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잘못 끼워진 첫 단추
대회 날.
참가국은 8개국. 각각 한국, 일본, 대만,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이다. 아무래도 아시아권 국가들 이외에는 영어권 국가들이 많았다. 유행도 문화권을 타고 가는 듯했다.
대회는 이틀간 펼쳐진다. 첫날은 예선, 그리고 둘째 날부터 1, 2, 3, 4위를 가리게 된다.
“저희는 준비 끝났습니다.”
“갑시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다들 어차피 졸리진 않겠죠?”
끄덕끄덕.
다들 밤을 꼴딱 샌 몰골들이다. 새벽까지 시끌시끌했던 다른 팀들 숙소와는 달리 우리는 말 한마디 없이 조용한 밤을 보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간 우리가 달려온 행보였다. 계약금은 우승 상금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만큼 넉넉하게 받았다. 거기에 더해 매달 월급 명목으로 지급되는 돈도 대기업 수준. 그저 즐기면 된다.
다른 나라 선수들처럼 맥주나 마시면서 대회 당일에 받는 스포트라이트를 신경 쓰면서 생전 하지 않던 마스크팩도 써보고 그 유명하다던 일본 온천에 몸을 담가 봐도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두 팀 중 한 팀의 우승, MM 프로팀이 내년까지 유지될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그저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운 결과였다며 어깨를 두들기고 기약할 내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장에 우승을 못 한다면 올해를 끝으로 짐을 싸 떠나는 직원이 얼마나 될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배수진.
뒤가 없는 작전이다.
어떤 트랙이 나올지는 모르나 무수히 많은 테스트를 해보고 나름의 철학이 담긴 튜닝을 했다.
어떤 선수는 극한의 스피드로 코스 이탈만 하지 않는다면 1순위로 들어올 세팅을, 또 어떤 선수는 안정적이면서도 확실한 토크로 변수를 줄이는 세팅을 했다. 누가 정답인지는 오늘과 내일 있을 경기에서 밝혀진다.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퀭하고 뻑뻑한 눈을 연신 비비며 아침 해가 아직 뜨지 않아 어둑어둑한 밤의 거리로 나왔다.
행사장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 택시를 부르기도 애매한 터라 잠도 깰 겸 그렇게 우리는 차가운 새벽 공기를 따라 걸었다.
“구단주님.”
“네. 말씀하세요.”
“지면 어떡하죠?”
가뜩이나 공구 박스를 들고 걷느라 무거운 발걸음이 한 선수의 질문에 더욱 느려졌다.
지면 어쩐다?
이 프로팀을 만든 장본인인 나조차 그 뒤는 생각하지 않았다. 불편했기에 그렇다. 엄밀히 따지면 우승할 확률보다 어중간하게 2, 3위에 그칠 확률이 더 높았다. 그 뒤에 펼쳐질 일들은 나도 선수들도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내가 이미 첫 출근부터 분위기를 망쳐가며 가감 없이 털어낸 전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저들은 듣고 싶은 것이다.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왜 달이 자신을 따라오냐고 묻는 이유와 같았다. 달이 자신을 좋아해서 따라온다는 말을 계속 듣고 싶은 것이다.
최선을 다한 것이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우리는 승리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그런 안도의 말을 듣고 싶을 만큼 궁지에 몰렸다.
그리고 이들을 그렇게 몰아세운 사람은 나였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나약해지면 안 될 시기다.
“져도 상관없습니다.”
“네?”
“저는 구단주입니다. 이미 계약은 3년간으로 보장된 상태입니다. 저는 그렇게 3년 동안 꽤 괜찮은 연봉을 받으며 느긋하게 이직 준비를 할 겁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3년 동안 국내 대회는 매년 개최됩니다. 운이 좋아 세계대회에 또 나갈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요. 하지만 승리가 딱히 여러분들의 거취를 바꾸진 못합니다. 대기업 계약서의 힘은 의외로 단단하니까요.”
“그럼, 직원분들은요?”
