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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할 이야기가 많아 (81/98)

81. 할 이야기가 많아

그녀의 단독 공연은 몹시도 훌륭했다.

많은 움직임이 없어도, 충분히 설명되었다.

움직일 때마다 치맛자락에서 퍼지는 화려한 보석 빛이 황홀했다.

그녀가 회전하면 풍성한 치맛자락이 접시처럼 둥글게 퍼졌다.

온갖 것의 반짝임에 둘러싸여 춤을 추는 그녀는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것만 같았다.

“너무 감동적이었어. 아직도 가슴이 두근두근해.”

정윤은 충격적인 소감을 발표했다.

간신히 드러난 목선, 간간이 손목 정도나 보이던 한복.

그 겹겹이 싸인 한복의 자태에도 순간순간 아찔함이 다녀갔다.

감춘 것에서 오는 은은한 고혹함.

“여태껏 한복이 그런 옷인 줄도 몰랐고, 한국 무용이 그런 건 줄은 더 몰랐

고. 오늘 희원이 때문에 좋은 경험 했네.”

정윤은 감탄에 감탄을 마지않았다.

“잘 봐주셨다니 좋네요. 오늘 관객 호응도 좋아서 진짜 기뻤어요.”

“진짜 박수가 절로 나더라. 호응을 하지 않을 수가 있어야지. 정말 오늘부로 나는 네 팬이야.”

“아, 정말요?”

“응. 난 앞으로 너에게 많이 질척거릴 거고, 많이 귀찮게 할 거야. 난 좋아하면 못 참거든.”

희원은 정윤의 느닷없는 고백에 웃음을 터트렸다.

공연 뒤를 정리하고, 한바탕 정신이 없었다. 

정신없이 사인 세례가 쏟아지고 사진 요청이 쏟아져, 결국 다 해주지 못하

고 돌아서야 했다.

이렇게까지 환대를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고. 희원은 무척 즐거워했다.

“동료분들께도 식사 대접해야 하는데, 먼저 가셔서 좀 아쉬워.”

“그러게. 다들 일이 바빠서 다들 복귀했지. 원래 다 같이 먹으려고 했는데,

사무실에 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

……백인호의 영장이 발부되었다.

구속 수사가 가능해졌다는 통보에 동료들은 일제히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두 분도 사무실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괜히 나 때문에 못 간 거 아니야?”

“우린 내일부터 빡세게 하면 돼. 다들 맡은 업무가 다르니까, 괜찮아 오늘

은. 사실 너무 늦어서 지금은 대기밖에 할 게 없어.”

지환을 대신해서 정윤이 괜찮다고 말하며 희원의 염려를 덜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이동한 장소는 공연장 근처 갈빗집.

그새 그녀를 알아본 사람들이 몇 차례 사진을 찍어달라 요청하고, 그래서 분주했다.

희원은 혼이 쏙 빠진 것처럼 보였다.

지환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잘 익은 고기 한 점을 들었다.

“자, 부인. 아ㅡ 해. 밥은 먹어야지.”

“아아ㅡ.”

희원이 그의 말을 따라 자그만 입술을 벌리자 정윤은 고개를 돌리고 맥주

를 벌컥벌컥 삼켰다.

아아. 서지환 꼴 보기 싫어.

하지만 희원이 맛있게 먹는 건 너무 좋아.

“고기 너무 맛있다. 나 이제 식사 집중!”

내내 자신의 기사와 동영상 링크, 반응을 확인하던 희원이 휴대폰을 내렸다.

비로소 정신없던 자리가 정리되는 것 같아, 지환은 부지런히 희원의 접시

에 고기를 내려주었다.

“나 말고 정윤 언니도 좀 챙겨줘요.”

“뭘 더 챙겨. 쟤 좀 봐. 너 한 점 먹을 때 쟤 네 점씩 먹는데.”

“희원아, 난 신경 쓰지 마. 내 입은 내가 신경 쓴단다.”

앙, 하고 정윤이 고기를 먹는다. 저렇게 말랐는데, 어디로 다 들어가는 걸까.

먹성이 좋기는 정말 좋다.

“서검. 고기 좀 빨리 구워. 불판에 익은 고기가 없잖아. 떨어지지 않게 구우란 말이야.”

“야, 인간적으로 니가 너무 빨리 먹는다는 생각은 안 하냐? 소고기는 앞뒤

만 익으면 먹는 건데, 그게 이렇게 금방 사라지는 건 문제가 있어.”

