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87)화 (18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87화

조유리가 피디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누군가 그렇게 다급한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봤다.

“피디님.”

화분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미미하게 떨렸다.

“저기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고요?”

“네.”

피디가 선선하게 대답했다.

“요즘 시청자들은 리얼한 걸 좋아해서요. 출연자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아야 더 진솔한 느낌이 나니까.”

너무 진솔한 사람이 있었지.

우리가 멈춰서 구경하는 동안 뭔가 낌새를 눈치 챘는지 피디가 눈을 가늘게 떴다.

“유리 씨.”

“네, 피디님.”

“반응이 왜 그래. 거기에 뭐 방송되면 안 될 내용이라도 들어가 있어요?”

“그건 아닙니다만…….”

조유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편집을 부탁 드리고 싶은 내용이 조금…….”

“편집?”

“예, 피디님.”

그 순간 피디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유리 씨. 이거 좀 아닌 거 같은데.”

“…….”

“피디한테 편집으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거, 본인이 봤을 때 적절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분야마다 건드려서는 안 될 슈퍼 갑들이 존재한다.

연예계에도 그런 갑들이 존재하는데, 방송국 피디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였다.

연예인들을 섭외하고 어떤 식으로 화면에 내보낼지 결정하는 사람들.

“……저거 제대로 걸렸네.”

송보형 씨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조유리 밴드의 행동이 피디의 심기를 제대로 거스른 모양이었다.

다른 출연진에게 안하무인으로 굴던 락 밴드가 고양이 앞에 선 쥐처럼 쩔쩔 매는 모습에 내가 소곤거렸다.

“가자.”

“네, 형.”

근처에 있다가 불똥이라도 튈까 두려워 출연진들 모두 회의실을 잽싸게 나섰다.

“그럼 이따가 봬요, 선배님들.”

리사와 송보형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매니저들과 함께 대기실을 향해 갔다. 

그 동안 뒤에서는 피디의 조곤조곤하면서 또렷한 목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비주가 물었다.

“저분들 분량은 편집되는 거겠죠?”

“그럴 거야. 아마.”

케이블 방송 서바이벌처럼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온갖 악마의 편집을 한다면 모를까.

이번 명곡 발굴단의 취지상 그런 시비성 발언은 삭제될 가능성이 컸다.

아마 출연진 친목 부분에서 조유리 밴드의 분량이 통편집되는 식으로 갈 거다.

리혁이가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마음에 안 들어요. 그냥 확 방송 돼서 욕 먹어야 하는 건데. 아까도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어요.”

“잘 참았네. 어떻게 참았어?”

“잠깐은 시원하지만 뒷감당이 안 되잖아요. 거기다가….”

리혁이가 말을 얼버무렸다.

“나 하나 속 시원하자고 멤버들이 피해 보는 것도 안 되고. 옛날 같았으면 확 들이받… 뭐야, 왜 그렇게 쳐다봐요?”

“기특해서.”

“진짜, 할아버지 같은 표정 좀 짓지 말아요.”

투덜거리는 쌈닭에게 날개동무를 하기 위해 팔을 들어올렸다.

“어림도 없어요.”

리혁이가 알아서 척 막아냈지만 그 팔은 페이크였다. 다른 팔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내가 미소를 지었다.

“너야말로 어림 없다.”

체념한 얼굴로 한숨을 쉬는 녀석의 모습에 내가 픽 웃었다.

같이 복도를 걷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사실 방송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는 거 알잖아. 이미 저쪽 입장에선 큰 손해를 봤다는 걸.”

“그러네요.”

중현이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피디님이랑 작가님들이 카메라에 찍힌 거 보실 테니까.”

“보고 나면 첫인상도 달라질 거구여.”

조유리 밴드에게는 뭐가 되든 악재였다.

연예인들의 실제와 방송용 이미지가 다른 거야 당연하다.

