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60)화 (16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60화

잠시 작업실 테이블에 핸드폰을 내려놓고는 동생들에게 물었다.

“초장부터 전화를 걸고 그러는 것도 좀 어색하니까. 일단 문자부터 보내볼까?”

“그래요. 형. 그게 좋겠어요.”

절대로 재미없어 보일까 봐 그러는 게 아니었다.

예의를 차리는 거지.

다 같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모습에 리혁이가 교재를 읽다 말고 혀를 찼다.

“어휴, 이 소심한 인간들.”

“전화 걸면 너부터 바꿔줄 거야.”

“…사람이 소심할 수도 있죠. 원래 모든 인간은 내면적으로 소심하다고요.”

일단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보냈다.

대강 안녕하시냐고, 뉴블랙인데 지금 연락 가능하냐는 메시지였다.

작성을 마치고 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어때?”

“내용은 좋은데. 이모티콘을 하나 추가해 보면 어떨까요?”

비주의 제안에 따라 마지막 문장에 ‘^^’를 추가했는데 리혁이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가식적으로 보이잖아요. 진솔해 보일 수 있게 뒤에다가 뭐 하나만 추가해요.”

“이렇게?”

“왼쪽 볼에도 하나 더 찍어여. 형.”

두 막내의 요구사항을 반영하여 볼터치가 붙은 ‘*^^*’를 전송했다.

3분 후.

핸드폰이 부르르 떨리며 메시지를 알렸다.

-안녕하세요. 스트릿 보이즈입니다. ٩(•◡•)۶ 

만나서 반갑다면서 지금 연락이 가능하다는 답장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을 끈 건 거기 붙어 있는 귀여운 이모티콘이었다.

길지도 않은 메시지를 쓰는데 왜 3분이나 걸렸나 했더니 이모티콘을 쓰는데 시간을 쓴 모양이다.

“우리가 졌네.”

“구형 폰 쓰는 사람들한테 이모티콘으로 패배하다니… 다 같이 반성해야 돼여.”

“우리도 귀여운 걸로 보내봐요. 형.”

옆에서 채근하는 동생들 때문에 미리 저장해둔 이모티콘 모음을 열었다.

“아, 이거 김덕순한테만 쓰려고 아껴둔 건데…….”

아까웠지만, 뉴블랙의 위신과 체면을 위해서 아낌없이 이모티콘을 쓰기로 결정했다.

복사 + 붙여넣기.

-지금 영상 통화 가능하세요? ٩(๑•̀o•́๑)و 내 마음을 받아라 김덕순

드래그를 길게 잡았다가 엄한 것까지 복사되는 바람에 동생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곧이어 답이 돌아왔다.

-네! 저희도 준비 끝났어요! ٩(•◡•)۶

동생들을 돌아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걸까?”

모두 기지개를 키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후우.”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겠네요. 걸어요. 형.”

“잠시만여. 거울 좀 보고.”

“제발… 이런 영상통화 하나 가지고 요란 좀 떨지 마요. 이러니까 회사 사람들이 우리만 보면 비웃는 거 아니에…… 흐익! 나한테 영상통화 화면 들이대지 마요!”

테이블에 핸드폰을 올려 두고는 영상 통화를 걸었다.

달칵.

핸드폰 화면이 밝아졌다.

화질이 그리 선명하지는 않지만, 비좁은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홉 명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민낯이었다.

평소 하고 다녔던 스모키 화장이나 해골 반지, 금목걸이 등이 빠지고 나니 평소보다 인상이 순하게 느껴진다.

“…….”

-…….

서로 어색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인사를 했다.

스트릿 보이즈가 거실에서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스트릿 보이즈입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 같은데 하반신만 나와서 안 보였다.

우리도 답례 인사를 했는데 아마 저기서도 마찬가지로 보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서로의 하반신끼리 인사를 마치고는 얼굴을 마주했다.

“숙소 거실이세요?”

-네.

스트릿 보이즈의 리더, 한조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 숙소예요. 뉴블랙 분들은 그러면…….

“아, 저희는 작업실이에요.”

-아하.

“…….”

-…….

