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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81화 (81/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081화 6마탑은 중앙 대륙의 중심인 모나 크로부터 북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마탑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중앙 대륙의 북쪽 끝. 겨울성에서 가장 가까운 마탑이기도 했다.

크롬슨은 마탑에서 나고 자랐다.

마법사의 대부분이 그렇듯, 어린 시절 그는 마법의 종주가 되어 여덟번째 마탑을 세우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안타깝게도 크롬슨은 마법에 대한 재능과 이해도가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뒤떨어졌고 어느덧 크롬슨 스스로도 그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 크롬슨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냐. 내가 모자란 게 아니야.’

이것은 마탑의 수업 방식이 자신과 맞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렀다.

“헹! 이따위 마탑은 내가 먼저 버려 버리겠어.”

30대가 되어서도 크롬슨은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서른여섯 살이 되던 해, 크롬슨은 결국 마탑에서 빠져나오기로 마음먹었다.

“자진 파면을 요청하셨습니다. 맞습니까?”

“네.”

“이유가 무엇입니까?”

크롬슨은 여전히 꿈을 버리지 못했다.

“마법사로서 원대한 꿈을 펼쳐 보이기 위해서. 세상 밖으로 나가 마법의 위대함을 널리 설파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군요.”

정식 서류 절차와 간단한 면접을 끝냈다.

“마탑에서 제공되던 모든 혜택은 사라집니다. 이에 동의하십니까?”

크롬슨은 하마터면 ‘헹! 혜택은 개뿔. 혜택이 있기나 했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동의한다고 말한 뒤 사인했다.

“나가셔도 좋습니다. 마나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마탑을 벗어나 세상에 처음 나온 36세 크롬슨은 이내 곤란한 상황에 부딪히고 말았다.

어딜 가도 돈이 필요했다.

돈의 개념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 개념이 그의 생활에 밀접하게 닿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도둑놈이! 밥을 처먹었으면 돈을 내야 할 거 아냐!”

자신에게 따지던 건방진 식당 주인을 간단한 마법으로 혼내주었고 때문에 마을의 경비대까지 출동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젠장! 그놈의 돈! 돈! 돈!

마탑 안에 있을 때는 잘 곳,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충분히 제공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해야 했던 크롬슨에게 세상은 너무 척박한 곳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는 알게 되었다.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먹고살 수 있다는 걸.

마탑에서 벗어나면 응당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걸 말이다.

결국 그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법사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러나 그게 쉽지는 않았다.

“감히 마탑 출신 마법사에게 그런 허드렛일을 요청해?”

“허드렛일이 아닙니다.”

“이 건방진 놈! 귀족 여식에게 얼음을 만들어주는 일 따위가 허드렛일이 아니면 뭐냐! 감히 나를 모욕하다니!”

현실의 벽은 냉엄하고 높았다.

그가 생각하는 ‘진짜 마법사’가 수행하는 일들은 이미 마탑에서 파견된 정예 마법사들이 수행했다.

그에게 주어지는 임무나 의뢰는 크롬슨이 생각하기에 ‘진짜 마법사’가수행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1년의 시간이 더 흘러 서른일곱살이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세상과 타협할 수 있었다.

‘그래. 벨라투의 의뢰라면 받을 만하지.’

이제야 세상이 자신을 좀 알아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6마탑은 겨울성과 가장 가까운 마탑이고, 마탑의 뛰어난 마법사들도 벨라투의 순혈들을 두려워한다고 들었다.

마탑을 벗어나 본 적이 없어 벨라 투에 대한 소문만 많이 들어본 크롬슨은 큰 기대를 가졌다.

그런데 눈앞의 이 핏덩이들은 뭐란 말인가.

‘하나는 절름발이에.

절름발이 벨라투를 벨라투라고 할 수 있을까?

벨라투의 검술은 마법보다 더 빠르다고 했다.

그런데 벨라투 검술식은커녕 제 앞 가림도 못 할 어린 여자애가 하나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하나는 열 살이 채 되었을까 싶은 어린애.’

실망이 아주 컸다.

하기야 제대로 된 벨라투라면 명품과 사치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파르아 자작령 따위는 가지 않겠지.

‘젠장!’

벨라투쯤 되는 위대한 가문에서 마탑을 컨택하지 않고 자신을 선택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차피 벨라투에서 낙오된, 혹은 아직 후계 경쟁에 참여조차 하지 않은 어린애들의 유람이니 마탑의 마법사들까지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마탑 마법사들에게는 이 의뢰는 모욕이겠지.’

마탑의 마법사들에게는 모욕인 의뢰.

그 의뢰를 크롬슨 자신에게 한 것이다.

무척 화가 났다.

“그 유명한 벨라투의 공녀님들이라고 하지 않았어? 뭐야, 이 핏덩이들은?”

“………..”

“내가 지금은 마탑 소속이 아니라고 무시하는 거야? 그런 거냐?”

그때, 비올라가 움직였다.

***

비올라는 있는 힘껏 에르사의 뺨을 때렸다.

짝!

커다란 소리와 함께 에르사의 목이 돌아갔다.

에르사의 목이 돌아가는 바람에 비올라는 깜짝 놀랐다.

‘진짜 아프진 않겠지?’

에르사는 무려 ‘검귀라 불리는 무인이다.

열두 살의 비올라가 때린다고 해서 상처 입는다거나 다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비올라이기에 마음 놓고 때렸다.

고개가 저렇게까지 옆으로 돌아갈 줄은 몰랐지만,

‘맞아서 돌아간 게 아니라, 그냥 옆으로 돌려준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겉으로는 에르사를 노려보았다.

혼낼 것은 확실히 혼을 내야 했다.

이번 일정은 에르사의 몫이었고 저렇게 안하무인인 마법사를 고용한 사람도 에르사였다.

