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54화
지금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환한 조명 아래 드러난 콘서트홀은 우리를 찾아온 팬분들로 가득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찾아왔는지 좌석이 꽉 차다 못해 뒤쪽에 서 계시는 분들도 계실 정도.
정신이 멍했다
“이게 어떻게 된…….”
말문이 막힌 나는 환호성을 지르는 관객들을 보다가 동생들을 돌아보았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얼굴들.
리혁이는 아예 지호의 팔을 붙잡고 숨었을 정도였다.
그럴 만도 하지.
이게 정말 우리 쇼케이스를 보러 와 준 팬들이라고?
원래라면 나오자마자 인사를 해야 했지만 우리 모두 당황해서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MC가 웃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아이고, 우리 뉴블랙 친구들이 많이 당황했나 봐요. 말도 못 하고 있네. 일단 당황스럽더라도 팬분들에게 인사부터 드려 볼까요?
“아, 네!”
겨우 정신을 차린 내가 동생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우리에게 다시금 환호성이 날아들었다.
여전히 얼떨떨하다.
“이거 실제 상황이죠? 깜짝 카메라라던가. 그런 거 아니고.”
내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무대 밑에서 뭐라고 말하는 윤석환의 말을 MC가 전달해 왔다.
-담당 실장님께서 말하시기를 이 정도 규모로 몰래 카메라 하려면 인건비가 많이 들어서 못 한다고 걱정 말라시네요.
팬들은 물론이고 우리도 웃음보가 터졌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웃고 나니 바짝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이게 다 우리 팬들이라는 거지?
아까 기자 분들이 있을 때만 해도 널널했던 홀이 지금은 꽉 차서 발 디딜 틈 하나 없어 보였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표정.
수백 쌍의 눈동자들이 밤하늘에 별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것도 우리를 바라보면서.
MC가 감탄한 듯 말했다.
-제가 여러 쇼케이스를 다니면서 사회를 봐 왔지만, 데뷔 쇼케이스부터 이 정도로 팬분들이 많은 적은 처음입니다. 어우, 팬분들이 지르는 함성소리만 들어도 귀가 저릿저릿하네요.
그가 웃으며 물었다.
-제가 듣기로 총, 정확히 몇 분이라고 했죠, 매니저님? 아. 네. 총 239명이 와 주셨다고 합니다.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역대 데뷔 쇼케이스 관객 숫자 중에 여섯 손가락 안에는 들지 않을까 싶네요.
그의 말에 동생들과 내가 서로를 쳐다보며 경악했다.
239명?
데뷔 전부터 리얼리티로 팬을 끌어모은 스트릿 보이즈도 100명 남짓한 숫자였다.
그보다 두 배.
이게 말이 되는 일일까.
만약 석환 형이 무대에 오르기 전에 너희 무대를 보러 200명 넘게 와 줄 거라고 말했다면 절대 안 믿었을걸.
그런데 지금 눈앞에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고생했어]나 [이제는 함께 걷자]고 쓰여 있는 슬로건을 들고 우리에게 환호를 보내 주는 팬분들.
그 열기가 피부를 타고 전달되어 왔다.
“…….”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눈물샘 쪽이 뜨끈해지면서 괜히 눈을 깜빡거리게 되고, 턱 밑을 타고 올라온 떨림이 쫙 퍼져 나간다.
입술을 앙다물었다.
안 그러면 곧바로 눈물이 터질 거 같아서.
심장이 어찌나 세게 뛰는지 귓가에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비주가 먹먹한 표정으로 객석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저희를 보러 오신 분들인 건가요? 저희가…….
뒷말은 생략했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저희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많이들…’이지 않을까. 그 심정을 백 프로 이해하기에 우리도 말없이 웃었다.
MC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저는 멤버들이 팬분들이 몇 분이나 오는지 미리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다들 전혀 모르고 있었나 봐요.
-실장님이 안 알려 주셔서요.
중현이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걱정을 많이 하기는 했는데, 감사해요. 저희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팬분들이 몇 분이 오든, 한 분이 오시더라도 감사하다고.
듣기 좋은 중저음 목소리 때문일까.
팬들이 함성을 질렀다.
중현이가 말을 멈추고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곰 같은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마치 ‘뭐지. 왜 내가 말을 하는데 사람들이 환호를 해 주지?’라고 하는 것 같다.
중현이는 그러다가 이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한 분이 오셔도 감사한 거라는 말은 우주 형이 한 말씀이에요.
-중현아. 그거 우주 형이 아니고 내가 한 말이야.
-아. 너였어?
눈을 깜빡거리는 우리 팀 래퍼의 표정에 팬들이 웃었다. 중현이가 객석을 바라보며 곧바로 정정했다.
-그렇대요. 이 친구 말에 따르면.
-아니, 내가 한 말 맞다니까.
-그래. 네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아니이…….
실시간으로 환장하는 비주의 표정에 모두가 웃었다.
중현이가 비주한테 잔뜩 잔소리나 듣겠다고 생각하며 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정식으로 인사를 해야 할 때였다.
