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직장인은 쉴 수 없다(3)
나물 캐기는 재미있다.
무언가 손으로 따면 그 개수만큼 망태기가 두둑해지기에 게으름을 피울 새도 없다. 아마 그 아득히 머나먼 시절부터 채집에 대한 만족감이 DNA에 내장되어 있기 때문일까?
당연히 캐는 것보다 먹는 데 목적을 두었던 나도 파릇하게 돋아난 나물들을 보니 없던 욕심이 생겨 산길을 내려오는 동안에도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내가 뒤늦게 노린 산나물은 냉이와 달래다. 다른 나물도 캐고 싶었지만, 냉장고에 오래 들어가 있으면 시들어 버리는 것들이라 그래도 나름 오래 먹을 수 있는 냉이와 달래를 노렸다.
잡풀에 섞여서 바닥에 자라는 녀석들이라 발견하기 쉬운 두릅과 죽순보다 오히려 더 신경 써서 찾아봐야 했기에 어둑어둑해지는 해가 조금 원망스러울 지경이었다.
“형은 왜 다른 걸 캐므니까?”
두릅 대신 다른 나물을 캐는 나를 한참 힐끔거리던 지환이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게 더 별미야. 나눠 줄 테니까 너희들도 집에 들고 가서 된장찌개에 넣어 먹어.”
나도 나이가 들었다. 어릴 땐 맵고 쓰다며 된장찌개에 들어가면 입에도 대지 않던 나물들을 그리워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피는 못 속이는지 할아버지께서도 딱히 산을 타며 나물을 캐지는 않으셨다. 이따금 동네 할머님들이 가져다주시는 나물이 어쩌다 밥상에 올랐고 그중에서도 봄이 되면 밥상에 단골로 나오는 달래와 냉이가 가득 들어간 쌉싸름한 된장찌개가 시골 문방구에서 드물게 느낄 수 있는 봄의 향기였다.
“이제 진짜 내려가자. 해 지면 위험하니까.”
내가 따로 캔 냉이와 달래를 빼더라도 망태기를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다들 한 손에 죽순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산의 밤은 금방 찾아온다. 보이지 않는 산길을 한 손으로 더듬더듬 내려오다간 십중팔구는 크게 다치게 된다.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다.
우리는 산나물 향을 가득 풍기며 이장님 댁으로 향했다.
“이장님, 저희 내려왔습니다. 두릅이랑 죽순인데 이장님 것도 조금 땄어요.”
“아녀, 아녀. 나도 요새 산에 자주 가서 많으니께 호야랑 얼라들 노나묵어야.”
이장님이 가리킨 마당에는 정말 산나물이 몇 포대가 나올 만큼 가득 쌓여 있었다.
“이? 그런데 왜 넷이 내려온겨?”
“네?”
“다섯 아녀, 다섯!”
“왜 그러십니까? 무섭게…….”
난데없이 이장님이 다섯 명이라 억지를 부리시니 우리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미 한 번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장님의 농담을 그냥 웃으며 넘길 수 없었다. 특히 겁이 많은 철진이는 연신 두리번거리며 또 먼저 도망갈 자세를 잡았다.
“아니, 호야 만나겠다고 그 차 뭐시기 하는 사람이 올라갔다니께.”
“차재훈 부장이요?”
“이이! 차재훈! 그려! 등산의 등 자도 모르는 생초짜라 그랴서 나가 옷도 딱 입혀주고 강의도 해주고 그랬제. 모르긴 몰라도 인자 이론은 빠싹할 거여. 우리 산이 대대로…….”
“이장님, 언제 올라갔나요?”
“한… 두어 시간은 됐제? 호야 올라가고 얼마 안 돼서 만났으니께.”
나는 얼른 폰을 열어 차재훈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며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난리 났네.”
* * *
해가 진 산은 칠흑처럼 어둡다. 나무에 가려져 하늘의 달과 별도 보이지 않고 저 멀리 도로에서 비추는 가로등 빛도 닿지 않았다.
‘젠장, 여긴 또 어디야?’
