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07화
“헉… 헉…….”
세 남자가 숨을 몰아쉬었다.
쫓기다 보니 어느새 마을 뒷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였다.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숨을 토했다.
“후, 씨… 어우 씨…….”
VJ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곤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카메라의 상태를 확인했다.
헤이션이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감독님, 방금 거 찍었어요?”
“…제가 맨앞에서 달린 거 기억하시죠?”
“그렇긴 한데… 어휴. 넌 괜찮아?”
“네.”
땀이 범벅이 된 두 남자와 달리 김중현은 평온한 기색이었다. 괴물 같은 폐활량이라며 헤이션은 혀를 내둘렀다.
“안 힘들어?”
“아, 그냥 조깅할 때 속도로 달려서요.”
“…….”
“잘은 모르겠는데 두 분이 갑자기 뛰셔서 저도 따라서 달렸어요. 근데 저희 왜 뛴 거예요?”
“그러게, 왜 뛰었지.”
사실 생각해 보면 도망칠 이유가 없긴 했다.
염소가 발작을 하듯 뿔을 세울 때도 주인집 할아버지는 별다른 위기감이 없어 보였다. 보통 개들이 사람을 위협하면 견주가 놀라서 말리기 마련인데, ‘저놈 또 저러네’ 이런 식으로.
그렇다는 건 이유가 있을 터였다.
남자답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인지 VJ와 헤이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휴, 참. 염소 하나가 뭐 그리 무섭다고 뛰었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러니까요. 그래 봐야 작은 염소 한 마… 으아! 깜짝이야!”
쇠사슬이 흙바닥에 끌리는 소리와 함께 흑염소 대길이가 멀리서 늠름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김중현이 뒤를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왜 제 뒤에 숨어 계시는 건가요?”
“네가 우리 앞에 있는 거야.”
“그래, 숨은 거 아니야. 카메라 장비 때문에 그렇지.”
이상하다. 방금 전까지 앞에서 호탕하게 웃고들 계셨는데.
그러는 김중현의 뒤에서는 VJ가 카메라를 켜서 염소를 찍고 있었다.
그때, 대길이가 걸음을 멈췄다.
마치 영역 바깥으로 쫓아낸 하이에나들을 응시하는 사자처럼 조용히 인간들을 바라보던 흑염소는 몸을 돌려서 사라졌다.
그야말로 밀림, 아니 시골의 왕다운 자태였다.
김중현이 눈을 깜빡였다.
“그냥 가는데요?”
“가네.”
“…가네요.”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하하 웃었다.
물론 그 꼴은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8월 말의 무더운 날 아침부터 달렸더니 다들 땀으로 샤워를 한 얼굴이었다. 특히 헤이션은 레게 머리가 보송보송해져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서 티셔츠를 살살 펄럭이던 김중현이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근데 저희 어떻게 해야 돼요?”
“뭐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염소가 어디 갔는지 찾으실 텐데 저희가 집까지 데려다 줘야 되지 않을까요.”
“으음… 그러면.”
헤이션이 VJ에게 물었다.
“감독님, 다른 제작진 분에게 연락할 수 있어요? 일단 그분들에게 말씀 드려보고, 그동안은… 뭐, 일단 우리가 따라가 보자고.”
그들은 터덜터덜 비탈길을 내려가는 흑염소를 뒤따라갔다. 이내 포장도로에 접어들었을 때는 염소도 확연히 느려져 있었다.
“걷는 거 보니까, 우리 쫓아오느라 엄청 힘썼나 봐요.”
“모가지에 돌 달고 여기까지 쫓아온 게 용하지. 내가 살다 살다 분노조절장애 흑염소는 처음 본다, 야.”
그래도 아까와 비교하면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무거운 돌이 달린 목줄을 한 채 걷고 있는 흑염소와 그걸 뒤따라 한가로이 걷고 있는 두 남자.
VJ가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특히 김중현을.
도로와 논밭의 경계선에 피어오른 들꽃을 보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돌 멤버를.
그 시선을 따라 움직이던 헤이션도 꽃을 하나 가리키며 말했다.
