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충격과 공포 (1)
동쪽 오랑캐 세 나라의 군세는 압록강을 향해 움직이고, 천조 대명의 이백만 군세 중 첫 번째 물결로 몰아칠 정병 이십만도 북경에 머물며 요동으로 향하라는 명만을 기다리는 지금.
이 일촉즉발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국에 무엄하기 이를 데 없는 글이, 그것도 조선왕 환이나 책봉받은 적도 없는 ‘일본 천황’의 이름도 아니요, 그저 삼국 정부 우두머리의 명의로 된 성의 없는 신문(申文)으로 전해졌다.
그러므로 마땅한 대처는, 지엄한 대명 조정이 나설 것도 없이, 요동총병 선에서 사신이 압록강을 건너는 것을 막으면 그만일 터.
“헌데 저들이 그 무엄한 신문과 더불어 올린 예물단자(禮物單子) 때문에 이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게 되었소.”
북경의 자택에, 내각의 이인자 조정길과 동창제독 풍보, 그리고 가장 신뢰하는 두 무관인 척계광과 오다 노부나가까지 불러모은 장거정이 운을 떼었다.
“예물단자라 하셨습니까?”
“그렇소. 겉치레 명분으로는 우리 황태자 전하의 천추절(千秋節, 황태자의 생일)을 경하하고자 찾아온다 하였으니, 예물을 지참하는 것이야 가한 일이지.”
요동 거쳐 전해진 단자를 살핀 척계광과 오다 노부나가 두 사람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예물이랍시고 적어 올린 것은, 바로 동창이 진린을 통해 구한 조선의 신군기(신병기)였다. 성의없이 이름만 써서 올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군기가 무엇을 하는 물건이며, 그 운용을 위하여 필요한 사람의 수효와 화약의 양까지 적어 올렸다.
“하, 예물을 가장하여 감히 경조(京兆) 앞에서 우리를 위압하겠다는 것이로군. 실로 가소롭소이다.”
천생 문관인 조정길은 코웃음을 쳤으나, 척계광과 오다 노부나가 두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저들의 속뜻은 상서 대인의 말씀대로일 것입니다. 허나 저들의 허실을 살필 기회이기도 하니, 어찌하여 수보 대인께서 고심하시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척계광의 말에 노부나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십수 년 사이 동쪽 땅의 병법은 이전의 이백여 년을 합한 것보다도 더 크게 변하였다.
조총이 만병지왕(萬兵之王, 최고의 병기)의 자리를 점하였고, 차가운 날붙이 대신 뜨거운 화약의 불길이 싸움의 승패를 결정하게 되었다.
“하면 남당(南塘, 척계광) 그대는 어찌 보는가?”
“동래에서 구해온 도안은 익히 보았습니다. 개중 하나라도 제때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면 실로 흉험한 무기가 될 터. 마땅히 미리 살펴야 할 것입니다.”
단번에 탄환을 쏟아내어, 한 각에 족히 천여 발을 쏠 수 있다는 신기총통(神機銃筒), 철갑을 두른 수레로, 믿기는 어려우나 물을 끓인 김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무적귀차(無敵龜車) 등등.
과장하여 위압하려는 뜻이 명백하였으나, 개중 십분지일이라도 진실이라면 능히 또 한 차례 병법을 다시 쓸 수 있는 군기들이었다.
조선 의병과 싸우며 그런 군기의 힘을 직접 겪었던 노부나가와, 그 노부나가와 일찍이 이야기 주고받으며 동이(東夷) 삼국을 제압할 방편을 고심하던 척계광 두 사람은, 그러므로 사절단이 저 병기를 들고 와 시연하는 것을 허용하자는 쪽으로 뜻을 굳혔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임거정을 이곳 북경으로 들일 수 있겠지요.”
가만히 들으며 간혹 고개만 끄덕이던 노부나가가, 아직 일본 억양 강한 관화(官話)로 덧붙였다.
“직전(오다) 공, 임거정이라는 자는 결국 도적이지 않소? 서초패왕(항우)은 그 무용으로 수수(睢水)를 붉게 물들였지만, 끝내 해하(垓下)에서 시체가 잘게 나뉘었소. 임거정은 그에도 한참 못 미치는 자인데, 어찌 그 한 사람을 그리도...”
