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23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팬카페 글을 역순으로 훑었다.
처음에는 생방송 퀴즈쇼를 보며 즐거웠던 우리 수플레들의 분위기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바뀌었다.
“뭐야, 이게.”
팬분들이 분노하고 있는 건 인터넷 기사였다.
나에 관한.
링크를 클릭하자 떠오른 기사 제목에 동생들이 내 눈치를 살폈다.
-뉴블랙 우주, ‘父 재산 논란?’… 네티즌 ‘서민 코스프레냐’
이름도 낯선 연예 매체에서 올라온 기사였다.
차분하게 그 내용을 읽어 내렸다.
특별히 알맹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모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왔다는 글을 옮긴 것에 불과했으니까.
-뉴블랙 우주라는 애, 지난번에 뮤카에서 아버지가 선명주라고 하지 않았냐? 그때 당시 선명주급이면 세계구급 유명 인사였고, 물려받은 재산만 쳐도 3대가 먹고 살 텐데. TV에서는 못 사는 척 오지네.
댓글란에 이런저런 갑론을박이 있지만 좋은 기사거리라고 여겼는지 연예부 기자가 냉큼 옮겨다 쓴 모양이었다.
민기 형이 귀에서 핸즈프리 이어폰을 빼며 말했다.
“방금 실장님이랑 통화 끝냈는데, 홍보팀에서 그 기레기 회사랑 얘기하고 있다나 봐. 곧 기사 내려갈 거야.”
“고마워요. 형.”
새로 고침을 몇 번 더 누르자 기사가 삭제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올라온 지 30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추석 당일에 이 정도 일처리 속도라니, 우리 홍보팀 분들 정말 일을 잘하신다니까.
하지만 이미 어뷰징 기사는 우후죽순으로 올라온 터였고, 해당 기사도 잠시 메인 화면에 노출됐다.
물론 공감을 얻지는 못했다.
원본 글이 올라온 커뮤니티의 이미지가 대중 사이에서 좋지 않았을뿐더러, 사실 관계 확인 없이 쓴 인터넷 기사였으니까.
댓글 반응도 대부분 내 편을 들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내 편들도 나를 신경 쓰고 있었다.
“형.”
“아, 괜찮아. 신경 쓸 거 없어.”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녀석들에게 웃으며 손을 저어 보였다. 중현이가 뒤에서 스윽 손을 뻗어 내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갑자기 어깨는 왜 주물러?”
“뭉쳐 보여서요.”
“그럼 전 팔 주물러 줄게여.”
“지호야.”
“넹.”
“왼팔 말고 오른팔. 나 버튼 누르느라 뭉쳤나 봐.”
“…넹.”
두 행동파가 눈치를 보며 나를 주물러 주는 모습이 왠지 웃겼다.
나머지 둘은 기사를 보며 콧김을 뿜어 댔다가, 나를 흘깃 보며 걱정했다가, 다시 인터넷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난 괜찮은데…….
“문병학, 기자 이름 내가 이름 똑똑히 기억해 뒀어요.”
“난 메모해 놨어.”
분노하는 동생들과 달리 나는 덤덤한 편이었다.
솔직히, TV에서 우리 아빠가 누군지 얘기를 할 때부터 예상한 질문이었으니까.
물려준 재산은 다 어디로 갔느냐고.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는데, 그걸 파고든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뭐, 그러려니 했다.
남이 잘 돼서 박수를 받을 때, 그걸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꼭 하나둘은 있는 법이니까.
우리가 관심을 받게 돼서 생긴 해프닝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 있기도 했고.
“형, 이거 봐요.”
비주가 스마트폰으로 주부들이 모인 사이트에 올라왔다는 글을 보여줬다.
『그 기사 보고 너무 열이 뻗쳤네요 (뉴블랙 지인)』
[가난 코스프레라뇨..;;
물론, 찢어지게 가난하고 그런 건 아니지만 저 멤버네 집이 그리 잘살고 그러진 않아요
제가 저 친구 할머님이랑 근처 가게에서 영업해서 알아요
제가 처음 가게 열었을 때…….]
읽자마자 누군지 알았다. 우리 할머니 백반집에서 대각선으로 있는 감자탕집이었다.
혜연이네 어머님이네.
