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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40화 (40/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40화

“비올라!”

복도가 쩌렁쩌렁 울렸다.

쿵! 쿵!

육중한 발소리를 내며 누군가가 달려왔다.

공작성에서 거의 유일하게 제멋대로 행동하며 돌아다닐 수 있는 인간.

공작의 전우이자 친한 친구인 힉슨이었다.

“너 이 망나니 같은 자식이!”

힉슨은 화가 잔뜩 났다.

“힉슨 경, 오랜만입니다.”

“이, 이 말 못 하는 짐승이 무슨 죄가 있다고!”

힉슨은 동물을 사랑한다.

사람보다 동물을 더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다.

“뒤지고 싶냐?”

그중에서도 특히 강아지와 고양이를 아끼다 못해 사랑했는데, 길거리에 배회하는 길고양이들에게 늘 밥을 나눠준다 하여 캣맘이라 불리기도 했다.

쿤도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으로 회슨을 쳐다봤다.

“힉슨 경?”

“너 따라와.”

겨울 성 내에서는 폭력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러나 연무장에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왜? 겁나냐?”

“벨라투를 모욕하시는군요.”

쿤도는 크게 동요하지 않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힉슨이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건 알지만 거절하지는 못했다.

벨라투라면 그래야 했다.

나보다 강하더라도, 걸어오는 싸움을 피해서는 안 됐다.

“연무장으로 가시죠.”

연무장에 도착했다.

힉슨은 연무장에서 쿤도를 두들겨했다.

“너 같은 놈한테는 무기도 아까 워.”

그 어떤 무기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맨주먹으로 때렸다.

쿤도는 광대뼈가 주저앉고 손가락 뼈 두 개가 골절되었다.

쿤도는 바닥에 널브러져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에 반해, 힉슨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이놈. 수거해서 데려가.”

쿤도의 집사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지셔야 할 겁니다.”

“헹! 책임은 무슨 책임?”

힉슨은 검지로 콧구멍을 후볐다.

“쟤가 약해서 나한테 맞은 걸 무슨 책임?”

…쿤도 공자님은 이제 겨우 열아홉 살입니다.”

“근데?”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죠.”

시간이 흐르면 쿤도는 강해질 거고,힉슨은 약해질 거다.

그 점을 짚었다.

“저런 놈이 성장해 봤자지.”

“오늘의 일을 후회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쿤도의 집사가 쿤도를 둘러업었다.

신관에게 치료받으면 후유증 없이 낫기는 하겠지만, 무너진 자존심은 어떡한단 말인가.

쿤도의 시선이 비올라에게 닿았다.

“비겁한 것.”

비올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칭찬 고마워요.”

하얀 벨라투는 지략을 사용한다.

자신의 힘 외에 다른 힘을 끌어다 써도 괜찮다.

“이왕이면 용병술이라고 표현해 주면 더 좋았겠지만.”

결국 쿤도는 정신을 잃었고, 힉슨이 가까이 다가왔다.

“괜찮냐, 비올라?”

“괜찮지 그럼.”

“깜짝 놀랐어.”

“뭐가?”

힉슨이 제 손목을 들어 올렸다.

손목에는 마법 콜링 팔찌가 걸려있었다.

비올라의 손목에 걸린 팔찌와 세트를 이루는 팔찌였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은팔찌였는데, 경고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였다.

비올라가 마나를 주입하면 힉슨의 팔에 걸린 팔찌에서 경고음이 나는 아티팩트.

“콜(Call)이 엄청 컸단 말이지?”

주입된 마나의 농도에 따라 콜의 세기가 달라진다.

그런데 콜의 세기가 최대 음량을 넘어 거의 폭발할 뻔했다.

“하마터면 팔찌 부서질 뻔했다.”

“흠. 낡아서 그런가?”

힉슨은 고개를 갸웃하는 비올라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몰라서 저러는 건 아닐 테고’사실 비올라는 정말 모른다.

