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66화
“어서 와!”
홍보팀 사무실에 도착하자 직원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일본에서는 잘하고 왔어?”
“네!”
“윤 실장님이 그러는데 거기서도 대박 터뜨리고 왔다며. 우주가 방송에서 또 뭘 했다고.”
“……그건 비밀이에요.”
50만 엔에 눈이 뒤집혀져서 별 일을 다 하긴 했지.
홍보팀 직원들에게 선물들을 건네자 다들 기분 좋은 표정으로 받아 갔다.
직원들이 다시 업무로 복귀할 때 우리는 홍 대리님을 따라 회의실로 이동했다.
“대리님, 이거 받으세요.”
“음? 뭐야?”
“아까는 사람들이 많아서 선물을 제대로 못 드렸거든요. 저희가 대리님 드리려고 더 챙겨 왔어요.”
홍보팀에서도 뉴블랙을 전담하는 직원인 만큼 우리가 특별히 선물을 더 준비한 터였다.
“어머, 고마워.”
포장된 선물상자를 받아든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상자를 만지작거리던 홍 대리님이 고개를 들고 우리를 바라보았다.
비즈니스용 미소 위로 잠시 진짜 미소가 스치듯이 지나갔다.
일할 맛 난다며 너스레를 떨던 대리님이 회의실을 나섰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을래? 얼른 응원봉 가져올게!”
“네!”
우리가 발을 동동 구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동안, 대리님이 인턴과 함께 거대한 박스를 들고 왔다.
뭐야.
왜 저렇게 커?
공기 청정기 하나가 들어갈 법한 사이즈에 우리가 눈을 깜빡였다.
“……크다.”
“박스 진짜 커여.”
걸리버 여행기 에디션이라도 되나.
당황한 것도 잠시, 홍 대리님이 박스 안에서 꺼내든 작은 상자에 곧바로 시선을 집중했다.
검은색 상자.
검은색이 아래로 갈수록 옅어지는 그라데이션을 보여 주었다.
정면에는 뉴블랙의 로고가 은색으로 되어 있고, 뒷면에는 우리의 이름이 영문으로 적혀 있다.
공식 응원봉을 뜻하는 ‘Official Fanlight’를 본 우리는 감동의 물결에 젖어 들었다.
“와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응원봉이 눈앞에서 나타났다.
겉포장만 보았는데도 왜 이리 가슴이 몽글몽글한지 모르겠다.
“진짜 응원봉…….”
동생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테이블 한가운데 놓인 응원봉 케이스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주는 보기만 해도 좋다는 듯 입가에 손을 올리고 있고, 지호는 핸드폰을 들고 전후좌우 사진을 찍었다.
중현이도 턱을 괸 채 웃음을 흘리는 중이었다.
톡톡톡톡.
고개를 돌리니 리혁이가 핸드폰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었다.
“넌 뭐해?”
“지금 이 순간의 기분을 기록하는 중이에요.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어서.”
우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혁이 말마따나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니까.
데뷔했을 때였나.
1년 뒤에 우리가 어떤 모습일지 매일 상상을 하곤 했다.
잘나가고 있을지, 그럭저럭 해 나갈지, 아니면 앨범조차 간당간당하게 내는 상황이 될지.
모든 게 미지수였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행복한 기분으로, 1주년 즈음에 응원봉의 탄생을 맞이할 수 있다니.
동생들과 눈빛을 교환하며 미소를 지을 때였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사진을 찍던 막내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근데 상자 사이즈가 좀 특이하네여.”
“그러네.”
내가 말했다.
“다른 선배님들 응원봉 상자도 많이 봤는데, 이거보다는 박스 크기가 훨씬 작던데.”
“생일 케이크 상자 같아요. 형.”
보통의 응원봉 박스가 슬림한 편인데 이건 좀 넓은 느낌이다.
홍 대리님이 조용히 웃는 가운데, 상자를 유심히 바라보던 내가 비밀을 알아차렸다.
“아, 알았다! 이거 앨범 사이즈랑 맞춘 거죠?”
“맞아.”
“아……!”
