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어서 오세요 민호문방구-58화 (58/151)

#58. 어른들의 사정(2)

“어때? 좀 닮았어?”

“닮은 것 같기도…….”

“똑바로 말해. 안 닮았어?”

“얼굴이…….”

“아니, 그거 말고 분위기 말이야!”

철진은 자기 집에서 임 차장과 한창 실랑이 중이었다. 바닥에는 옷가지들이 잔뜩 늘어놓아져 있었다.

“분위기는 처음부터 조금도 비슷하지 않았습니다.”

“왜! 옷도 민호 형이 입던 츄리닝에 머리도 비슷하게 잘랐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문제는 철진의 덩치와 인상이었다. 당장 건달 영화에 출연해도 될 만한 190㎝ 가까이 되는 키와 근육질 몸매, 그리고 선이 굵은 눈매는 츄리닝과 수수한 머리 따위로 가려지지 않았다.

건설 분야에 오래 몸담으면서 이런 철진의 비쥬얼은 나름 괜찮은 대접을 받았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건물만 일단 세우면 몇 명의 팔자가 바뀌는 대건설시대였다. 꿀에는 벌과 파리가 함께 꼬이는 법. 인력사무소로 위장해 안하무인격으로 시공사와 마찰을 일으키는 건달들을 철진이 직접 나서 해결한 적도 많았다.

별다른 비책을 쓴 게 아니다.

그저 평소대로 검은 양복을 입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니, 서 있으려 했다. 불같은 성격 덕택에, 배를 째라며 드러눕는 건달들의 소원을 당장에 달려나가 직접(?) 들어주려 했다. 그런 철진을 수십 명의 직원이 붙잡고 말리는 광경은 그야말로 진풍경. 어쭙잖은 각오로 깽판을 치러온 상대방이 기가 질려 도망가기 일쑤였다.

본인은 그저 건설업이 적성에 맞았다고 말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 압도적인 피지컬이 거친 건설업에 특화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변했다.

큰 덩치와 거친 인상이 미덕인 건설업에서 벗어나자, 둔감한 본인도 체감될 정도로 페널티가 되어버린 것이다.

“임 차장이 어떻게 좀 해봐! 이대로 만나면 계약서 내밀기도 전에 꽝이라고!”

“이렇게 대책 없이 아등바등하실 거면서 문방구에 계신 형님분께는 왜 허세를 부리셨습니까?”

“이건 내 일이잖아. 민호 형이 도와주면 안 되지. 엿 됐네, 진짜…….”

거울에 비친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도 집에서 편한 옷을 입은 건달이다. 저번 미니카 대회에서 봤던 청년들은 너무나 앳되고 순수한 인상들이었다. 계약서를 들이미는 그 자체만으로도 모양새가 이상해질 정도인 자신과 순박한 청년들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괴리감이 문제였다.

“차라리 제가 나가겠습니다.”

“안 돼! 이건 내가 나가야 해. 임 차장은 미니카도 잘 모르면서! 저번에도 도와준답시고 부러트리기나 하고 말이야!”

“전무님도 그 핑크색 티 한 장 입고 대회 나가신 게 전부지 않습니까?”

“티? 잠깐만!”

* * *

‘이상한 사람이다.’

‘지금이라도 도망갈까?’

무서웠다.

지난밤 스폰서 계약을 위해 대현자동차 사람이 나왔을 때는 어딘가 입에 맞지 않는 음료수를 입에 머금은 것처럼 불편했다면, 이번 삼정자동차에서 나온 사람은 불편하다, 어색하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공포, 전율, 광기.

눈앞의 남자는 감히 쳐다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였다.

삼정그룹의 장남, 흔히 말하는 재벌 2세.

대회에서 마주치긴 했지만, 재벌 2세인 줄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재벌 2세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아이들 장난감 대회에 나오겠는가? 뉴스 기사를 보고 내가 이 사람과 대회에 나갔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호들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혼자가 아니라 세 명이었고, 지금처럼 같은 자리에 앉아 있지도 않았다.

