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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75화 (175/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75화

며칠 전.

키라엘 퀼튼은 어머니인 퀘이사 퀄튼과 내기를 했다.

“약속, 하신 겁니다, 어머니.”

“그래, 네가 비올라와의 혼인 서약서를 가져온다면 퀼튼가의 모든 것을 내어주마.”

키라엘 퀼튼은 어머니와 약속을 한 뒤 거울 앞에 섰다.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미소년이 보였다.

현 사교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가 하나 있었다.

제르미와 키라엘 중 누가 더 아름다운가.

귀족 영애들 사이에서 그것은 하나의 전쟁이기도 했다.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을 뻗어 거울의 자신 속 입술에 대어보았다.

“잘생겼네.”

그도 자신이 잘생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눈이 반달을 그렸다. “비올라와의 혼인 서약. 할 수 있겠어.”

퀼튼가의 비전 술식 중에서는 매력과 관련된 능력도 있었다. 키라엘은 이를 일컬어 ‘매혹’이라 불렀는데, 외모와 관계없이 사람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고 경계심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

이론적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것도 가능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헤론 공작님도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이사벨라 퀼튼은 현재 행방불명되었다. 퀼튼가(家)와의 연결 고리가 끊어졌다는 뜻.

이러한 상황에서 비올라와 키라엘이 혼인은 벨라투에도 분명 이득이 될 것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여긴 내 구역이야 짜식아.”

숨이 턱! 막혀왔다. 뒷목이 알싸한 것이 둔탁한 무엇인 가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어지러워..

무엇에 당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겨울성에 나보다 훨씬 뛰어난 암살자가 있어.’ ’키라엘은 이제 겨우 열다섯이었다.

그보다 더 뛰어난 무인은 많았다. 그러나 기척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의 암살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나의 기감을 완전히 무력화시킬 정도면….’

적어도 서너 수 이상은 상위 실력의 소유자라는 뜻이다. 키라엘은 어머니인 퀘이사 퀼튼의 기척까지도 가끔 잡아낼 정도의 기감을 가지고 있었다.

제논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 소년의 이름을 알 것 같군요.”

메데이아가 물었다. “내게도 이름을 알려주겠어?”

“키라엘. 키라엘 퀼튼. 퀼튼가의 후 계자입니다.”

“퀼튼가의 후계자가 왜 겨울성에 은신한 채 숨어들었을까?”

“글쎄요.”

제논의 시선이 비올라에게 향했다. 마치 공녀님은 다 알고 계시지요?

하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도 몰라!’

천장에서 키라엘이 떨어지는 바람에 놀란 가슴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못했다.

그러나 6년간 닦아온 연기 실력은 오늘도 빛을 발했다. “이유가 중요해?”

“하긴, 중요하지 않지요.”

메데이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성에 무단으로 침입한 암살자라니.”

셰일란이 씨익 웃었다. “어떡하죠, 제자님? 죽일까?”

키라엘 퀼튼은 그 대화들을 들으면서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는 정신을 잃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완벽히 구속된 것도 아니었다. 그가 관자놀이를 누르며 일어섰다. “저는 헤론 공작님의 허락을 받아 이곳에 왔습니다.”

“몰랐다고 하지 뭐.”

셰일란이 킥, 웃었다. 오른손으로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저번에 잘렸던 오른팔은 완전히 회복된 상태였다.

“중요한 건, 네가 제자님 방에 몰래 숨어들었다는 거야.”

“공작님께 허락받았다니까요.”

“누구 물어보신 분?”

셰일란이 씨익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자 메데이아와 헤라는 그 눈빛을 은근히 외면하며 입을 다물었다. 제논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물은 사람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죽이면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퀘이사 퀼튼이고, 이 세계의 절대자 중 한 명이거든요.”

“그러면 제자님이 불편해질까?”

“아마도요.”

“그럼 살려둬야겠네.”

키라엘이 인상을 찡그렸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태평하게 대화들을 하는군요.”

그는 그다지 큰 감정의 동요 없이 비올라 쪽을 바라보았다. “비올라 영애, 내가 왜 이곳을 찾아왔을까요?”

“내게 중요한 건, 당신이 내 방을 무단으로 침입했다는 거겠죠.”

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왜 허락… 아!’

알 것 같았다. ‘여기에 메데이아 언니와 헤라 언니. 그리고 제논과 셰일란이 있다는 걸 알고 계시니까.’

그래서 허락하신 것 같았다. 비올라는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이들이 어떤 대처를 할지 너무나도 뻔한 상황에서 암습을 허락해 줬다.

면, 뜻은 하나였다.

‘ ‘쉽게 말해…… 엿 먹어라, 뭐 이런 거네.’

그렇다면 왜? 왜 아버지는 이렇게 골탕을 먹이려고 했을까? ‘이제 알겠다. 퀘이사 퀼튼’며느리, 며느리’ 하고 노래를 불러댔던 것이 생각이 났다.

아무래도 그와 관련해서 이곳에 찾아온 것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키라엘을 지옥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모양이고. 비올라가 말했다.

“혼인 서약서라도 갖고 왔어요?”

“혹시 내 어머니가 연락이라도 한 건가요?”

“전혀요.”

“그럼 어떻게 알았어요?”

“그건 공자가 스스로 알아내도록 해요.”

키라엘 퀼튼은 작중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다만 제르미와 미모를 다투는 아름다운 소년으로 묘사되었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네.”

청량한 느낌의 제르미와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제르미와 키라엘 중 누가 더 아름다운가에 대해 네 시간 동안 그룹토론을 한 영애들도 있을 정도였지.’