그제야 동생들도 알아차렸다.
응원봉 박스의 높이가 우리 앨범과 같다는 것을.
레몬 엔터가 아이돌 팬덤에게 가장 호평을 받고 있는 분야인 바로 규격 통일이었다.
모든 굿즈가 책장에 가지런히 나열될 수 있도록 규격이 일정했다.
인터넷에서 ‘보다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굿즈 진열’이라고 글이 올라오면 99프로 확률로 우리 회사였다.
응원봉 상자까지 규격을 맞출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규격 통일! 너무 좋아……!”
우리 팀 누군가가 뺨을 발그레 빛낼 만큼 좋아하는 걸 보며 슬그머니 웃었다.
한동안 박스를 요모조모 살피다가 고개를 끄덕이자, 홍 대리님이 물었다.
“이제 보여 줄까?”
“네!”
두 손을 모으고 ‘제발 예쁜 거!’ 하고 기도하는 동안 홍 대리님이 언박싱을 했다.
이윽고 그녀의 손에 들려 나오는 봉.
“우와아아아아!”
“우아! 우아!”
“와…….”
천상계의 브금과 함께 눈에 뽀샤시 필터가 씌워진 것 같다.
손에 쥐기 편하도록 디자인된 고급스러운 손잡이.
그 위의 둥그런 구체.
마치 조물주가 세심하게 빚어낸 뉴블랙 맛 아이스크림 콘 같다.
그리고 그 안에 엄청 예쁜 게 들어 있었다.
“우와아아아아……!”
테이블에 올라온 응원봉을 두고 우리 다섯이 동시에 목을 쭉 내밀었다.
안에 둥그런 달이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앙증맞은 해바라기나 태양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달과 달을 둘러싼 별이었다.
해바라기의 꽃잎처럼 달을 둘러싼 링에 별이 하나씩 붙어 있었다.
“멀리서 보면 꽃이랑 살짝 비슷한 느낌이지? 디자이너님이 우주의 의견을 반영했어.”
“역시 그래서 예뻤구나! 우리 원봉이 오구구.”
“…….”
“……죄송함다.”
동생들의 경멸이 담긴 시선에 내가 고개를 푹 숙였다.
홍 대리님이 웃었다.
“그때 우주가 꽃잎이 다섯 개인 이유가 수플레를 둘러싼 너희 다섯이라고 했잖아.”
“네. 맞아요.”
“그게 바로 별이 다섯 개인 이유야.”
“아하.”
그때 리혁이가 뭔가를 발견한 듯 가늘게 떴다.
“그런데 원이 완전한 원은 아닌 것 같은데요. 곡선이 조금…….”
“맞아.”
“……?”
“정면에서는 달처럼 보이는데 비스듬히 보면 수플레 팬케이크 모양처럼 보일 거야.”
“오. 진짜요?”
“응. 디자이너님이 비주 아이디어를 반영했어.”
강아지가 냄새를 맡듯이 다 같이 테이블에 턱 끝을 착 붙였다.
“진짜다!”
“진짜네요?”
비스듬히 보니 정말 달이 두 겹의 수플레 팬케이크처럼 보였다.
수플레를 중심으로 다섯 별이 도는 컨셉인 거구나.
“예쁘다…….”
“우리가 낸 괴악한 디자인에서 어떻게 이런 게 나왔을까여?”
“그니까. 진짜 저희가 낸 도안을 보고 만드신 거래요?”
“응.”
홍 대리님이 답했다.
“그분이 너희가 낸 아이디어들을 두루두루 취합해서 만든 거야.”
“와…… 괜히 프로가 아니구나.”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물건 경진대회에 나온 사람들처럼 아이디어를 제공했는데.
이건…….
마치 썩은 토양에서 핀 꽃 같았다.
그 싹을 틔워낸 디자이너님을 찬양했다.
“디자이너분에게 디자인비를 엄청 드려야겠는데요.”
“……많이 드렸어.”
“이게 바로 울 아빠가 맨날 말하던 돈의 힘이네여.”
응원봉이 진짜 고급스럽다.
