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192화
서리혁은 눈을 모았다.
‘으음…….’
백색과 흑색이 교차한 체스판.
체스용 시계의 초침이 제한시간을 알리는 동안 머릿속이 분주히 움직였다.
‘어디로 움직여야 하지?’
그의 눈동자가 움직일 때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생각이 안 나시는가?”
“잠시만요.”
“시간이야 넉넉하게 쓰게. 핫핫핫! 그래서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얄미웠다.
까마득한 대선배지만 눈앞에서 그를 놀려대는 모습은 얄밉기 그지 없었다.
물론 남말할 처지는 아니었다.
-푸흡, 아저씨. 그게 최선이에요? 거기다 두는 게?
-중현이 형. 제가 가진 서울에 걸렸네요. 통행료 이백만 원 주세요. …네? 안 돼요. 씨앗은행 대출은 동의할 수 없어요.
-푸하하! 야. 왕지호. 초딩도 너보단 잘하겠다.
머리 쓰는 게임을 할 때마다 멤버들을 농락하며 약 올렸던 생각이 나자 헛기침을 했다.
잠시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보았지만, 제한시간 때문에 곧바로 다른 생각으로 넘어갔다.
‘어떻게 해야 눈치를 안 채실까.’
그가 머리를 쥐어짜는 이유는 승리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기 위함이었다.
30분 전.
잔뜩 흥이 올라서 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하던 노재현 선생이 슬쩍 물었다.
-자네 체스는 좀 두는가?
-네. 할 줄 알아요.
그 말에 환하게 웃던 원로 가수는 곧바로 체스판을 가지고 왔다.
-강 여사는 이런 데 관심이 하나도 없어서. 동네 사람들도 그렇고. 내가 이 체스 한 판 같이 둘 사람이 없어.
그랬기에 서리혁은 지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신이 난 사람에게 패배의 기억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남에게 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긴 했지만, 지금은 상대가 시무룩해하는 게 더 싫었다.
연장자나 업계 선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상대가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보자.’
이기는 건 쉽다.
여기서 나이트와 비숍을 두어 번 더 이동하면 승리에 쉽사리 다가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그것도 상대가 눈치 못 채게 지려고 하니 고민이 길어지는 법이었다.
“으음…….”
서리혁은 고민 끝에 손가락을 들어 말을 움직였다.
시간에 쫓겨 미세한 실수처럼 보이도록.
“호오.”
맞은편에 있는 노인의 입술이 꿈틀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가 뻣뻣한 손가락이 말을 톡톡 움직였다.
“체크메이트.”
“엇…….”
“핫핫, 아이고. 이번에도 내가 또 이겼구먼. 자네는 체스 공부 좀 더 하고 와야겠어.”
“졌네요.”
서리혁이 한숨을 쉬며 기지개를 켰다.
그러는 동안 휠체어의 노인도 뻐근한 몸을 움직였다.
“어이구, 잠깐 좀 쉬어야겠구먼.”
그가 근처에 서 있던 카메라맨을 불렀다.
“잠시 쉬는 시간 좀 가져도 되겠나?”
“네. 선생님.”
“고맙네들.”
부드러운 축객령에 촬영을 하던 이들이 나갔다.
남은 건 테이블에 앉은 아이돌 가수와 이제 여든을 곧 바라보고 있는 노인이었다.
“어으…….”
노재현 선생이 눈을 깜빡이고는 신음 소리를 냈다.
서리혁이 놀라서 일어났다.
“괜찮으세요?”
“……괘, 괜찮네. 신경 안 써도 돼.”
아침에 만났을 때만 해도 나름 밝았던 노인의 피부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상대가 손을 내저었다.
“아, 걱정하지 말라니까. 난 괜찮아.”
“그래도…….”
“신경 쓰지 말게. 자네가 신경을 쓰는 게 더 싫어.”
“죄송합니다.”
“물이나 한 잔 갖다주게.”
주방으로 뛰어가 아주머니로부터 물 한 잔을 받아와 건네주었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던 노인은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짓더니 너스레를 떨었다.
“간만에 머리를 썼더니 무리를 했나 봐. 젊은이 하나 이겨보겠다고 온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에잉.”
서리혁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체스 때문이 아니라 그냥 몸이 안 좋아 보였다.
‘어떡하지.’
어쩔 줄을 모르겠다.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해줄 수 있는 일은 또 없고.
왜 맨날 팀의 리더가 보름달이 보일 때마다 ‘달님, 김덕순 건강하게 해주세요.’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보게.”
노인이 비죽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바라보지 말게.”
“……네?”
“정든 눈으로 바라보지 마. 남한테 함부로 정 주면 못 써.”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발그레한 것을 보고는 시선을 회피했다.
