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91)화 (191/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91화

술이 확 깬다.

마시지도 않은 술이 깬다니, 해괴한 표현이었지만 진짜였다.

방금 전까지 확 올라왔던 취기가 거짓말처럼 사라졌으니까.

“푸흡!”

어느 스탭이 입을 막다가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사방에서 박장대소가 들려왔다.

민망하고, 슬프고, 내 인생은 왜 이러는 건가 싶고.

“아이고, 배야.”

노재현 선생도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동생들은 내 어깨에 연신 손을 올리거나 박수를 치면서 소파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꺄하하!”

비주야? 비주야.

야.

“끄흐흑!”

눈물까지 흘릴 만큼 웃는 동생들을 보면서 서글프게 웃었다.

진짜.

이 순간만큼은 다들 내 주변에서 사라지기를 바랐다.

한참 동안 웃음이 지나간 후.

“아이고야, 요즘 웃을거리가 하나도 없었는데. 자네 덕분에 오늘 원 없이 웃는구먼.”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에요…….”

그래.

적적한 원로 가수에게 적은 기쁨이나마 됐다는 사실에 의의를 두기로 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조연출을 바라보았다.

“이거…….”

‘방송에 나가겠죠?’ 라는 뒷문장을 말하기도 전에 조연출이 엄지를 들어 보였다.

오백 프로 나가는구나. 이거.

우리 수플레들과 김덕순 여사, 한태현 등이 놀려 댈 미래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골이 아파왔다.

하지만 뭐, 이런 게 한두 번인가.

금세 멘탈을 회복했다.

내가 이래봬도 고양이한테 영상 편지를 써 본 사람이다. 이 정도쯤은 별 타격도 없었다.

“어맛.”

우리 막내가 누군가를 흉내내며 휘청였다.

“나 무알콜 마시고 취한 거 같아.”

“깔깔깔!”

“너무 웃겨! 너무!”

……끝나고 두고 보자. 너네는.

*   *   *

촬영 시간이 더 연장됐다.

원래 나와 노재현 선생님이 같이 멜로디를 만드는 장면만 추가될 예정이었는데.

조연출이 와서 메인 피디의 의사를 전달했다.

“피디님이 다른 부분도 찍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

“어떤 부분이요?”

“노재현 선생님이 부탁하신 일들을 너희가 해주기로 했잖아.”

“네. 맞아요.”

아까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다.

아주머니가 혼자 힘으로 하기 힘든 일이 있으니 우리 보고 좀 도와 달라고.

그래서 흔쾌히 승낙했다.

하지만 오늘 촬영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경연곡에 대한 비하인드를 듣는 것.

집안일을 도와주는 건 <도전, 명곡 발굴단!>과 취지가 안 맞는다는 판단 때문에 촬영이 끝나고 나서 별도로 도와드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피디님이 기왕 촬영 스케줄이 연장된 거, 그 부분까지 같이 찍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

“아. 넵, 알겠습니다.”

나쁠 게 없는 제안이었다.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인데, 방송 분량까지 챙길 수 있다는 얘기였으니까.

우리가 곧바로 그 이야기를 전달했다.

“일부터 먼저 하겠다고?”

노재현 선생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멜로디부터 만들어야 할 텐데. 혼자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무알콜 군?”

부끄러운 호칭에 동생들이 뺨을 씰룩이며 웃었다.

내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괜찮아요. 평소 작곡할 때도 조용한 곳에서 집중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다른 잡일을 하면서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그렇다면야 나야 뭐 상관없지.”

“맞아여. 걱정 안 하셔도 돼여.”

지호가 끼어들었다.

“정말 다른 거 하면서 일하거든여. 막 샤워하다가도 갑자기 ‘막내야아아!’ 하면서 핸드폰 녹음 어플 가져오라고 시키고 그래여. 갑자기 멜로디 좋은 거 떠올랐다고.”

“나는 제육볶음 먹을 때 그랬는데. 음식 식을 때까지 계속 붙들고 말 걸구…….”