“말미잘 같은 게 고기도 하나 못 구워?! 내놔! 내가 구워서 내가 먹을 거야!”

어후, 감질나.

정윤은 지환이 들고 있는 집게를 휙, 뺏어갔다.

결국은 이런 식이다. 정윤은 남이 구워주는 고기를 기다리지 못해 늘 자신

이 굽곤 했다.

“아, 이제 맥주 한잔 마시네.”

선뜻, 기쁘게, 정윤에게 집게를 넘겨준 지환은 급하게 맥주 잔을 들었다.

집게를 가져간 정윤은 불판에 집중한 눈매를 선보이며 육즙이 좔좔 흐르는

고기를 맛깔스럽게 구워냈다.

지가 구워 지가 먹겠다더니. 잘 구운 고기 한 점을 희원의 접시에.

“좀 먹어. 그렇게 공연하고 보충해야지. 왜 이렇게 깨작거려?”

“저 열심히 먹고 있는데요, 언니.”

“더 먹어. 이 세상 고기를 다 먹어 치울 것처럼 덤비란 말이야.”

“네.”

그러곤 자기 입에 앙, 고기를 문다.

그러곤 끝이 조금 타버린 고기 한 점을 지환의 접시에 내동댕이쳤다.

“서검, 그거 니 무라.”

“……치졸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윤이 은연중 사투리를 쓰자 지환은 끝이 타버린 고기를 먹으며 현수를 떠올렸다.

짜식, 팔 부러진 거 나으면 술 한잔하자더니 연락도 없고.

바쁜가?

“허어.”

지환은 버릇처럼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 부산한 음성과 행동에 고기를 굽던 정윤이 바라본다.

“뭔데 이렇게 놀라?”

“현수 전화 왔었는데?”

“……하지 마. 이따가 해, 이따가.”

현수? 희원은 낯선 이름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시 후 지환이 다시 휴대폰을 보며 놀란다.

“엇, 다시 전화 온다.”

봐봐. 지환이 휴대폰을 들고 정윤에게 보여준다.

‘남현수’라고 적힌 휴대폰 속 발신자 이름을 확인한 정윤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 밥맛 떨어지게. 걔는 왜 자꾸 전화를 해…….”

“여보세요.”

지환이 전화를 받자 정윤은 입을 꾹 다물었다.

희원이 영문 모르는 눈빛을 하자 정윤은 입만 벙긋거렸다.

“아아, 현수냐? 그래, 나다.”

전, 남, 편.

“나? 와이프 오늘 공연 있어서 그거 끝나고 저녁 먹으려고 왔지. 넌 어디냐?”

아아…… 언니 전 남편분이요?

응. 내 전남편. 말미잘 동생 말미잘.

“아? 그래? 여기 가깝네? 밥 먹었냐?”

ㅡ먹었겠습니까, 아직 식전입니다. 형님은 어디십니까?

지환은 정윤을 바라보았다. 

대화의 흐름이 ‘이리 올래?’로 흘러가는 것을 느낀 정윤은 눈을 내리깔고

짐짓 모르는 척 고기만 구워댔다.

희원은 불판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정윤을 바라보았다.

저, 언니.

응? 나? 나 왜?

“현수야, 여기 공연장 사거리 큰 고깃집. 그럼 이리 올래?”

ㅡ아, 제가 지금 가도 됩니까? 형수님 뵙고 싶긴 한데. 인사도 드릴 겸.

언니, 고기 다 타요…….

아…… 아! 고기 탄다! 미안!

“와도 돼. 와도 되는데, 현수야. 여기 차검도 있어.”

ㅡ…….

현수가 당황했는지 말이 없다.

빤한 반응을 느꼈는지 정윤은 입술을 댓발 내밀었다.

야, 서검. 나도 싫다고 전해줘! 이게 진짜 웃기네!

ㅡ갑니다. 오 분 정도 걸리겠네요. 지금 신호 걸려서.

“아아, 그래. 와라. 고기 더 시켜놓을게.”

지환은 전화를 끊었다.

희원과 정윤을 힐끔 바라본 지환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겠지? 하는 표정을지었다.

“온댄다. 뭐, 차검, 괜찮지?”

“나? 나 완전 괜찮지. 나는 정말 완전 퍼펙트하게 괜찮지. 걔가 뭐라고 내가 안 괜찮아?”

“아아. 그럼 됐다. 고기를 좀 더 시켜야겠다.”

지환은 희원에게 간략하게 현수를 설명했다.

희원은 어쩐지 반가운 인물일 것 같아 기대에 찬 눈빛을 했다.

