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90)화 (290/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90화

상대의 말을 듣자마자 하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프로젝트.

할리우드의 유명 감독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외국 가수와 진행할 프로젝트가 대체 뭘까.

「이번에 내가 찍는 영화에 대해서 알고 있니?」

「감독님의 인터뷰를 보고 왔어요.」

사실 미팅하자는 말을 듣자마자 불려온 터라 제대로 된 자료조사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

한국어로 된 정보가 없어서 영문으로 된 기사들만 더듬더듬 읽었을 뿐.

알고 있는 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가 공부해 왔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었다.

「2000년대 초에 브로드웨이에서 유행했던 ‘노스탤지어’라는 뮤지컬을 정말 감명 깊게 봤다고. 언젠가 꼭 영화화를 하고 싶다고 하신 인터뷰를 봤어요.」

「그럼 원작에 대해서도 알고 있니?」

「네.」

바톤을 이어받은 리혁이가 능숙한 영어로 말했다.

「온갖 불운에 지친 남자가 방황을 하다가, 어느 날 도서관 경비원 일자리를 얻는데…….」

하필이면 도서관이 마법에 걸려 버린다.

야간순찰을 하던 주인공이 오래된 서가에서 발견한 ‘노스탤지어’라는 책을 펼치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몸이 줄어들면서 도서관이 거대한 미로처럼 커지고,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책들이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책에만 있던 것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사막이 펼쳐지고, 산과 바다가 생겨나고.

무시무시한 괴물들에게 쫓기던 주인공은 이 사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사라져 버린 ‘노스탤지어’를 찾고자 결심한다.

그러면서 어릴 적 좋아하던 책 속의 등장인물들과도 만나 동료가 되어 모험도 떠나고.

동시에 삶의 의미에 대해 관조하는 것이 원작의 내용이었다.

「정확해.」

존 에드워즈 감독이 씩 웃었다.

리혁이가 요약한 시놉시스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곁에 앉은 배급사 직원들도 만족스런 미소를 보였다.

영문을 모르고 방긋방긋 웃던 동생들도 통역사가 전해 주는 이야기에 ‘오’ 하며 기쁨의 박수를 보였다.

「영화로 각색하면서 내용이 꽤 달라지긴 했지만, 일단은 그 정도만 알아도 이야기가 한결 수월하겠네.」

화면 속 중년인이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는 본론을 꺼냈다.

「뉴블랙에게 제안하려는 프로젝트는 메인 OST의 커버 영상이야.」

「커버요?」

「이번에 영화판으로 각색하면서 기존 뮤지컬에는 없던 오리지널한 곡을 만들었거든. 마케팅의 일환으로 개봉하기 전에 미리 영상으로 풀 계획이야.」

그제야 상대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이해했다.

작년 우리나라에서 역대급으로 흥행했던 애니메이션과 같은 홍보 방식을 취하는 듯했다.

미리 OST를 풀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나는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원곡이 올라올 때, 그 나라 말로 번역된 커버 곡들이 올라왔으면 해.」

존 에드워즈 감독이 말했다.

「언어에는 마력이 있거든. 아무리 노래가 좋아도 가사를 모른다면 반쪽짜리밖에 안 되지. 난 사람들이 각 나라의 언어로 불려지는 이 노래를 듣고, 내 영화에 호기심을 가지길 바라고 있어.」

「무슨 말씀인지 이해했어요.」

「그만큼 이번 프로젝트를 진지하게 여긴다는 점을 알아줘.」

그의 진지한 표정에 우리도 덩달아 진지해졌다.

「특히 한국 같은 나라는 마케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라 커버를 할 가수 선정에 공을 들이고 있었는데. 처음에 배급사 쪽에서 차우현? 이란 사람을 추천하던데.」

「한국에서 정말 유명한 보컬 분이에요. 노래 실력도 대단하시고.」

상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들었어. 미튜브에서 그의 공연 영상을 봤는데 정말 에너지가 대단하더군.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보이스 컬러가 아니라서…….」

「조금 더 어린 목소리를 원하시는군요.」

「맞아. 이번에 각색하면서 주인공의 나이가 원작보다 더 어려졌거든.」

중후한 느낌을 주는 차우현 선배의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존 에드워즈 감독이 불현듯 웃음을 터뜨렸다.

