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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딸 역할을지나치게 잘 해버렸다-199화 (199/201)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 199화

황당한 일 하나.

그것은 제논이 갑자기 우뚝 멈춰서서 진지하게 말을 한 것이었다.

“공녀님.”

“응?”

“이대로 저랑 같이 멀리 떠나시겠습니까?”

“무슨 소리야?”

비올라는 제논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하얀 장갑을 낀 제논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공녀님은 저의 공녀님이시고.”

약간 이상했다. 5년 동안 누워 있다 일어났더니 집사 제논에게서 약간의(?) 집착이 생겨난 것 같았다.

“저는 공녀님을 독점하고 싶어졌답니다.”

비올라는 황당한 얼굴로 제논을 바라보았다. “제논, 너 원래 그런 성격 아니었잖아?”

“원래 성격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그건….”

비올라도 고개를 갸웃했다. 다시 한번 묘한 기시감에 휩싸였다.

‘제논은 <벨라투의 그림자> 속 누군가의 집사였고……….’

그 집사는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등장인물이었다.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주인공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조력 자.

저 조력자는 분명 ‘주인공’을 돕는 역할이었다.

‘그 주인공이…’

기억나지 않던 것이 하나 기억났다.

‘나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원작 주인공의 존재가 사라졌다. 비올라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제논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튼, 농담이 진심 같아서 무섭네.”

“농담이 아니었으니까요.”

제논이 빙그레 웃었다. 에스코트하던 손으로 비올라의 손을 꼭 쥐어보았다.

“여전히 작으시군요.”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비첸도, 헤라도 이제 많이 컸다.

그러나 비올라는 그대로였다. 제논의 눈으로 본 비올라는 위대한 대륙의 영웅이기 이전에, 제가 섬기는 작은 주인이었다.

비올라의 머릿속에 짧은 한마디가 스쳐 지나갔다.

‘겨우 그러한 것이, 나에 대한 소유욕을 드러낼 수 있을 만큼 거만한 것이었나?’

원래는 그렇게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연기를 해왔던 거 같은데.’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비올라는 비올라로 살기로 했으므로,툰드라가 가르쳐 주었듯, 비올라에게는 비올라가 살아가는 방법이 있으니까.

“제논이 나를 위하는 마음은 알겠네.”

“그럼 저와 함께 도피를…

거기까지 말한 제논은 빙그레 웃고 말았다.

“농담입니다.”

반쯤은 진담이었지만 농담으로 치부했다. 비올라에게는 소중한 인연이 많다.

그리고 비올라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그의 욕심대로 비올라를 독점할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

제논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차피 진심을 숨기기로 하였으니, 또 다른 작은 진심으로 큰 진심을 가렸다.

“공녀님께서 온전히 지배하실 겨울 성이 너무나 기대된답니다.”

비올라는 제논의 눈을 은근슬쩍 피한 채 마차 위로 올라타려 했다. 거기서 두 번째 황당한 사건을 맞이해야만 했다.

황당한 일 둘.

어느새 키가 훌쩍 큰 비첸이 마차 안에 숨어 있었다.

“비! 올! 라!”

비올라가 알기로 비첸은 브란디아가문 쪽으로 파견을 나갔어야 했는데. 임무는 완전히 팽개친 모양이다.

“임무 있었잖아?”

“임무?”

비첸은 귀를 후볐다. “그게 뭐더라.”

” …여기서 뭐 하는 건데?”

“아무래도 나는 비올라를 데리고 도망쳐야겠어.”

그는 가슴을 탕탕 쳤다. “오빠만 믿어. 내가 비올라 지켜줄게.”

” ……무엇으로부터?”

“비올라를 노리는 수많은 사람으로부터.”

비첸의 말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올라는 이미 전 대륙의 영웅이었고, 황제에 버금가는, 혹은 황제를 뛰어넘는 위명을 지니고 있었다.

비올라를 원하는 사람은 넘치고 넘쳤다.

비첸의 입장에서 그건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어디로 도망칠 건데?”

“그, 그건….”

도망쳐야겠다. 생각만 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디로 어떻게 가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모양이다.

나이를 먹어도 비첸은 비첸이구나 싶어 비올라는 웃고 말았다.

“어? 웃었다?”

“내가 웃은 게 대수야?”

“그게 나한테는 제일 좋은 일인데.”

그와 동시에 비올라가 부르지도 않은 정령왕 퐁퐁이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비첸의 머리 위에 물을 쏟아부었다. 퐁퐁이는 비올라를 빼앗길 수 없다.

는 듯 말했다.

“비올라는 나랑 있을 건데.”

“너 지금 나한테 물 뿌렸냐?”

“지금 너라고 했냐?”

“너보고 너라 하지 뭐라 하냐?”

“나 정령왕이다?”

“나 비첸이다?”

거기까지 말한 비첸은 훗, 하고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난 비올라 오빠다?”

“그래서? 난 비올라 계약자인데?”

“오빠가 더 좋거든?”

“계약자가 더 끈끈하거든?”

“아니거든?”

“맞거든?”

비올라는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게 과연 벨라투가의 공자와 정령왕이 나누는 대화가 맞나 싶었다.

<벨라투의 그림자는…… 원래 피폐 소설이었는데.>

피가 난무하고, 온갖 정치질과 술수가 내포되어 있던 소설이었다.

