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22)화 (222/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22화

고개를 돌려서 물었다.

“너, 대체 편지를 얼마나 쓴 거야?”

“몰라요. 묻지 마요.”

자기 눈에 안 보이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지 고양이처럼 눈을 가리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같이 웃던 석환 형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제 너희 방송 나가고 난리도 아니었다. 진짜.”

“그래?”

“어디다 전화도 못 걸겠다니까.”

석환 형이 핸드폰을 들어서 보여주었다. 지금도 전화가 계속 걸려 오는 중이었다.

“어제 17퍼센트가 얼마나 대단한 거냐면, 너희가 나온 명곡 발굴단이 주말 예능에서 3등을 한 거야.”

“……그 위가 주세한이랑 미프지?”

양대 국민 예능이라고 불리는 TBC의 ‘주사위로 세계 한 바퀴’와 PBS의 ‘미스터 프로듀서’ 바로 다음이라는 이야기였다.

즉, 넘사벽 예능 둘을 제외하면 주말 예능 중에서 가장 시청률이 잘 나왔다는 거다.

“그렇게 말하니까 확 실감 나네.”

“제작진도 얼떨떨하다더라. 아무리 잘 나와도 15퍼센트 이하로 생각했는데 그 이상이 나와 버려서.”

상상이 간다.

지난번에 11퍼센트 나왔을 때도 신이 나서 방방 뛰던 사람들인데 17퍼센트라면…….

하지만 얼떨떨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홍보팀에서 여론 분석 좀 돌려봤거든. 90퍼센트 넘게 호감을 표하고 있어.”

홍 대리님이 태블릿 PC를 보여주며 말했다. 동생들이 내 곁에 모여 목을 쭉 뺐다.

“와…….”

커뮤니티 가릴 것 없이 우리에 대해서 호의적인 반응을 표하고 있는 상황에 웃음만 나왔다.

그중에 하나를 가리켰다.

“그런데 SNS 중에서 여기는 뭐예요?”

“아, 거긴 TNT 팬들이 상주하는 데라서. 그쪽 반응은 신경 안 써도 좋아. 소수가 많은 글을 쓰는 구조라서…….”

“아아.”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넘어갔다.

상대가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대중 반응만 신경 쓰면 돼. 아이돌 팬도 대부분 너희에게 좋은 반응을 보여 주고 있으니까.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반응이 좋아.”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프라인 반응이야 다들 체험하고 온 터였다.

석환 형이 말했다.

“오늘 아침부터 연락 받은 행사 대행사만 해도 일곱 곳은 되는 거 같아. 이걸 뽑아 왔는데…….”

글씨가 빼곡해서 전화번호부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고구마 축제’, ‘윈터 페스티벌’, ‘대학교 OT 행사’ 등등.

향후 3개월간 있는 모든 행사를 나열한 건가 싶었다.

“형, 이게 뭐야?”

“방송 나간 지 하루 만에 너희한테 들어온 행사 섭외야.”

“이중에서 어떤 게 우리 거야? 형광펜으로 쳐진 건 안 보이는데…….”

“무슨 소리야?”

상대가 픽 웃으며 말했다.

“그게 다 너희 건데.”

“……!”

벼락을 직격으로 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온몸의 털이 쭈뼛 솟는 느낌과 함께 뒷목이 뻣뻣해진다. 말이 안 나오고 입모양만 ‘와……’ 하는데 소름이 쫙 돋는 기분.

“미쳤다…….”

다 같이 똑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성격 급한 막내가 종이를 뒤적였다. 빼곡한 행사 섭외 리스트가 4페이지까지 이어져 있다.

보다 말고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형, 그러니까 이게 다…….”

“그래. 다 너희 좀 와 달라고 부르는 곳들이야.”

그 말에 그제야 실감이 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얘들아….”

“형…….”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꺼내자.”

“고고.”

다 같이 핸드폰을 꺼내서 행사 리스트가 적힌 종이를 스마트폰으로 찰칵 찍었다.

홍 대리님이 물었다.

“그건 왜……?”

“소장하려고요.”

이어서 ‘이건 소장각’ 하는 진지한 우리 막내의 말에 둘이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종이를 뒤적이며 계속 감탄했다.

“대박이다, 진짜. 리혁아, 이거 복사 되냐? 소장하자.”

