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24)화 (124/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24화

추석 연휴가 끝나고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레몬 엔터의 A&R팀도 마찬가지였다.

연휴를 마치고 돌아온 직원들은 저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작업실로 향하거나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막내 작곡가 서필근은 활기찬 인사를 하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노트북을 켰지만, 일을 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A&R팀은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전문 작곡가들이 모인 만큼 복장도 스냅백이나, 패션 안경, 후드티처럼 자유로운 편이었고, 그랬기에 업무에 있어서도 자율성이 높았다.

하지만 추석 전에 입사해서 한참 신입인 까닭에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그는 인터넷을 둘러보았다.

사회면에선 담뱃값 인상이 가장 큰 이슈였고, 연예면은 각종 사건사고로 시끌시끌했다.

물론 좋은 쪽으로 이슈가 된 것도 있었다.

-‘가을소녀’, 추석 특집 ‘미스터 프로듀서’ 맹활약

-TNT, 단 10초만으로도 아시아를 사로잡다

-신흥 대세 아이돌, ‘뉴블랙’의 탄생?

올해 TBC의 간판 명절 예능 아이돌 운동회가 결방하면서, 갈 곳을 잃은 아이돌들이 예능 곳곳에서 출연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편집되어 사라졌고, 일부는 살아남았다.

그리 극히 드문 일부는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중에서 가장 극적인 유명세를 얻은 이는 단연 뉴블랙이었다.

가을소녀는 최근 두 앨범으로 연달아 음방 1위를 차지하며 상승세를 탄 걸그룹이고, TNT야 등장만으로도 아시아가 들썩이는 원탑 보이그룹이니 원래부터 유명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뉴블랙은 아무도 알지 못했던 그룹이었다.

썸씽 활동을 할 때는 장소원의 노래에 코러스를 넣어 주는 무명 가수 이미지였고, 그나마 하승주의 뮤직카페 때 일시적인 관심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 뒤로 불꽃놀이, SNS 광고 등으로 인지도를 높여 갔지만, 여전히 아이돌 판에서만 인지도가 있을 뿐 대중들은 뉴블랙을 몰랐다.

그런데 이번 주세한 출연으로 모든 게 바뀌었다.

아마추어 선수도 못 할 것 같은 농구 슛을 성공시킨 것부터 시작해서 추석 특집에서의 활약까지.

‘예능이 진짜 대단하네.’

포털에 나오는 TV 프로그램의 다시보기 영상 순위에도 뉴블랙의 이름이 가득했다.

-진격의 흑염소.. ‘난 한 놈만 팬다’

-‘분노조절장애’ 흑염소 대길이, ‘분노조절 잘해~’

-“내가 바로 닭싸움 챔피언이다” 아이돌 vs 개그맨

영상마다 웃음과 칭찬이 가득했다.

그렇게 재미있었나?

이번 추석 때, 가을소녀가 나왔던 미스터 프로듀서만 본 터였다.

주세한도 재미있다길래 볼까 했는데, 하도 주변에서 그 내용을 가지고 스포해 댄 까닭에 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뉴블랙이니 염소니 이야기를 하는데, 보지도 않았는데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때마침 직원들의 입에서 뉴블랙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야, 떴네. 우리 애들 떴어.”

“명절에 다 같이 TV 보는데, 그 흑염소 나오는 순간 예감이 뽝 들었다니까. 이거 뜬다고.”

“올라오면서 매니지팀 사람들 만났는데, 그 사람들 그렇게 싱글벙글한 거 간만에 보더라. 스칼렛 애들이 어워즈 무대 대박 친 다음에 처음이야.”

“난 이따 애들 만날 때 받으려고 사인지 챙겼다니까. 우리 조카들이 받아 달래.”

서필근은 귀를 쫑긋 기울였다.

아직 제대로 만난 적이 없어서 뉴블랙이 어떤지 몰랐다.

딱 한 번 본 적이 있긴 했다.

