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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6)화 (10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6화

흑염소.

사납고 무서운 염소를 보며 김중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 진짜 멋있다. 뿔도 크고.”

염소에게 잠시 위압감을 느꼈던 헤이션은 눈을 빛내는 김중현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곤 혼비백산한 상태에 빠져 있는 A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미션이 저 염소랑 관련된 거예요?”

“아뇨, 저건 보너스 미션 같은 건데….”

한소라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염소가 밥을 하도 안 먹는다고, 밥 좀 어떻게 먹이면 보너스로 다른 재료들도 챙겨 준다고 하셨거든요. 피디님도 된다고 했고요. 그래서 도전을 했는데…….”

“저거, 말도 못하게 사나워요.”

A팀 소속 배우 이강진이 대신 답했다. 그의 구레나룻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어찌나 드센지 다가가기만 해도 으르렁댄다니까요.”

“…염소가 으르렁도 해요?”

“말이 그렇다는 거죠. 저… 어이구, 나는 왜 쳐다보는 거야.”

담벼락 위에 올라선 흑염소가 이강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냥 째려본다기에는 감정이 잔뜩 담겨 있는 눈빛이었다.

헤이션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정말 밥만 준 거예요?”

“그렇다니까요. 뭐라도 좀 먹일라고 말을 걸었는데, 갑자기 성질을 내면서 밥그릇을 팍! 엎는 거예요. 그래서 뭐라고 한두 마디를 좀….”

“한두 마디?”

“조금 거칠게 말을 했더니….”

그러곤 말을 우물쭈물했다.

그 다음에 흑염소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는 안 봐도 상상이 갔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고생하라는 말과 함께 A팀 사람들이 자리를 떴다.

두 남자의 귀에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렸다.

“진짜 아쉽네. 성공시켰으면 디저트 재료 하나 제대로 챙겼을 텐데.”

“우재용 선생님이 방금 톡 보내셨어요.”

“뭐라세요?”

“어떻게 건장한 남자가 둘이나 있는데, 흑염소 한 마리에 주눅이 들어서 밥도 못 먹이냐고….”

“흑염소 사진 보내 드렸어요?”

“잠시만요. 네, 방금 보냈… 어, 답장 왔다.”

“뭐라세요?”

“이런 사진은 보내기 전에 미리 경고를 해 달래요. 요즘 심장약 먹고 계신다고.”

“…….”

그런 대화에 두 래퍼가 귀를 기울였다.

다시 폴짝, 담벼락을 내려가는 염소를 보며 그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저거, 우리가 도전해 볼까?”

“네, 형.”

“그러면 일단 들어가서 인사부터 드리자.”

헤이션을 뒤따라가는 동안 김중현은 깔깔한 입안을 훑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형이란 단어가 입에 안 붙는다고 해야 하나.

까마득한 연차 차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입에 달라붙지 않았다.

뭔가 마뜩찮은 기분인데 그 느낌이 뭔지를 잘 모르겠어서 김중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기해야지.

생각하기 귀찮았다.

“안녕하세요!”

“옴매나, 깜짝이야.”

레게 머리 래퍼의 등장에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채를 흔들고 있던 흰머리의 할아버지가 혀를 끌끌 찼다.

“뭘 그렇게 놀라. 아까 마을 회관 앞에서 봤던 사람이잖아.”

“잘생긴 총각들 구경하느라 못 봤지. 어이구, 여기도 하나 왔네. 젊은 총각 중에 제일 잘생긴 총각.”

“감사합니다.”

김중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른들에게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역시 저는 어르신들 취향이라고 너스레를 떨자, 두 노부부가 껄껄 웃었다.

김중현을 요모조모 뜯어보는 부인을 보며 남편이 혀를 찼다.

“헐겄네, 저 총각 얼굴이 아주 헐겄어.”

“영감은 조용히 있어. 방금 한소리인가 하는 처자가 걸어 다닐 때 계속 훔쳐봤으면서.”

“…내가 말을 말아야지.”

고향에 내려가면 늘 그러하듯 어르신들과 수더분하게 대화를 나누던 김중현은 헤이션을 바라보았다.

살짝 미묘한 표정.

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주 형이 헤어지기 전에 카메라가 안 보이는 곳에서 폰 메모장에 글자를 적어 보여 주었다.

-차에서 오면서 봤는데, 헤이션 선배님이 아무래도 크루 사장님이고 가요계에서도 대선배이다 보니까, 대화 중심에서 멀어지면 기분이 상하시는 거 같아. 그러니까 이따가 그분이 갑자기 말수가 살짝 줄어들고 뭔 표정인지 모르겠을 때가 되잖아? 그러면 그분을 대화에 얼른 끼워 주도록 해.

