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30)화 (23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30화

차창으로 바다가 지나간다.

서울로 향하는 차에서 클레이 타일러는 안무 영상을 보고 있었다.

“흠…….”

1.2배속으로 보다가 0.5배속으로 틀기도 하고. 그의 손가락이 태블릿 PC의 재생바를 움직였다.

이내 소리 없는 감탄사를 흘렸다.

‘완벽해.’

그가 만든 안무가 뉴블랙의 손끝에서 완벽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클레이 타일러가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훨씬 여유롭겠어.’

마치 인간 손수건이 된 것 같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꺄르륵 하던 뉴블랙 멤버들은 그를 마지막 한 방울이 나올 때까지 꽈아악 쥐어짰다.

그 덕에 LA로 돌아오고 며칠간 악몽을 꿀 정도였다. 졸 때마다 귓가에 다른 톤으로 ‘헤이, 클레이’가 들려 온다고 할까.

뭐.

이번엔 마스커레이드 때와 다르게 특별히 지적할 부분이 없으니 그럴 일은 없을 터였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마음속으로는 왠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클레이 타일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오늘은 아니다.

거기다 이번에는 보험도 들어 놓은 터였다.

“아빠?”

“……음?”

“왜 이렇게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봐?”

옆자리에 앉은 그의 딸, 조이 타일러가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다 말고 눈을 가늘게 떴다.

클레이가 헛기침을 했다.

“으흠, 아무것도 아냐.”

조이가 다시 셀카를 찍기 시작했다.

올해 열아홉이 된 그녀는 스튜디오에서 가장 뛰어난 댄서 중 하나였다.

이번 안무 코칭을 보조해 줄 조수로서 뉴블랙으로부터 들어올 질문을 분산시켜 줄 사람이었다.

저번에 함께 온 조수는…….

-이봐, 가르시아. 너 이번에 한국에 뉴블…….

-저 그날 교회 가요. 클레이.

-너 무신론자잖아?

지난번에 함께 왔던 조수는 한사코 거부했고, 그 무시무시한 소문을 들은 다른 댄서들도 그를 피했다.

한국 방문 이후 녹초가 된 그와 조수의 모습에 농담 삼아 ‘new-blacked(뉴블랙 당했다)’라는 신조어가 돌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의미는 점토(clay)가 되어 돌아오다라나.

그런 이유로 결국 평소 K팝에 관심이 많은 딸을 열심히 꼬드겼다.

-K팝 아이돌 안무 건이야.

-흐음… 알았어. 내가 갈게.

미안하다. 딸.

가슴 속으로 미래의 일을 사과하고 있을 때 바깥을 둘러보던 조이가 물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뉴블랙이면 한국에서 어느 정도 되는 팀이야? 헤일리 블루? 로건 스미스? 아니면 그보다 더 위? 아빠한테 의뢰할 정도면 그쯤은 될 거 아냐.”

미국에서 잘나가는 가수들을 언급하는 딸의 말에 클레이가 턱끝을 쓰다듬었다.

“글쎄다. K팝이라면 네가 나보다 더 잘 알지 않니?”

“나도 뮤비나 공연 영상만 보는걸. 뉴블랙은 그렇게 자주 들어 보질 못해서.”

“아직까지 유명한 팀은 아니긴 하지. 잠재력이 넘치긴 하지만…….”

클레이 타일러는 지난번 방문을 떠올렸다.

MTV에서 리얼리티를 찍고 있었던가.

뉴블랙이란 팀 자체가 한국에 널리 알려진 팀이 아니었다. ‘올해의 루키’ 뭐 이런 상을 탔다고 들은 것 같긴 하지만.

그때 조이가 눈매를 좁혔다.

“음? 아빠. 저거 뉴블랙 아냐?”

“어디?”

“저기.”

차량이 잠시 정차되어 있는데, 뉴블랙이 광고 모델로 있는 의류 브랜드의 현수막이 눈에 띄었다.

마치 ‘얘네가 우리 광고 모델이래요!!’ 하며 외치는 듯한 느낌.

“……?”

얼마 안 가 비슷한 일이 한 번 더 있었다.

교복을 입은 뉴블랙 멤버들이 찍힌 ‘EverDream’이란 배너가 야외에서 나부끼고 있었다.

여기도 ‘얘네가 우리 모델이래요!!!’ 하며 쩌렁쩌렁 외치는 듯한 느낌.

조이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안 유명한 팀이라며?”

“…….”

어찌 된 영문인지 그도 알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본 지 6개월도 안 지났는데 뭔가 달라져 있었다.

그때 운전을 하던 레몬 엔터의 직원이 더듬더듬 물었다.

