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7)화 (8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87화

야심한 시각.

선우주가 작업실을 찾은 두 사람에게 연기가 어떤지 봐 달라고 할 때, 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지켜봤다.

“음, 일단 보여 줄게.”

작업실 한가운데 서서는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김비주는 조용히 웃었다.

무대에 올라가면 날아다니는 형이 고작 광고 연기 때문에 긴장을 하는 모습이 신기했다.

데이지와 함께 손뼉을 쳐 주며 격려를 할 때였다.

‘……어?’

갑자기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 머쓱하게 뺨을 긁적이던 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다.

같은 얼굴인데 표정이 달랐다.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오만한 느낌을 주는 인상.

단순히 얼굴뿐만 아니라 디테일적인 부분에서도 그가 평소 알던 선우주와는 다른 인물이었다.

느긋한 동작.

지체 높은 이들이 그러하듯 신체의 동작을 최소화한 몸놀림이었다.

춤을 특기로 삼은 그였기에 누구보다 그런 몸짓의 차이가 확 다가왔다.

“저 사람 뭐야, 오빠?”

데이지가 툭 치며 물었지만 김비주로서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 선우주가 작업실 벽을 향해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우뚝 멈춰 선다.

“안녕.”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

선우주가 평소에 내는 톤보다 조금 낮았지만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네가 전학생이구나?”

한 편의 상황극처럼 선우주는 허공을 향해 대사를 이어 나갔다. 부끄러워하거나 그런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목소리가 전학생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김비주는 소파 구석에 놨던 광고 콘티를 손에 들었다.

잔뜩 닳아버린 종이 끝이 찢어지려는 걸 조심하며, 대사를 마음속으로 읊었다.

“우리 학교는 처음이지?”

-으응, 안녕.

“이 학교에는 무슨 특기로 들어온 거야? 마법? 마법약 제조? 아니면…….”

대화문을 읽어 내려가는데, 김비주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대사를 할 시간까지 고려해서 연습한 건지 모르겠지만 실제 대화처럼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빼꼼 들이밀었던 데이지도 이내 그 사정을 알고서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김비주는 눈앞에 서 있는 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뭐지.’

볼 때마다 다재다능한 형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한계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못하는 게 하나쯤은 있겠지, 하고.

게다가 최근에 본인 입으로 ‘TJ 시절 연기에 대해선 그냥 나쁘지 않다는 평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연기만큼은 예외라고 생각했다.

‘또 사기 당했네.’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역시.

저 형이 자기 뭐 못한다고 그런 말 할 때는 믿어 주는 게 아닌데.

“……음?”

두 남녀가 이상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선우주의 연기가 멈췄다.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거만하던 표정은 여유로운 얼굴로.

느긋한 발걸음은 가볍게.

다른 사람을 흉내 내던 절도 있던 몸짓이 유연하게 변했다.

다시 작업실의 공기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느낌을 받을 때, 선우주가 물었다.

“왜들 그래요?”

왜 그러냐니.

그들이 도리어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   *   *

“연기에 재능이 있다는 소리 못 들었어요?”

작업실 문을 잠그고 나오는 내게 데이지가 물었다.

비주도 고개를 끄덕였다.

“형, 진짜 연기 배워 본 적 없어요?”

왜들 이러지.

“네, 재능이 있다는 소리는 오늘 처음 들어 봤고요. 비주 네 질문에 답하자면 딱 한 번 배워봤어.”

“그분이 뭐라고 안 했어요?”

“형이 아이돌로 간다는 거 안 말리고 그랬어요?”

“어째 둘이 죽이 잘 맞는데.”

“일단 대답부터 해요.”

“형, 진심으로 물어보는 거예요.”

얼른 바깥으로 나가려는데 두 꼬꼬마가 내 길을 가로막았다.

웃음이 나왔다.

“아니.”

생수로 목을 축이고는 말했다.

“내가 안에서 어쨌길래 둘 다 반응이 그래?”

데이지가 눈가를 찡그리며 물었다.

“진짜 몰라서 묻는 거예요?”

“네.”

“어색하다고, 못한다고 했잖아요.”

“어색하고, 못한 거 맞아요.”

솔직히 내가 뭘 그리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평소 동작 모방 능력으로 이것저것 연구한 것을 응용해서 한 거였는데.

이게 연기처럼 느껴졌나?

특별하게, 감정을 싣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뭐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결론을 내렸다.

“뭐, 반응이 좋으니 다행이네요.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촬영장 가서 할 걱정 하나 덜었네.”

