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88)화 (188/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88화

자기소개가 끝나고 출연자석에 앉았다.

조유리 밴드의 무대를 위해 장비가 설치되는 동안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생수를 들이키고는 심호흡을 했다.

“휴.”

세팅된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게 이마를 더듬었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성글성글 묻어나왔다.

첫 고정 예능이다 보니 아무래도 멘트가 신경 쓰였다.

잘했겠지?

옆에서 나를 흘깃거리던 비주가 주머니를 꼼지락거리더니 분홍색 손수건을 내밀었다.

“형, 여기요.”

“고마워.”

“형이 요새 꽃무늬 못 입는다고 슬퍼해서 일부러 꽃무늬로 준비했어요.”

입을 가리고 소곤거리는 모습.

이마의 땀을 닦으며 기분 좋게 웃었다.

‘우리 비주가 최고야.’하는 얼굴로 토닥여 주었다.

그러면서 우리끼리 형님 최고, 아우님 최고 하는 모습에 다른 동생들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들끼리만 친해.’

‘서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다들 노래 부르느라 고생했어. 역시 우리 동생들이 최고야.”

…라는 명분으로 공평하게 다 한 번씩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물론 한 명은 빼고.

“뭐야. 왜 나는 그냥 지나가요?”

“넌 누가 손 대는 거 싫어하잖아.”

“악수 정도는 괜찮은 거 몰라요?”

그 정도 눈치도 없냐는 표정을 짓는 이의 모습에 황당할 뿐이었다.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

하지만 이내 싱긋 웃으며 우리 두루미에게 악수를 해주었다.

드럼과 기타가 세팅되는 무대를 일별하고는 동생들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나 어땠어? 방금 멘트 잘했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쁘진 않았어요.”

“기억은 안 나는 걸 보니까 흑역사는 아니었나 봐요.”

“저는 좋던데요. 형이 했던 멘트 되게 마음에 들었어요.”

중간에 이상한 말이 하나 끼어 있었지만 대부분 호평이었다.

내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럼 10점 만점에 몇 점?”

곧바로 진지한 대답들이 돌아왔다.

“8.4점.”

“객관적으로 7.3 정도여. 영화 같은데 매기는 별점으로 치면 한 3.5개?”

“8점대 초반이요.”

“저는 반올림해서 10점이요.”

가식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동생들을 보며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누구 잘못이겠어.

‘형은 내 마음속의 10점’ 이런 멘트를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고개를 휘휘 저으면서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장비 세팅이 완료되고 방송 녹화가 다시 시작되었다.

MC 백상중이 마이크를 잡았다.

-네, 다음 팀 올라와 주실까요?

4인조 밴드가 무대 위로 올라와 공연을 펼쳤다.

강렬한 락음악이 공개홀에 울려 퍼졌다.

조유리가 스탠딩 마이크를 잡고 가창력을 뽐내는 동안 기타리스트와 베이시스트, 드러머가 뛰어난 연주 실력으로 음악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우리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우와…….”

조유리 밴드의 무대를 보는 건 이번이 두 번째.

하승주의 뮤직 카페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더 잘했다.

음악적으로 더 완성된 느낌이라고 할까.

“좋다.”

시원하게 고음을 질러대는 조유리의 보컬부터 다른 멤버들의 연주 실력까지.

누구든 인정할 만큼 뛰어난 실력이었다.

각 멤버들의 기량도 국내 톱 수준이 아닐까 싶다.

그랬기에 인간적인 호감도와는 별개로 우리는 노래 자체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리듬을 타면서 흥얼거리기도 하고.

다른 출연진들도 마찬가지로 조유리 밴드에게 같은 뮤지션으로서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

자기소개 시간에 MC가 조유리에게 말을 걸었다.

-유리 씨의 이름에 얽힌 일화가 있다죠?

-네, 이름만 보면 저를 여자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님이 러시아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셨어요. 그 때문에 저도 어린 시절을 러시아에서 보냈는데 거기는 유리가 남자 이름이거든요.

