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41화벨라투의 1공녀.
메데이아 벨라투는 공작의 신임을 받는 공녀로서, 차기 후계자로 가장 유력한 인물이었다.
열 살에 검은 벨라투가 되었고, 열한 살에 견습 기사가 되었으며, 열두 살에 벨라투의 기사 자격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제국 기사단에 파견되어 고블린 무리를 홀로 토벌하여, 9급 정규 기사로 인정받았다.
이례적이었다.
제국 기사단은 급으로 실력이 구분된다.
견습 기사 기준으로 9급부터 1급을 통과하고 나면, 정규 기사가 되어 또다시 9급부터 시작하게 된다.
뛰어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보통 스무 살 언저리에 9급 기사가 된다.
메데이아는 견습 기사 과정을 모조리 패스하고 곧바로 정규 기사가 되었다.
당시 수많은 소식지가 이 사실을 다루었다.
〈최연소 9급 기사 탄생!〉<열두 살의 벨라투, 9급 기사가 되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대륙 각지가 또 들썩였다.
소식지는 앞다투어 사건을 특종으로 다뤘다.
<이것이 벨라투의 위엄인가!)
단신으로 잿빛 이리 무리 토벌!)
그 공적으로 인하여 메데이아는 열세 살에 8급 기사가 됐다.
1년 만에 초고속으로 승급했다.
이 역시 역사상 최초였다.
벨라투 1공녀. 세계의 기록을 갈아치우다.)
<메데이아. 그녀의 천재성은 어디까지인가.)
그녀의 천재성은 끝나지 않았다.
〈구원받은 가론 주민들.)
우연히 지나던 벨라투의 1공녀, 트롤을 토벌하다.)
트롤부터는 상급 마물로 분류되는 종이었다.
7급 이상의 기사나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은 절대 상대할 수 없는 포식 종.
우연히 길을 지나던 메데이아는 트롤 열두 마리를 그 자리에서 홀로 사살하였다.
지원군이 당도하였을 때는 이미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지원군을 이끌던 4급 기사 헨서는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었다. 그곳에서 살아숨 쉬는 것은 오로지 포식종 위의 포식종. 메데이아 공녀뿐이었다.”
결국 메데이아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열여섯 살에 6급 기사가 되었다.
(16세의 정규 기사.>
<역사상 최초, 세계 최초 6급 기사 지위 획득.)
그리고 그녀는 열일곱 살에 5급기사가 되었다.
보통 기사 가문의 뛰어난 영재들이 30대가 되어서야 이룩할 만한 경지를 열일곱 살에 이룬 셈이었다.
흔히들, 5급부터는 노력의 영역이 아니라고 말을 한다.
뛰어난 재능과 행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녀는 열여덟 살에 4급 기사가 되었으며, 열아홉 살에 3급 기사가 되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커다란 사건이 대륙을 강타했다.
서대륙 특급 암살자 122명 몰살.)
고도의 훈련을 받은 서대륙의 암살자 122명이 몰살당한 채 발견되었다.
하나하나가 2급 기사에 준할 정도의 실력자라고 추정되었다.
그중에서도 또 몇은 1급 기사 정도의 실력자이기도 했다.
당시 현장을 살펴보던 감독관이 탄성을 내질렀다고 전해진다.
우연히도 그 조사관은 몇 년 전 메데이아의 지원군으로 출정했던 헨서였다.
당시 4급이었던 헨서 역시 그 천재성을 인정받아 1급 기사로 승급한 상태.
‘한 명에게 당했습니다. 그것도 속수무책으로.
그 한 명은 실력을 숨기지 않았다.
‘벨라투의 가장 파괴적인 검식. 3검식의 흔적입니다.
‘3검식을 이토록 자유자재로 다룰수 있는 자는 두 명뿐입니다.
‘겨울 성의 군주. 그리고 그의 빛나는 첫째 딸 메데이아 공녀.
122명을 몰살시킨 장본인이 메데 이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벨라투 1공녀. 1급 기사의 지위를 부여받다!)
<메데이아. ‘서른두 번째 별을 하사받다.)
그녀는 검의 황제라 칭송받는 ‘넬라크’로부터 한 개의 별을 하사받았다.
이것은 ‘성(星)‘이라고 일컬어지며, 오로지 1급 기사만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칭호였다.
