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27화
PD의 어색한 표정에 노가수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문제라도 있나?”
“음…….”
“손자와 할아버지 같은 모습을 보여 주라면서. 이 정도면 나이 차를 뛰어넘는 우정이 아닌가 싶구먼.”
“어…….”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목에 핏대를 올리며 토론을 하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휴먼 다큐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다른 멤버는 안 될까요? 리혁 씨 다음으로 편하게 느껴지시는…….”
“그거라면 무알콜 군이지.”
“아, 우주 씨요. 그럼 그쪽으로 전화 연결 부탁드리겠습니다.”
“알았네.”
노재현이 영상통화를 걸었다.
이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우주의 얼굴.
작가들이 ‘어머’하며 뺨을 씰룩거리는 동안 화면 속에선 ‘덕순아~~’ 하는 트로트 음악이 BGM처럼 흘러나왔다.
“그건 또 뭔가?”
-아. OST 작업하다가 약간 막혀서요. 덕순아 들으면서 힐링 중이예요.
흥겹게 ‘덕순아~’ 하며 양손을 뻗는 우주의 모습에 원로가수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네는 여전하구만.”
-하하.
우주가 웃으며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먼저 연락하실 땐 늘 리혁이한테 하시잖아요.
그 때문에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농담을 하자, 노재현이 헛기침을 했다.
“흠흠, 자네 생각이 잠깐 나서 겸사겸사.”
-아하.
맞은편에 있던 우주의 눈이 슬쩍 가늘어지더니 묻는다.
-이거 방송이시죠?
“헛.”
-제가 목소리 톤 들으면 다 알아요. 선생님.
노가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티가 많이 나나?”
-아뇨. 화면 끄트머리에 발가락 양말이 보여서요. 방송국 스탭 분들이 많이 신고 다니던데.
졸지에 자신의 발에 시선이 집중된 카메라맨이 머쓱한 표정을 짓는 동안 노가수가 감탄했다.
“참으로 뛰어난 관찰력이로군. 무알콜 군. 내 오늘 자네에게 한 수 배웠네.”
-무슨 말씀을… 제가 배워야 할 게 많죠.
우주가 진지하게 말했다.
-때마침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겼거든요.
“오, 그런 게 있나?”
피디가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다.
날카로운 지적이 오갔던 독서 토론과 달리 노재현 선생이 도움을 주고, 우주가 감사를 표하는 훈훈한 장면이 기대됐다.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OST를 작업하고 있거든요. 어…? 서 대리님, 어디 가시는 거예요? 여기 계셔야죠.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화사하게 웃던 우주가 고개를 슥 돌렸다.
-그리고 선생님께도 의견을 좀…….
“아이쿠. 손이 미끄러지는구만!”
어색한 발연기와 함께 노재현 선생이 종료 버튼을 다급하게 눌렀다.
마치 다가올 고난을 피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제작진이 의문을 품었다.
‘곡 대신에 폭탄이라도 만드나.’
작곡 얘기만 꺼냈는데도 원로가수가 질려하는 기색이었다.
노재현이 그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하나? 다른 졸개들한테도 전화를 걸까?”
“음, 그냥 저희 재량으로 나레이션 넣으면 될 거 같습니다. 사실 표정이 더 중요한 거라서요. 지금 걸로도 충분합니다.”
“그래, 다행이구먼. 그럼…….”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할 때, ‘김비주 군’이라는 이름이 떠오르며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오호.”
노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 친구 전화를 받아보도록 하겠네. 비주 군이 한 부드러움 하거든. 하하하.”
띡.
-저예요. 선생님.
“흐아악!”
식겁하는 비명에 제작진들은 그만 웃음을 터뜨리면서 주저앉았다.
* * *
『 휴먼다큐 - 나의 인생, 나의 길 』
# 제주도 자택
일부 대화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장면에 나레이션이 깔려 나온다. 뉴블랙 멤버들과 노재현 선생의 훈훈한 표정.