통통하고 인상 좋은 얼굴이 내는 상냥한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할머니도 정말 좋은 분이세요. 처음에는 엄청 무서우신 줄 알았는데;; 그런 분이 또 없으세요.
어려운 일 있을 때마다 ‘어휴, 그걸 왜 당하고 있어!’ 하면서 나서주시고, 처음에 텃세 심할 때도 제일 먼저 다가와서 손을 잡아주셨어요.
손자인 우주는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 딸내미가 더 애기 때는 맨날 우주 오빠랑 결혼할 거라고 그랬던? 기억이 있네요 ㅎㅎ
조손이 어찌나 사람이 좋은지..]
나도 까먹고 있던 미담들이 마구 적혀져 있었다. 그걸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지호가 감탄했다.
“우주 형, 알고 보니 착한 사람이었네여.”
“넌 홍삼 젤리 절대 안 줄 거야.”
“어차피 홍삼 안 좋아해서 괜찮아여.”
“그래, 나 혼자 다 먹어서 키 클 거야.”
막내랑 초딩 같은 만담을 주고받는 가운데, 이번에는 리혁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근데 이번에 스트릿 보이즈 팬들이 우리 편을 좀 들어 줬다는데요?”
“스트릿 보이즈?”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SNS 등지에서 그런 기사를 가지고 우리를 공격한 이들이 있다는 모양이었다.
참으로 이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을 하며 사건에 대한 개요를 들었다.
우리 수플레들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이유는 해당 기사도 있지만, 타 팬덤이 그걸 이용해서 우리를 욕했다는 모양이었다.
주로 데이드림의 극성팬이라나.
“데이드림? 아…….”
그때, 우리랑 주세한에 출연할 남자 아이돌 후보군을 두고 경쟁했던 선배 아이돌 그룹이었다.
빼어난 비주얼로 유명한 4대 기획사 MOP 출신답게 팬덤의 단합력이 엄청난 그룹.
대체 섭외에 관한 소식이 어떻게 흘러들어간 건지 모르겠다.
‘우리 오빠들이 출연했으면 뉴블랙보다 훨씬 잘했을 거다’는 논리를 보며 그 신박함에 감탄했을 뿐.
아무튼 그런 공격에 우리 팬들이 눈물을 삼킬 때, 스트릿 보이즈의 팬들이 참전해서 도와준 모양이었다.
그 팬덤명을 보며 흠칫했다.
“…콘크리트?”
“스트릿 보이즈라는 그룹을 탄탄하게 지탱한다는 뜻이래요.”
“여기도 스칼렛 누나들처럼 회사에서 정한 거래여?”
“아닌 거 같은데, 본인들이 정했대.”
아무튼 그 이름만큼 전투력이 강력하셨던 모양이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런 SNS 등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내가 모르는 용어들이 너무 많아서, 뭐가 뭔지 제대로 몰랐다.
확실한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이들이 도와줬다는 거였다.
“왜 도와준 거지….”
“어디 보자, 찾아보니까 주세한에서 형이 스트릿 보이즈랑 꽤 친하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대요.”
“내가?”
편집이 그렇게 됐긴 했지.
차량에서 헤이션과 스트릿 보이즈 관련한 얘기를 했는데, 뭔가 편집이 친한 아이돌 동기처럼 나와 버렸다.
“그리고 어제, 한조인가? 그 사람이 팬카페 채팅으로 신인 보이그룹 중에 좀 친하게 느껴지는 사람으로 형을 꼽았대요.”
“…….”
“형, 친구 생겼네여.”
지나가면서 살갑게 인사하는 정도였는데, 갑자기 어디서 친구가 하나 불쑥 생긴 느낌이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냥 돌아가는 상황이 황당하고 웃겨서 웃음만 새어 나올 때, 나는 팬카페 화면을 바라보았다.
수플레들이 나를 걱정하고 있는 글들이 잔뜩 보였다.
난 괜찮은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을 해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다들 안심을 하고 계실까.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운전을 하고 있는 매니저를 불렀다.
“민기 형.”
“응?”
“저, 팬카페에 글 좀 써도 될까요?”
* * *
[안녕하세요, 우주입니다]
(사진)
수플레 여러분~ 우주에요.
