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73)화 (273/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73화

같은 부지 안에 소속이 다른 두 특공대가 좌우로 나뉘어 있었다.

어딜 가든 지옥행.

방금 지나쳐 온 왼쪽은 해경 소속 특공대. 오른쪽은 경찰청 소속 특공대 건물.

버스가 멈춘 곳은 오른쪽이었다.

“와…….”

건물에 쓰인 글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모두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갑자기 여권 들고 오라고 할 때부터 알아봤지.”

“뭐 쉽게쉽게 가는 법이 없구만.”

“저저, 도 피디 밖에서 웃는 거 봐.”

도준기 피디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참 동안 현실을 부정하던 출연진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환영합니다. 여러분.”

도 피디의 밝은 인사에 출연진이 눈을 부라렸다.

오프닝 때부터 줄곧 온화한 미소를 짓던 맏형 이필승마저 뺨을 파르르 떨었다.

“준기야. 이번에… 쉽게 간다며. 군대랑은 거리가 있는 거 하자며.”

“군대가 아니라 경찰청 소속이잖아요.”

“공항 보안이랑 상관이 있다며?”

“네. 공항에 테러 같은 상황이 벌어질 때 가장 먼저 출동하는 곳이 바로 이곳 경찰 특공대입니다.”

“……테러?”

“아! 당연히 그 외에 인질극이나 총격 같은 중대 사건에도 투입이 되고요.”

설명이 이어질수록 모두의 안색이 창백해져 갔다.

“실화냐, 이거.”

“지난번에 특임대도 훈련하다 죽는 줄 알았는데…….”

“나 해외에 나가는 줄 알고 새 옷 엄청 챙겨 왔잖아.”

다들 좌절하는 가운데 한조가 내게 속삭였다.

“우주 씨, 어떡하죠?”

“너무 걱정하지 마요.”

‘넌 대책이 있구나!’ 하며 밝아지는 한조에게 말했다.

“망해도 다 같이 망하는 거잖아요.”

“…….”

“이게 바로 군대의 묘미죠.”

푸근한 내 미소에 한조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출연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군필자답게 군대의 맛을 아네. 우주가.”

“망해도 같이 망하는 재미지. 핫핫핫!”

“하하하하흐흐흑……!”

“흑흐흐하하!”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르는 소리를 내는 남자들이었다.

제작진이 마이크 팩을 걷어 간 후, 출연진들이 몸을 풀고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 때.

슬퍼해 하는 한조에게 속삭였다.

“한조 씨.”

“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저랑 중현이가 옆에서 많이 도와줄게요. 우리 전우애 한 번 발휘해 봐요.”

“전우애 같은 소리하고 있네요. 우주 씨. 제가 누구 때문에 여기 왔는데요.”

못 들은 척하고 화이팅했다.

부대 안에서도 촬영 준비가 끝났는지 다시 카메라가 돌아가려는 조짐을 확인한 내가 둘에게 빠르게 속삭였다.

“이제부터는 눈치 싸움이에요. 행동 하나하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돼요. 초장에 찍히면 녹화 끝날 때까지 계속 찍히는 거니까.”

“조심할게요.”

한조가 고개를 끄덕였고, 내가 돌아보자 중현이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

“왜.”

“눈치는 어떻게 보면 돼요?”

맞다. 얘는 중현이었지.

“대충 내가 하는 거 보고 따라 해.”

“그건 자신 있어요.”

동료 게스트들을 챙긴 후 촬영 준비에 맞춰서 우리는 부동자세로 섰다.

‘사간’의 맏형 이필승이 리더로서 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말을 했다.

“방금 우리 우주 군이 명언을 했습니다. 망해도 같이 망한다.”

숨 쉬다가 사레가 들려서 콜록거릴 뻔했다.

“명언이네.”

“같이 죽으면 외롭진 않지.”

이필승이 말을 이었다.

“망해도 같이 망한다. 달리 바꿔 말하면 잘돼도 같이 잘되는 거니까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녹화 열심히 진행하도록 합시다. 화이팅.”

“화이팅!”

다 같이 호기롭게 화이팅을 외친 후.

터덜터덜 정문을 통과했다.

커다란 ㄴ자 건물에 둘러싸인 곳은 학교 운동장처럼 평범한 모래 연병장이었다.

그리고 중앙의 연단에 다섯 명의 교관이 서 있었다.

“…….”

싸늘한 분위기.

특수 부대원이 입는 새카만 옷에 선글라스, 해골 무늬 스카프 등으로 얼굴을 가린 대원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척 보기에도 엄청 강해 보이는 느낌.