차재훈 부장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더듬 딛어가며 힘겹게 산을 내려오는 중이었다. 아니, 내려오는 길인지 올라가는 길인지도 확신하지 못했다.
나름 성실히 했던 군 생활을 믿었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그 말이 많던 이장님의 설교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탓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조난을 당했다고밖에 이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구단주님은 복지관 아이들과 같이 올라갔다 전해 들었었다. 아이들과 산에 올랐다면 그리 높게는 가지 못했을 터, 크게 나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금방 만날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구단주님은커녕 사람 한 명 만나지 못했고 이젠 내려오는 길도 찾지 못하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휘이이잉.
늦봄의 따스한 햇살이 사라진 산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정장 대신 얇디얇은 몸빼바지와 허름한 티셔츠를 입은 탓에 그 바람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온몸을 훑었다.
‘이러다 정말 죽겠구나. 서두르자.’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했다.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더라도 우선 아래로 향한다면 어떻게든 찻길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 내딛는 발이 과감해졌다.
뿌드득.
“어? 어어어!”
그렇게 내딛은 발이 단단한 줄 알았던 땅 위에 의심 없이 올라섰으나 바닥에 숨겨져 있던 나무뿌리가 부러지며 차재훈 부장은 중심을 잃고 바닥을 굴렀다.
“으으으…….”
그렇게 얼마나 정신을 잃었을까?
차재훈 부장은 다 죽어가는 신음을 내며 다시 땅을 짚고 일어서려 했다. 하지만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으윽. 다리가!’
몸에 생긴 크고 작은 찰과상은 조금 쓰라린 정도였지만 왼쪽 발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도저히 서 있지 못할 지경이었다.
‘정말 이러다 죽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그 처지가 되어 보기 전까지 이해심을 발휘할 수 없다.
가끔 뉴스에서 들리는 조난 소식에 대한민국에서 무슨 조난이냐며 코웃음을 쳤던 지난날의 자신을 후회했다.
날씨는 점점 더 추워지고 의식은 흐려졌다. 이렇게 정신을 잃으면 분명 죽을 것이다.
‘어머니께 전화라도 한 통 드려야 하는데…….’
뒤늦게 폰을 열어봤지만 아까 넘어진 탓에 여기저기 금이 간 화면에는 여전히 ‘수신 불가’라는 글자만 떠 있었다. 이 나이를 먹고 산속에서 조난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119는 부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배터리는 충분했다.
차재훈 부장은 나무에 등을 기대고 전화번호부를 열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유언을 부지런히 적기 시작했다.
어머니께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먼저 떠남에 용서를 구하고 다시 한번 차려주신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고 싶다는 말도 적었다. 격해진 감정 탓에 눈물이 또다시 앞을 가렸다.
당연히 전송될 일 없는 장문의 문자를 그렇게 한 통 보내고 나니 다음은 없었다. 모난 성격 탓에 친구도 한 명 남지 않았다.
지난 통화 목록에서 어머니를 빼자 구단주님과 MM 프로팀의 직원, 선수 들이 다였다.
알고 지낸 기간은 짧았지만, 진심으로 자신을 대해준 사람들이다.
상사는 따라서 이득이 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렸다. 동기들은 모두 경쟁자였고 부하 직원들은 그저 하찮은 잡무나 시키면 그만인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 별 볼 일 없는 장난감 프로팀은 달랐다.
모두 비슷한 처지였음을 동정한 까닭인지 그렇게 무감정하게 대했던 자신을 무던히도 귀찮게 했다.
밥때가 되면 꼭 전화해서 같은 자리에 앉아야 했고 까마득히 직급이 낮은 부하 직원들도 자신과 같이 담배를 피우거나 날씨나 건강 같이 시답잖은 스몰토크를 나누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티를 냈으나 그런데도 그들의 따뜻한 인사와 대화는 계속되었다.
죽음까지 남은 시간은 아직 많았다.
