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찬탈자(2)
까마득한 어린 시절, 또래 중 누군가 물었던 적이 있다. 어떻게 하면 그런 기술을 쓸 수 있느냐고 말이다.
나는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봉황에게 어찌하면 하늘을 날 수 있느냐고 묻는 것과 같았다.
봉황은 알려주지 못한다.
그저 그 장대하고 화려한 날개를 천천히 펄럭이기만 해도 태산보다 높게 날아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딱지치기는 나에게 그런 놀이였다.
천부적인 재능. 고작 딱지치기지만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재능이 있는 줄 착각하고 저들과는 태생이 다르다 여겼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머지않아 깨닫게 되었다. 나 또한 저들과 같은 범인이라는 사실을. 내가 가진 크고 화려한 날개는 인고의 시간이 벼려낸 결과물이었다.
그 순간이 즐거웠기에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여긴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 마주한 벽은 내가 동경하던 골목대장 형도 넘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
더 이상 딱지치기는 즐겁지 않았다. 매일 해가 지고 손이 퉁퉁 부어오를 정도로 연습했다. 머리를 헝클어주던 형의 슬픈 미소는 어린 나에게 투지와 집념을 심어주었다.
발대기 없는 칼치기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쎄에엑.
딱지에 스냅을 주는 내 손에서 나는 소리는 찰나였으나 모두의 귀에 선명히 박혔다.
가가가각. 뚝.
칼치기로 밀어내듯 들어간 내 딱지는 그대로 상진이의 딱지를 천천히 뒤집었다. 마치 딱지를 손으로 집어 뒤집듯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넘긴다.
이것이 내가 내놓은 답이었다. 아무도 들어서지 못했던 영역. 그 공간에서는 오직 나만이 딱지를 지배할 수 있다. 넘기지 못할 딱지는 감히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오만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한 번.”
“어?”
놀라는 게 당연하다. 칼치기조차 처음 본 녀석들이다. 하물며 발대기가 없는 칼치기다.
“혀, 형! 잠시만요!”
“알려줄까? 잘 봐.”
우선 바닥을 가만히 손으로 쓸어냈다. 마찰력의 정도를 확인해야 했다. 경마에도 더트장과 잔디장이 있듯이 딱지도 시멘트 바닥과 일반 모래 바닥이 다르다. 특히 이 기술은 딱지가 멈추는 지점이 가장 중요하다.
그 뒤에 검지를 딱지 아래 넣고 양 끝을 엄지와 중지로 눌러 아치형이 되도록 잡는다. 그리고 땅의 마찰 때문에 딱지가 멈추는 그 자리까지 힘을 줘서 밀어 넣는다.
딱지가 멈추면 아치형으로 된 불룩한 중앙 부분이 들린다. 그리고 그 위에 올라탄 딱지는 높은 각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당연히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쉽게 흉내 내지 못한다. 기형적으로 휜 딱지가 파고들 각도는 한정적이다. 일반 칼치기처럼 그냥 지면에 대고 쏘아대듯 던지면 딱지는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데굴데굴 굴러버린다.
툭.
“두 번.”
승부는 허무하리만큼 깔끔한 역전승이었다. 하지만 왕좌를 지켰다는 안도감과 기쁨은 없었다.
과하게 오른 취기가 내려가자 그때 내 머리를 헝클던 형의 슬픈 미소가 떠올라서였다.
“전략은 좋았어. 하지만 기억해야 해. 압도적인 차이가 나면 그 아래서 쓰는 잔기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말이야. 그 차이를 만드는 건 결국 너 자신이야. 형 먼저 씻는다.”
“압도적인 차이…….”
나는 멍하니 바닥을 보고 있는 상진이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었다.
“으, 취한다.”
“야옹!”
“아! 미안미안.”
어느새 방문을 여는 법을 터득했는지 문방구 앞까지 나와 있던 누렁이가 내 옷 냄새를 킁킁대며 맡더니 짜증 섞인 울음을 내었다.
혼자 먹고 왔냐는 뜻이다.
술까지 마시는 바람에 누렁이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남은 고기 조금 구워줄게. 어차피 저기서 구운 건 소금이랑 후추가 많이 들어가서 못 먹는 거야. 깡패가 따로 없네.”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누렁이는 어서 고기를 내놓으라 연신 내 발목을 앞발로 때려댔다.