가끔 그런 사이가 있다.

평소에 지나가다 마주치면 ‘하이!’ 이러고 인사하기는 하는데, 막상 서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는.

우리와 스트릿 보이즈가 그랬다.

데뷔 동기라서 음방에서도 한 달 내내 방송국에서 마주치고, 여러 행사장에서도 만날 때마다 인사를 했던 사이.

그래도 보다 보면 정이 든다고 7월까지만 해도 라디오도 그렇고, 합동 콘서트도 그렇고.

자주 마주쳤던 탓에 어느 정도 통성명을 하고 말을 트긴 했는데.

2집 활동 시기가 엇갈리면서 원래대로 리셋되어버렸다.

내가 제안했다.

“서먹한 분위기도 깰 겸 서로 자기소개 좀 할까요? 각자 이름이라든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피라냐들이 달려들었다.

“아니. 뭔 캠프파이어라도 해요?”

“분위기 더 서먹하게 만들지 마여, 우주 형.”

“흐음, 역시 올드해.”

어이없어 하는 내 모습에 반대편에 있는 스트릿 보이즈가 웃음을 터뜨렸다.

한조가 부드럽게 말했다.

-전 우주 씨 아이디어 괜찮은 거 같은데. 그럼 각자 이름이랑 나이, 포지션 넣어서 소개할까요?

저긴 또 저기대로 하이에나들이 달려들었다.

-와. 리더끼리 합이 잘 맞네요.

-저희 리더도 엄청 올드해요! 우리가 할조라고 불러요.

-…야, 그걸 여기서.

할조라니.

여기저기서 한창 물어뜯기는 한조에게 동병상련의 미소를 보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곧이어 답례가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처지가 비슷하네요.’

짠한 시선을 교환했다.

양쪽에서 맏형을 제물로 삼아서 신나게 물어뜯으며 분위기를 풀던 멤버들이 이내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인적 구성은 비슷했다.

리더인 나와 한조는 93년생으로 동갑이고, 막내인 지호와 기원이 98년생으로 동갑이었다.

그 사이에 3명과 7명이 끼어있다는 차이만 있을 뿐.

그런 까닭인지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비슷했다. 허리 라인이 두터운 저쪽이 압도적으로 시끄럽긴 했지만 말야.

머리를 파란색으로 물들인, 장난기 가득한 인상의 멤버가 앞으로 슥 나와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LB고요.

그때 누군가 외쳤다.

-얘 본명 감나무!

-뭐야. 어떤 새끼야?

LB가 험상궂은 얼굴로 고개를 홱 돌렸지만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내 그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 LB고요. 래퍼예요. 네, 항상 멀리서 지켜만 보던 뉴블랙 분들이랑…….

-으어어어!

“으아아!”

낯간지러운 대사에 양쪽에서 비명이 나왔다.

-나무야.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지금 막 분위기 살려놨는데.

-분위기를 죽이네? 죽였어?

-그거 아냐. 이미 얘가 입을 열 때부터 분위기는 멸망 수준이었어.

-죄송해요. 원래 나무가 오글거리는 말 엄청 잘해요.

“괜찮아요. 우리도 공감하거든요.”

“저희 팀에도 그런 사람이 하나 있어여. 큰 공연장 가면 ‘언젠가 이 공연장이 우리 꿈의 무대가 될 거야~!’ 이런 사람 있는데.”

“푸하하하!”

막내의 말에 우리 애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헛기침을 하면서 시선을 외면하자, 화면 속에서 한조가 짠한 시선을 보내왔다.

그때, 멤버들에게 시달리던 LB가 외쳤다.

-야! 사실이잖아. 솔직히 저희끼리 뉴블랙 분들 뮤비나 공연영상 보면 감탄하거든요. 노래를 너무 잘한…….

“에헤이! 왜 그러세요.”

-또 판 깬다.

-하여간 저저… 쿨 찰 때마다 허공에다 궁 날리는 새끼.

-나무는 들어가 있어. 불타기 싫으면.