덤덤한 내 반응에 오히려 둘이 가슴을 팡팡 치는 분위기였다.

좀 과한 반응인걸.

이게 만약 노래나 춤과 같은 무대 준비였다면 이런 반응에 굉장히 들떴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그렇다.

‘와, 잘됐다’하는 정도라고 할까.

연기 쪽은 내 관심 밖이었으니까.

한참을 꼬꼬마들에게 시달린 후, 자기 작업실로 돌아가는 데이지와 작별 인사를 나눌 때였다.

“참, 선배님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있었는데.”

“뭔데요?”

비주에게 잠깐 양해를 구하고 단둘이 이야기를 나눴다.

“스칼렛도 매번 앨범마다 자작곡 넣으시잖아요. 제가 알기로 네 곡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다섯 개 돼요. 믹스테잎까지 합치면.”

“궁금한 게 있는데, 선배님들은 자작곡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요? 예를 들어 드럼이랑 베이스로 찍은 8마디가 있다고 치면 거기에 노래 주제나 색깔을 입히잖아요. 그 아이디어를 내는 방식이…….”

“아, 그런 거요?”

데이지가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그러세요?”

“아니, 너무 당연한 걸 묻는 거 같아서.”

“네?”

“멤버들끼리 평소 하고 싶다고 한 컨셉 없어요?”

아.

“언니들이랑 수다 떨면서 얘기해요. 우리 이번에는 정장 입고 간지 쩌는 걸로 가 보자. 시원하게 내지르는 걸로 가자. 아니면, 난 이번엔 공주님 한번 해 보고 싶다. 이런 식으로 하고 싶은 거 얘기하고 그러죠.”

“…….”

“자작곡이잖아요? 우리끼리 만드는 건데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죠.”

순간 머리가 멍했다.

나 바보인가.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었다.

멤버들이 평소에 하고 싶은 컨셉이 있다면 그걸 가지고 작업하면 되는데.

1시간 동안 우리 음악적 색깔이 어쩌고저쩌고 하고 베토벤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던 걸 생각하니 뭔가 부끄럽다.

나를 멀뚱멀뚱 올려다보는 이에게 웃으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도움이 됐어요.”

“고마우면 말 놔요. 오빠.”

“다음에 만나면 그럴게요.”

데이지가 피식 웃으며 문을 닫았다.

작업실 테이블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 이를 일별하며 나는 복도 끝에서 기다리는 비주에게 다가갔다.

“둘이 무슨 얘기했어요, 형?”

“우리 2집에 넣을 수록곡 주제 있잖아. 그거 때문에 조언을 구했어.”

“나윤이가 이상한 얘기는 안 했죠?”

“그냥 자작곡이니까 멤버들끼리 하고 싶은 거 하라던데.”

우리 둘은 계단을 내려갔다.

“비주야. 넌 해 보고 싶은 그런 컨셉 있어?”

“음… 아! 저 있어요!”

최근 들어서 이렇게 활짝 웃는 얼굴은 처음인걸.

비주가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내더니 영상 하나를 보여 주었다.

“미국의 댄서들이 찍은 영상인데요.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모션 캡처로 찍은 칼군무래요. 신나는 음악인데, 요렇게 댄서들이 다 같이 모여서 군무로 다다다, 모든 동작을 딱 맞추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엇박으로…….”

“비주야.”

“……리혁이가 힘들겠죠?”

“죽을걸.”

내가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그것도 쉽게 죽진 않을 것 같아. 혼자 죽을 수 없다고 우리 모두를 제거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갈 거야.”

“그래도 다 같이 가긴 하겠네요.”

“비주야. 이런 얘기 들으면서 흡족해하는 표정은 짓지 말고. 형 무섭다.”

“저는 어딜 가든 다 좋아요. 다 같이 있으면.”

“아니, 지금 저승 얘기하는 거잖아.”

“아, 딴생각하다가 잘못 들었어요.”

비주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우리 다 같이 오래 살아요, 형.”

“너도 가끔 중현이 친구인 게 이해가 된다니까.”

비주가 나를 슥 바라보았다.

일상적으로 쳐다보는 거지만 얘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눈 흘김이었다.

둘이 같이 웃으며 회사 밖을 나섰다.

“얼른 집에 가요, 형.”

“그래.”

그렇게 하루를 기분 좋게 끝내려는데, 비주가 그동안 깜빡하고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는 듯 아, 소리를 냈다.

“형, 근데 십만 원은 무슨 얘기예요?”

