 말을 하더라.”

가만 듣던 서림은, 임 당수가 일리 있는 말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말로만 듣던 난저의 독이 저의 머릿속에 들어온 것인지 일순 의심하였다.

그러나 서림의 의심은 공연한 것이라, 곧 꺽정이 입에서 툭 튀어나온 발상이 이지함의 머릿속을 거쳐 민주당 중진 사이를 오가고, 이어서 공회의 다른 세 당을 거치고, 주상의 재가까지 받았으므로, 몇 달이 흐르는 동안 난저 먹으며 한 헛소리에 살이 붙어 그럴듯한 계책으로, 닥쳐올 전란을 알리는 그럴듯한 효시로 변모하였다.

그리하여 북경에서 한창 전쟁을 준비하던 장거정은, 급히 척계광과 오다 노부나가를 불러 대책을 논의하게 되었다.

의주목사를 통하여 요동총병에게 사신행을 알리는 신문 하나가 전해졌는데, 그 내용이 비범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였던 것이다.

그 신문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조선국 중추부 영의정 이준경, 일본국 태정관 태정대신 족리의휘(아시카가 요시테루), 아개국 통령 애신각라 각창안(아이신교로 교창아) 등이 사신을 보내는 일에 대하여 알립니다.

근래 천조와 번국 사이가 나날이 소원해지니, 이는 무릇 도의(道義)의 어긋남에 말미암은 것입니다. 어찌 먼저 실덕(失德)하지 않고서 실화(失和)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를 돌이킬 방도가 있으니, 이를 진주(陳奏)하고자 황태자 전하께서 탄신하신 경사스러운 날(만력제의 생일, 음 9월 4일)을 함께 축하하는 것을 겸하여 우리 삼국은 사절을 보내고자 합니다. 그 명단은 아래와 같습니다...”

사족으로 첨언하기를, 신문 서두에 조선-일본-여진 순으로 적었으니 명단은 거꾸로 여진-일본-조선 순으로 적는다 하였는데, 장거정이 암만 생각해도 읽는 이의 염통을 짜릿하게 하려는 노림수가 있는 듯하였다.

“조선국 진주사 정사 임거정

조선국 진주사 부사 이지함”

이 두 줄을 보고서 전율하지 않는 자가 북경에 있다면 그 또한 문제일 터였다.

그러나 북경을 발칵 뒤집어놓은 대목은 그보다 뒤에 있었다.

신문의 양식은, 그렇게 할 말을 모두 적은 뒤 ‘이처럼 상세히 밝혀 전합니다(照詳傳)’ 한 줄. 

그리고 거기서 줄바꿈하여, ‘시행하는 데 있어 반드시 다음에 닿기를 상주합니다 (奏施行須至申者)’ 하고, 그 신문을 받들 부처를 적는데, 번국에서 올라오는 신문은 마땅히 예부라고 적기 마련이었다.

거기까지는 멀쩡하였으나, 가장 끄트머리, 연호 적는 대목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대명 융경 4년 4월 25일

조선 개국 177년 4월 25일

일본 덴쇼 3년 4월 25일

천주기원(天主紀元) 1568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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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경제가 장거정에 의해 일찍 즉위하고, 오다 노부나가 역시 교토와 기나이를 원 역사보다 훨씬 빠르게 장악하면서, 융경 연호와 덴쇼 연호가 모두 원래보다 일찍 쓰이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국교가 천주교인지라 ‘서력기원’ 같은 표현 대신 돌직구로 ‘Anno Domini’를 번역하여 쓰는 압카이 아파시 구룬이나 – 아직 율리우스력을 쓸 때라 그레고리력보다 열흘 빠릅니다 - 본디 갑오개혁 때나 쓰였을 개국 연호를 쓰는 조선 쪽에서 역사가 뒤틀린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작중 인용된 신문 양식은 이전에 종종 인용하였던 김경록(2005, “조선후기 사대문서의 종류와 성격”, <한국문화> 35)을 참고하였습니다. 청이 명의 외교관행 상당부분을 답습하였고, 특히 실무 층위로 내려올수록 그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졌음을 감안했습니다. 신문은 조선의 의정부 대신 명의로 상국의 아문에 전하는 형태의 문서로, 더 큰 틀에서는 자문의 일종이었습니다. 작중에 언급된 것처럼, 당연히 ‘삼가 밝힙니다’처럼 황제에게 직접 올리는 것만큼은 아닐지라도 공경하는 문체와 표현을 갖추어야 했고, 연호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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