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11화
중학생 때였나.
인터넷에 남긴 글이 있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연습생 형들의 이야기를 듣고 과거 내가 썼던 글을 지운 적이 있었다.
그중 90프로가 응모 글이었지.
-할머니가 미국을 좋아하세요! 하와이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할머니가 태국을 좋아해요!!! 정말루요.
-♨(필독) 꼭 뽑아주세요! ☆★
내 기억으론 대충 이런 글들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어렸을 때부터 내 소원은 할머니 여행 보내 주기였다.
그래서 돈이 모일 때마다 부산 같은 곳으로 같이 여행을 가곤 했는데 아직까지 해외여행은 경험이 없었다.
물론, 지금이야 보내주려면 얼마든 보내줄 수 있었다.
음원으로 번 돈으로 1등석까지 태워 줄 수 있지.
하지만 본인이 네가 힘들게 돈 벌고 있는데 혼자 가는 건 별로라고 한사코 거절을 해서.
그래서 이런 식으로 예능에서 딴 것을 주면 어쩔 수 없이 ‘고럼 가야지’ 하면서 가지 않을까.
아니다.
…그냥 예능에서 땄다고 뻥 친 다음에 보내 버릴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 거짓말을 알아채는 김덕순 여사의 초능력 때문이었다.
한편, 고급 여행권이라는 말에 게스트들도 표정이 달라졌다.
“구 감독, 그런 거면 말을 미리 해 줬어야지!”
우재용 선생님이 혀를 찼다.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도 첫 번째 미션을 할 때, 더 열심히 했을 거 아냐.”
“죄송합니다.”
“…잉, 마음에 안 들어. 하여간.”
원로 배우가 안경을 고쳐쓰자, 다들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의욕을 불태웠다.
우리 애들도 불타오르고 있었다.
중현이는 시골에 부모님이 계시고, 비주는 동생 병수발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부모님이 계시고.
막내는… 아, 얘는 의욕이 없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여행권… 좋네여’ 하는 눈빛이다.
그리고 리혁이가 내게 속삭였다.
“내 거 받으면 줄 테니까 할머님 두 번 보내 드려요.”
“고마워.”
“아, 만지지 마요.”
“…….”
기특해서 어깨를 토닥여 줬더니 내 손을 슥 밀어냈다.
가끔 동생이 아니라 고양이 같다.
그렇게 저마다 여행권에 대한 야망을 불사르는 가운데, 메인 피디가 설명했다.
“자, 그럼 이제 두 번째 미션을 진행할 텐데요. 이번 미션 같은 경우는 황금 열쇠 보상이 없습니다.”
“뭐라고요?”
B팀의 주세한 멤버, 송진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아니, 감독님. 그럼 우리는 이 격차를 어떻게 좁혀? 열쇠도 별로 없고 뒤쳐졌는데.”
“그런 걱정은 마지막 미션에서 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다들 머리를 굴렸다.
마지막 보상이 엄청 크거나, 아니면 뺏을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거겠지.
지금 앞서는 이들이 유리하긴 해도 그걸로 이겼다고 장담할 수 없도록.
그가 설명했다.
“두 번째 미션 같은 경우는 마지막 미션과 연장선상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일단, 미션 공개를 하기 전에 주민분들 먼저 모시겠습니다.”
제작진 뒤편에서 마을 주민들이 열 분 정도 나오셨다.
그중에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리혁이와 내가 청소를 해 드렸던 임순현 할머니었다.
“어, 저기 대길이 키우는 할아버지, 할머니인데.”
중현이를 비롯해서 각자 낯이 익는 이들을 발견하고는 인사를 건넸다.
메인 피디가 말했다.
“자, 그럼 두 번째 미션을 공개하죠.”
그 말에 메인 작가가 하얀 천을 펼쳐들었다.
거기에 붓글씨로 [효도의 두 번째 덕목 : 일손 돕기]라고 되어 있었다.
누군가 물었다.
“일손 돕기라면 이미 했잖아요? 전구 갈아 끼우기나 집 정리같이.”