*   *   *

그다음 날. 연습실.

나는 그 두 사람이 왜 그토록 잘한다고 칭찬을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둘이 확 튀네.”

모두가 옹기종기 스마트폰을 둘러싼 가운데 리혁이가 말했다.

“왕지호랑 둘이 무슨 드라마 찍는 줄 알았어요.”

“와, 둘이 진짜 잘하네.”

“그렇지? 내가 우주 형 잘한다고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다들 안 믿었잖아.”

비주가 굉장히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다 같이 모여서 보고 있는 비디오의 정체는 바로 우리끼리 처음 해 본 대본 리딩 녹화였다.

카메라에 어떤 식으로 보일지 알아야 했기에 스마트폰으로 찍은 녹화분을 보며 모니터링을 했다.

자기 모습을 보면서 으,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면서 비웃으며 놀리기도 하고.

전반적으로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중점이 된 사항은 바로 나의 연기였다.

내가 나올 때마다 중현이가 오오오 하며 감탄했다. 방해된다는 듯 리혁이가 바라보니 우와아 하며 감탄사를 바꿨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까 리딩 연습을 할 때는 다들 눈을 끔뻑거리길래 왜 저러지 했는데, 화면에 비친 나를 보는 순간 이해했다.

그럴싸해 보였다.

연기에 대한 내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본격적으로 도전해 보질 않아서.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능력을 통해서 습득한 표정, 동작 등이 내 부족한 연기를 한껏 치장해 주고 있었다.

그 배역에 딱 어울리는 표정, 동작, 목소리가 합쳐지니 누가 봐도 엄청 잘하는 걸로 보일 수밖에 없지.

그랬기에 동생들의 감탄 어린 반응이 살짝 부담스러웠다.

감정 연기 한 번 도전하면 밑천 제대로 털릴 것 같은데…….

“와, 이거 다시 봐도 신기하네. 중현이 형, 잠깐 앞으로 돌려 봐요.”

“여기?”

“겁나 신기하네. 어떻게 이런 표정을 지었지? 형은 돼요?”

“중현아, 하지 마.”

“근데 우주 형, 연기 안 배웠다면서요?”

내게 돌아온 질문에 어색하게 답했다.

“안 배웠지.”

그러면서 눈치 없이 감탄을 하고 있는 동생들을 향해 눈짓을 했다.

중현이 빼고는 금세 다 알아들은 것 같았다.

내가 곁눈질로 가리킨 대상은 내 무르팍에 누워서 화면 속의 장면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막내였다.

내 각도에선 표정이 잘 안 보여서 모르겠다.

하지만 얄쌍한 목이라든가, 반팔 밖으로 드러난 팔다리 등을 통해서 그 근육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굉장히 이완되어 있는 척을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뻣뻣하게 굳어 있는.

이거 야단났네.

얘네가 자꾸 날 칭찬할 때마다 내 무릎에 얹혀 있는 지호의 머리통이 점점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가뜩이나 ‘내가 연기는 그래도 형들보다 더 잘해!’ 이러고 있는 애인데 자꾸 날 칭찬하면 얘가 뭐가 되냐.

그것도 3년이나 배웠다는 애인데, 한 번도 안 배웠다는 애 보고 잘한다고 띄워 주고 그러면.

그런 내 의도를 파악했는지 비주와 리혁이가 화제를 돌렸다.

“아씨, 인정하긴 싫은데 왕지호 겁나 잘하네. 야, 왜 이렇게 잘하냐?”

어때요? 하는 리혁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

“그래도 확실히 지호가 연기 경력자라서 그런지 눈에 제일 띄나 봐요. 딕션이나 발성도 제일 좋고.”

비주에게도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잘하지, 지호가 드라마 나오면 다운 받아서 볼 것 같아.”

마지막은 중현이었다.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 탓에 그냥 느낀 대로 말한 듯했는데, 유일하게 지호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들 뒤늦게 막내의 기분을 알아차리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와, 개꿀잼.”

막내가 히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다 잘한 것 같아여. 리혁이 형이 진짜 못하기는 하는데.”

“야, 왕지호.”

“그리고 형한테 사기 당했어여, 저.”

“나?”

“넹, 연기 못한다고 막 그러더니 엄살이었잖아여. 한 번도 안 배워 봤다고 하더니 또 엄청 잘하네여.”

“대사가 간단하니까 할 수 있었던 거지. 감정 연기 들어가면 어림도 없었을 거야.”

“몰라여, 저 사기 당했어여.”