누가 먼저 말한 것도 아니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다들 빠르게 교관 앞으로 뛰어갔다.

검은 티셔츠 차림의 남자가 인상을 썼다.

“지금이 몇 분입니까?”

“…….”

교관이 손목시계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도착한 지 8분이나 지났을 동안 뭐하고 있었습니까? 훈련 받기 싫어서 버티고 있었습니까?”

“안에 촬영 준비가 안 됐다고 해서…….”

“지금 누굽니까?”

그 말을 꺼낸 사간 멤버 조소형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다들 교관의 기세에 긴장했다.

시작부터 첫 기합인가 하는 예상을 할 때, 교관이 납득했다는 듯 말했다.

“일리 있군요.”

“…….”

뭐지. 강한데 허술해 보이는 이 느낌은.

“본 교관은 오늘부터 여러분을 지도하게 될 전술 1팀 소속 경사 고광순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박수를 치자 상대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서 전술 1팀 대원들이 자기소개를 했다. 총 5명으로 남자 넷, 여자 하나였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특공대원들과 동일한 훈련을 받게 될 겁니다. 레펠 훈련, 침투 훈련, 위급상황 대처, 근접격투. 그 외에 다양한 수업을 참관하고 교육받게 될 겁니다. 알겠습니까?”

“예!”

“당연히 쉽지 않을 겁니다.”

고 경사가 말했다.

“여기 있는 대원들은 특전사 707 특임대와 UDT 출신입니다. 같은 강도로 훈련을 하면 부상을 입을 수 있는 까닭에, 본 훈련은 훨씬 더 약한 강도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모두가 기쁨의 눈빛을 표현했다.

이에 고광순 경사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힘이 들면 언제든지! 교관들에게 말하도록 합니다. 여긴 군대가 아닙니다. 꾸역꾸역 버티다 몸 다치면 그게 손해지. 부상을 안 당한다. 이게 최우선입니다. 뭐가 최우선이다?”

“부상을 당하지 않습니다!”

“좋습니다.”

부드러운 미소에 모두의 마음이 사르륵 녹았다.

“여러분은 본 훈련이 굉장히 엄숙하고, 숨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거라 예상했겠지만.”

고 경사가 환하게 웃었다.

“본 훈련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웃어도 됩니다. 울어도 됩니다.”

“오오……! 오?”

뒤에 이상한 말이 끼어 있었던 것 같은데.

“저의 특전사 후배인 도준기 피디가 훈련에 들어가기 전에 ‘다들 모르고 끌려온 거니 잘 좀 해 달라, 재미있게 해 달라’ 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손을 흔드는 도 피디의 모습에 출연진의 얼굴이 살짝 풀어졌다.

“솔직히 본 교관도 막 인상 쓰고, 소리 지르고. 그런 거 전혀 성격에 맞지 않습니다. 큰 소리 들으면 기분 좋습니까?”

“아닙니다!”

“사람 다 똑같습니다. 그러니 우리 훈련을 할 때는 제대로! 그리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합니다. 알겠습니까?”

“예!”

다들 안도하는 모양새였다.

특공대에 끌려와서 꼼짝없이 죽었다 싶었는데 힐링힐링하는 분위기라니.

그것도 아프거나 힘들면 언제든지 말하라는 이야기와 함께.

‘힘들어? 정말 열외할 거야? 정말로? 너 하나 때문에 뭐 다들 피해 볼 수도 있지만 하고 싶음 해’ 라는 군대와는 정반대였다.

여기는 상식이 통하는 힐링 월드였다.

“편하게 웃어도 됩니다. 갑자기 ‘웃어?’ 이러면서 분위기 잡을 일도 없습니다.”

“하하하……!”

“하하하하!”

민태원의 느긋한 웃음이 모두에게 전염되었다. 우리가 웃자 교관들도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분위기가 진정되었을 때 고 경사가 말했다.

“자, 안 다치는 게 1번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안 다치려면 운동하기 전에 뭘 해야 합니까. 거기 교육생.”

한조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준비 운동입니다!”

“맞습니다. 준비 운동 없이 근육을 갑자기 쓰게 되면 다칠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훈련에 앞서 준비 운동으로 구보와 PT 체조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아?”

그 순간 모두가 분위기에 취해 잊고 있었던 진리를 깨달았다.

대개 어느 곳이든 몸이 편하면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편하면 몸이 괴로운 법이라는 것을.

교관이 신난다는 얼굴로 외쳤다.

