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천하의 모든 것 (3)
송도의 번영이 어디 하루이틀 일이겠냐만, 요즘은 그 떠들썩함이 더욱 유별났다.
근년 사이 송도의 번영을 이끄는 것은, 피혁을 다루는 공장들이었다. 특히나 요동과 요서에서 싸움이 이어지면서, 어한(禦寒, 방한)에 좋은 갖옷이 불티나게 팔리게 되었는데, 그 든든함이 일본 신정부군 통해 알려지면서 겨울 매서운 에치고에서까지 상인들이 찾아오곤 했다.
게다가 그간 잠상 노릇으로 근근이 이어지던 명과의 교역이 다시금 옛날처럼 – 사실 그 ‘옛날’이라 해보아야 그리 오래 전은 아니었지만 – 돌아가게 되었으므로, 비단 개성뿐 아니라 온 동방의 상인들은 나날이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물론 냉정하게 따지면 옷 장사 앞날이 그리 밝지는 않았다. 전란으로 인해 맞이한 대목은 전란 끝난 지금은 꺼질 일만 남았고, 더구나 장거정이 만들어놓은 온갖 공사들은 그의 신법(新法)이 하나둘씩 왕안석의 선례를 따라 훼철되는 동안에도 진득히 남아, 향신과 일반 백성들 사이의 싸움 마당이 되면서도 꾸준히 경영을 이어가곤 했다.
정여립과 그 무리에게는, 저들의 이론이 마침내 쓰일 만한 곳을 찾았노라 좋아할 일이었으나, 개성의 공장 주인들에게는 유력한 경쟁 상대가 생긴 셈이었다.
허나 그런 근심걱정을 떨쳐버리고, 우선은 이 좋은 때를 만났음을 기뻐하고, 아무리 삶이 어려워진다 한들 옛날로 돌아가는 일은 없으리라는 데 안도하는 흥겨움이 개성에 가득하였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바로 린죠 히데요시가 히노모토 예순여섯 나라에서 모아들인 재주꾼들이 개성 저자에서 떠들썩하게 놀이판을 벌여놓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찌하면 일본 바깥, 진짜 재물이 모이는 한양이나 남경에서도 흥행할 수 있을지 궁리한 끝에 만들어진 소위 ‘민슈라쿠(民主樂)’ 꼭두각시 놀이는 다행히 사람들의 이목을 잘 끌고 있었다.
“이만하면 한양에서 천하대회 열릴 때도 꽤 재미를 볼 수 있겠지, 헤헤.”
예상 수익을 계산하며 절로 어깨춤 추는 히데요시 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철수가 물었다. 누가 들으면 따져묻는 것으로 오해하기 좋았으나, 철수네 아버지 신수가 어떠한지 잘 아는 히데요시로서는 그런 모습이 익숙하였다.
“그런데 왜 마포나 인천은 냅두고 송도에서 먼저 선을 보이십니까?”
“아직 천하대회 열리려면 몇 달은 남지 않았니. 입소문도 좀 낼 겸, 미리 와서 머무는 동안 체재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당도 할 겸, 이렇게 여기저기 돌면서 놀자판 벌이는 거지.”
이 다음에는 의리상 봉산 장터에서 한 번 놀고, 그 다음에는 평양으로 향할 예정이었다. 히데요시는 거기까지 따라가지는 않고, 바로 한양으로 올라가 사업당 일을 도울 심산이었지만.
“그나저나 너야말로 왜 굳이 우리들 따라서 송도까지 온 거니?”
“병해 큰스님 말씀 듣고 왔습니다. 여기 말고 저기 산속 박연폭포에 뭔 볼거리가 있다던데요.”
“볼거리?”
“그걸 보면 인생사 고민이 조금 줄어들 거라나 뭐라나.”
굳이 밀지 않아도 이제는 절로 촌마게가 유지되는 저의 이마를 긁적이던 히데요시는, 내친김에 철수와 함께 그 볼거리 구경을 하러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박연폭포의 볼거리란 무엇인가. 박연폭포 자체도 뛰어난 풍취로 이름났지만, 그런 심미안이 없는 사람들은 폭포는 그저 보는둥 마는둥 하고는 다른 볼거리 하나를 더 보러 바위를 타곤 했다.
