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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민호문방구-151화 (151/151)

#151. 대업(大業)(3)

자초지종을 들은 차재훈 부장은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갑자기 대뜸 이사를 오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도 방금 들었는데, 어머니의 직장까지 구해준다 하니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어머니께서 노쇠하셔서 밭일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하핫. 밭일이 아닙니다. 제가 문방구 옆에 분식집을 하나 열 작정입니다. 그곳의 조리를 맡아주셨으면 해서요.”

“분식집을요? 아니, 그 시골 마을에 손님이 있겠습니까?”

“아마 많이 오진 않을 겁니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차재훈 부장뿐만 아니라 누구에게 말하더라도 같은 질문이 나오겠지. 말 그대로 처음 오픈하면 손님은 10팀이 안 될 가능성이 컸다. 내 예상으로는 조금씩 늘어나 그래도 한 사람의 월급 정도는 챙겨갈 매출이 나올 것 같지만 목표는 인건비를 제외하고 수익금 0원이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 않은가?

자영업은 지옥이다.

얼마 안 되는 퇴직금과 대출을 긁어모아 야심차게 오픈한 가게에, 장사가 잘되질 않는다는 이야기와 함께 잊힌 직장 상사들이 내 기억으로만 족히 한 트럭이었으니까.

분식집이라는 게 싸고 맛있다 해서 소문을 듣고 찾아올 정도로 고급스러운 음식이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굳이 추억에 가격을 매겨 돈을 벌고 싶은 마음도 없다. 재료비와 관리비를 제외한 금액은 모두 급여로 쓸 작정이었다.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너무 부담 가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저도 그냥 찔러보기식으로 말씀드리는 거니까요. 아직 건물도 짓지 않았습니다. 마을에 소일거리를 하실 분은 많으니 정말 강요가 아닙니다.”

물론 가장 베스트는 차재훈 부장의 어머니께서 맡아주시는 것이다. 하지만 거절한다 해도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했다. 직장 상사가 사적인 부탁을 하는 것만큼 난감한 경우도 없으니.

“자, 잡담이 길었습니다. 이만 출근하죠. 저는 조금 더 있다가 갈 작정입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나는 차재훈 부장을 보내고 30분이 더 되어서야 사무실 문을 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제가 오늘 따로 처리해 드려야 할 일이 있습니까?”

인사와 함께 붙어 나오는 질문은 내 단골멘트다. 워낙 근무 시간이 짧으니 내가 반드시 결정해 줘야 할 사안이 있다면 미리 받아야 했다. 이렇게 물어보질 않으면 그냥 설렁설렁 회사에 놀러 다니는 사장 흉내를 내는 것 같기도 했고.

“참, 반즈 측에는 다다음 주 월요일에 방문 드릴 예정인데 괜찮은지 한번 여쭤봐 주세요. 그리고 첫 방영 일자에 맞출 게 아니라 미리 배포되어야 하니까 하시모토 부장에게 예정 일자를 다시 확인해 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굳이 내가 해도 될 일을 지시함은 귀찮아서가 아니다.

모두가 공유해야 할 정보이기에 번거롭더라도 한 사람의 입은 거치는 것이 좋다.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도 달라진다 했던가? 그저 월급을 받으며 만년 과장을 전전할 때는 굳이 힘들게 돌아간다 싶었던 업무들이 이제야 왜 그렇게 흘러가는지 하나둘, 깨닫는 중이었다.

“구단주님, 다미야코리아에서 선수들에게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올해 전국대회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난번 대회 때문에 국내 여론이 좋지 않아서 출전팀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저에겐 아직 오지 않았네요.”

잊고 있었다.

다미야에서는 해마다 전국대회와 국제대회를 개최했었다. 작년 세계대회가 큰 성과를 거뒀기에 올해부터는 팀 단위로 출전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들었다.

작년 우승자인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대회 출전 자격조차 주지 않겠다는 뜻이겠지. 그런 와중에도 우리 선수들에게 따로 연락해 어떻게든 뺏어가려는 노력은 가상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는 짓이 음습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아직 정신을 덜 차린 것이다.