조정길이 노부나가의 말을 가로막으려던 차, 장거정이 먼저 끼어들었다.
“아니, 직전 공의 뜻이 합당하오. 마저 말씀하시오.”
“고맙습니다. 제가 겪어본바, 조선의 군략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번 사절단을 받으면 그중 둘을 미리 제압하거나 그리할 수 있는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노부나가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귀를 기울였다.
“첫째는 정(正)이니, 이는 우리가 어찌할 방도가 없습니다.”
정이라 하면, 조선의 정병이다. 고작 일 년 훈련으로 평생 전장을 누빈 무사의 군대를 찍어누른 일본 민병. 그들이 받은 훈련을 창안하고 또 훨씬 오래 전부터 시행하였던 것이 조선의 군대이니, 척계광이 장거정에게 군권을 일임받아 바로잡은 명의 정예한 군병도 조선에 겨우 비할 수 있을 테다.
“둘째는 기(奇)인데, 이는 어떻게든 미리 제압하거나, 적어도 무엇이 있는지 그 사정을 밝혀내야만 겨우 허를 찔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라 하면, 조선이 어디에선가 계속 구해오는 기묘한 문물, 그리고 기탄없이 그것을 이용하여 펼치는 전법이다. 일본의 전장에 여진 마병을 풀어놓고, 여태껏 보지 못한 정교한 화포로써 구마노 수군을 무너뜨린 민주당 수완을 노부나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소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는 있으나, 셋째는 바로 임(林)입니다.”
조선의 조정이 허수아비가 되고 일본처럼 막부가 세워졌다는 풍문을 들었을 때부터, 그 뒤에 무언가 더 있음을 깨우쳐 귀를 기울였던 노부나가였다.
처음에만 해도 하야시 쇼군의 전법이란, 상대의 의표를 노려 그 우두머리를 재빨리 제압하는 것 하나뿐이었다. 그 우직한 용력과 도적다운 뻔뻔함으로 한동안 이 전법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것이 바뀌었다. 몇 년 전, 두리손이라는 자가 이끌었던 조선 땅의 병란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전, 서쪽 땅을 헤집어놓고 다니던 시절부터일지도 몰랐다.
“제가 겪어본바, 임꺽정의 전법이란, 대개 본인이 앞서 나타나 적진 깊은 곳을 마음껏 헤집고, 기로써 허점을 찔러 우리 쪽의 이점을 상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싸움에 끌려나올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는, 그들에게 가장 유리한 때와 싸움터를 골라 싸움에 임하는 것이지요.”
물론 임꺽정 또한 믿는 바가 있으므로, 북경행을 자처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작게는 – 이를 ‘작다’고 부를 수 있을지는 의문스러웠지만 – 대명과 조선, 크게는 온 세상의 명운을 결정지을 이 싸움에서, 소소한 의심 때문에 술수를 아끼는 것은 패착의 지름길일 터.
“그렇다면, 저들이 ‘진주사’를 자처하며 상경하는 것을 승낙하되, 저들이 북경에 당도하면 그간의 죄를 물어 그들이 지참한 군기를 압수하고, 만약 그것이 가하다면 임거정과 그 무리까지 모두 붙잡는 것으로 하겠소.”
잠시 숙고한 장거정은 곧 논의를 마무리짓고,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각각 임무를 내렸다.
악적 임거정이 스스로 사지에 걸어들어오는 것은, 구명의 계책을 이미 마련해두었기 때문일 터.
오다 노부나가와 척계광 두 사람은, 우선은 저들이 가져오겠노라 공언한 군기가 실제로 얼마나 매서운지 확인하고, 그것을 빼앗는 데 힘을 기울인다.
그 다음으로 중한 것은, 저들이 이런 시국에 사절을 보낸 까닭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실제로는 정사에 가까울 부사 이지함과 담판을 지어 동쪽 오랑캐 나라들의 사정을 헤아리는 데 힘쓴다.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동창제독 풍보가 제의하였다.
“이십만 대군이 머물고 있는 이곳 경조에 적의 수괴나 다름없는 임거정이 몸 성히 드나든다면 천병(天兵)뿐 아니라 저희 동창의 이름에도 크나큰 누가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기회에 임거정을 붙잡는다면 장차 닥쳐올 전란에서 흩뿌리게 될 인명과 재정을 크게 아낄 수 있겠지요.
