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62)화 (16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62화

솔직히 이번에는 모르겠다.

지난 번 망고 차트 어워드 때는 신인상 후보 중에 참석자가 우리밖에 없어서 사실상 ‘타겠구나’하고 나갔지만 이번 HBS 가요대상까지 그 흐름을 이어갈지는 의문이었다.

물론 지표만 보면 우리가 압도적이긴 했다. 뉴블랙이 아니면 누구를 주냐는 말이 나올 만큼.

올해 데뷔한 신인 중 음반 판매량 1위.

음원성적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마스커레이드는 여전히 일간차트 상위 10위 이내에서 머무르고 있고, 썸씽은 차트에서 썸씽이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불꽃놀이도 연간차트 100위 안에 들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객관적인 성적만 따지면 우리 뉴블랙이 오늘 출연하는 신인그룹 중 단연 1위였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리 상식으로만 돌아가던가.

대형 소속사의 입김이 강한 지상파 3사의 연말무대 특성상 다른 그룹이 가져가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 조금 분…….

아니 엄청 분할 것 같기는 한데.

어쨌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그리 낙관하는 편은 아니었다.

당장 스트릿 보이즈도 네티즌 투표 1위를 하고도 저번 홍콩 어워드에서 고배를 마셨으니까.

그런 이유 때문인지 드라이 리허설을 마치고 내려올 때, 한조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꼭 뉴블랙 분들이 탔으면 좋겠어요.”

“네?”

“상은 받을 사람이 받아야죠.”

스트릿 보이즈 멤버들이 반드시 우리가 수상했으면 좋겠다는 듯 우렁차게 속삭였다.

“꼭 받아요. 신인상.”

“단장님 흑역사 만들어야죠.”

“이건 뉴블랙 분들이 받아야 돼요.”

그러면서 눈길이 멀리 떨어져 있는 블링크 멤버들에게 향하고 있었는데 경쟁심을 불태우는 시선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 KMA 신인상 때 블링크에게 밀렸던가.

마치 자신의 원수를 대신 갚아달라고 말하는 사람들 같은 얼굴이라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뭔가 신기했다.

어째 우리가 신인상을 탈 거라고 굳게 믿는 눈치였으니까.

우리보다도 더.

*   *   *

거창하게 가요대상이라는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오늘 행사는 음악방송과 큰 차이가 없었다.

무대 장치나 관중의 규모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

음악방송에서 그러하듯 대기하고, 대기하고, 또 대기하는 게 일정이었다. 그렇게 점심도 먹고, 저녁도 대강 도시락으로 때우고 나니 어느덧 주변이 복작거리기 시작했다.

연차가 있는 가수들이 하나둘 도착한 것이다.

“슬슬 인사 좀 돌까?”

먼저 근처에 있는 틴스피릿의 천막부터 방문했다.

미소년 컨셉이지만 늘 입이 거칠어서 우리가 대기실 인사에서 가장 먼저 방문하는 그룹이었다.

이른바 기왕 맞을 매 먼저 맞자는 훌륭한 전략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들어가기도 전에 천막 안에서 이런저런 시끌시끌한 소리들이 울려퍼졌다.

-아 꺼지라고! 꺼져!

-한 입만 먹으라고! 한 입만! 너 이러다 뒤지고 싶냐?

-아 싫어! 안 먹어!

중간중간 섞여 있는 욕설은 필터링한 대화인데도 그랬다.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며 훈훈하게 웃었다.

중현이가 말했다.

“오늘은 다들 기분이 좋은가 봐요.”

“그러게, 대화가 부드럽네.”

“으으… 난 아직도 적응이 안 돼요. 중현이 형, 나 형 뒤에 서 있을 테니까 그런 줄 알아요. 지난번처럼 제 얼굴 안 보이겠다고 옆으로 비키고 그러지 말고요.”

“응. 알았어.”

“하여간 우리 쫄보. 쫄았어여?”

“지는. 틴스피릿 선배님들 마주하면 무서워서 얼어붙으면서.”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녀석들을 뒤로 하고 내가 천막을 들춰서 그 안으로 들어섰다.