“어차피 제가 일본에 갈 예정이니 그때 가서 만나봐야겠습니다. 긴히 할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지난 대회가 떠오르자 또다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다. 우리 팀원들의 직장이 걸린 대회에서 그토록 노골적인 방해를 주최 측으로부터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모두 자양분이 되었다. 그때의 시련으로 팀원들은 더 끈끈해졌고 이렇게 새로운 사업까지 진행할 수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경쟁에 앞서 담판을 지을 필요가 있다. 지저분한 싸움을 기꺼이 받아주겠으니 나중에 있을 후회는 오롯이 본인들의 몫이라는 일종의 경고를 하기 위해서.

“괜히 긁어 부스럼이 아니겠습니까?”

“뭐 그럴지도 모릅니다. 상대가 된다면요. 자만해선 안 되겠지만, 지금 저들은 이빨 빠진 호랑이나 다름없습니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하는 협박은 꽤 잘 먹힙니다.”

“아, 그렇게 되는군요.”

“저들은 우리가 하는 행동에 하나하나 모두 의미를 부여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느라 아마 스스로 자멸할 겁니다. 굳이 우리가 손쓰지 않아도 말이죠.”

같이 모닥불을 쬐고 있는 덩치 큰 사람이 외투를 걷어 품속의 칼을 보여준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그 사람이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움츠러들고 신경이 바짝 곤두설 것이다. 언제라도 칼을 뽑아 자신을 찌를 수 있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혀서.

나는 다미야에게 그 칼을 보여줄 작정이었다. 물론 아직 2주나 남은 이야기지만.

* * *

“전무님, 그런데 정말 이 사업에 그 정도 가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다른 업체에 넘기시는 게 어떠실지… 다른 계열사에 이번 회의 내용이 흘러 들어가면 뒷말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상진의 곁을 지키던 중년의 사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회의실에 있던 사람 중 상진과 그 분식집을 지으려는 건물주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자신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저 친분으로 이렇게 인력과 자금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기에 상진에게 소신껏 발언한 것이다.

“아마 루데건설과 대현건설 중 한 곳에서 이 수주를 따내면 3억은 고사하고 몇 배나 많은 비용을 투입해서 건물을 지을 겁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저희는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개인적인 친분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다른 그룹은 어떨지 모르나 우리는 반드시 그 건물을 지어야 합니다. 할아버지의 기념관 앞에 다른 그룹에서 지은 건물이 마주 보고 있다면 수십 년의 치욕이 될 테니까요.”

“그 기념관은 드랍 된 프로젝트 아닙니까?”

“아버지는 포기하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사우디 신도시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나면 다시 시작하라 하실 겁니다. 뭐, 원래 계획했던 부지보다는 조금 줄어들겠지만요.”

조동욱 회장은 칠전팔기라는 사자성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확신이 선 일에는 좀처럼 포기하는 법이 없었고 그렇기에 지금의 삼정그룹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상진은 더욱이 이번 사업을 놓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번 수주를 실패하면 안 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네?”

“아버지께서도 당산마을의 문방구는 자주 들르십니다. 그 문방구 옆에 대현그룹의 건물이라도 올라갔다간 가실 때마다 여기로 찾아오셔서 한바탕 푸닥거리를 하실 겁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들들조차 독대를 꺼리고 한 달에 한 번 밥을 먹는 것이 전부인데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호통을 치신다면 버텨낼 자신이 없었던 사내는 급격하게 얼굴이 굳어졌다.

“그렇다면 남은 건 조철진 전무의 팀밖에 없습니다, 전무님. 예전부터 대기업 입찰 제한이 걸린 사업 빼고는 가리는 것 없이 죄다 도맡아 했었고 정리된 자료 중에 쓸 만한 도면을 찾아 활용하는 것도 그 팀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철진이 처음 건설에 들어가기 전부터 측근으로 움직이던 팀이다. 그 미련할 정도로 충성심이 높은 팀은 공교롭게도 업무 실적 또한 건설사 내에 그 어느 부서보다 뛰어났다. 왜 그런 유능한 인재들인 형 밑에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상진이 용납할 수 없다 으름장을 놓았으나 중년의 사내는 다시 한번 조철진 상무의 팀을 쓰자 청했다.