그러니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임거정은 임거정대로 추포하고, 그리 중하다는 저들의 군기 또한 손에 넣을 방도가 있습니다...”
그 옛날 왕직을 잡아 바치러 간신 조문화와 함께 지났던 북경 가는 길을, 이번에는 조선국 정사로서 다시 밟게 된 꺽정이였다.
지금껏 전 지구에 걸쳐 꺽정이가 벌인 난장판의 절반쯤은 저의 머릿속에서 설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조선 바깥으로 자주 나가보지 못한 이지함은 이 와중에도 연신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였다.
곧 닥칠 풍파는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시문을 읊고 산수를 즐기니, 과연 이인(異人)의 풍모랄까. 그러나 이지함 주변에 있는 작자들은 다 하나같이 괴짜들뿐이었으므로 그런 티가 잘 나지 않았다.
얼마나 그렇게 갔을까. 눈은 밝으나 경치 감상하는 안목은 없어 끝내 심심해진 꺽정이가 사형에게 말을 걸었다.
“장 형이 우리네를 건드릴 것이라 보시오?”
“제발 건드려주십사 하고 찾아가는 길 아니더냐?”
전원이 민주당 사람이거나 그와 연 있는 이들로만 이루어진 이번 사신행은, ‘저들이 우리를 건드리지 않으면 우리도 건드리지 않고, 저들이 우리를 건드리면 우리는 더 심하게 갚아준다’ 하는 것을 벼리로 삼았다. 암만 터지기만을 기다리는 전란이라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더욱 개전의 명분이 중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꺽정이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장거정이 갑자기 대국의 대인(大人)다운 풍모를 되찾아, 스스로 ‘날 족쳐주시오’ 하는 것과 다름없는 글을 들고 가는 이번 사신행을 의외로 정중하게 대접해줄 공산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헌데 어째 그리도 태평하게 시 구절이나 읊고 계시오?”
“율곡 녀석이 한창 서양 서책 몰두할 때 떠들던 이야기 중 하나인데, 그 옛날 로마 태조 개살(카이사르)이 강 건너 회군할 적에 ‘윤목(輪木)은 던져졌노라’ 했다더라. 지금 우리에게도 딱 맞는 말 아니더냐?
이미 계책은 모두 짰고, 그 첫발을 내딛어 압록강에 요하까지 건넜고 산해관을 앞두고 있으니, 이제 와서 두려워한들 뭐 변하는 게 있으려고.”
“사형도 참, 천생 샌님이시오. 그리 말씀하시면서도 온몸으로는 ‘나 무섭다’ 외치고 있구만, 뭔 신선 시늉이시오?”
“그러는 너도 만만치 않으니 피장부아장부(彼丈夫我丈夫, 피장파장)이렷다.”
“에이, 나만큼 위태로움 앞에서 평정심 꿋꿋하게 지키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허나 이지함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말 타고 주변을 둘러보는 고갯짓과, 곁에 따라오고 있는 히데요시와 니탕카이, 그리고 백련교 두목 조전에게 하는 몸짓과 말투 등등. 이곳저곳에서 긴장하는 기색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었다.
이지함처럼 꺽정이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아보기 어려운 정도였으나, 평소에 흔들림 없는 것에 비하면 마치 보통 사람이 큰일을 앞두고 사시나무 떨 듯 떠는 것에 비할 만하였다.
떡 벌어진 범의 입 안으로 머리 들이미는 짓을 한두 번 해본 꺽정이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던 것이다.
두 사람 사이 오가는 말을 열심히 귀동냥하던 조전이 이때를 노리고 끼어들었다.
“염려들 마십시오. 저희 백련교 교인들은 이번에야말로 큰 공을 세우고자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금상 황제가 아직 유왕이던 시절, 저의 치적으로 삼은 것이 바로 요동을 안정케 하였다는 것이었다.
물론 당시 유왕이던 주재기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장거정이 마음대로 포장한 것이었고, 요동이 안정케 되었다는 것 역시 요동의 실상과는 무관하였다.