“이 경우에는 여러분이 각 어르신들의 생업을 돕게 될 겁니다. 예컨대… 뭐가 있더라.”
그가 리스트를 읽어 내렸다.
“농사일로는 가을 무 씨뿌리기가 있고요, 농장에서 사과를 수확하는 일도 있고, 축사 일도 있네요. 그 외에 마늘 까기 등도 있는데, 주민 분들이 여러분을 선택하면 가서 일을 도와주시면 됩니다.”
“그게 끝이에요?”
“네, 그게 바로 효도 아니겠습니까?”
…라고 흔쾌히 말을 하는 상대를 보며 다들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농촌을 다룰 때마다 나오는 당연한 포맷이긴 한데, 뭔가 미심쩍은 기분이 든다.
꼭 뭐가 더 있을 것 같단 말이지.
각자 VJ가 따라붙는 가운데, 어르신들이 일꾼들을 뽑아 가기 시작했다.
“어이구, 우리 대길이 은인 아냐. 자네는 나랑 가지. 나랑 가서 사과 좀 뽑아 보자고.”
“형, 저 가 볼게요.”
“이번에는 저도 따라갈게요.”
각자 뿔뿔이 흩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동생 라인과 셋이 한 팀으로 붙을 수 있게 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얘네 둘이 혼자 방송하는 거 무섭다고 나한테 바싹 붙은 거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임순현 할머니의 손에 붙들렸다.
* * *
다시 방문한 슬레이트 지붕의 집.
알록달록한 대야가 놓여있고, 포메라니안 두식이가 깡총깡총 뛰는 마당에 소쿠리가 깔려 있었다.
…그리고 마늘이 쌓여 있었다.
“마늘로 쌓은 산을 보는 것 같네.”
“갈릭 마운틴이네여.”
“오, 웬일로 영어를 안 틀리고 쓰냐.”
“그러니까요. 얘가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처럼 말하는 거 진짜 오랜만이라니까요.”
“뭐예여.”
막내가 입술을 비죽였다.
“가끔 보면 형들은 저를 바보로 아는 것 같아여.”
“광역시 여섯 개 대 봐.”
“…할머님! 제가 도와드릴게여!”
막내가 도도도 달려 나가 할머니가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왔다.
“쟤 모르는 거 같지?”
“모르네요.”
“우리 팬사인회를 광역시 돌면서 했는데, 그걸 어떻게 모르지?”
“쟤가 뭔 생각을 했겠어요. 그냥 ‘우왕, 대구다’ 했겠지.”
설득력이 있었다.
우리는 할머니를 도와 소쿠리를 움직였다.
조명을 고려해서 카메라 세팅을 바꾼 VJ가 자리를 잡고, 우리는 마당에 목욕탕 의자를 깔고 둘러앉았다.
“마늘이 엄청 많네요. 할머니.”
“많지.”
임순현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눈이야 쪼끔 맵겠지만 참어 봐.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시키는 일보다는 우리가 훨씬 나을 테니까.”
“하긴, 이건 앉아서 하는 거라 그래도 괜찮겠네요.”
이 뙤약볕에 밭으로 씨 뿌리러 간 이들이나 사과를 수확하러 간 이들은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 그 자체일 테니까.
리혁이가 물었다.
“그런데 할머님, 이 마늘은 어디다 쓰시려구요?”
“쓸 데는 없지.”
“…네?”
“아니, 방송국 사람들이 와 가지고 뭐 일을 주라고 하니까, 나는 뭐 시킬 거는 이미 다 시켰구. 할 거는 없는데… 그래서 뭐 할까 하다가 내가 식당을 하니까 마늘 생각이 났지.”
“아.”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할머님이랑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진짜 좋네요.”
“에휴, 늙은이랑 얘기하는 게 뭐가 좋다고.”
“진짜예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랑 자라서 취미가 어른들이 해 주는 얘기 듣는 거거든요.”
“말도 참 이쁘게 허네.”
마늘을 까는 동안 할머님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미 한 번씩 들었던 이야기였다.
뭐지.