남자가 입은 핫핑크 티셔츠는 근육으로 터질 듯 부풀어 올라 삼정자동차 로고가 두 배로 확대되어 있었다. 거기에 기묘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도저히 마주 볼 용기가 나지 않을 만큼 흉흉하다.

“자, 드시죠.”

고구마다. 동치미 국물과 김치가 곁들여진 군고구마.

커다란 창고 앞에 드럼통을 가져다 놓고 직접 불을 피웠는지 그 잘난 재벌 2세의 옷과 얼굴에는 거뭇한 숯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저녁 시간은 아직 이르니까 간식으로 준비했습니다. 입에 맞으시죠?”

‘입에 맞지 않으면 안 된다.’

씩 웃고 있는 얼굴은 분명 그리 말하고 있었다.

“원래는 눈이 와야 진짜 맛있는데 이렇게 그냥 밖에서 먹어도 먹을 만하더라고! 자자, 이 김치도 얹어서 드쇼! 굴이랑 같이. 이게 호박고구마는 물이 많아서 좀 태우듯이 구워야 하는데 오늘 잘됐네!”

달달한 고구마가 입에 들어가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철진은 연신 청년들의 어깨를 두들기며 편해진 말투로 고구마를 먹으라 보챘다.

정작 구워진 고구마는 대부분 철진의 입으로 들어갔지만 말이다.

“꺼억.”

발밑에 수북하게 쿠킹호일이 쌓일 무렵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먹방이 시원한 트림과 함께 마무리되었다.

“자, 이제 들어가시죠.”

‘반말이었다가 존댓말이었다가…….’

적당히 배가 부른 철진이 다시 공손한 존댓말로 자신들을 창고 안으로 안내했다.

살벌하게 생긴 남자가 창고로 자신들을 안내하자 원초적인 거부감이 들었으나 아홉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 발짝씩 움직이면 아홉 발짝이었다.

얼떨결에 그렇게 핫핑크의 재벌 2세를 따라 들어간 창고의 내부는 외관과는 너무도 달랐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별천지와 같았다.

“여기가 우리 대표팀이 연습할 공간입니다.”

인원수 별로 마련된 작업대와 컴퓨터, 편하게 쉴 수 있는 소파와 티비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시선을 압도하는 건 다름 아닌 창고를 가득 채운 트랙이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에서 구매하면 비교적 저렴하게 트랙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다미야 정품 트랙으로 구매하면 상당히 비싼 축에 속했다. 어느 정도 달려볼 코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크게 마음먹고 모은 돈 수백만 원을 쏟아부어도 모자랐다.

그뿐이 아니다. 트랙을 꾸밀 공간도 부족했다. 취미 생활에 트랙을 만들 공간까지 따로 마련해서 즐기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으니까.

국가대표로 뽑힌 열 명의 청년 중에도 개인 트랙을 가진 사람은 민호를 포함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창고 건물에 꾸며진 다양하고 넓은 트랙을 보니 절로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거, 작년 대회 트랙이야!”

“여긴 재작년! 진짜 똑같이 만들었네!”

“4년 치 트랙을 전부 구현해 놨습니다. 아무래도 연습은 실전처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철진의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각자 어려웠던 코스나 아쉽게 자신이 코스 이탈을 했던 위치를 손으로 짚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철진은 그런 청년들을 말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민호 형이라면 이렇게 했을 거야.’

항상 그런 식이었다.

무언가 재미있는 놀거리를 던져주곤 먼발치에서 한동안 지켜보기만 했다. 누구보다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가졌지만 구태여 그걸 과시하지도, 억지로 권하지도 않았다.

이 트랙을 어떻게 구했는지, 연습실을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지 설명해 주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지금은 참아야 한다. 민호 형처럼 그저 가만히 지켜보며 곁으로 다가오길 기다려야 했다.

“저희 이 트랙 한 번만 달려봐도 될까요?”

한참 자기들끼리 열띤 토론을 하던 중, 한 명이 다가와 철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연합니다. 그러려고 만든 트랙이니까요. 나중에 대회가 끝나면 일반인들에게도 개방할 예정입니다.”

철진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각자 가방과 품에서 미니카가 하나씩 나왔다.