하지만 제작진 앞에서는 사근사근 웃다가 없는 곳에서 저러면 기가 찰 수밖에 없다.

아무리 내게 잘해 준다고 해도 상대가 사람마다 태도를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는 사람이라면 호감을 가지기 어렵다.

그리고 그런 부분은 편집이나 촬영에 있어서도 알게 모르게 영향이 간다.

방송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거기다 이 이야기는 고참 출연자 차우현의 귀에도 들어갈 터였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호의적이지 않을 거라는 건 분명했다.

자기들보다 못 나간다고 다른 출연진을 무시한 상황에서, 정작 잘 보이려던 나머지로부터도 외면 받아 고립되는 상황.

뭐. 불쌍하진 않았다.

평소에 잘하고 다녀야 한다는 김덕순 여사의 명언이 떠오를 뿐.

“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남들한테 못되게 굴다가 제작진에게도 안 좋은 이미지가 박힐 인디밴드는 더 이상 관심사가 아니었다.

‘뉴블랙 님’이라고 쓰여 있는 대기실에 들어가서 다른 스탭들과 짐을 푸는 동안 내가 말했다.

“중요한 건 앞으로 있을 경연이야.”

분량도 중요하지만 이번 ‘명곡 발굴단’은 그 초점이 예능보다는 음악에 가 있었다.

그러하기에 누가 우리에게 시비를 걸든 상관없었다.

우열은 음악 실력으로 가리는 거니까.

“노래가 중요한 프로그램이잖아. 우리는 다른 부분에 신경 쓸 필요 없어. 노래만 잘하면 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형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보여줘여. 저는 열심히 노력해서 묻어갈게여.”

멤버들이 동의의 뜻을 표했다.

몸은 대기실 의자에 앉아 메이크업을 받고, 손으로는 젤리 봉지를 돌려가며 하나씩 뽑아먹으면서 앞으로 있을 방송 내용을 진지하게 토론했다.

그 동안 한쪽 구석에서 침울해 하고 있는 한 인물을 발견했다.

“민기 형?”

우리 매니저가 벽에 머리를 대고 처량한 표정을 지었다.

“……난 끝났어.”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아까 리사조아 얘기를 한 10분 한 것 같은데.

우리가 민기 형 앞에 옹기종기 쪼그려 앉아 위로의 말을 건넸다.

“맞아여. 매니저님이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저 누군가의 팬이었을 뿐이잖아여.”

“젤리 드실래요?”

“힘내세요. 매니저님. 저희가 응원할게요.”

민기 형이 고맙다고 하더니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이거 방송될까?”

“잠깐만요.”

리혁이가 양손을 펼쳐 보이며 물었다.

“진실 혹은 거짓, 둘 중에 원하는 걸 골라주세요.”

“진실.”

“당연히 방송에 나가죠.”

우리 모두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피디님이면 오백 프로 넣는다, 이거.”

“서사가 아주 기막히죠. 오랫동안 팬이었던 누군가 자신의 가수를 다른 연예인의 매니저가 되어 만난다. 거의 운명의 대서사시죠.”

“이야, 벌써부터 브금 들려여.”

옹기종기 둘러앉아 모닥불을 쬐는 사람들처럼 수다를 떠는 모습.

그 모닥불에선 민기 형의 마음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우리는 열심히 장작을 넣었다.

비주가 눈을 크게 떴다,

“어어, 매니저님 눈 촉촉해지셨어요.”

상대가 서러운 얼굴로 말했다.

“내가 그 동안 얼마나 완벽하게 일코를 했는데. 방송 나가면 부모님도 보고, 친구도 보고…….”

지호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여자친구는여?”

“지호야.”

“넹.”

“나는 가끔 네가 미워.”

디스 당해서 입을 비죽이는 막내의 모습에 우리가 배를 잡고 웃었다.

*   *   *

<도전, 명곡 발굴단!>의 첫 녹화는 PBS 본관에서 이루어졌다.

