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대업(大業)(2)
삼정건설.
전자와 반도체 등 첨단 산업 위주로 그룹을 경영하는 삼정그룹이 후발주자로 나선 계열사였다. 자재를 공급받을 마땅한 중공업 기반이 없는 터라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좀처럼 큰 사업을 따내지 못했던 건설사기도 했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삼정건설이 택한 방법은 정도였다.
자재 빼먹기와 하청업체 사이에 유령회사를 끼워 넣는 등의 견적 부풀리기 없이 착실하게 공사를 진행했다.
관행으로 여기며 알음알음 행해지던 부조리를 따라 할 여력이 없어서이기도 했고 천하의 삼정그룹이라고는 하나 뒷돈을 받다가 혹시나 마지막 꼬리로 잡히기라도 한다면 회장님의 성정상 절대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삼정건설은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굵직한 아파트 건설까지 맡아가며 그릇을 키웠다. 지금도 삼정건설이라면 네임밸류는 조금 떨어져도 돈값을 하는 아파트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그 정도가 흔들리고 있었다. 새로 부임한 삼정그룹의 새로운 후계자인 한 전무에 의해서.
‘도대체 무슨 사업이길래 이렇게 막무가내로 말씀을 하시는 거야? 설마 사우디 수주 건 같은 규모로 하나 더 하자는 건 아니시겠지?’
졸지에 이른 아침부터 커피도 마시지 못하고 대회의실로 끌려와 앉혀진 임원들은 상진의 알 수 없는 억지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임원들이 이렇게 다급하게 끌려 나온 첫 번째 기억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한 번 고배를 마신 사우디 쇼핑센터 건설 사업을 뺏기고 난 뒤, 갑자기 신도시개발사업을 하겠다며 회장님과 비행기에 올랐고 수주 직전의 사업은 심지어 그 규모가 점점 커지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때와 비슷한 긴급회의가 열렸는데 긴장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일이 조금 급합니다. 다음 주 금요일에 견적서를 넣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전무님, 전무님도 아시다시피 지금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실무팀은 전부 사우디 도시 개발 사업에 투입되었습니다. 컨소시엄으로 시공을 맡는다면야 괜찮지만, 주사업자로는 어렵습니다.”
“그리 규모가 큰 사업이 아닙니다.”
“사업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까?”
“사업비는…….”
꿀꺽.
“3억 내외로 책정되어야 합니다.”
“예?”
거절할 수 없는 금액이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해야 했다. 꼭지가 굵은 사업이 해마다 나오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3억이라니? 300억이라도 고민해볼 판국에 3억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금액이었다.
“저, 전무님, 타당성 평가와 실측, 도면 제작만 해도 3억이 넘어갑니다.”
“이대로 진행해야 합니다. 견적이 조금이라도 올라가면 우리 삼정건설이 루데건설에게 수주를 빼앗깁니다!”
“3억짜리 사업에 루데건설도 나선단 말입니까?”
그룹의 이름을 딴 루데타워를 완공해 한창 콧대 높기로 유명한 루데건설이 고작 3억짜리 사업에 나선다 함은 이제 다른 문제였다.
‘정말 무언가 있나? 조상진 전무가 이렇게 열을 내는 것도 이상한데. 대통령 별장이라도 되는 건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정작 그 의문을 몰고 온 당사자는 속 시원히 대답을 해주질 않았다.
“평수는 15평 내외, 지하실과 1층, 그리고 지붕 사이에 옥탑방이 들어가야 합니다. 1층은 음식점 상가로 사용할 예정이니 용도에 맞게 설계를 들어갈 팀이 필요합니다.”
팀이라고 하기에도 뭐했다. 고작 15평에 1층짜리 상가건물을 짓는데 무슨 설계가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상진은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그리고 하청은 안 됩니다. 되도록 우리 직원들이…….”
한창 말을 이어가던 상진에게 중년의 사내가 달려와 귓가에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전무님, 대현건설에서도 이번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답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아닙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여보세요?)
“형, 대현건설에도 견적 넣었어요?”