그래서 김중현이 물었다.

-지호 삐졌을 때처럼요?

-똑똑하네, 중현이.

흐뭇한 미소와 함께 김중현이 그 조언을 적용했다. 헤이션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한 것이다.

“형님이랑 둘이 미션 수행하러 왔어요.”

“둘이 형제야?”

“아뇨. 이 친구가 제 팬이어서 의형제 맺은 사이예요.”

헤이션이 다시 신이 나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김중현은 다시 생각했다.

역시 형은 우주 형이 제일 어울렸다.

노부부와 짧게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찍고 나서, 그들은 곧바로 된장을 얻기 위한 미션에 들어갔다.

마당에 쌓여 있는 장작더미가 그 대상이었다.

“장작을 패라고요?”

“그려, 거기 오십 개만 하고 가면 돼.”

“……오십 개요?”

헤이션이 기겁했다. 그는 김중현을 보고 걱정이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확히는 그 호리호리한 몸을.

“너 할 수 있겠어?”

“네?”

“아니, 힘이 부족할 것 같은데. 아이돌 애들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며.”

“맞아요, 요새 체중이 줄어서 좀 약해졌어요.”

“몇 키로인데?”

“저 67이요.”

“…나랑 15kg이나 차이가 나네.”

힘이 부족할 것을 걱정해 주는 선배에게 김중현이 미소를 지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제가 그래도 이거 많이 해봤거든요.”

그러면서 김중현이 나무 밑동에 박혀 있던 도끼 자루를 가볍게 뽑았다.

한 손으로.

“…….”

헤이션이 눈을 멀뚱멀뚱 떴다.

뭔가 오묘한 표정이 되었기에, 김중현은 곧바로 선우주의 조언을 떠올리며 노부부에게 말했다.

“여기 계신 형님도 힘이 되게 세대요.”

“그려?”

그런데도 선배는 여전히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칭찬을 해 드려야겠다.

장작을 한 손으로 잡아 고정시키곤 도끼를 들었다.

“아무래도 저보다 더 잘하실 거예요. 저는 힘이 약한 편이어서.”

깡!

장작이 너무나 손쉽게 반으로 쪼개졌다. 그러곤 도끼를 헤이션에게 한 손으로 넘겨주었다.

한 손으로 붙잡던 헤이션이 헛기침을 하며 두 손으로 잡았다.

여전히 오묘한 표정.

김중현은 다시 노부부에게 말했다.

“저 선배님이 힘도 되게 세고 그래서, 저보다 훨씬…….”

타앗-!

장작이 쪼개지기는커녕 망치에 잘못 맞은 못처럼 튕겨 나갔다. 그 덩그러니 떨어져 나간 것을 보며 노부부가 헛웃음을 지었다.

“어이구, 힘은 확실히 좋네.”

“근데 저건 노하우로 해야 하는 것이지.”

머쓱한 표정을 짓는 헤이션을 보며 김중현이 다시 말했다.

“역시 힘이 너무 세서…….”

“저, 중현아.”

“네.”

“그만 놀려…….”

침울한 표정이 된 선배 래퍼를 보며 김중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우주 형이 알려 준 대로 했는데 왜 그러지.

도끼 자루를 가볍게 넘겨받는 그에게 헤이션이 물었다.

“이걸 많이 해 봤다고?”

“어렸을 때부터 농촌에서 자라서요.”

집에서 너무 허약하다고,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일을 아버지가 시켰었다.

다시 오묘해지는 표정.

그랬기에 말을 꺼냈다.

“물론 선배님만큼은 아니겠지만…….”

“야!”

*   *   *

장작 패기 미션은 간단하게 끝났다.

김중현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성공시켰기 때문이었다.

앞선 팀은 한참을 끙끙 앓았다며, 노부부가 대단하다며 칭찬을 해 줘서 기뻤다.

물론 김중현은 그때마다 헤이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VJ가 배를 잡고 웃었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헤이션도 마지막에 가서는 마구 웃기 시작했는데, 김중현은 그걸 보며 역시 우주 형의 조언이 맞았다며 확신했다.

떠날 때 마을 회관에서 김비주가 속삭였으니까.

-모르는 거 있으면 우주 형이 하는 대로 해.

동갑내기 친구의 말은 참으로 옳았다. 그리고 그 조언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자신이 뿌듯했다.

헤이션이 말했다.

“저 근데, 이 흑염소…….”

개집 목줄에 매여 한가롭게 드러누워 있던 흑염소를 가리키자, 노인이 물었다.

“대길이? 저눔은 왜.”

“아까 왔던 팀한테 미션을 주셨다고 해서요.”

