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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61)화 (16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61화

뒤를 돌아보았다가 그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우리 애들 표정 때문이었다.

정확히 뭐라고 해석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엄청 뿌듯하고, 기분 좋고. 굉장히 거만해 보이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마치 어린 꼬마가 친구한테 자기 형을 자랑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여간 내가 못 살겠다.

반대로 화면 속에 들어있는 아홉 나무친구들은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어지간히 신기했던 모양이다.

스트릿 보이즈가 시끄럽게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어떻게 한 거예요?

-와, 대박. 이래서 우리가 연말평가에서 발렸던 거구나.

-거봐. 내가 말했지? 지난번에 리얼리티 클립 잠깐 봤는데 저 형 작곡 개쩔었다고 했잖아.

-왜 네가 뿌듯해 하냐. 감나무.

-하여간 저저, 매국노 같은 놈.

-아니, 난…….

결국에는 누군가의 울상으로 마무리를 지었지만, 스트릿 보이즈는 나를 무슨 외계인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한조가 물었다.

-그런데 편곡을 대체 어떤 식으로 하신 거예요?

“아.”

내가 머릿속에 떠올린 것을 그대로 답했다.

“트렌드 선배님들 노래가 정말 좋지만, 혼성그룹이라 여자 보컬이 들어가서 음역대가 다르잖아요? 메인보컬인 리혁이랑 기원 씨 참고해서 톤을 적절하게 맞췄고요.”

손가락으로 건반을 부드럽게 눌렀다.

비교하듯이 원곡에 이어서 편곡된 멜로디를 보여주자 여기저기서 아하 하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90년대 풍이라서 음을 조금 더 최신 유행에 맞춰서 바꿔봤어요. 원곡이 이런 식이었다면…….”

‘패’와 ‘햇살’이 적절하게 섞인 멜로디를 들려준 뒤에 바뀐 멜로디를 또 한 번 들려주었다.

이제는 아예 외계인이 아니라 외계에서 내려온 괴물을 바라보는 표정들이 됐다.

솔직히 여기서 끝이 아니라 신경을 썼던 부분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 부분은 설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설득은 된 모양이었다.

“어때요, 마음에 드시나요?”

-대박이에요.

-진짜로요. 이대로 가도 될 것 같은데?

고객들이 만족하는 소리에 내가 조용히 웃었다. 일단 곡 선정 관련해서는 별 이견이 없는 듯했다.

지호가 어깨를 으쓱으쓱하며 말했다.

“어때여? 신기하져?”

-네. 대박 신기해요.

-저희 리더 드릴 테니까 교환해요.

한조가 어이없어 하며 자기네 동생들을 돌아보았다.

-나를 판다고?

-형이 한 몸 희생해서 우리 그룹 좀 살려보자.

-LB도 세트로 드릴게요.

-오. 저 가서 잘할 자신 있어요! 접시 닦기도 잘해요, 저!

“안 돼요.”

비주가 말했다.

“우주 형은 억을 줘도 안 팔 거예요.”

-그럼 10억이면요?

“엇…….”

순간적으로 동공이 흔들리는 비주의 모습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졸지에 경매장 물건이 된 내가 헛웃음만 흘릴 때, 내 뒤에 있던 리혁이가 진지한 얼굴로 입술을 뗐다.

평소처럼 이런 말도 안 되는 드립에 일침을 놓으려는 듯한 표정이라 기대를 품었다.

그래. 리혁아. 어서 일침을 놔줘.

하지만 하얀 얼굴에서 나온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10억도 안 돼요. 예상 가치를 고려해야죠. 이 귀한 물… 사람이 내년에 창출할 수익만 해도 얼마인데요.”

“맞아여. 싸게 팔 수 없어여.”

“기왕 팔 거라면 비싸게 팔자. 우리.”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생들의 모습에 내가 뒷목을 붙잡았다. 양쪽에서 떠들썩하게 웃는 이들을 보며 선언했다.

“저 민트초코단 탈퇴하겠습니다.”

-안 돼요.

-우주님은 이미 민트초코단의 단장님이에요.

-맞아요. 편곡을 본 순간 우리는 한조 형을 버렸어요.