“자, 전방을 향해 3초간 함성 발사아아아!”

“우아아아아……?!”

“좋습니다! 지금 이 기세로 구보 실시합니다! 가볍게 20바퀴부터! 실시!”

모두의 미래에 암운이 드리우는 순간이었다.

*   *   *

선우주를 포함한 ‘사나이가 간다’의 출연진이 빡센 달리기에 숨을 헉헉댄 후.

곧바로 PT 체조가 이어졌다.

“으아아아아악!”

“으어어…….”

PT. Physical Training.

말 그대로 육체를 강화하기 위한 동작들이 사간 출연진의 온몸을 자극하고 있었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할 거라며……!’

온몸 비틀기를 하는 동안 모두가 비명과 욕을 내질렀다.

처음에야 하하 웃으며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괴로워졌다.

가만히 있어도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여름 땡볕에 땀이 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운동장 모래 위로 사간 출연진의 땀이 뚝뚝 떨어졌다.

‘미치겠네. 진짜!’

무엇보다 미묘한 강도가 대환장이었다.

진짜 못할 것 같고 죽겠는데 정작 몸이 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힘들어서 도저히 못 버티겠다 싶을 때마다 동작을 바꿔 주는데 그야말로 신묘했다.

어디까지 해야 쓰러지지 않는지 알고 굴리는 듯한 느낌.

하지만 출연진들을 가장 괴롭게 하는 건 특공대원들이 정말 친절하다는 점이었다.

“잘한다! 잘한다! 그렇지! 한 개 더!”

“한 개만 더!”

“여기까지 올라오면 휴식입니다. 다 같이 이 높이까지 다리가 올라오면 5분 휴식!”

PT 체조를 하는 그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자세를 봐주는 대원들은 행복해 보였다.

즐겁다는 게 자기들이 즐겁다는 뜻이었다.

“여러분! 즐겁습니까?”

“네!”

“목소리가 작습니다! 더 유쾌하고, 즐겁게! 즐겁습니까?”

“네에에에……!”

“하하, 본 교관도 이런 열광적인 반응에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10회 추가!”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직였다.

“으윽.”

저질 체력으로 유명한 조소형이 병든 방아깨비처럼 쓰러지자, 근처에 있던 이정아 경장이 달려왔다.

“괜찮습니까? 많이 아픕니까?”

“파, 파, 팔이 너무 저려서 힘이 풀렸습니다!”

“이런…….”

그녀가 걱정스럽게 바라보자, 조소형이 간절하게 희망을 품었다.

‘진짜 죽겠다. 제발 열외라도…….’

아니나 다를까.

상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걸을 수는 있겠습니까?”

“예, 예! 걸을 수 있습니다!”

“저기 깃발 달린 봉 보입니까?”

“예! 보입니다!”

희망이 눈앞에 보였다.

“저기까지 가볍게 뛰어갔다 옵니다.”

“……예?”

“팔 근육이 다시 풀릴 때까지 열심히 주무르면서 왕복 달리기 합니다. 혹시 다리도 아픕니까?”

“…….”

“다리까지 아프면 교관이랑 스트레칭 진행합니다.”

굉장한 친절을 베풀었다는 듯 상냥한 미소였다.

그렇게 조소형이 모래 운동장을 처절하게 달리는 동안, 출연진 모두가 속으로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열외 안 하는 게 낫겠다.’

‘여긴 지옥이야……!’

‘준기야. 기다려라. 내가 저승 익스프레스로 너 보내준다.’

한편, 괴로운 건 게스트들도 마찬가지였다.

‘선우주. 죽인다…….’

한조가 다리를 왼쪽으로 틀며 이를 악물었다.

‘아냐. 그래도 죽이면 안 돼.’

이번에는 오른쪽.

‘때리는 건 되나? 아냐.’

다리를 한쪽씩 틀 때마다 꽃잎을 하나씩 뜯듯이 ‘멱살 잡는다, 안 잡는다’ 하며 반복하는 한조였다.

그리고 그 옆에선 중현이 평온한 얼굴로 PT 체조를 하고 있었다.

“9번 교육생, 자세가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겁습니까?”

“재미있습니다.”

중현의 푸근한 미소에 바로 그거라는 듯 특공대원이 엄지를 척 드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   *   *

출연진들의 생각대로 특공대원들은 기분이 좋았다.

‘재미있다.’

모래 바닥에서 데굴데굴 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던 고광순 경사가 잇몸을 만개하며 미소를 지었다.

“진짜 이게 얼마만이냐.”