2층 작업실을 지나다가 엄청 잘생긴 애가 유리창 너머에서 고뇌하고 있었지.

인사라도 할까 했는데, 혼자서 핸드폰을 유심히 보더니 주변을 살피고는 발가락으로 신디사이저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인정하긴 싫었지만 정말 근사한 연주였다.

“우주도 참, 애가 선해.”

“걔네 다 착하잖아. 구김살도 없고, 누구 하나 잘나가도 지들끼리 싸우는 법도 없고.”

굉장히 평판이 좋은 모양이었다.

A&R팀의 선배 작곡가들이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그래도 이거 한 달은 가겠지?”

“갈 거예요. 이걸로 탄력 받아서 리얼리티도 찍을 테니 팬덤도 더 끌어모을 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그는 때마침 할 일이 떠올랐다.

A&R팀 메일함에 들어온 데모 곡.

이따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한 번씩 들어 놔야 의견도 더 잘 제시할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여러 노래를 재생했다.

‘이건 패스.’

살짝 촌스러운 레트로 느낌의 곡은 별로였다. 회사에는 이런 컨셉과 어울리는 가수가 없었다.

‘요건 좀 괜찮네.’

인트로가 좀 길기는 하지만, 후렴구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발라드 곡.

윤찬혁 같은 발라드 가수의 앨범에 수록곡으로 실어도 느낌이 괜찮을 듯했다.

그런 식으로 노래 탐방을 이어 갈 때.

연휴 동안 쌓인 9개가량의 곡을 듣던 그는 추석 당일에 전송된 메일을 발견했다.

‘Duksoon-love’라는 계정이었다.

‘덕순러브? 이런 작곡가가 있나?’

물론 작곡가의 예명 중에는 압구정티라노라든가, 호루라기홀홀 같은 특이한 것이 있었지만 덕순러브는 처음 봤다.

무슨 병맛인가 싶었는데 노래 제목은 ‘Masque’로 정상적인 편이었다.

그는 음원 파일을 내려받아 재생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무명 작곡가가 보낸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다.

‘어디 들어나 보자.’

…라는 마음도 3초뿐.

전주가 들리자마자 그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노래의 완성도나 세밀한 밀도 때문에 감탄한 건 아니었다.

다만 굉장히 반짝거린다고 할까.

노래가 온몸으로 나 보석이에요! 하고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게다가 머릿속으로도 이미지가 그려졌다.

어둠 속에서 시작한 작은 불씨가 순식간에 불타오르는 듯한 이미지.

‘이거 댄스곡으로 하면 대박이겠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거 누가 채가기 전에 우리가 가져가야 하는데. 갑자기 목이 바짝 탔다.

적당한 편곡만 거치면 최소 차트 20위권에는 들 거란 확신이 들었다.

손바닥에 배어 나오는 땀을 문지르며 그는 다른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보석이 굴러다니고 있는데, 선배 작곡가들은 웃으면서 잡담이나 하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그들을 불렀다.

“선배님, 이거 들어 보세요.”

“뭐를?”

“이게 추석 때 회사 메일로 들어온 거거든요. 근데 완전 대박이에요, 아니. 얼른 들어 보세요.”

재촉하는 막내 작곡가를 보며 선배 직원들이 웃었다.

서필근이 스피커 볼륨을 빵빵하게 키우고는 노래를 틀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묘한 미소를 주고받았다.

“내가 또 이럴 줄 알았지.”

“타이틀곡 공모 안 해서 다행이다. 이럴까봐 미루고 있었는데.”

“이따 규환이 형 출근하기 전에 포워딩부터 하자.”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신입 직원은 눈을 멀뚱멀뚱 떴다.

“저, 지금 이게…….”

“아, 넌 모르는구나?”

그중에 하나가 웃으며 말했다.

“이거 우주가 만든 거야.”

“예?”

*   *   *

HBS MTV의 아이돌 리얼리티 ‘잇츠 더 뉴블랙’의 포스터 촬영을 위해 찾은 스튜디오.

