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1화
2014년 제8회 ‘찾아Dream 콘서트’는 전 출연진의 합창으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작곡가 하승주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안 가수들은 저마다 할당받은 소절을 읊었다.
각양각색의 응원봉을 든 관객들.
손을 흔들어 주는 아이돌 가수들.
노래를 한 소절, 한 소절 이어 나갈 때마다 현장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우리 역시 짧은 소절을 하나 부르며 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거대한 공연장을 둘러보니 가슴이 떨렸다.
소중한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와 이 풍경, 이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 주고 싶었다.
나를 반원형으로 쭉 둘러싼 공연장.
수만 개의 불빛이 은하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응원봉을 흔드는 관객, 옆사람과 대화하는 관객, 열띤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이 하나의 커다란 열기가 되어 우리를 장막처럼 둘러쌌다.
그리고 그 열기가 내가 부르는 노래와 가운데서 맞닥뜨리는 순간 마법 같은 감정이 몰려왔다.
목줄기를 타고 짜르르 올라오는 소름.
복잡한 생각은 사라지고 즐거움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니, 우리도 언젠가는 이런 무대에 서 보고 싶다고.
우리 수플레들과 함께 모여 우리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그런 욕심이 생겼다.
* * *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상기된 얼굴로 돌아다녔다.
콘서트는 끝났지만 사회생활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총감독님을 비롯해 무대 스탭들, 그리고 선배 가수들에게 일일이 눈도장을 찍으며 인사를 했다.
복도를 지나가는 스탭들에게도 고개를 꾸벅 숙이고 다녔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물론 우리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오늘 콘서트에 참여한 신인 세 팀이 모두 그렇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블링크.
틴스피릿의 대기실에서 나오던 5인조 걸그룹 멤버들과 문 앞에서 딱 마주쳤다.
평소 음방에서 하던 대로 우리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블링크 멤버들은 어색하게 웃더니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곤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뭐지.
보통 음방 복도에서 만나면 자기들이 먼저 5분 가까이 붙잡고 수다를 떨었던 것 같은데.
나만 이상함을 느낀 게 아닌지 중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방송국에서는 맨날 저 사람들이 먼저 말 걸고 그러지 않았어요?”
“지금 광고 때문에 그럴 걸요.”
리혁이의 말에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
“광고라니?”
“똑같이 에버드림 교복 광고 찍었잖아요. 우리는 보이그룹 편 찍고 저쪽은 걸그룹 편 찍고.”
“아….”
그제야 짐작이 됐다.
“찍은 건 둘 다 똑같이 찍었는데, 한쪽은 욕만 바가지로 먹고. 한쪽은 칭찬이랑 관심을 다 받고. 솔직히 속 뒤집어질 만하긴 하죠. 뭐, 우리였다면 안 그랬을 것 같지만.”
연습생 때 자주 보던 일이었다.
입사 동기로 친해졌다가, 월말 평가 성적이 나오면서 서서히 사이가 미묘해지는 그런 거 말이야.
우리가 껄끄럽게 느껴졌나 보다.
대기실에 노크를 하고 들어가 한창 짐을 챙기는 틴스피릿 멤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들은 바쁜 와중이었는데도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존나 반가워요’라면서.
행사 지각 사건 이후로 퍽 살가워진 태도였다.
그렇게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신인 그룹을 마주쳤다.
힙합 포스를 풍기는 9인조 아이돌 스트릿 보이즈였다.
부리부리한 눈 화장도 인상적이었지만, 걸어올 때마다 금목걸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안녕하세요, 스트릿 보이즈입니다!”
왜 우리한테 배꼽 인사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똑같이 배꼽 인사로 마주해주었다.
상대팀의 리더 한조가 내게 아는 척을 해 왔다.
“와, 오랜만이네요. 지난 달 행사를 끝으로 못 뵀던 것 같은데. 잘 지내셨어요?”
“네, 바쁘게 살았죠. 잘 지냈어요?”
