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6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하는.
우리 그룹에는 그런 사람이 넷이나 있다.
나 빼고 다들 어느 한 부분에서 이상한 포인트가 있다고 할까.
물론 그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한 명이 있긴 하지만, 우리 막내 역시 만만찮게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가끔 기특할 때 1퍼센트의 순간을 빼면 99퍼센트는 ‘저저저, 아이고 저것 좀 보소’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성격.
그만큼 이해가 안 가는 게 우리 막내였는데,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눈에 훤히 보였다.
“연기?”
내가 웃으며 물었다.
“연기는 갑자기 왜?”
“아녀, 그냥 물어보는 거예여. 작년에 형한테 사기 당했던 생각도 나구. 그때도 2년 동안 노래 쉬었다고 했는데 잘했잖아여.”
“노래는 내가 더 잘해.”
“형한텐 안 물어봤어여.”
잠시 끼어들었던 리혁이가 입술을 비틀며 ‘일본어 첫걸음’에 시선을 돌렸다.
그 전에 나를 흘깃 바라보았다.
‘대답 잘해야 되는 거 알죠?’하는 눈빛이다.
“암튼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여. 형이 또 알고 보면 잘하고 그러는 건데, 제가 또 막 잘한다고 설치는 걸 수도 있으니까…….”
그거 보는 것 같다.
사탕을 손에 쥐고 누가 빼앗아 갈까 봐 전전긍긍하는 어린 애.
사실 노래, 춤, 랩, 작곡과 같은 분야에서 우리 막내는 딱히 두각을 드러내는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었다.
본인은 감춘다고 감추지만, 옆에서 보는 사람들 눈에는 다 티가 난다.
연말 평가 때에도 모두에게 역할이 하나씩 돌아갈 때 본인도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서 역할을 만들어 할 정도니까.
물론 그 역할이 간식 담당이라는 사뭇 귀여운 것이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만큼 도움이 되고 싶다는 거니까.
그리고 그룹에서 일인분을 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연기는 지호에게 있어 형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장점이었다.
얘가 원래 배우 지망이었다고 했나.
배우 하려고 여기 왔다가 아이돌로 빠지게 된 케이스라고 들었는데.
그렇다고 배우의 꿈을 놓은 건 아니었다.
지금도 개인 레슨 시간이 되면 다들 랩이나 작곡 등을 배우러 갈 때, 얘는 연기 레슨을 받으러 갔으니까.
연기라는 것이 지호에게 어느 정도로 의미가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들여다보이는 속에 든 것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글쎄. 연기는 나도 배워 본 적이 없어서.”
“음? 왜여?”
지호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TJ 같은 대형 기획사들 보면 막 될성부른 떡갈비? 그.”
“떡잎. 멍청아.”
고개를 홱 돌리는 막내의 모습에 리혁이가 씩 웃으며 책을 들어 올렸다.
지호가 헛기침하며 말했다.
“암튼 잘생긴 사람들 보면 연기 레슨 시키고 그런다면서여.”
“음, 그건 아마 배우 쪽 풀이 넓은 MOP일 거고. TJ 같은 경우는 그런 식으로 가는 시스템이 아니라서.”
4대 기획사는 저마다 특색이 하나씩 있다.
인성을 중시하는 SNH, 힙합과 연계성을 중시하는 KM, 비주얼의 MOP, 그리고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TJ.
TJ는 회사 자체가 퍼포먼스 덕후였다.
비주얼이고 뭐고 그룹의 전체적인 춤선이 어긋난다 싶으면, 춤을 잘 추는 사람이라도 바로 데뷔조에서 뺄 만큼.
괜히 내가 TNT 데뷔조에 들었을 때 연습생들 사이에서 비리 아니냐는 소문이 돈 게 아니었다.
“거긴 워낙 연습생한테 안무나 노래 관련으로 투자를 많이 하는 회사라서, 연기 레슨까지 따로 시키진 않았어. 뭐, 배우 지망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결론은 간단했다.
“배워 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네, 연기.”
“진짜여?”
“넌 얼마나 배웠는데?”
지호가 손가락을 꼽더니 말했다.
“중딩 때부터 학원에서 배웠으니까… 3년이여.”
“오래했네.”
“동화구연 학원 다닌 거 포함하면 10년이에여.”
책을 읽고 있던 리혁이와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지호만 진지한 얼굴이었다.
“진심으로 한 얘긴데…….”
“그래, 알아.”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연기는 나도 배워보지 않아서 잘 몰라. 여러모로 부족하긴 할 거고. 그러니까 너한테 도움도 받고 그래야지.”
“저만 믿어여, 형.”