〔내레이션〕 요즘 그에게는 새로운 낙이 하나 생겼다. 바로 손자같이 귀여운 뉴블랙 멤버들과의 대화.
(리혁) 잘 지내셨어요? 건강은 어떠세요?
(노재현) 잘 지냈네. 리혁 군. 이메일로 보낸 편지도 잘 받았지.
〔내레이션〕 명곡 발굴단이란 프로그램으로 인연을 맺은 그와 뉴블랙. 멤버들은 언제나 선생님의 건강 걱정이 먼저다.
(우주) 무슨 말씀을… 제가 배워야 할 게 많죠. 때마침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겼거든요.
〔내레이션〕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음악인 간의 대화에 그의 기분은 즐겁기만 하다. 매일매일 이런 통화를 주고받는다고 하는데. 통화 종료 버튼을 경쾌하게 누르는 원로가수의 모습, 이것이 바로 행복이 아닐까.
방영일.
연예 뉴스 ‘PBS 휴먼다큐 ‘노재현’ 편에 ‘뉴블랙’ 깜짝 등장…’의 댓글창.
-훈훈 그 자체
-영상통화할때 선생님 너무 행복해 보이더라구용. 오래 사세요!
-에고.. 이거 보고 엄마한테 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뉴블랙 멤버들 진짜 착한가보네 부모님한테도 저렇게 매일매일 전화하는 거 쉽지 않은데..
-힐링영상이다ㅠ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포근해져
-선생님ㅋㅋㅋ 뭔가 질려서 손이 덜덜 떨리시는거 같은데 기분탓인가
-윗분 완전 꼬이셨네요. 누가 봐도 훈훈한 광경 아닌가요???
* * *
시간의 흐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만 해도 대만에서 부캐인 젠민이로 빵 만들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3월이었다.
“시간 진짜 빠르네.”
“그러니까여. 여기서 9개월만 더 지나면 형 20대 중반 아니…… 으아아! 살려 주세여!”
스물넷이 무슨 중반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제가 형한테 들은 건데요. 넷, 다섯, 여섯처럼 밑에 ‘ㅅ’이 들어가면 중반이래요.”
“그럼 셋은?”
“어……?”
왜 네가 더 놀라냐.
“그런 허점이 있었네요.”
“허점이 아니라 말이 안 되는 거야. 중현아. 자꾸 이상한 이야기할 거면 어린이 음료나 마저 마시려무나.”
“맛있어요. 이거.”
노란 헬멧을 쓴 펭귄이 뽀요요 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는 음료수병을 보며 혀를 찼다.
“진짜 맛있어?”
“네.”
“그럼 한 입만.”
비주가 선물로 사 준 텀블러에 따라서 호로록 들이켰다.
어린이용이라고 무시했는데 은근 맛있다.
뭔가 추억의 맛이네.
차창을 스쳐 지나가는 아침 무렵의 황량한 논밭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직 3월 초입이라서 그런가? 여전히 추워서 겨울이랑 큰 차이를 잘 모르겠다.
-덕순아~~
이어폰으로 들리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오늘은 금요일.
차우현 선배가 우승을 거둔 3차 경연도 지나가고, 오후에 4차 경연곡 추첨을 앞둔 아침이었다.
지금 우리는 GTV ‘슬립’의 카메오 출연을 위해 파주로 가는 중이다.
뭔가 한가로운 기분이다.
지난주에 시작한 OST 작업도 거의 끝 무렵이고, 3집 앨범 준비도 거의 끝났다.
경연 무대를 연습하는 동안 틈틈이 곡 녹음도 하고.
A&R팀과 회의 끝에 3집 타이틀 제목도 합의를 봤다. ‘암흑물질’ 대신에 들꽃 이름 중 하나로 가기로.
‘숙소 아파트 화단에서 예쁜 꽃을 하나 봤어요. 눈에 띄기 전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던….’
비주의 의견 덕분이었다.
‘누군가 외롭고 혼자라고 느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신을 바라보는 이가 있다고 하는데. 들꽃도 비슷한 처지 아닐까요.’
