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48)화 (14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48화

1위 후보라니.

현재 활동하는 스무 팀의 가수 중에서 우리가 두 손가락 안에 들었다는 이야기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 여파로 가득한 차량 안.

“비주야.”

동생들을 살피다가 그만 웃어 버렸다.

“왜 그렇게 눈이 촉촉해?”

“어, 모르겠어요. 형. 저 지금 눈물 날 뻔했어요.”

“이미 났는데.”

“아니에요. 눈에 먼지가 들어간 거예요.”

우리 둘째의 눈물샘은 이미 촉촉했다.

곧장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에 비주가 고개를 젖히자, 중현이가 휴지곽을 통째로 건넸다.

“야, 울지 마. 나도 안 우는데.”

“넌 원래 안 울잖아. 김중현.”

“그건 그렇지.”

중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라인을 건드리지 않도록 비주가 조심스럽게 뺨과 눈가를 닦으며 웃었다.

형도 이 기분 알죠, 하는 눈이었다.

당연하지. 지금 엔돌핀이 미친 듯이 샘솟고 있는걸.

뒷자리에 있는 세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리혁이, 넌 표정이 왜 그래? 웃는 거야, 우는 거야?”

“아. 지금 말 걸지 마요.”

“이게 뭐냐면여.”

싱글벙글 웃는 막내가 옆자리의 하얗고 날카로운 삼각형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리혁이 형이 눈물 퐝 하려고 했는데, 비주 형이 먼저 울어 버리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쳤어여.”

“풉.”

“아, 진짜. 웃지 마요!”

“흐음… 근데 리혁아. 울 거야, 말 거야?”

진지하게 묻는 곰에게 삼각형이 눈을 부라렸다.

“형. 울 거라고 예고하고 우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안 울 거면 이 휴지곽 원래대로 놓으려고.”

“…….”

눈을 콕콕 찍던 비주마저 웃자, 리혁이가 한숨을 쉬며 차창을 열었다.

“에휴, 으퍼펍…!”

그러다 곧바로 바람 폭탄을 맞고 다시 닫았다.

빗질을 잘못해서 머리가 난장판이 된 인형 같은 모습에 우리끼리 박수를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늘 그러하듯이 진지했던 분위기가 금세 웃음으로 가볍게 풀렸다.

유쾌한 분위기였다.

당장 TNT의 팬들로 가득한 음악방송 현장에서 1위 후보로서 서는 장면이라든가.

인터넷의 악플이라든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기뻐했다.

7월처럼 운 좋게 차지한 1위 후보가 아니라 이제는 명실상부한 진짜배기 1위 후보가 됐다는 사실이 좋았다.

웃으면서 조수석에 앉은 로드 매니저를 불렀다.

“민기 형.”

“어?”

“팬카페에 글 남기면 안 되겠죠?”

“안 그래도 너희가 팬카페 글이나 라방 얘기할 것 같아서 실장님한테 연락을 드렸는데…….”

드렸는데?

우리가 귀를 쫑긋거렸다.

“안 된대.”

“역시.”

“너희도 알겠지만 지금 회사에서는 꼬투리 잡힐 만한 행동을 최소한으로 하자는 주의여서.”

“네, 저희도 알고 있어요.”

수플레들에게 고마움을 전달하고 싶었을 뿐.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고 할 때, 그동안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을 막내가 상기시켰다.

“근데 이번에 1위 공약은 뭘로 할까여?”

“아, 그게 있었네.”

다음 스케줄 장소로 향하는 동안 의논이 시작됐다.

“어! 저 그거요. 요즘 아이돌 프로그램에서 본 거 있어요. 2배속으로 안무를 하는 건데…….”

“저기 비주야.”

“네.”

“리혁이 죽어.”

“아앗….”

“아마 먼지 한 줌이 되어 사라질 거예여.”

“둘 다 표현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고, 지적하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춤 부분은 인정할게요.”

내가 리혁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리혁이 너는?”

“각 파트별로 피치 올려서 고음 챌린지 어때요?”

“마음에 드는걸.”

“진짜요?”

“응. 다른 멤버에 대한 배려심 없는 아이디어 너무 마음에 들어.”