“요거 꽃이 되게 예쁘게 생겼다. 이파리 위에 보라색 꽃망울이 방울방울 달린 게 종처럼 생겼네.”
“들깨풀이라는 꽃이에요.”
“…이름도 알아?”
“어렸을 때 자주 보던 거여서요. 저희 할아버지가 말씀해주셨는데, 옛날에는 어르신들이 약초로 많이 쓰고 그랬던 꽃이래요.”
“오오, 그래?”
“네, 그리고 이게 깻잎이 자라나는 차즈기랑 헷갈리기 쉬운데 엄연히 다른 종류예요.”
순박한 어조로 들꽃 해설을 하는 그를 보며 헤이션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곤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야, 이거 우리 동생님 지금 보니까 들꽃 박사시네. 이런 건 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제가 아이돌 활동 끝나고 나서 농부 되는 게 꿈이어서요.”
그 말에 두 어른이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헤이션이 또 다른 들꽃을 가리키자, 김중현은 곧바로 대답과 함께 그에 대한 세세한 설명을 했다.
레게 머리의 래퍼가 VJ에게 말했다.
“이거 찍히고 있는 거죠? 완전 대박인데.”
VJ가 손으로 OK를 그렸다.
흑염소를 따라가는 동안 헤이션은 김중현에게 분량을 뽑아내기 위한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왜 농부가 꿈인지.
저기 밭에서 자라고 있는 건 뭔지.
농촌에 관한 자잘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설명을 할 때마다 김중현이 짓는 행복한 표정에 헤이션은 감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너랑 다니니까 힐링 예능 찍는 기분이다.”
“진짜요?”
“날씨만 안 더웠으면 계속 이런 식으로 산책이나 했을 텐데… 간만에 아버지 생각도 나고 그러네.”
“아버님도 농사를 지으셨나 봐요.”
“과수원을 하셨는데… 과일 얘기만 나오면 너처럼 눈을 그렇게 반짝반짝하고 그러셨거든.”
“그 기분 알 것 같아요.”
고개를 주억거리는 아이돌의 모습에 래퍼가 웃었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마을의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차가 쌩쌩 달리는 이 도로만 지나면 마을 어귀였다.
대길이가 익숙한 발걸음으로 도로를 터덜터덜 걸어갈 때였다.
“다른 팀이랑 연락 됐어요.”
VJ가 수화기를 내리며 말했다.
“염소는 그냥 두면 알아서 집으로 돌아올 테니까 걱정 말라네요.”
“괜찮대요? 저대로 놔뒀다가 여기저기 들이받고 다니면 큰일인데.”
“놔둬도 된대요. 저 흑염소가 동네 개들만 쥐어 패고 다니지, 사람을 들이받은 적은 한 번도 없대요.”
“뭐야, 그럼 우리는 왜 도망친 거지.”
“그러니까요. 어르신도 왜 도망간 거냐고 웃으셨대요.”
“…….”
세 남자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훈훈한 미소를 교환했다.
바보 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남자들만이 공유하는 따스한 전우애였다.
헤이션이 약도를 펼치며 말했다.
“그럼 저 분노조절장애 염소는 내버려두고 다음 미션…….”
하지만 그때 덜컹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도로 가장자리의 배수구 철창에 쇠막대기가 걸린 소리.
정확히 말해서 흑염소가 목줄에 매달고 있는 시멘트 덩어리에 꽂혀 있는 쇠막대기였다.
덜컹-
흑염소가 성질을 내며 몸을 비틀었지만 여전히 빠지지 않고 있었다. 황소처럼 앞만 보며 계속 전진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은 멀리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차를 보았다.
하얀 트럭이었다.
저대로면 염소를 들이받을 터였다.
속도를 줄인다고 해도 마찬가지.
흑염소도 다가오는 차를 봤는지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문제는 사고가 정지한 듯 보였다. 이쪽으로 되돌아오면 될 텐데, 염소는 여전히 전진을 해보려고 하며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야야! 이리 와!”
그리고 두 남자가 염소를 애타게 부르고 있을 때, 김중현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잽싸게 달려가서 염소를 붙잡고 오더니.
“…….”