“잘 부탁드려요, 선배님.”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 가고 있을 때, 리혁이가 책을 내려놓고는 물었다.
“그런데 진짜 배워본 적 없어요?”
“뭐?”
“연기요.”
“응.”
…이라고 대답을 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회사에 있을 때 레슨을 딱 한 번 받아 본 적이 있기는 한데.”
“그래여?”
“쌤이 뭐라고 하긴 했는데.”
“뭐라고 했는데요?”
궁금해하는 두 녀석의 얼굴을 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때 연기 선생님이 뭐라고 했더라.
그냥 툭, 던지듯 말했는데.
“그냥, 나쁘지 않다던데?”
* * *
일정이 끝나고 우리는 매니저로부터 전달 사항을 들었다.
“너희 광고 CF 촬영 일정 잡혔어. 촬영장은 영등포에 있는 한 남자 중학교에서 진행하게 될 거고.”
로케이션은 확정됐고.
“아마 이틀에 나눠서 찍을 거야.”
“이틀?”
“너희랑 같이 에버드림 모델 된 애들 알지? 블링크.”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블링크.
우리랑 연차가 비슷한 신인으로, 올해 데뷔한 신인 걸그룹 중에서 퍼포먼스로 가장 좋은 평을 얻는 이들이었다.
“걔네가 촬영장에서 좀 사고를 친 모양이야. 대사도 간단해 보이고 가벼운 컨셉의 CF이고 하니까, 준비를 좀 소홀히 한 것 같은데. 그것 때문에 현장에서 계속 실수를 연발했나 봐.”
우리가 상상만 했던 그 악몽을 블링크는 직접 체험한 모양이었다.
“TJ 김 과장한테 얘기 들었는데, 최악이었대. 감독은 쌍욕 퍼붓기 직전까지 가 버리고. 광고주 측에선 임원까지 찾아와서 다들 얼어붙어 있고. 그 사이에서 눈치 보느라 죽는 줄 알았다더라.”
그러곤 전화로 준비 잘 좀 부탁한다고 통 사정을 한 모양이었다.
그날 화보 촬영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딱딱하게 굳어 있던 광고 대행사 직원들을 떠올리곤 쓴웃음을 지었다.
석환 형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우리 쪽에서도 계획을 바꿔서 준비를 더 철저히 하려고, 너희 다 같이 연기 레슨도 시킬 거야.”
“레슨?”
“우리 회사 전속으로 담당하시는 분이 있어. 연기 학원 선생님이신데 하루 정도 초빙해서 할 거야. 지호는 얼굴 아는 분이지?”
“아, 네.”
궁금해하는 얼굴로 바라보는 형들에게 지호가 말했다.
“제가 회사 들어왔을 때부터 가르쳐 주시던 분이에여. 되게 착하시구 좋아여. 연기 관해서는 까다로우신데…….”
“아무튼 그분이 담당을 맡아 주시기로 했는데.”
석환 형이 당부하듯 말했다.
“일회성 레슨이지만 너희가 준비를 잘해 줬으면 해. 하루 가르치고 말 거 안 하신다는 거, 겨우 부탁한 거니까.”
“네.”
“그리고…….”
안경 너머 우리를 훑던 시선이 지호에게 머물렀다.
“특히, 지호.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잘한다고 방심하지 말고, 연기 배웠으니까 다른 형들보다 더 열심히 준비해서 오라고.”
“네.”
“그럼 부탁한다.”
매니저가 자리를 떠나고 나서 우린 한자리에 모여 의논을 시작했다.
주축은 지호였다.
“일단 우리끼리 연습하기 전에 배역을 나눠야 할 것 같아여.”
우리가 다섯 명이니, 당연히 우리가 맡을 배역도 다섯 개였다.
짧고 간단한 웹 드라마 형식을 취하고 있는 CF라서 그런지 사소한 거라도 대사가 조금 붙어 있긴 했다.
전학생
반장
모범생
운동부
학생5
비중은 다들 엇비슷했다.
공평하게 20프로씩 나눈 느낌.
배역을 나누는 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살짝 까다로운 씬이 하나 끼어 있는 전학생을 지호가 가져간 다음에는 각자 본인 평소 캐릭터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고르면 됐으니까.
“아니.”
물론,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운동부, 전학생인데 왜 나만 학생5인 거예요?”
* * *
밤 11시.
동생들이 모두 숙소로 돌아간 그 시각, 나는 작업실에 앉아서 신디사이저를 멍하니 두드리고 있었다.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열심히~ 일을 하네.”
뚠뚠.
성당에서 듣는 것처럼 웅장한 오르간 소리.
과연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신디사이저다웠다.