우리 덕순 여사 다음으로 예뻐.
디자이너님의 손길이 곳곳에 닿아 있는 응원봉을 보며 감탄할 때, 중현이가 원구의 표면을 바라보았다.
“대리님. 그런데 여기 겉에 있는 점들은 뭐예요?”
“어? 진짜! 여기 얼룩 같은 게 있어여!”
“불량인가?”
“김중현. 그거 손톱으로 문지르지 말고. 네 물건 아니잖아.”
“네….”
둥그런 구체에 점점이 박혀 있는 눈가루? 눈 결정? 비슷한 것을 보며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
홍 대리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인턴을 불렀다.
“잠시 불 좀 꺼 봐.”
“……?”
“대리님. 왜 갑자기 불을…….”
불이 꺼진 후 설명이 돌아왔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응원봉을 켜야 설명이 가능해서.”
“아아.”
“성능에 관해서는 리혁이 아이디어를 많이 반영했어. 밝기도 여러 단계에 걸쳐서 조정이 가능하고.”
탁- 소리와 함께 응원봉이 켜졌다.
“우와!”
“그냥 킨 거야. 얘들아.”
“우와아!”
“…….”
응원봉을 든 홍 대리님이 웃음을 흘렸다.
빛나는 응원봉을 보며 ‘대박…’ 하며 좋아할 때, 상대가 횃불을 들듯이 응원봉을 위로 들었다.
“여기 점점이 박혀 있는 점들이 뭐냐고 물었지?”
그러곤 응원봉을 벽에다 비추었다.
가장 약한 밝기.
그녀가 각도를 조정하자 응원봉 표면의 점들이 벽에 빛과 그림자의 그림을 만들어 냈다.
마치 별자리 램프처럼.
“어……?”
둥그런 달.
그리고 달을 중심으로 작은 별들이 흩어져 있었다. 마치 그림자로 빚어 낸 밤하늘 같았다.
그냥 보면 얼룩이 묻은 것 같지만 각도를 조정하니 밤하늘이 됐다.
“와아…….”
그걸 바라보며 신기해할 때, 비주가 손을 들었다.
“예쁘다. 그런데 이게 무슨 뜻이에요?”
“디자이너님이 떠올린 아이디어라고 하더라. 달과 별이 있는데 밤하늘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이게 너희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거거든.”
“이게요?”
우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곤 벽에 비친 그림자 밤하늘을 보고 눈을 가늘게 뜰 때였다.
홍 대리님이 미소를 지었다.
“2014년 6월 19일. 너희가 데뷔하던 날의 밤하늘이야.”
정적이 흘렀다.
숨죽인 우리의 시선이 벽에 있는 그림으로 향했다.
“어때?”
“…….”
“마음에 들어?”
“그냥 마음에 드는 게 아니고…….”
우리가 웃으며 답했다.
“최고예요.”
“너무 좋아요. 진짜로.”
6월 19일이라는 키워드에 동생들과 벽에 그려진 그림자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그 풍경을 기억에 담을 때, 리혁이가 물었다.
“그런데 발광력이 너무 약한 것 같은데요. 이 정도면 북 램프로 못 쓸 것 같아요.”
“아. 당연하지. 이게 가장 약한 밝기야.”
“보통 밝기는 어떤데요?”
“어, 잠시만… 준성아. 이거 어떻게 조정하더라?”
인턴 직원이 홍 대리님에게 뭐라고 스마트폰을 보여 주며 알려 줄 때였다.
아, 하던 상대가 웃으며 말했다.
“방금 건 가장 약한 밝기고, 보통 밝기는…….”
그리고 그 순간.
화아아아아아악!
밝게 웃고 있던 홍 대리님의 얼굴에 하얗게 사라졌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빛의 물결이 우리를 습격했다.
영화에서 보면 폭탄이 터질 때, 섬광과 함께 등장인물이 사라지는 연출이 나오는데 그게 우리였다.
모두 눈을 부여잡았다.
“아아아악!”
“내 눈! 내 눈!”
“아으, 섬광탄 맞은 거 같아여!”