모두가 그 의견에 동의했다.
처음에는 별이나 우주에 관련한 키워드로 갈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 ‘별빛’도 있고. 지금까지 ‘바다’, ‘별’ 등의 굵직한 키워드를 다룬 만큼 아기자기한 느낌인 꽃으로 가자는 아이디어는 모두의 호평을 받았다.
물론 승복하지 못한 두루미도 하나 있었지만.
‘인공위성 어때요? 우리는 있는지도 잘 모르는데 혼자서 열심히 행성을 빙글빙글 돌고 있잖아요.’
‘신선한 제목이긴 하지. 하지만 곡이 예쁜 분위기라 살짝 안 맞기도 하고.’
A&R팀의 반응은 간단했다.
‘최근에 리스트를 추려서 올려봤는데, 대표님이 인공위성이랑 암흑물질이 마음에 드신다고 그러더라.’
‘……들꽃. 들꽃 중에 아무거나 해도 좋아요.’
스칼렛의 팬덤을 ‘커튼’으로 정해 버린 대표님의 선구안에 리혁이는 바로 승복했다.
“…….”
새근거리는 숨소리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잠에 빠져든 리혁이가 흔들리는 차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 옆에서 비주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둘이 서로 고개를 맞대고 자는 모습이 웃겼다.
지나가는 나무 이름을 하나씩 맞추며 젤리를 뒤적거리는 곰을 마지막으로 내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윽.
말없이 대본을 넘기는 지호의 눈빛이 진지하다.
“……흐음.”
볼을 긁적이면서 눈매를 모으기도 하고. 집중할 때 나오는 특유의 비죽 나온 입술도 보이고.
붉은 기가 쫙 빠진 새카만 머리카락이 눈에 박혔다.
조만간 찍을 3집 컨셉 샷을 위해서기도 했지만, 오늘 카메오를 맡은 배역을 위해 염색도 하고 머리도 다듬은 막내였다.
지호가 읽는 대본으로 눈길을 주었다.
삐뚤빼뚤한 글씨와 포스트잇으로 가득한 메모 아래 한두 줄밖에 안 되는 대사가 있다.
막내가 맡은 배역은 ‘의경’이었다.
‘슬립’에서 주인공에게 ‘이거 뗀석기 아닙니까?’ 하고 묻는 바로 그 인물이다.
고작 몇 줄 안 되는 대사였지만, 이걸 위해서 캐릭터 연구까지 한 게 우리 막내였다.
-형, 저 군대 관련해서 뭐 물어봐도 돼여?
군대 얘기만 하면 ‘흐에엑!’ 하면서 도망치던 녀석이 먼저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니 신기했다고 할까.
새벽만 되면 조용히 스으윽 나가서 거실에서 연습할 만큼 열심이었다.
그것 때문에 비주가 요즘 들어 얘한테만 아침에 소시지 두 개 정도 더 주긴 했지. 난 다섯 개였는데.
“형.”
대본을 내려놓은 지호가 내게 물었다.
“저 잘할 수 있을까여?”
“긴장 돼?”
“쪼끔…? 제가 어지간해서 긴장 같은 거 잘 안 하는데, 오늘은 멘탈이 리혁이 형처럼 된 거 같아여. 실수라도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구.”
“큰일이네. 그거.”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다.
“그래도 넌 실전파잖아. 지금은 떨어도 실전 들어가면 기가 막히게 잘할 거야. 에버드림 때랑 똑같이.”
지호가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말을 이었다.
“그때도 엄살 부리지 않았나? 계단에서 국물 떡볶이 먹으면서 ‘혀엉, 전 연기도…”
“중현이 형, 젤리! 저 형 입에 젤리 넣어여!”
“읍읍!”
새콤새콤한 젤리가 입 안으로 촙촙촙 연이어 들어오면서 나는 웃었다.
그 동안 멀리 보였던 세트장이 점점 가까워졌다.
* * *
경찰서 세트장.
“안녕하세요, 뉴블랙입니다!”