내가 이렇게 쓰고 있는 걸 안다면 경영지원팀장님이 달려와서 내 멱살을 잡고 탈탈 흔드실걸.
개미송과 개똥벌레를 연달아서 흥얼거리던 나는 뺨을 톡톡 두드렸다.
“아, 안 떠오르네…….”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은 곡 작업이었다.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내 예상으로 10월이나 11월쯤 우리 2집 앨범을 발매될 것 같다.
이번에는 타이틀을 작곡가들한테 공모할 듯한데.
회사에서는 작곡돌 이미지 때문인지 2집에 내 수록곡 하나를 넣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노래를 하나 만들어 내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뭘로 하지.”
청량한 여름 시즌송은 이미 불꽃놀이로 보여줬고.
따스한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는 밤바다로 보여줬고.
이제는 뭘 한담.
사람마다 작곡 방식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일단 또렷한 이미지가 떠올라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파였다.
예컨대 어릴 적 부모님과 봤던 불꽃놀이라던가, 어릴 적 할머니 무르팍에 누워서 봤던 밤하늘처럼.
“음…….”
그동안 너무 나한테 포커싱을 맞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동생들을 주제로 한번 만들어 볼까.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다.
뉴블랙의 전체적인 색깔을 살린다고 생각하면, 결국 불꽃놀이와 크게 다르지 않는 게 나올 것 같다고 할까.
그렇다면 멤버 하나마다 다뤄야 하는데.
멤버 개인의 음악적인 색깔은 잘 모르기도 하고.
그리고 내가 누군가 하나를 토대로 노래를 만든다면, 다른 동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이 안 됐기 때문이었다.
“어렵네.”
멤버들과 관계가 깊어질수록 이런 사소한 부분이 신경이 쓰인다.
감정적으로 예민한 부분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리혁이랑 밤바다를 듀엣으로 부를 때마다 동생들이 은근히 부러움을 내비치곤 했다.
그게 나쁜 건 아니다.
사람인 이상 당연하지.
나도 같이 하고 싶고, 나도 저렇게 무대에 서서 관심을 받고 싶고.
그랬기에 누구를 위주로 노래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는 말은 섣불리 꺼내기 어려웠다.
신중히 생각해야 할 부분이었다.
1시간 가까이 신디사이저를 두드리며 근본 없는 노래를 열창하다가 결국 시간을 두고 고민을 더 해 보기로 결정했다.
일단은 다른 할 일이 있었으니까.
신디사이저 전원을 끄고는 작업실 소파에 걸터앉았다.
[‘EverDream’ CF — ‘마법학교’ 편]
아까 차량 안에서 헤져라 봤던 광고 콘티가 손에 들렸다.
내 눈이 열 번째 씬에 향했다.
#10.
[VIDEO]
전학생 앞에 다가간 반장
[AUDIO]
반장 : 안녕, 네가 전학생이구나?
내가 맡은 ‘반장’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는 구간부터 시작해서 끝까지.
그 부분을 반복해서 보면서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읽으면 되나.
“안녕, 네가 전학생이구나?”
어우, 부끄러워.
내가 리혁이었으면 순간 귀가 벌게졌을 듯한 느낌이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그 이후에 있는 다른 대사들도 같이 읽어 봤는데, 기분은 크게 나아지진 않았다.
역시 연기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구나.
무대에 올라서 노래 부르고 춤 추는 거랑은 또 다른 분야 같다.
계속 대사를 반복해 봤는데 그냥 입에 달라붙기는 하는데, 크게 잘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예전에 TJ에서 들었듯이 그냥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고 할까.
뭐.
반대로 말하자면 머리를 써야 한다는 거지.
연습생일 때부터 이런저런 단점을 커버하려고 매번 무대 연출 등에 머리를 쓰다 보니, 어떤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습관이었다.
감정을 잡는 게 어려우면…….
다른 부분을 잘 살려야지.
예컨대 표정이라든가, 몸을 쓰는 거.
그런 생각을 하면서 A4 용지에다가 각 씬 별로 대강 어떤 동작이 들어갈지 상상하면서 썼다.
그다음은 쉬웠다.
내게 있는 능력을 통해서, 그 씬에 어울리는 표정이라든가, 동작을 연습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니까.
한창을 그렇게 서서 걸어갔다가, 손을 움직였다가 하는 식으로 연습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비주가 보였다.
“어, 비주야.”
“형, 저 왔어요.”
살짝 지친 얼굴로 웃는 동생의 뒤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키가 작고, 얼굴이 몹시 하얀 걸그룹 멤버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내 인사에 상대가 눈매를 좁혔다.