염소에게 레슬링 기술을 걸기 시작했다.
* * *
김중현이 뛰쳐나간 건 복잡한 사고의 결과가 아니었다.
‘구할까. 말까.’
일단 구하면?
구할 순 있겠지만, 김비주한테 잔소리를 어마어마하게 들을 터였다.
우주 형이랑 두 동생이 하루 종일 따라다니면서 ‘리혁아, 이 부주의한 녀석에게 어서 잔소리를 하렴.’, ‘부주의하기는요. 부주의함 그 자체가 중현이 형이죠.’, ‘흐하핫, 중현이 형. 움짤 봐여!’ 하는 것쯤은 괜찮았다.
하지만 김비주의 잔소리는… 으.
그를 거실에 앉혀두고 조곤조곤 하나부터 열까지 ‘그래, 어느 부분을 잘못한 건지 네가 말해 봐.’ 라고 하는 건 무서웠다.
하지만.
저대로 두면 차에 치일 텐데.
조곤조곤 혼을 낼 동갑내기 친구와 바로 앞에 있는 흑염소의 얼굴이 빙글빙글 회전했다.
어…….
그랬기에 결론을 내렸다.
역시 중요한 건 목숨이었다.
흔쾌히 결심을 하자마자 김중현은 달려 나갔다. 그러곤 도로 중간에 있는 흑염소를 안아들고 뛰어왔다.
놀란 염소가 이리저리 몸을 뒤틀고 있었다.
그냥 놔줄까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발버둥을 쳤다가는 달려오는 트럭에 험한 꼴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일단 붙잡고 있어야 하는데 네 발 짐승이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 보면 큰아버지가 흑염소 제압할 때, 눕힌 다음에 무릎으로 목을 지그시 눌러서 무력화 시켰는데.
그건 각도상 힘들었다.
그랬기에 김중현은 머릿속으로 한 가지를 떠올렸다.
‘아, 그거.’
예전에 우주 형이랑 리혁이가 보이는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막내가 채팅으로 놀린 적이 있었다. 그날 돌아와서 우주 형이 무슨 주짓수인가, 레슬링인가 기술을 막내에게 걸었는데.
그게 딱 떠올랐다.
그랬기에 드러누워 흑염소에게 기술을 걸었다. 염소는 여전히 꿰에에 하면서 몸을 뒤틀었지만, 그 억센 힘을 못 이기고는 곧장 잠잠해졌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눈앞으로 하얀 트럭이 쌩하고 지나갔다.
* * *
“야, 인마! 차가 오는데 그렇게 뛰어가면 어떡해?”
“죄송합니다.”
“중현아. 촬영도 중요한데, 이러다가 다치고 그랬으면 진짜 방송 더 망치는 거야.”
“정말 죄송합니다, 감독님.”
잔소리를 퍼붓는 두 남자에게 김중현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서 배수구에 빠진 쇠막대기를 뽑아주었다. 얌전해진 흑염소가 그를 잠시 빤히 올려다보았다.
강아지를 쓰다듬듯 그 머리를 슥 쓰다듬던 김중현이 다른 이들에게 시선을 던지며 다시 한 번 사과를 했다.
“뭐, 그래도 잘했어.”
살짝 시무룩해진 이의 어깨를 감싸며 헤이션이 웃었다.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이 소란에는 그의 책임이 일단 있었고, VJ 역시 제작진으로서 촬영 중에 게스트 부주의 때문에 애완 염소가 죽는 일이 벌어지는 건 한사코 사양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랬기에 잔소리를 하던 둘도 이내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참, 이거 제대로 찍힌 거 맞죠?”
“잠시만요.”
그들은 한데 모여 녹화된 분량을 확인했다.
“…….”
처음 대길이와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것이 제대로 찍혔음을 깨달은 그들은 묘한 확신에 사로잡혔다.
“…감독님, 이거 방송에 백퍼 나가겠죠?”
“다른 팀에서 개썰매를 만들어서 달리지 않는 이상 이것보다 더 좋은 장면은 안 나올 거예요.”
“진짜로요?”
김중현만이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
“이게 방송에 나가요?”
“어떻게 안 나가니, 바보야.”