다들 평소처럼 돌아온 막내를 보면서 안심하고 있는 가운데, 나 혼자서 뺨을 긁적이고 있었다.

뭔가 본심이 아닌 것 같은데.

차라리 평소 내가 놀릴 때마다 흥 했던 것처럼 삐치기라도 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나오니 당황스럽다.

자기 것에 대한 욕망이 가득한 애인데.

자기가 제일 잘하고, 그리고 업으로 삼으려는 분야에 갑자기 한 번도 배운 적 없다는 누군가 들어온다면 기분이 어떨까.

속상해해야 정상인데.

“왜 그래여, 형?”

“아냐. 아무것도.”

이렇게 웃고 있으니 불안했다.

*   *   *

문제가 발생한 건 연기 레슨 때였다.

지호를 가르치고 있다는 선생님이었는데, 그녀는 우리가 대본 리딩을 하는 걸 말없이 지켜보았다.

그리고 끝나자마자, 어떠냐는 듯 바라보는 막내에게 애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호야.”

“넹?”

“오늘 연기에 좀 힘이 과하게 들어간 것 같은데. 그렇게 한 이유가 있니?”

“……아녀.”

풀이 죽은 목소리가 대답하는 가운데 선생의 눈길이 나에게 향했다.

제발.

이상한 소리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바랄 때.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 했지?”

“우주입니다, 선생님.”

“잘하더라. 이 정도면 연기 쪽으로 나갔어도 될 것 같은데.”

“……감사합니다.”

“처음이라도 들었는데, 정말 어디서 배운 적이 없는 거야?”

그러고선 5분 동안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 댔는데, 바로 맞은편에 막내가 보이는 나로선 죽을 맛이었다.

그래도 문제가 될 부분은 없다고 안심하고 있을 때.

연기 선생이 광고 콘티를 보며 눈매를 좁혔다.

“배역은 너희끼리 나눈 거야?”

“아, 네.”

“으음…….”

그녀가 미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주연을 잘못 고른 거 같은데.”

순간 당황해서 헛바람을 삼켰다.

아니.

바로 옆에 자기 제자가 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말에 형체가 있다면 레슨 선생의 입에서 나온 말을 도로 넣어 버리고 싶었지만 이미 막내의 귀에는 들린 뒤였다.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오늘 하루 내내 생글거리고 있던 막내의 얼굴이 잔뜩 금이 가 있었다.

*   *   *

뉴블랙 숙소.

레슨이 끝나고 나서, 하루 종일 형들에게 둘러싸여서 선생 욕과 우리 막내 최고란 말을 1분마다 한 번씩 들었던 왕지호였다.

야심한 밤.

왕지호는 커튼을 들춰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달빛에 몸을 적시며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고 그 생각이 어디에 이르렀을 때, 왕지호는 추리닝 바지를 입고 주섬주섬 핸드폰을 챙겨서 내려왔다.

이윽고 숙소를 나가는 문이 조심스럽게 닫혔다.

바로 그때.

“뭐야.”

자는 척을 하고 있었던 네 형이 동시에 일어났다.

“쟤 어디 가는 거야?”

*   *   *

“너 안 자고 있었냐?”

“형도요?”

“다들 안 잤어?”

“아니, 지호가 자는 척하고 있길래.”

6개월 가까이 한 방에 잠을 자던 사이다 보니 자는 척하는지 진짜 자는 건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다들 아까 일이 신경 쓰여서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리혁이가 바지를 갈아입었다.

“이 미친놈이… 어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가출을!”

“가출 아냐.”

내가 말했다.

“얘 쫄보라서 어디 못 가.”

“형, 그래도 일단 나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안 그래도 나가려고 했어. 중현아, 너 쟤랑 숙소 근처 많이 돌아다녔잖아. 요 근처 갈 만한 데 있어?”

“몇 군데 있기는 해요.”

다 같이 옷을 챙겨 입고는, 숙소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가던 우리는 이내 걸음을 멈춰야 했다.

1층 현관 앞 계단에 지호가 쭈그려 앉아 있기 때문이었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쉬는 빈도나, 팔로 눈가를 슥 문지르는 것을 보아하니 울고 있는 것 같다.

가슴이 짠해지려는 찰나.

호로록-

갑자기 들린 소리에 우리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뭔 소리야.

뒤에서 숨어서 지켜보던 우리가 다 같이 서로를 보고 있을 때, 지호가 다시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다시.

호로록-

이윽고 각도를 조금 틀어 지켜본 우리는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냈다.

우리 막내가 울면서 편의점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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