-얘들아…….

……언제 단장까지 된 거야.

비주가 손뼉을 치며 와아아 소리를 냈다.

“형, 형이 단장이래요.”

“취임 기념으로 우리 축하의 노래 한 번 불러볼까여?”

양쪽에서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하는 노래를 불러대는 통에 혼이 쏙 빠져나갔다.

예전에 그런 짤을 본 적이 있다.

리트리버 열 마리가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면서 고양이 한 마리에게 달라붙는 짤.

너무 귀엽게 느껴져서 핸드폰에 저장까지 했는데…….

귀엽기는 무슨.

리트리버들에게 학을 떼며 도망치던 고양이의 심정이 어땠는지 구구절절 이해가 갔다.

이따 통화 끝나고 나면 사진첩에서 지울 거다.

잠시 현기증을 느끼면서 내가 말했다.

“이런 감투는 사양하겠어요. 전 민초단 단장에서 사임할 거예요.”

-허어…….

“한조 씨에게 단장직을 위임할게요.”

-한조 형이요?

곧바로 자기들끼리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했다.

-사퇴하세요.

-사퇴해. 형.

-내가 2대 단장하면 안 돼?

-나무는 들어가. 장작 되기 싫으면.

무수한 동생들의 압력에 한조가 사퇴한 후, 곧바로 투표를 거쳐 3대 민초단 단장이 선정됐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우! 유! 빛! 깔! 선우주!

“민초단 3대 단장에 취임한 걸 축하해요. 형!”

여기저기서 서라운드로 비글들이 휘몰아쳤다.

평소였으면 비웃기 바빴을 리혁이도 어딘가 짠한 눈으로 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으아…… 진짜 다 싫다.”

한조가 말했다.

-우주 씨. 그냥 우리 둘이 그룹 차려요.

“그럴까요?”

친해지려면 자기들끼리 친해져야지.

각자 남의 그룹 디스는 안 되니, 자기 그룹들의 리더를 장작으로 삼아서 바비큐 파티를 열고 있었다.

결국 무수한 밀고 당기기 끝에 민트초코단의 1, 3, 5, 7, 9대 단장을 역임하게 되었다.

물론 그러는 동안 합동 무대에 관한 회의도 착실하게 진행됐다.

“그럼 퍼포먼스는 그런 식으로 준비를 하고요. 의상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내가 운을 뗐다.

“일단 햇살이라는 곡은 트렌드 선배님들이 비교적 어렸던 10대 시절에 나온 곡이잖아요. 풋풋함이 돋보이는 곡이고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를 챘는지 한조가 곧바로 내 말을 받아주었다.

-맞아요. 패도 그렇죠. 고등학교 힙합 동아리에서 꿈을 꿨다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곡이죠.

“한조 씨. 정말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네요.”

-저희 좀 통했나요?

서로에 관한 칭찬을 하며 흐뭇하게 웃는 동안 열두 명의 동생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운을 뗐다.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인데, 이런 곡에 어울릴 만한 의상은 딱 하나밖에 있지 않겠어요? 바로…….”

-교복.

“교복이죠.”

처음에는 반발이 나왔지만 이내 교복에 대한 집착으로 이글거리는 양 그룹의 리더의 눈빛에 입을 다물었다.

지호가 말했다.

“그냥 이렇게까지 교복 하고 싶어 하는데 시켜줄까여?”

-그래요. 언제 이런 교복을 입어보겠다고.

“우주 형이 교복 되게 좋아해서 그래요. 이해해 주세요.”

-한조 형도 그래요. 교복 컨셉 얘기 나올 때마다 입이 귀에 걸려요.

그런 동생들에게 나와 한조가 꿋꿋이 교복의 미학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이 교복의 아름다움을 잘 모르시네요. 그게 얼마나 소중한 옷이고 컨셉인데요. 매일 입는 게 싫증날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는 반드시 다시 입어보고 싶은 옷인 거예요.”

-맞아요. 저희가 여기서 더 나이 먹으면 하지 못하는 컨셉이거든요.