감나무 씨가 시무룩한 얼굴로 들어가는 모습에 양쪽에서 손뼉을 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LB라는 멤버 때문에 분위기가 사뭇 편해지긴 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어쩌나 걱정했는데 양쪽 동생들이 포문을 열면서 순식간에 시끌시끌해졌다.

멤버들끼리 반말을 쓰는가, 존댓말을 쓰는가 등등 이런저런 그룹 문화는 달랐지만 전반적으로 유머 코드가 잘 맞았다.

벌써부터 절친 먹을 기세로 얘기 중이었다.

잠시 분위기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 스트릿 보이즈 측에서 조용해 보이는 한 멤버가 말했다.

-사실, 저희 전화 통화하기 전에 엄청 걱정했거든요.

“그래요? 왜요?”

-저희가 좀 노는 것도 잘 모르고, 노잼인 편이어서… 뉴블랙 분들은 낯도 안 가리고 잘 놀으실 것 같아서 걱정 많이 했는데. 잘 맞아서 너무 다행이에요.

“허어, 노잼이라고 생각하셨어여?”

-네.

“저희도 그랬는데.”

-진짜요?

“네.”

-허어……. 세상에.

“허어…… 이런 일이.”

곧바로 양쪽 동생들끼리 서로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이내 ‘우와아아아!’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어릴 적부터 이별한 쌍둥이 형제를 만난 것처럼 지호가 손을 흔들며 외쳤다.

“만나서 반가워여! 저희도 개노잼이에여!”

-저희도요! 저희 진짜 노잼이거든요! 노잼끼리 만나서 너무 좋아요!

-우아아! 너무 좋다!

“이름도 노잼 패밀리로 할까여? 노잼팸?”

-우와아아! 신난다!

자기들끼리 놀면서 꺄르륵 하는 모습에 리혁이가 현기증이 난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나와 한조는 넋이 나간 얼굴로 앉아 있었다.

내가 포크로 콕 찍은 사과를 들어 보이자, 한조도 치얼스 하듯이 보릿물이 담긴 1.5리터 생수병을 들어보였다.

“그…….”

목소리가 갈라져서 나왔다.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내가 말했다.

“……일단 친목은 여기까지 하고, 일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들어가 볼까요?”

-맞아요. 벌써 30분이나 지났는데 저희 이제 일 이야기해요.

양쪽에서 동생들이 ‘우우우!’ 하면서 ‘5분만 더 놀자아아. 형? 응?’ 이러고 있었지만 우리가 매몰차게 외면했다.

중현이가 말했다.

“근데 우리 합동무대면 팀명도 제출해야 되는 거잖아요. 일단 팀명부터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맞아! 팀명부터 정해요! 우리!

방방 뛰는 동생들을 보면서 한조와 내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냥 우리끼리 할까요…?’

‘다 버리고 솔로 합동무대 가요.’

하지만 이름부터 정하자는 이야기에는 동의했다. 일도 팀을 꾸린 후에 시작하는 거 아니던가.

곧장 여기저기서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LB가 손을 들고 외쳤다.

-뉴블랙이랑 스트릿 보이즈 해서, 블랙 보이즈 어때요?

-…….

“…….”

-별로인가?

-나무는 들어가 있어. 불타기 싫으면.

눈물을 머금고 LB가 손을 내렸다.

이번에는 리혁이가 의견을 제시했다.

“뉴블랙, 스트릿 해서 뉴스? 어때요? 아니면 중성자를 영어로 한 뉴트론 그런 느낌으로…?”

“리혁아.”

내가 말했다.

“너도 들어가자.”

“…….”

다들 웃음을 터뜨리는 가운데 중현이가 턱을 쓰다듬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뉴스트릿… 뉴트… 뉴트리아?”

“중현이도 들어가서 리혁이랑 손 잡고 있어.”

“흐음, 나쁘지 않았는데…….”

그때, 스트릿 보이즈 중 하나가 말했다.

-팬덤명 이용하는 건 어때요? 요플레 분들이랑 저희 콘크리트 해서…….

-수플레야, 멍청아.

-머리가 있으면 뭘 하냐. 이렇게 생각을 안 하는데.

-엇, 죄송합니다아…….