그러면서 밴드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보셨다시피 이런 이름 하나에도 선입견이 반영 되잖아요. 그래서 밴드에 제 이름을 붙이게 됐어요. 세상의 고정적인 편견을 깨보자 하는 의도로요.

말하는 사람이 멋지지 않을 뿐, 멋진 말이었다.

속으론 은근히 부럽기도 하고.

우리는 왜 뉴블랙이 됐냐고 하면 ‘엥? 그거 사실 맨투맨 로고에 붙은 치킨 얘기인뎅…….’이라고 할 수밖에 없거든.

지금이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이름이지만 남한테 함부로 탄생 비하인드를 밝히기 어려웠다.

물론 홍 대리님이 머리를 쥐어짜내서 ‘이 세상에 새로운 유행을 불러온다’는 대외용 뜻을 만들어 주었지만 말야.

그때 백상중이 큐카드를 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 참, 신기하네요.

그가 내 쪽을 흘깃거리고는 조유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전 미팅 인터뷰 내용을 봤는데요. 유리 씨가 특기라고 써낸 게 우주 씨랑 완벽하게 겹치네요.

-……예?

-‘음악 감상’이 특기라고 되어 있네요? 노래를 많이 알고 계시나 봐요.

-네. 맞습니다.

조유리가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원체 음악 듣는 걸 좋아해서요. 많이 알고 있습니다. 특히 196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 락음악에 대해서요.

-오, 이거 재미있는데요?

백상중이 히죽 웃었다.

-어디 이따가 한 번 확인의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정말로 두 분이 옛 노래에 관심이 있을지. 네, 수고하셨습니다!

그때 밴드의 멤버들과 함께 출연자석으로 다가오던 조유리가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하는 느낌의 시선이라고 할까.

약간의 무시와 승부욕이 들어있는 듯하기도 하고.

차이점이 있다면 맨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마냥 무시하는 게 아니었다. 우리 무대를 본 것 때문인지 경쟁자로 인식하는 듯했다.

물론 네가 노래를 알아봐야 뭐 얼마나 알겠느냐는 표정은 여전했지만.

다음 무대가 세팅되는 동안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이에게 나는 말없이 미소를 지어 보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상대를 애잔하게 바라보는 우리 동생들의 표정이 자꾸만 눈에 보였다.

그 목소리가 귀에서 자동으로 재생됐다.

‘후회할 텐데.’

‘불쌍.’

‘미리 기도해 줘여. 우리.’

부디 살살하라는 듯 바라보는 동생들에게 웃어 보였다.

얘네는 나를 대체 뭘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무슨 노래만 나오면 돌변해서 미쳐 날뛰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평소에 음악 감상을 좋아할 뿐인데 말야.

*   *   *

             

조유리 밴드의 무대가 끝나고 다음 순서는 차우현이었다.

“우와아아……!”

소름이 쫙 돋았다.

차우현이 한 소절씩 내뱉을 때마다 출연자석에 앉아 있는 이들이 술렁이면서 탄성을 내질렀다.

과연 이 프로그램의 간판 가수다웠다.

망고 차트 어워드에서도 잘 부르신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들으니 대박이었다.

겉모습은 거대한 무표정 콧수염 아저씨처럼 보이는데, 노래를 부르니 사람이 달라 보인다.

표정을 통해 가사를 완벽하게 묘사하는 전달력.

흔들다리에서도 안정적일 것 같은 발성.

음이 자유자재로 올라갔다 내려가는데 뚝뚝 끊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의 곡선처럼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미쳤어. 저 분은 미쳤어요.”

옆에서 리혁이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찌나 흥분했는지 백짓장 같던 창백한 얼굴이 토마토 왕자님처럼 변해 있었다.

평소였다면 그 과장된 반응을 보며 놀렸을 텐데, 오늘은 우리도 얘와 똑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실력이었으니까.

다들 스테이지 10에서 오크를 잡고 있는데, 레벨 99가 난입해서 자기가 잡은 드래곤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물론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가 실력자이기에 실제로 그 정도 격차는 나지 않았지만 느낌은 그랬다.

압도적이다.

하지만 출연진들이 진정으로 놀라고 있는 건 그 압도적인 실력 이면에 보이는 연습량이었다.