그 위에 올라가면, 딱 보아도 조물(造物, 조물주)이 빚어낸 것 같지는 않은 바윗돌 하나가 있어 물줄기를 반으로 가르고 있다 하였다.
양주 백정 임꺽정이가 대역죄인 이지함과 함께 봉산군 구휼미 털러 갈 적부터 그 뒤를 따랐던 이천 산적 오막손이는, 지금은 화담 선생의 초당을 지키면서 저의 옛 추억 떠벌리는 것으로 소일하곤 했는데, 지나가는 철수와 히데요시 두 사람에게 길안내 해주면서 사족 붙이기를 바로 그 바윗돌이 선비면서 신선이던 화담 선생이 박연폭포 이무기 제압할 제 공깃돌처럼 들었다 놓았던 바윗돌이라 하였다.
“그런데 그게 무슨 신통력이나 요괴의 소행이 아니라, 임 당수가 한 일이란 말이니? 저 바위를 쪼개서 옮겼다고?”
철수와 함께 산을 오른 히데요시가 이마에 서린 땀을 닦으며 혀를 내둘렀다.
정말로 오막손이 말처럼 물줄기 가르는 바위가 있고, 거기서 그리 머지않은 곳에는 그 바윗돌과 원래 일체를 이루고 있었을 더 큰 바위 하나가 잠자코 앉아 있었다. 그 쪼개진 자국이 아직 선명하여,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인력으로 억지로 쪼갠 흔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다네요. 아버지께서 화담 선생님 작고하실 적 그분께 뭘 보여주겠다고 이런 짓을 벌이셨다던데, 병해 스님이 진이 할머니한테 들은 이야기라니 아마 참이겠지요.”
철수의 시큰둥한 말투 이면에는 경탄과 더불어, 영 불편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이제는 거동이 슬슬 불편하지만 아직 정신은 말똥말똥한 병해대사가, 어떻게든 저의 출품을 가로막으려는 아버지와 이이의 이야기를 엿듣고서 어찌하면 좋을까 여쭈러 온 철수에게 해준 이야기가 있었다.
‘네가 이리도 조바심을 내는 까닭은 결국 네 아비만큼 뭔가 엄청난 일을 이루고픈 욕심 때문 아니겠느냐?’
‘흥, 그런 것 아닙니다.’
‘인석아. 내가 네놈 귀 빠질 적에 아명 바우로 정해준 사람이다. 고작 그 정도 콧방귀로 네놈 속내 숨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철수야, 잘 듣거라. 너희 아버지는 일세의 기인(奇人)인 데다 천시(天時)까지 얻어 오늘에 이르렀다. 네가 굳이 뒤를 따르려 할 필요도 없거니와, 따를 수도 없을 것이야. 그리고 굳이 네 아버지만큼 뭔가를 이루지 않는다 하더라도, 장담컨대 너희 아버지는 너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끝까지 기특히 볼 것이다. 하늘이 뒤집어져도 제 입으로 그것을 인정하진 않겠지만.’
그러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하면서도 뒤따르기 어려운 사람인지 그 증좌가 박연폭포 위에 있다면서 이 바윗돌 이야기를 전해줬던 것이다.
허나 병해가 미처 몰랐던 것은, 꺽정이와 명희가 반반 섞여 나온 철수지만 그 청개구리 심보 하나만은 아비를 빼닮았다는 점이었다.
“천리(天理)를 사람의 힘으로 뒤바꿀 수 있음을 이 바윗돌로 입증하였다던가. 쳇.”
“그 ‘쳇’은 웬 거니?”
“아니, 시일만 충분하면 누가 이 바위를 못 쪼개겠습니까?”
그러면서, 아직 자신의 머릿속과 기학재 어딘가에 굴러다니고 있을 종잇장 몇 쪽 위에 있을 뿐인 가칭 ‘증기장사(蒸氣壯士)’ - 이름 잘 짓는 재주는 부자(父子) 막론하고 부족했다 – 기기로 저 바위 쪼갤 수 있었을지를 헤아려보는 철수였다.
자신이 아버지 주변의 다른 훌륭한 사람들만큼 명석하지 못함은 철수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어디 공자님과 어깨 나란히 할 사람이라서 온 천하를 뒤흔들었던가?
“저만한 바위라면... 글쎄. 어지간하면 못 쪼갤 것 같은데.”
히데요시가 의도치 않게 냉담하게 대꾸하니, 철수도 조금은 김이 샜다.