“미스터 타일러. 호텔로 바로 모실까요?”

“그것도 좋죠.”

그가 물었다.

“뉴블랙은 오늘 귀국한다고 했던가요? 어차피 점심도 같이 먹기로 했는데, 호텔 가기 전에 만나는 편이 더 좋긴 한데.”

“이미 오전에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명동에서 이벤트 진행 중이에요.”

“이벤트?”

“음… TV 쇼 레이트 석세스?”

상대가 한국어로 ‘아, 시청률이 영어로 뭐더라’ 하며 중얼거렸지만 클레이에게는 의미가 와 닿지 않았다.

“기왕이면 바로 만나고 싶은데, 거기로 데려다줄 수 있어요?”

“네. 그러죠.”

차량은 명동 거리로 향했다.

이윽고 차에서 내린 부녀는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에 당황했다.

“뭐야, 왜 이리 사람이…….”

인파에 휩쓸린다는 게 이런 말이 아닐까.

언젠가 갔던 디즈니 랜드가 떠오를 정도였다. 구겨진 지폐처럼 사람들 사이에 낀 타일러 부녀는 직원을 따라 인파를 헤쳐 나갔다.

얼마 안 가 이 혼잡한 인파를 만들어낸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네, 정말 명곡 발굴단이 이렇게 큰 사랑을 받아서 정말 행복한 거 같아요.

사람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설치된 펜스 너머에서 우주가 마이크를 잡고 서 있었다.

곁에는 뉴블랙 멤버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행인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낯선 얼굴의 가수들도 있었다.

왠지 모르게 뚱한 표정의 밴드도 있고, 일반 가수로 보이는 남녀들도 있고. PBS라고 적힌 방송용 카메라가 그들을 찍고 있었다.

그때 스탭 하나가 우주의 귀에 무어라 속삭이면서 우주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여기 해외에서 오신 분들도 많다고 제작진 분들께서 영어 안내를 부탁하셨어요.

이어서 영어로 높은 시청률에 보답하기 위해 명동에서 게릴라 공연을 열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뒤이어 나온 유창한 중국어 발음에 감탄사가 두 배가 되어 흘러나왔다.

그의 딸도 ‘와우’ 하는 입모양을 그리며 중얼거렸다.

“난 영어도 겨우 하는데.”

“…….”

뒤를 이어서 마이크를 잡은 리혁도 일본어로 뭐라뭐라 말했다.

어느 관광객이 버럭 외친 ‘카와이!’에 그의 귀가 엄청 벌게지면서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와아아-!”

출연진들이 듀엣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자 여기저기서 호응이 터져 나왔다.

백여 개가 넘는 스마트폰이 그 모습을 담았다.

노래가 이어질 때마다 탄성과 함께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리듬을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Huh?”

클레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두 가지 이유였다.

첫째는 뉴블랙의 실력이었다.

저쪽에 덩치 큰 남자도 그렇고, 이 자리의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어째 실력이 범상치 않았다.

그런데 뉴블랙은 결코 밀리지 않고 있었다.

거의 대등하다고 할까.

여태까지 ‘춤 잘 추는 팀’이라고만 알고 있던 이미지가 찌익 하고 떨어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에 놀라운 것 하나 더.

사람들이 ‘뉴블랙’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국어라 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뉴블랙’이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름만 얘기하는데도 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더 신기한 건 그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호의가 가득하다는 점이었다.

마치 친근한 사람을 보듯이.

‘……내가 모르는 새에 K팝의 판도가 바뀌었나?’

하지만 그가 알기로 이번이 뉴블랙의 세 번째 앨범이었다. 두 번째 앨범이 나온 뒤로 새로운 음악활동은 없었다.

조이가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안 유명하다며?”

“……어, 흠.”

“이게 안 유명한 거면, 유명한 사람은 거의 슈퍼볼 공연쯤 해야겠네.”

그의 뼈를 열심히 때려대는 딸을 열심히 무시하며 클레이 타일러는 옆에 선 젊은 커플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하고 그가 물었다.

“저 그룹 이름이 뭔가요?”

“아. 뉴블랙이에요.”

“유명한가요?”

그의 물음에 커플이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유명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   *   *

“셀카요? 잠시만요!”

정신이 없다.

새벽에 탄 비행기 스트레스가 아직도 남아 있는 건지, 아니면 싱가포르의 여독이 안 풀린 건지.

여기저기서 손이 뻗어오고 말을 건다. 시야가 어질어질하지만 활짝 웃으며 응대했다.

“어, 진짜요? 저희 역사 탐험대 나온 거 보셨어요?”