키라엘의 눈동자가 비올라로 향했다.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는 소년미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표출하고 있었다.

헝클어진 붉은 머리카락.

햇빛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만 같은 하얀 살결.

어딘지 퇴폐적이고 몽환적인 것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나른한 분위기.

위험한 향기를 내뿜는 장미 같았다.

‘아름다워’키라엘의 입술이 보였다. 화장한 것도 아닌데 입술이 무척 붉었다.

비올라의 시선이 입술 밑으로 향했다.

예리한 턱선이 보였다.

그 밑으로는 하얀 목선이. ‘아, 이거 아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나한테 ‘매혹’ 같은 잡기술을 사용하려 했다가는 꽤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거예요.”

“매혹이요? 그게 뭐죠?”

“그러게요. 그게 뭘까요, 언니?”

비올라가 메데이아를 바라보았다. 메데이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공자는 진심으로 내 동생을 다하도록.”

비올라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과, 키라엘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사뭇 달랐다. 키라엘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었다.

“비올라의 언니가 메데이아임을 잊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제논이 한마디를 보탰다. “하얀 삭풍은 어디든 불어닥칠 수 있거든요.”

비올라를 등진 제논의 눈빛도 곱지만은 않았다. 그는 분명 웃고 있었으나 키라엘은 제논의 눈빛이 굉장히 매섭다고 느꼈다. 어쩌면 하얀 삭풍보다 더. 그때, 비올라가 말했다.

“나는 공자와 혼인 서약을 맺을 생각 같은 건 없어요. 그러니 이만 본 가로 돌아가도록 하세요.”

“왜요?”

“왜냐니요?”

“전 잘생겼잖아요.”

“제 취향은 아닌데요.”

“취향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잘생겼잖아요.”

비올라는 저도 모르게 ‘그건 그렇죠’ 하고 말할 뻔했다. 만약 비올라 안에 아린의 영혼이 없었다면 그렇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키라엘의 미모는 아찔했다.

다행인 것은 아린이 보기에 키라엘은 지나치게 어렸다.

“연하는 제 취향이 아니라서.”

“연하요?”

“그런 게 있어요.”

“비올라 공녀는 이상한 구석이 있군요.”

“밤에 공녀의 방에 암습하여 혼인 서약서를 건네겠다는 누구보다 이상 할까요?”

헤라가 킥, 웃음을 터뜨렸다. “확실히. 그런 머저리보다 이상한 사람은 없을 거야.”

“……….”

헤라가 휠체어를 밀어 키라엘을 스쳐 지나갔다. 키라엘을 스쳐 지나가며 작게 말했다.

“조심해. 비올라의 언니의 이름이 메데이아만 있는 건 아니야.”

키라엘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분명 이득이 되는 제안이라고 생각해서 부리나케 달려왔는데요.”

“이득이 되긴 하겠죠. 그런데 어쩌겠어요. 제 취향이 아닌걸.”

“제가 아니면 도대체 어느 누가 취향이 될 수 있죠?”

참 뻔뻔하게도 말을 했다. 그렇지만 저 뻔뻔함이 당당함으로 느껴질 만큼 미모가 빼어나서 트집잡기는 힘들었다. ‘네가 아무리 잘생겼어도, 퀼튼가의 자제여도, 그래도 넌 안 돼.’

비올라는 분명히 읽었다. ‘네 설정 중에 사이코패스가 있단 말이야.’

사이코패스와 혼인을 할 수는 없었다. 몇몇 세부 설정이 있었는데 다는 기억나지 않았고 대략 ‘사람을 도구로 생각함’이라든가 ‘필요하다면 한없이 잔악해질 수 있는 성정’ 정도가 생각이 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얘도 좀 파놓을 걸’비중이 크지 않은 조연이라 제대로 덕질하지 않았다. 큰 설정 외에 작은 것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제 취향은 음, 좀 개 같았으면 좋겠어요.”

“……예?”

비올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사이코패스와 혼인 서약을 맺을 수는 없으니까.

“저는 저를 조신하게 기다리는 남자가 좋거든요. 하루를 천 년같이.”

비올라는 발가락에 힘을 꽉 줬다. ‘윽, 말 못 하겠어.’

구두 안의 발가락이 바들바들 떨렸다. 제아무리 6년의 내공이 있다고 해도, 아직 이 정도 말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겉모습만큼은 여전히 철혈의 공녀였다. “제 말에 무조건적으로 충성하고, 제가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저를 믿고 신뢰하며, 제가 불구덩이에 뛰어들라면 당장에라도 뛰어들 수 있는 자. 그리고 저를 주인처럼 모시며, 저를 만난 것이 기뻐 꼬리를 흔들며 저를 반기는 자. 오로지 저만을 눈동자에 담는 자. 저는 배신해도 그는 결코 저를 배신하지 않는자. 그런 자가 취향이에요.”

조, 좋아. 이 정도면 충분히 미친 애처럼 보일 거야. “……….”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키라 엘의 눈동자가 변했다. 비올라도 이해했다.

‘그래, 그래. 나 이런 애야. 훠이훠이. 혼인 서약서 같은 건 얼른 들고 멀리 가버리라구.

키라엘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것참 매력적인 취향인데요?”

그렇게 말한 키라엘은 힐끗 뒤를 바라보았다. “근데, 당신은 뭐죠?”

키라엘 뒤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키라엘은 여유롭게 말했지만 등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뭐야, 쟤는?’

나이는 자신과 비슷해 보였다. 흑발 흑안을 가진 소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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