“내가 이따 사무실에 가서 다섯 부 해올게요.”

“색깔 용지로 부탁해여, 서 비서. 센스 있게 레드 컬러로 해 오는 거 알지?”

우리 메인 보컬이 막내의 발을 콱 밟을 때, 석환 형이 말을 이었다.

“물론 그 중에 절반이 허수인 건 감안해야 돼.”

그건 무슨 소리지.

“방송이 어제 나와서 아직 단가에 반영이 안 됐거든. 마스커레이드 기준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도 싼 비용은 아니지만 어제 방송으로 인한 인지도, 그리고 앞으로의 상황을 감안하면 낮지.”

“…….”

“더 올라갈 거야, 너희 섭외비.”

웬만해선 ‘잘 모른다’, ‘두고 봐야 안다’ 하고 신중하게 말하던 이가 확신을 담아 말했다.

“이번 일은 단순히 반짝 운으로 된 게 아니니까. 명곡발굴단 방송 이어질수록 단가는 높아질 수밖에 없어. 그만큼 인지도가 올라갈 테니까.”

바꿔 말해서 지금까지 우리가 해 왔던 게 대중적 인지도로 빛을 발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저 행사 중에서 절반 넘게는 지금 너희 페이로 섭외하겠다는 거야. 그래서 안 갈 거라는 거고. 일단 지금으로선 규모가 큰 곳이나 대학교 행사 위주로 생각하고 있어.”

그러면서 이 부분에 관해선 조율해보자고 이야기를 했다.

3집 준비도 있고, 그밖에 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많았으니까. 현재 스케줄만 해도 6월이나 돼야 시간 여유가 나지 않으려나 싶다.

“지상파 방송이 좋긴 좋더라. 썸씽 이후로 이렇게 다양한 행사에서 불러주는 건 처음이야. 지금까지 갑질해 대던 대행사 약 올리는 재미도 있고…….”

서늘한 미소를 짓는 석환 형을 보면서 이 사람이랑은 척 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수북한 종이 더미를 또 꺼냈다.

“이건 오늘 아침 방송사 작가들한테 받은 예능 섭외 리스트.”

“…….”

“참고로, PBS에서 하는 라디오나 토크쇼는 의무적으로 나가야 해서 제외했어. 예능국장님이랑 우리 본부장님이 얘기를 했는데 인기 좀 뽑아먹자고 PBS 타 예능에도 나오라더라.”

시청률 잘 나오는 방송 하나 있으면 출연진이 라디오, 토크 예능, 추격 예능 등에 게스트로 나오는.

사골까지 우려먹는 레퍼토리에 우리가 들어간다니 감동이었다.

리스트를 쭉 훑어보던 우리는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 이거 그거죠? 길거리 버스킹.”

“방 탈출 같은 것도 있네여. 재미있겠다.”

쏙쏙 역사탐험대를 골랐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연애 작대기 예능, B급 정서가 강한 케이블 예능이 많았던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연예 면에서 본 기억이 있는 프로였다.

벌써부터 뭘 골라야 할지 결정이 어려웠다.

한편, 어제 주목받은 건 우리의 예능감이나 가창력뿐만이 아닌 듯했다.

“참, 우주야.”

매니저의 부름에 예능 리스트에서 눈을 뗐다.

“……음?”

“차우현 씨한테 추천 받은 OST 건 말이야. 변동사항이 좀 있는데 의향을 물어보려고.”

“뭔데?”

“거기 음악감독이 네 편곡을 인상적으로 봤나 봐. 방송 끝나고 다른 자료도 훑어 봤다고 하더라고.”

동생들도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원래는 노래만 부를 계획이었는데, 혹시 곡 직접 만들 생각은 없냐고 제작사 통해서 얘기 들어왔어.”

“진짜?”

“일단 얘기해 보겠다고 말했는데 어때? 너 3집 프로듀싱도 있는데 스케줄이…….”

“할게. 이건 해야지.”

비주가 내 귓가에 속삭였다.

“형, 괜찮겠어요? 일정 빠듯할 텐데.”

“비주야. 원래 돈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는 거야.”

커리어에 한 줄 더 새길 거리가 왔는데 당연히 잡아야지.