얼른 멤버들한테 이야기를 해줘야겠다며 환하게 웃는 김중현을 보며 둘이 헛웃음을 지을 때.
마을로 돌아가던 그들은 특이사항을 하나 깨달았다.
“…근데 중현아.”
“네?”
“저 염소 말이야. 너를 따라오는 것 같은데?”
흑염소 대길이가 뒤에서 쫄래쫄래 따라오고 있었다.
* * *
[● REC] 2014-08-30 10:48:31
헤이션 : 근데 말이야. 내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중현 : 네.
헤이션 : 방금 염소한테… 그 걸었던 거는 어디서 배운 거야?
중현 : (환한 표정) 아, 그거요? 저희 멤버 중에 몸 잘 쓰는 형이 있거든요.
헤이션 : 우주?
중현 : 네. 그 형이 하는 거 보고 배웠어요. (카메라를 보며) 우주 형, 저 잘했죠? 지난번에 제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을 때, 형이 베게 껴안으면서 설명해줬잖아요. 그거 덕분에 제가 흑염소를 제압할 수 있었어요.
헤이션 : 푸하하하!
중현 : (갸웃) 왜 그러세요?
헤이션 : (눈물을 닦으며) 아니야, 이따가 당사자한테 물어 봐.
* * *
임순현 할머니의 집.
마당 가운데 서 있는 할머니의 두 눈을 내가 손으로 가렸다.
“이렇게까지 해야 돼?”
“원래 선물도 깜짝 선물이 기쁜 거잖아요, 할머니.”
“어유, 얼마나 청소를 해 놨길래.”
할머님은 거실 상태가 어떤지 모르고 계셨다.
옮겨야 할 짐들이 있어서 마지막 15분은 셋이 다 같이 치웠는데, 먼지가 너무 일어나는 바람에 할머니는 잠시 바깥으로 피신하셨다.
그리고 닭모이를 주고 돌아오신 이때, 이제 결과를 공개할 때였다.
“날 새겠네, 새겠어.”
“잠시만요.”
문이 열리더니 거실 안에 서 있는 리혁이가 엄지를 들어보였다. 내가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들어가실게요.”
할머니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섰다.
이윽고 두 손을 치우자, 임순현 할머니의 가느다란 눈이 거실을 훑었다.
그러곤 그 눈이 커졌다.
“어이구…….”
“깔끔하죠?”
할머님이 거실을 둘러보는 동안, 내가 옛날에 집 수리 프로그램에서 쓰던 BGM을 불렀다.
“따라라라라~ 따라 라라라라~”
리혁이도 이내 내게 동참했다. 그 산뜻한 BGM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VJ와 맥시가 웃었다.
우리가 넣은 화음 때문이었다.
무슨 아카펠라 2인조처럼 성스럽게 울려대는 노랫소리에 웃음을 터뜨리는 맥시에게 내가 해명했다.
“저희 직업병이어서요.”
차에서도 한 명이 노랫소리를 내면 화음 넣어 주면서 놀곤 했거든.
한편, 거실을 둘러보던 할머님은 감동한 눈치였다.
“너무 깨끗하네. 깨끗해.”
“그렇죠?”
리혁이가 뿌듯하게 웃었다.
다른 때였다면 왠지 얄미워서 놀려줬을 텐데 오늘은 아니었다.
그럴 만했다.
거실은 놀랄 만큼 달라져 있었다.
아까는 어디 창고 같았는데 지금은 사람 손길이 느껴지는 깔끔한 인테리어였다.
여전히 누런 벽지와 낡은 기물이 많았지만, 짧은 시간에 보여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극적인 변화였다.
단순히 짐의 배치를 달리했을 뿐인데도 집이 확 넓어져 보였다.
감동한 얼굴의 할머님에게 말했다.
“엄청 예쁘죠?”
“생색 내지 마요.”
리혁이가 흥 하며 끼어들었다.
“청소는 내가 다 했는데 공을 가로채면 돼요?”
“우리 없었으면 너 짐 못 옮겼어.”
“…….”