“인정합니다. 여러분 리더들의 나이를 생각해 주세요. 여기서 몇 년 더 지나면 교복 입었을 때 드라마 고교 회상씬처럼 보일 거예요.”

고교 회상씬 드립에 다들 빵 터졌다.

어쨌거나 그런 설득 끝에 각 그룹에서 아우성을 터뜨리고 있는 급식들의 불만을 사그라뜨릴 수 있었다.

1시간 반이 넘는 통화 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정말 간만에 이렇게 웃으면서 즐겁게 이야기한 건 오랜만이라서 우리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아직 엄청 친한 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연예계에서 좋은 친구가 하나 생긴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만난 이들 중에 어느 정도 친분을 유지하는 이는 대부분 까마득한 선배들이었다.

장소원 선배, 여씨 남매, 헤이션 등등.

그런 까닭에 아무 말이나 하며 편하게 놀 수 있는 이들이 없었는데, 이들이 마침 딱 그런 상대가 되어준 것 같았다.

물론 우리만 그런 게 아니고 상대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간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증명하듯 스트릿 보이즈도 평소보다 더 업 되어 보이는 텐션으로 막 수다를 쏟아냈다. 우리도 그에 호응하듯 신나게 떠들어대기도 하고.

-저희가 연차 좀 더 차면 자유시간 생기거든요! 그때 우리 밥도 같이 먹고 그래요!

“좋아여! 제가 맛집 엄청 잘 알아여!”

-우와앙!

……밥 약속이라니. 진도 한 번 빠르네.

하지만 우리와 달리 스트릿 보이즈가 보이는 반응에는 뭔가 다른 감정이 하나 더 섞여 있는 듯했다.

-정말 기분 좋아요.

상대측에서 누군가 말했다.

-이렇게 의견 내고 회의해보는 거 처음이거든요.

-맞아.

-막 은근 중요한 사람 된 기분 같아서 너무 좋아요. 고마워요. 진짜로.

우리에겐 평소와 같은 회의였는데, 상대측에서 너무나 기분 좋아했다.

마치 엄한 집안 환경 때문에 집에만 있다가 처음으로 마트에 홀로 장을 보러온 초등학생 같은 얼굴이었다.

은근히 짠한 기분이 들기도 하면서도, 감사를 표하는 상대에게 우리도 노잼인데 재미있게 놀아줘서 고맙다고 감사를 전했다.

슬슬 마무리 인사를 할 때, 한조가 물었다.

-참, 회사 분들한테 전달하기 전에 여쭤볼 게 있는데요. 편곡은 언제 완성이 될까요?

“잠시만요. 저희 A&R 직원 분들한테 여쭤볼게요. 이게 시간상으로 저 혼자 해낼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서…….”

그런 말을 하면서 A&R팀의 작곡 부문에서 일하고 있는 서필근 씨에게 공용 폰으로 톡을 보냈다.

답이 없었다.

전화를 거는데…….

“어, 왜 안 받지?”

“퇴근하신 거 아니에요?”

“아냐. 오늘 늦게까지 일한다고 했어.”

그때, 머릿속으로 퍼뜩 스치는 게 하나 있었다. 내가 중현이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중현아. 네 핸드폰 좀 빌려줄래?”

“잠시만요.”

중현이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이내 아, 하고는 소파 쪽으로 다가갔다.

방석 사이에 끼어 있는 핸드폰이 내 손에 올라왔다.

……다른 애 거 빌린다고 할걸.

곧바로 중현이의 전화를 받아서 서필근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보세요.

바로 받았다.

“서 주임님.”

-……우주니? 그, 어쩐 일이야?

“왜 제 전화는 안 받으시는 거예요?”

-그, 어, 그… 우주구나! 아하! 내가 모르는 번호인 줄 알아서 안 받았지. 하하하.

아니. 왜들 작곡 관련만 되면 나를 기피하는지 그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

이 사람도 그냥 작곡 관련해서 궁금한 거나 필요한 일이 있을 때 몇 번 정도 연락한 게…….

동생들의 눈빛이 돌아왔다.

‘…몇 번?’

‘가슴에 손을 올리고 생각해요. 이 아저씨야.’