대륙 전체에 1급 기사가 겨우 500여 명이었고, 그중에서도 별을 받은 기사는 겨우 서른여 명에 불과했다.
겨우 스무 살에 이 경지에 오른 사람은 대륙 최초였다.
사람들은 이 경이로운 기록에 감탄하며 메데이아를 ‘하얀 삭풍’이라 칭송했다.
그게 벌써 3년 전이었다.
그녀는 이제 스물세 살이 되었다.
1급 기사.
그중에서도 1성을 부여받은 1성기사 메데이아가 노크했다.
최근 가장 관심을 끈 아이.
벨라투의 막내를 보기 위해서.
***
비올라는 메데이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찰랑이는 흑단발.
마치 보석과도 같은 붉은 눈동자.
소설 속에는 이렇게 표현됐었다.
「서대륙에는 요상한 소문이 전해졌다.
중앙 대륙에는 흑발 적안의 아름다운 마녀가 살고 있다고.
절대 ‘붉은 눈과 눈을 마주치면 안돼. 끔찍하게 잡아먹히고 말 거야.」
서대륙에 이러한 소문이 퍼지게 된 까닭이 바로 메데이아 때문이었다.
‘그렇게 끔찍한 마녀라고 부르면서도…… 아름답다는 수식어는 빼놓지 않았어.”
그 말이 맞았다.
붉은 루비 같은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깊은 호수에 빠져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감히 절대자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1공녀를 보자마자 느낀 것은 일종의 경외감이었다.
‘언니…!’
저 언니.
마음에 든다.
역시 차기 공작 후보는 저래야지.
암.
언니.
저는 절대로 나쁜 수작 같은 거 안 부릴 테니, 언니가 가주 해주세요. 제발요.
“나와 차 한잔하겠어?”
“좋아요.”
“싫다고 할 줄 알았더니.”
“어째서요?”
“언약도 없이 불쑥 찾아왔잖아, 내가.”
아. 괜찮아요, 1공녀 언니잖아요.
언니는 다 괜찮아요.
“그거야 제가 원하지 않는 방문일때에나 그런 거고.”
“나는 원했니?”
“네.”
“왜?”
“하얀 삭풍을 실제로 경험하고 싶었거든요.”
메데이아가 빙그레 웃었다.
“소문은 많이 과장되었을 거야.”
“아뇨.”
결코 과장되지 않았다.
메데이아는 작중 최고의 재능을 타 고난, 작중에서도 최강을 다투는 천재다.
예전부터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메데이아가 말했다.
“3년 전, 환영 만찬회 때가 기억나네.”
“재밌었어요.”
“그래?”
“네.”
메데이아는 한동안 비올라를 쳐다보기만 했다.
마침 제논이 딸기 우유와 홍차를 가져왔다.
비올라는 딸기 우유를, 메데이아는 홍차를 마셨다.
“언니는 용건이 있어서 찾아오신 건가요?”
“그래. 네가 쿤도를 상처 입혔다고 들었어.”
순간, 비올라는 찔끔 놀랐다.
‘엥? 내가? 상처 입혔다고? 언제?’
오해가 좀 있는 것 같다.
“제가 아니라 힉슨 경이 그랬어요.
그것도 연무장에서.”
“그래. 그렇겠지.”
메디이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힉슨에게 당한 상처가 심하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비올라에게 당한 상처도 분명히 있었다.
고도로 어려운 기법을 사용하여 몸안쪽에 타격을 줬었다.
‘힘을 숨기고 싶은 거니? 내 앞에서?’
힘을 숨기는 것은 나쁘지 않다.
충분한 힘을 갖출 때까지, 발톱을 숨기는 것은 일종의 지혜니까.
“힘을 숨기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나.”
메데이아가 앉은 자리에서 검을 뽑았다.
스릉—
맑은 검명이 들렸다.
검끝이 비올라의 목젖에 닿았다.
비올라는 반응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았어.”
그렇게 빨리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냥 천천히, 자연스레 움직인 것 같았다.
정신 차려 보니 목젖에 칼날이 닿아 있었다.
칼날이 어찌나 예리한지, 시퍼런 예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닿기만 해도 목이 잘려 나갈 거야.’
목이 잘리는 상상이 들었다.
그만큼 메데이아의 예기는 날카로웠다.
제논이 말했다.