“저, 실례합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틴스피릿 멤버들이 있었다.

몇 명은 앉아서 핸드폰을 하고 있고, 몇 명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한 명이 앉아서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휘휘 젓고 나머지 두세 명이서 그 앞에 서서 젓가락으로 돈까스를 들고 있었다.

……무슨 상황이지.

“처먹으라고! 제발!”

“싫다고! 다이어트 중이라고!”

“니 이러다 뒤진다니까! 영혼까지 다이어트하고 싶어? 이대로 갈 거야?”

“어, 죽을 거야.”

“가 봐라. 니 죄 지은 거 많아서 지옥 감.”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멤버 연후에게 리더인 휘연이 뭔가를 먹이려고 잔뜩 실랑이를 하는 모습이었다.

이쯤에서 인사를 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틴스피릿 멤버들이 동시에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때 연후가 우리를 향해 고갯짓을 했다.

“야, 줄 거면 차라리 저기 뉴블랙 주면 되겠네!”

“뭐래, 미친놈이.”

그러더니 젓가락으로 돈까스를 들고 있던 리더, 휘연이 우리를 보더니 공손하게 물었다.

“드실래요?”

“……아뇨. 괜찮아요.”

“야! 거봐! 안 먹는다잖아!”

그러면서 다시 멤버를 구박하기 시작하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가만히 있었다.

리혁이와 지호가 슬그머니 우리 뒤에 숨었다.

근처에 앉아 있던 매니저들이 우리에게 체념한 미소를 보이고는 조용히 자신들의 뒷목을 주물렀다.

적당히 대화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휘연이 그런 말을 했다.

“참, 신인상 받을 거 같던데.”

“네? 아직 발표가…….”

“뉴블랙이 아니면 누가 받아요? 축하해요.”

돌직구로 대뜸 축하인사부터 날리길래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천막을 빠져나왔다.

지호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후우. 잘 처리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괜찮았네.”

리혁이도 훗 하며 웃는 모습에 황당해서 웃을 뿐이었다. 둘 중 하나가 뒤에서 내 옷깃 잡았던 것 같은데.

하여간. 이 쫄보들.

미소를 지으면서 손에 난 식은땀을 바지에 문질렀다.

“……후우, 큰일은 치렀고. 자, 이제 마저 인사를 하러 가자.”

그 다음은 근처에 있는 스칼렛의 천막을 들렀다.

우리와 같은 소속사의 선배 가수.

안에서 연신 꺄르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노랫소리도 들리고.

지호가 천막 안을 슥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저어 보였다.

“가운데 난로 두고 자기들끼리 강강수월래 추고 있어여.”

“……이따 오자. 여기는.”

어워드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쪽 페이스에 휘말려 있었지.

근처 걸스온탑 천막에도 들려서 서로 떨떠름한 인사도 나누고.

오늘 자리에서 함께 하게 될 발라드 가수를 비롯해서 선배 가수들에게 바쁘게 인사를 돌았다.

그런데 어째 돌아오는 인사가 비슷했다.

-오늘 좋은 일 있을 것 같던데. 축하해요.

덕담 같은 식이긴 했지만, 너무나 확실하다는 식으로 다들 축하인사를 했다.

처음에는 ‘왜들 그러지?’ 했다.

확실한 것도 아닌데,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아니면 신인상을 탈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덕분에 지금까지 반신반의하고 있던 사실을 드디어 체감했다고 할까.

“……우리 올해 정말 대박 났나 본데요?”

마지막 주차에 TNT를 꺾고 1위를 했던 게 영향이 있었던 걸까.

망고 차트 어워드 때와는 또 한층 다른 분위기였다. 이 자리에 온 가수들이 우리를 어느 정도 인정 해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기분이 좋으면서도 은근히 얼굴이 간질간질했다.

그때, TNT 천막 쪽에서 나오던 스트릿 보이즈와 우리가 마주쳤다.

그런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했다.

나랑 눈을 안 마주치려 한다고 해야 하나. 꼭 뭔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나를 어색하게 대하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TNT 대기실 쪽에서 무슨 이야기가 있었어요?”

