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2)화 (7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72화

“접촉 사고라니.”

흘러내리는 안경을 고쳐 쓰며, 윤석환이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이 근처 사거리에서 트럭이랑 접촉 사고가 났답니다.”

“거기 사람들은? 다친 데는 없대?”

“예, 그냥 차량끼리 조금 긁힌 정도인데 상대측이 뒷목 붙잡고 난리를 피우고 있다나 봐요.”

“……재수 없게 걸렸네.”

윤석환이 혀를 찼다.

말하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연예인을 담당하다 보면 종종 생기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쪽 매니저에 대한 동정심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이거 일 났네.”

시장까지 직접 행차하고, 기다리는 관객들이 가득한 상황에서 피날레를 장식할 스타 가수가 못 올 수도 있다니.

상황이 좋지 않았다.

혹여 뉴블랙에게 불똥이 튀진 않을지 계산하고 있을 때, 행사대행사 측 팀장이 혼비백산한 얼굴로 달려왔다.

“시, 실장님! 윤 실장님!”

어찌나 급한지 우산도 없이 달려온 팀장이 숨을 몰아쉬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강 들으셨을 텐데, 지금 틴스피릿이 접촉…….”

“예, 접촉 사고 때문에 못 오고 있다고요.”

“그쪽 현장 매니저랑 방금 통화를 마쳤는데, 위치는 파악이 돼서 저희가 차량을 수배하기로 했어요. 아마 40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윤석환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상대가 말을 꺼낸 이유가 짐작 갔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2분 뒤면 뉴블랙이 내려올 테고, 다음은 신인 걸그룹 블링크의 순서였다.

그쪽 레퍼토리를 아무리 끌어도 10분.

즉, 틴스피릿이 올 때까지 또 30분이 빈다.

대행사 측 팀장이 애타는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어떻게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저희도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

“블링크 쪽에는 여쭤보셨나요?”

“자기들도 도와주고 싶은데, 이번이 1집 활동이라 공연을 할 레퍼토리가 하나도 없답니다.”

“다른 가수들은요?”

“다들 떠나서 지금 뉴블랙 말고는 없는 상황이에요. 몇몇은 이미 톨게이트까지 들어갔답니다. 일단 급하게 송보형 씨에게 와 달라고 부탁은 했는데 그쪽도 최소 30분은 걸린다고…….”

그러니 뉴블랙이 어떻게 도와줄 수 없냐는 이야기였다.

애매하다.

평소라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텐데 오늘은 이래저래 상황이 복잡했다.

일단 비.

가뜩이나 젖어서 달달 떠는 애들을 더 세웠다간 감기에 걸려 앞으로 스케줄에 지장이 생길지도 모른다.

게다가 관객 구성도 최악이다.

아이돌에 호의적이지 않은 중노년 층에, 불쾌한 날씨도 참아 가며 제 가수를 기다리고 있는 틴스피릿 팬들.

자칫했다간 괜히 좋은 일 하고도 욕만 먹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쉽사리 내뺄 수도 없었다.

남은 가수가 그들밖에 없는 상황에, 자주 얼굴을 마주치는 관계자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걸 감수할 만큼 반대급부가 있다면 모를까.

고민이 느껴졌는지 대행사 팀장이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이번 일만 어떻게 도와주시면 저희가 섭섭지 않게 잘 챙겨드리겠습니다. 뉴블랙도 행사 많이 뛰고, 저희도 이번 일을 잘 해결하고. 서로 좋게좋게. 제가 조만간 자리 한번 마련해 볼 테니까, 지금 일은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알겠습니다.”

“예?”

“제가 한번 멤버들에게 이야기는 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장담은 드리지 못합니다. 제 독단으로 결정 가능한 사안이 아니라서요. 회사 방침상 소속 아티스트가 거부하면 저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감사하죠!”

무르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는지, 부담스럽게 굴어대는 팀장에게 윤석환은 비즈니스적인 미소만 지었다.

마침내 무대가 끝나고 다섯 멤버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내려왔다.

윤석환은 간단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사람 생각하는 게 다 똑같은지, 이야기가 이어질 때마다 안타까움, 당황, 난처함 등이 스쳐간다.

“너희 생각은 어때?”

잠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던 멤버들은 이내 한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은 지금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   *   *

당황스럽다.

무대에서 넘어지는 애들을 겨우 붙잡아 주고, 인이어로 흘러드는 비바람까지 참아 가면서 행사를 마쳤는데.

