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방방(1)
매스컴에 나온다면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릴 대현그룹의 엄청난 스캔들은 나와 몇몇 회사 내부 인원들의 입단속으로 무마되었다.
예상대로 정인성 부회장뿐만 아니라 그 뒤에는 정현석 이사와 정승훈 이사도 연루되었다. 차재훈 부장 말로는 처음 계략을 꾸몄던 사람은 정인성 부회장과 정현석 이사였지만 정현석 이사가 다시 셋째 아들인 정승훈 이사에게 모종의 거래로 정보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했다.
한심한 족속들. 그렇게 머리를 쓴 결과가 아버지께 받았던 모든 지분을 고스란히 내놓고 회사를 떠나는 것이라니.
뭐 그래도 나보다 훨씬 좋은 집에서 와인과 스테이크를 먹으며 지낼 놈들이다. 들인 노력에 비하면 여러모로 아쉬운 결말이지만 누군가 다치지 않고 이 일을 매듭짓는 최선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문방구에는 다시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형! 우리 왔어! ”
“밖에 뭐에요? ”
“또 뭔가 설치하므니까? ”
“일찍 왔네. 일단 밖으로 나가자. ”
나는 한껏 궁금증에 차 있는 녀석들을 데리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거기 좀 더 아래로! ”
“박 씨 몽키 쓰던 거 어딨어? ”
문방구 옆에는 한창 무언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바닥에는 커다란 쇠파이프와 공구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었고 기사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셨다.
“기사님 얼마나 걸릴까요? ”
“아, 사장님 금방 끝납니다. 땅이 좋아서 작업량이 많이 줄었습니다. 앞으로 한 서너 시간이면 됩니다. ”
“네, 감사합니다. 조금만 더 수고해 주세요. 더우실 텐데 이거 드시면서 하세요. ”
“어이쿠. 잘 먹겠습니다. 안 주셔도 되는데. ”
내가 내민 음료수와 과자들을 받아 든 기사님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작업장으로 향했다.
역시 전문가들이다. 하루, 이틀은 걸릴 것 같았는데 반나절 만에 작업이 끝난다 하니 오늘 바로 시운전(?)을 해볼 수 있겠다.
“형, 이게 뭔데 그래? ”
“기다리면 알게 돼. 이제 조금 있으면 완성된다니까. ”
커다란 자재들이 조립되는 공터는 여기저기 용접기 불꽃이 튀고 공구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도청장치로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는 정인성 부회장의 장단에 조금 놀아주기 위해 땅을 조금 샀었다.
스파이짓으로 2억이나 받아먹은 주제에 뒤로 켕기는 짓을 하지 않으면 의심을 살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산 땅은 문방구와 붙어있는 작은 공터. 전에 귀촌을 준비하던 사람이 바닥에 시멘트를 바르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대로 방치하다시피 한 땅이다. 내가 사겠다 하니 한달음에 달려와 앓던 이를 뺀 것처럼 후련한 표정으로 도장을 찍어주셨고 그렇게 이따금 할머니들이 고추나 말리던 이 버려진 공터의 주인은 이제 내가 되었다.
평수는 20평 남짓.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이 땅에 무얼 할까 고민하다 처음 선택한 것은 원두막이었다.
문방구 밖에 내놓은 평상이 너무 좁았던 탓이다. 넷이 밖에 나와 앉기라도 하려면 그 좁은 평상에 올려진 미니카 트랙을 바닥에 내려놓는 작업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당산나무 아래 원두막이 있기는 했지만, 어르신들이 쉬는 공간에 우리가 눈치 없이 들어가 놀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렇게 원두막에 올라가 고기도 구워 먹고 낮잠도 자려는 원대한 꿈은 더 큰 욕망에 삼켜졌다.
* * *
“이거 봐라! 난 한 바퀴로 돌 수 있다? ”
“민호 형은 뒤로도 돌아! ”
“거짓말! ”
“진자야! 민호 형 보여줘! ”
“잘 봐. ”
나는 마치 곡예사처럼 높이 날아올라 뒤돌기를 성공한 뒤에 바닥에 착지했다. 도저히 아이가 도약했다고는 볼 수 없는 점프. 마치 한 마리의 캥거루처럼 높게 뛰어오른 내가 뒤돌기를 성공하자 사방에서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와! 진짜다! 민호 형 그거 어떻게 해? ”
“고개를 확실히 뒤로 젖혀야 해. 무섭다고 어중간하게 넘기면 다치니까. 너희들은 위험하니까 하지 마. 알겠지? ”
“응! ”
끼릭. 끼릭.