의상을 갈아입는 동안 갑자기 귀가 가려웠다.

“왜 이렇게 귀가 가렵지.”

“누가 당신 욕하고 있나 보죠.”

“그런가.”

내가 리혁이에게 물었다.

“너지?”

“뭔 소리야. 난 욕 같은 거 잘 안 해요. 아아! 진짜 왕지호. 저게 죽을… 아아!”

리혁이가 상의를 벗으며 옷을 머리 쪽으로 올리는 가운데, 눈이 안 보이는 틈을 타서 지호가 옆구리를 쿡쿡 찔러 댔다.

“리혁아.”

비주가 줄무늬 스웨터의 양팔에 각각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지호가 장난을 쳐도, 밖에 나가서도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카메라 돌아가고 있는 거 알지?”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실수할까 봐 걱정돼서 그래. 지금 우리를 바라보는 눈이 한두 개가 아니잖아.”

역시 우리 둘째다.

내가 해 줄 말을 대신 해 줘서 뿌듯한 기분을 느끼는 가운데, 갈색 재킷을 걸치던 중현이가 손가락으로 뭔가를 셌다.

그러곤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정답, 리혁이를 보는 눈은 총 여덟 개.”

“…….”

비주가 할 말을 잃고, 나랑 다른 애들이 막 웃었다.

그렇게 대기실에서 의상을 갈아입는 동안,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석환 형과 민기 형이 들어왔다.

“준비됐어?”

“넵.”

“포토그래퍼님이 기다리고 계셔. 얼른 가자.”

거울로 의상을 확인한 후, 우리는 석환 형을 따라 스튜디오 복도를 걸었다.

곧장 HBS MTV라는 마크가 붙은 카메라 두 대가 따라붙었다.

작가님이 물었다.

“첫 리얼리티 포스터 촬영을 앞두고 기분이 어때요?”

“음… 솔직히 떨려요. 데뷔하기 전부터 저희 꿈이 리얼리티를 찍는 거여서요.”

“맞아여. 너무 찍고 싶어서 제가 자기 전에 맨날 일기장에다 소원으로 리얼리티 적고 그랬거든여.”

“저기, 막내님아.”

“넹.”

“그대가 언제부터 일기장을 썼다고 그래요.”

“형은 꼭 이런 데서 태클을 걸어야 해여? 이런 귀중한 순간에.”

“중요한 순간.”

리혁이가 뒤에서 속삭였다.

“그, 그래여. 중요한 순간!”

어느 포인트가 웃긴 건지 모르겠는데, 우리 아이들이 헛소리를 할 때마다 작가님이 잇몸 웃음을 보이셨다.

부족한 어휘력이 들통난 막내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제가 사실 똑똑한데, 말이 빨리 나와서 이런 거예여. 저 사실 굉장히 똑똑해여. 어, 그 광역시도 다 압니다.”

“지호 씨.”

“…또 왜여.”

“우리나라에는 몇 개의 도가 있을까요?”

“형이랑 오늘 얘기 안 할 거예여.”

우리 애가 토라지는 모습에 다시 웃으신다. 그러는 동안, 중현이가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음… 저는 오늘 촬영이 기대돼요.”

“어떤 면에서요?”

“사진작가님이 저희 앨범 재킷 사진 찍어 주신 분이거든요. 그때, 저 보고 스핑크스 같다고 해 주셨는데, 되게 좋았어요.”

“중현아, 그 자세를 보여 드려.”

내 말에 중현이가 주먹을 고양이처럼 쥔 채 목을 움츠리자, 이번에는 카메라맨이 웃음을 참았다.

한편, 무념무상으로 해맑은 두 바보와 달리 비주와 리혁이는 웃으면서도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우리 리얼리티 포스터의 촬영을 맡은 포토그래퍼 때문이었다.

황태선 작가.

유명 스타들도 한 번 작업하면 계속 작업을 요청한다고 할 만큼, 피사체의 매력을 잘 살리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우리가 아이돌 팬덤으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던 그때 그 재킷 사진도 바로 이 사람의 작품이었다.