철진도 마찬가지다.

같이 달릴 사람이 있는데 기회를 놓치기 싫었는지 얼른 차로 달려가 자신의 미니카를 가져왔다.

“어? 이건 전에 대회에 나왔던 거네요?”

“2차 본선까지 갔었죠?”

“어떻게 개조하신 거예요?”

“어, 어? 응, 이건 말이죠.”

철진의 미니카는 등장과 함께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따로 카페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세 사람은 모르고 있었으나 민호와 철진, 상진이의 미니카는 카페에서도 다른 의미로 화제의 중심이 되었었다.

재벌 2세의 빵빵한 스폰서는 이미 안중에도 없는 사안이었다.

20년도 더 된 구형 미니카로 당당히 예선을 통과한 것도 모자라 결승까지 오른 그 실력이 화제의 중심이었다. 심지어 중간에 고장이 나지 않았다면 3위권 안에 안착했으리라 예상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이들이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바로 개조 방법이었다. 분명 검차를 통과했으면 정상적인 개조를 했다는 뜻인데 아무리 당시 촬영된 너튜브 영상들을 봐도 그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온 듯 단종된 미니카와 단종된 부품들로 잔뜩 꾸며진 미니카는 지금껏 추측성 분석만 무성할 뿐 실체를 제대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눈앞에서 그 전설의 미니카를 마주하게 되자 주인의 험상궂은 얼굴과 덩치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와, 범퍼가 그냥 철 재질이네!”

“이거 롤러는 자작이에요?”

한차례 질문 세례가 끝난 뒤에 철진을 포함한 열 명의 청년은 해가 지고 건전지가 다 닳도록 트랙을 달렸다.

그리고 달이 차올라 듬성듬성 별이 보일 무렵, 청년들은 계약서를 한 부씩 든 채 창고 문을 나섰다.

일식집에 갔던 그날처럼.

* * *

‘그냥 트랙 위에 올려두면 끝 아냐?’

‘드론이나 하지. 그건 취업도 되던데?’

‘차라리 게임을 하든가, 유치하게 미니카가 뭐냐?’

4WD를 취미로 한다고 밝히면 듣게 되는 질문들이다. 나름의 재미가 있다고 아무리 설명해 봐야 이미 다른 사람들 눈에는 철없는 어른의 취미다. 아무리 키덜트와 각종 서브컬처 문화가 양지로 올라왔다지만 주위의 시선은 무심하기만 했다.

그때 고급 일식집에서 자신들을 바라봤던 그 중년의 남자도 다르지 않았다.

대놓고 말로 꺼내진 않았지만 한심하게 바라보는 눈빛은 모를 수가 없었다. 미니카 트랙을 달리며 아이들과 같이 온 부모들에게 수없이 느꼈던 시선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조철진 전무라는 사람은 달랐지.’

첫인상은 최악이었으나 분명 자신들과 동류였다.

물론 전문적인 지식에 빠삭한 프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미니카를 좋아하는 마음만은 여느 선수들보다 더 열성적이었다. 그저 계약을 따내려 입에 발린 칭찬과 관심이 많은 척 연기를 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미니카를 애지중지할 이유가 없었다.

구형 미니카를 굴러가게 조립한 것만으로도 카페에 올리면 월간 인기 게시글에 등극할 만한 일인데, 그 애정은 너무나 본격적이라 자신들도 놀랄 정도였다. 트랙을 몇 번 달리고 혹시나 과열로 다른 부품에 변형이 올까 손으로 만져보고 연신 입으로 후후 불어대는 모습은 자신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으니까.

받은 계약서는 두 개.

한쪽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큰 액수가 적혀 있다. 다른 한 장에도 적지 않은 금액이 적혀 있었으나 이미 그 액수 차이는 고민할 여지가 남지 않을 정도로 확연했다.

하지만 청년들은 망설였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모두 책상에 앉아 두 계약서를 두고 펜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이내 한 계약서에 정성껏 사인을 남겼다.

세계 미니카 대회에 나갈 선수들은 그렇게 각자 입을 유니폼에 새길 로고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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