“…….”

“맞아. 리혁아. 난 높은 도 이상으로 말을 해 본 적이 없어.”

중현이의 말에 막내가 호기심을 불태웠다.

“앗 뜨거 할 때두여?”

“응.”

“오호… 정말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렇단 말이져?”

“지호는 이상한 거 실험해 보려고 하지 말고.”

막내를 타이르고는 중현이를 불렀다.

“중현이는 의견 뭐 없어?”

“사실 뭘 해도 팬분들한테 고마운 거 다 못 담잖아요. 그러니까 인형탈 또 쓰는 건 어떨까 해요.”

“너 아무 생각 안 떠올랐지?”

“네.”

그럼 그렇지.

“나쁘지는 않은데… 펭귄탈 시즌 투로 가야 되나.”

“난 반대에요. 또 우려먹으면 질리잖아요.”

“컨셉을 바꿔보는 건 어때여? 이번에는 세레니티의.”

“세렝게티. 멍청아.”

“그곳의 동물들 컨셉은 어때여? 남극 했으니 이제 사자, 코끼리, 기린으로 하는 거예여. 그렇게 해서 리혁이 형은 악어를 시키는 거져. 춤출 때마다 고개 막 이렇게….”

악어탈의 긴 주둥이 때문에 중심을 못 잡고 휘청이는 모습을 흉내 내자 그만 웃음이 터졌다.

동생들 간에 혈투가 벌어지는 동안, 비주가 내게 물었다.

“형은 아이디어 있어요?”

“나는 교복….”

“안 돼여.”

“싫어요.”

싸우고 있던 두 막내를 순식간에 단합했다.

“와, 이 아저씨 봐. 팬들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사심을 이렇게 채우려고 드네.”

“아니, 내 얘기 좀 들어 봐. 팬분들도 우리가 교복을 입고 마스커….”

“팬분들이 교복을 좋아한다면 저랑 리혁이 형 셀카 올리면 되잖아여. 우린 맨날 입는데.”

도움을 얻기 위해 중현이와 비주한테도 ‘교복 콜?’ 했는데, 친절한 미소와 함께 ‘ㄴㄴ’ 하는 답만 돌아왔다.

다들 학교를 다니는 중이거나 졸업한 지 1년도 안 된 터라 교복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내가 혀를 차며 말했다.

“두고 봐.”

“뭘 또요.”

“너희도 언젠가 교복이 그리워지는 날이 찾아올 테니까.”

그때를 기다리며 차근차근 나이를 먹어 줄 테다, 하고 예고하니 동생들이 그게 무슨 저주냐며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웃고 난 후 내가 말했다.

“교복이야 사실 농담이고, 원래 생각한 아이디어는 따로 있는데 한 번 들어볼래?”

“오, 좋아요.”

곧이어 설명한 내 아이디어에 동생들 모두 반색하며 찬성을 했다.

*   *   *

다음 날.

화요일에 진행하는 HBS MTV의 ‘쇼타임’의 사전 녹화를 위해 찾은 방송국에서 우리는 아는 얼굴을 마주쳤다.

“얘들아!”

“엇, 안녕하세요. 피디님.”

우리 리얼리티를 담당했던 배종건 피디였다.

마침 잘 만났다며 배 피디가 알려 준 소식에 우리는 크게 놀랐다.

리얼리티가 수출된다는 소식이었다.

“일본으로요?”

“아, 아직 너희 실장님만 알고 있겠구나.”

피디님이 말했다.

“이번에 방송국끼리 프로그램 교류를 하기로 했는데, 그중에 우리 리얼리티가 선정돼서 MTV 재팬에서 방영될 거야. 대만 쪽이랑도 현재 이야기가 오가고 있고.”

“우와…….”

“뭘 이런 걸로 우와라고 해?”

대박이라며 눈을 반짝이는 우리 모습에 상대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면서 내 어깨를 툭 쳤다.

“1위 후보 축하한다. 정말. 리얼리티 시작할 때만 해도 주목할 만한 신예였는데, 지금은 대박 신인 다 됐네.”