‘형이 정말 돌아올까? 아니면 영영 삼정그룹 사람이 아닌 삶을 살려고 하는 걸까? 형은 나를 아는데 나는 형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구나.’

남보다 못한 사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그 무심한 눈빛은 번번이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했기에 매번 속내를 들키는 기분이라 더욱 멀리했었다.

이제야 형을 조금 이해한다 싶었는데 일이 이리 되고 나니 배신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정말 떠난 것이라면, 임 차장이 있는 팀은 내가 품어야 한다.’

“저는 잠시 갈 곳이 있습니다.”

“로비에 차를 가져오라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혼자 가겠습니다. 수주하면 시공에 들어갈 인력부터 알아봐 주세요.”

차에 오른 상진은 곧장 차를 몰고 익숙한 길을 따라 달렸다. 퇴근하면 매일같이 가던 코스이기에 네비게이션도 필요치 않았다.

그렇게 도착한 사무실 문을 열자 상진은 어렵지 않게 형을 찾을 수 있었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잔뜩 어깨를 웅크려 어색하게 키보드를 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 덕에 심각했던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터져 나오는 실소를 참아야 했다.

“뭐야? 어쩐 일이야?”

“잠깐 시간 되지?”

“무슨 일인데? 아니다. 이것 봐라. 어때? 죽이지?”

“이게 뭔데?”

“다음 차기작에 나올 우리 회사 미니카. 내가 한번 디자인해 봤는데 다들 괜찮다고 해서 애니메이션에 엑스트라로 나올 거야. 잘 봐봐. 이게 그림을 내가 손으로 그리긴 했는데 이렇게 캐두로 따로 만들고 있어.”

제품 디자인이야 당연히 외주를 맡기면 된다.

하지만 철진은 굳이 업무가 끝난 시간에 짬을 내서 미니카 디자인을 손수 그렸다며 자랑스럽게 화면을 돌려 상진에게 보여주었다.

상진이 짐작건대 평소 공부와 담을 쌓았던 터라 주말에 종일 머리를 싸매고 더듬더듬 배웠던 캐두로 딴에는 최선을 다한 작품이었다. 그렇게 어설프게 만든 도면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모습은 여느 의욕 넘치는 신입사원의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왜 온 거야?”

“그냥.”

“그냥?”

“문방구에 가는 길에 들렀어. 이제 갈게.”

“싱겁기는. 그래, 나도 마치면 바로 문방구로 갈 거야.”

“형.”

“왜 또.”

자꾸 집중을 방해하는 터라 조금 짜증 섞인 되물음이 돌아왔으나 정작 자신을 부른 상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조목조목 따지고 반박해 형이 다시 회사로 돌아와야 한다 설득할 요량이었으나 어설픈 이미지를 보여주며 자랑하는 모습을 본 뒤에 맥이 풀려버린 탓이다.

상진은 오랜만에 형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 눈동자에는 조금의 미련도 보이지 않았다. 매번 생각 없이 일을 벌이고 경솔하게 판단한다 여겼던 형은 그 누구보다 생각이 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임 차장 팀들이 이번에 민호 형 분식집을 맡을 거야. 그거 말해주려고 왔어.”

“네 사람인데 굳이 그런 거 일일이 말 안 해줘도 돼. 알아서 잘 챙겨. 이제 업무 시간이니까 가봐.”

대충 손을 흔드는 철진의 성의 없는 인사를 끝으로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사무실을 나오게 된 상진은 차에 올랐으나 시동 버튼도 누르지 않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철없이 군 건 나였어.’

상진은 자신의 이정표가 끝났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희미하게 밝혀주던 형의 발자국은 이제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부터는 스스로가 이정표가 되어야 했다.

줄곧 어리광을 피운 사람이 자신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은 상진의 얼굴도 어느덧 철진과 닮아 있었다.

그리고 마음이 차분하게 정리되자 남은 일이 떠올랐다. 상진은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여보세요? 아, 임 차장님. 다른 게 아니라 맡아주셔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형이 좋아하는 과자나 음료수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냥 입사 선물 겸 사다 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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