눈치를 챈 MC가 곧바로 솜씨 좋게 운을 띄웠다.
-멤버들도 팬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한마디씩 있을 텐데, 우주 군을 필두로 한 명씩 들어 볼까요.
“네. 안녕하세요. 팬 여러분. 우주입니다.”
위에 서 있으니 사람들의 표정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각양각색.
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모두 나를 향해 같은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무한한 호감.
음방 무대나 행사 무대는 많이 올랐지만, 순수하게 우리만 보러 온 팬들의 눈빛은 처음이었다.
이런 순간을 꿈꿔왔던 건데.
실제로 이런 눈빛을 받으니 정말…….
“고마워요.”
떨려 나오는 목소리에도 열정 가득한 반응이 돌아왔다.
“썸씽 이후로 약 세 달 만인가요, 우리?”
-네!
“정말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황송한 기분이에요. 아직도 얼떨떨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아도 될까, 싶으면서도 이 순간 자체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노파심에 다시 여쭤보는 건데 정말 저희 팬 맞으시죠?”
여기저기서 기분 좋은 웃음이 흘러나왔다.
“정말 믿기 힘들 만큼 기분이 좋아요. 데뷔 전부터 음악 방송에 돌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팬분들이 많이 계셨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오프라인에서 팬분들을 뵌 건 오늘이 처음이기도 하고. 그래서 지금 기분이 어떠냐면요. 어…….”
-숨넘어갈 것 같아요, 우주 형.
중현이의 말에 내가 심호흡을 하자 다른 멤버들과 팬들이 웃었다.
그렇게 고민하길 3초.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지 생각하던 나는 적당한 문장을 찾아냈다.
“고마워요. 여러분 덕에 오늘이 제 인생 최고의 날이 됐어요.”
곧바로 날아오는 함성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로.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 * *
쇼케이스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끝났다! 끝났다!”
“어우, 귀 아파. 야. 왕지호. 좀 조용히 해.”
“왜여. 신나잖아여. 우리 리혁이도 말로는 이러면서 얼굴은 웃고 있는 거 알아여?”
“……손 떼라.”
리혁이의 턱에다 손가락으로 욜로롤롤 하고 있는 우리 막내의 모습에 형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환하게 웃는 내게 못마땅한 얼굴이 돌아온다.
“아. 웃지 말고 좀 뭐라고 해요. 맨날 얘가 놀리면 지켜보기만 하고.”
“음. 그런가.”
내가 지호를 불렀다.
“지호야.”
“넹?”
“잘했어. 계속해.”
“아, 진짜!”
깔깔 웃는 맏형과 막내의 모습에 리혁이가 짜증 난다는 듯 눈을 감았다.
내가 그 어깨에 팔꿈치를 올리며 말했다.
“야. 내가 음방 나갔을 때 너네가 수플레 가지고 놀렸던 거 생각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냐.”
“그때 진짜 재미있었는데.”
“저 이번에도 따라할 수 있어여.”
“아, 하지 마.”
“나 놀릴 때는 가만히 있으시던 분이? 야, 왕지호. 빨리 해 봐.”
“네, 잠시만여!”
이럴 때는 죽이 척척 맞는 동생 라인.
헛기침을 하던 연기파 막내가 이내 감정을 잡고 말한다.
흡사 누군가의 표정을 따라 하듯이, 느끼한 표정으로 눈썹을 모은다.
“여러분 덕에 오늘이 제 인생 최고의 날이 됐어요.”
“푸하하하!”
“그렇게 혀 짧은 소리로 안 했거든? 야. 니네 진짜….”
운전석에 앉은 민기 형과 석환 형까지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로 폭소를 하고 있는 비주에게 나는 억울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진짜 저렇게 느끼하게 말했어?”
“괜찮아요. 형. 팬분들이 좋아하셨잖아요.”
비주의 말에 옆에서 과자 봉지를 뒤적이던 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내게 과자를 내밀었다.
“뭐냐.”
“위로예요.”
“……은근히 맥이는 거 같다니까.”
“아. 먹여 줄까요?”
스윗한 표정으로 과자를 내 입에 넣어 주는 우리 팀 래퍼 때문에 나는 그만 웃어 버렸다.
“그래도 기분 진짜 좋다. 우리 뮤직카페 끝나고 행사 돌 때만 해도 그랬잖아. 팬분들 생기면 정말 기분 좋을 것 같다고. 근데 그때 상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좋은 거 같아.”
“맞아여. 되게 하늘 나는 거 같구.”
“아직도 안 믿긴다니까요. 239명이라니. 나는 실장님이 기획한 깜짝 카메라인 줄 알았어요.”
듣고 있던 매니저가 웃었다.
“인건비 때문에 안 된다니까. 너희 앨범 만든다고 돈을 퍼부었는데 그런 데 쓸 돈이 있겠냐. 솔직히 나도 처음에 티켓팅 할 때 250명 정원이 꽉 찰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야. 나도 데뷔 쇼케이스에서 이런 건 처음 봤어.”
