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28화
감독은 대본을 들췄다.
『 #23. 경찰서 (낮)
철진은 살인 흉기가 찍힌 현장 사진을 검토한다.
클로즈업되는 서류 속 사진.
어딘가 낯익은 모양새의 돌이다. 분명 어딘가에서 본 듯한데 기억이 나지 않아 답답한 그의 표정.
의경 : 안녕하십니까.
경찰서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하는 앳된 의경.
직원에게 서류를 전달하던 의경이 철진이 읽는 서류에 관심을 보인다.
의경 : 어?
철진 : (말없이 고개만 돌린다)
의경 : 혹시 한국사 공부하십니까, 팀장님? (반가운 눈빛)
철진 : 뭐?
의경 : 지금 보고 계시는 그거, 뗀석기 사진 아닙니까?
철진 : 뗀석기…?
의경 : 왜 구석기 시대에 쓰던 석기 있지 않습니까. 선사시대에 원시인들이 썼다는….
철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내 의경은 머쓱한 얼굴로 화면 밖으로 걸어 나가고.
노트북을 킨 철진이 ‘뗀석기’를 검색한다.
곧바로 화면에 지금 그가 보고 있는 것과 동일한 모양의 석기가 등장한다. 』
그는 대본에서 눈을 떼고 현장을 바라보았다.
리허설 역시 대본 그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주인공을 맡은 이강진이 건조한 눈으로 서류를 읽고, 앳된 의경이 지나가다가 아는 척을 하는.
하지만 감독의 눈에 사소한 디테일이 눈에 띄었다.
“수경.”
경찰 직원에게 공손하게 서류를 건네며 관등을 대는 모습.
어딘가 여유로운 걸음걸이.
구석기 설명할 때 석기를 휘두르는 시늉을 하며 밝게 웃는 얼굴까지.
배우가 디테일에 공을 들였다는 게 느껴지기에, 감독으로서 호기심과 흥미가 생겼다.
무엇보다 연기력이 괜찮아서 마음에 들었다.
보통 카메오로 나오는 비연기자들은 오버를 하는 식으로 카메오임을 어필하곤 했다.
물론 극 분위기에 따라서 어울릴 때도 있지만 GTV ‘슬립’ 같은 경우는 진지함이 베이스인 장르물이었다.
그런 점에서 튀지 않고 주어진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지호의 카메오 연기에 호감이 갔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잘하네!”
이강진 역시 리허설이 끝나고 왕지호의 등을 팡팡 두드리며 북돋아 주었다.
분위기 메이커답게 그의 너스레에 현장의 공기가 한결 더 편하게 변했다.
동시에 여러 번 찍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건 아닌가 걱정했던 스탭들의 낯빛도 부드러워졌다.
잡범 역할을 맡은 뉴블랙 멤버들도 물개박수를 치면서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좋아한다.
“감독님, 어떠세요. 이 친구 잘하죠?”
“열심히 해 왔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하는 지호에게 감독이 궁금증을 꺼냈다.
“참,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말야.”
“네, 감독님.”
“거기서 건네주면서 ‘수경’ 하던 건 뭣 때문이야?”
“아.”
지호가 또박또박 대답했다.
“같은 팀에 있는 군필자 형한테 들었는데요. 뭔가를 줄 때 관등을 대면 디테일이 살 거 같다고 했어요. 그래서 검색해 봤는데 병장에 대응되는 게 수경이었거든요. 그쯤 되면 관등도 대충 댄다고 들었어요.”
“군필자면 저기 근엄하게 생긴 친구?”
“아뇨. 저기 잡범 우두머리요.”
우주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감독과 눈이 마주치자 멀리서 레몬 캔디를 먹던 잡범들이 일어나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는 잠시 새어나올 뻔한 웃음을 삼켰다.
이번에는 이강진이 호기심을 보였다.
“그런데 왜 병장으로 했어? 제일 높아서?”