애초에 OST 작업은 내가 작곡가로 진로를 틀었을 때부터 꼭 해 보고 싶어 하던 일이었다.

행사, 예능, OST.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렐 때, 홍 대리님이 나섰다.

“실장님 이야기는 다 끝나신 거죠?”

“네, 이야기 하시죠.”

우리는 홍보팀 직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매니지먼트 팀에서 할 이야기는 다 나왔고, 홍보팀에선 무슨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너희 팬덤 규모 성장하는 속도가 빨라서, 조만간 팬클럽 2기 모집을 앞당길 생각이야.”

보통 아이돌 팬클럽명이 정해지고 나면, 기획사에서 1기 회원 하는 식으로 모집을 한다.

연간 회비를 내고 굿즈와 함께 팬미팅 등의 티켓팅에 있어서 선예매 권리를 주는 식이다.

2기 모집을 앞당긴다는 이야기를 조용히 들을 때, 놀라운 소식이 들렸다.

“그때쯤 너희 단독 콘서트를 열어볼까 생각 중이야.”

“……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모두 눈을 크게 떴다.

*   *   *

연습생 시절부터 콘서트에 대한 꿈을 꿨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해서 점점 규모를 늘려 나가서 마침내 체조경기장까지 진출하는 원대한 꿈.

TJ 시절, 신인개발팀 직원들이 동기 부여를 목적으로 연습생들을 선배 아이돌의 콘서트에 데려가 주곤 했다.

은하수처럼 물결치는 응원봉의 물결.

화려한 조명.

무대 위에서 빛나는 선배 가수들.

심장을 울리는 음악 소리와 귀청이 따가울 만큼 함성을 지르는 팬들.

방금 전까지 대기실에서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던 이들이 무대 위에선 다른 세계 사람처럼 보일 만큼 신비롭고, 또 부러웠다.

보고 어찌나 들떴는지.

데뷔조가 되고 나서 견학을 갔을 때도 돌아와서 TNT 애들이랑 밤새 미래의 콘서트를 얘기하곤 했다.

뭐. 그러다 몇 주 뒤에 방출되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만큼 단독 콘서트는 내게 있어서, 모든 아이돌에게 있어 꿈이자 소원이다.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회사에서 하는 일이기에 수익이 돼야 한다.

즉, 가수에게 동원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팬 한 명이 앨범 10장을 사는 소수정예 일당백이 아니라 정말로 규모가 좀 있어야 하는.

그렇기에 회사에서 올해 여름쯤에 단독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다는 건 우리에게 그만한 티켓 파워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콘서트라니.”

홍 대리님에게 이야기를 들은 다음 날.

서울 용산구.

우리는 국립중앙박물관 근처에서 HBS 쏙쏙, 역사탐험대의 제작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대화 주제는 단연 콘서트였다.

“우리 8월에 한다고 치면 데뷔 1년 2개월 만에 하는 거 맞죠, 형?”

“그렇지.”

“와…….”

2년에서 3년 걸리는 그룹들도 많다는 것을 고려하면 꽤나 짧은 시간이었다.

설레고 들떴다.

어제 콘서트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온 세상을 가진 기분이었다.

세상에, 수플레들이랑 단독으로 공연을 한다니.

발을 동동 구르며 할머니랑 나비한테 거의 1시간 가까이 자랑을 했다.

“뭐, 너무 들뜨진 말자고요.”

리혁이가 덤덤하게 말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거잖아요.”

“역시 초 치는 데는 세상 최고인 형이에여.”

“리혁이 재 진짜 잘 뿌린다. 재 뿌리기 장인인 줄.”

“재 뿌리기 선수권 대회 나가면 금메달 각 아니냐.”

나까지 거들자 부들부들하는 녀석이었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이 사람들. 어? 내가 편지 좀 써주고 그러니까 만만해요, 이제?”

“응.”

“이이……!”

그렇게 놀리면서도 모두 속으로는 공감하고 있었다.

‘콘서트를 확실히 열긴 할 거야. 하지만 공연장 규모는 3집 활동 추이를 보고 결정하려고.’

쉽게 말해서 콘서트를 하는 건 기정사실인데, 공연장 객석이 얼마나 될지는 앞으로 있을 3집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였다.

‘일단 너희 셋 리스트 문제도 있으니까.’