극렬한 디스와 함께 그 멤버가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사과하면서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행이었다.

아까 저녁 먹을 때 중현이가 ‘거기 팬 이름 뭐였죠? 화강암?’ 이랬거든.

10분 가까이 이런저런 의견이 나왔을 때, 누군가 절묘한 의견을 개진했다.

-저희가 공식 색으로 그 뭐지, 치약 섞인 색을 다른 거랑 그라데이션 해서 쓰거든요.

“아, 네.”

-뉴블랙 분들은 검정이니까. 섞어서 민트초코 어때요?

“뒤에 단도 붙이는 거 어때요? 민트초코단.”

비주의 말이 끝나자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기묘한 침묵이 이어진 후 모두가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허어……. 이거.

“허어……. 딱이네요.”

마침내 14인조 합동그룹 ‘민트초코단’이 결성되는 순간이었다.

그 경악할 만한 네이밍에 나와 한조만이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냥 포기할까요?’

‘그래요…….’

못난 동생들을 사이에 두고 훈훈한 미소를 교환했다.

*   *   *

민트초코단이 결성된 후.

곧바로 합동 무대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두 그룹 모두 얼굴에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스트릿 보이즈는 화면 속 미남들을 바라보았다.

‘와, 개잘생겼어.’

저쪽이 메이크업을 한 상태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다들 이목구비가 영상통화를 뚫고 나올 만큼 선명했다.

1집 활동 때도 잘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이런저런 관리와 카메라 마사지가 더해져서 그런 걸까.

뭔가 분위기도 있어진 것 같고, 더 근사하게 변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각자의 생김새를 훑던 스트릿 보이즈는 강렬한 전우애를 느꼈다.

서로를 바라보며 ‘넌 나의 형제야-’ 하고 있을 때, 반대편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뉴블랙 쪽이 핸드폰을 들더니 화면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뒤에 다른 멤버들이 선 채, 우주가 노트북과 연결된 신디사이저에 앞에 앉았다.

-일단 노래를 선곡해야 되잖아요. 혹시 염두에 두고 있었던 노래가 있나요?

“어, 잠시만요.”

……없었다.

생각 같은 게 있을 리가.

무슨 의견을 제시하고 싶어도 늘 회사에서 ‘군말 없이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뭔 말이 많냐’라고 하던 터였다.

그런 까닭에 컨셉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의견 자체를 품지 않는 게 습관이었다.

어차피 들어주지도 않는데 뭐 하러 생각을 하나. 그럴수록 괜히 마음만 싱숭생숭해졌다.

그들끼리 서로를 바라보았다.

“…….”

연습생부터 지금까지 뭘 할 때 의견을 개진해본 적이 없는 터라 당황스러웠다.

그때,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 사실, 우리가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어색하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자기 의견을 말할 때, ‘음, 대단한 아이디어가 아니면 민망한 거 아냐?’ 그럴 수도 있는데.

우주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거나 말해도 정말 좋아요. 예를 들어서, 중현아.

-저 90년대 노래 중에 그거 하고 싶어요. 힙합 트리오의 버스 정류장.

-…그런 노래가 존재하나?

-아뇨. 방금 제가 지어낸 거예요.

맞은편의 뉴블랙은 물론이고 스트릿 보이즈도 웃음을 터뜨렸다.

우주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요. 이런 식으로 아무 말이나 해도 좋으니까요. 우리 다 같이 재미있게 얘기해봐요.

-표정도 그렇고, 뭔 유치원 선생님 같네요.

-중현아.

-네.

-끌고 가라.

메인보컬이 화면 밖으로 사라진 가운데, 스트릿 보이즈가 떠듬떠듬 말문을 뗐다.

“어, 저희가 힙합 그룹이니까. 힙합색깔을 좀 잘 살릴 수 있는 노래였으면 좋겠어요.”

“맞아요. 90년대 보면 댄스 힙합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말문이 열리면서 곧바로 스트릿 보이즈의 멤버들이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처음의 머뭇거림은 잠시 뿐.

곧장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퍼포할 때, 메인댄서끼리 앞으로 나와서 이렇게 추고…….”