“음, 어떤 인물인지 안 나와서 제가 임의로 설정을 했는데요. 보통 부대 생활을 하다 보면 그 조직의 역학관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알게 된다고 들었어요.”
지호가 빼곡한 메모가 적힌 대본을 보며 말했다.
“주인공은 경찰서에서 혼자 고립된 상황이잖아요. 모든 인물들이 그를 따돌리고. 군 생활이 오래 남은 사람이라면 눈치 보여서 주인공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할 텐데, 이제 곧 제대할 사람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오.”
감독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고, 이강진도 흥미롭다는 눈으로 아이돌 멤버를 바라보았다.
“캐릭터 분석을 해 왔구나?”
“네, 단서가 거의 없어서 제가 궁리해 내긴 했는데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설정했는데?”
“경찰 공무원을 준비하는 말년 의경이요.”
“공무원 준비?”
“주인공이 사진 보고 있을 때 ‘반갑게’라는 지문이 있잖아여, 요. 처음에는 역사를 좋아하는 설정으로 할까 하다가 부자연스러워서, 마침 자기가 공부하던 경찰 시험 과목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었어요.”
“오…….”
이제 곧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말년 군인이라는 설정이라나.
잘 어울리는 배경 설명에 두 남자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왕지호가 다시 동선 설명을 들으러 조연출에게 불려가자, 이강진이 입술을 뗐다.
“감독님, 쟤 왠지 범상치 않죠?”
“그러게다. 아역부터 해 오던 애들 아니면 저 나이대에 저런 분석력이 나오기 쉽지가 않은데. 쟤가 몇 살이라고?”
“고등학교 2학년이고 드라마 연기는 처음이래요.”
“희한하네. 저 정도 연기력에 저 마스크면 조연으로 나가도 무방할 거 같은데 말이지.”
리허설만 진행했기에 섣불리 단언할 순 없지만 모든 면에서 왕지호의 연기는 합격점이었다.
가수답게 탄탄한 발성과 호흡.
또렷한 대사 전달과 상황에 딱 맞는 표정 연기.
거기다 엑스트라의 캐릭터 분석까지 해오는 열정까지.
한편, 그들이 카메오 연기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단순히 연기력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분석해 온 캐릭터가 아깝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써먹을 수 없나?’
대본상으로만 보면 그냥 평범한 엑스트라 1 같은데 실제 눈으로 보니 너무 아까웠다.
설정해 온 캐릭터성도 좋고.
연기력도 탄탄해서 1회용으로 소모하는 건 아무리 봐도 낭비 같은데…….
멤버들에게 둘러싸여 히힛 웃고 있는 뉴블랙의 막내를 보며 그는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 * *
감독님과 대화를 끝낸 막내가 상기된 표정으로 돌아왔다. 마치 위풍당당한 참새 같은 모습이었다.
“형들…!”
“성공했어?”
내 물음에 지호가 흥분한 얼굴로 속닥거렸다.
“제가 드디어 어른 배우처럼 말하고 왔어여.”
“대박……!”
“여, 안 썼어. 여?”
끄덕끄덕.
우리가 감개무량한 얼굴로 손뼉을 쳤고, 중현이가 잘했다는 듯 등을 팡팡 두드려 주었다.
촬영장 가서 ‘그래여~’ 하면 안 진지해 보일 거 같다고 아침부터 연습하더니, 성공한 모양이었다.
비주가 레몬 캔디를 막내의 입에 넣어주는 가운데 우리가 호들갑을 떨었다.
“어때, 연기는 할 만했어?”
“넹. 저 완전 몰입해서 했어여. 잘했져? 왜냐하면 제가 생각하기에도 잘한 거 같거든여.”
지호가 깨방정을 떨었다.
“제가 원래 배역상 잡범들이랑은 겸상 안 해 주는 건데, 형들이라서 해 주는 거예여.”
곧바로 우리가 반발했다.
“지호야. 잡범이라고 무시하면 못 써.”
“저저, 감투 썼다고 갑질하는 거 봐요.”