이번엔 무대 땜빵을 서라니.

난처한 표정을 지었더니 석환 형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의견을 물어볼까 했는데 나랑 똑같은 생각인 것 같다.

이거, 계륵이다.

하고 싶지 않은데, 안 할 수도 없다.

아까부터 나를 부담스럽게 바라보는 대행사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저, 팀장님이라고 하셨죠?”

“예.”

“저희가 정확히 몇 분을 때워야 하는 건가요?”

“송보형 씨가 대타로 올 때까지 치면 15분 내외일 거예요.”

15분이라.

“5분 정도는 사회자님이 멘트로 때울 거고요.”

다급하게 말을 꺼낸다.

고작 1집을 낸 신인 가수를 대한다기에는 지나치게 정중한 태도였다.

그만큼 상황이 급박하다는 뜻이겠지.

초조한 얼굴을 일별하며 빠르게 동생들의 의사를 확인했다.

“너희는 어때? 의견 있어?”

넷이서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대표자로 비주가 나섰다.

“몇 곡이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면 도와드리는 쪽이 나을 것 같아요. 어차피 이미 젖은 거 한 번 더 젖어도 나쁘지 않잖아요.”

어차피 거절하기 난감한 상황이니 기왕이면 좋게 승낙하자는 것이 멤버들의 의견인 듯했다.

내 생각도 그와 같았다.

대행사 분을 바라보며 입술을 뗐다.

“일단 저희가 무대에 올라가보긴 할게요.”

“고마워요! 정말!”

내 손을 덥석 붙잡던 대행사 팀장이 빗속을 미친듯이 달려나갔다.

기쁨이 좀 격하신 모양이었다.

손에 남아 있는 온기에 짠한 마음이 일었지만 아주 잠시뿐이었다.

눈앞이 캄캄하다.

길거리에서 깡통을 내어 둔 할아버지에게 돈을 적선했는데 집에 갈 차비가 떨어진 상황이라고 할까.

이걸 어쩐다.

우리가 직접 때워야 할 시간은 10분.

보통 노래 한 곡당 3분이니 총 세 곡이다.

필사적으로 멘트를 늘리면 두 곡으로 되겠지만 그러면 15분 중에 멘트로 8분을 때워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해 버렸다간 관객들의 눈에서 나온 레이저 빔에 먼지처럼 분해될걸.

결국에는 세 곡 레퍼토리.

그럼 뭘 해야 하지?

당장 MR을 건네줘야 하는데 뭘 부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기회다, 우주야. 기회야.

기왕이면 이걸 기회로 잘 살려 보자고 다짐했지만, 마음만 앞서지 머리는 여전히 멍했다.

압박감 때문이었다.

최근에 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게 언제더라.

아마 쇼케 음향 사고 때 같은데.

그때처럼 이번에도 혹시 뭔가 힌트를 얻진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런 상황은 내 손으로 해결해야지.

그렇게 머리를 끙끙 싸매고 고민할 때.

덥석.

내 어깨로 손이 올라왔다.

멤버 중에 이 각도로 손을 올릴 수 있는 이는 한 명뿐이다.

“형.”

“응?”

“너무 걱정하지 마요.”

중현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이번에는 우리랑 같이 고민하면 되잖아요.”

“…….”

“지난번 데뷔 쇼케이스 때야 형 혼자 있던 거지만, 여기서는 다 같이 생각할 시간이 있잖아요.”

듣기 좋은 중저음이 귓가를 간질인다.

“그러니까, 우리 같이 생각해 봐요.”

“…….”

이건 좀 감동인데.

“잘돼도 같이 잘되고. 망해도 같이 망하는 거죠. 좋지 않아요?”

끝에 가서 와장창이긴 하지만.

“뭐야, 난 망하기 싫어요.”

“저두여.”

“중현아, 당연히 잘돼야지.”

“아니, 난 우주 형이 부담 가지지 말라고 한 얘기지.”

티격태격하는 모습들에 웃음이 나왔다.

“어? 웃는다. 형들. 이제 우주 형이 웃어여.”

“와 씨, 다행이다.”

“……왜들 그래? 내 표정이 이상했어?”

“방금 너무 심각했어요. 세상 모든 고민 혼자 짊어진 사람처럼. 무슨 지구 멸망하는 줄 알았다니까요.”

리혁이가 툭 던지듯 말했다.