잠시 근황에 대한 토크를 나누었다.
블링크랑 인사할 때보다 오히려 원조 라이벌인 스트릿 보이즈가 대화가 더 잘됐다.
서로 딱 경계선을 그어 놔서 거리 조절이 편했다.
양쪽 멤버들도 그런 생각인지 서로 예의를 차리며 대화를 하고 있지만 그리 어색해 보이진 않았다.
그때, 막내 윤기원이 우리 메인보컬에게 주섬주섬 음료수를 건넸다.
그걸 받아드는 리혁이가 짐짓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지켜보던 우리 막내가 코를 벌름거렸다.
지호는 꼭 뭔가 못마땅한 듯 윤기원과 리혁이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뭐지?
어딘지 미묘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그 표정을 따라 해 보려고 하는데.
한조와 눈이 딱 마주쳤다.
“…….”
마치 유치원에 참관 나온 엄마들끼리 눈이 마주치는 듯한, 그런 동질감이 느껴진다면 기분 탓일까.
한조가 민망한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음방 끝나고 얼굴도 잘 못 봤는데, 어째 익숙한 느낌이네요. 여기저기 얼굴도 나오시고 그러니까.”
“저희 소식을 알고 있었어요?”
“실장님이 매일 업데이트를 해 주세요.”
라디오에서 만났던 스트릿 보이즈 박 실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 엄청 의식하시던 그분이구나.
한조가 쓴웃음을 지었다.
“많이 들었어요. 뉴블랙이 이번에 교복 광고 찍는다더라. 추석 특집에 나온다더라. 다큐 찍는다고 하더라. 제가 아마 롤케이크 분들보다 더 잘 알 수도 있어요.”
“수플레예요.”
“앗….”
서로 마주보다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짧은 안부 인사를 건네고, 이내 각자 로드 매니저의 손에 이끌려 헤어졌다.
상대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축하 드려요. 실검 1위도 그렇고.”
“네, 이번에 나온다는 앨범 잘되시길 바랄게요.”
그걸 끝으로 우리도 콘서트장을 떠났다.
맨 처음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다들 떠나 한산해진 주차장이 우리를 반겼다.
밤이었지만 8월 말의 무더위는 여전했다.
각자 손선풍기를 쐬고 있을 때 두 놈이 시끌시끌했다.
“아, 왜!”
“줘 봐여. 얼른.”
“왜?”
“수상하잖아여. 음료수도 주고.”
“예전 일이 고마워서 준 거라니까.”
지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고마운 일이 언제인데 지금까지 감사 인사를 해여? 전 그렇게 은혜 바른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은혜로운’이나 ‘예의 바른’이겠지. 이 국어 파괴자 놈아.”
“암튼, 형한테 음료수를 준 건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예여.”
실컷 음모론을 설파하는 막내의 모습에 리혁이가 코웃음을 쳤다.
내가 혀를 내둘렀다.
“쟤네 안 싸우는 날이 없냐. 어제도 그러더니.”
“어제도 싸웠어요?”
“너 못 봤구나. 작업실에 놀러오더니 지들끼리 부먹, 찍먹 가지고 싸웠어.”
개판이었지.
한 놈은 자기 왕씨라고 중국 요리는 자기 말이 맞다고 그러고, 한 놈은 관련 논문을 가져왔다고 맞다고 그러고.
비주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희한한 걸로 싸웠네요.”
“그러니까, 부먹이 맞는 건데.”
“아니에요.”
중현이가 근엄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형. 찍먹이 진리에요.”
1대1로 갈리는 의견에 우리 둘이 동시에 한 명을 돌아보았다. 비주가 눈을 깜빡거렸다.
“비주, 너는?”
“저는 간장…….”
“에이.”
“에휴.”
“간장도 맛있어요…….”
곧바로 매니저까지 포함한 제1회 뉴블랙배 탕수육 토론이 벌어졌다.