“요리하고 있는데 와서 멜로디 들어보라고 한 적이 있었어.”

“지난번에는 빨래 개다가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 떠올랐다고 튀었어요.”

“그건 진짜로 튄 거예여.”

속속 이어지는 피해자들의 증언에 노재현 선생이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특이한 사람이었구먼, 무알콜 군?”

“아니에요. 저는 특이하지 않아요, 선생님.”

“그 얼굴로 그런 말을 하면 설득력이 없네.”

동생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껍데기는 훌륭하다.’

‘가라. 알맹이.’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할 때 노재현 선생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결정됐구먼.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려 줄 테니 따라오게.”

천천히 움직이는 전동 휠체어를 우리가 따라갔다.

처음에 방문했던 그 서재였다.

잔디밭이 훤히 보이는 유리창과 고풍스러운 나무 테이블.

나머지 삼면은 책이 빼곡한 서가로 채워져 있었다.

“진짜 좋다…….”

다시 봐도 황홀하다는 듯한 리혁이를 바라볼 때 원로 가수가 말했다.

“그, 여기 책을 좀 정리해야 해서…….”

상대가 헛기침을 했다.

“강 여사가 예전부터 책을 정리해야 한다고 계속 그랬거든. 순서도 이상하고, 잘못 꽂혀 있는 것도 있어서 거슬린다고 했는데, 기운이 부족하다고 못 시켰… 아니, 못 했어.”

우리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서가 정리하고 싶으셨구나.’

어떤 상황인지 바로 알았다.

책이 꽂힌 순서라든가, 색 배치라든가.

자잘한 게 눈에 거슬리는데 이런 것까지 아주머니한테 해 달라고 하는 건 아닌 듯하고.

그러던 차에 마침 찾아온 젊은이들을 반기시는 듯했다.

“글쎄 강 여사 말로는 배치가 좀 이상하다는 거야.”

문제점을 읊어 대는 얼굴에 설렘이 가득했다.

그리고.

우리 측에 똑같은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었으니.

“흐음.”

침을 꿀꺽 삼키는 목울대.

서늘하지만 어딘가 행복으로 빛나는 눈.

기뻐서 떨리는 손가락.

“정리가 필요하단 말씀이신 거죠?”

“그러하네.”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봤는데 한국 십진 분류법에 따라 책을 분류하셨으면 한다는 거죠? 사회과학은 300번 대, 자연과학은 400번 대 하는 식으로요.”

“아니, 자네.”

노재현 선생이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내 생각을 읽었군. 그래서 어떤가?”

“잠시만요. 선생님.”

리혁이가 곧바로 서가를 둘러보면서 견적을 내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시선을 교환했다.

리혁이가 속눈썹을 깜빡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우리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갔다.

‘야, 망했다. 이거 어떡하냐.’

‘큰일 났어여.’

‘그냥 밥 하고 싶다…….’

리혁이가 흐음, 하더니 물었다.

“선생님, 줄자 있나요?”

“여기 있네.”

테이블 밑 수납장에서 기다란 철제 줄자가 나왔다.

리혁이가 방을 돌아다니며 착착 견적을 냈다.

“37 센티미터네. 그럼 여기서 2.5센티 책을 채워넣고.”

“바로 그걸세.”

“900번 대 책은 주제별로 해보시자는 거죠?”

“그러하네. 유럽과 아시아 같은 지역적인 구분보다는 정치사나 경제사 같이 나누자는 것이지.”

마치 아직 지어지지 않은 건물의 청사진을 토론하는 건축가들 같았다.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어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그림이 보이는데요?”

“오오오.”

휠체어에 앉은 노인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찍던 카메라맨이 우리를 흘깃 바라보기에 고개를 저어보였다.

저희도 저분들이 무슨 이야기하는지 몰라요.

그동안 리혁이와 노재현 선생이 얼굴을 맞대고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하하!”

“핫핫핫!”

