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29)화 (229/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29화

학교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민준은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복도에서 마주치는 어른들마다 밝게 인사하고.

“안녕!”

등굣길에 만난 반 친구들에게도 열심히 인사했다.

‘웃으면서 인사하고 다녀. 그게 제일 중요하니까 명심!’

형이 해준 말이었다.

방학 때.

학교에 간다고 마냥 들떴던 민준은 개학이 다가올수록 근심걱정이 커져갔다. 어떡하지. 내가 정말 적응을 잘 할 수 있을까. 몸도 작고 막 무시당하는 거 아냐?

혼자서 나 어떡해, 하다가 형에게 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문자 한 통을 보낸 적이 있었다.

바빠서 한참 뒤에 답장할 줄 알았는데.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차분하게 고민을 들어주던 형이 말했다.

‘잘 적응할 거야. 우리 동생 잘생기고 귀여워서, 인사만 잘해도 친구가 줄줄이 생길걸?’

‘진짜?’

‘응. 그러니까 걱정 붙들어 매.’

형이 해준 말은 진짜였다.

인사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친구가 마구마구 생겼다.

머리카락이 자라서 그런가. 친구들이 잘생겼다고 막 칭찬을 해주기도 했다! 옆자리 여자애는 그에게 예쁘게 생겼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너 연예인 누구 닮은 거 같은데.’

…라는 말도 한 번 들었는데 민준은 ‘그, 그래?’ 하고 반응할 뿐이었다.

입이 근질거리긴 했지만 꾹 참았다.

괜히 형한테 피해 가면 안 되니까.

하나 주변에서 연예인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귀가 쫑긋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뉴블랙 얘기는 없었다.

잘 모르는 인터넷 방송 얘기가 많았고.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아이돌 이야기도 대부분 틴스피릿 정도였다. 그게 아니면 TNT라든가.

그런데….

“오늘은 재미있는 동영상 하나 보여 줄 거야.”

사회 시간.

촌락과 자연환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옛날 돌도끼 쓰던 시대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 주겠다며 담임쌤이 미튜브 동영상을 틀었다.

“역사 탐험대?”

“…뭐야. 또 교육방송임?”

곧이어 ‘쏙쏙! 역사탐험대!’ 라는 미튜브 타이틀에 다들 ‘에이’ 하는 반응을 보였다. 우린 4학년인데, 무슨 유치원생이나 볼 법한 것을 틀어 주냐는 반응이었다.

“음? 근데 저거 연예인 아냐?”

“누구?”

“아이돌이잖아. 뉴블랙.”

소곤거리는 이들 속에서 민준은 당황했다.

‘형들이 왜 거기서 나와…?’

교실 화면에 뉴블랙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리혁이 형이 역사를 설명하고 다른 형들이 상황극을 하면서 처음에는 뭔 어린이 프로냐고 했던 반발이 쏙 들어갔다.

얼마 안 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하하!”

불이 꺼진 어두운 교실.

화면의 불빛을 반사하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감돌고 있었다. 그 반응에 민준은 가슴이 콩닥거렸다.

저기에는 그의 형도 있었다.

움집처럼 꾸며진 곳 내부에서 장난감 석기로 요리를 하는 시늉을 하는 비주의 모습.

중현이 돌도끼를 들고 들어온 뒤 근엄하게 말한다.

-밥 줘.

-니가 해.

-네.

호리호리한 누군가 눈을 스산하게 빛내자, 덩치 큰 이가 쭈그러들어서 ‘녜’ 하는 모습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곤 화면이 정지됐다.

-보셨죠?

리혁이 형이 해설자처럼 나와서 ‘선사시대는 평등 사회였어요.’ 하는 이야기를 했다.

이윽고 여러 상황극과 드립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담임쌤이 영상을 끄려고 할 때는 ‘아아아’ 하는 원성이 흘러들어올 정도였다.

“그럼 1분만 더 보여 줄게.”

그리고 마지막에 비하인드로 나오는 불 피우기 장면에서는 모두가 웃으며 뒤집어졌다.

마지막에 벌어지는 우주 형과 중현이 형의 추격전이 백미였다.

-거기 서Yo!

-싫어Yo!

한참 웃음바다가 된 후에야 수업은 원래 분위기로 되돌아왔다.