“... 바위 쪼개는 것쯤이야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지요, 뭐.”
아버지의 걱정이 어디서 말미암은 것인지도 모르지 않는 철수였다.
어설프게 시제품이라고 만들어본 증기장사는 죄다 도중에 터지든가, 도저히 쓸모를 찾을 수 없던가, 대체로 그러하였다.
뒷전으로 물러난 병해를 대신하여 기학재를 이끌고 있는 이산해는, 그간 병해가 모은 어중이떠중이들이 주먹구구로 기학 궁리를 하던 관행을 싹 뜯어고쳐, 기학을 장차 군자가 마음을 써도 부끄럽지 않을 번듯한 학문으로 세우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런 체계 하에서, 자신의 증기장사는 도저히 –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 완성할 수 없을 것이었다. 시일과 재정이 충분하다면야 못할 것 무엇이겠냐만, 바로 그 시일과 재정을 쉬이 얻을 수 없으니 문제였다.
아버지의 이름을 판다면야 어떻게든 이산해의 뜻을 비틀 수 있겠지만, 그것은 철수 자신이 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분명 저의 외숙부 이이는 말하기를, 천하대회는 다시 열리기 어려울 것이라 하였다. 오직 저의 재주로 세상에 이름 떨치기에 이만한 기회가 또 언제 돌아올 것인가.
허나 그 기회를 잡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너무나 많았다. 증기장사는 말만 그럴듯하지 아직은 그저 공상에 불과하였으니, 손오공의 근두운이나 여의봉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세상에 이름 알리는 대신 어디 동래나 재령에서 조용히 할 일에만 매진하는 길도 있기는 할 것이다.
그 누가 자신을 두고 백정의 아들이라 욕할 것인가? 명순이의 배필 되기에 부족한 놈팽이라고 흉을 볼 것인가? 그냥 그렇게, 지금에 만족하고,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소리 들으면서 안온하게 산다고 한들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
철수 한 사람을 빼고.
“하기야, 처음 할 때나 의미가 있지, 이미 쪼개진 바위 옆에 새로 쪼갠다던가, 조각을 더 잘게 부순다던가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니. 더구나 세간에서는 이 바위 너희 아버지가 쪼갰다는 것도 모른다면서.”
잘은 몰라도 이 젊은이가 뭔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음을 눈치챈 히데요시가 슬그머니 위로하는 소리를 건네니, 그제야 철수는 하염없는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재차 히데요시의 말을 되짚다 보니, 뭔가 하나가 퍼뜩 떠올랐다.
“엇, 잠깐만요.”
“왜 그러니?”
“그렇지, 흐흐.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아버지께서 바위 쪼개는 일로 천리 바꿨다고 자랑을 하셨다면야...”
아버지가 못한 일을 아들이 해낼 방도가,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아들만의 무언가를 세울 길이 뇌리를 스쳤다.
만국화약과 천하대회가 열리기로 약조된 임신년(1572) 가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중추가절(仲秋佳節) 맞이하여 햅쌀은 싸전에 풀리고, 온갖 제수는 가게에 벼락처럼 들어왔다 바람처럼 나갔다.
지난 이십오륙 년, 눈코 뜰 새 없이 달려왔던 나날은 끝나고, 이제는 변화의 발걸음도 조금은 느긋하게 뒷짐 지고 걸을 때가 되었음을 그 누구도 말과 글로는 알지 못하였으나 가슴으로는 모두가 얼추 느꼈다.
비바람은 조화롭지만은 못하였고, 해마다 풍년이 들기는커녕 고작해야 평년이요 못하면 흉년이었건만, 그럼에도 크게는 나라의 정사부터 작게는 가가호호 살림살이까지 한 세대 전에 비할 바가 아니니, 어찌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할까.
그 여덟 글자를 아는체하며 읊는 서림 앞에서, 이를 어찌 에스파냐 말로 옮길까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고심하고, 그 고심 풀어줄 수 있을 사람인 이탁오는 엘리자베스 튜더와 함께 인천에 정착한 잉글랜드 장인들 마을을 구경하고 있었다.