“얘들아, 미안! 아오! 내 눈…! 준성아!”
“저도 안 보여요! 대리님……!”
우리의 응원봉 이름 후보군에 ‘눈뽕’이 올라오게 된 계기였다.
* * *
다시 불이 켜진 회의실.
“…….”
“…….”
모두 넋이 나간 얼굴로 앉아 있었다.
리혁이는 두 눈을 감은 채 눈꺼풀을 주물주물 하고 있고, 나는 눈을 계속 깜빡거렸다.
얼룩들이 아른거린다.
“잔상이 안 사라지네.”
“저도요. 형. 눈앞에서 뭐가 둥둥 떠다녀요.”
비주가 눈앞의 뭔가를 붙잡겠다는 듯 허공에 손을 뻗었다.
중현이가 말하길 얼룩을 하나씩 노려보면 지울 수 있다던데, 나는 잘 안 되는 거 같다.
눈을 꿈뻑 뜨다가 고개를 돌렸다.
“괜찮으세요? 두 분 다?”
“으, 응…….”
두 직원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인턴 분이 벽 짚으면서 스위치 찾으시던데.
동생들이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 무슨 밝기가…….”
“저 진짜 눈 머는 줄 알았어여. 보통 밝기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아아악!”
“진짜. 중현이 각막이 타격을 입을 정도면 말 다했지.”
“그런데 왜 이렇게 밝지?”
“잠깐만여. 아까 성능은 리혁이 형이 요구한 대로…….”
막내의 말에 우리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눈을 비비던 리혁이가 게슴츠레 뜨며 인상을 찌푸렸다.
“…뭐요.”
“너구나.”
“리혁이 형이 성능 결정하는데 영향을 줬다고 했잖아여. 이거 형 작품이져?”
“아니, 난…….”
우리가 리혁이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리혁아. 응원봉을 만들랬지, 공업용 라이트를 만드냐.”
“이대로면 우리 콘서트도 못해여.”
“난 음방도 못할 것 같아.”
확실히 그랬다.
이 밝기로 응원을 하다가는 난리날 걸.
사전 녹화 끝나고 팬매니저님이 ‘자, 우리 수플레들 눈 감고 계시고요. 진정되시면 마지막 열부터 한 분씩 나가실게요!’ 이러고.
콘서트 후기도 ‘우리 애들 빛이야… 빛밖에 안 보이더라’ 할 걸.
중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때, 아부지 따라서 항구에 놀러간 적 있었는데. 거기서 본 등대가 이런 느낌이었어요.”
“아니, 다들 진정 좀 해요. 이게 이럴 리가 없는데…….”
리혁이가 부정하고 있을 때, 홍 대리님이 원래 상태로 돌아와 말을 보탰다.
“리혁이 말이 맞아. 방금 건 최대 밝기였어.”
“아…….”
“보통 밝기로 하려고 했는데, 조정을 잘못해서 최대 밝기를 눌렀어.”
“거 봐요. 최대 밝기라니까.”
‘어서 사과해’ 하는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녀석에게 눈을 가늘게 떴다.
“최대 밝기여도 마찬가지예여.”
“그래. 애초에 왜 최대 밝기가 그 정도까지 돼야 하는 건데.”
“예기치 못한 재난 사태라든가, 응급 상황에서 유용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나중에 이 응원봉이…….”
“응원봉이?”
“누군가의 목숨을 살릴지도 몰라요.”
잠시 설득당할 뻔했다.
“아니, 그래도 그게 왜 응원봉이 돼야 하는 건데?”
“안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
잠시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들어도 이상한 소리 같은데, 뭔가 설득력이 있어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넘어가기로 했다.
그 동안 나머지 사양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주로 기술적인 부분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리혁이가 흡족히 웃는 걸 보아하니 잘 뽑힌 듯했다.
“곧 있으면 생산에 들어갈 거야. 내부 의견도 취합했고, 너희한테서 보완할 부분을 들은 다음에 출시하려고.”
“아, 몇 가지 있어요.”
우리가 응원봉을 살피면서 느꼈던 부분에 대해서 피드백을 했다.