완전 쓸데없는 이야기였지만, 콘서트가 끝나서 그런지 연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면서 계속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빼먹고 있는 것 같은데.
“근데 되게 친절하던데요.”
“누구?”
“스트릿 보이즈요.”
중현이가 말했다.
“다들 무섭게 생겨서 저도 모르게 목에 힘주고 있었거든요. 근데 말 나눠 보니까 다들 순한 거 같아요.”
“맞아여. 오늘도 지난번 주세한 때 일 가지고 축하하던데. 실검 1위 축하한다고.”
“어? 나도.”
“나도 그거 들었는데.”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조가 헤어지기 전에 내게 말했다. 실검 1위 축하한다고.
“……?”
여섯 명이 우뚝 멈춰 서서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그리고 3초 후.
“……!”
모두 동시에 스마트폰을 들었다.
인터넷을 키자, 익숙한 포털 화면과 함께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보였다.
1위 탈세.
아니고.
2위 집중호우.
아니고.
[3위] 뉴블랙 우주
……이건 또 뭔 일이라냐.
* * *
숙소로 가는 동안 얼떨떨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우리 매니저들도 당황한 모양이었다. 주말 이 시간에 집에 있던 홍보팀 직원들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이게 어찌된 일인지는 굳이 파악할 필요가 없었다.
포털 메인에 들어가자마자 큼지막한 기사 제목이 보였으니까.
-PBS 다큐 출연 뉴블랙 우주, ‘갈현동 의인’ 눈길
올라온 지 30분이 채 안 된 따끈따끈한 기사였다.
다큐에 나왔던 캡처 화면과 함께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요즘 서서히 이름을 알리는 한 신인 아이돌 그룹 멤버가 알고 보니 작년 수능 의인이었대요!’라는 내용이었다.
지금 이슈가 되는 연예인들의 탈세 논란처럼 댓글이 수천, 수만 개가 달린 건 아니지만 나름대로 이백여 개 가까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내가 입에 담기 부끄러운 선플이었다.
-KG그룹 홍보팀이 움직였어.
“아…….”
석환 형과 통화하면서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됐다.
-다큐 소식을 듣자마자 발 빠르게 움직였나 봐. 오늘 인터뷰 중에 KG 의인상을 탄 사람이 여럿 있거든. 기업 홍보를 할 좋은 기회인데, 마침 연예란에도 올릴 기사가 생긴 거니까.
KG그룹이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홍보 물량을 푼 모양이었다.
어쩐지 지금 쏟아지는 기사마다 은근히 ‘알고 보니 KG 의인상 수상한 갈현동 의인?’ 이런 기사들이 막 나오더라.
대기업에서 움직였다면 납득이 갔다.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형, 이거 봐요. 아이돌 커뮤니티에 형 글이 올라왔어요.”
“어? 저도요.”
내 생각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본 것 같은데…….
반응이 이 정도로 좋은 편이라면, 대체 다큐에서 내가 어떤 식으로 나오게 된 걸까?
그런 의문을 품을 때, 급수기를 누르는 고양이처럼 새로고침을 다다다 누르던 막내가 소리쳤다.
“올라왔어요! 다시 보기!”
우리 모두 화면을 바라보았다.
* * *
‘영웅(Hero)’에 대한 어원을 설명한 후 다큐멘터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동물의 왕국 이후로 다큐멘터리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되게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천만의 말씀이었다.
요즘 다큐는 세련되게 뽑아내는 것이 트렌드인 모양이었다.
다큐보다는 잘 연출된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우와, 저 태어나서 다큐 처음 봐여.”
생각보다 재미있는 것 같다며 막내가 감탄했다. 우리도 동의하며 조그마한 화면을 바라보았다.
전반부는 각 사건을 조명했다.
언덕길을 굴러가는 유모차를 향해 몸을 던진 대학생, 기름 탱크가 폭발하면서 번진 화재를 진압한 소방관들.
마지막으로 바로 ‘갈현동 의인 사건’이 등장했다.