정윤이 완강하게 거부하지 않았음을, 희원도 느낀 거다.

“그럼 일단 먹던 고기를 더 시키…….”

“야, 서검. 고기 내가 시킬게. 메뉴판 줘봐.”

정윤은 느닷없이 메뉴판을 가져가 훑더니, 벨을 눌렀다. 

“우리 갈빗살 그만 먹을게요. 한우 생갈비 주세요. 불도 다시 갈아주고, 불판도 갈아주고.”

“아, 몇인 분이나…….”

“먹다 지쳐 그만 시킬 때까지 끊이지 않게 주세요. 고기 먹는 하마가 한 마

리 올 거니까 시작부터 넉넉하게 주세요.”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직원은 사라졌다. 정윤은 바싹 타버린 고기를 우르르르, 지환의 앞 접시에 덜었다.

그러곤 멍청하게 웃었다.

“고기가 다 탔어. 먹어, 서검.”

“아오…….”

“희원아, 우린 생갈비 오면 생갈비 먹자. 언니가 사줄게.”

지환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잠시 후, 현수가 도착했다. 

*

“와, 좋은 거 드시고 계셨네요. 한우 생갈비라니.”

희원을 향해 깍듯하게 인사를 한 현수는 자리에 앉았다.

정윤에게 대충 ‘왔다.’라고 인사를 했다.

“야, 한우 생갈비는 나도 지금 처음 영접하는 거야. 너 온다니까 차검…….”

으어어어어. 지환은 말꼬리를 흐리며 묵직한 신음을 터트렸다.

정윤의 뾰족한 하이힐 굽이 발가락을 내리찍은 것이다.

“예? 형님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야…… 너나 많이 먹어…….”

우린 호주산 먹고 있었지만…… 넌…… 한우 먹어…….

지이이이익ㅡ 불판에 한우 생갈비가 들어오자 남다른 때깔을 자랑한다.

네 사람은 뭐에 홀린 듯 불판을 내려다보았다.

아아, 방금 전까지 고기 먹었는데, 격하게 고기가 당긴다. 한우니까.

“여긴 어쩐 일?”

고기를 구우며 정윤이 툭, 묻자 현수는 생갈비에 영혼을 판 듯한 얼굴을 하며 답했다.

“공연장 근처 소매치기 단속 나왔다가, 형수님 공연하셨다는 거 보고, 형님께 전화했지.”

아, 근데 이거 일 인분에 얼마입니까?

현수는 한우 생갈비에 영혼을 팔아넘긴 것이 분명했다.

“현수야, 먹기 전에 가격은 보지 마. 목구멍으로 안 넘어갈지도 몰라.”

지환은 사악한 가격을 사전 경고했다.

정윤은 먹기 좋게 잘랐고, 불판 위에 고기를 휘적거렸다. 

“먹어, 빨리. 이건 먹는 사람이 임자야. 눈치 보지 말고 먹어.”

……은연중 불판 위 고기를 현수가 앉아 있는 방향으로 밀어주는 것 같은

건, 느낌 탓이겠지?

“그럼 일단 먹겠습니다. 출출하네요.”

“많이 드세요.”

“예, 형수님. 형수님도 드십시오.”

현수는 젓가락을 들었다.

정윤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굽지 않은 고기를 더 들었다.

그녀는 전남편의 먹성을 알고 있었다.

“여기! 고기 더 빨리 줘요!”

그는 잘 먹고, 많이 먹고, 그래서 좋았다.

옛날 옛적의 일이긴 하지만.

*

“와, 배가 터지것다. 정신없이 먹었네.”

얼마나 거침없이 먹었을까.

현수는 뒤로 등을 기대며 더는 못 먹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지환은 얼빠진 표정으로 현수를 바라보았다.

“사람 맞냐? 그게 다 들어가?”

“매 현장에서 컵라면만 먹고 샌드위치나 먹다가 오랜만에 기름칠하니 미친

듯이 들어가네요.”

어우, 잘 먹었다.

현수가 중얼거리자 정윤은 새침하게 눈매를 내리깔고는 입을 열었다.

“조금 더 먹지그래? 많이 죽었네, 남현수?”

“야야, 나도 사람이다. 거의 혼자 다 먹었는데 뭘 더 먹노. 그리고 나도 전

같지 않다. 많이 못 먹는다.”

“이게…… 많이 죽은 거냐……?”

허우. 지환은 혀를 내둘렀다.

“진짜 잘 드시네요. 보기 좋아요.”