“완전 웃겨요! 웃음지뢰!”

“구독은 하셨나Yo?”

꺄르륵 웃는 대학생들에게 팬서비스를 해주었다.

연세가 있는 분들은 명곡단으로 알아보지만, 젊은 사람들은 요즘 SNS와 인터넷에서 뜨는 스타라면서 우리한테 관심을 보였다. 역사 탐험대의 임팩트가 생각보다 크긴 했나 보다.

한편 다른 선배 가수들과 달리 유독 우리한테 사람들이 몰렸다.

자기한테 다가오는 건 줄 알고 활짝 웃던 조유리는 행인의 페이크에 속아 미어캣 같은 표정을 지었다.

물론 이걸 같이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그거 아세요? 저 뉴블랙이랑 친해요!”

송보형 씨가 장난스러운 멘트를 던지고 지나갔다.

“저두요!”

…하고 리사가 소심하게 말하고 지나가면서 우리가 웃었다.

그 동안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우리를 원석이 형이 구해 줬다.

“다음 일정이 있어서요. 실례하겠습니다.”

매니저가 우리를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는 동안 민기 형이 센스 있게 마지막에 커트 당한 이들을 달래며 미리 적은 사인지를 몰래 건넸다.

촬영장비 차량 사이 구석진 곳에서 동생들과 물을 마시며 진땀을 흘렸다.

막내가 땀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저 꿈인 줄 알았어여. 사람들이 막 알아보고 사인해 달라고 하니까. 진짜 꿈 아니겠지?”

그러면서 혼자 팔뚝에 딱밤을 때리더니 ‘아!’ 하면서 우리를 째려봤다.

마치 자기가 모서리에 머리를 박고 화풀이하는 고양이 같다.

“뭐야. 우리가 뭘 했다고.”

“잠깐 아파서 저도 모르게 째려 봤어여. 진짜 아프다, 이거.”

“딱밤 정도로 아파?”

중현이가 마시던 생수병에 딱밤을 튕겼다.

팡!

주변에서 장비를 챙기던 스탭들이 잠시 놀랐다.

“…….”

콸콸콸.

구멍이 뚫린 페트병에서 물이 줄줄 새어나왔다. 난 왜 저게 물이 아니라 피가 흐르는 거 같지.

리혁이가 결론을 내렸다.

“아프기도 전에 죽을 거 같은데요.”

“…….”

다 같이 웃으면서 목을 축이는 한편, 나는 힘들어하는 둘에게 관심을 주었다.

“…….”

“아이으…….”

리혁이가 눈을 감은 채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고, 비주는 쪼그려 앉아서 쉬고 있다.

나도 같이 앉아 눈높이를 맞췄다.

“비주야, 괜찮아?”

“네, 저 괜찮아요오…….”

이상하다.

그래도 지구력 하나는 우리 중에서 좋은 편인데, 유독 최근에 더 힘에 부쳐하는 것 같긴 하다.

아까 사람들 앞이라고 평소보다 더 몸도 튕기고 춤을 춰서 그런가.

하기사 나도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판에 얘는 오죽할까.

물론 지금 PBS 명곡단에서 진행한 4회 연속 시청률 15% 돌파 기념 게릴라 콘서트는 힘든 일정이 아니었다.

다만 체력 자체가 저점이라고 할까.

경연 준비.

해외 프로모션.

역사 탐험대 녹화.

OST 작업.

앨범 비주얼 작업과 안무 연습.

그 외에 잡다한 행사와 라디오, 예능 스케줄 등을 합치고 나니 눈 코 뜰 새가 없었다.

거기다 역사 탐험대가 의도치 않게 대박이 터지면서 스케줄이 더 촘촘해졌다.

회사에서는 적당히 하자고 했지만 우리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린 터였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여간 힘이 부치는 게 아니어서 조만간 석환 형이랑 일정을 조율해야 할 것 같다.

비주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저 아무 문제없어요. 형. 잠깐 어지러워서 그래요.”

“괜찮은 거 맞아?”

“네.”

비주가 싱긋 웃으며 일어났다.

“리혁이부터 챙겨 주세요. 형.”

“다른 애들이 잘 챙기고 있어.”

“……저게요?”

벽에 등을 기댄 리혁이의 양쪽 귀에다가 대고 ‘힘’ ‘내’ ‘라’, ‘우’ ‘리’ ‘혁’ 번갈아 속삭이는 녀석들이었다.

얼마 안 가 리혁이가 둘을 걷어차는 바람에 지호와 중현이가 당황했다.

“대박… 하나도 안 아파여.”

“큰일이다. 리혁아. 너 너무 힘이 없는 거 같아.”