썸씽까지 동원해도 공연할 곡 리스트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단독 콘서트인데 남의 노래를 커버하거나, 팬미팅처럼 게임을 진행하는 것도 이상하잖아.

그런 까닭에 3집 트랙리스트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맺었다.

미니 앨범이되 10곡 정도로 사실상 정규 앨범에 준하는 규모로.

다행이라면 ‘불꽃놀이’, ‘마스커레이드’, ‘밤바다’ 등 차트에 올라갔던 곡들이 많고, 명곡 발굴단을 하면서 게스트로 부를 가수들의 인맥풀도 넓어졌다는 것 정도.

그러니 중요한 건 3집이었다.

모든 일이 잘 풀려가는 이 흐름을 타고 3집까지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느냐가 관건.

일반 대중도 아는 보이그룹으로 나아가는데 정작 본업인 3집 노래가 잘 안 되면…….

으. 그건 상상하기도 싫다.

꼭 잘 되게 만들어야지.

“3집 준비도 그렇고. 일단 주어지는 대로 최선을 다하…….”

동생들에게 말을 하는데 갑자기 대뜸 모르는 행인이 말을 걸어왔다.

“음? 뉴블랙! 맞죠?”

“아, 네.”

방금 전까지 다섯이서 ‘콘서트!’, ‘요! 콘서트!’ 하던 우리가 태연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속으로는 땀이 줄줄 나고 있었다.

“와, 방금 버스에서 미튜브로 보고 있었는데…….”

무대 잘 봤다며 인사하는 행인에게 우리도 답례해 주며 사진도 같이 찍었다.

“화이팅!”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덤덤하게 손을 흔들어 준 후, 행인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다급하게 머리를 맞대고 모였다.

“형, 사람들이 저희를 알아봐요.”

“길 가는 사람이 인사하다니… 이거 하루 종일 운수 좋을 징조 아니에여?”

“나 어때요? 얼굴 안 부어 보여요?”

“대책회의 좀 하자, 얘들아. 사람들이 알아볼 때 어떻게 표정 지을까?”

기호 1번부터 5번까지 해서 저마다 제안을 했다.

리혁이의 거만한 표정과 중현이의 무시무시한 석상 표정은 기각하고, 비주의 친근한 표정으로 가기로 했다.

“내 건?”

“뭔가 선정적이에여.”

“…….”

그렇게 결론을 내자마자 곧바로 쓸 일이 생겼다.

“어머… 맞죠?”

“노블랙! 맞네! 노블랙이네.”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알아보는 비율이 내 생각 이상으로 높다.

궁금해서 묻기까지 했다.

“어떻게 아셨어요?”

“다섯이서 모여 있으니까 딱 보였어요.”

“아하…….”

방금 사진을 같이 찍고 돌아간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일별한 우리는 곧바로 푸흐흐 하는 웃음을 흘렸다.

“야. 우리 슈스다, 슈스.”

“와아아!”

“비주 형, 지금 뭐 검색하는 거예여? 푸핫! 이 형 슈스 뜻 검색하고 있어여!”

“어, 나 아냐. 확인차 본 거야. 확인차.”

검색 속도가 너무 느려서 들통이 났다. 비주의 서글픈 표정에 한 차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니 얼마 안 가 ‘쏙쏙! 역사 탐험대’ 제작진이 도착했다.

“아이고, 우리 뉴블랙 님들 기다리고 계셨네!”

“아니, 이런 누추한 곳에 귀한 분들이…….”

드립을 치는 작가님들 때문에 한참을 웃었다.

지난 주 반응 보고는 이제 우리 프로 안 나오는 거 아니냐고 다들 불안감에 시달렸다는 농담을 들었다.

“우리 첫 방은 아마 다음 주쯤에 할 텐데, 방송사 측이랑 협의해서 미튜브에도 올리기로 했어.”

원래는 따로 편집 비용이 더 드는 거 아니냐고, 굳이 어린이 프로를 어른용으로 내려고 예산을 쓰냐 했다는데.

갑자기 월요일 아침에 태도가 바뀌었다나.

‘진행시켜요.’

‘네?’

‘뉴블랙, 진행시키라고요. 그거.’

피디님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웃음만 흘렸다.

아무래도 소규모 프로덕션이라 그런지 ‘쏙쏙! 역사탐험대’는 제작진부터가 편한 분위기였다.