“아, 그거?”

노부부가 서로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고구마가 썩어 넘칠 만큼 많아 가지고. 그거 좀 나눠 줄라고 했지. 마침 저 대길이가 요즘 밥도 잘 안 먹구…….”

“예전에 친구가 키우던 개가 그런 적이 있었는데. 그거 임신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불알 달린 놈이여.”

“영감, 순화해서 말혀. 저 총각들 당황하잖아.”

“고환이 달렸어.”

두 래퍼는 입술을 앙다물고 웃음을 참았다.

어쨌거나 그들에게 미션이 떨어졌다.

이름하야 흑염소 대길이 밥 먹이기!

놋그릇에 양배추를 한가득 담은 그들이 다가갔다.

하지만 흑염소는 잔뜩 경계하는 눈치였다.

내용물을 보자마자, 투레질 비슷한 행동을 하는 통에 헤이션이 머뭇거렸다.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크네.”

“좋은 거 많이 먹어서 그려. 어렸을 때부터 허약해서 도라지 뿌리 먹이고 그랬거든.”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하자, 할머니가 면박을 줬다.

“도라지나 삼같이 열 오르는 음식만 처맥이니까, 저눔이 성깔이 저따위가 되지.”

“음식이 중한가. 당신 하는 거 보고 저눔이 배운 거지.”

“닮았으면 영감을 더 닮았지. 저눔이 사람이었으면 벌써 빵에 들어갔어.”

부부가 한편의 만담을 펼치는 동안 헤이션은 밥그릇을 들고는 다가갔다.

그때 염소가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아, 깜짝아!”

파르르!

바이올린 줄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쇠사슬이 파르르 떨리며 소리를 냈다.

고개를 숙이며 전투 모드에 들어간 흑염소를 보며 헤이션이 조심스럽게 밥그릇을 내려놓았다.

“이거, 어떻게 해야 되지.”

“그러게요.”

“중현아.”

“네, 형님.”

“우리 일이야. 남의 일이 아니고.”

“아, 그러네요.”

위기감이라고는 없는 김중현의 모습에 헤이션이 그만 웃어 버렸다.

그가 잠시 궁리를 하고는 말했다.

“일단 좀 친근하게 다가가 볼까?”

“친근하게요?”

“이렇게 해 보려고.”

그런 대답을 한 헤이션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허벅지에 손을 얹고는 몸을 살짝 숙였다.

그러곤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안녕, 대길아.”

염소 대길이가 갑자기 행동을 멈추고 그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이컨택을 계속한 채 헤이션이 웃었다.

“야, 이거 먹히나 본데.”

“…그, 선배님.”

“응?”

“제가 동물 다큐에서 본 건데요.”

김중현이 말했다.

“동물한테 눈을 똑바로 마주치는 건, 싸우자는 신호래요.”

“…….”

“너 나랑 한판 해 볼래, 이런 뜻이라고.”

“…그, 그럼 나 지금 망한 거야?”

김중현이 고개를 돌렸다. 노부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망하셨대요.”

“야, 그럼 나 어떻게 해야 되냐.”

헤이션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말했다. 시선은 여전히 둔 채.

할아버지가 말했다.

“저거, 성질 더러운 놈이니까 포기하고 그냥 가 봐.”

“어떻게 갈까요?”

“그냥 몸을… 어이쿠.”

대길이가 갑자기 다리를 팍! 박차더니 달려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하지만 더 이상 늘어나지는 않았다.

“하하…….”

두 래퍼와 VJ가 서로 안도의 미소를 주고받을 때, 팽팽하게 움직이던 대길이가 한 발짝을 더 뗀 순간.

툭.

쇠사슬이 박혀 있던 쇠막대기가 뽑혔다.

그걸 빤히 바라보던 흑염소, 그리고 인간들이 서로 눈이 마주쳤다.

“…….”

곧이어 죽음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   *   *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이혼이란 건 꿈도 못 꾸고, 하여간 내가 눈앞이 얼마나 캄캄하던지… 밤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했어. 우리 아들내미가 돌만 아니었어도.”

“에궁.. 힘드셨겠어요.”

임순현 할머니가 휴지로 눈을 콕콕 찍는 가운데, 맥시도 똑같이 휴지로 눈가를 닦았다.

그러곤 내게 촉촉한 눈으로 말했다.

“너도 줄까..?”

“아뇨, 전 괜찮아요.”

그러곤 내가 어깨를 주무르고 있는 할머님에게 물었다.

“할머니, 여기가 엄청 시원하시죠?”

“응응, 어이구. 시원타. 어쩜 이렇게 안마를 잘한디야?”