“그니까요. 여태까지 우리끼리만 있어서 너무 심심했는데 새로운 사람들도 오고.”

“매일 같은 얼굴 보고 또 보고 그랬는데. 이렇게 연예인들도 오고 재미있네요.”

“얼마나 좋을까. 우린 더 튼튼해질 몸도 없는데. 저 사람들은 새로운 육체로 태어나는 거잖아.”

고광순 경사가 옆에서 구경하던 피디를 불렀다.

“준기야. 어때? 이 정도면 우리 재미있게 하고 있지?”

“그럼요. 형님. 엄청 젠틀하고 좋네요.”

“그치?”

전직 특전사 출신 PD와 특공대원들이 화기애애하게 웃었다.

그때 이정아 경장이 자랑하듯 말했다.

“저 아까 팔 아프다고 한 사람이 있어서 저기 봉까지 찍고 오라고 했잖아요. 좀 쉬라고.”

“어우, 너무 착하다. 막내야.”

“진짜. 우리 때는 힘들다 하면 바닥에 토할 때까지 굴렸잖아요. 그거 생각하면 천사다, 천사.”

그들이 하하 호호 할 때마다 근처에 서 있는 조연출과 스탭들의 얼굴만 창백해질 뿐이었다.

도준기 피디가 물었다.

“다들 보시기에 어때요? 우리 출연진들?”

“전반적으로 부실하고 허약하던데. 몇 명은 좀 심각하고.”

“아무래도 나이대가 다들 있으니까요.”

“그래도 젊은 애들은 꽤 잘하는데? 쟤네 누구야. 저 셋 다 괜찮네. 자세도 나쁘지 않고.”

“저 9번인가? 잘하던데요.”

중현의 자세에 대한 칭찬이 오간 후, 그들의 시선이 바로 그 옆으로 오가면서 눈빛이 달라졌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눈에 띄는 교육생이라면…….”

“저는 쟤요. 쟤 고를래요.”

“나도, 쟤 좀 이것저것 가르쳐 보고 싶다.”

그들이 바라보는 곳에서 선우주가 힘겹게 ‘끄응’ 하며 PT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정석적인 자세.

어찌나 잘하는지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좋은 거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고 싶은 느낌이었다.

“이야, 표정도 살아 있네. 예전에 미군 애들 PT할 때 보면 저렇게 진지한 표정 짓더라.”

“나만 그거 떠올린 게 아니었네. 미군 해병대나 특수부대 애들 보는 거 같지 않아요?”

“보기만 해도 힐링된다.”

그 표정이 선우주가 무의식적으로 미튜브 영상을 따라하는 것이라는 건 모르는 대원들이었다.

“쟤는 진짜 특공대원 데려온 거 같다.”

“그죠? 땀까지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하는 게 우리 신입 하나 들어온 기분.”

이어서 새로운 PT 동작을 할 때.

“어머, 쟤 지금 자세 좀 봐요. 너무 예뻐…….”

“각이 사네. 살아.”

“어후, 나 못 참겠다. 가서 동작 좀 더 살펴보고 올게요.”

“같이 가요!”

눈을 반짝거리던 특공대원들이 누군가에게 다가갔다.

*   *   *

“으으…….”

다리가 저릿저릿하다.

그럼에도 내 몸은 자동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땀이 주룩주룩 흘렀지만 심호흡을 하며 동작을 시행할 때였다.

“교육생. 자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특공대원 몇이 내 근처에 다가왔다.

칭찬을 했으니 이제 가겠거니 생각하고 있을 때, 둘이 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더니 내 자세를 보조했다.

“하나 둘, 하나 둘. 옳지!”

……옳지?

“어우, 자세 완벽해! 퍼펙트네. 퍼펙트.”

“배에 힘들어 간 거 봐. 근육을 제대로 쓰네. 이야… 어떻게 근육을 이렇게 쓰지?”

“그거 동작은 정자세가 맞는데 한국인 체형에 잘 안 맞거든. 살짝 다리를 이렇게 해 봐.”

이 사람들 헬스 트레이너야…?

PT 체조가 점점 개인 PT로 변하고 있었다.

일단 시키는 대로 했더니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야!”

“허… 한 번 가르쳤는데 완벽하게 하네.”

“팀장님! 여기 좀 보세요!”

이제는 동료 소환술까지 썼다.

죽을 맛이었다.

원래 PT 체조의 꿀맛은 교관이 안 볼 때 슬쩍 남몰래 자세를 바꿔서 편하게 쉬는 건데.