다시금 지루한 분위기가 됐지만 하도 웃어서 그런지 학생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여전했다.

민준은 근처에서 몰래 핸드폰으로 ‘뉴블랙’ 하며 검색하는 친구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궁금한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뭐지?’

우리 형 아이돌 아니었나?

왜 저런 데서 나오지?

웃긴 건 우주 형이 잘한다고 형이 그랬는데. 다섯이서 대체 저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따 끝나고 형한테 바로 물어봐야지 하던 민준은 쉬는 시간이 됐을 때, 또 당황했다.

“방금 개웃겼는데.”

“야. 다시 보자, 보자. 그거. 이름 뭐였지 쑥쑥 탐험대?”

……친구들이 뉴블랙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지간히 웃겼던지 벌써부터 남자애들 몇이 모여서 스마트폰을 보며 낄낄 웃고 있었다.

여자애들 몇몇은 외모에 대한 토론을 하는 중이었다.

“존잘이야, 진짜.”

“금발 누구야? 나 걔랑 결혼할래.”

민준은 그만 사레가 들려 버렸다.

한참 동안 콜록거리던 그는 형에게 빠르게 문자를 보냈다.

[형. 나야. 수업시간에 형 역사원정대 나왔어]

[근데 형 막 이런 거 웃기는 거 또 없지?? 이게 다지??]

언제나 친절하게 답장을 해 주던 형이 오늘은 답이 없었다.

*   *   *

교사 커뮤니티.

제목 : 수업 시간에 미튜브 영상 틀었는데 반응 괜찮네요

작성자 : tnvmffp94

『 시청각 자료로 쓸 거 검색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미튜브에서 역사 탐험대라는 영상 하나 발견했어요.

재미있고 꽤 유익해서 일부분을 틀어줬는데 아이들 반응이 괜찮네요.

덧. 궁금해하실까봐 여기 링크. 』

-오? 이런 게 있었네요??

-ㅋㅋㅋㅋㅋ잘 만들었네요.

-저 친구들 역사 드립 치는 거 보니까 원래 관심이 많나 봐요

-아쉽다. 아직은 석기시대라서 몇 개 안 나왔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뭐야 생각없이 보다가 터졌네

-저도 학교에서 잠깐 틀어줬는데 애들 정신없이 웃더라구요. 개그 코드가 맞나 봐요

-명곡단 나온 애들??

-오호 저도 써먹어보겠습니다

-지금 후기글 꽤 올라오는게 이거였구나 ㅋㅋㅋ 저도 애들이 졸려고할 때 도전

수업시간에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과 함께, 뉴블랙의 ‘역사 탐험대’가 각 학교로 수출되는 순간이었다.

*   *   *

어느 여고.

“푸흡-!”

보온병에 담긴 보리차를 마시던 고등학생은 그만 물을 뿜고 말았다.

주변 시선에 휴지를 빠르게 뽑아 책상을 닦는 그녀.

하지만 머릿속은 정신이 없었다.

‘뭐, 뭐야.’

대형 화면 속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뉴블랙 멤버들의 모습.

여기저기서 웃는 소리.

이게 만약 수플레들이 카페를 빌려서 진행하는 오프라인 모임이라면 어울리는 풍경일 텐데.

여긴 학교였다.

역사 수업 시간에 최애가 수업자료로 나오다니…….

‘이제야 대만 애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네.’

최애가 자기네 나라 아침 뉴스에 나오는데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그런데 말야.

우린 수업 시간에 나온다, 외국 수플레들아…….

‘하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영상을 시청했다.

주변 호응도 좋고. 무엇보다 이걸 틀어 준 선생님도 입을 가리며 웃고 있다.

오히려 학생들보다 더 좋아한다고 해야 하나.