대본을 펼쳐서 오늘 주제인 ‘삼국시대 유물 탐방’에 관해서 열심히 읽고 있을 때.

“게스트 도착했어요!”

왁자지껄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초등학생 동아리라고 하는데, 오늘 우리와 함께 박물관 견학도 하고 게임도 같이 할 예정이었다.

“안녕!”

낯을 가리는 초등학생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우리를 알아보는 이는 별로 없었다.

“어어!”

5학년 남자아이 하나가 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지난주에 TV에서 봤어요. 형… 아저씨들?”

“아저씨라니.”

우리가 단체로 발끈했다.

“어서 형이라고 부르지 못해? 난 고2란 말이야.”

지호의 장난기 어린 째려봄에 초등학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나이대가 가장 가까워서 그런지 우리 막내가 금세 친화력을 발휘했다. 그러던 중에 우리를 또 알아보는 이가 있었다.

“어어!”

스마트폰을 검색하던 여자아이가 나를 가리키더니…….

“빵! 젠민빵 맞죠!”

“아니. 젠민빵이라니…….”

매니저들과 동생들이 손뼉을 치면서 뒤집어졌다. 편하게 변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지호가 손을 들고 외쳤다.

“여기서 빗살무늬 토기 아는 사람? 모르면 겸상 안 해 줌!”

“저희도 그런 건 다 알거든요?”

“그럼 백제 왕의 무덤 중에서 벽돌로 만든 무덤은?”

“무령왕릉!”

지호가 ‘어떻게 그걸 알지?’ 하면서 눈을 멀뚱멀뚱 떴다.

내가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역사 동아리잖아. 얘네가 우리보다 더 잘 알걸.”

“요즘 애들은 공부만 하나 봐여. 나 때는 노래방이랑 PC방 가고 놀았는데…….”

‘나때는~’ 을 시전하는 18살짜리의 모습에 매니저 형들이 웃었다.

중현이가 애들이랑 ‘가위바위보해서 진 사람이 지기’ 하는 이상한 놀이를 하는 동안 게스트를 훑어보았다.

이것도 방영되고 나면 어린 친구들한테 반응이 오려나?

명곡 발굴단은 시청률이 좋아서 가능했지만, 이건 그 정도로 반향이 올지는 모르겠다.

내 기준으로 재미있기는 한데…….

일단은 주어진 걸 열심히 하자. 내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러면 이제 들어가 볼까?”

나를 올려다보는 초등학생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참,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형이나 오빠라고 불러. 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와. 양심 어디 간 거야. 대체.”

리혁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저 사람 스물세 살!’ 하는 막내의 외침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이 녀석들.

“중현아.”

“네. 형.”

“둘 다 끌고 가라.”

“네.”

“놔여!”

“느아아아! 비주 형, 저 좀 살려 줘요!”

괴물에게 붙잡혀 사라지는 둘을 일별하며 비주가 아련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 동안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새나라의 어린이들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자, 그럼 오늘 견학을 재미있게 해볼까?”

“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초등학생들이었다.

*   *   *

그날 녹화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삼국시대 유물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 끝나고 상품을 건 역사 퀴즈도 진행하고.

리혁이와 내가 캐리했지만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초등 역사 동아리의 활약에 결국…….

“나 혼자 잘하면 뭐해요, 정말. 창피한 줄 알아요. 우리 초딩한테 진 거예요.”

다 같이 고민했다.

“우리가 초등학생이랑 상성이 안 좋은가?”

“그니까여. 대초딩 전적이 좋지 못한 거 같아여. 저도 구룡초한테 게임 지고.”

“리얼리티 토론회 때도 졌지…….”

“앞으로 초등학생이랑 대결할 때는 최선을 다해야겠어요.”

비주의 말에 중현이가 ‘난 그게 최선이었는데…’ 하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뻐근한 몸을 이끌고 매니지먼트 팀 사무실로 가는데, 석환 형이 묘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어, 형. 왜 오라고 했어?”

“OST 작업 들어온 거 말이야. 대본이랑 시놉시스를 보내주기로 해서 받았는데…….”

석환 형이 내민 대본을 받아든 내가 눈을 깜빡거렸다. 동생들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

거기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드라마 대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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