봉에 매다는 핸드 스트랩 크기라거나, 지나치게 환한 밝기 등에 관해서 얘기를 하는 동안 상대가 열심히 메모했다.
“알았어. 그 부분에 대해서 제조사랑 이야기를 더 나눠 볼게. 더 말하고 싶은 거 있어?”
“출시는 언제 되나요?”
“곧 될 거야. 수플레 2기 모집할 때 출시할 예정이거든.”
“들린다. 들려. 팬분들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네여.”
막내의 드립에 다 같이 웃었다.
1인당 하나씩 받아 가라며 준 응원봉 박스를 품에 안고 미소를 지을 때였다.
홍 대리님이 뭔가를 또 힘겹게 꺼내고 있었다.
“대리님?”
“……잠시만. 어우, 이거 안 빠지네.”
우리가 처음에 의문을 품었던 거대한 공기청정기 박스에서 뭐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끙끙, 둘이서 앓는 모습에 중현이에게 눈짓했다.
우리 돌쇠가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배추를 뽑듯 뭔가를 쑥 뽑아 올렸다.
“오……!”
대왕고구마처럼 튀어나온 그것.
“오……?”
라이온킹 브금이 들리는 것만 같다.
심바처럼 무언가를 양손으로 붙잡고 든 중현이의 모습에 우리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건…….”
우리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막상 그 물건을 준비한 홍 대리님도 빵 터진 듯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응원봉이에여?”
“아무리 봐도 응원봉 같은데.”
방금 우리가 보았던 응원봉과 거의 똑같았다.
크기를 빼면.
거의 1미터쯤 되는 길이였다.
성화 봉송 주자가 들고 다니는 횃불 같다고 해야 하나. 중현이가 양손으로 잡아야 할 만한 사이즈였다.
중현이가 자기가 든 물건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와우.”
그 한 마디가 모두의 심정을 대변했다.
대체 이게 뭐지.
너무나 현실감이 없었던 까닭에 우리는 해명할 사람을 찾을 뿐이었다.
“이, 이게 뭔가요.”
“끄흡. 끄흐흐.”
홍 대리님이 한참 동안 끅끅거리며 웃다가 말했다.
“이게 뭐냐면… 리혁이가 처음에 요구했던 성능을 그대로 반영하려고 하니까. 이 정도 사이즈는 돼야 가능하다더라고. 기획 회의 때 농담처럼 만든 시안이었는데…….”
“대표님이 보셨군요.”
“응.”
그 뒷장면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대표님이 이 버전도 한 번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하셔서, 두 개를 만들었어.”
하나는 지금 대표님 사무실에 들어가 있고, 하나는 우리에게 주라고 지시하신 모양이었다.
“진짜 원앤온리 응원봉이네여.”
“이게 그럼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그 성능이 다 반영된 물건인 거네요.”
“맞아.”
황홀한 표정을 짓는 리혁이에게 말했다.
“리혁아. 너 이거 들 수는 있니?”
“내가 이것도 못 들 줄…… 으하아악!”
“푸흡! 흐하하!”
안 되는 걸로 판명이 났다.
한참 동안 그렇게 웃음을 터뜨렸던 것 같다. 눈앞에 보이는 물건이 너무나 터무니없기도 하고.
응원봉이 아니라 공성무기 같다.
만약에 인터넷에 사진이 올라간다면 ‘이게 왜 실화…?’ 라고 사람들이 반응할 듯한 느낌이었다.
나중에 응원봉 리뷰할 때, 수플레들에게 꼭 보여 줘야지 하고 결심했다.
“자가 발전도 가능해.”
“오…!”
끄트머리에 달린 조그마한 손잡이를 돌리자, 지잉지잉 하면서 응원봉의 불이 깜빡였다.
“흐하하하!”
감동해서 눈을 글썽이는 리혁이를 제외하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남자의 로망, 아니 모든 어린이들의 로망을 집약한 듯한 응원봉이었다.
성능 테스트를 할 때마다 홍 대리님과 인턴 분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볼 정도.