뉴블랙 멤버들이 역사 드립을 칠 때마다 갸웃하는 몇몇 학생과 달리 선생님은 지상 최대의 유머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마치 ‘구석기 꺄하하! 구석기!’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리고 그녀와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충격] 수업시간에 뉴블랙 나와… 급식 수플레 ‘이거 실화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왜 수업시간에 나오냐고

-왜 유익한 거야

-부럽다.. 학식이는 그저 부러울뿐

-우리 애들 볼때마다 내 영업에 한계를 느낌.. 내가 아무리 용쓰고 영업해도 너흰 언제나 한수 위구나 (흐뭇)

-선인장 같아요. 물도 잘 안 줬는데 쑥쑥 큼

-거의 잭과 콩나무급 ㅇㅇ

-이런 식으로 이름 알리는 시나리오는 한 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뭐냐구ㅋㅋㅋㅋ

-오늘부터 역사 공부한다

-처음보는 척 친구들한테 영업하려다가 포털 최근검색어 줄줄이 떠서 망함 아하하핳핳핳핳ㅎ

-검색어가 뭐였는데요?

-우주 입술 립밤이요

-Aㅏ..

-이야 이젠 우리도 흑역사를 만드네

한편,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겠다는 듯 SNS용 유머 페이지 등에도 뉴블랙의 ‘역사 탐험대’ 일부 영상이 업로드 되기도 했다.

-불 피우는 아이돌 (웃음주의보)

-이것이 석기시대의 추격전이다

-팬이 아니어도 웃기다는 아이돌.jpg

그 덕에 여러 사이트에서도 화제가 되면서, HBS 미튜브와 뉴블랙의 단독 계정도 구독자가 증가하고 있었다.

“오호…….”

흥미로운 눈으로 소폭 상승한 구독자 수를 지켜보는 홍보팀 홍 대리.

그리고 목동 HBS 사옥의 뉴미디어국에서는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뭐야, 구독자 수가 왜 이래? 오류 났어? 확 올랐잖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지금까지 완만하고 서서히 오르고 있던 구독자의 폭이 갑자기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

담당 직원도 당황해서 처음에 사태 파악을 못하고 있을 때.

이내 소집된 회의에서 누군가 분석을 내어놓았다.

“인터넷을 살펴봤는데, SNS 등을 통해서 역사 탐험대가 갑자기 화제가 된 거 같습니다.”

“SNS에는 왜 화제가 된 건데? 걔네 소속사에서 바이럴이라도 뿌렸대?”

“그…….”

원인 분석을 하던 직원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게 학교가 개학을 해서…….”

“…….”

“선생님들이 10대 친구들한테 많이 틀어 준 게 원인 같습니다. 그걸로 여기저기 퍼졌고요.”

그 보고를 듣던 이가 눈을 깜빡거렸다.

‘위에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하지.’

머릿속으로 그렸다.

저희 미튜브 계정이 구독자가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오. 그래! 자네들이 해냈군! 원인이 뭔가?

저희가 해낸 건 아니고요. 신인 보이그룹이 나온 어린이 교양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답니다!

“…….”

대박이 나서 좋기는 한데, 이걸 어떻게 윗선에다가 설명해야 할지 골치가 아파 왔다.

그리고 같은 시각.

역사탐험대의 반응에 가장 당황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진이었다.

-반응이 엄청 좋아요.

“저희가요?”

-네.

“왜요?”

-그, 그러게 말입니다. ……어쨌든 잘했습니다.

방송국 기획 PD가 공치사와 함께 예산 관련해서도 팍팍 밀어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팡팡 쓰라고 말을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프로덕션 직원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기분을 느꼈다.

그러곤 회사 내부에 있는 ‘쏙쏙 역사 탐험대’의 실물 포스터에 그려진 뉴블랙을 바라보았다.

‘뭐지.’

분명 그들이 만든 건 어린이 프로그램인데, 어째 특이한 곳에서 대박이 터지고 있었다.

*   *   *

제목 : 한국사 진짜 모르겠다

작성자 : 

한국사 이번에 시험 보긴 봐야 되는데 역사 하나도 모름

그래서 강의 집중도 안 되고

전에 누가 말해준 사극 커리큘럼 따라가려는데 미친.. 용의 눈물이 159부작이더라

끝나고 나면 호호백발될듯

걍 큰 그림이라도 잡고 싶은데 좋은 거 뭐 있음? 요약이라든가

[댓글 : 3개]

-미튭에 뉴블랙 나오는거 보셈 웃김

┗오 ㄱㅅㄱㅅ 근데 뉴블랙은 뭐 강사팀임?

┗아이돌이야

┗???

*   *   *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 걸까.