어찌나 사이가 좋은지 거기서 깨가 떨어지는 환상이 보일 정도였다.

누가 보면 친손자와 친할아버지인 줄 알걸.

이윽고 둘이 서로의 손을 맞잡으며 외쳤다.

“리혁 군!”

“선생님!”

노재현 선생이 야속하다는 듯 말했다.

“이 사람아. 대체 어디 있다가 이제야 온 건가.”

“전 운명이라는 걸 믿지 않는 합리적인 사람이지만 오늘만큼은 믿고 싶어졌어요.”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 아닐까 싶구먼.”

훈훈하다.

보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두 분이서 행복하게 사세요…!’ 하며 롤링 페이퍼를 내밀어야 할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웃고 있지 못했다.

저 대화 뒤에 벌어질 일을 알고 있었으니까.

“자, 그럼 진행해 볼까요?”

“좋네.”

두 정리정돈 마스터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한 명은 지병 때문에 거동이 힘들고, 다른 한 명은 프링글스 뚜껑 여는 것도 힘들어하는 최약체.

단순 노동은 도비들의 몫이었다.

“뭐 해요?”

리혁이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일해야죠.”

“…….”

“얼른 이리로 와요. 내가 알려 줄게.”

“저…….”

소심한 곰 하나가 눈치를 슬금 보다가 손을 들었다.

“의견이 하나 있슴다.”

“네.”

“그냥 서가를 통째로 옮기면 안 될까? 그건 자신 있는데.”

“정리는 힘으로 하는 게 아니에요. 중현이 형. 이게 얼마나 섬세한 손길이 필요한 건데요.”

노재현 선생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옳다. 참으로 옳아.”

“그죠, 선생님? 저는 언제나 옳아요.”

이번에는 지호가 손을 들었다.

“콜록! 콜록!”

정말 아픈 사람처럼 신들린 연기였다.

“저 목이 아파여…….”

“그럴까 봐 마스크 준비했어.”

“…….”

“혹시 몰라서 내가 챙겨 왔는데, 이따가 하나씩 받아요. 그리고… 네, 비주 형.”

“저는 아주머니 점심 준비하시는 거 도와드려도 될까요…?”

“안 돼요. 형은 필수 인력이니까.”

비주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서늘한 눈으로 우리를 하나씩 훑던 리혁이의 삐딱한 시선이 내게 향했다.

“아저씨는 왜 아무 말도 없어요?”

“어차피 안 들어줄 거잖아.”

옆에서 중현이가 ‘우주 형 똑똑해’ 하면서 중얼거렸다.

“그래도 말은 한 번 해 봐요.”

“싫어.”

“빨리 말해요. 혹시 모르잖아.”

“너 나한테 거절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 다 알아.”

멈칫.

“아아…니. 아니거든요. 그건 알 수 없는 거예요.”

말 꼬이는 거 보니까 맞네.

다른 멤버들이 웃음을 참는 동안 리혁이가 ‘쳇’ 하며 중얼거렸다.

곧바로 스웨터를 걷어붙인 우리는 서가 앞에 모여서 손을 모았다.

“둘 셋.”

“안녕하세……?”

반사적으로 서로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다가 엉거주춤 굳었다.

“……?”

이, 이게 아닌데.

카메라 감독님과 작가님이 웃음참기 챌린지를 하는 동안, 우리가 헛기침을 하며 손을 모았다.

“하나 둘 셋.”

“화이팅!”

호기로운 표정으로 서가 정리를 시작하려고 할 때 노가수가 응원을 보냈다.

“힘내게, 무알콜 군과 졸개들.”

그러곤 테이블 의자를 탁탁 쳤다.

“리혁 군은 여기 와서 앉게. 무릇 머리를 쓰는 사람은 앉아서 지휘를 해야 하는 법이야.”

“네, 선생님.”

노재현 선생의 자상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요즘 젊은 애들은 선생님 말고 쌤이라고 부른다던데. 편하게 부르게나.”