무시하며 용건을 설명했다.

통화를 끝내고 나서 나를 바라보는 아홉 명의 스트릿 보이즈를 바라보았다.

통화하는 동안 애들이 무슨 이야기를 한 건지 다들 내 시선을 회피했다.

“여러분이 뭘 생각하든 오해예요. 거기 나무 씨, 자꾸 눈 피하지 마시고요. 저 위험한 사람 아니에요.”

-나무 아니고 LB에요…….

“아무튼 작업 관련해서, 한조 씨? 왜 자꾸 눈을 피해요?”

-화면을 바라봤더니 자꾸 눈이 좀 피로해서.

이 인간들이 단체로 진짜.

“나랑 눈 안 마주치면 작업 같이 하게 될 거예요.”

아홉 명이 동시에 초롱초롱 눈을 떴다. 그리고 내 뒤에 서 있던 동생들이 기린처럼 목을 굽혀 날 바라보았다.

“…….”

곧바로 떠들썩한 웃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혼자 하고 싶다. 진심으로.

*   *   *

TBC 연말가요제 합동무대에 대한 작전회의를 마친 후.

공은 어른들에게 넘어갔다.

편곡에 대한 디테일은 우리 A&R팀이, 합동무대와 관련한 의상 준비나 제반 협의사항을 각 기획사의 매니지먼트 팀이 맡아 일처리를 했다.

큰 틀을 우리가 짰을 뿐 작은 그림은 우리 손으로 그릴 수 없었다. 저마다 전문 분야라는 게 있는 거니까.

무엇보다 시간이 없었다.

연말무대는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장소원 선배와 함께 하는 썸씽 무대도 준비해야 했고, 무엇보다 합동 무대는 TBC 외에도 하나가 더 있었다.

코엑스 전시장.

주변을 둘러보던 우리가 감탄하듯 탄성을 내질렀다.

“우와아…….”

여기저기 파란색이 가득했다.

커다란 전시장 안에 여기저기 간이용 파란색 천막이 세워져 있었다.

천막마다 ‘데이드림’, ‘TNT’, ‘남자 댄서’ 같은 문구가 적힌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바로 오늘 21일, 일요일에 열리는 HBS 가요대상에 출연할 이들의 대기실로 만들어진 곳이었다.

“아직 사람들은 별로 없나 본데요?”

“연말이잖아. 다른 선배님들은 스케줄 때문에 바쁘기도 하고. 이 시간대에는 신인들밖에 없을걸.”

리허설을 일찍 하고 나면 그 후에 대기를 오래 해야 하는 특성상 대개 신인부터 리허설을 하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오늘은 신인들 합동무대부터 먼저 하기도 하고.

매니저들, 다른 스탭들과 함께 ‘뉴블랙’이라는 이름이 붙은 자그마한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얘들아, 우리끼리 먼저 좀 맞춰 보자.”

스탭들이 짐을 풀고 있는 동안 한쪽 구석에 서서 미리 연습했던 안무를 맞췄다.

마스커레이드 안무야 이제는 눈을 감고 춰도 동선을 맞출 정도지만 오늘 하게 될 합동안무는 아니었다.

연습을 할 때는 트레이너와 댄서 분들이 다른 팀의 안무에 맞춰서 동선을 맞춰줬지만, 아무래도 머릿속으로 다른 사람들의 동선을 떠올리고 해야 되니 난감했다.

몇 번이고 될 때까지 반복하고 있을 때, 천막이 열리면서 민기 형이 핸드폰을 들고 들어왔다.

“다른 팀들 거의 다 도착했다는데? 요 앞에서 동선 좀 맞춰보자고 하길래 OK했어.”

“네, 갈게요.”

곧바로 두 매니저를 대동하고 전시장 구석에 마련된 공터로 향했다.

장소에 도착하고 보니 우리보다 앞선 두 걸그룹이 도착해 있었다. 열댓 명이 넘는 이들이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KM 엔터의 블링크, 그리고 MOP 엔터의 세레니티였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다들 드라이 리허설을 위해 미리 몸통에 이름표를 걸고 있었다.

블링크 멤버들이 반갑게 다가왔다.