잉글랜드와 저지대 연합왕국 사절들을 태우고 이 먼 땅으로 온 존 호킨스 선장은, 오는 내내 달변공 빌럼의 모범을 따라 정치와 윤리, 철학을 두고 끊임없이 떠들던 저지대 샌님들로부터 겨우 해방되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이 모든 일을 기록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선비들이 자주 찾는 다점을 술집으로 오인하고 들어가는 바람에, ‘번철에서 빠져나왔더니 불 속에 빠지는(Out of the frying pan into the fire)’ 꼴에 처하고야 말았다.
이번 화약의 소소한 조항으로, 그간 조선과 여진 편에 섰던 것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을 보장받게 될 마르틴 데 고이티와 그의 용병들은 한껏 신나서 그간 벌어들인 은을 맘껏 흩뿌렸다. 아직 화약이 맺어지기는커녕, 공식적인 사절 접대 행사 일정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런 사소한 조항을 문제삼을 만한 여력이 그들의 고국에 남아있지 않음을 고이티는 익히 알고 있었다.
같은 조항에 의해 역시 면책(免責)을 보장받을 페르낭 멘데스 핀투는, 자신이 동방에서 보낸 놀라운 삼십삼 년 세월을 책으로 펴낸다면, 잘 팔린 책 한 권으로 신세 고친 오승은처럼 자신도 고국 포르투갈에서 한 자리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에스파냐-포르투갈 사절단 뒤를 슬그머니 밟았다.
백발이 성성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는, 아이신교로 씨족부터 일본 무가(武家)까지 다양한 출신 사람들이 신앙으로 모였다는 것에 감사하며 마포 맞은편 노량진에 세워진 성당에서 공동으로 미사를 집전하였다.
그 옛날 칸발리크에 이렇게 온 세상의 모든 백성들이 대칸의 명에 복종하고자 모였음을 옛이야기로 들어 기억하던 몽골 사신들은 이 모습에 묘한 애수(哀愁)를 느꼈으나, 천하대회 맞이하여 배 여러 척을 소흥주(紹興酒)로 가득 채워 온 강남 상인들의 술수에 넘어간 뒤로는 애수 느낄 틈도 없이 부어라 마셔라 노닐고 있었다.
노브고로드에서의 그 일 이후로 화를 삭이고 삭이느라 성격이 더 난폭해진 차르 이반의 엄명에 따라 수천 베르스타(러시아의 거리 단위)를 달려온 세묜 스트로가노프는 그 엄청난 주연상 소식을 듣고, 타타르인들에 대한 혐오와 술판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한창 저울질을 하다가 끝내 후자를 택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술탄과 그의 재상 소콜루 메흐메트 파샤의 이야기만 듣고 이 땅 사람들의 성정에 대해 적잖은 편견을 지닌 채로 건너온 투르크인들은 그들을 맞이하러 나온 접반사(接伴使) 성혼과 만국영빈도감 관원들을 당황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나 모였다더냐?”
이이에게 저도 모르던 만국화약과 천하대회의 뜻을 들은 이래로 오늘을 손꼽아 기달리던 꺽정이가, 만국영빈도감 관아 대문 열어젖히며 물었다.
“우리 삼국이야 말할 것도 없고, 명국에서는 노부나가 본인과 풍 태감, 서 대인 등 굵직한 이들이 모두 왔습니다. 풍 태감은 앞서 여기 아문에 들려서는, 당수를 뵙게 되면 황태자 전하를 잘 돌봐준 것을 드러내놓고 사례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 말을 전하고 갔지요.”
여전히 류성룡과 함께, 이순신이 적진 무너뜨리듯 쌓이는 서류를 막힘없이 처결하고 있던 이이가 잠시 고개 들고 말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연맹에서도 베네치아, 피렌체, 로마 교종국(敎宗國, 교황령) 등등을 모아 단일한 사절단으로 보내겠다고 말은 했는데, 하필 배에 돌림병이 돌아서 류큐에 발목이 잡혀 있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일단락되어 바삐 북상하고 있던가, 멀쩡한 사람만 따로 골라내어 먼저 보냈던가,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에우로파에서 우리네 적수였던 나라들은 애초에 화약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폴로니아(폴란드)와 수에치아(스웨덴), 다니아(덴마크)를 빼면 모두 모였고요. 사실 저 세 나라를 제하면 소위 로마(신성로마제국)이든 에스파냐든 다 같은 압스부르고 집안네 나라니 당연한 얘기지만요.