“어디까지나 팀을 지원하기 위해서 파견된 인력입니다. 지원할 필요가 없으면 다시 돌아가겠지요. 이런 답변을 원하셨습니까?”
“저희는 그저…….”
“우리가 우승하지 못하면 저들은 1년 내로 회사에서 쫓겨납니다. 나이가 많은 직원들이야 당연히 나와야 할 시기이고 어린 직원들은 3개월 단위로 이리저리 고생만 하는 부서로 팔려가는 생활이 반복될 겁니다. 제 발로 나갈 때까지요.”
“그래도 삼정그룹과 대현그룹인데 그 정도로 잔인할까요? 원해서 온 게 아니잖아요.”
“그 정도로 잔인하니까 대기업이 된 겁니다.”
삼정그룹의 회장님은 좋은 분이다. 그룹의 후계자인 철진이와 상진이도 순수하고 착한 녀석들이다.
하지만 그런 온정으로 유지되는 회사였다면 단언컨대 구멍가게 수준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사회는 온정과 배려를 싫어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를 모아 끝없이 경쟁시키고 도태된 사람을 쳐낸다. 그게 지금껏 대한민국 재계 그룹들의 방식이었다.
시스템의 무서움은 그런 것이다. 8년간 열심히 일했다 해서 정규직의 기회가 돌아오지 않았던 예전의 직장처럼 말이다.
“우리가 지면 저들은 직장을 잃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 갓 취업한 새내기까지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겁니다. 자, 다 왔네요. 들어가죠.”
나는 다시 채찍을 들었다.
우리는 절박해야 했다. 내일 결승이 끝날 때까지 위로와 안심은 사치다.
* * *
대회장에 도착한 우리는 부스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었다.
이미 직원들이 먼저 나와 아직 조명도 켜지 않은 어두운 부스 안에서 폰 플래시에 의지해 무언가 열심히 작업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아니, 언제 오셨습니까?”
인사를 대신한 질문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다들 무언가 열심히 작업하던 손이 잠시 멈췄다.
“아, 딱히 잠도 안 오고 해서…….”
이미 노트북과 촬영 기기들이 잔뜩 펼쳐진 테이블을 보아하니 최소한 한 시간 전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그렇게 잠시 서 있어야 했다.
말하지 않아도 새벽부터 부스에 나온 서로의 고마운 마음에 어찌 대해야 할지 몰랐던 까닭이다.
부스에는 선수들이 앉을 자리가 미리 세팅되어 있었다. 이름표도 떡하니 붙어서 언제 챙겨왔는지 의자에는 방석, 바닥에는 난로가 후끈한 열을 뿜어내고 있었다. 게다가 테이블에는 이온 음료가 가득했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것들은 당연히 아니었다. 어제 오후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던 사람들은 우리 선수뿐만이 아니었다.
홍보자료에 쓸 영상과 사진 촬영의 업무로 온 직원들이지만 선수들의 피로감과 중압감을 모르지 않았는지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한 서포터를 준비한 것이다.
탁. 철컥.
선수들은 말없이 각자 챙겨온 공구 상자를 열고 다시 미니카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수십, 어쩌면 수백 번도 더 반복한 작업이지만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이 타국까지 따라와 새벽부터 하지 않아도 될 궂은일까지 도맡아 해준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할 법도 했지만 지금 선수들에게는 그럴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느리게 뜨던 해가 점점 경기장을 비추고 아침이 밝았다.
이런저런 오픈 행사가 열리고 부스별로 스탭들이 분주히 오갔지만 우리는 눈길 한 번 주지 못했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다. 다미야 스탭이 나눠준 각 규정집과 대회 진행표에 맞게 일정을 조율하고 더 점검해야 할 사항이 없는지 체크하는 모습은 흡사 올림픽에 나온 선수들의 긴장감 그 이상인 듯했다.
(곧이어 검차가 있을 예정입니다. 등록된 선수들은 검차 부스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얼른 다녀옵시다.”
나는 지난번 국내 검차에서 꽤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떠올라 선수들을 보챘다.