메이크업을 마치고 말쑥하게 의상까지 차려입은 다섯 팀이 무대에 우르르 올라서 자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프로그램 메인 MC를 맡은 이는 백상중.

아나운서 출신으로 예능감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MC였다.

마이크를 겨드랑이에 낀 채 큐 카드를 살피던 이가 출연진들에게 의례적인 미소를 지었다.

“녹화 잘 부탁 드립니다.”

짤막한 인사를 하고는 다시금 큐카드를 살피며 리드멘트에 대해 작가진과 뭐라고 의논을 했다.

비주가 마이크를 손으로 가리곤 내게 속삭였다.

“형, 저 조금 긴장 돼요.”

“긴장 풀어.”

…라고 말하지만 나도 조금 떨리기는 했다.

주세한이라는 인기 절정의 예능에 나가본 적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회성 출연이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예능이 다 그랬다.

한 번 나가서 활약하는 게스트 출연.

지금처럼 제대로 된 형식까지 갖춘 지상파의 경연 프로그램은 처음이었다.

 매일매일 다른 호텔 방에 가서 하루쯤 묵다가 갑자기 장기투숙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긴장된다.

내가 잘해야 하는데. 이거 잘해서 일반 대중에게도 우리 그룹을 알려… 아니야. 이런 생각하면 더 불안해진다.

“후우.”

미튜브에서 배운 라마즈 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자, 중현이가 관심을 보였다.

“그건 뭐예요, 형?”

“라마즈 호흡. 이거 하면 안정된대.”

“오. 저 가르쳐 주세요.”

눈을 빛내는 동생들에게 라마즈 호흡을 가르쳐 주었다.

이내 다섯 명이서 다 같이 하기 시작했다.

“……뭐해요?”

“라마즈 호흡이요.”

송보형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거 출산할 때 쓰는 거 아니에요?”

“네?”

“라마즈 분만법이잖아. 와이프가 알려줘서 나도 알고 있는 건데.”

“……분만법이요?”

동생들이 홱 돌려서 민망해 하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자, 놀라서 손을 내저었다.

“오, 오해하면 안 돼. 얘들아. 나는 그냥 미튜브에 있기에 배운 거라고. 마사이족 워킹에 추천 콘텐츠라고 되어 있어서…….”

어떤 외국인이 요가를 하면서 보여준 호흡법이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리사가 큽 하면서 웃었다.

“방금 생각났는데 소원이가 평소에 자랑하고 다녔던, 부끄러운 일 많이 하는 애가 너였구나.”

“부끄러운 일이라니요.”

그 선배는 대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동생들이 턱을 쓰다듬으며 동의했다.

“틀린 말은 아니네.”

“매일매일이 부끄럽긴 하져. 우주 형의 하루는 부로 시작해서 끄로 끝난다고 할까여.”

“다음 별명은 부띠끄 고고?”

이것들을 진짜.

“야, 조용히 해. 이거 다 마이크에 잡힌단 말이야.”

“이미 찍히고 있어요.”

고개를 돌리니 ENG 카메라 하나가 출연 전 참가자들의 긴장된 모습을 담는 중이었다.

여기 피디님 리얼한 거 엄청 좋아하시네.

매니저들이 잘하고 있다는 듯 멀찍이 객석에 앉아 엄지를 들어 보였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 프로에선 멋있게 나오고 싶었는데…….”

송보형과 리사가 귀엽다는 듯 웃어주었다.

뭐,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멋있게 나가면 되는 거야.

아이돌팬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멋지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그때 거구의 그림자가 내게 드리웠다.

차우현.

발라드 가수보다는 군인이나 경찰에 더 어울리는 굵직한 외모의 남자가 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무표정하던 이의 얼굴에 처음으로 호기심이 떠올라 있었다.

“라마즈 호흡, 그거 복식 호흡이니?”

“네? 네…….”