문제는 그 성격.

어찌나 살벌한지, 지난번 촬영 때 우리 애들이 거의 쌍욕에 가까운 디스를 들었다.

-이러다가 사진 다 버리겠네. 너, 거기 하얀 애. 너 때문에 지금 A컷 안 나오고 있잖아. 그래! 너!

-날 새겠네. 날 새겠어.

-너네는 리더만 제대로 연습하고 나머진 뭐 했니?

좋지 않은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나마 나는 잘해서 넘겼지만, 그날 동생들이 꽤 큰 내상을 입었다.

뭐.

금방 넘기긴 했다.

원래 신인들이 겪는 게 다 이런 건데, 하나씩 마음에 담기 시작하면 끝이 없으니까.

그래도 오늘은 이렇게 카메라도 있으니, 심한 말은 하지 못할 듯싶었다.

“안녕하세요!”

하얀 배경을 바탕으로 복잡한 조명이 설치된 스튜디오.

스탭들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괜히 ‘신인이 예능 한 번 잘나왔다고 태도가 건방지다’ 같은 얘기를 듣기 싫어서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인사했다.

“안녕.”

그래도 예능이 좋긴 좋다.

스탭 중에 우리를 바라보며 내적 친근감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 분도 있고, 웃어 주는 이도 있었다.

주세한이 방영되고 나서 느끼는 사소한 변화였다.

방송국이든 샵이든 사람들이 조금 더 친절해졌다고 할까. 인사도 나름 잘 받아 주고.

이래서 조금이라도 떠야 된다는 말이 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벌어진 극적인 변화에 나도 그만 당황했다.

“안녕하십니까, 뉴블랙입니다!”

“어어, 안녕.”

금테 안경에 비니를 쓴 포토그래퍼가 우리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것도 절친한 친구를 만난 사람마냥 환하게.

“오랜만이지? 그동안 잘 지냈니?”

세상에나.

*   *   *

사진 촬영은 연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카메라를 든 포토그래퍼가 신이 난 듯한 목소리를 내며 이곳저곳을 오가며 말했다.

“옳지, 잘한다! 잘해! 그런 식으로 가는 거야, 오케이!”

귀공자 느낌을 물씬 풍기는 스트레이프 셔츠를 걸친 막내가 은색 귀걸이를 강조하듯 귀에 손을 올렸다.

칭찬을 받을수록 더 잘하는 우리 막내 특성상, 점점 더 근사한 표정이 나왔다.

그 결과물로 우리 막내답지 않게 우아한 사진이 나왔다.

“어우, 피부가 하얘서 좀 조명을 낮춰야겠네. 아냐, 칭찬으로 하는 얘기야. 오케이, 옷깃에 손 올리시고!”

리혁이가 냉랭한 얼굴로 먼 곳을 응시하며 벽에 몸을 기댔다.

화면 속에 어딘가의 나무 잎새를 바라보는 듯한 미청년의 모습이 담겼다.

파란 가디건이 잘 어울렸다.

동생들이 사진을 찍을 때마다 흐뭇하게 웃는 나를 카메라가 담으려고 하기에 표정 관리를 했다.

“자세 좋고, 하하! 그거 스핑크스 같네, 이제 기억난다. 그거 말고 우리 한 번 다른 걸로 가 보자.”

갈색 재킷을 걸친 중현이는 제자리에 앉아 벽에 몸을 기대고는 턱을 슥 들어올렸다.

그러곤 씩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사실은 바보지만, 화면에는 잘생긴 운동부 선배처럼 나왔다.

“춤을 추는 멤버라고 했지? 뭘 해도 태가 잘 나네.”

비주는 줄무늬 스웨터를 입은 채, 손에 턱받침을 하고는 웃어 보였다.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쑥스러워하는 표정이 담겼는데, 그걸 지켜보던 리얼리티 작가님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죠. 저희 애가 좀 예뻐요.