그리고 가장 먼저 도착한 검차부스에서 우리는 뜻밖의 난관을 만났다.
“바디 높이 불합격입니다.”
“범퍼 강도 불합격입니다.”
벌써 두 명이 불합격을 당했다.
처음엔 규정이 다소 엄격해졌나? 라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으나 문제는 우리 선수들만 검차에 불합격한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지금 불합격 통보를 받은 두 선수는 세계대회 출전 경험이 3회가 넘는 베테랑이었다. 어설픈 세팅으로 검차에 통과하지 못할 수준이 아니다.
뒤가 구린 냄새가 난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악취가.
“구단주님, 어쩌죠? 이러다가 두 명은 연습주행도 못 해보겠어요.”
검차를 통과한 차량만 실제 트랙에서 연습주행을 해볼 수 있었다. 그 주행을 토대로 무언가 개조를 한다면 또다시 검차를 맡아야 하는 시스템이다.
임정훈 선수의 걱정처럼 저렇게 계속 말도 안 되는 트집이 잡혀 검차에 반려 당한다면 잘못된 튜닝을 바로잡을 시간조차 부족해진다.
나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미니카를 만지고 있는 두 선수를 불러모았다.
“잘 들으세요. 다음 검차는 확실하게 통과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연습주행은 못 할 겁니다.”
“…….”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저 긴 트랙을 연습 주행 한 번 없이 바로 실전에서 달리라 하는 건 그냥 하늘에 대고 기도나 하라는 뜻과 같았다.
“지금 두 선수가 할 일은 트랙 가장 가까이에서 다른 선수들의 세팅을 보고 어떤 부분을 보강해야 하는지, 또 어떤 부품을 써야 하는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검차에 통과하지 못하면 탈락이잖아요.”
“무조건 통과합니다. 제 말을 믿고 검차 마감 10분 전까지 최선을 다해주세요.”
나는 두 선수의 어깨를 꽉 쥐었다.
믿어야 한다. 두 선수도 나를 믿어야 하고 나도 두 선수의 뛰어난 직감과 그간의 쌓아왔던 경험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폰을 열어 통화 목록을 빠르게 올렸다.
[다미야 하시모토 부장]
통화버튼이 눌리고 다소 긴 시간이 지났다.
(네. 다미야 미니4WD부서 하시모토 타케시 부장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십시오. 불가항력이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꾸미실 분이 아니니까요.”
(김민호 선수, 이건…….)
“듣고 있으라 했습니다. 이만하면 되었습니다. 만약, 정말 만약에 우리 선수들이 지금 검차에서 떨어진다면 저는 최선을 다해 다미야를 박살 낼 겁니다. 못 믿겠다면 두 선수를 떨어뜨리면 됩니다.”
뚝.
나답지 않은 협박이다. 짐작만으로 싸구려 시정잡배나 할 말을 내뱉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했던가? 지킬 것이 많아지니 사람이 모질어진다. 남에게 모진 말을 해본 적이 근래가 아니면 떠오르지 않았다.
모두 각자의 처지가 있었다. 사연 없는 무덤이 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처지를 고려할 위치에 있지 못했다.
아직 사회의 때가 덜 탄 선수들에게 당장에 직원들의 목숨줄이 걸려 있다며 겁을 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직접 이런 구린 일을 지시했을 리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시모토 부장을 협박했다.
상황이 그리 만드는 것이다.
군대에서 처음 군화와 스판끼 없는 군복을 입었던 날처럼 뻣뻣하게 조여오는 이 상황이 나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해야 한다. 내키지 않는다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이라면 이렇게 진창에 빠지지도 않았을 테니까.
(마지막 검차까지 10분 남았습니다.)
약속된 10분이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검차장에 나타난 하시모토 부장을 발견하고 두 명의 선수들을 다시 부스로 불러들였다.
두 선수의 눈은 눈물을 얼마나 비벼 닦았는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하시모토 부장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번 검차가 통과되더라도 나는 다미야를 용서하진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