자기가 가진 마나의 순도와 양이 보편적인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큰 힘을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팔찌를 부술 뻔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튼. 괜찮은 거 맞지?”

“괜찮다니까?”

“진짜로?”

“응. 툰드라. 너는 와서 이 아이를 잘 묻어줘.”

비올라는 죽은 고양이를 툰드라에게 넘겨주었다.

…네.”

툰드라는 고양이를 받아 들었다.

그런데 툰드라의 모양새가 조금 이상했다.

눈이 붉었다.

“너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툰드라는 고양이를 받아 든 채 뚜벅뚜벅 걸어갔다.

연무장에서 한참 떨어진 공터.

그곳에서 툰드라는 손으로 땅을 팠다.

툰드라의 손등에 눈물이 뚝뚝 흘러 내렸다.

‘난 아무것도 못 했어.’

만약 내가 정말 강했더라면.

신분의 고하 따위는 아무 문제 되지 않을 만큼 강했더라면.

‘주인님이 그런 수모는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고양이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벨라투의 그림자> 속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 고양이는 악마를 의미하기도 하고, 타락한 사람을 뜻하기도 했다.

죽어가는 고양이를 던지는 행위.

이것은 불결한 사람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그게 너무 분하고 화가 났다.

‘내가 정말 강했더라면.

투투둑.

마침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겨울 성의 비는 차가웠다.

고양이를 잘 묻어준 툰드라는 한참 동안 엎드린 자세로 비를 맞았다.

‘나는 강해져야 해.’

주인님의 뜻을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주인님은 하얀 벨라투가 되기로 작정하였다.

그렇다면 자신은 그것을 응원하고 그 뒤를 받쳐주는 사람이어야 했다.

‘이래서야…… 아무 쓸모도 없잖아.’

3년 전.

비올라가 손을 내밀어줬었다.

아버지와 누나를 잃은 자신에게 옆에 있어 주겠다고 했었다.

‘공녀님을 위해 강해져야 하는데..’

그런데 문득 비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주변 땅에는 투둑! 투둑!

비가 떨어지고 있는데.

자신에게는 비가 떨어지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위를 쳐다보았다.

우산이 보였다.

그리고 비올라의 얼굴이 보였다.

“이러고 있을 줄 알았어.”

툰드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왜 엎드려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비올라가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하지만…….”

“명령이야.”

툰드라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비올라의 손을 맞잡았다.

비올라의 손은 여전히 작았고, 따뜻했다.

“너는 네 할 일을 잘했어.”

비올라가 툰드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참았어. 내가 부른 사람은 회슨이지, 네가 아니었잖아.”

더 이상 툰드라의 얼굴에 비가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굵은 빗방울 같은 것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져 내렸다.

“강해질게요.”

툰드라는 굳게 다짐했다.

“3공자 같은 쓰레기는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만큼 강해질게요.”

툰드라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래서 주인님을 모욕하는 모든 것을 내가 대신 치워 버릴게요. 반드시.”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이 마구 뒤섞여, 툰드라의 얼굴을 타고 어지럽게 흘러내렸다.

***

힉슨은 다리를 꼬고 앉아, 비올라를 향해 눈을 흘겼다.

“괴물 같은 기집애.”

“공녀한테 기집애가 뭐야, 품위 없이.”

“3공자가 찾아올 건 어떻게 알았어?”

“3공자는 내가 검은 벨라투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또라이니까?”

그래서 미리 대비해 놨다.

힉슨에게 마법 팔찌를 준 것도 그 이유였다.

“그리고 내 아버지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너나 헤론이나, 둘 다 이 상황을 예측했다?”

“응.

비올라는 홍차 대신 바나나 우유를 마셨다.

열 살의 몸이라 그런가, 차보다는 달콤한 우유가 더 좋았다.

“아버지는 내 대응을 보고 싶었을 거야.”

“하얀 벨라투로서의 대응?”