아까부터 느꼈던 건데, 미션을 하러 방문한 집마다 ‘여보시오, 내 이야기 좀 들어주시오’하면서 자기 사연을 말하셨다.
처음에는 혼자 사시느라 적적해서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부러 얘기를 하시는 거 같기도 하고.
내 촉에 뭔가 걸리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할머님이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심심하시지 않게 말을 덧붙였다.
“내가 영감이랑 같이 다른 마을에, 그때가…. 그게 언제였더라.”
“1968년이요, 할머니.”
“맞네, 맞아. 그때 아주 무장공비 때문에 시끌시끌했지.”
“무장공비가 뭐예여?”
그리고 호기심 많은 우리 막내가 중간중간 질문을 던졌다.
“잉, 그게….”
“무장하고 쳐들어온 간첩 말하는 거야.”
리혁이가 1968년의 1.21 사태에 대해 설명을 하는 동안 할머님이 감탄을 했다.
“어이구, 청소도 잘하더니 옛날 일도 잘 알고. 똑 부러지네.”
“이 형이 책을 많이 읽어여. 그래서 별명두 척척박사예여.”
“똑똑하네, 어디 대학이라도 다니는가?”
“아니에여. 이 형 중학교 졸업밖에 못 했어여.”
리혁이가 어이가 없어서 순간 말을 잃었고, 나는 웃음이 터져 버렸다.
하지만 할머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요즘엔 학력이 중요한 게 아녀. 중졸이면 어때, 옛날이랑 시대가 달라서 공부 잘한다고 성공하는 시대가 아니잖어.”
“…맞아요, 할머님.”
공손하게 대답하면서 리혁이가 눈을 흘겼다. 지호가 할머님 뒤로 쏙 숨어버렸다.
“그리고 이런 얼굴들이면 공부 못해도 되야.”
“그져, 할머니?”
해맑게 웃던 막내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근데여. 할머니는 광역시 다 아세여?”
“부산, 울산, 대구, 광주, 대전, 인천.”
“…….”
“그런 건 상식이지. 우리 두식이도 알어.”
졸지에 포메라니안과 동급이 된 막내를 보며 리혁이와 내가 씩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런 식으로 어르신과 토크를 이어갔다.
“할머님은 어릴 때 어떤 거 하고 싶으셨어여?”
“나?”
주름진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떠올랐다.
“가수 하고 싶었지.”
“진짜요? 노래 엄청 잘하셨나 보다.”
“동네에서 노래, 하면 임순현이다 하는 말이 나왔었어. 내가 시집만 잘못 안 갔어도 서울 가서 가수 됐을 거야.”
내가 제안했다.
“그러면 저희랑 노래 한 번 같이 불러 봐요.”
“에이, 못해.”
“마음가짐이 중요하죠. 그리고 저희 되게 반주 잘 넣거든요. 어떤 노래 부르든 같이 불러 드릴 수 있어요.”
“부끄러운데.”
“부끄러워하시지 마여. 할머니. 울 아빠가 그러는데여, 체면을 내려놔야 성공을 할 수 있대여.”
리혁이도 마늘을 까다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맞아요, 할머니. 한 번 불러 보세요.”
“그러면….”
임순현 할머니가 망설임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테레비를 잘 안 봐서 가사를 잘 아는 노래는 별로 없구…. 어렸을 때 고무줄 놀이하면서 불렀던 노래가 있는데.”
“오, 동요인가 보네요.”
산기슭에 꽃사슴 밤비가 뛰어다니는 그런 풍경을 상상하는 동안, 할머니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우리가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조성했다.
“아,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마저 쉬고 하나, 둘, 셋, 넷!”
어린 시절의 소녀로 돌아간 듯한 순수한 표정과 함께 할머니가 노래를 시작하셨다.
아~
무찌르자 공산당~
…공산당?
몇 백만이냐
대한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
순간 마늘이고 뭐고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지금까지의 예능용 웃음이 아니라 현실 웃음이었다. 그야말로 한참 동안 끅끅거리며 웃었다.
VJ분도 기절할 듯한 표정이었다.
