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86)화 (186/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86화

여기 잘 익은 홍당무가 하나 있다.

“리사조아 님이 뉴블랙 매니저셨구나.”

“네에…….”

“여기서 보니까 너무 신기하다. 지난번에 너무 감사했어요. 뮤지컬 첫 공연할 때도 다른 분들이랑 와 주셔서.”

리사가 민기 형을 붙잡고 반갑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와는 낯을 엄청 가렸던 분이 자신의 팬에게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랜 친구를 만나 반가워하는 병아리 같다.

“벨기에 가서 와플 만드는 거 배울 때도 한국 팬들 생각이 엄청 많이 났거든요. 아, 맞다. 저 거기서 리사조아 님이 주셨던 선물 되게 잘 써먹었어요.”

“아, 네에…….”

리사와 달리 민기 형은 죽을 맛인 표정이었다.

슈가피쉬 초기부터 리사조아가 얼마나 열성팬이었는지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하는 동안, 민기 형은 꺄르르 웃는 우리를 곁눈질하며 슬픈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감한 얼굴이었다.

하긴 당장 나부터도 ‘서 대리, 요즘 어때? 좋아? 리사조아?’하면서 깔깔거릴 매니지먼트팀 직원들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조금 이따가 또 봐요. 리사조아 님.”

리사가 매니저와 함께 잠시 밖으로 나갔을 때, 민기 형이 거의 무릎을 꿇을 태세로 다가왔다.

“얘들아.”

그가 간곡하게 말했다.

“오늘 일은 비밀이야. 실장님한테도, 회사 사람들한테도.”

“걱정 마세요. 저희 입 무거워요.”

상대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너희가?”

“그런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저희를 자극하시면 안 돼요. 리사조아 님.”

“…….”

민기 형이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하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허공을 바라보는 상대의 눈에 실시간으로 뿌연 습기가 가득 찼다.

아쉽다.

만약에 우리 애들한테 벌어진 일이었으면 하루 종일 그거 가지고 드립 치면서 놀릴 텐데. 매니저라서 놀릴 수 있는 선이 그어져 있었다. 내가 적당히 분위기를 수습하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민기 형. 회사 분들한테는 절대 이야기 안 할 테니까. 저희 믿어 봐요.”

“역시 우주 너밖에 없구나.”

“형, 근데 저희도 맨입으로 그러기는 억울하잖아요.”

동생들이 ‘맞아, 맞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없구나. 없어졌으면 좋겠다.”

“뭐라구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주님. 그래서 뭐가 필요한데? 형이 맛있는 간식거리 좀 사줄까?”

“아뇨, 아뇨. 그러진 마세요.”

로드 매니저가 얼마나 박봉이고 힘든 직업인지 아는데 저기다 대고 뜯어먹을 만큼 양심이 없진 않았다.

그랬기에 요즘 타이밍을 재면서 부탁하려고 했던 용건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번에 새로 작업하는 세 번째 앨범 타이틀 아시죠?”

“……으응.”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거든요. 아무래도 A&R팀이랑 저희들은 하루종일 음악만 하는 전문가 포지션이다 보니 취향이나 보는 눈이 고여있는 편이고요. 그래서 대중적인 시각도 필요하거든요.”

걸그룹의 열성 팬이었던 사람만큼 아이돌 음악에 대한 적임자도 없을 테니까.

“형 시간 괜찮을 때, 이번 노래에 대한 의견을 조금…….”

“내가 밥을 살게. 차라리.”

비협조적으로 나오는군.

“잠시만요. 형. 귀 좀.”

비밀조직원끼리 암호를 대듯이 민기 형의 귀에다 대고 내가 마법의 단어를 소곤거렸다.

“리사조아.”

“……어우, 벌써부터 노래가 듣고 싶어서 몸이 막 근질거리네.”

“고마워요. 형.”

새롭게 포획된 노비를 보면서 내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동생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모두 흡족한 얼굴로 엄지를 척 들었다.

‘잘했어요.’

‘신규 노비 환영.’

그때 멀뚱멀뚱 서 있던 원석이 형과 내 눈이 마쳤다.

움찔.

190이 넘는 거구의 사내가 몸을 흠칫 떨면서 내 시선을 필사적으로 피하기 시작했다.

“……쳇.”

저 사람은 나중에 포획, 아니 부탁하는 걸로 할까.

그때 문이 다시 열리고는 밖으로 나가 있었던 리사와 그 매니저가 들어왔다.

양손에 커피 박스를 포함해서 미니 케이크 같은 게 바리바리 들어 있었다.

제작진에게 주려고 준비한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맛있게 먹어.”