프란치아(프랑스) 역시 곧 도착할 것이고, 류큐와 말라카, 그리고 인디아 땅 열국들도 보름 안으로 모두 당도할 것입니다. 천재지변만 없다면요.”
그걸 다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었느냐 묻기에는 이이와 함께한 시일이 너무나 길었다.
“일찍이 영빈(迎賓)의 예를 간소하게 하기로 삼국이 공히 정하였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더라면 국고에 적잖은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전례를 상고해보아도 이 땅에 이토록 많은 나라 사람이 모이는 일은 없었으니까요.”
나라의 재정에 큰 부담이 될 만큼 사신 접대를 후하게 했던 것은 예로부터 둘 중 하나였다. 상국에서 오는 천사(天使)이기에 실로 나라의 중대한 일로써 후하게 대접해야 하거나, 아니면 영 그 정황이 미심쩍은 일본이나 그 너머 먼 나라의 사신이기에 짐짓 국세(國勢) 과시하고자 후대하거나.
그러나 이번 화약은 어느 쪽에도 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신들을 소홀히 대접하지는 않되, 그렇다고 따로 과하게 귀물(貴物)을 주고받거나 하지는 않기로 일찌감치 공론이 정해졌다.
“뭐, 국고가 어쩌고 하는 일이야 이 사람 일은 아니니까. 좌우지간 보름 안이면 다 모일 것이라 이 말이구만.”
“예, 당수 말씀대로입니다. 만국화약과 천하대회 모두 당초 계획한 때에 맞추어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실로 천운이 따르는군요.”
“암, 그래야지. 이게 어떤 자리인데.”
임 당수가 평소보다도 더 들떠 있는 이유를 모를뿐더러, 사실 그런 속내에 별 관심도 없는 이이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꺽정이 말을 넘길 뿐이었다.
만국화약은 아무리 간소하게 치른다 한들 엄연히 나라 사이의 행사이므로, 지켜야 할 예식과 법도가 있었다.
그러나 천하대회는 애시당초 근본 없는 모임이요, 그 기틀을 이루는 상인과 장인들 역시 몇몇 경우를 제하면 썩 법도에 구애받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미 모여든 사람들을 한데 묶어놓고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서림이 ‘지금부터 천하대회를 열겠습니다’ 소리를 딱히 하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레 한강 남북이 모두 사람으로 붐비게 되었다.
가을걷이 일찍 끝낸 삼남 일대에서는 마을마다 무리를 이루어 구경을 오고, 일본과 여진 사람들 또한 여력 닿는 이들은 여력 닿는 대로, 여력 없는 이들은 애써 짬을 만들어서라도 모여들었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면 어쩔 수 없이 돌림병이 퍼지기 마련이요, 싸움도 나기 마련이며, 그 외 온갖 기상천외한, 사람의 아들딸로 태어나 멀쩡한 머리와 오장육부 지니고 있다면 도저히 부릴 수 없을 것 같은 말썽이 벌어지곤 하였다.
허나 이 천하대회는 무엇보다도 밑천이 동난 사업당이 여기저기서 자본을 끌어모으는 데 그 목적이 있었으므로, 서림은 일찌감치 한양의 모리배와 무뢰한들을 끌어모아 딱 한 달만 포졸 노릇을 하도록 하였다.
한쪽으로는 후한 포상을 말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앞으로 조선에 계속 살고 싶으면 순순히 명에 따르는 게 좋으리라’ 점잖게 타이르니, 몇몇 사람들이 걱정했던 것보다는 그럭저럭 멀쩡하게 대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그냥 시끄럽기만 한 시장통 아니냐.”
‘훠이, 비켜라! 임꺽정이 지나간다!’ 하며 저의 앞길 가갈(呵喝)을 저의 입으로 하던 꺽정이에게 이지함이 말했다.
“엥? 뭐라 하셨소?”
그 옛날 두리손과 임꺽정이 한판 붙었을 때보다도 더 요란한 난리통에 그 말소리가 꺽정이 귀에 멀쩡히 들어갈 리 없었다.
“너무 시끄럽다고 하였다!”
“뭘! 다들 즐겁게 떠들고 노니 흥겹기만 하구만!”
허나 꺽정이보다 한참 손위로 이제는 슬슬 초로(初老) 소리 들을 연배인 이지함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나마 조금 조용한 옆 길목으로 사형을 이끌고 온 꺽정이가 물었다.