노재현 선생은 말없이 웃더니 창밖으로 보이는 잔디밭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 마을 전경과 함께.
“봄이 오려면 좀 멀었겠지?”
“네?”
“계절 말이야. 여기서 봄을 보려면 앞으로 한참은 더 기다려야겠지?”
뜬금없는 질문에 서리혁은 생각에 잠겼다.
“제주도가 서울보다 위도 상으로 5도 정도 차이가 나기도 하고, 이번 겨울도 온화한 걸 보니… 금방 오지 않을까요?”
“그렇구먼.”
휠체어를 탄 노인이 미소를 짓는 모습에 서리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왜 물어보세요?”
“별 거 아닐세. 요 근처에 유채꽃 밭이 있거든. 얼른 보고 싶은데 그게 봄이 되어야 피니까.”
주름진 손가락이 한곳을 찍었다.
“봄이 되면 저쪽에서부터 길 따라 유채꽃이 피는데, 넋을 놓고 볼 정도로 아름답네. 바람이 불면 노란 꽃망울이 살랑살랑 기울었다가 올라오는데 정말 장관이지.”
“…….”
“내 어렸을 때부터 유채꽃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거기 서서 그 독특한 향을 맡다 보면 옛날 생각이 나.”
“선생님 고향이 황해도 쪽이라고 하셨죠?”
“맞네. 이제는 갈 수 없는 곳이지.”
원로 가수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랜 추억을 회상하듯 먼 곳을 바라보았다.
“봄이 되면 마을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던 기억이 나는구먼. 꽃 좋아하나?”
“아뇨. 저 빼고 다들 좋아하긴 하지만…….”
들꽃을 볼 때마다 쪼그려 앉아서 향을 맡으며 좋아하는 형이 하나 있고.
‘오늘도 행복과 기쁨’하는 상태 메시지와 함께 프사가 해바라기인 형이 있고.
꽃을 꺾어서 귀에 꽂으며 셀카를 찍는 애가 하나, 꽃무늬 옷에 집착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노재현 선생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꽃을 안 좋아하네. 보기에만 예쁘지 쓸데가 없지 않은가.”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 여기서 또 의견 일치를 보는구먼.”
두 노소가 실용적이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을 교환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노인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여간 유채꽃을 보고 있다 보면 옛날 생각이 나.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요즘 들어서는 자꾸 옛날 생각이 나고 그러네.”
“음,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게 정상일세. 이런 감정을 벌써부터 느껴선 안 돼.”
그 말을 끝으로 노인은 말없이 창문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손가락으로 무르팍을 톡톡 두드렸다.
하지만 바들바들 떨렸다.
단순히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인데도 힘겨워 보였다.
“…….”
서리혁이 잠시 스마트폰을 들어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러기를 5분.
완벽하게 집중했던 탓에 상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뭘 보고 있는 겐가?”
“아, 그게.”
서리혁이 스마트폰을 보여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검색해 보니까 1월에도 유채꽃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가 있다고 쓰여 있어요. 성산일출봉 쪽인데. 꽃이 보고 싶으시다면 어떻게…….”
주절주절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노재현 선생의 눈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폭소하기 시작했다.
“하하! 하하하!”
“……?”
“콜록! 아이고야, 하하!”
서리혁이 휴지를 뽑아 건네면서 눈을 깜빡였다.
영문을 알 수 없었기에, 웃음이 멈췄을 때 서리혁이 물었다.
“왜 갑자기……?”
“자네가 귀여워서 웃었네.”
생각만 해도 웃기다는 듯 기침을 하던 노인이 휴지를 손에 꾹 쥐었다.
“자네는 좋은 사람이야. 다른 사람 배려한다고 체스에서 일부러 져주는 것도 하고.”
“엇…….”
“괘념치 말게.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으니까. 그저 자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뿐이야.”
“감사합니다. 저 보고 착하다고 해주는 분은 처음이예요.”
“음? 다른 멤버들이 안 그러나?”
“맨날 못됐다고 그래요.”
“희한한 일이구먼. 우리 강 여사도 나한테 맨날 못됐다고 그러던데. 역시 세상 사람들이 보는 눈이 없어.”
두 노소가 탄식을 하며 요즘 세상 사람들의 각박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밖에서 소란이 들렸다.
먼지구름과 함께 멀찍이서 리어카가 질주해 왔다.
그 모습을 찍는 방송국 사람들의 얼빠진 얼굴과 함께 뉴블랙 멤버들이 슈퍼카에서 내리듯 멋지게 착지했다.
서리혁은 눈을 깜빡거렸다.
‘대체 왜 리어카에서 멋지게 내리는 건데……?’
왕지호는 그 와중에 브이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네 명은 바깥에서 나머지 잡일을 하기 시작했다.