노래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밥 먹고 노래만 부르면서 10년을 넘게 보내야 나올 수 있는 기량.

인간적으로 존경스러웠다.

저 사람이랑 경연에서 맞붙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살이 떨릴 만큼 긴장되면서도 기대됐다.

-와…….

MC인 백상중도 잠시 본분을 잊고 입을 떡하니 벌렸다.

-인터넷에서 ‘노래의 신’이라고 괜히 불리는 게 아니네요.

-신이 되려면 멀었습니다.

어딘가 진지한 대답.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백상중이 웃으며 물었다.

-그럼 본인이 판단하시기에 지금은 어느 수준이신가요.

-…….

곰곰이 생각에 잠기던 차우현이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러곤 누구보다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한 73퍼센트 정도.

-그, 그렇군요…….

유머 감각이 독특하신 듯했다.

하지만 저 73퍼센트라는 정확한 수치에 행복하고, 막 존경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이가 있었으니.

“대단해.”

리혁이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속삭였다.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얼마나 노래에 통달해야 저런 수치까지 계산해서 센스 있는 농담을 던질 수 있는 건지…….”

“…….”

“나도 저 선배님처럼 되고 싶어요.”

문득 팬사인회에서 벌어질 미래가 떠올랐다.

우리 수플레가 행복한 얼굴로 앉아 있고, 맞은편에는 리혁이가 차우현 선배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리혁 오빠. 노래 너무 잘 불러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현재 수치로는 상위 78퍼센트 정도.

-……?

-농담이었는데.

한 팬이 탈덕하며 떠나는 끔찍한 미래가 그려졌다.

차우현이 한 마디를 할 때마다 수첩에 받아 적을 기세로 듣는 리혁이를 보면서 내가 결심했다.

절대 둘이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해야지.

전 출연진의 자기소개가 끝난 후 백상중이 말했다.

-네, 다섯 팀의 개성적이고 멋진 모습 잘 보았습니다.

이제 본 게임으로 진입해야 할 시간.

-숨겨진 옛 노래를 발굴한다는 취지에 걸맞게 이제 노래를 찾아 떠날 시간인데요.

그가 말했다.

-일단 곡 선정에 앞서서 먼저 연도를 공개하겠습니다.

<도전, 명곡 발굴단!>은 다음과 같은 형식을 지니고 있었다.

제작진이 먼저 연도를 설정한 후.

락음악, 포크송, 댄스 등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숨겨진 명곡이라고 생각하는 노래를 미리 준비한다.

그리고 그 여섯 곡 중에서 하나씩 다섯 개를 제비뽑기로 고르는 시스템이었다.

백상중이 큐카드를 보면서 말했다.

-도전, 명곡 발굴단! 그 첫 회의 연도는 바로…….

전광판에 숫자가 떠올랐다.

【 1990년 】

모두가 물끄러미 전광판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1990년. 세계적으로는 독일이 통일되고 동서 냉전이 종식된 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대중음악이 꽃피웠던 시기죠.

출연진들의 긴장이 약간 풀렸다.

2010년대 스타일로 편곡하기가 어려운 더 이전의 노래와 달리 90년대 곡은 그 부담이 덜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제작진이 제비뽑기가 담긴 주머니를 MC에게 건넸다.

-자, 이제 노래를 뽑을 시간입니다. 이 안에는 여러분께서 앞으로 2주 동안 준비해야 할 노래가 담겨 있습니다.

경연 프로그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선곡.

그것도 랜덤으로 분배되는 시스템에 모두가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먼저 리사 씨 나와 주세요.

심호흡을 하던 리사가 자신감 있게 제비를 쑥 뽑았다.

구불구불하게 접힌 종이를 풀자, 거기에는 모두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제목이 나타났다.

『 또롱또롱 』

백상중이 웃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또롱또롱. 처음 들어보는 제목이네요. 어디 다 같이 한 번 들어볼까요?

이윽고 스피커를 통해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또롱

또롱?

모두가 눈을 깜빡거렸다.