「재미있는 기억이 떠올라서.」

「……?」

「미스터 차가 우리 측 배급사의 설명을 듣고는 먼저 거절했다고 들었거든. 자기와는 목소리가 안 맞으니 다른 사람을 추천하고 싶다고..」

그 말에 우리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마 선배가 추천했다고 하는 사람이….

「뉴블랙의 리혁이란 보컬을 추천했다고 했어. 같은 나이대의 보컬 중에서 한국 최고일 거라고.」

“허어……!”

우리가 리혁이를 돌아보았다.

한편 당사자는 우리보다 더 놀라고 있었다. 날카롭던 눈매가 타원형처럼 변해 동글동글해져 있었다.

리혁이가 말을 더듬었다.

「저, 저를 추천했다고요. 그분이?」

“Uh-huh.”

상대의 즉답에 리혁이가 삽시간에 흐물흐물한 토마토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입에 손을 올리고 ‘나… 나를…’ 하는 모습에 우리 스탭들이 웃었다.

에드워즈 감독이 짓궂게 덧붙였다.

「참. 이 말도 까먹었네. 칭찬에 약한 친구라서 말을 전해 주면 부끄러워할 거라고도 했지.」

“엇, 어…….”

펭귄처럼 손을 파닥파닥거리며 손부채질로 벌게진 얼굴을 식히려는 리혁이었다.

우리가 같이 손부채질로 식혀 주었는데, 지호가 ‘넘버 원 틴에이지 보컬’하며 엄지를 드는 바람에 다시 붉어졌다.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리혁이를 바라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얘가 잘하긴 하지.

보컬 실력을 보여 주기 힘든 안무 위주의 곡에서도 타 팬들에게 ‘뉴블랙 메보는 허파가 세 개임?’하는 평을 듣는 게 리혁이었다.

명곡단에서도 얘가 마이크를 잡았다 하면 그날 우리 경연곡의 하이라이트가 만들어졌다.

“예스. 리혁 이즈 굿.”

“흠흠…….”

“히 이즈 아워 메인 보컬.”

뿌듯한 얼굴로 실실 웃는 우리의 모습에 리혁이가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방금까지 부끄러워서 울상이던 토마토가 웃기 시작했다.

리혁이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동안 나는 자리에 없는 차우현 선배를 떠올렸다.

대단하다.

할리우드 영화사 측에서 제안하는 노래가 자기 음색이 안 맞는다고 딱 잘라 거절하다니.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나 같았으면 바짓가랑이 붙잡고 ‘제, 제가 목소리라도 바꿔 올게요!’ 했을 것 같은데.

인간적인 존경심과 함께 우리에게 기회를 준 선배 가수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조금 진정됐어?」

「네.」

존 에드워즈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미스터 차의 추천도 있긴 했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야.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호기심이 생겨서 미튜브를 검색했거든.」

「저희 영상을 보셨나요?」

「흥미로운 게 많던데.」

흥미?

「이거 불 진짜 피운 건가?」

“푸훕-!”

마시고 있던 물을 뿜을 뻔했다.

존 에드워즈 감독이 자기 스마트폰 화면으로 보여주는 ‘역사탐험대’ 속 한 장면 때문이었다.

중현이와 내가 막대기 하나로 불을 피워대는 장면에 배급사 직원들이 빵 터졌고, 우리는 사레가 들려 콜록댔다.

「자막까지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 내가 다른 나라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이거 실제로 벌어진 일인가?」

「예, 무신정변이라고…….」

뿅망치를 든 무신 막내들이 문신 형들에게 ‘너희만 입이냐?’ 하며 핍박하는 내용이었다.

지호가 비주의 등짝을 뿅뿅뿅 때릴 때마다 정신이 혼미하다.

‘저, 저게 왜 저기 있는 거야.’

‘왜 낯선 할리우드 감독의 폰에서 역사 탐험대가 나오는 거지.”

‘몹시 흐뭇.’

수치심 따위는 1도 없는 풍뎅이를 빼면 우리 모두 혼비백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저게 왜… 아니, 아니. 아.