“어, 오랜만에 보네요. 반가워요!”

“네, 정말 그러네요.”

에버드림 광고 이후로 살짝 쌩 했던 것 같은데, 평소대로 돌아온 듯 반갑게 반겨주고 있었다.

세레니티도 최근에 음악방송을 같이 한 만큼 인사를 건넸다.

뭐. 다들 긴 대화를 나눠본 건 아니라서 피상적인 인사를 나누는 것에 가깝긴 했지만, 어째 두 그룹이 서로에게 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인사를 나누는 태도가 퍽 살가워 보였다.

이건 뭐라고 할까.

서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어서 어색하게 이야기를 하다가 마침 방에 내가 아는 얼굴이 들어왔을 때 인사하는 것 같다.

두 걸그룹은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서로 어색해 보였다.

……이상한데.

저절로 고개가 갸웃거렸다.

TBC 연말가요제에서 신인 합동무대를 하라면서 우리와 스트릿 보이즈를 붙여놨을 텐데.

당연히 세레니티와 블링크의 합동무대를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분위기를 보니 아닌 것 같다.

서로 처음 만나서 어색해 하는 분위기.

혹시…….

그 순간 머릿속으로 두 걸그룹의 소속사인 KM 엔터와 MOP 엔터가 4대 기획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안녕하세요! 스트릿 보이즈입니다!”

스트릿 보이즈가 등장하면서 생각이 멈췄다. 그쪽 멤버들이 우리에게 와서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 통화 끝나고 일주일만에 보네요.”

“허, 단장님이다.”

“안녕하세요. 단장님.”

……외면했다.

자꾸 다른 팀이나 매니저들 앞에서 민트초코단 단장님이라고 부르는데, 이 수치스러움 안 느껴보면 모른다.

얼른 이어지는 다른 말들을 피하기 위해서 내가 입술을 뗐다.

“자, 그러면 다 같이 모인 거 같은데. 저희 합 좀 맞춰볼까요?”

“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돌 멤버들이 섞인 터라 첫 대형을 잡는 것부터 잠시 혼선이 있었다.

서로의 이름표를 보고 나서야 자리를 더 잡을 수 있었다.

곧이어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네 그룹이 합을 맞췄다.

“어! 조심해요!”

“아, 스텝 꼬인다. 조금 거리 좀 벌려봐요.”

처음에는 여기저기 부딪히는 이들이 속출했지만, 5분 정도가 지나자 곧바로 합이 척척 맞았다.

다들 어지간히 연습을 해온 것인지 절로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맞춰본 후.

제작진에게 드라이 리허설을 할 시간이 됐다는 소식이 도착한 후에 연습이 끝났다.

“고생하셨습니다!”

서로 손뼉을 치면서 무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내 곁에 찰싹 달라붙은 막내가 속삭였다.

“형, 근데 분위기 되게 묘한 거 같아여.”

“그렇지?”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 모양인지 다른 동생들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할까.

올해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신인 네 그룹을 모아놓아서 그런 건지 분위기가 독특했다.

서로를 싫어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묘한 경쟁의식과 긴장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낸 건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온몸으로 ‘잘해야지!’하는 단어를 표현하는 듯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본선 진출자들끼리 모인 느낌이다.

12월 21일, 현재까지 음악방송으로 데뷔를 한 아이돌 그룹만 무려 64팀.

그중에서 연말무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그룹은 단 네 팀이다.

레몬 엔터의 뉴블랙.

KM 엔터의 블링크.

MOP 엔터의 세레니티.

DNS 미디어의 스트릿 보이즈.

이후에도 얼마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팀이 나올 수 있겠지만, 현재까지 주목할 만한 신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우리를 포함해서 이게 전부였다.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네 팀이 훗날 반드시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보증수표 같은 의미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본선 진출.

연말무대에 나온다는 것은 대강 그런 의미였다.

모든 신인 중에서 이 4팀 정도만이 주류 가요계에 신입으로 들어올 자격을 얻었다는 것.

그리고 오늘의 HBS 가요대상에서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바로 이 넷 중에서 하나가 신인상을 수상하게 될 거란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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