“저희 할머니한테 해 드리려고, 매일 연습했거든요.”

“기특허네.”

임순현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내게 조언을 해 주었다.

“그치만 부모님도 많이 챙겨 드려.”

“네, 그럴게요.”

뭐라고 입술을 떼려는 맥시에게 웃으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여기 눌러 드릴까요? 저희 할머니도 이쪽 주무르면 엄청 시원하다고…….”

“어이구, 좋다. 좋아.”

“그래서 할머님, 그다음에 어떻게 사셨어요.”

“아, 긍게 말이지.”

임순현 할머니가 인생 역정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소 이런 이야기를 할 곳이 없었던지 계속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어찌나 힘들게 혼자 살았는지, 두 번째로 만났던 영감이 얼마나 진국이었는지.

행복한 삶도 이야기하고, 할아버님이 세상을 떠난 이야기도 하시고.

VJ는 카메라를 고정시킨 채 매실차를 홀짝였고, 맥시는 눈을 글썽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포메라니안 강아지 두식이는 맥시의 호피무늬 바지에 벌러덩 배를 드러낸 채 잠에 빠져들었다.

녀석이 숨을 쉴 때마다 말랑말랑한 배가 부풀어 올랐다가 줄어들었다.

한편 삼각대에 설치된 또 다른 미니 캠은 거실을 분주하게 누비는 누군가를 담고 있었다.

우리 메인보컬이었다.

검은 티셔츠를 입어서 그런지, 총총거리는 걸음걸이가 마치 까마귀를 연상시켰다.

물티슈로 물건 위에 쌓인 먼지를 닦아낼 때마다 리혁이의 뺨이 씰룩거렸다.

…좋아하는 건가.

하긴, 로봇 청소기 사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애인데.

집안일을 다 좋아하는 둘째와 달리 우리 넷째는 깔끔한 걸 엄청 좋아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이불부터 깔끔하게 접고, 누가 치약을 가운데 짜놓으면 그걸 끝에서부터 쭉 짜놓고.

그래서 지저분한 걸 보면 늘 참지를 못했다.

음방에서도 대기실에 도착하면 청소를 하는 게 얘의 일과였을 정도로.

“그, 쉬면서 해.”

할머니가 민망하다는 듯 리혁이를 불렀다.

“우리끼리 이렇게 앉아 있으려니까 좀 그러네. 다들 여기다 힘 쏟지 말고 가서 도와주고 그래.”

“괜찮아요.”

리혁이가 고개를 저었다.

“전 혼자가 편해요.”

“에궁.. 혼자 하면 힘들 텐데.”

…라면서 맥시는 눈썹 하나 안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도와주고는 싶은데 잔소리가 너무 많았다.

제대로 밀었는데 대충 밀었다 그러고, 여기 했다고 하는데 물티슈로 슥 닦더니 왜 여기 먼지가 묻어나오냐고 째려보고.

혼자 하겠다는 선언을 하자마자 맥시와 나는 냉큼 바닥에 앉았다.

그렇게 아까처럼 이야기를 이어 가던 때.

왈! 왈!

포메라니안, 두식이가 갑자기 잠에서 벌떡 깨어나더니 바깥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뭐야?”

VJ가 중얼거리며 카메라를 들었다.

근방에 있는 모든 집에서 개들이 짖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공습경보를 알리는 사이렌 같은 소리에, 임순현 할머니가 혀를 찼다.

“대길이가 뛰쳐나왔구먼.”

대길이?

동네에 무서운 사람이 돌아다니나 싶을 때.

“진즉에 삶아 먹었어야 했는데 그놈의 거.”

“에궁.. 사람한테 그러면 안 돼요. 할머니.”

“뭔 소리여. 염소인데.”

“…염소요?”

“보면 알아. 시커멓고 커다란 놈이 있어.”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에 우리가 모두 마당으로 나갔다.

그리고 대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을 때,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노란 티셔츠를 입은 VJ가 우리 앞을 쌩하고 달려서 지나갔다.

잔상이 남을 만큼 빠른 속도.

마치 레이스를 하는 자동차가 지나갈 때처럼 그가 내는 으아아…! 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그리고 가까워지는 또 다른 비명 소리.

“으아아아……!”

헤이션과 중현이었다.

“……?”

그리고 그 뒤를 따라 한 마리의 흑염소가 목줄에 무거운 돌을 단 채 추격을 하고 있었다.

방금 내가 뭘 본 거지.

눈을 비볐다가 다시 봤을 때도 흑염소는 여전히 사람들을 추격하고 있었다.

“…….”

VJ와 맥시, 그리고 내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곧바로 훈훈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조용히 대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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