“아, 그게.”

한조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해요. 어쩔 수 없었어요.”

“네?”

“미안해요!”

“아니, 뭐가 미안한데 이 사람들아!”

다들 ‘미안해요!’ 하면서 슝! 하고 도망치는 통에 황망히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동생들을 바라보았지만 다들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TNT의 대기실로 들어간 순간 뭐가 미안하다는 것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천막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가자 여덟 쌍의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이윽고 상대 측 입가에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

고개를 갸우뚱하던 내가 인사를 하려고 입술을 열 때, 한태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오셨어요, 단장님?”

“…….”

“푸하하하하!”

TNT 멤버들이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민초단장이래. 민초단장!”

“단장님, 어서 오세효!”

……대체 전생의 나는 무슨 죄를 지었던 걸까.

그런 말을 중얼거렸더니 옆에 있던 중현이가 눈을 꿈뻑이며 물었다.

“너무나 민초를 사랑한 죄?”

“푸하하하! 이리 오세요! 대길이 친구님! 장원급제 드릴게요!”

“저도 가도 돼여?”

“오세요!”

“깔깔깔!”

망할.

……진짜, 나 빼고 다 안 친해졌으면 좋겠다.

*   *   *

저녁 8시 45분.

거대한 무대가 차려진 코엑스 D홀에 수천여 명에 달하는 관객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들어섰다.

마스크를 쓰거나 응원봉을 쓴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가 훑을 때.

마침내 2014년 HBS 가요대상이 시작됐다.

세 명의 남녀 MC가 꾸리는 스페셜 무대가 끝나고 MC들이 진행자석에 섰다.

-안녕하세요! TNT의 카리스마 댄서 태현!

-틴스피릿의 귀염둥이 휘연입니다!

-네, 오늘 1부 MC를 맡게 된 배우 한여름입니다. 반갑습니다.

각자의 인사가 끝나고, 올해 협찬 받은 어플을 이용한 이벤트 등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본격적으로 무대가 시작됐다.

오프닝 무대로 선글라스를 쓴 인디밴드 ‘이지훈과 졸개들’이 나와 관객들의 흥을 달구었다.

젬베와 기타가 섞인 음악.

신나는 포크송에 다들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난 후.

-네, 올해를 뜨겁게 달군 신인들이죠!

-신인상 후보 시상에 앞서 슈퍼 루키들의 무대를 감상하겠습니다!

올해 신인상 후보들의 무대가 연속해서 흘러나왔다.

첫 번째 타자는 블링크.

[BLINK]

거대 LED 스크린에 그룹명이 뜨면서 문이 열렸다.

강렬한 인트로와 함께 네 명의 가수들이 리프트를 타고 등장했다.

이내 강렬한 힙합 댄스 풍의 음악에 맞춰서 검은 가죽 의상을 입은 블링크 멤버들의 랩과 안무가 이어졌다.

1분 30초짜리 맛보기 안무가 끝난 후 그들이 무대 앞으로 나와 좌측에 정렬했다.

두 번째는 스트릿 보이즈였다.

회색 담벼락을 바탕으로 하는 스크린에 떠오르는 그룹명.

[Street Boys’]

평소처럼 금목걸이와 스모키 화장을 잔뜩 한 멤버들이 어슬렁거리며 걸어왔다.

위압감 넘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던 이들이 이내 빠르고 강렬한 랩을 쏟아냈다.

한조와 LB를 중심으로 하는 래퍼들이 가사를 쏟아내는 동안, 중간중간 메인보컬 기원의 고음이 이어졌다.

객석에서 잠시간 호응하듯 누군가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서부 힙합이 베이스로 깔린 노래 ‘Deeper’의 1분 30초 무대가 끝나면서 스트릿 보이즈가 대형 가운데 섰다.

이어서 올라오는 다음 타자.

-We’re Serenity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9인조 세레니티의 멤버들이 올라와 안무를 추기 시작했다.

앞선 블링크와 스트릿 보이즈가 힙합을 베이스로 한 느낌이었다면, 이들은 시원시원한 보컬을 중심으로 하는 댄스 음악을 선보이고 있었다.

