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 오세요 민호문방구-9화 (9/151)

#9. 가족

전쟁 같은 아침이 지났다.

두 형제는 저녁에 또 온다는 살벌한 예고를 남기고 떠났다. 큰 짐 두 개가 떠나자 비로소 다시 조용한 시골 마을다운 모습이 되었다.

일단은 잠이다. 할 일이 이것저것 떠올랐지만, 도저히 졸려서 견딜 수가 없다.

방문을 열고 얼른 이불 속에 몸을 집어넣었다. 샤워고 나발이고 일단 이렇게 한 숨…….

“야옹!”

뭐, 뭐야?

이불에 먼저 들어온 손님이 있다.

“넌 어제 박스에 있던!”

그놈이다. 상진이를 기절하게 만든 그 고양이. 나도 하마터면 같은 꼴을 당할 뻔했었지.

미니카 트랙을 보려고 허겁지겁 나온 형제 둘 중 한 명의 꼬리가 길었던 모양이다.

“미안하지만 이거 엄연한 주거침입이다.”

밖으로 내보내려 안아 올렸더니 발톱으로 이불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아무리 털어도 얼마나 꽉 잡고 있는지 하나뿐인 겨울 이불에서 찌직찌직 무언가 찢기는 소리가 들렸다.

“너도 손님이라 이거냐?”

포기하고 다시 바닥에 놓으니 슬며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는 녀석의 능청스러움이 어이가 없다.

세상 편안하게 잠이 든 녀석을 보고 있자니 측은지심이 들기도 했다. 밤마다 그 춥고 어두운 창고 박스 안에서 잠을 잤을 녀석이다.

어차피 혼자 사는 집. 이 작은 고양이 한 마리 재워줄 공간이 없는 것도 아니다.

키울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동물을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머리를 쓰다듬자 그릉그릉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내는 이 고양이가 제법 귀엽다.

몇 번 쓰다듬지도 않았는데 손에 새까만 때가 묻어 나온다. 이놈, 생각보다 더럽다.

“너, 씻어야겠다. 아니, 병원부터 가자.”

나는 곧장 고양이를 안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동물병원은 시내로 가야 한다. 오가는 데만 차로 30분이 넘는 거리. 잠이 몰려오기 전에 후다닥 끝내버리고 싶었다. 겸사겸사 집에서 먹을 장도 봐야 하고 말이다.

다행히 고양이는 내 오래된 경차의 소음과 진동에도 편안하게 누워 눈을 감았다. 다있어에서 샀던 빨래바구니 속에 겨울옷을 채워 급조한 고양이 집은 안전벨트로 단단히 고정했다.

“자, 가자!”

마음이 급했다. 밖에서 할 일만 정하고 동선은 고려하지 않았다. 정리를 해보자. 우선 고양이를 병원에 맡기고 장을 본 뒤에 찾으러 오면 되겠네.

핸들을 꺾고 조심스럽게 엑셀을 밟았다. 거친 시골길에 고양이가 놀랄까 싶어 차는 거의 기어가듯 움직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대형마트에 붙어 있는 동물병원이다.

생생동물병원.

뭐 우동이라도 좋아하나? 네이밍 센스가 조금 걸리지만 할 수 없다. 마트에 붙은 동물병원은 여기가 가장 가까웠으니까.

“실례합니다.”

“네, 어떻게 오셨나요?”

“고양이를 키우려고 하는데 혹시 병이라도 있는지 검사가 가능할까요?”

“네, 혹시 예약하셨나요?”

“아뇨. 다음에 와야 하나요?”

아뿔싸. 예약제로 운영하는 줄 꿈에도 몰랐다.

“그냥 들어 오시라 그래!”

진료실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는지 수의사가 크게 외쳤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빨래바구니를 안은 채 어정쩡하게 들어간 진료실에는 젊은 여자 수의사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아이 좀 볼 수 있을까요?”

“아, 네.”

옷 사이에 자고 있던 고양이가 내 손에 들려 책상 위에 올려졌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처음 보는 사람 앞인데도 긴장한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순하네요. 길고양이인가요?”

“네, 저희 집 창고에 지내고 있길래 집에 들여서 키우려고요.”

“어머! 몇 살이죠?”

“서른다섯 살입니다.”

“풉! 고양이요.”

젠장. 동문서답을 했다. 쪽팔리게.

“아, 거기까진 잘 모릅니다.”

“고양이는 키우신 적 있나요?”