아이들의 조잘거림 사이로 용수철이 늘었나 줄었다 하며 나는 쇳소리가 사방에서 울린다.
이곳은 방방장.
방방장은 학교를 마친 아이들의 단골 놀이터다.
검은 바닥에 힘껏 뛰어들면 뛰어든 만큼 솟아오르는 트램펄린은 방방장이 아니면 좀처럼 즐기기 어려운 놀이기구였다. 에어컨이나 난방기구가 있을 리 만무한 이 불법 건축물은 별다른 안전검사도 없이 아이들이 온몸을 맡기는 일종의 고급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3번, 시간 다 됐다. ”
“벌써요? ”
“벌써는 무슨, 5분이나 지났어. ”
“네. ”
먼저 왔던 팀이 아쉬움을 뒤로하고 방방에서 내려간다. 방방장의 할아버지는 연습장에 연신 아이들의 시간을 적으며 손목에 찬 오래된 시계를 번갈아 보셨다.
“야 우리도 곧 끝나겠다. 빨리 뛰어. ”
이 세상 다시없을 재미있는 놀이기구는 당연히 유료다. 15분에 200원. 나름 합리적인 가격에 조금 아쉬운 듯한 시간은 무던히도 쓸 돈 이 많았던 아이들의 지갑을 노리는 또 다른 적수였다.
“민호 형. 우리 동네엔 왜 방방이 없을까? 맨날 늦게 오니까 한참 기다려야 하잖아.”
“그러게. ”
“문방구 할아버지한테 하나 만들어 달라 그럴까? ”
“맞아! 민호 형 문방구에 있으면 좋겠다! ”
“설치할 때가 없잖아. 서두르면 그래도 탈 수 있으니까 여기서 타자. ”
“치. ”
나는 그렇게 다소 부족한 핑계로 아이들을 타일렀다.
오락기도 비싼 가격 때문에 설치하지 못한 할아버지다. 이 커다란 방방을 문방구에 들이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지 어린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내 억지로 할아버지의 미안한 얼굴을 보는 것은 한 번이면 족했다.
“읏샤. ”
양껏 뛰놀던 나는 그대로 방방 가운데 벌렁 누웠다.
“나도! ”
그 모습을 본 땀에 흠뻑 젖은 아이들이 하나, 둘 내 곁으로 모여 바닥에 누웠다.
이렇게 방방의 가운데 누워 잠시 숨을 고르며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은 우리가 늘 하던 마무리 방식이었다.
촘촘한 그물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과 온몸을 편안하게 감싸는 방방의 아늑함은 침대와 인연이 없던 시골 동네 아이들에게 제법 마음에 드는 경험이었다.
“이렇게 낮잠 잤으면 좋겠다. 한 시간만. ”
“그럼 얼마나 있어야 해? ”
“한 시간이면 800원이네. ”
“낮잠 자는데 800원이라고? 우와. 나중에 진짜 부자 되면 해봐야지. ”
“그래 우리 돈 많이 벌어서 해보자. ”
“윗동네 얘들아. 시간 다 됐다. 내려오거라. ”
“네. 자, 빨리 내려가자. 기다리는 사람 있으니까. ”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마치 바닥에 달라붙은 것처럼 어색한 걸음으로 방방에서 내려왔다. 그 느낌도 어찌나 재미있던지 방방장을 나서는 아이 중에는 폴짝거리지 않는 아이가 없었다.
* * *
부자가 되진 못했다. 그러나 35살에 방방을 살 정도의 철없는 동심은 충분히 키웠다.
그리고 나는 사버렸다. 내 방보다 넓은 방방을.
이왕 낮잠을 자고 누워있을 공간이라면 조금 더 편안해도 좋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욕망 때문에 원두막이 방방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방방을 설치해 주는 업체를 찾고도 전화를 한참이나 망설였던 내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합리적인 금액이라 곧장 설치를 요청했고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이걸 진짜 내가 이루네. ”
그 시절의 나에게 너는 문방구 주인이 되고 커다란 방방을 가진다 하면 얼마나 행복해했을까? 어쩌면 빨리 어른이 되지 못함을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이니 과학자니 하는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장래희망에도 문방구 주인은 없었으니 말이다.