동작 하나 할 때마다 와서 유심히 살펴보고 좋아하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거기다 역광처럼 검은 그림자들이 날 둘러싸고 히죽히죽하는데 무서웠다.

그리고, 내 고난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8번 교육생.”

내가 오른손을 빠르게 들었다 내리며 외쳤다.

“8번 교육생 선우주!”

“앞으로 나옵니다.”

“……?”

출연진 앞에 서니 고 경사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방금 동작 그대로 합니다.”

“실시!”

PT 체조에서 허리를 아치형으로 만들어서 몸을 드는 엑소시스트 귀신 자세.

그걸 하고 있자니 다른 출연진의 얼굴이 거꾸로 보인다.

“그래, 바로 이거지!”

왠지 모르게 사심이 가득한 외침을 내뱉던 고 경사가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보입니까? 이 완벽한 아치형이?”

고 경사가 든 막대기가 내 허리 쪽을 가리켰다.

“자세를 할 때는 제대로! 바로 이 8번 교육생처럼 합니다. 알겠습니까?”

“예!”

“8번 수고했습니다. 일어나세요. 모두 수고한 8번 교육생에게 박수 쳐 줍니다.”

“와아아아-!”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내 생각에 저 아저씨들은 내가 시범을 보이는 동안 쉴 수 있어서 좋아하는 것 같다.

한조도 마찬가지였다.

중현이만 ‘댓 이즈 마이 브로’ 하는 듯한 얼굴로 의기양양할 뿐.

얼굴에 맺힌 땀을 닦으며 다시 대열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고 경사가 나를 막았다.

“교육생. 어딜 갑니까?”

“……예?”

“교육생은 지금부터 다른 교육생들의 모범이 되도록 자세를 보여 줍니다.”

“…….”

카메라가 찍고 있는 내 얼굴은 흙빛으로 물들지 않았을까.

그 이후로 지옥이 시작됐다.

“8번 교육생! 옳지!”

“8번~!”

“8번 교육생, 잘했습니다. 한 번 더 보여 줍니다.”

내 자세가 마음에 들었던지 틈만 나면 나를 소환하는 대원들이었다.

그때마다 사간 출연진들이 박수를 쳤다.

“우와아아아!”

“너무 잘하는 것 같습니다!”

“또 보고 싶습니다!”

내가 구슬프게 바라볼 때마다 다들 ‘일단 우리라도 살아야지’ 하며 외면하는 아저씨들이었다.

그렇게 땡볕에서 본의 아닌 조교 체험을 할 때였다.

“자, 주목.”

고광순 경사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제 점심 식사까지 얼마 안 남았기에 남은 시간은 PT 훈련 대신 다른 걸 해 볼까 합니다.”

“와아아……!”

“8번 교육생.”

“예?”

“아까부터 교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계속 고생한 8번에게 무엇을 포상으로 줘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오오……!”

오후에 휴식인가? 휴식 각인가?

다들 ‘받을 만하지’하는 표정을 짓고, 내가 희망을 가득 품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때.

고 경사가 바로 그거라는 듯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8번 교육생에게만 특별한 혜택을 하나 주고자 합니다.”

“오……!”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

“오오……!”

“바로 밧줄 타기입니다!”

“오……?”

모두가 멍하니 바라보자, 고광순 경사가 저기 보라는 듯 자신의 몸을 비켜 주었다.

정말로 멀찍이 밧줄 타기 코스가 보였다. 바람에 밧줄이 살짝 흔들리는 게 교수대처럼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이게 포, 포상입니까?”

나도 모르게 말까지 더듬을 때, 특공대원들이 모두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널 위해 준비했어’ 하는 듯한 표정.

“…….”

내가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자, 출연진들이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   *   *

# TBC ‘사나이가 간다 - 경찰 특공대 편 1부’

검은 특공복을 입은 한조가 스튜디오에 앉아서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뭐가 웃긴지 한참 동안 깔깔 웃는다.

작가 : 그렇게 재미있었나요?

한조 : 네. 아니. 왜냐면 우주 씨가 부대 진입하기 전에 진지한 얼굴로 그랬거든요.

그가 누군가의 표정을 따라했다.

한조 : 지금부터는 눈치 싸움이다. 행동 하나하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되고. 초장에 찍히면 녹화 끝날 때까지 계속 찍히는 거다.

작가 : (웃음)

한조 : 그런데 본인이 찍혔더라고요. (박장대소)

그들이 웃는 동안 화면이 전환됐다.

밧줄 타기 코스 앞에서 선우주가 나라 잃은 표정으로 서 있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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