“네, 쌤.”

“얼른 앉게. 이 자리가 감시하고 잔소리하기가 좋아.”

“아니에요. 선생님.”

리혁이가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이걸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디까지나 깨끗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건설적인 조언인 걸요.”

“옳거니. 옳다. 껄껄.”

환상의 커플처럼 죽이 잘 맞는 이들을 보며 우리는 말없이 뺨을 파르르 떨었다.

*   *   *

PBS 예능국 사무실.

<도전, 명곡 발굴단!>의 메인 피디 백성현은 문자 보고를 받고 있었다.

출연진들이 원곡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 리사 」

- 동요 ‘또롱또롱’의 원곡자가 교사로 있는 초등학교 근처 카페 방문. 원곡자가 뮤지컬 팬이라 따뜻하게 이야기 나누는 중.

「 차우현 」

- 원곡자가 차우현 씨 포스에 주눅이 조금 들었음. 그래서 일부러 선글라스를 벗었는데 더 무서워 함. 그외 특이 사항 전무.

「 송보형 」

- 원곡자와 폭풍 수다 나누는 중. 길냥이 불쌍하다는 이야기만 30분째. 노래 얘기는 아까 했음.

조연출과 작가들일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은 화기애애한 편이었다.

하지만…….

「 조유리 밴드 」

- 원곡자와 편곡의 방향성을 가지고 기 싸움 하는 중. 원곡자 살짝 기분이 상한 눈치. 분위기는 부드러우나 별도 편집 필요.

피디가 눈살을 찌푸렸다.

‘여긴 참…….’

조유리 밴드는 얘네 좀 섭외하라는 예능국장의 지엄한 명령에 따라 데려온 팀이었다.

실력은 좋았다.

스탭들에게도 예의 바르고.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과 자꾸 트러블을 만드는 게 문제였다.

‘……이것 참.’

국장님 라인 타고 들어온 애들이라 마냥 구박할 수도 없고.

하지만 자꾸만 신경에 거슬렸다.

명곡 발굴단은 경쟁자끼리 머리채 쥐어 잡는 취지로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시청자들이 즐겁게 보도록 기획한 따뜻한 프로그램.

그런데 이런 식으로 분란을 만드는 캐릭터가 있다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곤란했다.

지난번에 다른 출연자들에게 못되게 굴었던 내용도 그렇고.

‘주의를 줘야 하나?’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남한테 그만 못되게 굴라는 이야기를 피디로서 출연자에게 하는 것도 웃겼다.

본인들도 첫 방송을 보고 나면 알아서 몸을 사리겠지.

그때, 진동이 울렸다.

「 뉴블랙 」

- 원곡자와 새로운 멜로디를 즉석에서 만들기로 결정함.

백 피디의 눈에 이채가 떠올렸다.

‘얘네는 꾸준히 뭐가 나오네.’

원래 그는 뉴블랙에 큰 기대를 품지 않고 있었다.

‘아이돌 중에 뉴페이스고 실력파인 애들이 누가 있지…?’ 하다가 발견한 보이그룹.

비주얼 좋고, 실력 좋고.

어느 정도 그림이 나오겠다 싶어서 섭외한 케이스였지만 지금은 은근한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었다.

‘녹화 때도 범상치 않더니만…….’

명곡을 선정할 때 나눴던 토크에서 우주는 종횡무진으로 활약했다.

편집 방향이 바뀔 정도.

어찌나 신이 나서 노래 이야기를 하는지 가요계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시청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방송에 나오는 그런 사소한 모습들에 대중들이 호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았다.

‘기분 탓이지만…….’

제대로 확 뜰 것 같다고나 할까.

그건 방송국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었다.

백성현 피디가 뉴블랙에 관한 보고 사항을 검토할 때 문자가 계속해서 울리기 시작했다.

“……음?”

무슨 일이 있나?

-지금 정리정돈 하는 중. 리혁이가 청소의 귀재라고 함.