사진은 저희가 오늘 퀴즈쇼에서 상품으로 딴 홍삼젤리인데, 저 혼자 다 먹어버릴 예정이에요. (소곤)
음.. 사실 요걸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좀 있지만, 팬분들한테 감사하다는 글을 쓰려고 왔어요.
고마워요. 우리 수플레.
활동을 하는 매 순간마다 저희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여러분이 저희를 사랑해 주시는 만큼, 저희도 더 큰 사랑으로 보답해드리겠습니다.
조만간 만나요. 우리.
ps1. 리혁이가 그러는데 브금을 깔면 감동적으로 보일 거래요. 잘 몰라서 링크만 달게요.
ps2. 링크 오타 났어요ㅠㅠ 이게 원본
ps3. 아니.. 이거 말고 유레이즈업 들어주세요
ps4. 댓글로 링크 다시 올린 분이랑 가사 이어 가시는 분들 강퇴에요
ps5. 아니.. 스페이스판타지 가사 말고 제 글에 반응 좀..
ps6. 다신 안 올 거다 팬카페
* * *
망할.
링크 하나 잘못 올려서 웃음거리가 됐다.
주소에서 글자 하나 틀렸는데 그게 옛날에 나왔던 다른 노래가 될 줄이야.
“그러니까 글을 올리기 전에 확인을 제대로 해야죠.”
“리혁아.”
“왜요.”
“그거, 네가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니?”
“…난 감기약 먹고 실수한 거라고요.”
독서 카페와 팬카페를 헷갈려서 흑역사를 창출한 사람에 비하면 내가 훨씬 낫지.
리혁이는 투덜거리며 작업실 소파에 누워 중급 일본어 교본을 펼쳤다.
얼마 전에 초급 아니었나?
작업실 소파에 앉아 있는 멤버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중현이랑 지호는 둘이서 폰 게임을 하고 있었고, 리혁이의 머리를 자기 무르팍에 뉘인 비주는 뜨개질을 하는 중이었다.
볼 때마다 참 야무진 손재주였다.
원래는 애들을 숙소로 보내고, 난 개인 작업을 하러 회사로 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다들 따라온다고 해서 이렇게 됐다.
명목은 심심하다는 거였지만, 아무래도 아까 기사가 신경이 쓰여서 그런 모양이었다.
상품으로 딴 홍삼 젤리를 하나 꺼내 씹으며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내가 글을 올린 후로 팬카페 분위기가 확실히 나아져 있었다.
물론 글을 올릴 때 그 기사에 관한 것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팬분들은 그 덕에 걱정을 덜은 듯했다.
그제야 안심이 되면서 비로소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디로 갔나~ 어디로 갔나~”
노래를 흥얼거리며 리얼리티용 미니캠을 테이블 위에 설치했다.
본 촬영은 추석이 끝나고 들어가기로 해서, 지금 찍고 있는 것은 일상의 모습을 보여 주는 카메라였다.
카메라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머리를 정돈했다.
“뭐야, 카메라 켰어요? 키면 말을 해줘야지.”
“괜찮아, 리혁아. 넌 그 각도로 안 보여.”
“맞아여, 우리 리혁이 작아서 안 보이… 으에에!”
작업실 바깥으로 막내가 도망치자 리혁이가 추격하기 위해 달려 나갔다.
그걸 보는 우리는 놀라울 만큼 덤덤했다.
비주는 슥 보다가 뜨개질을 이어나갔고, 중현이는 지호가 나간 다음에 폰 화면에 떠오른 Win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곤 지호 폰을 이용해 다시 승부하기를 눌렀다.
“오, 또 이겼다.”
일상적인 동생들의 모습을 배경 삼아, 나는 컴퓨터를 켜서 작업에 들어갔다.
이제 최종 작업 단계였다.
이번 노래의 주인공이 될 막내를 즙처럼 쥐어… 흠, 얘기를 많이 나눈 뒤 수월하게 완성한 데모 버전.
1시간가량 마우스를 클릭해 가며 엉성해 보이는 벌스 몇 곳을 고치거나 위치를 바꾸며 노래를 고쳤다.
마침내 최종 버전이 완성되었을 때, 눈을 감고 음원 파일을 재생했다.
좋다.
처음 든 생각이 그거였다.
하도 많이 들어서 귀에 익었던 탓에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시장에 내어 놓았을 때 혹평을 들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약간 예술적인 느낌이 들지만 그 부분이 A&R팀의 도움으로 편곡하면 되는 문제였다.