요동총병은 그저 북경에서 의주 사이의 길목을 겨우 다스릴 뿐이요 나머지 산하(山河)에 흩어진 자잘한 마을은 모두 백련교 손에 들어간 지 오래였으며, 북경 조정은 물론이요 요양의 요동총병도 이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요양에 들렸을 때 우리 교인들이 제게 고하기를, 이미 우리가 세운 대계대로 바닷가 곳곳에 손을 써둔 지 오래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북경과 그 일대에도 마찬가지로, 이번의 거사 한 번에 그간 직례에 모아둔 교인들의 힘을 모두 쏟아붓는다는 각오로 준비를 마쳐두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풍주(후흐호트)에서 멀찌감치 들은 뜬소문이 임꺽정과 민주당에 대해 아는 것의 전부였던 조전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몇 대 얻어맞고 나서) 머리가 트인 지금은 그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
민주당이 천하를 한바탕 뒤집는 것을 돕는다면, 모든 사람이 그 ‘자유’라는 것을 얻어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열린다면, 그때야말로 백련교는 그림자를 벗어나 양달로 뛰쳐나올 수 있게 될 것임을 깨우친 것이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게요. 그러고도 모자라면, 뭐, 그때는 내 힘으로 때워야지.”
그 ‘꺽정이 힘으로 때울’ 일이 무엇인지는, 아직 민주당 바깥에는 아는 이들이 드물었다.
장거정이 정말 우악스럽게, 그들 모두를 붙잡든, 죽여 없애려 하든 할 때에만 벌일 일이기도 했거니와, 바깥에 널리 알려본들 좋은 소리는 못 들을 권도(權道) 중의 권도였던 것이다.
물론 그런 권도 말고, 정정당당한 정도(正道)로서 동방 삼국이 준비하고 있는 것 또한 당하는 쪽에서는 그리 정정당당하다는 말은 못 들을 만한 것이었지만.
샘솟고 또 스며드는 불안을 때로는 진중한 이야기로, 때로는 시답잖은 잡소리 나누며 떨쳐내고 산해관에 당도한 일행은, 그들을 맞이하러 나온 관원 한 무리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산해관 너머에서 그들이 받은 대접은 푸대접 석 자가 딱 어울리는 것이었다.
허나 대국은 역시 대국이라, 그 푸대접이라는 것조차 사신들에게는 진수성찬이었다. 이지함이야 워낙 사람됨이 소탈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명색이 일국을 대표하여 온 사람들이면서도 꺽정이, 히데요시, 니탕카이 등등 그리 지체 높은 집안 사람은 아닌지라, 접대하는 관원들이 작정하고 푸대접을 한다 해도 딱히 큰 원망은 들지 않았던 것이다.
시장이 밥반찬이요, 암만 나오는 음식이 형편없어도 핀투 선장의 상 투메 호 타고 다니던 시절 연명케 하던 그 건량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산해관을 지나 통주(通州)에 닿은 삼국 사절단은, 동쪽을 바라보는 북경성 성문인 광녕문 앞에서 다시 한 번 가로막혔다.
“아이고, 또 여기서 보게 됩니다그려.”
그들을 가로막은 대명 조정의 고관들 중에서 노부나가의 익숙한 낯을 알아본 히데요시가 일부러 비웃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고, 그 대신 ‘먼 길 오느라 수고들 하셨소’ 하는 인사마저 생략한 척계광의 통보가 있었다.
“사대(事大)의 예를 그대들이 먼저 폐했으니, 이쪽에서도 그에 맞추어 예를 갖출 것이오.
그대들은 별도의 명이 있기 전까지 성안으로 들어올 수 없으며, 그대들이 진상하겠노라며 가져온 군기 역시, 성 밖에서 시사(試射, 시험사격)를 한 뒤 금의위에 그대로 넘겨야 할 것이오. 그때까지는 성문 바깥의 공터에 처소를 마련하여 스스로 쉬어야 할 것이오. 곡식과 마초는 회동관 측에서 건네줄 것이외다.”
명색이 세 나라 국인의 총의에 입각하여 세워진 조정의 명 받아 이곳 북경까지 찾아온 사신들을, 그저 떠돌이 행상인처럼 대접하는 셈이었다.
조선의 여느 사대부였더라면 이 모욕에 크게 분개하여, 후세에 길이 남을 명문으로 성토했을 것이요, 일본의 여느 무사였더라면 그 옛날 영파(寧波)에 무역하러 간 오우치 씨 무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바탕 난리를 일으켰을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한 두령을 모시고 이상한 짓을 하지만 어쨌든 도적떼인 사신단에게는 역시 그렇게까지 얼굴 붉힐 일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광녕문 밖에 사신들은 마치 군영 세우듯 천막을 치고, 모레로 잡힌 시사에 대비하여 그들이 바리바리 싸온 군기를 풀어 조립하였다.