“응. 나는 무력이 아니라 용병술을 보여야 했어. 그래서 나는 아저씨를 불러냈고, 아저씨는 3공자한테 화를 냈어. 적당한 명분도 있었고.”

“명분이 있었다고?”

“캣맘을 화나게 했잖아.”

비올라가 어깨를 으쓱했다.

“아버지도 전혀 문제 삼지 않을 걸?”

“왜?”

그야. 우리 아버지도 고슴도치 집사거든요.

“아버지도 동물을 좋아해.”

…엥? 뭐라고?”

“동물 핍박하는 사람 싫어해.”

“금시초문이군.”

그야 당연하지.

설정집에만 존재하는 내용이니까.

힉슨은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아무튼, 너는 3공자가 찾아올 걸 예상했고, 판을 짜놓았단 얘기잖아.”

“응. 아마 지금쯤 보고가 올라갔을 걸?”

***

비올라의 예상은 정확했다.

곧바로 보고가 올라갈 것 자체는 예상했다.

다만, 이 이야기를 1공녀인 메데이 아와 나누고 있을 줄은 몰랐다.

1공녀 메데이아.

차기 공작으로 가장 유력한 후계자 후보인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정말 아버지의 말씀대로 되었네요.”

“그래.”

공작의 말대로, 3공자는 피떡이 되어 돌아왔다.

비올라는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슨이라는 외부의 인물을 이용하여 3공자를 무너뜨렸다.

검은 벨라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지만, 하얀 벨라투라면 납득이 되는 행동이었다.

“제가 쿤도를 만나보았어요.”

“어떻더냐?”

“신관의 회복 기도를 통해 회복 중인데, 그래도 며칠 걸릴 것 같아요.”

“그렇군.”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헤론과 메데이아는 그렇게 살가운 부녀지간은 아니었다.

메데이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어요.”

“이상한 점?”

“힉슨 경은 오로지 주먹을 사용했다고 했는데, 쿤도의 가슴팍에 상처가 있었어요.”

메데이아는 어지간한 생채기 정도로는 상처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아마 피부 안쪽에서 먼저 상처가 났고, 힉슨 경과의 대련하다가 피부가 벌어져 버린 것 같아요.”

피부 바깥을 베는 것보다, 피부 안쪽을 베는 것이 훨씬 어렵다.

더 날카롭고 예리한 기운이 필요하고, 마나를 극상으로 다룰 줄 알아야만 한다.

몸 안쪽부터 파괴하는 고도의 상승검술이었다.

“힉슨 경의 흔적이 아니었어요.” ”

“그럼?”

“아마도 비올라였던 것 같아요.”

“그렇군.”

헤론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서렸다.

물론, 비올라 본인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아버지.”

“저는 대륙 최초, 역사상 최초, 세계 최초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어요.”

“그랬지.”

어린 시절의 헤론 공작과 비견될 정도의 무위.

압도적인 재능과 꾸준한 노력을 바탕으로, 메데이아는 저 자리까지 올라섰다.

그녀는 ‘하얀 삭풍’이라는 이명으로도 불린다.

삭풍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뜻한다.

하얀 삭풍은, 삭풍 중에서도 만 년에 한 번 불어오는 거대한 눈 폭풍을 뜻했다.

제국 기록서에 따르면 하얀 삭풍이 불었을 때, 무려 10만 명이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저도 열 살에는 저렇게 못 했어요.”

그녀의 눈웃음이 짙어졌다.

“그것도 저보다 강한 자를 상대로 는요. 심지어 쿤도는 벨라투 검식을 익힌 상태잖아요. 쿤도를 상대로 상처를 입힐 줄은 몰랐어요. 하얀 벨라투로서의 능력을 증명함과 동시에 검은 벨라투로서의 자질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일부러 알려온 것이겠지요.”

“흥미가 조금 생겼느냐?”

“네.”

메데이아가 물었다.

“제가 그 아이를 만나보아도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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