어릴 적부터 대충 이러이러한 상황을 거쳐서 성공하겠지? 하는 시나리오가 있긴 했다.

‘음악방송 혼신의 무대 → 유명해짐→ 대박!’ 같은 으흠흠, 뭐 초등학생 때 생각하던 게 있긴 했다. 커서도 크게 달라진 건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 이름을 알릴지 상상하곤 했다.

그렇지만….

“이건 전혀 생각 못했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이걸…?”

꽃밭이 늘어선 야외 정원.

우리는 한데 모여서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HBS 미튜브 계정의 구독자수 그래프가 있었다. 최근 상승폭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었다.

이대로 3월 말까지 가면 곡선이 더 가파르게 올라갈 거 같다나.

설레발이긴 했지만, 이대로면 가능할 것 같긴 하다.

“…….”

어른들에게도 이름을 알리고.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우리 이름이 퍼져나가는.

말도 안 되게 좋은 상황이었지만 우리로선 얼떨떨했다.

근처에서 리얼리티 캠으로 찍고 있던 원석이 형이 물었다.

“기분이 어때요, 다들?”

“저희 몸으로 표현해 볼까요.”

단체로 까치발을 한 채 몸을 굽혀 ‘?’ 모양을 만드는 모습에 원석이 형이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러곤 혼자 어깨를 으쓱하려던 리혁이를 몰아갔다.

“리혁아. 눈치 좀.”

“아니, 누가 봐도 내가 하는 게 정상인데…….”

“어련히 알아서 잘해야져. 몇 살인데 그럴 거예여?”

“야!”

꽃밭으로 도망치는 지호를 향해서 리혁이가 추격을 시작했다. 근데 달리기는 빨라서 추격했는데 막내한테 힘싸움에 밀렸다.

뭔가 열심히 범죄자를 추격하긴 했는데 한 대 맞고 풀썩 기절하는 종이 형사 같았다.

막내가 두 팔로 뒤에서 리혁이를 가뒀다.

“항복?”

“내가 그런 걸 할 거 같아?”

꽈아악.

“나아아아!”

둘이서 촌극을 벌이고 있는 동안 나머지 우리는 리얼리티 캠을 받아들고 있었다.

“하이, 수플레!”

“저희는 지금 어디 있냐면요. 바로 싱가포르에 와 있습니다! 따라라라란!”

“우와아아!”

집에 들어갈 때 나오는 BGM을 따라 부르며 우리가 근처 꽃밭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화면 가득 담긴 우리 모습을 보며 중현이가 말했다.

“와. 꽃 옆에 꽃이네요.”

내가 손사래를 쳤다.

“에이, 중현 씨. 그런 말하지 마세요. 부끄럽게.”

“네?”

“응?”

“여기 장미꽃 옆에 난꽃…….”

머쓱한 내 표정에 옆에 있던 비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곧바로 화면에 대고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저희가 여기 오늘 온 건, 바로 3집 컨셉 포토를 찍기 위해서예요.”

“그리고 싱가플레 분들도 만나고요!”

본 목적은 해외 쇼케이스를 위해 온 거였지만, 겸사겸사 3집 컨셉샷을 찍기 위한 것도 있었다.

적도에 있어서 연중 날씨가 한결 같은 까닭에 ‘꽃’을 주제로 다루기에 좋은 배경이었다.

이곳에서 어느 정도를 찍고, 국내에서 나머지 촬영을 할 예정이었다.

“보시다시피 날씨가 너무 좋아요.”

“햇볕 너무 세여. 근데.”

“그래서 제가 가방에 양산을 챙겨왔어요. 어디 보자. 아, 여기 있다… 다들 어디 가?”

내가 꽃무늬 양산을 피자 다들 도망갔다.

예쁘기만 하구먼. 왜 주변 매니저들이나 스탭들은 손뼉을 치며 웃는지 모르겠다.

“흐하핫, 형! 할머니들 쓰는 양산 같아여.”

“우리 할머니한테 받은 건데.”

“그래서 엄청 품위 있고 예뻐 보였나 봐여.”

“할머니가 별로라고 버리겠다고 한 거였어.”

“……형, 대체 저한테 왜 그러는 거예여.”

깔깔 웃으면서 토라지려는 막내를 달래 주었다.