(아니, 내가 넣으려고 한 게 아니라 이제 공사 시작되면 당분간 문방구에 못 오신다고 말씀드리려다가 말이 나와서…….)
전화기 너머 민호의 목소리가 마치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기어들어갔다.
“거긴 애초에 자격도 없었잖아요!”
(어쭈? 너희들은 무슨 자격이 있어서 이 사달을 내놨냐? 나는 그냥 동네 건축사무소에 가려 했는데 너희들이…….)
“알겠어요. 나중에 전화 다시 할게요.”
민호가 정신을 차리고 무언가 따지려 들자 상진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좀처럼 예의를 지키지 않는 법이 없었던 상진을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 장면도 너무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3파전입니다. 루데와 대현까지. 우리가 여기서 진다면 그 수준을 증명하는 꼴입니다.”
‘맙소사. 대현그룹까지? 분명 정계 유력자의 건물이다. 그것 말고는 설명이 되질 않아.’
대한민국 빅3 건설사가 뛰어드는 사업이다.
만약은 없었다.
확실히 그 뒤에 무언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공적인 회의에 임원들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극비의 무언가가.
“전무님, 그 정도로 중요한 사업이면 조철진 전무 쪽 사람들에게 맡겨보는 건 어떻습니까? 마침 이제 막 보직 이동이 되어서 마땅히 맡은 업무도 없습니다.”
“안 됩니다. 형이 다시 돌아오면 데려갈 사람들이니 그대로 두세요.”
상의 한 번 없이 멋대로 사표를 내고 떠난 형이다. 딴에는 사과를 하러 찾아오긴 했지만, 아직 그때의 갈등이 모두 풀린 것은 아니었다. 상진은 아직 철진을 용서하지 않았다.
문방구에서야 으르렁거릴 수가 없으니 못 이기는 척 대화를 나누긴 했으나 데면데면한 공기는 계속되었고 그렇게 사이에 낀 철진의 사람들도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위치가 되었다.
“그래도 그만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없는지라…….”
“제가 분명 안 된다 했습니다. 다른 인력을 찾아보세요.”
사업 규모라 말하기도 초라한 건물을 짓는 데 경쟁사 두 곳을 이길 인력을 찾아야 하는 임원진들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 * *
똑똑.
“계십니까?”
“잠시만요!”
늦잠을 잤나 하고 시계를 보니 아침 8시다. 아니, 분명히 문 앞에 영업시간을 적어놨는데 문까지 두들기는 진상이 나올 줄이야. 방금 상진이의 전화를 받느라 겨우 다시 잠들었는데 타이밍 한번 기가 막혔다.
나는 건실한 사회인답게 새벽까지 너튜브를 보느라 도저히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비비며 문을 열었다.
“삼정건설입니다. 실측 나왔습니다.”
“저희는 대현건설입니다.”
“루데건설의 신형준 과장입니다. 저희도 실측일 요청드리러 왔습니다.”
문 앞에는 형광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족히 10명은 넘게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실측이라니?
“네? 실… 뭐요?”
“새로 지을 건물이 들어갈 자리의 실제 넓이를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위치만 알려주시면 금방 작업하고 가겠습니다.”
“아, 네, 바로 옆 창고입니다. 크기는 그대로 해주셔도 무방합니다.”
간혹 그런 작업을 보긴 했었다. 길가에 삼각대와 겨냥대를 세워두고 측정 장비로 무언가 열심히 채크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하지만 고작 이 창고를 새로 짓는 데 그런 장비가 필요할까 싶었다.
나는 그제야 슬그머니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3억.
분명 내가 언급한 금액은 3억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리 쉽게 되던가? 원래 제시한 금액과 실제로 나오는 견적의 괴리감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
비록 내가 건설 일을 해본 것은 아니나 굳이 건설이 아니더라도 비니지스는 그러했다. 5억짜리 건물을 짓겠다 하면 6억짜리 견적이 나온다. 가진 돈이 이것밖에 없으니 이 이상 오버가 되면 안 된다는 으름장을 놓는다 한들 상대방이 내가 확인할 수 없는 근거자료를 가지고 속이려 든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건 당연했다.