긴 팔다리를 이용한 춤선이 돋보이는 무대가 끝난 후.

“와, 대박…….”

“미쳤어. 다 잘하나 봐. 올해 신인들.”

“진짜 구멍이 하나도 없네.”

스탠딩 석에 선 관객들이 중간 텀에 서로 그런 속삭임을 나눌 때였다.

어디선가 고함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내 그것이 곳곳에 자리 잡은 뉴블랙의 팬들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크린에 떠오른 글씨.

[The New Black]

“…얘네 팬이 생각보다 있나 본데?”

“소리 봐.”

의외라는 듯 바라볼 때.

익숙한 멜로디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현재 차트 상위권에 머물러 있는 마스커레이드였다.

멀뚱멀뚱 되는 대로 우와아 하고 있던 일반 관중들도 알고 있는 노래가 흘러나오자, 귀를 쫑긋 기울였다.

“우와.”

각기 다른 정장을 맵시 좋게 차려 입은 뉴블랙 멤버들이 무대를 시작했다.

다소 정적인 분위기였다.

앞선 다른 그룹들처럼 나와서 여기저기 움직인다기 보다는 원을 그리듯 주어진 동선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노래 소절이 흘러나올 때마다 해당 멤버가 퍼포먼스를 보이고, 다른 멤버들은 동상처럼 멈춰 있었다.

그런 식으로 다섯 멤버가 차례대로 자신의 안무를 선보인 후, 이어서 나오는 짧은 후렴구에 맞춰 다섯 멤버가 부드럽게 몸을 움직였다.

평소의 마스커레이드처럼 격한 안무가 아니라 물 흐르듯이 부드러운 춤이었다.

그 손과 다리가 나긋나긋하게 움직이면서 허공에 뭔가를 그릴 때마다 사람들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잘한다.’

가까이서든, 멀리서든, 현재 TV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동시에 품고 있는 생각이었다.

잘했다.

물론 실력 면에 있어서 다른 신인 아이돌에 비해서 좀 더 잘하기는 하지만 완전히 월등한 느낌까지는 아니었다.

얘들도 다른 신인들처럼 잘하는구나 하는 느낌.

하지만 그 표정이나 제스처를 구사하는 면에 있어서 왠지 모르게 시선을 끄는 면이 있었다.

특히 음악방송을 여러 차례 다녀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익숙한 느낌에 혀를 내둘렀다.

그럴 때가 있다.

내 가수를 보려고 음악방송에 갔는데, 다른 가수 팀의 무대를 보다가 우연히 한 멤버가 눈에 들어올 때.

그런데 뉴블랙의 경우에는 다소간의 차이가 있어도 다섯 명 모두가 눈길을 끌고 있었다.

이어진 합동 무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돌이 모여서 추는 합동군무에서도 뉴블랙의 멤버들은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특히 그중에서 혼자 춤을 쉽게 추는 것처럼 보이는 한 멤버와 표정연기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두 멤버가 시선을 확 끌었다.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의 반응이었다.

-정면 카메라 말고 다 고장났음 좋겠다

-지금 립씽임??

-캬. 카메라 언제 봐도 새롭게 구려 그치?

연말무대를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이들도 뉴블랙이 화면에 잡힐 때면 부쩍 관심을 보였다.

-진짜 뉴블랙은 좋은 의미로 눈에 많이 띄는 듯

-웬일이래 올해 신인들 존나 잘하는데..???

-미친ㅋㅋㅋ 올해 신인풀 미쳤다

-신인끼리 맞출 시간 별로 없었을 텐데 합 존나 잘 맞네;;

-유독 뉴블랙이 눈에 띄는데 기분탓인가..?

-표정 때문 아님? 자꾸 그래서 시선이 가는 것 같은데

실제로도 표정 연습만 다섯 시간 가까이 해온 결과이기도 했지만 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왠지 눈에 띄는 무대였다.

거기다가 조화로움도 한 몫했다.

혼자 튀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그룹 멤버들과 한 화면 속에 부드럽게 어우러져 있었다.