“우리도 얼떨떨해. 대체 어디서 팬이 생긴 거지?”
“저희 되게 막 이것저것 많이 하긴 했잖아여. 나름 음방도 1위로 한 달 동안 돌고, 뮤직카페도 나가구, 행사도 많이 돌았구.”
“그런가.”
“아니면 스트릿 보이즈 때문 아니에요? 걔네가 우리 디스한 다음부터 팬카페 반응이 확 달아오른 거 같은데.”
리혁이가 그런 말을 할 때, 우리는 스트릿 보이즈라는 키워드에 문득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랐다.
“아. 맞다! 우리 오늘 음원 공개잖아여.”
정식 데뷔일은 내일이지만 회사에서 일정을 앞당겨서 오늘 저녁 8시에 음원이 공개된다고 들었다.
현재 시각은 저녁 9시 30분.
공개된 음원은 현재 어떤 반응을 얻고 있을지 궁금했던 우리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러는 동안 백미러를 통해서 우리를 보고 있는 윤석환의 눈이 묘하게 웃고 있다.
“차트 훑어볼게요.”
이윽고 비주의 핸드폰 앞에 모인 우리가 1위부터 100위까지 차례대로 하나씩 훑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1위~50위는 당연히 없고.
그리고 50~100위권 페이지로 넘어갔을 때, 우리의 눈이 주르륵 내려갔다가 일정 시점에 멈췄다.
올라갔다가 내려가기를 여러 번.
[98위. 뉴블랙 - 불꽃놀이]
화면에 떠오른 숫자를 보면서 우리는 눈을 깜빡였다.
“……이거 맞는 건가?”
“맞는 거 같은데요.”
“진짜겠지?”
“당연히 진짜죠.”
서로를 빤히 바라보던 멤버들.
“…….”
이윽고 우리는 자동차가 떠나가라 환호성을 질렀다.
* * *
DNS 미디어 사옥.
늦은 시각이었지만 회의실에는 직원들이 가득했다.
하나같이 심각한 얼굴들.
특히나 상석에 앉아 있는 중년인은 아예 얼굴이 흙빛이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노트북에는 노란 망고 심볼이 있는 음원 차트가 떠 있었다.
[88위. 뉴블랙 - 불꽃놀이]
밤 10시를 기해 98위로 진입한 뉴블랙의 데뷔곡은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지금, 88위까지 올라와 있었다.
DNS 미디어의 대표, 임현식 사장의 눈이 차트를 훑었다.
[24위. 장소원X뉴블랙 - Something]
[88위. 뉴블랙 - 불꽃놀이]
[97위. Street Boys - Hunger]
가뜩이나 험상궂은 임 사장의 낯빛이 굳어지자, 회의실에 있는 직원들이 모두 침을 삼켰다.
그러는 동안 홍보팀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저희가 홍보를 했던 게 역효과가 난 것 같습니다. 라이벌 구도를 조성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 그 이후로 Hunger의 디스 랩이나 한조의 천재 발언 등이 저쪽 팬덤을 결집시켰고요. 라이트한 이들이 적극 팬층으로 편입한 것 같습니다.”
“…….”
“뮤직카페나 행사, 방송 노출 등으로 잠재적 팬층이 꽤 있었던 뉴블랙의 팬덤 규모를 간과한 게 패착으로 보입니다. 스트릿 보이즈와 팬 유입 비율은 비슷하지만 아무래도 규모의 차이가 있다 보니…….”
“그러니까.”
골이 지끈거린다는 듯 임 사장이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모든 게 결과적으로는 레몬 엔터 좋은 일만 시켰다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100위 안에 차트인을 했다며 축포를 쏘아 올렸던 일주일 전과는 완전 딴판인 분위기였다.
부서장들이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저희 A&R은 그래서 노래를 바꾸면 안 된다고…….”
“홍보팀 입장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노이즈 마케팅을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현장을 뛰는 매니저 입장에서…….”
“아니, 노래에도 없던 디스 가사 기어이 넣자고 애한테 가사 바꾸게 했던 게 2팀 의견 아니었어요? 인터뷰 멘트까지 각본 써놓고 이제 와서 발뺌하시면….”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며 언성을 높이는 이들을 보면서 임현식 사장은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골치가 아팠다.
뉴블랙이 어떤 성과를 거둔다고 스트릿 보이즈의 성적이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연예계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평상시에 시청률이 20프로 나오는 드라마가 있다면 그 드라마는 성공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동시간대에 50프로짜리가 있다면?
그것을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중소 기획사에서 내보낸 보이그룹, 그것도 자작곡이 첫날 80위권으로 차트인을 해 버렸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는 상상도 안 되는 상황.
그때, 스마트폰 화면이 반짝였다.
대머리 [박규호 님이 기프티콘을 보냈습니다.]
대머리 [^^]
핸드폰을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임현식 사장은 축하한다는 짧은 답문을 보냈다.
‘빌어먹을.’
죽 쒀서 개 줬다는 표현이 오늘만큼 와닿는 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