리사가 우리에게 준 간식 선물이었다. 그녀가 민기 형을 바라보며 웃더니 우리에게 말했다.

“리사조아, 아니 서 매니저님한테는 맨날 선물만 받아서. 이번에는 내가 뭐라도 돌려 드리려고.”

“감사합니다.”

보통 매니저가 관리하는 연예인 덕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 반대의 경우라서 뭔가 희한했다.

장소원 선배라는 공통 분모 때문에 훈훈한 분위기로 첫 만남을 시작하긴 했지만 그래도 낯가림이 있었는데. 우리 리사조아 님을 발견한 이후로 우리도 덩달아 좋게 봐주는 것 같다.

약간 내 팬 인증 마크라고 해야 하나.

하긴. 나 같아도 우리 수플레가 매니저가 돼서 관리하는 연예인이 있다면 잘해주고 싶을 것 같다.

행복한 표정으로 같이 셀카를 찍는 연예인과 팬을 바라보면서 내가 감상에 잠겼다.

먼 미래에 나도 저렇게 팬이랑…….

“딸기 올라간 티라미수는 제가 찜할 거예여!”

“그럼 띱.”

저렇게 팬이랑…….

“음? 띱은 제가 해야 되는 거예여. 중현이 형.”

“……시무룩.”

“중현아, 넌 나랑 사과 먹자.”

나도 미래에 팬이랑…….

“참, 다들 그거 알아요? 띱은 원래 dibs라는 영어 표현에서 유래했다는 거. 한국어로 할 거면 ‘찜’이라고 하는 게 좋아요. 우리 이제 어린이들 만나는데 언어 조심해야죠.”

“그래여? 겜 하다 보면 애기들이 욕 제일 잘하던데.”

“……진짜? 애기들이 욕도 써?”

“저 보고 너무 못한다고. 저번에 어떤 애기가 보이스 채팅으로 형 너무 못한다면서 친구 끊었어여.”

“음? 그건 객관적인 평가잖아.”

쉴 새 없이 들려오는 푼수떼기 같은 수다에 결국 나는 감상에 잠기려던 것을 포기했다.

그래.

……그냥 빵이나 먹자.

*   *   *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면서 참가자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로 도착한 손님은 우리와 한 차례 만난 적이 있었던 인물이었다.

행사가 막 끝나고 도착한 건지, 아니면 준비된 의상인지 반짝이 정장을 입고 있는 사람이었다.

얼굴에는 유쾌함 가득한 미소를 띠고 있고, 표정이나 목소리에 끼가 철철 넘치는 30대 초반의 남자.

“안녕하세요~! 송보형이 왔습니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트로트 가수가 안쪽을 들여다보더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카메라가 없네.”

“…….”

“상관없지. 안녕하세요, 어르, 아니 여러분~!”

아직 행사 흥이 덜 빠졌다면서 넉살맞게 웃던 송보형이 매니저와 함께 들어왔다.

“처음 만나네요. 리사 씨.”

“네에….”

상대가 낯을 가리는 것을 눈치 챘는지, 송보형이 ‘반가워요~’ 하면서 눈치 있게 발걸음을 뗐다. 거리를 조금 널찍하게 유지하자 리사가 한결 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 뉴블랙! 우리 그때 부천의 눈빛 축제?”

“맞아요.”

고개를 끄덕이는 중현이와 함께 리혁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천 별빛축제요.”

“아, 맞네. 나도 참 바보 같이 눈빛이래.”

그가 유쾌하게 웃으면서 우리도 같이 따라 웃었다.

송보형.

우리가 이천 시에서 틴스피릿 땜빵을 설 때, 같이 무대에 섰던 트로트 가수였다.

그가 우리에게 바짝 붙어 앉으며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그때 보고 엄청 오랜만에 보네. 잘 지냈어요?”

“네, 선배님은요?”

“엄청 잘 있었지. 보시다시피 요즘 몸값도 엄청나게 올라버려서, 요거요거 반짝이도 고급 됐어.”

반짝이 옷을 펄럭이며 자랑하는 이의 모습에 우리가 다시 웃었다. 지호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대박, 엄청 예쁘다. 저 만져봐도 돼여?”

“살포시 쓰다듬어요. 살포시.”

“살포시~”

막내가 의태어를 입으로 흉내 내며 만지는 동안 우리도 그 반짝이 의상을 보며 눈을 빛냈다.

“우와…….”

특히 나는 감동의 물결이었다.

대박.

옷 진짜 예쁘다.