“좀 친해진 것 같은데. 이제 그냥 반말하면 안 돼요?”
“제가 이게 편해서요.”
데이지였다.
스칼렛의 래퍼이자 막내.
비주와 같이 들어오는 그 모습에 내가 물었다.
“둘이 왜 같이 와?”
“아, 나윤이는 올라오다가 만났어요.”
비주가 티슈로 조심스럽게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떼며 말했다.
잔뜩 젖어 있는 걸 보니 격한 안무를 연습한 모양이었다.
“연습 끝내고 숙소 가려다가, 형이랑 같이 가려고 올라왔어요. 요즘 밤길도 위험하고 해서-”
“기특하네. 내 걱정도 해주고.”
“형이랑 같이 가면 안전할 것 같아서요.”
“…….”
“엇.”
비주와 내가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동안 웃고 난 후.
작업실을 방문한 손님에게 눈길을 주었다.
“선배님은 어쩐 일이세요?”
“그냥 믹스테잎 작업하고 있다가 심심해서 놀러 왔어요.”
“쉬셔야 되지 않아요? 바쁘신데 이런 데까지…….”
“잠깐 쉬는 시간이라 괜찮아요.”
안 가네.
자꾸 우리 작업실 인테리어를 보며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 뭔가 불안하다.
저쪽이 쓰는 작업실에는 핑크 소파에 얼룩무늬 쿠션이 있거든.
그러던 이가 테이블에 놓인 걸 발견했다.
“이건 뭐예요? ‘손을 흔든다?’ ‘마법을 쓴다?’.”
“그거 광고 찍을 콘티야.”
비주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슥 뺏더니 나한테 건네주었다.
의외다.
리혁이나 지호가 대상이었으면 ‘형, 제가 뺏어도 괜찮을까요?’이러고 물어보고 그랬을 텐데, 우리 그룹 사람이 아닌 이들에게는 단호박인 느낌이라고 할까.
“와, 치사하다. 오빠. 이게 무슨 비밀이라고 같은 회사 사람끼리.”
상대가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뮤비 때 카메오도 서 주고 그랬는데.”
우리 막내만 찹쌀떡 같은 느낌인 줄 알았는데, 여기도 몽실몽실한 떡이 하나 있다.
데이지가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촬영장에 초밥도 들고 갔지, 그리고 내가 간식 사먹으라고 십만 원도 줬는데.”
“십만 원?”
불현듯 기억이 하나 떠오른다.
올해 초에 저쪽이 짐 나르느라 고생했다고 10만 원을 줬는데, 내가 동생들한테 5만 원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어엇.
비주가 뭐라고 말을 듣기 전에 잽싸게 내가 끼어들었다.
“그래서, 연습은 잘 됐어?”
“네?”
“춤 연습하고 올라온 거 아니야?”
“아, 네. 손동작이 안 되는 게 하나 있어서요. 형, 이거 보실래요?”
비주가 자리에 일어나서는 무용수처럼 동작을 취했다.
마치 마술사가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에게 손을 휘저으며 고개를 꾸벅 숙일 때 하듯이 우아한 동작이었다.
“우와.”
“이게 너무 별로여서요.”
“…….”
그러곤 똑같은 걸 보여 준다.
“어때요?”
“…큰 차이 없어 보이는데?”
“느낌의 차이가 있지 않아요? 나긋나긋한데 강한 거랑, 강한데 나긋나긋한 느낌 차이가 있잖아요. 형은 이해하죠?”
아니, 전혀.
내가 데이지 쪽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는데 그쪽도 고개를 젓는다.
혼자서 한참을 손동작을 하며 고민하던 비주가 이내 화제를 전환했다.
“형은 그럼 지금까지 연기 연습하고 있었던 거예요?”
“응, 곡 작업 좀 하다가.”
나 역시도 방금 비주 덕분에 떠오른 게 하나 있었다.
“참, 비주야. 나도 한번 봐 줄래? 아, 선배님도 같이요.”
“뭐요? 연기?”
“네, 계속 연습했는데 아무래도 잘 안 돼서… 어색하다고 해야 하나.”
둘이 괜찮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처음이잖아요.”
“맞아요, 나도 연기 못해요.”
“음, 일단 보여 줄게.”
격려의 미소를 보내는 이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단 내가 나오는 신부터 대강 준비가 된 초반 두세 개 장면을 보여 주었다.
몸을 움직이면서 대사를 읊고.
이제 세 번째 신을…….
하려고 하다가 말았다.
소파에 앉아서 눈만 깜빡거리는 붕어 두 마리 때문에.
“……?”
이건 또 무슨 반응이지.
“왜들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