촬영 때부터 노래가 너무 좋은 것 같았다며 칭찬하는 이에게 내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어휴, 아니에요. 저희 그 정도 아니에요.”

“그래. 겸손한 거 좋지.”

이해한다는 듯 배 피디가 우리를 보며 물었다.

“참, 너희 만난 김에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1위 축하도 축하지만, 말하는 걸 보아하니 이게 본론 같았다.

배 피디가 우리에게 물었다.

“이번에 아이돌 프로그램 하나 런칭을 했는데, 거기서 신선한 마스크를 찾더라고. 내가 어쩌다 발을 걸쳤는데….”

“오오.”

TV 출연이라는 말에 ‘하고 싶어요’란 말이 나올 뻔했지만 우리는 매니저들을 바라보았다.

그 반응에 곧바로 배 피디가 웃었다.

“맞네. 매니저분이랑 얘기를 해야지.”

그러면서 너희 그룹은 왠지 볼 때마다 우주가 선장님 같은 느낌이라 먼저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나.

섭외 요청에 반색한 민기 형이 실장님과 연락을 하겠다며 피디를 카페로 데려가는 동안, 우리는 원석 씨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기실로 올라갔다.

유리 너머 까마득하게 멀어지는 지상을 보며 중얼거렸다.

“와, 대박이다. 진짜.”

“우리 성공했나 봐여. 길거리 캐스… 이거 뭐라고 해야 되져. 리혁이 형.”

“엄밀히 말해서 길거리도 아니고 캐스팅도 아니지. 방송국 1층 로비 섭외 정도.”

“와. 형들. 우리가 처음으로 1층 로비 섭외를 당했어여.”

지나가던 피디가 ‘출연 좀’ 하는 상상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었는데 실제로 일어날 줄이야.

물론 내 상상에 있던 케이크용 폭죽이나 꽃다발 같은 건 안 나왔지만.

혼자 생각하다 웃고 있을 때, 아까 배 피디의 선장님 드립을 이용한 듯 노년의 뱃사공 흉내를 내며 나머지 형들을 웃기는 막내를 발견했다.

바로 응징했다.

“아아아…! 이거 고소할 거예여.”

“해라. 해.”

이어서 삼류 재벌 같은 대사를 읊는 우리 막내의 모습에 한심한 웃음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한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대기실 복도에 붙은 큐시트를 보는 순간 그 미소는 진심으로 바뀌었다.

“우와아…….”

저번 주말까지 내내 우리보다 뒷 순서에 스페셜 컴백 무대를 2개씩 했던 세레니티가 우리보다 앞에 있었다.

워낙 소속사 파워가 센 MOP이기도 한 터라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2주차가 되니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 뒤에 있는 이들은 미스티나 TNT처럼 다른 1위 후보나 연차 높은 선배 가수들 정도.

동그래진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형.”

비주가 말했다.

“저 방송국 도착할 때까지 실감 못하고 있었는데, 우리 진짜 1위 후보 된 거 맞나 봐요.”

“그러게. 나도 이제야 실감 난다, 이거.”

벽에 붙은 큐시트를 보며 지호가 제안했다.

“우리 이거 기념용으로 큐시트 찍어여.”

“그래. 그럼… 찍자는 게 셀카였냐.”

우리가 1위 후보로 적힌 큐시트를 기념용으로 하나 찍으려고 했는데, 곧바로 멤버들이 브이를 하며 벽 앞에 섰다.

결국 나도 셀카 모드로 바꿔서 같이 끼어들었다.

찍고 있을 때는 동생들을 바라보면서 그렇게들 좋냐 하면서 픽 웃고 있었는데.

막상 사진을 확인하니 내가 제일 환하게 웃고 있었다.

*   *   *

하루가 바쁘게 흘러갔다.

수플레들과 함께 사전 녹화도 하고, 쇼타임의 두 MC와 함께 컴백 인터뷰 리허설도 하고.

그 과정에서 1위 공약을 밝히기도 했다.

“네, 저희가 1위가 된다면 타이틀 마스커레이드의 안무를 진짜 가면무도회 버전으로 찍어서 올리겠습니다.”

정석적인 1위 공약이었다.