반짝이인데 막 움직일 때마다 조명에 비쳐 무지개색으로 요동을 치고 있었다. 마치 승천하는 한 마리 비단잉어가 오색 빛깔을 촤라락 뿌리는 듯한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얘들아.”

내가 꿈을 꾸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나도.”

“안 돼요.”

비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건 허락해줄 수 없어요.”

“비주야.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사복으로 입어보고 싶다는 거잖아요. 형은 안 돼요.”

“그럼.”

“의상도 안 돼요.”

“내가 너희를 위해서 꽃무늬도 포기했는데…….”

짐짓 시무룩하게 어깨를 축 늘어뜨리자 비주가 ‘어……’하면서 두 손을 꼼지락거렸다. 이제 성공이다 싶었는데 리혁이가 맘 약해지지 말라며 비주를 독려했다.

흥.

정말 흥이었다.

그때 근처에서 곁눈질로 흘깃거리던 리사가 소심하게 끼어들었다.

“혹시 저도…….”

“예, 만져요. 만져.”

리사도 조심스럽게 의상의 반짝이를 쓰다듬고는 ‘어멋’ 하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곱다.”

송보형이 뿌듯한 얼굴로 자신의 잇 아이템을 자랑했다.

“탐나죠? 이게 이태리에서 들여온 거예요.”

“보형아. 그거 회사명이 이태리야.”

우리 모두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송보형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하하 웃었다.

예전과 다름 없이 소탈한 태도였다.

송보형.

작년 여름에만 해도 무명이었던 그는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트로트계의 신성이었다.

“그러니까요. 나도 마지막 음반이라 생각하고 딱 낸 거였는데, 그게 잭팟이 터졌다니까.”

무명 가수 생활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을 할 때, 마지막으로 냈던 앨범이 도약의 기회가 됐다고 했다.

차트에 이름이 올라가고, 뒤이어 낸 트로트 곡도 중독성 가득한 멜로디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요즘 활동하는 젊은 트로트 가수 중에 가장 인지도가 높은 사람 중 하나였다.

이쯤 되면 보통 걸음걸이나 어깨 움직임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그는 이전과 변함이 없었다.

송보형이 검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내가 딱 결론을 냈어요. 이건 곧 빠질 거품이다. 이럴 때일수록 건방지게 단물을 뽑아 먹으면 안 된다.”

사람 일은 모르니 최대한 겸손하게 꿀을 빨아야 한다는 명언에 자리에 있는 이들이 공감하면서 웃었다.

좋기도 했다.

리사와 송보형은 둘 다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음원 성적만 따지면 우리도 불꽃놀이와 마스커레이드로 만만찮게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했다.

특히 마스커레이드는 노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큼 꽤 유행을 탔다.

뮤비 조회수를 비롯한 해외 K팝 팬덤의 꾸준한 반응도 그렇고.

최근에 경영지원팀으로부터 마스커레이드의 다운로드나 스트리밍 횟수에 듣고 그 인기에 놀란 적이 있었다.

-과장님, 이거 오타 같은데요. 0이 하나 더 붙어 있어요.

-그거 맞아.

-……!

거기다 신인 그룹 중에서 아이돌 팬들에게 가장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팬덤에 있어서도, 굳이 비교하자면 이 프로에 출연하는 다른 가수들의 팬을 몽땅 합한 것보다 우리가 더 많을걸.

냉정하게 말해서 이 자리에서 무시당하지 않고 당당하게 있을 수 있는 것도 우리 수플레들 덕분이었다.

아이돌의 힘은 팬에게서 나오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런 모든 결과물에도 대중적인 인지도라는,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측면에서 우리는 꼴찌였다.

그랬기에 혹시 나왔다가 잔뜩 무시당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 같다.

리사나 송보형이 실제로 어떤 사람들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첫 인상으론 친근하고 친절하게 느껴졌다.

물론, 안타깝게도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네.”

리사와 송보형의 인사에도 고개를 까딱하면서 받은 4인조 남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가죽 재킷에 얼굴에 점처럼 피어싱을 한 이들.

뛰어난 음악 실력과 대중성 있는 음악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락밴드인 조유리 밴드였다.

보컬 실력도 그렇고, 우리 셋을 합친 것보다 유명한 그룹이었다.

“안녕하세요, 선…….”

우리 앞을 슥 지나가는 이들에게 활기차게 인사를 했지만 쌩하고 지나갔다.

아예 없는 사람처럼 지나가서 자리에 앉는 이들을 보며 동생들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웃으면서 다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

그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향했다. 스모키 화장을 해서 그런지 눈이 부리부리하게 느껴졌다.

왜 저렇게 빤히 바라보지.