30분 가까이 ‘오!’, ‘우와!’ 하며 테스트를 끝낸 후에야 마침내 회의가 끝났다.
“그래. 그럼 응원봉 리뷰 영상 찍을 때 또 보자.
“네!”
“저 커다란… 봉 가지고 너무 장난치지 말고.”
대리님의 말에 우리가 고개를 저었다.
“에이. 대리님. 저희가 어린애인가요.”
“맞아여. 팬들이 제 무대 보고 어른미 넘친데여.”
“그래. 그럼 또 보자.”
홍 대리님과 손을 흔들고, 인턴 분이 꾸벅하면서 방을 나섰다.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배웅한 후.
일. 이. 삼…….
10초까지 차분하게 센 후에 중현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OK 사인을 그렸다.
“가셨어?”
“갔어요.”
우리가 설렌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야. 해 보자. 해 보자.”
“자. 가요.”
* * *
“어우 뭉쳐.”
A&R팀 서필근 대리는 굳은 어깨를 풀면서 복도를 걸었다.
“우주가 한국에 와서 그런가. 왜 이렇게 어깨가 뭉치지…….”
마주치면 안 되는데, 하면서 조심스럽게 복도를 걸을 때였다.
-흐하하하!
“흐어!”
어디선가 우주의 웃음소리가 마귀할멈처럼 들려왔다.
저도 모르게 벽에 착 달라붙은 서필근 대리가 고개를 홱홱 돌려가며 웃음소리의 진원지를 찾았다.
‘회의실?’
대회의실에서 뉴블랙 멤버들이 키득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시 해 보자. 중현아. 다시!
-루모스!
그 순간 번쩍- 하면서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힐 것 같은 섬광이 회의실에서 터져 나왔다.
경박한 웃음소리도 함께.
-흐하하하하!
-꺄르륵!
-깔깔깔!
환해졌던 복도가 다시 어두워졌다.
-이번에는 자유의 여신상 해 봐여! 자유의 여신상!
-자유의 여신상이면 음… 중현이 말고. 형! 우주 형이 해 줘요.
-잠시만.
그러더니 ‘웰컴 투 뉴욕’ 하는 우주의 목소리와 함께 다시 한번 회의실 안이 번쩍했다.
물개박수 소리와 함께 깔깔 웃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
뭘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감이 안 오는 상황이었다.
궁금해서 문을 열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서필근 대리는 고개를 저었다.
‘엮이면 안 된다. 엮이면 작업이야.’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는 그였다.
* * *
【 thenewblack.official 님이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바로 시청해보세요! 】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핸드폰에 SNS 알림이 뜨면서, 수플레들이 눈을 크게 떴다.
‘애들이다……!’
안 그래도 레몬 엔터에서 오늘 멤버들이 라이브로 응원봉을 소개할 거라고 공지를 띄우던 터였다.
수플레들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라이브 방송을 켰다.
‘음?’
어둠만이 가득했다.
새카만 화면.
라이브 방송은 시작됐다고 하는데, 암흑만이 보이는 풍경에 수플레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송 오류인가;
-얘들아???
-???
-이게 뭐지
-say hello to brazil!
-왜 까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가 카메라를 붙잡고 있는지 카메라 앵글이 빙글 돌아갔다.
어둠 속에서 우측으로 서서히.
마치 공포영화 같은 연출이었다.
수플레들이 ‘……?’ 하며 바라보고 있을 때, 멀리서 번쩍- 하는 섬광과 함께 누군가 등장했다.
다섯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 뭐야.’
거대한 횃불을 소중히 끌어안은 선우주의 뒤를 따라 뉴블랙 멤버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분명 모델 같은 포즈로 걷긴 하는데.
조명 각도가 안 좋았다.
불빛이 얼굴의 밑만 환하게 비춘 까닭에 라이트로 귀신 장난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보다는…….
-요괴다
-요괴네
-전설의 고향인 줄
-is it halloween in Korea??
-애들 울어요. 님들아..
-영화학도입니다. 저건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연출 같네요.
-요괴 같음;
자기들 딴에는 멋진 표정을 짓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다섯 요괴처럼 보이는 풍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