그렇게 잘 익은 고기 한 그릇을 바치고서야 나는 고기 냄새에 찌든 몸을 씻을 수 있었다.
남자의 샤워는 10분.
뜨끈한 아랫목에 몸을 지질 생각에 얼른 옷을 갈아입고 나온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 해? 아직 치고 있어?”
“형.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보여줬잖아. 힘 조절이랑 각도가 중요한 거야. 나머진 연습해야지.”
의외로 먼저 물어본 사람은 철진이었다. 상진이는 패배의 충격이 컸는지 아직 멍하니 평상에 앉아 있었다.
뭐라 더 알려주기엔 몸이 너무 피곤했다.
아랫목에 누워 두꺼운 이불을 덮으니 어느새 스르르 눈이 감긴다. 밖에서 들리는 딱지 소리는 나른한 자장가처럼 귓가를 간질였다.
* * *
“으으으으.”
아침이다. 지옥 같은.
막걸리의 숙취는 상상을 초월했다. 잠이 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뒤에 따라오는 숙취는 나를 포함한 두 사람의 속과 머리를 뒤집어놨다.
응? 두 사람?
“야. 상진이 어디 갔어?”
“기억 안 나? 아까 꼭두새벽부터 갈 데 있다고 먼저 나갔잖아. 인사도 받아주더구먼.”
“역시 젊음이 좋네. 아이고. 머리가 깨진다.”
“형. 뭐 해장할 거 없어? 컵라면이라도.”
“주방 찬장에 보면 컵라면 하나 있어. 좀 끓여와. 나도 그거 국물 좀 마시자.”
철진이 쓰린 배를 부여잡고 주방으로 가더니 시간이 한참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형. 없는데? 어? 이거 맞아?”
철진이가 방으로 가져온 빈 컵라면 그릇이 정신을 아득하게 흔들어 놨다.
“맞아. 상진이 이놈 저 혼자 살겠다고…….”
칼칼한 국물 한 모금이 간절한 이 순간에 하나 남은 컵라면이 누구 배에 들어갔는지 알게 되자 절망감이 몰려왔다. 화를 낼 기력조차 없었다.
“가서 좀 사와. 편의점 알지?”
“나 지금 운전대 잡으면 토할 거 같아.”
“그럼 지환이가 좀 사와.”
“…….”
“야. 너 지금 자는 척하지?”
* * *
“웬일이고? 연락도 없이 아침 댓바람부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앉아 보그라.”
아들이 자신을 먼저 찾아온 적은 드문 일이었다. 보고를 받을 일이 생기면 비서실을 통해 두 아들보다 먼저 소식이 들려왔다. 두 아들도 그걸 알기에 대부분 자신이 부르기 전에는 이 집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래, 무슨 일이고?”
“이번 사우디 건 때문입니다.”
“와? 인자 와서 니 잘못이 아니다 그거가?”
갑자기 찾아온 아들이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자 공기가 얼어붙었다.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왔습니다.”
“이미 수주는 롯지건설이 들고 가뿌꼬 지금 계산기 두들기 가매 설계 들어갔을 텐데 무슨 도움이 필요하단 말이고?”
“계약은 무효로 돌아갈 겁니다.”
“이봐라. 상도가 있어서 끝난 계약을 지저분하게 물지 말라는 기 아이다. 그래가 계약이 파기되모, 그 발주가 우리한테 떨어질 줄 아나? 니 한번 생각해 보그라. 니 같으믄 그런 아한테 일 맡기고 싶겠나? 끝난 계약도 무효로 돌리자 카는 아한테 말이다! 그것도 8천억짜리를! 몬난 놈.”
조동욱 회장은 속이 탔는지 아직 김이 올라오는 차를 단번에 들이켰다.
“일마 이거, 똑똑한 줄 알았디마 완전 헛공부했고마.”
“차이…….”
“뭐라꼬?”
“압도적인 차이를 보여주면 됩니다. 지저분한 물어뜯기가 아니라. 쇼핑센터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비전을요.”
상진은 바닥에 내려두었던 커다란 종이를 책상 위에 펼쳤다.
그 종이에는 두바이의 높은 마천루를 한 번에 담은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아버지가 저와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적어도 삼정그룹의 회장이라면 테이블에 앉아는 줄 테니까요.”