“어디 한 번 알려줘 봐. 노래에 도움이 되나 해보게.”

그 후로 몇 마디 나눠보자마자 어떤 캐릭터인지 느낌이 확 왔다.

노래덕후.

‘아, 이 사람은 진짜구나’하는 게 느껴졌다.

다른 부분에는 다 무심하지만, 발성 스킬이나 창법처럼 노래와 관련 있는 거라면 뭐든 관심을 보이는 사람.

“히- 히- 후예요.”

“히, 히, 후.”

그리하여 시작부터 멋지게 나오려는 나의 결심은 벌써부터 좌초되고 있었다.

멀찍이서 은근히 부러워하는 표정의 조유리 밴드를 보며 말하고 싶었다.

바꿀래요?

내가 바꿔줄 수 있는데…….

*   *   *

「 ‘도전, 명곡 발굴단!’ 첫 녹화 중 1차 편집본 」

앙상한 가로수가 늘어선 보도와 차량들이 지나는 도로 너머 여의도 PBS 방송국의 전경이 카메라에 잡힌다.

타다다닥 하는 타자기 소리와 함께 떠오르는 자막.

[2015.1.23 금요일, PBS 본관 공개홀]

공개홀의 전경이 풀샷으로 잡힌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MC를 맡은 아나운서 백상중이 말쑥하게 차려입은 채 활기찬 인사를 건넸다.

-숨어 있는 명곡을 찾아 떠나는 음악 여행, 그 여정을 여러분과 함께할 MC 백상중입니다! 반갑습니다!

백스테이지에 모여 있는 이들이 입을 모아 환호를 보내기도 하고 박수를 쳤다.

그중에서 다섯 아이돌이 환영의 어깨춤을 추면서 근처에 있던 이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벌써부터 뜨거운 환영인사를 받았네요.

아나운서가 큐카드를 보며 능청을 떨었다.

-이야, 제가 어떤 분들이 나올 거라고 한 차례 말은 들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봐도 놀라울 만한 라인업입니다.

긴장감을 고조시킨 후.

한 팀씩 무대 위로 올라와 퍼포먼스와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모델이 걷듯이 멋지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올라온 리사가 고음이 가득한 파워풀한 노래를 불렀다.

중간에 평소 뮤지컬 배우로 활약하는 그녀의 멋진 모습들이 삽입된다.

‘언니 화이팅!’하면서 와아아 하는 장소원의 응원 영상을 끝으로, 현장으로 돌아와 출연자들이 감탄하는 모습이 잡힌다.

특히 뉴블랙은 메인보컬이 귀가 호강한다는 듯 미소를 지으면서 다른 멤버들도 웃고 있다.

노래가 끝나고 리사가 마이크를 잡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였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리사입니다! 경연 프로는 처음으로 출연해 보는데 설레네요.

잠시 MC와 토크를 한 후.

이어서 트로트계의 샛별로 불리는 송보형이 올라와 본인의 히트곡을 불렀다.

중간중간 개인 인터뷰도 삽입된다.

노래가 끝나고 토크를 이끌어가던 때, 고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노래 ‘딴딴딴’의 가사가 사투리와 관련이 깊은데, 어떻게 사투리 한 번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영화 ‘검은꽃’의 대사로 보여 드릴게요. 들어보면 알겠지만 네이티브답게 엄청 잘합니다.

본인의 고향 사투리를 이용해 영화 명대사를 능청맞게 따라하는 특기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하나도 안 똑같았다.

고집스레 더 해 보겠다고 우기는 이를 무대에 마련된 좌석으로 보내던 백상중이 마이크를 잡았다.

-네, 다음 분, 아니 다음 팀 올라와 주세요.

무대 위로 캐주얼한 차림의 다섯 남자가 올라왔다.

조명이 암전되고 뉴블랙 멤버들을 중심으로 하이라이트 조명이 비춰졌다.

차가운 인상의 미남이 마이크를 잡았다.