결국, 서로 모양새 좋게 양보하는 그림이 나와야 한다.
3억짜리 건물을 짓겠다 하면 4억짜리 견적이 나오고 못 이기는 척, 고심하는 척 서로 간을 보다가 마지막에 인심을 써서 조금 깎아주는 곳과 계약하면 된다.
그럴 작정이었다.
그러나 일이 커졌다.
전문 측량사까지 동원된 세 건설사 중에 한 곳을 선정하지 않는다면 도저히 안 될 분위기다. 잘못하다간 졸지에 대출까지 내야 할지도 모른다. 대기업의 건설 단가는 내 깜냥으로 감히 예측이 가능할 리가 없었으니까.
“그놈들한테 말을 꺼내는 게 아니었는데. 하.”
“야옹!”
나는 누렁이를 안고 알아들을 리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후회는 언제 해도 늦다.
분식집을 열겠다는 원대한 대업은 삽을 퍼기도 전에 난항에 빠졌다. 해결해야 할 난관은 건물을 새로 짓는 것 말고도 더 많은데 말이다.
우선은 출근이다.
머리가 복잡해 어차피 더 이상 잠도 오질 않았다. 나는 그렇게 비몽사몽한 정신을 빅카스 한 병으로 깨우며 회사 근처 공터로 차를 몰았다.
“어? 차재훈 부장님?”
공터는 내가 첫 번째 손님(?)이 아니었다. 익숙한 세단이 서 있기에 자세히 봤더니 운전석에 차재훈 부장이 앉아 있었다.
“부장님이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안녕하십니까, 구단주님. 구단주님이야말로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같은 이유입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차재훈 부장의 질문에 답했다.
아무리 서울 외곽이라 출근하기 조금 나은 편이라지만, 집이 서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꽉 막히는 출근길을 피해 이른 시간에 출발했고 혹시나 먼저 도착한 상사 때문에 부담을 느낄지 모르는 직원들을 생각해 이곳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라면 9시 전에 들어갔을 테니 내가 작정하고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오지 않았다면 마주치지 못했을 터였다.
차라리 잘되었다. 차재훈 부장에게 따로 할 말도 있었으니.
“잘됐습니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조금 잡담이나 하다 들어가죠.”
나는 차재훈 부장에게 마지막 남은 빅카스를 건넸다.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출퇴근이 제법 오래 걸리시나 봅니다.”
“1시간 정도 걸리더군요. 그래도 이렇게 일찍 나오면 또 다닐 만합니다.”
“이참에 이사를 오시는 건 어떻습니까?”
“네? 이사요?”
“저희 마을에 빈집이 많습니다. 다시 돌아갈 생각이 아니라면 괜찮은 선택 아닌가요? 굳이 서울에 있는 집을 팔고 오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집이니까요. 마침 어떤 고마운 분들이 리모델링도 싹 해놨거든요. 어머니도 그곳에서 혼자 계시는 것보다 마을분들이랑 지내는게 훨씬 덜 적적하시고요.”
정진수 회장님의 못난 아들들이 헛다리를 짚으며 마을의 빈집을 죄다 깔끔한 민박집으로 바꿔놨기에 정말 괜찮은 조건이었다.
“그 매물은 금방 살 수 있습니까?”
차재훈 부장은 어머니의 말이 나오자 금방이라도 집을 구하러 달려갈 기세였다.
“부동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아마 살 사람이 없어서 그냥 원하는 대로 들어가시면 될 겁니다. 참, 그리고 드릴 말씀이 또 있습니다.”
“네?”
“어머니께서 원래 식당 일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덕분에 아침저녁으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주십니다. 하하.”
“이왕 이사 오시는 김에 어머니께 작은 소일거리 하나 드리는 게 어떨까요?”
“소일거리요?”
플라잉더치맨호에 선장이 필요하듯이 민호 분식에는 요리사가 필요하다. 까다로운 입맛의 차재훈 부장의 턱선이 없어질 만큼 맛있는 요리를 하는 요리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