처음에는 동생들 말대로 재미있는 걸로 갈까 했는데 그러기에는 꽤 예민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첫 1위 후보인 만큼 우리 수플레들도 진지하게 여기고 있을 텐데.

거기다가 장난스럽게 아무거나 지르는 식으로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누구보다 1위 후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 우리였지만 굳이 그 반대의 행동을 하면서 우리 속마음을 따로 알아 달라고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의미를 지니고 해석되는 시기인 만큼 주의해야 했다.

-그러니까 꼭 표정 관리 조심하고. 알았지?

무대에 오르기 전, 석환 형도 걱정이 되었는지 전화를 걸어 신신당부를 했다.

동시에 우리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켰다.

-이번 주에 너희가 1위 후보가 되긴 했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1위는 되지 못할 거야.

그러면서 말했다.

-다음 주나 다다음 주는 음원 성적에 따라 변수가 생길 수 있지만 솔직히 이번 주는 힘들어. 첫 주기도 하고. 저쪽 팬덤 화력이 너희가 뭘 상상하든 그 이상이거든.

혹시나 우리가 부푼 마음을 안고 섰다가 실망이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는 듯했다.

그 말대로 이번 주는 확률이 극악하게 낮았다.

리혁이가 이틀 동안 머리를 감지 않고, 동시에 비주가 갑자기 욕설을 내뱉으며 내 멱살을 잡을 확률과 같다고 할까.

음원은 우리가 더 높은 성적을 보이고 있었지만 큰 차이가 아니기도 했고, 그 외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너무 컸다.

초동 판매량 예측치만 20만 장으로 역대 1위 기록을 갈아치울 거라고 여겨지는 음반 판매량.

멤버 석지훈이 조연으로 출연하는 드라마가 방영 전부터 중국 측에 수십억에 팔릴 정도로 높은 인지도.

올해 초에는 한국인 최초로 중국 춘절 프로에 출연할 정도였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회사에서도 냉정하게 3주차쯤 가서 음원성적 격차가 벌어지면 노릴 수 있지 않겠냐는 예측이었다.

그런 말을 들으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솔직히 한 번이라도 1위가 된다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오히려 덤덤하기도 했고.

걱정이 된다면 우리 수플레들이었다.

혹여 우리가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할까.

이래저래 기쁘면서도 생각이 복잡했다.

“1위 후보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같이 후보에 오른 미스티의 축하 인사에 고개를 꾸벅 숙였다.

3주 연속 1위를 하고 이번 주가 막방이어서 그런지 미스티 멤버들의 표정은 홀가분했다.

출연자용 입구 앞.

벽에 걸린 TV에서 TNT의 타이틀곡 무대가 흘러나오는 동안 복도는 기다리는 가수들의 말소리로 웅성거렸다.

심신의 안정을 얻겠다는 듯 오늘따라 동생들이 내 곁에 착 붙었다.

“야, 내가 무슨 토템이냐.”

“말했잖아요. 고인돌 같은 존재라고.”

“넌 저리 가. 안 끼워 줄 거야.”

못 들은 척하는 리혁이를 짐짓 째려보다가 이내 우리 애들의 표정을 보고 웃었다.

마치 허브 캔들이 된 것 같다.

나한테서 나오는 향을 맡으며 초조한 마음을 달래는 것 같다고 할까.

말없이 웃으며 동생들을 토닥이는 한편 TV를 바라보았다.

엔딩에서 느긋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응시하는 TNT 멤버들의 클로즈업 샷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

공개홀에서 엄청난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가수들끼리 부러움 가득한 웃음을 띠며 ‘와’ 하는 입 모양을 그릴 때 스탭이 복도 쪽으로 들어왔다.

“이제 들어갈게요!”

스페셜 컴백 무대 사전 녹화분이 송출되는 동안 출연자들이 모두 공개 홀로 들어갔다.

가운데서 TNT 멤버들과 MC들이 서 있었다.

그들을 사이에 두고 우리와 미스티가 양쪽에 1위 후보로서 설 때, TNT 멤버들이 웃으며 눈인사를 건넸다.

나도 고개를 꾸벅하면서 인사했다.