“아뇨.”

“고양이는 그냥 쉽게 기른다고 결정하시는 게 아니에요. 공부를 많이 하셔야 해요. 우선 사료는 건식과 습식이 있는데…….”

무언가 시작되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설명은 처음 몇 마디를 제외하고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호호호. 말이 좀 길었죠? 다 잊어버리실 것 같으니 적어 드릴게요.”

내 표정을 읽은 수의사는 그렇게 A4용지에 빼곡히 무언가를 적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도 놓친 내용은 저 종이를 보면 되니 한시름 덜었다.

설명을 대충 들어도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자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선반에는 고양이 인형, 고양이 마우스패드, 그리고 벽에는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 사진이 여러 장 붙어 있다.

이른바 애묘인인가 하는 건가? 병원 이름은 이상하지만, 꽤 괜찮은 선택이다.

“어디 보자……. 관절도 괜찮은 것 같고 빈대나 벼룩도 없네요.”

“그럼 건강한 건가요?”

“자세한 건 피검사랑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해요. 밖에 살던 아이라 아픈 티를 잘 안 내거든요. 심장사상충 약이랑 예방접종도 해야 하고요.”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한두 시간 정도 걸릴 텐데 기다리시겠어요?”

“아뇨. 잠깐 다녀올 데가 있어서요.”

무언가 이런저런 검사가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왕 가족으로 들이기로 한 이상 어딘가 아프다면 당연히 치료해야 한다. 가족이 되었으니.

다행히 장을 볼 시간은 넉넉하게 확보했지만, 괜스레 고양이를 맡기고 왔다는 불안감에 막상 마트에서는 쌀과 군만두 같은 냉동식품만 가득 담아와 버렸다.

“검사 결과는 별다른 이상이 없네요. 건강해요. 그런데 고양이 이름이……?”

아! 이름도 짓지 않았다.

“누렁입니다.”

“네?”

“누렁이.”

“방금 생각했죠? 그래도 코코나 모모, 하다못해 나비로 지어도…….”

“누렁이로 해주세요.”

자고로 이름은 촌스러워야 건강하고 오래 산다. 시골 마을 고양이 이름은 누렁이로 아주 바람직했다. 수의사는 한숨을 크게 쉬더니 컴퓨터에 무언가 입력했다.

“감사합니다. 아 참, 혹시 사료랑 필요한 물건 좀 살 수 있을까요?”

“호호호. 당연하죠!”

마트에도 고양이 물품이 있었다. 하지만 용도도 알지 못하는 것들을 무턱대고 살 순 없었다.

수의사는 또 한 번 눈을 반짝이더니 대기실로 나와 진열장에 있던 물건들을 이것저것 손으로 가리켰다.

간호사와 수의사 모두 키가 작은 편이라 손수 꺼내는 건 내 몫이었다.

사료 한 포대, 모래와 화장실, 이동장에 잡다한 물품들이 접수대에 가득 올려졌다.

“네, 637,000원입니다.”

“아니, 제가 병원을 사겠다는 게 아니고…….”

“푸흡!”

“진짜 63만 원이에요?”

“그래도 길에 사는 애를 직접 기르신다고 하셔서 많이 할인해 드린 거랍니다. 예방접종 부작용이 나올 수 있으니 다음 주 중에 한 번 더 방문해 주세요.”

이것도 싸게 준 거라니! 밑지고 장사한다는 말을 달고 사는 영업부 부장들에게서나 들을 법한 말이다.

어찌 되었든 결론은 고양이는 의료보험이 안 된다.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다. 갑자기 이동장에서 느긋하게 자는 이 녀석이 갑자기 미워진다.

* * *

“쌤~”

민호가 6개월 할부로 누렁이의 병원비를 결제하고 나가자마자 물품을 정리하던 간호사가 접수대에 있던 수의사를 장난스럽게 불렀다. 눈은 벌써 게슴츠레한 초승달이다.

“그런 거 아니야.”

간호사가 무슨 의도로 자신을 부르는지 눈치챈 수의사는 의혹을 부인했다.

“서른다섯이래요. 궁합도 안 보는 4살 차이.”

“그런 거 아니래도!”

“그러면 왜 다음 주에 또 오라고 하셨어요~”

“야!”

“우리 연락처로 까톡 프로필만 한번 검색해 봐요! 혹시 미혼일 수도 있잖아요?”

“그거 불법이야.”

“에이, 검색만요~”

“그럼 딱 한 번만이야.”