어린 날의 기억을 잠시 들춰본 나는 이내 복잡했던 상념이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다 된 건가요? ”
“네. 끝났습니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혹시 문제 생기면 이쪽으로 연락 주세요. 금방 달려오겠습니다. ”
서너 시간이 걸린다는 말은 고객의 보챔을 염두 한 능숙한 처세술이었다. 방방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완성되었다. 설치 기사분들은 명함 한 장을 확실한 a/s까지 약속한 뒤에 홀연히 떠나셨다.
“형... 이거.... ”
“방방이야. ”
“방방? 트램펄린이 아니고요? ”
“그런 근본 없는 이름이 아니야. 방방. ”
방방, 봉봉, 퐁퐁. 지역별로 이름은 다 달랐지만, 트램펄린이라 부르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방방장은 큰 곳은 10여 개, 혹은 그 이상의 트램펄린을 노지에 깔아두고 영업을 했다. 원조 키즈카페라고나 할까? 꼬마 아이들이 놀기엔 다소 위험한, 그렇다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놀기엔 조금 민망한 좁은 연령대를 타겟으로 노린 장사다.
지금처럼 안전봉이나 용수철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패드도 없어 코너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위험천만한 기구였지만 당시엔 누구도 그걸 문제 삼지 않았다. 병원에 갈 정도로 다치지 않으면 그저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는 게 미덕이었던 시대였으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발이 빠지는 아이가 종종 있었지만 모두 낄낄대며 웃기 바빴었다.
물론 여기 설치된 방방은 성인용이다. 그것도 철진이를 생각해 가장 두껍고 튼튼한 재질로 주문했다.
“들어가자. ”
끼릭. 끼릭.
그리웠던 용수철 소리와 함께 과한 반발력이 발바닥에 느껴졌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 나이가 들고부터는 좀처럼 이렇게 몸을 쓰는 레저활동을 해본 적이 없음이 떠올랐다.
“오, 진짜 튼튼하네. ”
점프를 몇 번 해보니 찢어지진 않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뭐해? 처음 타봐? ”
점프의 강도를 높혀가는 나와는 달리 세 녀석은 테두리에서 그물을 붙잡고 불안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야, 넘어져도 안 다쳐. 그러고 있으면 더 힘들다? 힘 빼고 설렁설렁 뛰어봐. ”
방방은 유한 움직임이 생명이다. 뻣뻣한 몸으로는 시도 때도 없이 움푹 꺼지는 바닥에 버티고 서있을 수 없다.
“아니. 이게 불안해서. ”
“안 다친다니까. 가운데로 와봐. ”
세 녀석은 그제야 기둥을 놓고 양팔을 벌려 어설픈 뜀을 시작했다. 마치 첫걸음을 떼는 아이처럼 조심스러운 움직임이다.
“이거 재미있스므니다. ”
“바닥이 신기하네. ”
“어때? 이제 좀 익숙하지? ”
혹시나 늙어버린 몸이 방방에 적응하지 못할까 하는 걱정도 잠시, 어설픈 점프는 어느덧 점점 과감해지고 있었다.
“자, 이제 본 게임으로 들어가자. ”
“응? ”
“게임이요? ”
쑤욱.
“으악! ”
내 점프 한 번에 지환이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방방은 그렇게 신사적인 플레이를 하는 곳이 아니야. 제자리에서 뛰기만 하면 그게 재활훈련이지 놀이일 리가 없잖아? ”
아이들의 승부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방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균형을 잃고 먼저 넘어지는 쪽이 패하는, 퇴로 따윈 없는 일종의 케이지 매치인 셈이다.
“팀으로 할까요? ”
“하!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주제에 그럴 실력들은 되고? ”
“그 말 후회하게 해주겠스므니다! ”
“지면? 국밥? ”
“수육 대짜까지! ”
한 그릇에 만 원도 하지 않는 국밥이 걸린 케이지 매치는 어느 격투기 결승 못지않은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며칠 전, 대현그룹의 세 아들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했던 싸움보다 국밥에 수육이 걸린 이 승부가 어쩐지 더 긴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