“아직 다 못 둘러봤잖소? 저기 저쪽에 베네치아 사람들이 저들 유리 방물 따위를 막 자랑하는 것도 좀 보고 싶은데.”
“아이고, 나는 되었다, 되었어.”
“알겠소. 그럼 바로 논상원으로 가시겠소?”
“그러자꾸나. 어차피 천하대회 이 시장통도 한 보름 넘게 이어질 테니, 끝날 무렵에는 조금 한산해지겠지.”
그때가 되면 삼남에 이어 가을걷이 마무리한 경기 일원과 영서, 해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올 예정이었으나, 넋이 절반쯤 빠진 이지함 생각은 미처 거기까지는 닿지 못했다.
그래도 성문을 지나, 불타기 전보다 더 정갈하면서도 화려해진 한양 저자에 닿으니 조금은 사정이 나아졌다.
대회를 위해 몰려든 온 천하 장사치와 장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은 성내라고 다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쪽, 청계천 따라 죽 이어지는 운종가 따라 여기저기 가게를 빌린 이들은 조금은 더 지체 높은 손님들을 상대하고자 하였기에 나름의 격조가 있었다.
같은 베네치아 상인들이라도 마포에서는 싸구려 유리 장신구 따위를 파는 반면, 이쪽 운종가에서는 사대부들이 혹할 만한 검소하면서도 정교한 자명종을 선보이는 식이었다. (그 옛날 첫 번째 사절단이 조선을 둘러보고 간 이래, 베네치아의 약삭빠른 상인들은 벌써 조선에 어떤 상품이 잘 팔릴지 얼추 계산을 마쳐두었다.)
그렇게 꺽정이와 이지함은 사업당 불탈 때 함께 불탔다가, 역시 사업당과 함께 더욱 화려하고 큼직하게 새로 지은 논상원 향해 걸어갔다.
그 옛날 처음 분표 발행했을 때처럼, 이번 천하대회에서도 논상원에는 저들의 정교하면서도 기발한 창안(발명)에 자본 대어줄 사람을 구하는 이들이 따로 모여 저들만의 대회를 열고 있었다.
“소문이 벌써 퍼진 모양이오. 저기 보시오, 사형.”
“그러게, 딱 보아도 멀리서 온 사신으로 보이는 이들이 제법 많구나.”
항상 딱 붙어다니는 이탁오와 엘리자베스 – 해 떨어진 뒤에도 그러한지 여부는, 두 사람만의 비밀로 남을 터였다 – 뒤를 나름 염탐한답시고 따라다니던 합스부르크의 밀정 뒤에, 합스부르크 뒤를 바짝 따라다니라는 밀명 받은 프랑스의 밀정이 따라붙고, 그렇게 계속 꼬리가 붙다 보니 어느새 논상원에는 국외인들이 가득 넘치게 되었다.
허나 그런 속사정까지는 모르는 천하의 장인들과 자연철학자들은 그저 한껏 들떠서 저의 창안이 무엇인지를 열심히 떠들 뿐.
“대인! 대인! 여기 보고 가십시오!”
서투른 관화(官話)로 떠드는 서양인 하나가, 이지함 고개가 저의 쪽으로 돌아오자마자 반갑게 맞이하며 조악하게 인쇄한 책자를 건네주었다.
얼핏 읽어보니, 연은분리법보다 한 단계 나아가 수은을 이용하여 은을 제련하는 놀라운 기술이 제게 있다는 내용이었다.
“헤헤, 포토시 은광이 도저히 제 기발한 발명을 받아줄 여력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제게 투자해주신다면, 돈 림 본인 앞에 바짝 엎드리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이 기법을 성공시켜 보이겠습니다! 물론 그 수익은 정직하게 나누어 배당해드릴 것이고요.”
자신이 돈 림 본인 앞에서 떠들고 있음을 에스파냐 사람 바르톨로메 데 메디나는 알지 못하고, 이 서양인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꺽정이와 이지함 역시 알지 못하였다.
그저 관심 없다면서 손사래 치고 갈 길 갈 뿐.
그런데 조금 더 지나가니, 앞서 그 수상쩍은 서양인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사람을 끌어모은 자가 있는 듯하였다. 떠드는 소리는 조선말인데, 조금 더 돈을 썼는지 역관도 꽤 쓴 듯, 한 마디 한 마디 끝날 때마다 에스파냐 말과 관화, 일본 말 등으로 옮겨 외치는 소리가 잇따랐다.