“얘들아, 준비하자!”

“네!”

그 동안 포토그래퍼가 카메라를 세팅하고 있었다.

우리 데뷔 앨범을 작업했던 사진작가 황태선이 방긋 웃으면서 우리를 반겨 주었다.

“와, 오늘 다 얼굴에서 빛이 나네! 즐겁게 얘기하는 것도 그렇고, 촬영 분위기 완전 좋은데?”

“네.”

…분명 데뷔 앨범 찍을 때는 사진 포즈도 잘 모르는 것들이 잡담하고 앉아 있다고 욕했던 거 같은데.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지나갔다.

“중현이는 자유 포즈 취해 봐! 하하핫! 석상 포즈야? 어우, 센스 있네. 그런데 다른 걸로 가 보자.”

중현이가 특이한 자유 포즈했을 때도 욕을 많이 하셨는데…….

역시 좀 유명해지고 볼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이어지는 디렉팅을 들으며 우리는 정원에서 저마다 포즈를 취했다. 외주 디자이너의 제안으로 ‘갈대밭의 아이들’ 같은 옷차림으로 탄생화를 하나씩 들었다.

“화이팅!”

그러곤 그늘에 숨어서 찍을 때마다 응원을 보냈다.

이제는 다들 사진 찍는 데는 이골이 나서 그런지 포즈가 능숙했다. 사진작가가 디렉팅을 주면 척척이었다.

“조금 뇌쇄적인 느낌으로!”

“잠시만요.”

리혁이가 중간에 스마트폰 사전으로 ‘뇌쇄적’의 의미를 검색한 다음에 포즈를 취하자 다들 웃었다.

날씨도 좋고 유쾌한 분위기였다.

그 동안 나는 손에 쥔 몰약의 꽃을 만지작거렸다. 얘가 바로 11월 9일의 탄생화라고 하던데.

보라색 꽃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모든 일이 순탄하게 흘러가기에 오히려 부담감이 조금 더 크다고 할까. 명곡단부터 역사 탐험대까지 이어진 이번 활동의 최종장이 바로 3집 앨범이었다.

“형, 단체컷 찍는데요!”

“응, 가자.”

저마다 꽃을 한 송이씩 든 동생들에게 걸어갔다.

3월의 어느 날.

멀게만 느껴졌던 컴백이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작년 11월 이후로 또 음악방송에 선다고 생각하니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론 긴장이 된다.

우리의 새로운 노래가 다시 한번 팬들의 마음에 쏙 들 수 있을까.

대중으로부터 좋은 평을 받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앨범이 없긴 했지만 이번에는 그 중요성이 남다르긴 했다.

이 상승세를 타고 치고 올라가느냐, 아니면 현상 유지를 하느냐.

일종의 터닝 포인트.

그런 까닭에 회사에서도 3집 앨범에 아낌없이 자본을 투자하고 있었다.

1집과 2집을 합한 것보다 더 큰 규모.

그때도 과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니 이번 앨범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괜히 주변에 서 있는 회사 스탭들이 우리에게 웃어 주면서도 긴장감을 숨기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물론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다 같이 하하하! 웃고 있기는 한데 눈에 긴장한 기색이 가득했다.

“자, 다 같이 단체 포즈 좀 취해보자.”

꽃을 손에 쥐고 가슴팍에 올린 채 우리는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속에서 땀이 줄줄 흘러나왔지만 베스트 컷이 나올 때까지 촬영을 계속했다.

기왕 대표님이 크게 투자하신 거 뽕을 뽑아야지.

참.

그러고 보니 이번에 우리 3집 안무를 도와줄 사람도 한국에 곧 도착한다고 하던데.

우리끼리 행복한 미소를 교환했다.

“형. 저 너무 기대돼요.”

“나도.”

그쪽도 열심히 뽑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인천국제공항.

캐리어를 끌고 들어오던 외국인이 입국장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내가 여기를 또 오다니.

입국장에 ‘한국에 온 걸 환영해요, 클레이’ 라고 적힌 팻말을 보며 클레이 타일러는 마른침을 삼켰다.

지난번에 뉴블랙에게 정기를 뽑아 먹힌 후 당분간은 오지 않으리라 결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거부하기에는 너무 큰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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