조심스레 북경과 그 인근 백성들은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국법의 무서움을 중원 그 어디보다 잘 아는 북경 백성들이기에, 관헌이 보인다 싶으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가, 그들이 사라지면 밀물처럼 돌아오곤 했다.
그 사이에 백련교 교인도 몇몇 섞여, 이쪽 천막 사이에서 슥 나온 거한과 만나 무언가 숙덕거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북경은 그 옛날 엄숭의 북경과는 달라, 경계는 삼엄하고 뇌물은 통하지 않았다. 옛날처럼 쇄은(碎銀) 약간으로 성문을 열고 검문을 피하던 시절은 지난 지 오래였다.
임거정이 수상한 작자들과 무언가를 모의하는 것 역시, 변복하고 구경꾼들 사이에서 눈 번뜩이고 있던 동창 사람들의 눈에 그대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모레째 되는 날.
마침내 동쪽 오랑캐들이 가져온 신군기를 선보이는 날이 왔다. 광녕문 문루 위에 올라, 그 모습을 바라보는 척계광과 오다 노부나가 두 사람에게 동창 사람 하나가 다가와 보고하였다.
“밤사이 저들의 처소 사이에서 불온하거나 기이한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동창은 더 이상 환관들만의 아문이 아니었고, 철저히 사람의 재주만을 보고 용인(用人)하는 장거정이었기에 오히려 실무를 맡는 쪽에서는 환관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워졌다. 허나 척계광에게 보고하는 사내는 수염이 없었는데, 이는 곧 그 풍파 속에서도 버틸 만큼의 재주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계광은 허술히 넘기지 않고 캐물었다.
“어찌 그리 단언하는가?”
“밤이 어둡고, 또 임거정은 워낙 몸이 날래고 용력이 대단한지라, 그 일거수일투족을 저희가 모두 감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황상과 나라에 해를 미치려면 반드시 성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요, 하늘을 나는 재주가 있지 않은 한 성 안으로 들기 위해서는 성문을 거쳐야 합니다.
금번 일에 대비하여 저희 동창에서는 모든 성문에 이목을 갑절로 늘렸고, 다행히 문을 지키는 그 어떤 군관도 감히 나라의 은덕을 배반하지는 않았습니다.”
척계광이 고개를 끄덕이자, 동창 환관은 겸허히 읍을 하고는 물러났다.
이어서 유사시 (또는, 아무 일이 없더라도 며칠 내로) 움직여 저들 사신들을 모조리 추포하기 위해 두어 리쯤 떨어진 곳에 나뉘어 주둔하고 있는 군영의 교위들 역시 하나씩 간밤의 일을 고하였다.
교위쯤 되는 품계 낮은 이들을 척계광이 직접 불러들여 그 보고를 듣는 까닭은, 그렇게 직접 저의 눈과 귀, 머리를 써야 하는 이들을 척계광이 믿기 때문이요, 또 그럴 만한 자들만을 저의 새 군대에 남겼기 때문이었다.
그때, 몰려든 구경꾼을 향하여 억양 강한 관화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막을 걷겠소!”
사신단의 처소에서 조금 떨어진 공터에 저들의 군기를 짜맞추고 시사를 준비하는 동안 잡인의 이목을 막겠다며 쳐둔 장막이 있었다. 그것을 치우겠다는 말이었다.
“먼저 신기총통을 선보이겠소!”
그러자 조그맣게 쌓아올린 둔덕에 화차 비슷한 무언가가 올려져 있는 것이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언덕에 가려 잘은 보이지 않지만, 수레 같은 것 위에 화포를 올린 듯하였다. 그 화포의 형상 또한 특이하여, 여간한 총통보다도 더 굵고 큰 쇠대롱 하나가 포가에 올라가 있고, 그 앞은 시루처럼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그리고 그 대롱 옆에는 웬 손잡이가 하나 큼직하니 달려 있었고, 대롱 뒤편에는 여느 총통과 마찬가지로 포수가 서 있었다.