“우리 떡볶이까지 먹고 튄 설정이야. 그냥 잡범 아님.”
중현이의 말에 내가 덧붙였다.
“맞아. 그리고 중현이는 1년 꿇은 설정이라고. 조심해라.”
“지호야. 나 출석일수 모자란다. 조심해라.”
중현이와 나의 드립에 근처에 있던 형사역의 단역 배우가 물을 코로 뿜으실 뻔했다.
“이 바보 같은 사람들.”
리혁이가 한숨을 쉬었다.
“정말 상상할 수 있는 불량함이 그거밖에 안 돼요?”
“자기는 언제 불량해 봤다고…….”
“맞아여. 저 형 게임할 때도 괴물이 쫓아오는데 신호등 지키고 있다니까여.”
“…….”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역습을 당해 얼굴이 벌게진 녀석을 보며 다 같이 웃었다.
비주가 손부채로 과열된 얼굴을 식혀 주는 동안 지호가 떠났다.
“어, 부르신다. 저 갈게여! 이따 봐여!”
우리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막내가 멀찍이 조연출에게 다가갈 무렵이 되자, 비주가 내게 고개를 기울이며 속삭였다.
“긴장은 좀 풀어진 거 같죠?”
“응, 아까보단 훨씬 낫네.”
본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긴장을 풀어 주려고 일부러 장난스럽게 대했는데 다행히 효과가 있는 듯했다.
내가 망치면 어쩌지 하며 걱정하던 애가 이제는 들떠서 ‘와! 연기연기!’ 하는 걸 보니 마음이 편안하다고 할까.
그토록 염원하던 연기를 하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
교복 넥타이를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좋다. 쟤 저렇게 좋아하는 거 보니까 배가 다 부르네.”
“저도요. 형.”
하핫 웃던 때.
꼬르륵.
모두의 위장이 ‘난 아닌데’하며 자기주장을 격하게 하는 바람에 민망함을 느꼈다.
중현이가 배를 쓰다듬었다.
“우리 위장은 아니라나 봐요.”
“조금 이따가 달래 주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단역 배우가 슬쩍 웃었다.
이강진과 지호가 합을 맞추는 동안 이번에는 감독님이 우리에게 다가와 간단한 디렉션을 주었다.
“지호가 경찰서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너희를 한 번 슥 보고 가게 될 거야. 그때 너희 중에서 한 명이 ‘뭘 봐’라고…….”
우리 시선이 모두 한 명에게 향했다.
“아, 누가 할지 정했구나. 어쨌든 그런 대사를 쳐주고 대사는 자유롭게 애드립으로 해. 몇몇 대사 빼고는 그냥 웅성웅성하는 식으로 나갈 거라서.”
“넵, 알겠습니다.”
철제 의자에 일렬로 앉아 기다리면서 지호에게 ‘화이팅’하는 포즈를 지어 보였다.
곧바로 환한 미소가 답으로 돌아왔다.
한편, 촬영이 준비되는 동안 나는 몰래 교복 옷깃을 쓰다듬었다.
포근한 느낌.
교복을 매만지면서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데 나를 바라보던 동생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흠흠.”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자, 촬영 들어가기 전에 표정 점검하자. 다 같이 눈을 살짝 내리깔고. 턱도 살짝 당기고.”
“네.”
“시선은 정면에 주고. 한쪽 뺨을 살짝 들어서, 오, 모두 리혁이를 봐. 바로 저 아니꼬운 표정이야.”
“……조용히 해요.”
그렇게 불량한 표정을 완성시켜 준 후에 촬영 시작을 기다렸다.
“레디, 액션!”
감독님의 호령에 맞춰서 촬영이 시작되었다.
지호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잘하자.’
‘잘해요. 우리.’
오늘의 주인공은 지호지만, 우리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고 결심했다.
카메라가 우리에게 향하기 전에 비주가 나를 돌아보았다.
‘형.’
‘할 수 있어. 비주야.’