도대체 두 번 검색할 일이 또 있나 싶은 간호사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렇게 고민 끝에 검색을 누른 까톡 화면에는 형광색 등산복을 입고 월롱산이라 새겨진 비석 앞에서 찍은 민호의 사진 한 장이 튀어나왔다.

누가 보더라도 아저씨 그 자체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사진에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

“결혼… 했겠는데요?”

“일해. 오늘 수술실이랑 미용실 대청소할 거야.”

“아, 쌤!”

이따금 입을 잘못 놀려 화를 입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 팔자에도 없는 대청소를 하게 된 간호사도 그중 하나였다.

* * *

“이쪽이 이번 사우디 쇼핑센터 관련 자료들이고 이쪽은 그동안 수주했던 비슷한 규모의 사업들입니다.”

“누가 준비했어요?”

“조철진 상무입니다.”

‘속없긴. 자리까지 동생한테 홀라당 뺏기고도 이걸 그냥 넘겨? ’

족히 두세 달은 걸렸을 방대한 자료. 입찰금액별 세세한 분류명세와 조감도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무식하고 직선적인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자료들이었다. 수주 실패는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그리고 그 자료들은 폐기하지 않고 고스란히 테이블에 쌓아두었다. 이 성과가 경영권 경쟁을 하는 자신에게 더할 나위 없이 유리한 무기가 될 줄 알면서도 말이다.

‘깔끔한 솜씨네. 임 차장과 밑에 직원들 작품인가?’

맨 위에 있는 서류부터 한 뭉텅이 집어 들어 한 장씩 넘겨보던 상진은 자료들이 그저 방대하기만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자재비와 조달 계획부터 인력 수급 등등. 하나라도 필요하지 않은 서류가 없었다.

만약 이대로 수주에 성공하더라도 자신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착공부터 준공까지 사인 몇 개만 하면 될 정도였다.

“부럽네.”

“네?”

“실무 능력은 하나도 없는데 이렇게 유능한 직원들이 죽자고 따라다니는 거 말이야.”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요, 처세술이 능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 증거로 삼정건설의 이사진들은 절반이 아버지 사람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형이 아닌 자신에게 줄을 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차기 임원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저 유능한 직원들이 모두 형을 따르고 있다. 좌천으로 회장직에서 멀어졌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상진의 주위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계열사에서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둔 엘리트만 모았다. 하지만 이들은 진정으로 상진을 따르지 않는다. 직급과 연차 대비 후한 연봉과 상여금을 주는데도 그들이 상진을 대하는 모습에는 깍듯한 예의와 시킨 일에 대한 결과만 있었다.

“저 무식한 인간이 어디가 좋다고.”

상진은 코트 주머니에서 미니카를 꺼냈다.

피식.

이탈리아 수제작 명품코트에서 나올 법한 물건이 아니었기에 상진은 저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술기운에 형을 따라나선 게 화근이었다.

서른 가까운 나이에 고작 고양이 때문에 기절하고 바지에 오줌까지 지렸다. 아마 인생을 살아오면서 쪽팔린 순위를 나열하면 부동의 1위를 장식할 일이다.

촌구석 문방구에서 오줌을 지리고 기절해 응급실이라도 실려 갔다면 비서진을 통해 분명 아버지의 귀까지 들어갔을 참사였다.

하지만 형이 막아주었다.

이 미니카를 곰 같은 손으로 만들어 주고서 치부까지 덮어둔 이유가 궁금했다.

‘빚이라도 만들어 둘 셈인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나?’

딸칵딸칵.

머릿속이 복잡할 때 나오는 상진의 버릇이 규칙적인 소음을 만들었다. 지포 라이터 대신 건전지가 다 된 미니카의 온오프 버튼 소리다.

그러다 문득 어제 봤던 만화영화가 떠올랐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위기의 순간에 승부 대신 손을 내밀어 준 형 덕분에 험준한 트랙을 극복하는 스토리였다.

“결국, 회사를 두고 싸워도 가족이라 그런가? 이 나이에 끈끈한 형제애 따위가 생길 것도 아닌데 말이야.”

“전무님, 검토 작업은 마무리됐습니다.”

“수고했어요. 퇴근합시다.”

건조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상진은 몇 발짝 가지 못하고 다시 멈춰 섰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 이렇게 곧장 갈 이유가 없었다.

상진은 폰을 열고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

「문방구 갈 거지? 이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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