한편, 총통의 포구에서 이백 보쯤 떨어진 곳에는 과녁이 있었다. 며칠간 열심히 삽질을 하여 그쪽에도 조그만 둔덕 하나를 만들어놓고 그 앞에 과녁을 세운 것이었다. 그쪽에 미리 가 있던 이들이 – 아마 사신단의 일원이라고 명단에는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는 임거정의 흑의군일 테다 – 열심히 손 흔들며 주변의 잡인을 쫓았다.
그 모든 준비가 끝나자, 조선 군관의 복식을 한 덩치 큰 사내 하나가 문루 앞으로 나아왔다. 임거정만큼은 아니었으나 제법 건장하였다. (흑의군만의 비법으로 단련한 덕일 테다.)
“척 대인! 이 사람은 조선의 군관 양벽이라 하오. 시사(試射, 시험 사격)를 허용해주십사 청하는 바요!”
곧 군관이 문루 향해 읍을 올리며 조선말로 외치고, 역관 노릇하는 이가 곁에서 관화로 이를 옮겼다.
광녕문 문루 위에서, 사카이에서 구해온 백리안으로 그 모습 살피던 척계광이 고개를 끄덕이니, 곧 그 곁의 군관이 승낙을 알리는 군기를 흔들었다.
거기까지 확인한 양벽은 지체없이 몸 돌려 외쳤다.
“쏘아라!”
앙벽의 호령에 화답하여 총통수들도 외쳤다.
“쏘랍신다!”
그리고 그와 함께, 척계광과 오다 노부나가, 그리고 모든 군졸과 구경꾼들로 하여금 눈을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허어.”
조선과 민주당 엮인 일에서 워낙 해괴망측한 것을 많이 보았던 노부나가조차 가벼운 탄성이 나가는 것을 금치 못하였으니, 척계광을 포함하여 다른 모든 이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거짓도, 과장도 아니었다는 말인가? 어찌 저런 기물을...”
한쪽에서는 열심히 손잡이를 돌리고, ‘퉁-퉁-퉁’ 하는 소리와 함께 연신 총성이 울렸다. 한 번에 두세 발씩 나가기도 하고, 또 때로는 다섯 발씩 나가기도 하는데, 바쁘게 손을 놀리는 포수들의 동작을 보니 어떻게 쏠지도 포수가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는 듯하였다.
그렇게 오십여 발쯤 쏘았을까.
“다시 재어라!”
“재랍신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아니, 저런 총통을 불랑기포에 장전하듯 한다는 말인가?”
“그보다도 더 빠른 듯하오.”
마치 손장난하듯 총통수 두엇이 잠시 손놀림을 하더니, 어느새 다 재었다고 – 양벽이라는 군관이야 몰랐겠지만, 척계광은 문루 위에 조선말 아는 군교 하나를 미리 세워두었던 것이다 –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쏘아라!”
“쏘랍신다!”
그렇게 과녁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고, 그 뒤의 모래둔덕에서 일어난 흙먼지는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저런 무시무시한 물건을 자랑하듯 가져오다니, 빼앗기더라도 우리가 금방 복제하지 못하리라 자신하는 것인가, 아니면 과신이 지나친 것인가.”
척계광이 한탄하듯 혼잣말을 하였다.
그리고 더 나쁜 경우도 떠올랐다. 이제 와서 고작 한두 문쯤 빼앗긴들 전황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만큼, 모든 군영에 저것을 완비해두었을 경우.
저 무지막지한 화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쓰러져가는 대명의 건아들의 참혹한 모습이 눈앞에 선하여, 척계광은 그만 눈을 질끈 감고야 말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 총통은 손에 넣어야 하오. 탄식은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한 뒤에 해도 늦지 않소.”
“그대의 말이 옳소이다.”
냉정하게 저쪽을 노려보는 노부나가의 말에, 척계광도 동의하였다.
“부디 다음에 선보일 군기는 저것보다 허술하기를 바라야겠군.”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다음에는 더욱 놀라운 무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무적귀차라 이름 붙인 그 쇳덩이 수레는, 정말로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저의 힘으로 움직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위에 올린 화포를 전후좌우로 마음껏 돌려가며 쏘는데, 화살은 물론이요 총통의 탄환조차 막아낼 수 있는 그런 무기 앞에서는 백병(百兵)이 무효할 터였다.