♪또롱 또롱 또로롱

♪이슬이 굴러가요

동요였다.

모든 출연진이 웃음을 터뜨렸고 리사는 울상이 되어 있었다.

MC도 큐카드로 부채질을 하며 머리를 식혔다.

-어떠세요, 리사 씨?

-동요네요. 이거 어떻게 소화해야 되지. …진짜 장르가 다양하다고 듣기는 했는데 정말이었네요…….

-네, 신기하죠?

그때 백상중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나에게 고개를 돌리고는 농담을 던졌다.

-어떠세요, 노래 감상이 취미이신 분들? 어떤 노래인지 알고 계시나요?

-……어.

조유리가 당황한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다.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동요라서…….

-우주 씨는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노래를 듣고 나니 알 것 같아요. 90년 PBS 창작동요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노래 아닌가요?”

-…….

그 순간 모두가 나를 바라보았다.

-……?

‘쟤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니면 ‘잘못 들었나?’ 하는 당혹스러워 하는 얼굴들.

심지어 제작진도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들이다.

그저 우리 애들만 ‘디스 이즈 아워 노비’ 하며 뿌듯하게 웃을 뿐.

백상중이 재차 물었다.

-이걸 아세요?

“네.”

-어떻게…? 아니, 일단 정답부터 확인해야겠네요. 피디님! 우주 씨가 말한 이야기가 맞나요?

카메라 뒤편에 서 있던 메인 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도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백상중이 고개를 홱 돌렸다.

-어떻게 아셨어요?

“들은 적이 있어서요. 제가 아이돌 대신에 작곡가를 꿈 꿨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내가 이 노래를 어찌 하여 아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적당히 포장해서.

작곡 공부를 시작했을 때, 목표는 아이돌 음악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뭘 해야 돈을 많이 벌지 생각했다.

그러다 ‘동요 만들어서 떼돈…?’ 하던 시기가 있었다.

예컨대 아기들을 위한 중독성 있는 동요를 만들어서 미튜브 벼락부자가 된다든가. 자장가 채널을 만든다든가.

그 때문에 한창 동요에 꽂혀서 온갖 노래를 섭렵하던 때였다.

한 번 몰두하면 끝을 보는 성격 때문일까.

너무 몰두해서 후임한테 식사시간에 ‘누구야, 맘마 먹으러 가자’라고 했을 정도로 집중해 있었지.

또롱또롱은 그때 들었던 노래였다.

백상중이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이야, 괜한 자신감이 아니었네요. 90년대 동요 제목까지 맞출 줄이야.

“운이 좋았어요. 더군다나 대상까지 차지한 유명한 노래라…….”

-리사 씨가 저 노래에 대해 굉장히 궁금한 게 많은 표정이네요.

-네. 경연 준비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됐는데.

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가 촬영 끝나면 우주 씨에게 좀 물어봐야겠어요.

우리 동생들이 ‘저런…’, ‘왜?’, ‘어째서?’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에 내가 눈을 짐짓 흘겨주었다.

다행히 이어서 나온 노래들은 다른 선배 가수들도 꽤 알고 있었다.

노래를 들으며 감상을 주고받거나 누가 부른 것인지 추리를 하는 등 다양한 주제로 나누는 토크.

차우현이 말했다.

-은세라 선생님 노래네요. 이게 ‘배반의 꽃’이라는 제목으로 알고 있는데, 그 전년도 노래가…….

“순수의 꽃이요.”

-맞아, 바로 그… 잠깐만.

차우현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눈을 부릅떴다.

-그걸 알아요?

“네, 제가 좋아하는 선배 가수님이어서요.”

차우현과 합세해 은세라 님의 꽃 3부작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풀으니 다들 흥미진진하게 들어주었다.

얼마 전에 파티시에 코리아에서 박재우 셰프가 음식 유래를 설명했을 때 우리가 재미있게 들은 것과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 뒤로도 그런 식이었다.

낯선 노래가 나와서 누가 말을 하면 내가 조심스럽게 거들었다.

최대한 겸손하게.

처음에는 당혹스러워서 ‘뭐지?’하던 이들도 얼마 안 가서는 오히려 나에게 질문을 하곤 했다.