아니, 카메라맨분은 왜 자꾸 내 표정을 찍으려는 거야.

“우주야! 이제 너 찍어 보자.”

곧바로 내 차례가 됐다.

나가서 사진작가님이 요구하시는 포즈도 하고, 내가 미리 준비했던 포즈도 선보였다.

모두 반응이 좋았다.

곧이어 이어진 모니터링 시간에 동생들이 입을 벌렸다.

“우아아… 사기야, 이건.”

“뭐가 사기야.”

“이건 형이 아니에요. 인정할 수 없어요.”

그런 농담을 할 만큼 사진이 잘 나왔다.

카메라를 바라보지만, 그 너머를 바라보는… 으, 내가 말하니 오글거리네.

그냥 검은 셔츠를 입고 손에 보석 꽃을 들고 있는 얼빡샷이었다.

“형은 근데 왜 맨날 찍을 때마다 이런 야릇한 미소 지어요?”

“중현아, 야릇한 미소라니.”

중현이의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웃었다.

그리고 그 웃는 이에는 사진작가 황태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참으로 믿기 힘든 일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상을 팍팍 쓰시던 분이 지금은 우리를 보며 웃고 칭찬해 주고 있었으니까.

카메라의 영향도 있지만, 아무래도 지금 주세한의 반응이 꽤 좋아서 일시적으로 생긴 일 같다.

“…이래서 다들 뜨려고 하는 건가 봐요.”

단체샷을 찍으러 걸어갈 때, 비주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나 역시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스터 촬영을 하면서 느끼고 있던 터였다.

처음에는 내 손에 들어온 행운에 마냥 기뻤다면, 이제는 이걸 절대 놓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더 잘하자.”

단체샷을 앞두고 한 말에,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곧바로 카메라를 향해 표정을 바꿨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   *   *

리얼리티 포스터 촬영을 끝내고 며칠 후, 회사 연습실에 있던 우리는 석환 형으로부터 새로운 스케줄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영상 통화 속 얼굴이 말을 시작했다.

-여지저기서 들어온 예능 섭외를 다 검토했는데, 너희 이미지에 어울릴 만한 스케줄로만 추렸어.

화면 속에 비치는 우리 표정이 제법 결연하다.

-일단, 중현이한테 섭외가 제일 많이 들어왔어. 흑염소 임팩트도 있고 하니까. 농촌 예능에서도 많이 이야기가 들어왔는데, 우리가 잡은 스케줄은 하나야.

“오, 뭔가요.”

-애니멀 프렌즈라고, TBC 주말 동물 예능인데… 그 대길이를 다시 한 번 만나러 수의사들이 갈 건가 봐.

분노조절장애 염소에게 다시 방문하는 그런 스토리를 원하는 모양인 듯했다.

-그리고 비주는 케이블 TV랑 교육 방송에서 요리 관련 예능 들어왔거든? 둘이 같은 시간대니까, 한 번 보고 네가 원하는 데로 결정하도록 해.

“결정을 할 수 있다니…….”

비주가 감동하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우리 셋에게는 나름대로 무난한 다른 예능 스케줄이 들어왔다.

리혁이는 집 소개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지호와 나는 프리롤로 이 셋의 스케줄에 끼어 들어가는 식이었다.

-아, 그리고 우주 너 말이야, 정말 사나이가 간다는 싫은 거지?

“응.”

-하긴. 우리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삽질이나 군필 이미지는 다른 쪽으로 살려 보기로 결정했어.

“형, 무슨 소리야. 그걸 왜 살려? 없애 버려. 얼른.”

내가 다급하게 말을 하는 동안, 석환 형이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어차피 해야 되는 일이기도 해서.

“해야 되는 일?”

-통지서가 날아왔어.

“토, 통지서…?”

석환 형이 영상 통화로 종이 하나를 슥 들어서 보여 주었다.

내가 멍한 표정을 짓고, 동생들이 깔깔 웃는 동안 화면 속의 악마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축하해. 너 예비군 통지서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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