“중현이 형 말대로 이번에는 우리같이 생각해 봐요. 세 곡 정도 라인업 세워야 하는 거잖아요. 지금 우리가 남은 시간이…….”

“10분 남았어, 리혁아.”

“얼른 정해야겠네요.”

“실장님이 방금 스태프분한테 물어보고 왔는데 20분 정도 있대여. 아나운서님이 최대한 시간 때우는 동안 뭐 부를지 생각하라고, 얼른 고민을 해 보래여.”

20분 동안, 10분간 할 노래 3곡을 골라야 하는 상황.

20103이라.

이런 제목으로 노래를 만들면 괜찮겠다,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만큼 내 머릿속은 백짓장처럼 변해 있었다.

그래도 아까보다 마음은 편하다.

혼자 결정하는 게 아니라, 같이 의견을 나눌 멤버들이 있었기에.

“그럼 리스트를 추려 보자.”

본격적으로 방송 활동을 했던 때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부터 준비했던 노래라면 몇 곡 안 된다.

1. Something

2. Between

3. 밤바다

의외로 더 나올 줄 알았는데, 이게 전부였다.

“이게 다네.”

“정해졌네여. 세 곡.”

“아니지. 비트윈은 사실상 썸씽을 편곡한 수준이라서 바로 이어서 하면 관객들이 싫어할 거야.”

“우리 뮤카 때 둘 다 했잖아여?”

“야, 왕지호. 그땐 토크 텀이 길었잖아.”

둘 중 하나만 해야 하는 상황에서 빠지게 된 건 당연히 비트윈이었다.

인지도 면에서 넘사벽으로 차이가 나니까.

당장 음원 차트에서도 보기 힘든 비트윈과 달리 썸씽은 여전히 불꽃놀이보다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썸씽은 우리끼리 행사를 다닐 용도로 연습한 경험이 많았다.

“그럼 나머지 한 곡은 뭘로 때우죠?”

“쇼케 때처럼 불꽃놀이 어쿠스틱으로, 아 좀 그러네여. 방금 불꽃놀이 하고 내려 왔으니까.”

“최대한 아이돌 색깔은 빼야 해.”

내가 말했다.

“지금 비 때문에 순서가 꼬여서 스트릿 보이즈, 우리, 블링크 이렇게 세 팀 연속으로 나갔잖아. 관객 연령층도 좀 높아서 많이들 지루해할 거야. 아이돌 노래를 더 했다간 반응도 안 좋을 거고.”

“흐음…….”

동생들도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고 있을 때, 지호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그때 생각 나네여.”

“뭐가?”

“형이 연말평가 때여, 무대도 때와 시간을 고려하라고 했잖아여.”

내가 예전에 말했던 시간, 장소, 상황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마음이 급해서 평소 무대를 구상할 때 고려하는 세 가지 요소를 깜빡하고 있었다.

머리를 바쁘게 굴렸다.

야심한 밤, 미끄러운 바닥, 아이돌 가수에 지루해하는 상황.

또 뭐가 있지?

아.

그게 있구나.

“석환 형, 다음 땜빵으로 올 사람이 누구라고 했지?”

“트로트 가수 송보형 씨.”

순간 아!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괜찮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 확인해야 할 게 하나 있었다.

“민기 형, 죄송한데 차에 있는 제 가방에서 USB 좀 꺼내 와 주실 수 있나요?”

“USB?”

“네, 검은 파우치 안에 들어 있을 거예요. 그, 옆에 있는 까만 상자는 건드, 아, 신경 안 쓰셔도 돼요. USB만요.”

곧바로 차량으로 달려간 민기 형이 USB를 가져오는 동안 나는 동생들에게 내 아이디어를 짧게 설명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나쁘진 않네요.”

가장 까다로운 리혁이마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MR이 담긴 USB를 현장 스탭에게 전달하며 간단한 유의사항을 전달하는 동안, 우리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확인했다.

“네, 송보형 씨 매니저님 되, 아. 본인이 운전하세요? 언제쯤 오시는지 좀 여쭤보려고요. 예예, 넉넉하게 15분이요? 예,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예, 빨리 와 주실수록 좋죠.”

통화를 끝낸 석환 형이 우리에게 OK를 그려 보였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난 터였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준비를 해서 퀄리티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어떻게든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고마워, 얘들아.”

다시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두 매니저 형이 든 우산 아래 모였을 때.

“너희 덕분에 내…….”

“저기요. 지금 시간 없으니까 오글거리는 멘트는 나중에 들어요.”