남은 건 제목이었는데, 이 부분은 당연하게도 꿈에서 꿨던 장면을 그대로 써 먹기로 결정했다.
가면극을 영어로 옮긴 ‘Masque’로.
원래는 가면무도회를 영어로 한 ‘Masquerade’로 할까 했는데 너무 어렵게 느껴져서.
제목을 바꾼 후, 다시 한 번 노래를 감상했다.
“형, 그게 완성본이에요?”
“응. 어때?”
“엄청 좋아요.”
비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듣고 있다 보면 들어가는 안무도 쏙쏙 떠오르고, 노래가 진지한데 예뻐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랩 파트 구간도 좋고.”
그런 감상평을 차분하게 듣는 동안, 내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가이드 녹음을 아직 안 했네. 너희 심심하지?”
“네?”
“어서 부스 안으로 들어가렴.”
“…….”
* * *
동생들의 도움으로 가이드 녹음을 마친 후, 나는 완성된 파일을 A&R팀에게 보냈다.
텅 빈 회사 라운지.
그 푹신한 소파에 앉아 우리는 TV를 틀었다.
광고가 흘러나오는 동안 감자칩을 먹던 막내가 초췌한 두 형을 보며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푸핫! 형들 왤케 얼굴 핼쑥해졌어여.”
비주와 중현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쿠션을 끌어안은 채 소파에 엎어져 있었다.
마음 한 구석에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홍삼 젤리 하나 먹을래?”
“아니요오…….”
“중현이는, 먹을래?”
“절레절레.”
“진짜?”
“끄덕끄덕.”
입으로 의태어를 내는 시무룩한 바위의 모습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두 동생은 이내 내가 시켜 놓은 매콤 족발보쌈 세트가 도착하면서 환한 미소를 되찾았다.
역시 세상을 움직이는 건 돈과 고기였다.
“어, 시작한다.”
모니터링을 위해 실시간 댓글이 나오는 태블릿 PC를 테이블에 올려둔 채, 우리는 주세한의 추석 특집 2부를 시청했다.
지난번, 고깃집 때와는 달리 마냥 즐거운 분위기였다.
그때는 방송에 어떻게 나올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덜었으니까.
갑자기 구재영 피디가 악마의 편집을 한다면 모를까, 나쁘게 나올 만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두 번째 미션을 진행하는 다른 팀들의 영상이 나오고 나서, 세 번째 미션이 시작할 때까지 우리 분량은 별로 없었다.
“오, 이제 우리 나와여.”
하지만 세 번째 미션부터 비중이 꽤 높아지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보물 상자 찾기 미션을 소개하며 커다란 삽 세 자루가 화면에 잡힐 때였다.
“푸하하하!”
“형, 엄청 행복한 사람처럼 보여요.”
삽을 보며 뿌듯해하는 내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잡혔다. 순간 부끄러워서 상추 잎으로 눈을 가렸다.
저렇게 뺨을 씰룩이며 행복해 하는 얼굴이었다니.
수치스러워하는 나와 달리 동생들과 인터넷의 시청자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어서 플래시백처럼 내가 차량에서 나눴던 대화가 흘러나왔다.
삽질을 연습했다던 그 이야기.
-진실의 미소ㅋㅋㅋㅋㅋㅋ
-이거 떡밥이었구나.. 어쩐지 왜 삽질 얘기 길게 보여주나 했지
-ㅋㅋㅋ이따 삽질하는 거 기대 중
팬카페에서는 우리 수플레들이 실시간으로 움짤을 만들며 좋아하는 중이다.
당분간 안 들어가야지. 내일 오후쯤 되서야 들어갈 거다.
한편, 그러는 동안 세 번째 미션의 내용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웃을 차례였다.
“아씨, 반 단톡방에서 애들이 다 놀려여. 무식하다고.”
길채경과 지호가 무식 배틀을 펼치는 모습에 보고 있던 우리는 막내를 놀리며 웃었고.
배영훈 씨에게 넌센스 퀴즈로 연패를 당하는 리혁이의 나라 잃은 표정에 또 웃음이 나왔다.
“아니, 나 저런 표정 안 지었는데. 내가 평소에 저래요?”