방음이 잘 되는 탓에 안 들리지만 입모양이나 움직임만 봐도 고막이 터질듯이 시끄러웠다.
중간에 선우주가 바위 하나에 한 발을 올린 채 락커처럼 우쿨렐레를 연주하면서 웃음바다가 되기도 하고.
얼마 안 가 그들은 서리혁과 노재현 선생을 발견하고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잠시만?’
선우주가 입모양으로 뭐라고 말을 하더니 이내 주변에서 A4 용지 여러 개에 뭐라고 큼지막하게 썼다.
그러곤 일어났다.
마치 A4 용지로 고백하듯이 손에 든 종이에 큼지막한 글씨가 쓰여 있었다.
[리혁아]
그가 눈을 멀뚱멀뚱 뜰 때, 뒤이어 다른 종이가 넘겨졌다.
[거기 있으니까 좋니?]
“…….”
[형들은 응? 여기서 이렇게 있는데]
[땀 나고 춥고 그런데]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반복됐다.
[리혁아]
[거기 있으니까 좋니?]
김비주가 배를 잡고 웃다가 뒤로 엎어질 뻔했다.
그 와중에 왕지호가 끼어들어 선을 더 그으면서 ‘리혁’이 ‘리혐’이 되어버렸다.
[리혐아]
그가 중얼거렸다.
“아니, 저 인간들이 진짜…….”
“하하하.”
하지만 뭐가 그리 웃긴지 노재현 선생이 미소를 지었던 까닭에 서리혁은 입술을 비죽일 뿐이었다.
“좋은 사람 옆에 좋은 사람이구먼. 보기 좋아.”
“안 좋아요. 선생님.”
“그래도, 곁에 저런 사람들이 있다는 게 참 좋은 일이네.”
껄껄 웃는 노인의 말에 서리혁은 입을 비죽 내밀 뿐이었다.
* * *
“아이고오.”
집안일을 끝내고 나서 마침내 안으로 들어왔다.
“역시 집이 최고야.”
“맞아여. 아무리 생각해도 전 노동이랑은 안 어울리는 거 같아여.”
“끄덕끄덕.”
거실에서 땀을 식히고 있을 때, 리혁이가 노재현 선생이 탄 휠체어를 밀고 나왔다.
“아이고, 고생들 했구먼.”
“아니에요. 선생님.”
“그래, 그러면 이제 약속대로 노래를 만들러 가볼까?”
그러면서 2층으로 올라오라고 말씀을 했다.
가정용 엘리베이터에 리혁이와 노재현 선생님이 같이 탑승했는데 뭔가 이상하다.
계단을 올라가며 물었다.
“리혁이 뭔가 이상하지 않냐?”
“그러게요. 표정이 조금 이상한데.”
비주가 공감하듯 말했다.
나머지 둘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지만, 어째 우리 애가 바싹 굳어 있는 게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우리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아, 뭐하나! 얼른 안 올라오고!”
“가요! 선생님!”
선생님의 불호령에 2층으로 얼른 올라갔다. 그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2층의 거실이었다.
소파가 하나 있고 각종 악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피아노?”
“가끔 시간이 날 때 연주하는 물건이네.”
“오오.”
내가 얼른 앞에 앉아 건반을 눌러보았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지만 좋은 물건답게 소리가 예쁘다.
다만.
“으음…….”
“어디 마음에 안 드나?”
“음이 미묘하게 엇나가는 부분이 있기는 한데, 요거, 요 건반이 조금 음이 달라서.”
“예리하구먼. 맞네.”
오래된 물건이라 몇몇 건반 소리가 원래 내야 할 것보다 약간 높거나 낮기도 했다.
카메라를 든 제작진이나 동생들은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어쨌거나 사람들이 모두 모인 후 내가 건반을 가볍게 두드리며 연주할 때였다.
“그래서 멜로디는 생각을 해 두었는가?”
“네.”
내가 몇 가지를 가볍게 연주하면서 말했다.
“아까 우쿨렐레를 연주할 때 생각해 두기는 했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건 없었어요. 아무래도 선생님께서 만든 노래다 보니까 제가 만든 걸로는 그 느낌이 안 살더라고요.”
그림으로 따지면 화풍이 다른 게 문제였다.
노재현 선생이 널찍하게 색깔을 두루뭉술하게 그리는 스타일이라면, 나는 꼼꼼하게 다 색칠하는 스타일.
그러니 내가 거기에 새롭게 뭔가를 그려봐야 안 어울리고 튈 게 뻔했다.
“그래서 관점을 달리해서 선생님의 노래를 이용하기로 했어요.”
“흥미롭구먼. 계획이 뭔가?”