“맞아여.”

“음? 난 듣고 싶었는데.”

“이따 끝나고 얘기해요, 우리.”

“……진짜 서운하다, 정말.”

깔깔거리는 동생들을 보며 눈을 흘기던 나도 얼마 안 가 그 웃음에 동참했다.

덕분에 긴장이 좀 풀리는 느낌이었다.

작게 화이팅! 하고 외친 우리는 무대로 다시 올라갔다.

*   *   *

행사장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못했다.

MC를 맡은 아나운서 정효진은 싸늘하게 변한 분위기에 마른침을 삼켰다.

틴스피릿이 조금 늦게 올 거란 말을 한 뒤였다.

대다수는 불만스러운 표정이고, 곳곳에 포진한 아이돌 팬들은 굉장히 까칠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런 난관 속에서, 그녀는 능숙한 MC답게 재치 있는 멘트나 급조된 경품 이벤트를 이용해 분위기를 살려 냈다.

물론 그 분위기도 오래가진 못했다.

“이거 대체 언제 끝나려고 저러나. 지금 나온다는 애들은 또 누군데?”

“아까 나왔던 애들인가 봐.”

“아이돌 걔네? 또?”

나들이를 나온 가족 관람객들이 불만을 토했다.

오늘 나온 아이돌 중에 일반 대중이 아는 그룹은 틴스피릿밖에 없었다.

특히 10대 자녀를 둔 부모라면 더더욱.

해당 연령대에서 틴스피릿은 TNT와 비견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그러하기에 이름 모를 신인들의 공연을 견뎌 낸 건, 얼마 안 가 TV에서 보던 유명한 애들을 실물로 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것조차 늦게 보게 생겼다.

특히나 노년층은 불만이 상당해서, 뽕짝이나 틀 것이지 뭔 요상망측한 젊은 놈들이 또 나오냐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물론 가장 격한 감정을 품은 이들은 따로 있었다.

‘아, 이게 뭐야. 진짜.’

서울에서 1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온 틴스피릿의 팬들은 바짝 열이 오른 상태였다.

특히 사진을 찍어서 홈페이지에 올리려고 카메라 세팅에 공을 들였던 홈마들은 더더욱.

몇몇 과격한 팬들은 주최 측에게 언성을 높이고 싶었지만, 이내 주변에 포진한 PBS나 경기TV 카메라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괜히 구설수에 올랐다간 팬덤 이미지도 나빠지니까.

가뜩이나 지난번 백화점 행사에서 한 팬이 신인 걸그룹에게 내뱉은 욕설 때문에 한차례 이슈가 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다들 말없이 SNS로만 분노를 표출하고 있을 때.

무대 앞줄에선 다른 의미로 난리가 나고 있었다.

“…….”

가장 뷰가 좋은 천막 아래, 시장을 보필하는 측근이나 수행원들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행사 관리가 참…….”

곁에 앉은 부인이 팔을 꾹 붙잡는 바람에 거기서 그쳤지만 김영건 시장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이게 뭐란 말인가.

비가 오는 것도 제대로 대비 못하고, 가수는 늦어지고, 게다가 순서 배치는 누가 했기에 4연속 아이돌이다.

오늘 축제는 그가 취임하고 나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첫 행사였다.

지난 6월 지방 선거에서 당선되어 시의원에서 시장으로 영전한 그였다.

이번에 열리는 축제가 전임 시장 때보다 못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만큼 임기 초에 불쾌한 상황은 없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고개를 슥 돌리는 시장의 모습에 수행원들이 재빨리 머리를 숙였지만, 그가 바라보는 건 관객들이었다.

한눈에 봐도 지루하고 짜증이 가득한 표정들.

‘이래 가지고 되겠나.’

티스푼인지 뭔지 하는 그룹이 와도 이 분위기는 살릴 수 없을 듯했다.

혀를 차며 다시 무대를 바라보았다.

비가 와서 흐릿한 날씨였지만, 그럼에도 눈에 확 띄는 외모를 지닌 아이돌 가수가 차분하게 무대 위로 올라온다.

부디.

잘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이 정도 분위기만이라도 유지하게 해 달라고 바라고 있을 때.

김 시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왜 두 명만 올라온 거지?’

나머지는 그새 가 버렸나, 하며 중얼거릴 무렵 무대 스피커로부터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금 나오는 노래는 아이돌 음악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귀에 착 감기는 따스한 멜로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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