“1공녀님. 이곳은 공작저 안입니다만.”
“알아. 그렇지만 나는 넬라크 황제에게서 별을 부여받은 기사야. 그 의미를 모르고 있지는 않을 텐데?”
검의 황제. 줄여서 검제라 불리는 넬라크가 부여하는 별에는 큰 의미가 있었다.
황명 이외의 모든 법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증거가 바로 별이었다.
“나는 1성 기사가 되었고, 공작가의 법도보다 황제의 법도가 더 높아. 그러니 나는 이곳에서 검을 뽑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
그때, 비올라가 끼어들었다.
“정말 그럴까요?”
“뭐?”
“정말 공작가의 법도보다 황제의 법도가 더 높은가요?”
제논의 몸이 움찔했다.
‘공녀님?’
비올라 공녀의 통찰력과 영민함은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저 발언은 지나치게 위험하다.
물론 이곳에 황제의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너무 위험한 발언이었다.
“비올라. 넌 똑똑한 아이야. 무슨 뜻인지 알고 말을 하는 거겠지?”
“물론이죠. 그러나 저는 겨울 군주의 법도가 검제의 법도보다 낮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째서?”
메데이아는 비올라의 말이 흥미로웠다.
도대체 이 아이가 무슨 근거로 제 반역에 준하는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어떤 논리를 펼칠까??
“아빠잖아요.”
뭐?”
“저는 아빠가 제일 강하다고 생각해요.”
소설 속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겨울 군주 헤론과 검제 넬라크의 무위는 막상막하였으나, 7일 밤낮을 싸운 끝에 결국 헤론이 이겼다고.
물론 이것은 비공식적인 결투였다.
“더 강한 사람의 법도가 적용되는 것이 맞겠죠. 적어도 이곳, 벨라투에서는.”
정규 교육과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메데이아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어떤 뛰어난 논리가 있는 게 아니었다.
이 모습은 흡사.
‘우리 아빠가 제일 세!’
라고 주장하는 열 살 꼬맹이의 모습이었다.
메데이아는 잠시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해야만 했다.
비올라의 목에 가져다 대었던 검을 회수했다.
당연하게도, 그 동작 역시 비올라의 눈에는 전혀 읽히지 않았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
“네. 진심이요. 언니도 아빠의 특별한 눈 같은 힘이 있죠?”
메데이아 역시 헤론의 ‘진안’을 이 어받은 계승자다.
사람의 진심을 파악할 수 있는 눈을 가졌다.
“그러니까, 제가 진심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을 테고요.”
진심일 수밖에.
소설로 이미 다 확인했으니까.
최애캐 헤론이 더 센 것이 확실하고 팩트다.
메데이아는 조금 황당했다.
‘이 아이가, 철혈 공녀?’
적어도 지금의 모습은 철혈 공녀같지 않았다.
그저 이 나이 또래의 어린아이 같았다.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확인할 것이 있었다.
“네 힘을 숨기는 것은 좋은 선택이나, 그 사실을 들키지는 말았어야지.”
“……”
“그리고 그 사실을 들켰다면, 내게 거짓말을 하지는 말았어야지.”
사실 메데이아는 궁금했다.
비올라에게 어떤 힘이 숨겨져 있는지.
검은 벨라투가 되기에 최적의 재능을 가졌으면서, 굳이 하얀 벨라투를 선택하고, 또 굳이 쿤도의 몸에 고도의 상승 기법으로 상처를 낸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검을 맞대보면 알 거야.
입은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검(劍)은 거짓말하지 않으니까.
메데이아가 말했다.
“나와 연무장으로 가주겠어?”
비올라는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다.
사실 비올라는 쿤도에게 상처가 났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일부러 숨긴 게 아니라 정말 몰랐다.
‘그래도…… 메데이아는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릴 캐릭터는 아니야.”
비올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대신 딸기 우유는 다 마시고 가도 되죠?”
일단 시간을 끌면서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까딱 잘못하면 밑천이 드러날 수도 있다.
그러면 모든 계획이 망가진다.
검은 벨라투가 무서워 하얀 벨라투를 선택한 겁쟁이 낙오자가 되어버릴 거다.
‘최대한 천천히 마시면서 생각을 가다듬는 거야.’
그런데 그 모습을, 천재인 메데이 아는 아주 다르게 해석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