모든 게 날카롭게 보이는 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부드러운 허밍이었다.

메인보컬을 시작으로 리드보컬이 음을 덧붙이고, 그 다음은 메인댄서가 덧붙이고.

그런 식으로 아카펠라처럼 화음을 맞췄다.

다 같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던 이들이 이내 무반주에 노래를 시작했다.

뉴블랙의 데뷔곡 ‘불꽃놀이’가 아카펠라 버전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이 ‘츠츠’ 같은 소리를 깔아주는 동안, 해당 소절을 소화하는 멤버의 모습을 카메라가 바스트 샷으로 담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부르는 이들.

아카펠라 그룹처럼 근사한 공연이었다.

굳이 자막으로 강조하지 않아도 얼마나 잘하는 것인지 절로 느껴졌다.

화려한 외모도 외모지만 그걸 뛰어넘을 만큼 실력이 돋보였다.

이어서 나오는 반응.

뉴블랙을 바라보면서 송보형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장면과 리사가 미니 물개박수를 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조유리 밴드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고.

차우현은 흥미롭다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거기서 삽입되는 차우현의 묵직한 목소리.

차우현 : 흥미로운 무대였어요.

어두운 장막을 배경으로 거구의 사내가 제작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작진은 카메라 각도상 안 보이고 약간 밑에서 카메라가 강한 인상의 남자를 담는다.

차우현 : 노래를 보면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라는 게 있거든요. 그게 남달랐어요. 게다가 이번에는 한 층 더 성장한 느낌이라고 할까.

작가의 목소리가 ‘더 성장했다고요?’ 라고 묻는다.

차우현 : 이 친구들을 처음 본 게 작년 망고 어워드인데, 그 사이에 더 발전을 했더라고요. 특히 리혁이란 친구는 정말 잘 다듬어진 보석 같았어요. 키워보고 싶을 만큼.

명품 발라드 가수의 칭찬이 이어지는 동안 화면이 전환되어 서리혁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서리혁 : 전 노래를 사랑해요.

누가 시킨 것처럼, 어색하게 오글거리는 대사를 내뱉던 서리혁의 귀가 순식간에 벌게진다.

동시에 놀리는 멤버들을 구박하는 인터뷰 때의 까칠한 모습.

하지만 현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서리혁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그림 같이 자연스러운 미소를 그리고 있다.

-정말 잘 들었습니다. 귀가 호강하네요.

다섯 멤버들이 아나운서의 칭찬에 미니언즈처럼 우아아 한다.

백상중이 물었다.

-어쩌다 아이돌 분들이 명곡 발굴단에 나오게 됐을까요? 그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은…….

다섯 명 모두 열정적으로 손을 척 든다.

-다는 들을 수 없고요. 시간 관계상 한 분 정도.

그러자 네 손이 동시에 ㄱ자로 구부러지면 한 명을 가리켰다.

중앙에 서 있는 화려한 미모의 소유자가 부드럽게 웃더니 마이크를 잡았다.

-저희 그룹이 원래부터 옛날 노래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숨겨진 노래를 발굴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는 프로그램 기획이 너무 멋지게 느껴졌어요.

우주가 말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옛날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이에요.

-정말요?

-제가 동년배 중에서는 옛날 노래를 가장 많이 알고 있지 않나…….

-동년배시군요.

아나운서가 우스갯소리를 하며 물었다.

-그럼 이따 명곡 선정 시간 때, 한 번 우주 씨의 안목을 기대해 봐도 될까요?

-맡겨만 주세요.

우주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는다.

화면을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저 자리에 쟤보다 옛 노래에 더 빠삭한 사람들이 한 트럭일 텐데. 무슨 자신감이지?’ 싶을 만큼 든든한 표정.

그런 질문에 대답하듯 이후에 나올 장면들이 짧게 편집되어 예고처럼 나왔다.

-……!

출연진들의 경악한 얼굴과 함께.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