경악에 가득 찬 척계광이 급히 쓴 수본을 받은 장거정은 진심으로 놀라면서도, 어떻게든 이지함의 속을 긁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캐내고자 애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정말로 물을 끓여 나오는 김으로 그 무거운 쇳덩이를 움직였다는 말이오? 귀국 조선이 언제부터 그리 정교한 기기를 만들게 되었는지, 이 사람으로서는 놀랍기만 할 뿐이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국초에 고작 공녀나 엄인(환관)을 청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허나 이지함은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늘어놓는 허풍으로 대꾸하였다.
“이미 당고종의 대에 신라 사람 구진천(仇珍川)이 천 보를 날아가는 쇠뇌를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삼한 중 하나에 불과한 신라의 재주가 그러하였으니, 셋이 하나가 된 지 오래인 지금은 어떻겠습니까.”
두 사람이 앉아있는 곳은, 다름아닌 북경성 안쪽 장거정 본인의 서재. 진주사로서 찾아왔으니, 조만간 황상을 뵙고 그들이 들고 온 삼국의 글을 올리기에 앞서 먼저 실무의 교섭을 하자는 취지로 이지함을 불러들인 것이었다.
허나 자금성 안쪽으로 데려가는 것에 버금갈 만큼 위태롭다 할 만한, 적지 중의 적지에 있음에도 이지함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잡설은 여기까지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대가 조선국에서는 백의재상이라 불린다 들었소. 허나 이곳은 대명의 경사(도성)이며, 그대의 앞에 있는 장 모는 무한한 황은을 입어 천조 대명의 내각수보로 있는 사람임을 잊지 마시오.”
“허나 이제부터 전할 뜻이 더욱 무엄하니, 어찌 지금 미리 사과드리겠습니까?”
“무어라?”
“이 자리를 마련해 주셨으니, 더 미룰 것도 없이 지금 말씀드리지요.
귀국 대명에 대하여, 아국 대조선국과 대일본국, 압카이 아파시 구룬 삼국은 다음과 같이 광복삼장(光復三章)을 들어 보이는 바입니다.
첫째, 작금 조정의 부덕한 정사를 즉각 고치고, 개명된 정도(正道)를 받아들여 헌법을 세우고 국인의 의권을 보장할 것.
둘째, 아(我) 동방 삼국을 적대하는 모든 조치를 철회하고, 그간 귀국의 강압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교역의 손실에 대해 보상할 것.
셋째, 다시는 지금과 같이 실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노라, 천지신명과 중화 백성, 그리고 아 삼국의 국인 앞에서 약조할 것.
우리 동방 삼국의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사흘 뒤 정오를 기하여 우리 삼국과 대명 사이에는 전화(戰禍)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품에서 시계를 꺼내보이며 이지함이 말했다. 두 시계바늘은 가지런히 위쪽을 가리키며 정오를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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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조선만을 지칭하는 용어로 비단 현대 한국뿐 아니라 당대 조선에서도 인식되곤 했던 ‘동이(동쪽 오랑캐)’는 본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중국, 정확히는 황하 문명권의 동쪽에 있는 모든 이민족(산동반도 포함)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순임금이 동이 사람이다’하는 식의 표현도 실제로는 이를 뜻하지요. 조선과 여진, 일본이 연합하여 명에 대항하는 것을 두고 ‘동쪽 오랑캐들의 모임’이라 부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기관총이나 전차, 장갑차 같은 발상은 근대의 전유물은 아닙니다. 이미 화약무기가 막 전장에서 유의미한 존재로 부상한 15세기부터, 수레에 화포나 화기 사수들을 올리는 식의 발상이 유럽과 동아시아에 나타난 바 있고, 여러 총열을 하나로 묶어 화력을 늘리려는 시도 또한 마찬가지로 화약무기가 전력화되던 시기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지요. 특히 유럽의 후스파나 북로남왜에 시달리던 시기의 명군,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처럼, 화약 무기를 든 비숙련병으로 숙련된 군대를 상대해야 하는 경우에 이러한 시도가 더욱 활발히 벌어지곤 했습니다. 물론 당시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근대 이전까지 이런 시도들은 모두 시도로 끝나곤 했지요. 작중의 조선이 어떻게 그 한계를 뛰어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장의 내용을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