“느아아아…….”

양옆에서 걱정스럽게 챙겨주는 손길에 리혁이가 정말 울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잠시 숨을 돌리던 우리가 좀비처럼 비척비척 걸음을 옮길 때였다.

“얘들아!”

민기 형의 목소리에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가 웃음꽃을 피웠다.

노… 도비가 도착해 있었다.

“클레이!”

“Hey, guys.”

그와 반갑게 손을 맞잡고 어깨를 맞대며 인사를 나누었다.

중현이가 어깨를 들이대니 그가 놀라서 악수만 하자고 하는 바람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공연을 봤다면서 그가 말했다.

“너희 스타가 되어 있었구나.”

“아직은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갈 길이 멀어요. 이번 앨범도 있고. 지금은 첫 발을 성공적으로 내디딘 정도라서요.”

“그래도 대단하던데.”

노래도 잘한다면서 그가 비주에게 시선을 돌렸다. 별칭인 ‘B’를 부르며 그가 말했다.

“B, 노래도 그렇게 잘하는 줄은 몰랐어. 솔직히 감명 받았는걸.”

“고마워요. 클레이.”

비주가 상냥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치 최애를 바라보는 듯한 클레이의 표정에 우리가 흥 하며 입을 열었다.

“클레이, 비주한테 영어 이름 생긴 거 알아요?”

“두 유 노 제임스?”

“제임스! 제임스!”

“……제임스?”

무슨 그런 올드한 이름을 정했냐며 클레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비주가 우리를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세한 비하인드는 이따가 들려주겠다며 우리가 신이 나서 놀릴 때였다.

“참, 여긴 내 딸 조이야. 이번에 함께 안무 디렉팅을 도와줄 파트너.”

“오, 안녕하세요.”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이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했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 두 살이나 어렸다.

오히려 상대가 우리 나이를 듣고 ‘?!’ 하는 표정을 지었다.

특히 비주와 나를 보고는 눈매를 좁히고 ‘……?’ 했다가, 다음에는 눈을 크게 뜨더니 다른 의미로 중현이를 보고 ‘……!’ 했다.

인터넷에서 보던 짤방 중에 그거 같다.

유명 외국 배우가 눈을 희번득 뜨고 ‘?????’ 하고 있는 장면.

그 시선에 내가 흐뭇해서 핫핫 웃었다.

보아라. 덕순. 내가 이렇게 동안이야.

점심을 함께 먹자며 강남에 있는 유명 고깃집으로 가려는데 조이가 우리에게 물었다.

“그런데 젠민이 한국말로 무슨 뜻이에요? 아까부터 사람들이 자꾸 젠민, 젠민 하던데.”

“……!”

내 얼굴이 우중충하게 변함과 동시에 동생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   *   *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회사로 돌아왔다.

새로운 앨범 컨셉에 대해서 간단하게 우리가 브리핑을 해준 후 앨범 활동 계획에 대해서 설명한다.

“타이틀은 ‘바람꽃’이라는 제목으로 정해졌어요.”

한국에서 나고 자라는 들꽃의 이름을 두고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투표 끝에 바람꽃으로 정해졌다.

중현이가 만든 intro인 ‘wind’와 연관성을 주기 위함이었다.

클레이가 감탄을 하며 말했다.

“B가 작곡도 했다고?”

“제임스!”

B가 아니라 제임스 B. 주라고 놀릴 때마다 비주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곤 클레이에게 말했다.

“전 춤만 췄어요. 그걸 노래로 만든 건 우주 형이고요.”

“멜로디를 즉석으로 춤으로 표현하다니. 리더도 대단하지만 B, 너의 재능은 참 놀랍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구나.”

와. 저게 저렇게 이어질 수가 있구나.

내가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보다시피 3집 타이틀곡은 트렌디한 팝 느낌을 추구하고 있어서요. 그 뒤에 조금 더 안무가 센 컨셉의 후속곡 활동을 고려하고 있어요.”

엄밀히 말하자면 후속곡 활동을 완전 확정한다기보다는 일종의 더블 타이틀에 가까웠다.

여태까지 레몬 엔터에서 제작한 가수 앨범 중에서 가장 큰 자본이 들어가는 앨범 특성상 한 곡에 몰빵하기가 부담스러워서 회사에서 낸 대책이었다.

컴백할 때 두 곡으로 나가고 반응을 봐가면서 활동을 조절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후속곡 역시 내가 만든 곡이었다.

“클레이가 오늘 봐주었으면 하는 건 그 부분이에요. 퍼포먼스에 있어서 두 곡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마치 하나의 곡이 1부, 2부가 있듯이요.”