희원도 현수의 먹성에 적잖이 놀랐는지 웃었다.

그가 더 못 먹어 안타까운 건, 정윤뿐인 것 같았다.

“니는 좀 먹었나?”

“허, 빨리도 물어본다.”

현수가 정윤에게 묻자 정윤은 허,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지가 언제부터 날 챙겼다고.

“원래 고기 굽는 사람이 제일 많이 먹어. 신경 끄셔. 배 터져 죽겠으니까.”

“아아, 맞나. 그럼 됐고.”

현수는 물을 시원하게 마시고 잔을 내렸다.

지환은 기다렸다는 듯 녀석의 잔에 술을 채웠다. 

“야야, 이제 한잔해.”

“어우, 좋죠. 형수님, 제가 한잔 드리겠습니다.”

현수는 두 손으로 희원에게 술을 따랐다.

슬금, 정윤의 잔이 비었다는 것을 보고 술병을 흔들었다.

“니, 마시나.”

“줘야 마시지. 없는데 뭘 마셔.”

“받아봐라, 그럼.”

정윤이 턱을 괴고 다른 쪽으로 시선을 주며 잔만 들어 보이자 현수도 편안

하게 한 손으로 그녀의 잔을 채웠다.

희원에게 술을 따를 때와는 사뭇 다른 현수의 행동.

지환은 그런 녀석을 바라보다가, 희원의 귓가로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조금만 있다가, 우린 먼저 나가자.”

응. 알았어. 희원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자 지환은 그녀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사람 넷이 모였는데 둘이 귓속말하면, 남은 둘은 어쩌라는 거야?”

정윤이 지환을 바라보며 눈꼬리를 사납게 치켜 올린다.

“서러우면 니들 둘이서 귓속말해.”

지환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자 정윤과 현수, 둘 다 정색한다.

“형님, 농담이라도 그렇게 끔찍한 소리는 하지 마십쇼.”

“야! 내가 할 소리를 니가 왜 해?! 이게 진짜! 누가 너한테 귓속말하고 싶대?!”

불같은 화를 내더니, 정윤이 희원의 방향으로 어깨를 기울인다.

본능적으로 어깨를 내리며 희원이 귀를 내어주자 정윤은 그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아니. 사실은 너무 커서 다 들렸다.

“희원아, 나 쟤네 둘 다 싫어.”

“그냥 우리한테 말해. 애꿎은 우리 부인 고막 괴롭히지 말고.”

흥. 지환이 코웃음을 치며 현수와 건배를 하며 술을 마시자 정윤은 희원과

건배를 했다.

“희원아, 저런 말미잘이랑 살지 마. 니가 너무 아까워. 이혼해.”

풉ㅡ! 술을 마시던 지환이 뿜는다.

“야! 너 진짜! 말 함부로 한다! 우린 이혼 사유가 없어, 사유가!”

“왜 없어? 재판상 이혼원인 제840조, 6항.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한 사유가 있을 때. 가능하지.”

“그 중한 사유가 없다고.”

“왜 없어? 넌 말미잘인데.”

정윤은 희원의 어깨를 가볍게 둘렀다.

예쁜 동생 머리를 어루만지듯이 마구 쓰다듬으니 희원은 얌전히 정윤의 품에 꼭 안겼다.

“나 이 언니 너무 좋아.”

“희원아, 이혼해. 언니랑 같이 살자. 언니가 매일 삼시 세끼 소갈비 먹여줄게.”

“아아아…… 이거 너무 매력적인 제안인데요.”

“부이이이이인!”

정윤과 희원이 꼭 끌어안자 지환은 두 눈을 부릅떴다.

현수는 아직도 저러고 논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묘하게 어울리는, 네 사람이었다.

*

“두 분 왜 헤어진 거래요? 서지환 씨는 알아? 이런 거 물어봐도 될까?”

적당한 타이밍을 봐서, 적당한 핑계를 대고, 지환은 희원의 손을 잡으며 일어섰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생갈비 값까지 치르고 나오니 또다시 밥값은 빚이

되었지만 누굴 탓하겠나, 이게 다 내 탓이다.

지환은 더욱 열심히 일하리라 다짐하며 희원을 바라보았다. 

“나만 느낀 거야? 두 사람 묘하게 서로 잘 챙겨주던데. 서로 툴툴거리긴 하

지만 그게 본심은 아닌 것 같고.”

부인께선 현수와 정윤의 과거가 내심 궁금한 모양이다.

이를 갈며 헤어진 것처럼은 보이지 않아서, 당연히 궁금했을 거다.