“일단 선생님께서 시기별로 노래를 내셨잖아요. 그중에서 ‘인생’과 어울리는 대표곡들을 검색했어요.”
내 손가락이 피아노의 하얗고 까만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가수 노재현의 대표곡들을 한 차례 들려주었다.
노재현 선생이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좋구먼. 그런데… 자네 연주가 어딘가 익숙한데.”
“그러세요?”
우리 아빠라도 알고 계시나.
불현듯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나를 찍고 있는 카메라 때문에 이내 본론으로 다시 돌아갔다.
“인생이라는 게 어찌 보면 시간의 총합이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의 대표곡을 시간 순서에 따라 본 멜로디에 어울리게 믹스하는 건 어떨까 해요. 미리 허락을 안 받아서 조금 예의 없게 느껴지실…….”
“아냐. 그런 건 신경 쓰지 말게.”
상대가 손을 내저었다.
그런 것쯤은 상관없다는 듯 오로지 음악에 관심이 동한 눈치였다.
“어서 들려주게.”
“네, 이런 식으로 가보려고요.”
곧바로 내가 연주를 했다. 노재현 선생의 대표곡이 젊은 시절부터 은퇴 전까지 흘러나왔다.
제작진이 눈을 멀뚱멀뚱 떴다.
자세히 찍으려는 듯 사람들의 반응을 찍고 있던 카메라 한 대가 나한테 더 추가됐다.
“그래서 이걸 다 같이 합치면…….”
곧바로 완전체가 된 ‘인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제작진은 ‘이게 뭐야?’ 하는 얼굴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고 있고, 우리 애들은 흡족하게 웃고 있었다.
리혁이 혼자 살짝 심각한 표정.
노재현 선생은 고개를 까딱이면서 감상했다. 뭐라고 해석하기가 어려운 표정이라 잠깐 긴장했다.
‘괜찮으려나?’
혹시 내 곡을 이따위로 편곡하다니! 하면서 화라도 내시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니면 혀를 끌끌 차시거나.
조금 굳은 표정이라 내가 입술을 축이고 동생들도 긴장 어린 눈으로 노재현 선생을 바라볼 때.
“……좋군.”
우리가 눈을 깜빡일 때, 노재현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는구먼.”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내가 심호흡을 하며 웃을 때, 노재현 선생이 말을 했다.
“조금 아쉬운 게 있어서 몇 가지 조언하고 싶은 게 있네. 약간 거칠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아, 네네. 말씀해주세요. 선생님.”
“일단 후렴구 부분에서 음의 조화가…….”
내가 메모지에 선생님이 말하는 전달사항을 적었다.
확실히 경륜이라는 게 대단했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지점을 지적하시기도 하고, 어찌나 예리한지 TJ 연습생 시절 작곡을 배울 때 프로듀서님 앞에 서 있던 때가 떠올랐다.
백 가지쯤을 말씀하신 후.
“그 외에는 말할 게 딱히 없네. 훌륭하구먼.”
“아, 네에…….”
“자네들은 의견 없나?”
선생님이 다 말씀하셨던 까닭에 동생들도 몇 마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별로 추가할 게 없었다.
그저 리혁이만 왠지 모르게 열렬하게 곡에 관한 조언을 할 뿐이었다.
희한하네.
오늘따라 쟤가 왜 저러지.
이따가 녹화 끝나고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건반에 다시 손을 올렸다.
“그럼 선생님이 말씀하신 부분을 조정해서…….”
내가 다시 연주를 했다.
몇 가지 부분이 미흡하지만 아까보다 훨씬 더 나아진 연주에 상대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내 연주 때문인지 살짝 흥이 오르신 눈치.
주름 진 입술이 열렸다.
그대의 햇살은
나의 기억이 되어
고즈넉한 밤에
위로가 될 테니
리혁이가 불렀던 그 소절이었지만 느낌이 확 달랐다.
‘미쳤다.’
잘해도 너무 잘하신다.
휠체어에 불편하게 앉아 있다는 페널티에도 아랑곳 않고 노래를 기깔나게 불렀다.
오랜 경륜이 녹아든 솜씨에 감탄할 때.
명장면을 잡아냈다는 듯 제작진이 흥분한 얼굴로 카메라를 돌릴 때.
우리 애들도 손뼉을 치며 감탄할 때였다.
“끄윽!”
노래를 부르던 목소리가 점점 음을 이탈하고, 호흡이 거칠어지더니 선생님이 기침을 시작했다.
“콜록! 콜록!”
갑자기 기침을 심하게 토하내던 이가 눈을 질끈 감고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선생님?”
놀란 리혁이가 상대를 흔들었다.
이제는 아예 몸을 어렵게 가누는 노가수의 모습에 모두가 그 자리에 서서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