으으.
내 손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기를 반복하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자료 화면이 나왔다.
멀찍이 하얀 차가 질주하고 있었다. 다른 부분이 어두워지면서 그 차를 보라는 듯 동그라미가 그려졌다.
또 다른 동그라미는 리어카 앞에서 통화를 하는 노인이었다.
장면이 바뀌어서 인터뷰를 하는 노인이 나왔다.
[최익현 / 당시 피해자]
어휴 아찔했지. 뭣도 모르고 통화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가 막 달려와서 나를 팍 밀치더라고. 처음에는 정신이 아득하고, 뭐여 그랬는데… 다음 순간, 딱!
다시 화면이 전환됐다.
노란 패딩을 입은 청년이 미친 듯이 달려 나가 노인을 밀쳤다.
[최익현 / 당시 피해자]
그 총각 없었으면 난 지금쯤 아랫세상 구경하고 있었을 거야.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투덜거리는 말투였지만 진심이 뚝뚝 묻어 나왔다.
흐뭇했다.
나도 모르게 뺨 근육이 도톰하게 올라가는 느낌.
이게 바로 착한 일을 한 기분이구나.
뿌듯함에 미소가 나왔다.
수능을 못 봐서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런 나에게 누가 속삭이는 것 같다.
그때 네가 몸을 날린 건 참 잘한 일이었다고.
피해자 인터뷰를 바라보는 동생들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비주가 뺨을 만지며 말했다.
“착한 일은 형이 했는데, 기분은 제가 좋네요.”
“나도요.”
리혁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되게 희한하네. 좀 뿌듯한 것 같기도 하고….”
“저는 알 거 같아여. 다른 사람이 우리 누나들 예쁘다고 칭찬할 때랑 살짝 비슷한 느낌이잖아여.”
멤버들을 보며 웃는 동안 화면에서는 당시 사건 개요가 알려졌다.
교통계 조사관 장경일 경사가 나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경장이었던 것 같은데. 승진하셨구나.
내가 병원에서 메쳐 버렸을 때 허리를 부여잡던 경찰관이 떠올라 민망한 웃음을 머금었다.
수능 날 딸을 바래다주던 아버지가 간질 발작을 일으켰다는 것과 함께 현재 1심에서 집행 유예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인터뷰가 나왔다.
화면 속에서 웃는 내 모습을 보며 옹기종기 모인 동생들이 막 소리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오오…….”
“제가 본 우주 형 사복 패션 중에 제일 낫네여. 역시 옷을 골라 준 보람이 있어여.”
“그러니까. 꽃무늬 추리닝이 아닌 게 어디야. 장족의 발전이지.”
“이따 저거 저장해야겠다. 어…? 저 머리, 제가 고데기로 해 준 거네요.”
내 차림새를 보며 품평하는 동생들에게 눈을 가늘게 뜨다가 이내 웃었다.
그날 도움을 많이 받긴 했지.
구리게 나가지 말라고 아침부터 숙소해서 어찌나 야단을 떨던지.
고데기랑 롤로 머리도 세팅해 주고, 옷이랑 신발도 골라주고…….
덤으로 평소에도 가꾸고 살라는 잔소리까지.
어쨌거나 동생들의 코디 덕분에 TV 화면에 나오는 내 모습은 내가 봐도 나쁘지 않았다.
리혁이가 감탄했다.
“참, 껍데기는 대박이에요, 대박.”
“그건 나한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닐 텐데?”
“…아, 조용히 하고 다큐나 봐요.”
지가 먼저 말 걸었으면서.
그러는 동안 그날 인터뷰가 나왔다.
중요한 대목이 있을 때마다 각도를 바꿔 가는 연출로 내가 하는 말을 강조하고 있었다.
특히 내가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였다’고 말한 대목에서는 더더욱.
이내 내레이션이 깔렸다.
[그렇다면, 소위 한국 사회에서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이 했던 선행은 과연 어떤 것일까? 천성적으로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배워 나간 것일까?]