반응을 보니 방송에 꼭 나갈 듯한 느낌이었다.
뒤이어 진실을 알게 됐는데 한국전쟁 이후로 어린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며 불렀던 ‘승리의 노래’라는 군가라고 했다.
저런 노래를 부르면서 놀았다니.
옛날 어르신들은 정말 다이나믹한 환경에서 크신 것 같다.
“아, 눈물 나.”
리혁이가 눈물을 닦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님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노래가 좀 그랬나?”
“아뇨, 좋았어요.”
“저희 그 뭐냐, 저 노래 노동요처럼 부르면서 일해 봐여.”
“좋네. 아이디어.”
할머니가 알려 준 가사를 따라 부르면서 우리는 마늘을 깠다.
일이 빨라졌다.
이래서 농사지을 때 노동요를 부르는가 싶다.
덕분에 일이 빨리 끝나 버려서 이제 뭘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할 때, 허리를 두드리고 계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에구, 허리야.”
“제가 또 안마해 드릴게요.”
“됐어, 아유, 시원타. 거기 말고 그 아래.”
그러는 동안 리혁이와 지호가 마늘을 정리했다.
매콤해진 손을 무기 삼아 서로에게 휘두르는 동생 라인을 보며 웃을 때, 대문이 끼이익 하며 열렸다.
형광색 옷을 입은 할머님 한 분이 들어오셨다.
임순현 할머니가 그쪽을 향해 인사했다.
“칠성댁 왔네.”
“노인정에 놀러가다가 들렀어.”
그러곤 우리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렇게 잘생긴 총각들한테 둘러싸여 있었으면 전화를 하지.”
“아, 깜빡했지.”
마당 의자에 앉던 칠성댁이 고개를 갸웃했다.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할머니의 표정 때문인 듯했다.
“안마가 그렇게 시원해?”
“받아 봐. 말도 못 하게 시원해. 내가 요즘 허리가 아파서 밤에 잠을 못 잤는데, 아까 낮잠을 푹 잤다니까.”
“그래?”
다른 할머님이 내게 말했다.
“끝나고, 나도 해 줘.”
“우주야. 난 괜찮으니까, 저 노인네한테도 안마해 줘.”
곧장 다른 할머님에게 자리를 옮겨갔다.
어디가 안 좋으시냐고 물은 후, 집중 부위를 주물러 드렸다.
예능에서 쓰려고 익힌 안마 스킬은 아닌데 어째 솔찬히 잘 써먹는 것 같다.
특히 내 능력 덕분에 어디를 주물러야 할지 딱 봐도 견적이 나온다고 할까.
근육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부위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아이고, 거기거기. 진짜 시원하구먼.”
결과는 굉장히 좋았다.
개운한 표정으로 허리를 피시는데, 왠지 아까보다 자세도 더 꼿꼿해지신 느낌이었다.
칠성댁 할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고마워, 정말. 억수로 시원하네.”
“시원하시다니 다행이네요.”
“나야 좋았지. 근데 이거 괜히 놀러 와서 고생만 시킨 건 아닌지 모르겠네.”
“아니에요.”
그런 말을 하려고 할 때, 칠성댁 뒤에 서 계시던 할머님이 내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뭐지.
하지만 나는 하던 말을 일단 마저 했다.
“저는 어르신들 안마해 드리는 걸 원체 좋아해요.”
“그래?”
그런 말과 함께 칠성댁이 호호 웃을 때, 임순현 할머니가 골이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이해가 안 되는 반응이어서 그분이 떠나고 물었다.
“할머님, 왜 그러세요?”
“어휴. 저것이 동네에서 제일가는 수다쟁이여.”
“…수다쟁이요?”
그게 무슨 소리지.
* * *
마을 노인정.
“핫핫핫!”
호탕한 웃음소리가 감도는 가운데 주세한의 두 노년 멤버, 우재용과 양옥분이 다른 노인들과 수다를 떨었다.
“우 선생이 뭐예요, 오라버니라고 불러요. 오라버니. 으하핫!”
“어휴.”