오죽하면 여주인공이 주변인을 다 죽이고 외로운 지배자가 되는 것으로 결말이 났을까.

그런데 지금은 밝다 못해 유치할 지경이었다. “어두운 거보다 밝은 게 낫긴 한데…….”

미남자가 된 둘의 눈동자가 비올라를 향했다. 비올라의 입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이렇게 유치해질 줄은 몰랐어.”

비첸에게 물었다. “오빠, 근데 도대체 임무는 어떻게 하고 온 건데?”

“헤헤.”

비첸은 해맑았다. “거기 너 있다고 뻥 쳤걸랑?”

“누구한테?”

“툰드라.”

“툰드라?”

그래서 툰드라가 그곳으로 달려갔단다. “내 임무는 걔가 대신하겠지, 뭐.”

*** 브란디아는 서대륙의 침입자들로부터 중앙대륙을 지키는 수호 가문이다.

브란디아가 지키는 영향권 내에 침입자들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륙은 넓었다. 브란디아가 모든 곳을 지켜줄 수는 없었다.

브란디아의 영향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에는 여전히 해적들이 출몰했다.

반대로, 벨라투는 이제 한가해졌다. ‘눈이 부는 곳’이 사라졌고 그곳의 마물들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브란디아와 벨라투는 협약을 맺었다. 겨울성의 전사들이 대륙 서쪽으로 파견되어 해적들을 막아내는 협약이었다.

스스로를 해적왕이라 부르던 ‘모르킨’은 무릎을 꿇었다.

그는 모든 부하를 잃었고, 그가 자랑하던 ‘유령함대’는 모조리 침몰했다. 이 모든 것이 겨우 한 사람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너… 넌 도대체 정체가 뭐냐?”

“가르쳐 줄 이유가 있나?”

“괴, 괴물 같은 놈…….”

“괴물은 너지.”

수많은 사람을 약탈하고 온갖 범죄를 저질렀다. 툰드라는 ‘모르킨’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해적 토벌을 완료한 뒤, 툰드라는 마을의 촌장에게 물었다.

“혹시 보라색 머리카락을 가진 어린 숙녀분께서 이곳에 오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촌장은 툰드라의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툰드라가 고개를 저었다. “이 은혜는 비올라 공녀님의 것입니다.”

“비, 비올라 공녀님 말입니까?”

“저는 비올라 공녀님을 위해 살아가는 검이니까요.”

비올라가 모르는 사이, 한 어촌에서 비올라의 명성이 드높아졌다. 툰드라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속았다.’

아무튼 비올라라는 이름만 나오면 이성을 잃게 되는 것이 문제였다.

‘비첸!’

비첸에게 속아 여기까지 와버렸다. 그사이, 비올라가 에바토 영감의 묘소를 방문하여 경의를 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얼른 공작저로 복귀하려 하는데, 우연히 제르미와 만났다.

둘은 무인이자 라이벌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둘은 서로 검을 뽑아 들었다.

“5년간 얼마나 강해졌는지 볼까.”

“누워 있던 5년 동안, 약해지지 않았기를 바란다.”

제르미는 5년간 피나는 수련을 거 듭했다. 제르미에게 있어서 툰드라는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었다.

죽기 살기로 수련했다.

그 마음의 이면에는, 내가 반려검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반대로, 툰드라는 5년간 누워 있었다.

“헉… 헉…!”

“헉…… 헉……!”

두 사람의 검이 동시에 서로의 목젖에 닿았다. 둘의 결투는 무승부로 끝났다.

본래는 툰드라가 훨씬 더 강했었다. 그러나 5년의 시간은 길었다. 툰드라도 제르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법, 강해졌구나.”

“괴물 같은 놈. 5년을 누워 있었는데 호각이라니.”

제르미는 허탈해져서 웃고 말았다. 한편, 툰드라는 오기가 생겨 버렸다. ‘공녀님의 진정한 반려검이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는 안 된다. 압도적으로 강해야 한다.

그래야 비올라의 옆에 설 수 있는 자격이 있다.

툰드라는 그렇게 생각했고, 다시 한번 더 강해져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툰드라가 검을 갈무리하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 가냐?”

“공작저로 복귀해야지.”

“같이 가자.”

“왜?”

“비올라 보러.”

툰드라가 방어적인 태도로 되물었다. “네가 왜?”

“나는 비올라의 친구잖아.”

툰드라가 검으로 제르미를 가리켰다. “넌 친구.”

그리고 손가락으로 툰드라 자신을 가리켰다. “난 반려. 이해했겠지?”

* * * 공작저로 복귀하는 길.

그사이, 비첸과 퐁퐁이는 말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한두 번 봐야 그러려니 하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말다 툼에 비올라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둘 다 그만!”

비첸과 퐁퐁이는 유치한 말싸움을 이어갔고, 결국 비올라에게 혼이 나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

“……….”

비올라를 가운데 끼고, 비첸과 퐁퐁이는 서로를 등지고 앉아 마차 밖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얼마 후. 둥! 둥! 둥!

북소리와 함께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만 들으면 개선장군의 행진 같았다.

‘이건 또 뭐야?’

군악대였다. 황금으로 치장한 온갖 사람과 수많은 군악대가 비올라를 마중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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