* * *
『 GTV 금요드라마 ‘슬립’ — 1회 中 ‘뉴블랙 카메오 씬’ 』
경찰서.
번잡한 분위기 속에서 의경이 서류를 들고 걸어간다.
네 명의 꽃미남이 교복을 입은 채 형사 앞에서 목청을 돋우고 있다.
“아니. 비싼 것도 아니고 떡볶이 하나 먹은 걸 가지고…!”
“캡사이신 맛만 났어요.”
“저희 진짜 돈 가지고 다시 가려고 했다니까요.”
자기들끼리는 뭔가 불량배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묘하게 하찮은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야야!”
경찰이 서류철을 팡팡! 내려치자 금발 머리카락의 학생이 비명을 지르며 리더 쪽에 달라붙는다.
하지만 리더도 잔뜩 쫄아 있다.
넷 중에 행동대장처럼 보이는 학생만 묵묵히 ‘흠’ 하고 있을 뿐. 그를 보며 경찰이 묻는다.
“넌 액면가가… 왜 얘네랑 같이 끼어 있어?”
“1년 꿇었습니다.”
“뭐 사고라도 쳤어?”
“운동부인데 출석일수가 모자라서…….”
너무나 건전한 이유에 할 말을 잃은 형사가 금색 머리카락의 멤버에게 시선을 돌린다.
“넌 아주 머리카락도 노랗게 물들였네. 사회가 불만스러워?”
“엄…… No.”
병아리처럼 한국말을 우물쭈물할 때, 잡범들의 리더가 입을 손으로 가리며 속삭였다.
“LA에서 온 친구예요.”
“맞슴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끄덕이는 모습에 의경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곤 지나가던 경찰 직원에게 묻는다.
“……쟤넨 뭡니까?”
“PC방에서 돈 떼먹다가 잡혀 왔대.”
“…….”
한심하다는 의경의 시선에 잡범즈의 말단이 째려본다.
“뭘 봐. 범죄자 처음 봐?”
“범죄자 같은 소리하네. 니들은 잡범이야!”
탕탕!
“허어, I’m so scared.”
“진정해. 제임스.”
‘한국 경찰 너무 무서워’ 하는 소심한 얼굴로 금발의 학생이 몸을 잔뜩 움츠린다.
그 뒤로 자기들끼린 진지한데 듣다 보면 웃긴 대사들이 어렴풋하게 이어진다.
“별 이상한 사람들이 다 있다니까.”
이런저런 소란이 벌어지는 동안 의경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GTV ‘슬립’ 1화의 씬스틸러로 불리는 ‘잡범즈’가 퇴장하는 순간이었다.
* * *
뉴블랙 멤버들의 카메오 씬은 한 큐에 끝이 났다. 감독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난하다.
일부러 웃긴 톤 대신에 진지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그걸 잘 소화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지호.
아까와 마찬가지로 박철진에게 다가간 ‘의경’이 똑같이 대사를 한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더 잘하네.’
리허설보다는 실전파인지 아까보다 더 보기 좋았다.
스탭들도 의견을 주고받았다.
“괜찮은데요?”
“의외다. 잘하네.”
“연기 배웠다고 하더니 진짠가 보다. 저기서는 쌩 막내 같았는데, 되게 어른스럽게 나오는 것 같지 않아?”
“약간 바른 생활 청년 느낌 나서 좋다.”
담요를 칭칭 감고 흐느적거리던 서노을도 지호의 연기를 지켜보았다.
‘잘 배워 놨네. 쪼도 없고.’
한편으론 호기심이 생겼다.
‘누구를 모델로 삼은 거지?’
말년 병장스러운 걸음걸이라든가.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모습이라든가. 쾌활한 미소라든가. 주변에 있는 누구를 열심히 따라한 듯한 모양새였다.
그녀의 옆에 서 있는 조 실장도 묘한 표정으로 지호의 연기를 지켜보았다.
한편, 감독은 조연출을 불렀다.
“네 생각은 어때? 방금 내가 말한 아이디어.”