편하게 인사하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기도 하고 여러모로 공적인 자리였다.

그러는 한편 동생들과 함께 절로 침을 삼켰다.

무대 앞 스탠딩석과 좌석에서 보이는 TNT 팬들의 숫자 때문이었다.

빨갛게 빛나는 응원봉의 물결.

다이너마이트 봉이라는 이름답게 정말 모양도 폭탄과 똑 닮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빨간색으로 빛나는 다이너마이트 수백 개가 흔들리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그 사이에서 수줍게 반짝이는 노란 응원봉을 발견했다.

팬미팅 때 나눠줬던 그 일회용 응원봉이었다.

우리가 바라보자 노란 응원봉들이 신이 난 작은 별처럼 흔들리며 반짝거렸다.

귀엽다.

응원봉을 들고 있든 아니든 현장에 와 준 팬분들을 샅샅이 찾아내서 눈인사를 했다.

왜들 눈을 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아이컨택을 하고 싶었지만 이내 TNT의 녹화분이 끝나면서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남녀 MC가 활기차게 웃었다.

-네! 한중합작 음악 방송 쇼타임! 이번 주의 영광스러운 1위를 발표할 시간입니다!

-자, 점수 보여 주세요!

곧바로 화면에 세 그룹의 사진과 함께 점수표가 떠올랐다.

뉴블랙 - Masquerade

TNT - ? (Question)

미스티 - 빠져

첫 번째로 나오는 음원 점수에서 우리가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가운데 다른 점수가 속속 올라왔다.

방송 출연 횟수, 음반 판매량, SNS 지표.

어느 한 그룹의 압도적인 점수가 올라오는 가운데, 이어서 문자 투표 결과가 올라왔다.

한국에서 70퍼센트, 중국 투표에서 98퍼센트를 차지한 TNT의 점수와 함께 결과가 발표됐다.

-네, 1위는 TNT!

-축하드립니다.

팡! 하고 터지는 꽃가루와 함께 귀청이 떠나갈 만큼 큰 함성이 공개홀을 가득 채웠다.

“와아아아아아아!”

다이너마이트 수백 개가 미친 듯이 흔들리는 동안 소감을 끝낸 TNT에게 다가가 축하를 건넸다.

다들 평온하게 기뻐하는 얼굴들이었다.

“축하해요. 우리 선배님들.”

“고마워. 형.”

태현이가 대표로 화답을 했다.

뭔가 더 해 줄 말이 있는 듯했지만 시간도 없고 해서 가볍게 서로 어깨를 토닥이고 내려왔다.

그러는 동안 리더 구선웅의 손에 들려 있는 트로피가 눈에 박히듯 들어왔다.

…이거 기분이 묘하네.

당연히 1위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뻔한 결과를 예상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확인하니 달랐다.

이상한 감정이라고 할까.

잘나가는 이에 대한 막연한 질투는 아니고.

저거 우리 거인데 하는 유치한 감정도 아니었지만.

그 손에 들려 있는 트로피를 보는 순간 가슴 속에 확 피어오른 무언가 때문인 것 같다.

매일 음원 차트를 확인하고 1위 후보에 대한 이야기를 어젯밤부터 하긴 했지만 처음으로 진짜 실감했다고 할까.

진짜 내가 여기 올라왔구나 하는 느낌.

트로피와 꽃다발을 보는 순간 간절함을 느꼈다.

말로는 이번 주에는 어렵지 하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이 정도로 1위를 원했는지 발표 시간이 끝나고 나서야 깨달은 것 같다.

그리고 나만 그런 느낌을 얻은 게 아니었는지 대기실로 돌아가는 동생들의 표정도 비슷했다.

“오늘 다들 고생 많았어.”

“형도 고생했어요.”

웃고 있는 비주마저도 평소와는 분위기가 살짝 달랐다.

다들 표정을 보아하니 긴 말은 필요 없을 듯했기에 복도를 걷는 동안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 음방 끝날 때까지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모르는 거잖아. 그러니까 한 달 동안 죽었다 생각하고 이것저것 다 해 보는 거야.”

되든 안 되든 상관없이.

우리에게 새롭게 생긴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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