양옥분이 귤을 까먹으며 흉을 봤다.
“난 저렇게 안 늙어야지.”
“에잇, 다 같이 늙은 처지에.”
“나는 그래도 체신머리는 지켜요.”
두 멤버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도 다른 노인들과 웃음을 터뜨릴 때였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칠성댁 왔네.”
“나 왔어!”
그리고 노인정에 있는 이들은 살짝 놀란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칠성댁의 표정이 밝았기 때문이었다.
늘 인상을 쓰고 다녀서 흑염소 대길이도 피하고 다니는 인물이 바로 칠성댁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인물이 저런 미소라니.
거기다.
“언니, 자세가 왜 그래? 오늘따라 허리가 딱 섰네.”
“안마를 받고 왔어.”
“안마?”
“아, 글쎄 순현이네 놀러갔는데 잘생긴 총각들이 있더라구. 그 다섯 중에 번듯하게 생긴 총각 알지?”
“아, 우리 손자 닮은 애?”
“무슨 소리야, 우리 손자를 닮았지.”
“우리 아들처럼 생겼던데.”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외모 칭찬이 이어졌을 때, 칠성댁이 그 집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노인정에서 기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거, 우리도 가서 받아 볼 수 있을라나?”
“에휴, 힘들 텐데. 폐 끼치는 거지.”
“그렇지.”
“아녀, 그 총각이 그러는데. 자기는 할매 안마해 주는 게 세상에서 제일가는 행복이래.”
“에이… 그래도 민폐지.”
그런 말과 함께 이상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휴, 나 가스렌지 불을 안 끄고 온 것 같네.”
“난 대파 가서 다듬어야겠어.”
“절에다 전화를 해야 할 일이 생겨서….”
갑자기 자리를 하나씩 뜨는 이들을 보며 우재용과 양옥분은 VJ와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어디를 가야 할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 * *
어느새 해가 서산으로 기우는 시각.
사과 농장에서 돌아오는 여희찬과 김중현, 김비주는 어깨를 주무르며 흙길을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아, 뻐근해.”
“내가 주물러 줄까?”
“아니.”
김비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를 멀뚱멀뚱 바라보던 김중현이 농장에서 챙겨 온 사과를 슥 내밀었다.
“…뭐야?”
“사과의 의미로 주는 사과야.”
“그게 뭐야.”
“내가 도로에 뛰어든 거 가지고 화난 거 같길래.”
“아.”
“내가 앞으로 위험한 짓 안 할게.”
김비주가 웃음을 흘렸다. 피곤해서 대답을 대충 한 거 였는데 그걸 다른 걸로 오해한 모양이다.
“그런 거 아냐. 피곤해서 그래.”
“엇, 그럼 내가 주물러 줄까?”
“됐어.”
…라고 말을 하지만 어느새 친구가 그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었다.
여희찬이 그 모습을 보며 귀엽다는 듯 웃었다.
“너희 사이 진짜 좋구나.”
“그런 건 아니에요.”
김중현이 고개를 저었다.
“잔소리도 많고 되게 제가 맨날 눈치 보면서 살아요. 일부러 져 주기도 하고요.”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김중현.”
“이상한 말 아냐. 우주 형도 내 말에 동의해 줬는걸.”
“아닌데, 우주 형은 나한테 다른 얘기 했는데. 너가 중현이 챙기느라 고생 많다고.”
“…….”
이윽고 진상을 눈치챈 둘이 아, 하며 헛웃음을 지을 때, 여희찬이 키득거렸다.
“너희 리더는 정치해도 되겠다, 야.”
“실망이에요, 우주 형한테.”
리더를 장난스럽게 성토하는 이야기를 하던 때, 그들은 멀찍이 대문이 열린 집을 발견했다.
왁자지껄한 소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가는데, 열린 문틈으로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세 명의 VJ가 찍는 가운데, 선우주가 어르신들에게 안마를 해 주고 있었다.
왕지호와 서리혁은 기다리고 있는 다른 어르신들에게 초대 가수처럼 공연을 하고 있었다.
“…….”
저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셋은 짐작이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