옆에 있던 A&R팀 직원이 말을 보태주긴 했지만, 대부분 프로듀서인 내가 당부할 사항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타일러 일가가 태블릿 PC에 꼼꼼하게 메모를 적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적인 안무가와 그 제자답게 우리가 어떤 요구사항을 전달하면 척척 알아들었다.

“이야기는 이쯤 하면 된 거 같군.”

회의가 마무리에 달했을 때, 클레이 타일러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그럼 연습에 들어가 볼까?”

*   *   *

“와…….”

조이 타일러는 감탄사를 내뱉고 말았다.

동영상으로 보던 것과 또 달랐다.

‘잘한다.’

댄서가 아니라 가수로 구성된 팀일 텐데 어째 빈틈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아빠 말대로 지적할 부분이 별로 없어 보였다.

심지어 가장 춤이 약하다는 이조차도 동작 자체는 흠 잡을 데가 없었다.

“리혁이 부족한 편이라고 하지 않았어?”

“늘었어.”

그녀의 속삭임에 클레이가 혀를 내둘렀다.

“엄청 연습했나 본데. 저 친구도 지난번의 춤 실력이 아냐. 마스커레이드 안무 연습 영상 봤지?”

“응.”

“거기서 여기까지 온 거야. 저 친구도.”

춤에 재능이 많아 보이지는 않던데 단기간에 발전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감도 안 잡혔다.

그리고 가장 실력이 미약했던 멤버마저도 발전을 한 것도 놀라웠지만.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 더 이상 발전이 힘든 이도 한 발짝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비주였다.

“와…….”

아빠가 ‘B’라고 부르는 비주는 그녀보다 더 잘 추는 것 같았다.

나긋한 손짓을 하거나 머리를 쓸어 넘길 때마다 앨범의 컨셉인 꽃이 지었다 피는 것 같다.

그때마다 사람이 아니라 뭔가 별도의 예쁜 생명체 같았다.

왜 아빠가 평소에 다른 댄서들에게 그의 영상을 보여주면서 강의를 하는지 알 것 같다고 할까.

“…….”

옆에 서 있는 클레이도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대로 그들이 특별히 코멘트할 부분은 없었다. 그저 기술적인 부분을 몇 가지 터치할 뿐.

하지만 그럼에도 뉴블랙 멤버들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클레이, 이 부분이랑 이 부분 중에서요.”

비주는 손동작 하나를 가지고 버전을 여섯 개나 가지고 와서 그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리더도 전체적인 동선이나 가사와 매치되는 춤 동작 등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하지만 조이 타일러는 그다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별거 없는데?’

뉴블랙이 질문을 할 때 너무 힘들었다며 말하던 것과 다르게 실제 질문을 받아주는 건 힘들지 않았다.

클레이도 얼떨떨한 얼굴로 웃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뭐가?”

“지난번에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거든. 날 어디 가지도 못하게 하고 막 둘러싸고.”

“그랬어? 전혀 분위기가 다른 걸?”

“뭐, 어쨌든 잘 된 거지.”

실력이 늘어서 질문할 거리가 줄은 건가 보다 생각했다.

그들은 연습실 한켠에 마련된 스낵바에서 간식을 꺼내 먹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 동안에도 종종 질문이 날아왔다.

그녀가 문득 물었다.

“참, 지금 시간이 몇 시지, 아빠?”

“잠깐만.”

그러더니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아빠가 눈을 깜빡거렸다.

“왜 그래?”

“이상하다…….”

클레이가 중얼거리며 벽을 가리켰다. 뭔가 걸려 있었다는 듯 못과 함께 하얀 동그라미만 남은 벽.

“분명 저기에 시계가 걸려 있었거든.”

“아, 그래?”

“잠깐만.”

클레이가 손을 들고 눈을 깜빡였다. 스낵을 우물거리던 조이가 물었다.

“왜 또?”

“언제부터 여기에 스낵바가 있었지?”

“……?”

부녀의 눈길이 등 뒤에 있는 테이블의 스낵 모음으로 향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이상함을 못 느꼈지만 가만 보니 전부 미국식 간식이다.

옆에 있는 냉장고에는 미국 음료수가 있고.

둘의 시선이 근처에 등대처럼 앉아서 그들을 주시하고 있는 김중현에게 닿았다.

눈이 마주치자 푸근한 미소를 짓는다.

“…….”

점점 흐릿했던 것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 한 잔 드실래요?”

비주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질문거리가 적힌 노트를 가지고 왔다.

“…….”

아버지와 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딸?’

‘아빠?’

……우리 갇힌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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