“안녕…….”
스탭들의 몰골이 초췌했다.
어찌나 안색이 안 좋은지 분장만 조금 하면 경찰서 좀비물을 찍어도 될 정도라고 할까.
“어제 밤샘 촬영을 했거든.”
“아아.”
“방영 앞두고 촬영 일정이 조금 타이트해졌어. 감독님이 이번 작품 들어서 평소보다 더 꼼꼼하게 찍으시기도 하고.”
조 실장님이 우리와 로드매니저들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드라마판에 빠삭한 배우팀 조 실장님은 오늘 우리를 도와주는 역할이었다.
그의 안내에 따라 총감독님부터 스탭, 엑스트라 출연진까지 인사를 마친 후, 레몬 엔터 소속 배우와 인증샷을 찍기 위해 대기실로 이동했다.
똑똑.
“들어간다. 노을아.”
안에서 뭔가 희미한 응답 소리가 들렸다.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좀비 하나가 소파에 누워 있었다.
이마에 붙인 쿨링 시트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전기장판 위에서 몸을 지지고 있던 서노을이 몸을 일으켰다.
“으어어…….”
갸름한 얼굴이 ‘아이고야…’ 하며 잠긴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러곤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녕…….”
“안녕하세요.”
서노을이 희미한 웃음 비슷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헷갈리는 표정이었다.
“……현우야.”
그녀가 손을 뻗자 대기실에 앉아 있던 로드매니저가 찰떡같이 대추즙을 건네주었다.
쭙쭙.
뱀파이어가 피를 마시듯 살기 위해 대추즙을 마시는 사람 같다.
그러더니 ‘으아’ 하고는 소파에서 겨우 일어나는데, 나도 모르게 ‘앉아 계세요’ 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적응 안 되지?”
조 실장이 웃음을 삼키며 하는 말에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서노을.
GTV ‘슬립’에서 강력반인 ‘박철진’과는 다르게 경제범죄 쪽에서 사건을 파고드는 ‘김민주’ 역할을 맡은 배우였다.
최근에 로코 드라마에서 맡은 발랄한 서브여주로 인기를 끌었던가.
검색했던 기사 사진마다 늘 생글생글 웃는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너무 피곤해 보였다.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나왔다.
“대추즙 드시나 봐요. 전 홍삼 마셔요.”
“아. 이거 엄마가 마시라고 보내줘서……. 콜록! 아이고야.”
“……괜찮으세요?”
대화는 몇 마디 이루어지지 않았다.
눈에 핏발이 설 만큼 피곤해 보이는 이의 휴식을 방해하는 것도 미안해서 빨리 SNS용 인증샷이나 한 장 찍고 나가기로 했다.
“자, 그럼 하나 둘…….”
“셋.”
그리고 사진을 확인한 우리는 당황했다.
“뭐, 뭐야.”
분명 좀비 같은 얼굴로 계속 있었는데, 찍힌 결과물을 보니 가운데서 생글생글 환한 미소를 짓는 미녀가 나와 있었다.
셔터 소리에 잠시 0.5초 동안 표정을 바꾼 모양이었다.
“……아이, 뜨뜻해.”
다시 전기장판에 들어가서 몸을 녹이는 서노을을 보면서 우리는 말없이 눈을 끔뻑거렸다.
드라마 쪽도 정말 힘들구나 싶었다.
“자, 그럼 준비를 하러 가볼까.”
“넹.”
촬영 준비를 위해서 메이크업을 받으러 가는 지호를 따라갈 때였다. 조 실장님이 말했다.
“너희도 같이 준비하러 가.”
“네?”
우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희는 배역이 없지 않았나요? 저희는 지호 응원만…….”
“아, 원래는 그랬지. 그런데 이강진 씨가 기왕 홍보하는 거 뉴블랙 멤버들이 전원 카메오 출연하는 게 낫지 않냐고 강하게 주장해서.”
“정말요?”
그런 감사한 일이……!
우리가 눈을 반짝이면서 물었다.