원래는 출연진끼리 경연곡에 관해 받은 느낌이나 감상을 나누는 시간인데, 어째 분위기가 마치 ‘우주 박사와 함께 떠나는 음악여행’ 같은 코너로 변신해 있었다.

송보형이 말했다.

-우주 씨는 말하는 거나 알고 있는 게, 나보다 더 윗줄 같은데?

차우현이 거들었다.

-저보다도 더 나이가 많아 보여요.

다른 이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MC가 몰아가는 것도 그렇고 뭔가 애늙은이 포지션으로 자꾸 메이킹을 하려는 것 같았다.

격렬하게 거부하고 싶었지만 이미 다들 나를 무슨 노래 깎는 노인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반응에 우리 애들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자기 고양이 사진에 좋아요를 왕창 받은 집사 같은 표정이라고 할까.

-…….

다들 신이 나서 토크를 하는 동안, 조유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중간에 락 음악이 나왔을 때 흥미진진한 썰을 풀기는 했지만, 그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거나 막 듣는 나와는 다르게 정말로 딱 자신의 분야 위주로만 듣는 모양이었다. 예능감이나 말주변이 그리 뛰어난 편도 아니어서 살짝 겉도는 느낌이긴 했다.

평소라면 나도 의례적으로 말을 걸어서라도 대화에 끼게 했을 텐데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순서인 우리에게 남은 두 개의 제비가 주어졌다.

-자,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뉴블랙이 제비를 뽑을 시간입니다.

우리가 우르르 몰려나갔다.

동생들이 내 어깨에 턱이나 손을 올린 채 옹기종기 모였다.

마치 불상에다 소원을 빌듯이 소원을 중얼거리는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가라, 우주몬.”

중현이의 응원에 힘입어 내가 제비를 쏙 뽑았다.

이윽고 ‘인생’이라는 제목과 함께 노래가 흘러나왔다.

차분한 인트로가 익숙했다.

음……?

이거 누구 노래였더라.

노래를 음미하기 위해 눈을 지그시 감을 때, 내 얼굴을 클로즈업하려는 카메라가 보였다.

이상한 표정으로 나가진 않겠지…?

시간이란 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이겠지요

익숙한 꺾기 창법이 들어가기도 했고 트로트풍 느낌의 노래지만 또 완전히 트로트는 아닌.

하지만 그 형식을 떠나 좋은 노래였다,

잔잔한 목소리가 인생에 대한 소회를 풀어내는 동안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나도 좋은 노래는 좋은 노래인 모양이다.

우리 애들도 미소를 지으며 감상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이번에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애들 모두 이 노래의 주인공을 알고 있었다.

백상중도 말했다.

-제목은 낯선데, 노래를 부른 가수 분은 저도 알고 여러분도 아는, 모두가 알고 있는 분이네요. 뉴블랙도 알고 있죠?

“네.”

내가 마이크를 붙잡고는 말했다.

“모를 수가 없는 분이네요.”

노재현.

우리가 연말평가 때 불렀던 ‘그대 나와 함께 하세요’의 원곡자이자 지금은 은퇴한 전설적인 가수였다.

그분의 노래가 우리가 이번에 소화해야 할 미션곡이었다.

‘좋다.’

노래 주제를 우리가 잘 소화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선곡이었다.

내가 뽑지 않은 다른 나머지 제비에 어떤 노래가 있든 이보다 더 마음에 드는 노래는 있을 수가 없다고 할까.

동생들에게도 ‘봤지? 나의 뽑기 실력을?’ 하는 표정으로 잔뜩 뽐내고 있을 때였다.

-나머지 한 곡은 뭐예요?

송보형의 질문에 MC가 남은 제비 하나를 펼쳐 보였다.

“……!”

동생들이 날 바라보는 동안, 백상중이 내가 뽑지 않았던 제비의 내용을 알려주었다.

-유명덕 님의 ‘덕순아’라네요.

“…….”

눈을 끔뻑끔뻑 뜨는 내 모습에 동생들이 웃음을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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