“이 사람이 장담컨대, 앞으로의 천하는 바로 증기와 무쇠의 천하입니다! 그것을 증명하고자, 바로 이것이 앞으로의 천리(天理)임을 보이고자 다른 사심 없이 이 사람은 여기 섰습니다!”
“야, 거 젊은놈이 말은 잘한다... 아니, 잠깐?”
그제야 꺽정이는 저 목소리가 어째 익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지함도 버려두고 인파를 힘으로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니, 철수 녀석 면상이 눈에 들어왔다.
“자, 이쪽을 보십시오!”
아버지야 보든 말든, 철수는 목청껏 외치면서 저의 손에 반으로 쪼갠 철환을 들어보였다.
“이 속을 파낸 철환은 보시다시피 안쪽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둘을 합한 다음 안쪽을 무형지기(진공)로만 채우겠습니다! 그리하면 주변의 유형지기가 이를 억눌러, 세상의 어떤 힘으로도 쉽게 다시 열 수 없게 됩니다!
이 무형지기와 유형지기 사이의 힘과, 증기의 끓어오르는 힘을 합치는 것이 바로 이 사람이 곧 선보이고자 하는 증기장사에도 쓰일 원리입니다!”
이제 보니 주변에는 이런저런 도안 등을 함께 세워놓았는데, 사람들의 눈길은 그림보다는 철환 두 쪽에 더 많이 가 있었다.
곧 또 다른 기물을 꺼내온 철수가, 철환 두 쪽을 합하더니 기물의 입가에 그것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고는 마치 쥐어짜듯 기물을 놀리고는, 외쳤다.
“자! 이제 이 철환 두 쪽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사이에 장사가 있다면, 이 철환 두 쪽을 떼어내 보십시오! 장담컨대 이것은 앞으로의 천하를 움직일 천지의 새로운 이치이니, 그 누구도, 아니, 천리마 여덟 필을 데려온다 한들 떼어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비가 바위를 부수었다면, 자신은 바위를 합쳐 떨어지지 않도록 하리라.
박연폭포 위에서 자신에게 닥친 깨달음을 이렇게 현실로 옮긴 철수는, 그저 의기양양하게 좌중 향해 외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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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언급된 민슈라쿠란 원 역사의 분라쿠(文樂), 즉 고대부터 일본에 전래되던 인형극과 중세에 악기 반주에 따라 흥미로운 이야기를 읊는 예능 조루리(浄瑠璃)가 합쳐져 16세기 말~17세기 초 성립된 닌교조루리(人形浄瑠璃)를 말합니다. 원 역사에서도 에도시대 일본을 대표하는 예능으로 여겨져, 조선통신사들이 대동한 무관들이 마상재(馬上才)를 선보이면 일본 측에서는 답례의 뜻으로 가부키와 더불어 분라쿠 공연을 펼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토리첼리의 대기압 실험에 이어 이번에는 마그데부르크의 반구(1654)가 팔십여 년 앞서 조선에서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사실 마그데부르크의 반구는 그 자체로는 과학실험이라기보다는 대중을 상대로 한 시연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작중 철수의 반구 역시 비슷한 경우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원 역사의 마그데부르크 반구 실험은 마그데부르크 시장 오토 폰 괴리케의 주도 하에 진행되었습니다. 마그데부르크 시의 도시귀족 집안 출신이던 괴리케는, 30년전쟁으로 인구의 80%가 죽거나 도시를 떠날 만큼 큰 피해를 입은 마그데부르크를 다시 옛 위치로 올려놓기 위한 방편으로 자신의 과학 지식과 발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토리첼리와 영국의 보일 등의 업적으로 막 이루어지고 있던 진공과 대기압을 이용한 반구 실험 또한 그 일환으로, 그는 이를 신성로마제국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 앞에서 선보임으로써 자신의 도시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유제국도시 지위를 획득하고자 하였습니다. 결국 이러한 노력은 실패했지만, 괴리케의 업적 – 반구 그 자체보다는, 반구 내에 진공상태를 만들기 위해 그가 고안한 진공펌프가 더 후대에 영향력을 지녔습니다 – 은 이후의 과학 발전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