“네네! 거기서 안무 중에서 개다리춤 같은 류는 빼고요, 또…….”

“저저! 하고 싶은 거 있어요!”

그간의 한이 서린 탓인지, 아니면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아이디어가 방출되는 것인지.

마치 수문이 열린 댐처럼 멤버들의 입에서 아이디어가 쏟아지듯이 나왔다.

처음에는 뉴블랙 멤버들도 같이 말하다가 그 기세에 질려서 동조 정도만 할 지경이었다.

한참 동안 온갖 의견이 나온 후.

우주가 피아노 건반을 학교종처럼 두드리면서 이목을 끌었다.

-일단 정리하자면, 스트릿 보이즈의 힙합적인 색깔과 뉴블랙의 보컬이 어우러지는 노래였으면 좋겠다는 거잖아요?

“네, 맞아요.”

다들 합창하듯 대답했다.

그러자 우주가 웃으며 말했다.

-음… 얘기 들으면서 고민하다가 생각난 건데요. 트렌드 선배님들 노래를 해보는 건 어때요?

“트렌드요?”

힙합과 보컬이 어우러진 대중적인 노래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기를 끌었던 그룹이었다.

우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때요. 괜찮으신가요?

“네. 솔직히 잘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긴 하죠. 워낙 명곡이 많기로 유명한 대선배 분들이라…….”

우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일단 우리는 곡 선정부터 해볼까요?

열정적인 회의 끝에 후보군에 오른 곡은 두 곡이었다.

힙합적인 색이 강한 ‘패’와 보컬적인 색깔이 강한 ‘햇살’이었다. 두 곡 모두 대중들에게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던 명곡.

문제는…….

“중간이 없네요.”

한조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패는 너무 힙합이고, 햇살은 너무 보컬이고. 둘 다 좋기는 한데…….”

고민이 깊어졌다.

양쪽 모두가 행복한 결과를 맞이해야 하는데 한쪽을 택하게 되면 다른 쪽이 너무 묻혔다.

마음 같아서는 ‘패’가 더 끌리지만, 그렇다고 뉴블랙한테 ‘야, 힙합하자’ 이런 말을 할 수도 없고.

그런다고 보컬 곡을 하면 래퍼 라인이 강한 자신들의 장점이 완전 묻히게 되고.

이래저래 난감함을 느낄 때였다.

우주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둘 다 할까요?

“네?”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멤버들끼리 서로를 바라볼 때, 확인사살을 하듯 부드러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둘 다 하면 될 것 같아요. 섞으면 되겠네요. 물론 편곡 관련해서는 이따가 회사 분들에게 여쭤봐야겠지만…….

‘그렇지?’ 하는 얼굴로 우주가 뒤를 돌아보자, 다른 동생들이 ‘그럼 좋겠네요’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스트릿 보이즈의 멤버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

그러곤 서로를 바라보았다.

‘쟤네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라는 눈이었다.

완전 색이 다른 노래를 섞는다니.

그냥 곡 편곡만 해도 까다로울 것 같은데, 곡을 섞는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당연하게 하고 있었다.

그때, 신디사이저 앞에 앉아 있던 우주가 메인보컬을 불렀다.

-기원 씨, 음역대 좀 보게 소리 좀 내주실래요.

“엇, 네.”

곧바로 기원이 저음부터 고음까지 가볍게 보여준 가운데, 우주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손가락을 움직였다.

첫 시작은 ‘패’의 후렴구 멜로디로 몇 번 반복하면서 음을 한두 개씩 넣거나 빼는 식이었다.

그런 식으로 진행이 되다가…….

“어?”

어느 순간이라도 인지할 틈도 없이 건반 음이 자연스럽게 ‘햇살’의 멜로디로 변형되어 있었다.

“…….”

거실에 앉아 있는 모든 이가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누군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물었다.

“……뭐야. 방금 뭔 일이 벌어진 거야?”

하지만 그에 대해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화면을 다시 바라보았지만 그들의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우주와.

……왠지 모르게 대마왕 휘하의 사천왕처럼 웃고 있는 뉴블랙 멤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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