계속 혼자 하는 게 편하다고 했지만 마지막에는 우리 둘이 개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용을 쓰면서 짐을 옮기는데 귀가 빨개서 무슨 붉은귀 거북인 줄 알았다.
품에 안은 포메라니안의 턱을 살살 긁어주던 맥시가 동의한다는 듯 덧붙였다.
“약해.. 리혁이.”
새빨개지는 얼굴을 보며 웃음을 참았다.
* * *
임순현 할머니가 리혁이의 손을 꼭 붙들고 고맙다고, 뭐라도 챙겨주겠다고 하시는 걸 한사코 사양하… 지는 않고 좀 받았다.
제작진이 그 정도는 된다고 하셔서.
덕분에 터질 듯이 부풀어오른 봉투를 든 채 집을 나섰다.
그러면서 다른 요리 재료를 구하기 위해 마을 곳곳을 누볐다. 소고기가 걸린 첫 미션만 난이도가 있었지, 나머지는 모두 시간도 간단하게 끝나는 것들이었다.
애초에 제작진이 그런 것을 유도하고 있었다.
어느 팀이든 재료 부족에 시달릴 일은 없도록 하는 대신, 어르신이 혼자 사는 집마다 방문하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아이구, 고마워. 그 다락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필요한 게 있어도 우리 아들내미 올 때까지 꺼내지도 못하고 있었어.”
마지막으로 들린 미션 장소에서 다른 할머님이 두 손을 꼭 붙잡고 말해주었다.
그러곤 미션 성공을 의미하는 빨간 티켓을 건네셨는데, 거기에는 ‘간장’이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대충 그런 시스템이었다.
미션을 성공시키고 증서를 받으면, 마을회관에 있는 우리 조리팀에게 재료가 전달되는 것이다.
그리고 재료가 주어지는 대로 곧바로 요리를 시작하고 있을 터였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보쌈 같은 요리를 택한 A팀은 돼지고기를 구하자마자 조리에 들어갔다나.
우리 대신 톡방을 확인하던 맥시가 말했다.
“너희 멤버들 잘하고 있대.”
“정말요?”
“다들 잘하고 있다는데… 미션도 다들 잘했고. 한 명은 뭐지, 흑염소랑 친구 맺었대.”
“아까 그 염소인가 보네요.”
“역시 뭐든 싸우면서 친해지는 건가 봐.”
해피 엔딩이라며 푸근한 미소를 짓는 맥시를 보며 웃었다.
머릿속에서 중현이가 흑염소와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장면이 상상됐다가 고개를 저었다.
리혁이가 내게 물었다.
“대체 뭘했길래 흑염소랑 친구를 맺은 걸까요.”
“중현이잖아.”
“갑자기 설득력이 확 올라가네요.”
픽 웃으며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미션이 끝나려면 40분이나 남았다.
재료도 구할 만큼 다 구했고, 시간도 제법 넉넉한 것 같아 내가 맥시에게 제안했다.
“저, 선배님.”
“맥시라고 불러줘.”
“아까 저한테 가위바위보 지셨잖아요.”
“……흥.”
호칭 가지고 고집을 부리시길래 가위바위보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내 승리였다.
동작모방능력으로 상대가 빠를 내려고 할 때마다 가위를 냈거든. 참고로 리혁이는 졌다.
“저, 선배님. 저희 시간도 좀 있는데 저기 가 보는 건 어떨까요?”
“강황 할아버지?”
“네, 그분이요.”
“좋아. 저희 저기 들러도 되죠?”
그 물음에 VJ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까지도 아무도 안 간 모양이었다. 하긴, 재료로 강황은 어디 쓸 데도 없고 하니까.
우리는 그 할아버지의 집으로 다가갔다.
다른 집과 달리 신축인지 깔끔해 보이는 외관의 1층 주택.
가까이 와보니 잔디도 잘 정돈되어 있고, 파스텔톤으로 칠한 개집에는 우아한 때깔을 자랑하는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앉아 있었다.
뭐지.
이 어디선가 풍겨오는 부유함의 기운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을 때, 문이 벌컥 열렸다.
“아이고, 왔네! 왔어!”
온몸에 명품을 걸친 할아버지께서 손을 흔들고 나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