가운데 앉아 있는 까칠한 인상의 남자, 조유리가 재킷 어깨를 털면서 툭 던지듯 말했다.

“선배는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한테 쓰는 말 아닌가?”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민망한 표정을 짓는 동생들에게 내가 웃으면서 앉으라고 했다. 선배 대접을 받기 싫다는데 그럼 뭐.

별말 없이 부드럽게 웃기만 했다.

출연진 중 막내라는 포지션을 감안해서 예의 바르게 대처하는 게 최선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에취!”

그때 지켜보던 송보형 씨가 재채기를 하면서 4인조 밴드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송보형 씨가 능글맞게 웃으며 쪽을 줬다.

“미안합니다. 내 코가 분위기 깨지는 거에 좀 민감해서.”

“…….”

“나도 모르게 재채기가 나와 버렸지 뭐예요.”

맞은편에 앉은 이들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송보형 씨가 우리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우리도 고마움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거 먹어, 우리 후배들.”

리사가 ‘후배들’에 강세를 두고는 우리에게 간식거리 과자를 건네주었다.

소심해서 말은 못하겠고 최대한 ‘우리 리사조아 님 애들인데!’ 하는 분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과자를 손에 쥐어주었다.

왠지 귀여우셨다.

그런 모습을 통해 확실히 예의 바르게 처신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가수는 오히려 내가 차분하게 대처하는 모습에 호감을 느낀 것처럼 보였으니까.

다시 감사를 표하곤 동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괜찮아?’

그런 내 물음에 동생들이 씩 웃어 보였다.

‘걱정 마요.’

익숙하다는 듯 다들 대수롭지 않게 쿠키를 옴뇸뇸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한결 놓았다.

동생들이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면 괜찮았다.

잠시 리혁이의 주도로 각자 핸드폰에 들어있던 조유리 밴드의 음악을 지우는 훈훈한 시간을 가졌다.

사실 나는 덤덤했다.

다른 두 기성 가수에게도 저렇게 막 대하는 이들이 우리한테 재수 없게 대한다고 해서 놀라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조금 의아할 뿐이다.

왜 처음 만난 우리한테 적대감을 굳이 보이는지.

아이돌 산업이 싫은 음악인이거나 자기들의 세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인가 싶었다.

알고 보니 그 무엇에도 해당되지 않았지만.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마지막에 들어온 차우현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선 우리 모두가 헛웃음을 삼켰다.

90도 각도가 예술이었다.

위아래가 없는 줄 알았는데 아래만 없던 모양이다.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이들에게 차우현은 덤덤한 한 마디를 내뱉을 뿐이었다.

“모두 반가워요.”

190 가까이 되는 거구와 무표정한 얼굴 뒤로 제작진도 들어왔다.

피디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들어오는 차우현은 이번 프로그램의 간판 가수였다.

국내에서 가창력 톱 쓰리를 뽑으면 늘 그 중 하나에 들어가는 사람이기도 하고, 경력이나 히트곡 또한 엄청나게 많았다.

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있어서 드라마가 새로 방영되면 그 OST 중 하나에는 차우현 노래가 들어가 있다고 할 정도였다.

나이는 아직 30대 후반이지만 여기서 10년쯤 지나면 선생님 소리를 들어도 무방한 경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

무표정하게 콧수염을 쓰다듬는 차우현의 옆에 착 달라붙어 말을 걸어대는 조유리의 모습에 잠시 눈을 깜빡였다.

송보형 씨는 혀를 끌끌 차면서 자신의 반짝이 옷에 눈이라도 달린 것마냥 가려주었다.

“안녕하세요.”

상석에 앉은 피디가 가수들을 보며 웃었다.

“우리 명곡 발굴단에 합류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고요. 앞으로 두 달 동안 다 같이 잘 지내봅시다.”

손뼉을 치면서 훈훈하게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발라드 가수, 차우현.

트로트계의 신성, 송보형.

뮤지컬 배우, 리사.

인디 락밴드, 조유리 밴드.

그리고 신인 아이돌 뉴블랙.

다섯 팀이 서로에게 인사를 하는 시간을 가진 후.

본격적인 촬영 준비에 들어가기 위해 출연자들이 저마다 배정된 대기실로 향할 때였다.

“주원아!”

피디가 조연출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회의실에 설치해둔 몰래 카메라 어디 있냐?”

모두 걸음을 우뚝 멈췄다.

“저기 화분 쪽에 설치해 뒀습니다.”

“아, 거기구나. 그거 수거해서 가져 와. 출연진들 친분 다지는 부분 편집해서 넣어야 하니까.”

“…….”

누군가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갑자기 흥미진진한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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