차재훈 부장은 한 명 한 명 빠짐없이 문자를 적었다. 그동안 술 한 잔 하지 못한 아쉬움과 이런 자신을 같은 직장 동료로 대해준 고마움을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민호였다.
‘신기한 분이지. 그런 능력과 인맥이라면 승승장구할 텐데 말이야.’
오직 돈이 전부였던 자신과 가장 반대에 있는 사람이었다. 만약 자신이 재계에 내로라하는 그룹의 재벌 2세들과 호형호제하며 지낼 수 있었다면 크게 한자리를 달라 부탁해 남부럽지 않게 살 생각부터 했을 것이다.
그러나 구단주님은 달랐다.
동년배치고는 많은 돈을 받았다곤 하나, 그마저도 억지로 등 떠밀려 맡았다 전해 들었다. 게다가 지금껏 해낸 일 중에 자신을 위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갈 곳 없이 모인 직원들의 안위만 생각했다.
‘이렇게 가면 그분이 책망하실 텐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다른 직원들에게 보냈던 문자처럼 남길 말이 선뜻 적히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분이셨다.
자신을 찾아 산속을 헤매다 죽은 부하 직원에게 얼마나 큰 죄책감을 느끼실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떠남은 정해진 명이 여기까지이기 때문입니다. 구단주님의 탓이 아니니 책망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구단주님 덕분에 어머니와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팀에 남은 사람들을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마지막 문자를 적으니 긴장감이 풀리며 의식은 더욱 흐려졌다.
“차재훈 부장!”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리는 목소리는 어머니가 아니구나.’
곧 죽는 마당에 굳이 목소리까지 가려야겠냐만은 어머니도, 은혜를 입은 구단주님도 아닌 꿈에 나올까 두려운 삼정그룹의 조철진 전무의 목소리라는 게 아쉬웠다. 그것도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발목보다 귀가 더 따갑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차재훈 부장!”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진짜 목소리다!’
그제야 흐릿한 시야 사이로 여기저기 깜빡이는 후레쉬 불빛이 보였다.
“여… 여깁니다……. 여기요! 사람 살려!”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짠 마지막 외침이 산길을 따라 메아리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불빛들은 점차 자신을 향해 다가왔다.
“으악!”
후레쉬를 왜 위로 치켜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얼굴을 비추며 다가온 철진의 흉흉한 모습이 갑자기 나타나자 차재훈 부장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찾았다! 차재훈 부장, 괜찮으쇼?”
“발목을 다쳤습니다…….”
“이거 원. 잠깐만 기다리쇼.”
“무, 무슨!”
철진은 단숨에 차재훈 부장을 양손으로 안아 들었다. 이른바 공주님 안기였다.
“부축만 해주시면 걸을 수 있습니다. 내려주셔도 됩니다!”
“어어, 움직이지 마쇼. 길이 좁아서 부축해서 둘이 갈 공간이 없어서 그러니까. 저 아래 큰길 나오면 내려드릴게.”
‘그래, 조금 꼴사납지만 그래도 살았구나.’
안도감.
추위에 종일 떨었던 몸은 조금 불쾌하지만, 철진의 온기로 노곤하게 풀려갔다. 거기에 살았다는 안도감에 온몸에 힘이 풀려버렸다.
띠링. 띠링. 띠링.
“응?”
‘아뿔싸! 문자!’
갑자기 주머니에서 진동과 함께 알람이 울리자 차재훈 부장은 뒤늦게 그 원인을 알아차렸다.
“내, 내려주십시오! 폰을! 폰을 꺼야 합니다!”
“어어, 위험하다니까!”
차재훈 부장은 우악스러운 손길에 발버둥 한 번 치지 못하고 문자 알림음이 잦아들 때까지 안겨 있어야만 했다.
한번 쏟은 물은 도로 담지 못한다.
죽음을 앞두고 적은 낯뜨거운 문자들은 그렇게 빠짐없이 주인을 찾아 떠났다.
이후 차재훈 부장은 문자 대신 삭제가 가능한 케톡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버릇이 생겼으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처럼 이른 나이에 초상을 치를뻔한 일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대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