“저희 카메오 배역이 뭔데요, 실장님?”
“아, 그게…….”
* * *
“잡범들은 거기 앉아주세요.”
“네…….”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이는 뉴블랙 멤버들이 교복 차림새로 경찰서 의자에 일렬로 앉았다.
“푸흡.”
그걸 보면서 막내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한참을 웃었다. 멀찍이서 매니저들도 벽을 짚고 자기들끼리 웃음을 참는다.
찌릿.
교복을 입은 네 명의 미남이 째려보는 모습에 제작진이 소곤거렸다.
“얘네는 사이 되게 좋은가 보다. 예전에 걸스온탑 봤는데 걔네는 자기들끼리 한 마디도 안 하던데.”
“뭐, 신인이라서 그런 걸 수도 있지.”
“잘생기긴 했다. 메이크업 얇게 했는데도 이목구비가 살아 있네.”
외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누군가 물었다.
“뭐야. 쟤네 의상 왜 교복으로 바뀌었어? 어떻게 된 거야?”
“원래는 4인조 불량배로 하려고 했는데요. 감독님이 보시고는 바로 바꿔 버렸어요.”
“왜?”
“불량한 연기 시켜봤는데 다들 마스크에도 안 어울리고. 위협적이지도 않고 너무 하찮아서…….”
“…….”
“그래서 설정이 바뀌었어요. 불량 청소년에서 죄목을 한 단계 다운그레이드 시켜서.”
“무슨 죄목인데?”
“PC방에서 후불로 떡볶이까지 시켜먹었는데, 돈 떼먹고 튀려다가 잡힌 설정이래요.”
‘거기 막내가 제안한 설정이라던데요.’라고 하자 모두 뉴블랙의 막내에게 시선을 던졌다.
베이지색 상의와 검은 하의.
의경 제복을 모델처럼 핏 좋게 소화하는 이가 생글생글 웃으며 이강진과 뭐라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장난기 좀 많아 보이고 그러는데. 제대로 연기는 하려나? 쟤 때문에 NG 나고 그러면 안 되는데.”
“저기서 연기 오래 배운 애라고 하던데요.”
“뭐, 요즘 아이돌들 연기 배워서 나온다고 하잖아요. 어차피 카메오로 대사 치는 그 몇 줄을 못하겠어요?”
촬영장에 등장한 낯선 카메오의 모습에 설왕설래했지만 대부분은 얼마 안 가 관심을 끊었다.
요즘 명곡단으로 유명한 건 피곤한 스탭들에겐 별달리 중요하지 않았다.
너무 못해서 괜히 ‘아이돌 카메오 연기ㅋㅋ’ 같은 웃긴 짤방으로 그들이 공을 들이는 드라마에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
“준비는 많이 해 왔니?”
“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왕지호를 보며 총감독이 대강 설명을 해주었다.
“동선 좀 간단하게 맞춰보고 들어가자. 리허설할 때도 그렇고, 본 촬영에 들어가서도 그렇고 자연스럽게 해. 자연스럽게. 너무 오버하지도 말고, 소극적으로 굴지도 말고.”
감독이 말했다.
“애드립을 해도 괜찮으니까 자연스럽고 편하게만 해.”
“네, 알겠습니다. 감독님.”
감독이 조연출을 불러 준비를 하라고 시켰다.
‘이게 괜찮은 건지 모르겠네.’
드라마 홍보를 한다는 면에서 좋긴 하지만, 이런 진지한 드라마에 굳이 아이돌을 카메오로 넣어야 하나 의문이 일긴 했다.
뭐, 소속사 측에서 연기력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긴 했지만.
피곤함에 뭉친 어깨를 주무르면서 감독은 의자에 앉아 지켜보았다.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조연출이 한참을 설명해 준 후 곧바로 리허설이 시작됐다.
그리고.
“음……?”
눈앞에서 합을 맞추는 아이돌 멤버와 주연 배우의 모습에 감독이 눈매를 지그시 좁혔다.
흥미로운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