“허허…….”
허무맹랑한 소리다. 도시 하나를 새로 만드는 일을 권유하겠다는 말을 젊은 아들의 치기 어린 허풍으로 여기기에는 그 자리가 무겁다.
“이보소. 삼정건설 사업총괄부 본부장 조상진 전무님.”
조동욱 회장은 나지막이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고 찬 공기를 들였다.
“내부 회의도 없었을 끼고, 타당성 검토 자료도 없고, 보고 체계도 무시해뿌고, 회사가 니 안방쯤 돼 비드나?”
비수 같은 말이었다. 조곤조곤 내뱉은 아버지의 말은 일말의 용기를 모두 앗아가 버렸다.
‘내가 왜 그랬지? 사진 하나 달랑 들고 여길 오면 아버지가 허락할 줄 알았던 건가?’
귀신에 홀린 것만 같았다.
평소라면 철저하게 조사하고 같은 목소리를 낼 임원진까지 대동해서 왔을 터. 아니, 자신이 일선에 나설 필요도 없었다. 운만 띄우더라도 그 내용은 금방 아버지의 귀에 들어갈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너무도 경솔했다.
‘왜지?’
“할 말 끝났으믄 가그라. 내는 잠이나 더 잘란다.”
‘확신이야. 민호 형처럼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이 있어서였어.’
“수능 성적 전국 2위. 서울대 경영학과도 수석 졸업…….”
상진은 사진을 들고 아버지의 곁으로 가 다시 펼쳐 들었다.
“아버지. 저는 그렇게 머리가 나쁜 아들이 아닙니다.”
“카모! 와 철진이나 할 법한 짓을 하는 기고? 씨알도 안 맥힐 줄 알믄서!”
“이런 제가 홀린 듯 아무 준비 없이 들고 오게 만든 사업입니다.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죠? 돈 될 일이 아니면 벌이지도 말라고요. 지금, 이 사업이 돈 될 일이 아닙니까? 그냥 철없는 아들의 객기로 보이면 아버지는 늙어서 눈이 어두워진 겁니다! 쇼핑센터는 몇 개라도 더 가져가라 하죠. 우리는 그 쇼핑센터가 들어갈 도시를 제안할 겁니다. 아버지가 가지 않으시면 저 혼자라도 가겠습니다.”
“못 따믄? 이래 벌려놓고 못 따믄 말이다. 혼자 다 못 먹는 사업이다. 괜히 돈도 얼마 안 되는 하따리만 맡아뿌고 알맹이는 저짝 유럽 아들이나 미국 아들이 먹으면 자금 다 잠기뿌고 낸주 해외수주는 더 골치 아플 낀데.”
상진은 조동욱 회장의 염려에 씩 웃었다.
“조금 전까지 되지 않을 일이라 하시곤 수주에 떨어질 걱정이 되나 봅니다.”
“허!”
조동욱 회장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서렸다. 설마 했던 자신조차 이 황당한 일에 다음을 걱정하고 있었다.
매력적인 사업이다. 사막 위에 새로운 도시를 짓는 것은 건설사라면 누구나 꿈꿔왔던 일. 그리고 그 꿈을 사우디의 권력자가 꾸지 않았으리라는 법이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 꿈을 보여주면 될 일이다.
압도적인 차이로 두바이를 넘어설 새로운 미래도시를 말이다.
조동욱 회장은 책상 위의 오래되어 제대로 동작이나 할까 의문스러운 낡은 전화기를 들었다.
“어, 박 상무. 쉬는데 미안타. 내 오늘 건설에 가서 회의 좀 해야긋다. 급하니까 올 사람만 오라 캐라. 그라고 그 디자인하는 아들은 사원까지 전부 불러라. 금일봉 준다카고.”
“아버지!”
“모질이 같구로 거 가서도 이 사진 하나 덜렁 보여줄끼가? 그래. 니 말대로 어디 한번 되나 보자. 나가리 대뿌도 비행기 삯만 날리는 긴데 남는 장사다.”
“날리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께서 확신에 찬 모습만 보인다면요.”
“그래. 니 계산은 똑띠하자. 그라모 이건 니 혼자 올린 껀수가 아이데이.”
‘아버지와 같이 올린 건수도 아닙니다. 민호 형이 알려준 사업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