전반부가 끝나면서 다큐의 포커스가 옮겨 갔다.
이제는 개별 사건이 아니라 의인들의 개인적인 면모를 보여 주고 있었다.
연극 동아리를 하는 대학생, 부인과 딸을 데리고 애완견을 산책시키는 소방관.
은연중에 이들 모두 다른 환경에서 자라 왔으며, 그 성격 또한 제각각이라는 메시지가 전달됐다.
마지막으로는 나였다.
[의인은 현재 신인 아이돌 그룹 ‘뉴블랙’으로 활동하면서, 본인이 원했던 꿈에 도전하고 있다.]
동생들과 함께 안무를 추는 장면이 30초 내외, 그리고 밤바다를 녹음하는 장면도 비슷하게 나왔다.
그런데 포커스가 나한테 맞춰져 있어서, 녹음 부스의 리혁이는 각도상으로 입만 나왔다.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영웅들을 복면 아래 입만 드러내듯이.
“푸하하하!”
우리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어, 뭐야. 왜 나는 입만 나와?”
“그래도 목소리가 예쁘게 나왔잖아.”
“비주 형, 그런 위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우리끼리 떠들썩하게 수다를 떠는 동안, 다큐는 어느덧 후반부를 달려가고 있었다.
[미국. 뉴욕대학교.]
뉴욕시의 전경이 짧게 스쳐가면서 길거리에 빌딩 하나 덜렁 세워진 대학교 건물이 드러났다.
강의실에서 열정적으로 강의하는, 어느 치킨 가게 할아버지를 닮은 흰머리 교수님이 10초 정도 나왔다.
이윽고 장면이 바뀌어 교수 연구실이 나온다.
[크리스 애벗 / 뇌신경학자, 저술가]
저는 예전부터 의인들의 뇌가 궁금했어요. 그들의 뇌는 과연 일반인들과 어떤 부분에서 다른가. 그 부분에 늘 중점을 두었죠.
그와 함께 이런저런 연구 자료가 흘러나왔다.
뭔가 대단한 실험을 하는 것처럼, 각종 자료가 흘러나오더니 마지막으로 뇌 사진이 나왔다.
그러면서 놀라운 결과를 말한다.
의인과 일반인의 뇌 사이에서는 어떠한 차이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즉, 다큐의 메시지인 ‘의인은 타고나는 것도 아니며, 길러지는 것도 아니다’라는 결론이 흘러나왔다.
단지 그 순간의 선택을 한 사람들이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의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다 똑같은 사람들이며, 그 차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큰 것이 아니라고.
그러니…….
[영웅이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의인이 될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내레이션과 함께 음악이 흘러나왔다.
여러 장면이 교차되기 시작했다. 우리도 잠시 수다를 떨던 것을 멈추고 화면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감동적인 영화 엔딩에서 조연들과 주연들이 각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듯, 장면이 휙휙 바뀌었다.
그리고 그 연출이 끝에 달했을 때.
마지막으로 내 모습이 나왔다.
위급하게 달려가는 그 장면이 흘러나오더니 내가 인터뷰를 하며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는 컷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됐다.
내가 저렇게 웃었었나?
왜 엔딩 컷으로 썼는지 이해가 될 만큼, 되게 의인처럼 나오는 표정이었다.
“…….”
다큐가 끝나고, 이미 숙소 앞에 차량이 도착해 있었지만 우리는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 * *
강남구의 어느 골목에서 뉴블랙 멤버들이 감탄하고 있는 동안.
인터넷에서 다큐 캡처로 올라온 잘생긴 의인의 정체와 그와 관련된 글이 올라오고 있을 때.
유일하게 웃고 있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하…….”
주세한의 막내 작가이자 뉴블랙 담당, 한주연은 집에서 연락을 받고 눈물을 머금었다.
SNS 광고 때도 그러더니….
얘네는 무슨 양파인가?
“자료 조사할 게 또 나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