“사실 나도 잘은 몰라. 어느 날 툭, 하고 차검한테 통보받았거든.”

“아…… 그래요?”

서검. 나 이혼해.

“시작부터 시끄럽긴 했어. 두 사람 잘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는 했는데

뭐, 그렇게 됐지.”

그냥,

그렇게 됐어.

“아…… 그렇구나.”

희원은 중얼거리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씻고 나와 아일랜드 식탁 앞에 서서 와인을 한잔

더 하고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오면 언제나 녹초가 되던 그녀였지만, 오늘은 더욱 힘이 차

오르는 것 같았다.

아아.

소고기란 이런 존재였나.

“두 사람 소개해준 게 서지환 씨라며. 마음이 좀 그랬겠다.”

“뭐? 누가 그래. 내가 소개해줬다고?”

지환은 생기가 감도는 희원의 얼굴을 반하듯 바라보다가 금세 정색했다.

희원은 와인을 홀짝 거리다가 시선을 들었다.

“정윤 언니가 그러던데? 서지환 씨가 소개해줬다고?”

“허. 어이가 없네. 소개해달라고 지가 나를 졸라놓고. 내가 무슨?”

에? 정말? 

희원이 몰랐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자 지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첫눈에 반한 상대를 만났다는 둥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는 둥. 하도 졸라대

서 식사 자리 한 번 마련해준 게 다야.”

“아아, 그랬군요.”

전말을 알았다는 듯 희원이 웃자 지환은 그녀가 들고 있는 와인잔에 자신

의 잔을 가볍게 가져다 대었다.

쨍ㅡ 영롱한 소리가 순식간에 공간을 가르고 사라진다.

“오늘 진짜 멋있더라, 당신.”

“뭘 또 새삼스레. 와줘서 고마워요.”

“진짜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부인만 쳐다보고, 우리 부인한테 박수치고, 감동받고.”

……그녀에게 시선을 주다가, 지환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는 숨을 죽인 채 물처럼 흐르는 공연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들이 각자 지닌 표정만 보아도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공연인지, 알 수 있었다. 

“자랑스럽습니다, 부인.”

“저도 성황리에 공연 마무리할 수 있어서, 기뻐요. 그리고 서지환 씨에게 고맙고요.”

지환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아일랜드 테이블을 돌아 나왔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가 빙긋 웃으며 와인을 마신다.

아일랜드 식탁을 등지고 서서, 그녀는 팔꿈치로 아일랜드 식탁에 기댄 채

비스듬히 상체를 기울였다.

와인을 홀짝거리며 바라보는데 묘하게 섹시하다.

“우리 부인, 원래 이렇게 섹시했나?”

“내가 뭘? 내가 뭘 어쨌는데?”

“바라만 봐도 섹시하네.”

“쳇, 언제는 삵이라더니? 내가 그날 이후로 삵을 얼마나 많이 검색했는 줄알아?”

아아, 삵.

홀짝. 그녀가 와인을 마시며 시선을 준다. 

지환은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섬세한 손길로 그녀의 턱을 잡았다.

입술이 내려온다는 것을 알아챈 그녀가 자세 그대로 굳은 채 눈을 감는다.

지환은 무대 위에서 빛이 나던 무용수 권희원이 아닌, 한 침대를 쓰는 부인

권희원을 만난 것에 약간은 안도했다.

“무대 위에 있는 너는 너무 멀고 아찔해. 가끔 내가 불안할 만큼.”

잠시 입술을 떼며 그가 말하자, 희원은 그의 입술로 자신의 입술을 먼저 가

져다 대며 속삭였다.

“서지환 씨는 한시도 긴장 풀지 마. 난 당신의 불안함이 좋으니까.”

처음보다 뜨거운 입맞춤이 다녀간다.

적당한 긴장감과 호흡을 나누는 완벽한 부부가 되어가는 중, 서로는 생각했다.

“내가 살다가 정신줄 놓고 미치거든 너 때문에 가슴 졸여서 그런 줄 알면돼.”

……사랑하는 게, 사랑받는 게 제일 쉬웠던 어린 나이를 지나간다. 

둘은 곧 하나라는 억지 같은 공식을, 우리는 직접 경험으로 깨달아간다.

“미쳐도 안아줄게. 도망 안 가고 안아줄게, 걱정 마요.”

순간이 지겨워 고개를 돌려도 등은 돌리지 말아요.

결국 내가 살아야 하는 모든 이유가, 당신에게 있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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