“괜찮은 거 같습니다.”
“그렇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비주얼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환하게 느껴진다.
모두가 주인공을 따돌리고 멀리 할 때, 관심을 보이는 밝은 에너지의 인물.
주변이 우중충한 주인공에게 다가오는 소소한 빛과 같은 인상.
엑스트라지만 그런 느낌을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따가 쟤네 회사한테 연락 좀 해봐. 통화 좀 하자고.”
“예.”
“그리고 박 작가한테도 말 한 번 해 주고.”
“…대본 수정하자고 하실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또 다른 엑스트라가 나오는 장면에 지금 저 의경을 넣으면 드라마의 맛이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감독의 머릿속에 차근차근 구상이 그려졌다.
* * *
1시간 정도 촬영 끝에 우리 카메오 씬이 끝났다.
“고생하셨습니다!”
잘했다면서 격려해 주는 스탭들에게 인사를 했다.
특히 감독님은 지호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면서 회사 스케줄 괜찮으면 한두 장면 더 찍는 게 어떠냐는 말씀을 했다.
우리 막내가 자기도 모르게 익룡소리를 내서 잠시 당황하셨지.
“하나, 둘, 셋!”
“화이팅!”
주요 제작진과 함께 SNS용 인증샷을 찍고.
미리 사진을 요청했던 스탭들과 셀카를 찍어 주었다.
시간이 촉박하긴 했지만 바쁘다고 쌩 가버리면 ‘뜨기 시작한다고 건방져졌다’ 하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여기 있어요. 제가 아버님 성함을 제대로 적었나요?”
“응. 고마워.”
아버님이나 어머님한테 드릴 사인이니 부모님 성함 좀 예쁘게 써달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은 것 같다.
다음 스케줄까지 시간이 촉박해질 때.
적당한 타이밍에 민기 형에게 사인을 보내자, 매니저가 대신 나서서 거절을 해주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가야할 것 같네요. 곧바로 여의도에 녹화가 있어서…….”
“아, 네네. 그럼 사진 한 장만.”
“넵, 얼른 찍어 드릴게요.”
그런 식으로 서로 기분 좋게 떠나도록 상황을 조성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모두에게 다 해 주고 싶었지만 촬영이 예정보다 지연돼서 바로 서울로 가야 했다.
팬서비스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는 동안 동생들에게 팔을 둘렀다.
“가자. 제임스.”
“형…….”
비주가 울상이 되어 말했다.
“제가 미쳤었나 봐요. 이러다 민준이 학교에서 제임스 동생이라고 놀림당하는 거 아니에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비주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창피해하며 ‘으으으’ 하기에 우리가 다 같이 토닥여 주었다. 그래도 덕분에 드라마에 감초처럼 나올 거라고 해주니 비주가 슬픈 눈으로 ‘진짜 그럴까요?’ 했다.
“그럼. 다들 엄청 잘했어.”
“저는여?”
“우리 막내야 최고지. 어이, 서씨. 코멘트 좀 해 봐.”
리혁이가 덤덤하게 말했다.
“개인적으론 인정하긴 싫지만, 대다수의 시청자들에게 좋게 보였을 만한 연기였어요.”
최상급의 평가였다.
내가 ‘들었지?’ 하고 어깨를 으쓱이자, 지호가 리혁이에게 달려갔다.
“오구구, 우리 리혁이 형!”
“아아! 얘 좀 떼 내요!”
훈훈한 분위기 속.
길 안 막히면 이따 휴게소에서 회오리감자나 먹자고 이야기를 하며 차에 올라타고 있는데.
“……음?”
비주가 핸드폰을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다. 안전벨트를 매던 우리가 시선을 주었다.
“왜 그래?”
“민준이가 이상한 문자를 보내서요.”
이상한 문자?
중현이가 눈매를 좁히며 ‘뭔데?’ 하고, 우리도 ‘무슨 일 있나?’ 하며 관심을 보였다.
비주가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학교 수업 시간에 나왔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