그 때문에 다른 그룹도 같이 호평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까닭 때문일까.

이내 머리를 살포시 흔들어 땀을 털어내는 뉴블랙의 리더와, 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쓸어넘기는 세레니티의 메인보컬이 그림 같은 투샷으로 잡히며 암전된 후.

시상자로 나온 모델 한소라와 배우 이강진이 신인상 수상자를 밝혔을 때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축하드립니다. 뉴블랙!

왠지 모르게 촉촉한 눈으로 상을 받으러 오는 뉴블랙 멤버들의 모습과 가수석에서 웃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교차되어 흘러나왔다.

분명 예상을 하고 있었을 텐데도, 어째 이 자리에서 가장 놀라고 있는 이들은 뉴블랙 본인들이었다.

다른 멤버들이 뒤에 서 있고 뉴블랙의 리더가 이내 더없이 진중한 얼굴로 스탠딩 마이크를 잡았.

……다가 정전기가 올랐다.

-앗, 따가!

적나라한 외침에 근처에 서 있는 MC들이 입술을 오므리거나 진행카드로 입을 가리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흠흠.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은 채, 우주가 헛기침을 하며 카메라를 향해 소감의 첫 마디를 열었다.

이제 이런 것쯤은 가볍게 수습할 수 있다는 듯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흘렀다.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그, 정전기 조심하세요. 여러분.

그 말에 장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   *   *

두 번째 신인상이었지만 기쁨은 첫 번째에 못지 않았던 것 같다.

“축하해요!”

“축하해!”

2부 엔딩 무대까지 끝난 이후 여기저기서 축하 인사를 들었다.

대기실을 나설 때 중현이가 신인상 트로피를 패딩 점퍼 안에 강아지처럼 넣고 걸어다니자 마주치는 사람마다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어구구, 어쩜 이렇게 이쁠 수가 있을까?”

“그러니까여. 이 광채 좀 봐여.”

“빛이 난다. 빛이 나.”

탐스러운 금덩이라도 되는 양 우리끼리 트로피를 만지작거렸다.

기쁘다.

정말 기쁘다.

누가 옆에 와서 기분 나쁜 말을 해도 오늘 만큼은 하하 웃으면서 넘길 수 있을 듯한 느낌이었다.

무대의 열기가 아직 남아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상 때문에 흥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뺨이 후끈후끈했다.

이 행복한 기분 어쩌면 좋지.

김덕순 여사한테 이따 전화해서 한 시간 동안 자랑해야지. 열심히 트로피 옆에서 찍은 셀카를 보냈다.

센스 있는 메시지도 적고.

이 정도면 내 정성에 감동하겠지?

전송 버튼을 누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형! 얼른 와요!”

“어, 갈게!”

앞서 가던 동생들의 부름에 얼른 미소를 짓고는 따라갔다.

*   *   *

같은 시각. 군산.

무르팍에 고양이를 올려놓고 TV를 바라보던 김덕순 여사는 계속해서 부르르 떨리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 단톡방 : 자식농사 풍년 】

중현아빠 [최고의 날이군요,,]

중현아빠 [우리애들이 또 상을 받아씁미다!!]

비주엄마 [어머]

비주엄마 [우리애가 엄마 사랑한다고 보낸 메시지 봐요..!]

비주엄마 [(캡처)]

왕현탁회장입니다 [저도 방금 애교 문자 도착했읍니다ㅎㅎ]

왕현탁회장입니다 [울 귀요미 아들 ㅎㅎ]

저마다 자기 자식이 보낸 ‘고마워요’나 ‘사랑해♡’ 같은 문자를 캡처해서 올리고 있었다.

‘이눔은 왜 연락이 없는겨.’

얼른 하나 보내라, 보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내 손자로부터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지가 도착했다.

사진 37장이 끼어있는 메시지였다.

우주 [김덕순 삼행시~~!!]

우주 [김말하지 않겠다]

우주 [덕순아]

우주 [순순히 내 셀카를 보아라~♡]

“…….”

갑자기 확 울화통이 치밀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