비올라는 벨라투로서 에르사의 잘못을 물어야 했다.

“에르사. 일 처리를 이렇게 할 거야?”

“죄송합니다, 공녀님.”

에르사는 차렷 자세를 취했다.

“제논이었다면 이 정도로 안 끝났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에르사는 헤라의 집사다.

헤라의 면을 봐서라도 더 이상 혼내기는 어려웠다.

실제로 더 혼내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감사합니다.”

서슬 퍼런 광경에 크롬슨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마법사이고 일반인에 비해서 훨씬 더 예민한 마나 친화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나의 움직임과 흐름에 예민했다.

‘방금……… 뭐였지?’

뺨을 때린 건 알겠다.

그런데 저 작은 손에 태풍 같은 힘이 담겨 있었다.

저 손에 자신이 맞았다면?

마법으로 방어하지 못하고 그냥 얻어맞는다면?

크롬슨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목이 부러져 죽었을 거야.’

그 정도의 파괴력과 힘이 담겨 있었다.

그가 보았던 그 어떤 어린애보다 강한 힘이 담겨 있었다.

그는 아주 잠깐 비올라와 눈이 마주쳤다.

‘힉.’

눈동자는 보라색이었다.

그런데 크롬슨이 보기에는 붉은색에 가까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보라색인데 왜 붉은 눈처럼 느껴진단 말인가.

저 붉은 눈은 흉폭한 맹수의 것이었다.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언니. 언니가 괜찮다면 세 시간 뒤에 미팅을 다시 잡을게.”

“그래.”

헤라가 빙그레 웃었다.

자신의 집사인 에르사에게 말했다.

“세 시간 뒤, 다시 이곳으로 올 거야. 에르사. 너는 그동안 고용인과 다시 대화를 나누어보는 게 좋겠어.

나는 무례한 사람이 싫거든.”

***

제논이 빙그레 웃고서 헤라의 휠체 어를 밀었다.

“수고하세요, 에르사 집사님.”

비올라와 헤라. 그리고 제논이 어딘가로 사라진 뒤 에르사는 한참이나 생각에 빠졌다.

눈앞의 마법사를 잠시 잊었다.

자신의 뺨을 때린 비올라를 떠올렸다.

‘자연스레 마나가 움직였어.’

비올라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숨을 쉬듯 자연스레 마나를 사용했다.

이렇다 할 마나 술식이나 검술을 배우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그 마나에 반응해서 나도 모르게 마나가 움직였고.’

마나로 뺨을 보호했다.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열두 살의 ‘하얀 벨라투’ 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직접 맞아보니 알 것 같았다.

비올라의 마나는 거대했다.

여태껏 거의 만나보지 못한 종류의 마나였다.

아직 나이가 어려 그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타고난 마나의 정순도와 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벨라투보다 더 벨라투 같은 공녀라더니.”

오늘 그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모르긴 몰라도 이 정도면 차기 가주 후보인 메데이아 공녀와도 필적할 것 같았다.

‘아니, 단순히 격만 놓고 보면 메데이아 공녀보다 더 뛰어날지도 몰라.

마나의 격에 한정해서 보면 그랬다.

이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 재능과 마나의 격을 가진 공녀가 ‘하얀 벨라투’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또 놀라웠다.

이, 이봐. 괜찮아?”

크롬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에르사는 크롬슨을 쳐다보았다.

이 무례하고 건방진 마법사와 어떤 대화를 나누어야 할까.

“잠시, 둘이 은밀한 대화를 나누면 좋겠는데요.”

“으, 은밀한 대화?”

“단둘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에르사가 크롬슨에게 몇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에르사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크롬슨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 그렇다면 좋지. 얘기를 들어주지.”

그리고 세 시간이 흘렀다.

***

“몸의 대화를 시작하겠습니다.”

에르사는 소음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마법 스크롤을 찢어 소음을 차단한 뒤 무자비한 구타를 시작했다.

“안 보이는 곳만 때릴 테니 걱정은 마십시오.”

그녀는 과연 검귀였다.

검 대신 각목을 든 그녀는 각목귀였다.

“당신의 모자란 사회성의 연유는, 비폭력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마탑 분들은 지나치게 온화하여 마탑 소속 마법사들을 마치 햇빛처럼 양육한다 들었습니다.”

안전한 주거 환경을 제공해 줘.

따뜻한 밥도 줘.

사시사철 춥거나 덥지 않게 온도를 조절해 주는 데다가 옷까지 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에르사의 입장에서는 지상 낙원이었다.

“세상에는 햇빛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끔 태풍도 불고 장마도 오고 벼락도 내리치는데.”

각목을 휘둘렀다.

빠각!

커다란 소리는 방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다.

끄아아악! 비명도 마찬가지였다.

마법으로 저항해 보려 했지만 불가능이었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력감이라는 것을 느껴보았다.

“오늘은 벼락이 되겠군요. 벼락 맞고 정신 차리시길 바랍니다.”

에르사가 씨익 웃었다.

“부디 사용인으로서 고용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스스로 잘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 무시무시한 세 시간이 지났다.

비올라와 헤라가 다시 도착했을 때, 그는 정신적으로 무장이 되어 있었다.

허리를 깊이 숙였다.

“아이고, 고객님들, 오셨습니까?”

크롬슨이 두 손을 비볐다.

그 모습은 마치 파리가 제 다리를 비비는 것 같기도 했다.

“고객님들을 파르아까지 편하게 모실 사용인, 크롬슨입니다. 2서클 마법사이며 플라이 마법을 활용하여 안내할 예정입니다. 쾌적하고 편안한 여정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헤헤.”

37년 동안 길러지지 않았던 사회성이 세 시간 만에 생겨나 쑥쑥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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