“응.”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는 우리를 보며 리혁이가 입맛이 떨어진다는 듯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이윽고, 비주가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아아, 저기 편집해 주시지.”
떨리는 목소리로 ‘저기요오!’, ‘계세요오오!’ 하면서 불안하게 다니다가 VJ를 발견하고 뛰어오는 우리 둘째의 모습은 히말라야에 조난 되었다가 구출 당한 사람 같았다.
실시간 댓글창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랏진짴ㅋㅋㅋ 모종삽 누가 생각한 거지ㅋㅋㅋㅋ
-모종삽ㅋㅋㅋㅋㅋㅋ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로 출연진들이 진지한 얼굴로, 텃밭을 가꿀 때 쓰는 조그마한 모종삽으로 땅을 파고 있자니 그게 그렇게 웃겨 보일 수가 없었다.
가까이서는 비극이었던 게 멀리서 보니 희극처럼 보인다고 할까.
팀별로 한 명씩만 커다란 삽을 파고, 나머지 인원들은 온 힘을 다해 모종삽을 휘두르고 있었다.
A팀과 C팀이 땅을 열심히 파고, B팀이 그걸 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오, 형 나온다.”
화면 속에서 맥시와 함께 헐레벌떡 뛰어온 내가 여희연으로부터 삽을 받아 땅을 파기 시작했다.
-오..
-진짜 잘하네.
-사촌형이랑 같이 보는 중인데, 쟤 공병대 출신이냐고 물어보네요.. 삽질하는 게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라고
-ㅋㅋㅋㅋ삽질 진짜 잘하네요
-연습했다고 뿌듯해할만 함
-제가 삽질 좀 해봐서 아는데, 자세히 보면 허벅지 움직임을 보세요. 보통 초심자들이 동작 실수해서 허리가 많이 나가는데..
웃기다는 반응보다는 신기해하는 댓글이 더 많았다.
지금 내 곁에서 보는 동생들도 보쌈을 손에 쥔 채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는데, 어째 농구 슛을 성공시켰을 때가 떠올랐다.
뭔가 내 생각이랑 반응이 다르게 가는 느낌이었다.
-뉴블랙 우주, ‘이것이 군필 아이돌의 삽질’
…라는 기사도 캡처 화면과 함께 뜨는 가운데, 실시간 댓글 창에 누군가 남긴 댓글이 보였다.
-군대 예능 나가면 잘할 듯ㅋㅋㅋ
-사나이로 간다 같은 TBC 아님? 지금쯤 제작진이 눈독 들이고 있을 듯 ㅋㅋㅋㅋ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끼며 TV를 바라보고 있을 때, 석환 형으로부터 톡이 하나 들어왔다.
악마 [우주야]
나 [ㄴㄴ]
악마 [좋은 기회야]
나 [ㄴㄴㄴ]
다른 건 몰라도 군대 예능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 놓고서 TV를 바라보았다.
…뭐, 별일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종이컵에 담긴 콜라를 홀짝일 때였다.
비주가 심각한 얼굴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길래, 또 뭐가 있나 싶어서 질문했다.
“비주야, 뭐해?”
“아.”
상냥한 미소가 돌아왔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 * *
뉴블랙 팬카페의 비밀 채팅방.
RainAlchol : 지금은 분위기가 좋지만, 앞으로도 이런 못된 기사가 또 올라올 수 있어요
RainAlchol : 오늘 같은 일이 없도록 저희가 더 힘을 키워야 해요
우주_사랑 : 맞아요ㅠㅠㅠ
sss급 팬 : 오늘은 콘크리트 분들 덕분에 잘 넘겼지만 앞으론 이런 일이 있을 때 나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주_사랑 : 댓글 방어도 하구요
중현♥대길 : 근데 아까부터 궁금한 건데요.. 레인알콜님 계자에요?? 방송국 사정도 그렇고 이것저것 많이 알고 계시는 느낌;;
잠시 동안, 커서가 깜빡인 후 대답이 올라왔다.
RainAlchol : 계자가 뭔가요?
중현♥대길 : 아.. 아니신 것 같네요
우주_사랑 : 계자 뜻도 모르시는데 아니신 듯
곧바로 앞으로의 기사 장난질이나 악플 방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지만, 해당 채팅방에 뉴블랙의 멤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