-중현이 혼자서 서가를 통째로 들어 올림. 다른 멤버들이 그 아래 먼지 닦음. 전문 먼지닦이인줄.

-막내 애교에 선생님이 건빵 주심.

-리코더가 리더 들고 왔다가 멤버들에게 질타 받음.

-비주 주방에서 아주머니와 막장 드라마 보면서 의기투합. 지금 요리 간 보는 중.

백 피디가 눈을 깜빡였다.

“……?”

그게 뭔지 자세히는 몰라도 제주도에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   *   *

서가 정리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다.

“아이고야.”

허리를 두드렸다.

시작할 때만 해도 책 정리하는 일이 해봐야 얼마나 어렵겠냐고 무시했는데 진짜 힘들었다.

제주도의 시원한 바람이 식은땀을 식혔다.

“그래도 밖에 나오니까 좋네여. 날씨도 좋구.”

“그러게.”

“해방이다아-!”

옆에서 지호가 햇살을 쬐며 두 팔을 벌렸다.

덜컹. 덜컹.

그리고 중현이는 리어카 손잡이를 잡고 걷고 있었다.

“중현아, 안 힘드니?”

“무난해요. 근육에 조금 자극이 오는 정도.”

우리는 지금 서가 정리를 끝낸 후, 나머지 무거운 짐들을 멀리 떨어진 곳에 옮기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카메라는 집에서 노재현 선생님과 그 간병인 노릇을 하는 리혁이를 찍고 있을 터라 우리는 다소 자유롭게 있었다.

비주가 귤을 까더니 중현이를 불렀다.

“중현아. 너 귤 먹을래?”

“예스.”

“던진다.”

“기브 미 귤.”

비주가 귤을 던지자 중현이가 욥 하고 받아먹는다.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그 동안 나는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서울에서 챙겨온 우쿨렐레를 퉁기고 있었다.

“비주야, 이건 어때?”

“음, 글쎄요. 저는 다 마음에 들어서……. 아무래도 선생님 의향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흐음, 아무래도 그렇겠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쿨렐레를 조금씩 연주했다.

1월 말.

제주도의 고즈넉한 마을길을 따라 단조로운 멜로디가 울렸다.

그때 지호가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중현이 형, 맞은편에서 자전거 와여.”

“오케이.”

중현이가 솜씨 좋게 리어카를 틀었다.

“흐어엇!”

그런데 반대편에서 다가오던 자전거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자전거를 타던 할아버지가 우리를 보더니 눈을 부릅뜬 것이다.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놀란 표정.

어찌나 놀라셨는지 잠시 동안 자전거가 휘청일 정도여서 우리가 ‘어어어’ 할 정도였다.

“조심하세요!”

“…….”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우리를 돌아보는 표정.

손을 흔들어주던 우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저러시지?”

“그러게여. 왜 이상한 사람처럼 바라보시지?”

“외지인이라고 경계하시는 거 아닐까요.”

저마다 추측을 내어놓았지만 정확한 이유는 미스터리였다.

*   *   *

마을 주민은 잠시 자전거를 멈춰 세운 채 입을 멍하니 벌렸다.

그러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뭐, 뭐야?’

세 사람을 실은 리어카가 마치 벤허에 나오는 전차처럼 먼지를 뿜으며 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탄 이들이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다.

‘……잘못 봤나?’

눈을 비볐지만 눈에 보이는 광경은 그대로였다.

밀짚모자를 쓴 채 리어카를 힘차게 끄는 미남.

말에게 당근을 먹이듯 마부처럼 귤을 던지는 미남인지 미녀가 하나 있고, 앳된 이는 두 팔을 벌린 채 햇살을 내리쬐고 있다.

띠링띠링.

그리고 이상한 미니 기타를 연주하는, 선캡을 쓴 괴한까지.

“……?”

눈을 깜빡이던 주민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장님한테 말이라도 해야 하나.’

마을에 이상한 총각들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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