당황스럽다.

존재하지도 않은 일기장을 누가 발견해서 눈앞에서 읽어 주는 기분이라고 할까.

한국인들끼리 얘기가 나올 때는 ‘우와아핫! 역사~’ ‘탐험대!’ 하며 서로 손뼉 마주치고 깔깔 웃으면 그만인데, 뭐라고 할까. 외국인이 얘기하니 국제적으로 창피한 느낌이다.

우리 목표는 안에서만 새는 바가지였는데.

「정말 재미있어. 딸이 대학에서 동양사를 전공하는 중이라 보라고 추천했어.」

“…….”

「우리 스태프들도 재미있어하고.」

여기서 증명된 사실 하나.

국내용으로 만든 역사 탐험대가 미국인들에게도 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피해하는 우리에게 존 에드워즈가 웃으며 말했다.

「어쨌거나 뉴블랙에 대한 영상이 어마어마하게 많던데. 한국에서 유명한 가수라는 점도 마음에 들고. ‘Best of Best?’ 정확한 번역인지는 모르겠지만 TV프로의 클립을 봤는데…….」

명곡 발굴단이 BoB로 번역된 모양이었다.

그가 리혁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딱 적임자라는 느낌이 왔어. 마치 오디션을 볼 때, 적임자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드는 느낌처럼.」

“오오…….”

미국인 특유의 립서비스가 아닌 진심이 가득 담긴 상대의 말에 우리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러곤 리혁이에게 ‘얼른 한다고 해’ 라고 할 때, 녀석이 살짝 마음에 걸린다는 얼굴로 물었다.

「저… 혼자 하는 건가요?」

「당연하지. 솔로곡이니까.」

「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머릿속으로 훤히 읽혔다.

하고는 싶은데 우리가 눈에 밟히기도 하고.

여태까지 따로 개인적으로 뭔가를 한 적이 없어서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감독이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 넷이 동시에 말했다.

「얘 한대요.」

「하겠대요.」

「확실히 하겠대요.」

그러곤 다 같이 눈으로 은근한 압박을 보냈다.

‘이게 망설일 게 따로 있지. 얼른 말 안 해?’

‘형, 곱게 말할 때 한다고 해여. 기회가 기회인데.’

‘안 하면 서운.’

리혁이가 얼떨결에 ‘좋아요’ 하고 답했다.

존 에드워즈 감독이 ‘Great’ 하며 좋아했다.

우리도 와아! 하며 기쁜 마음으로 여전히 머쓱하게 웃는 리혁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렇게 첫 미팅을 성공적으로 끝낸 것을 자축하는 의미로 우리가 미니 박수를 치고 있을 때.

상대가 눈을 깜빡거렸다.

「음? 아직 끝난 게 아닌데.」

「……?」

「이렇게 다 같이 보자고 한 건 이유가 있어서.」

리혁이한테 커버 곡을 제안한 게 끝 아니었나?

들썩였던 엉덩이를 의자에 붙인 우리가 궁금하단 표정을 지었다.

「더 남은 게 있나요?」

「글로벌 마케팅의 일환으로 준비하는 게 하나 더 있어.」

「……?」

「작중에서 주인공이 외국 서적 코너에 가는 장면이 하나 나오는데. 거기 사운드를 비워 뒀거든.」

외국 서적들이 저마다 자기네 나라 말로 노래를 부르며 주인공을 정신없게 하는 장면인 듯했다.

「이번에 커버 곡을 부를 가수들을 대상으로 곡을 받는 중이야. 각 국가별로 홍보 효과를 더 늘릴 겸.」

「아…….」

「곡 하나를 만들 필요도 없이 두어 소절 정도 짤막하게만 만들어 놓으면 되는데 관심 있나?」

「네. 그럼요.」

가슴 속이 도전정신으로 불타오르는 듯했다. 내 결연한 표정에 감독이 웃으며 말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한국판에만 해당하는 것이고. 다른 나라 버전에서는 빠질 수도 있어. 미국에서 개봉하는 버전에서는 그중에서 엄선된 곡을 고를 예정이라… 무조건 선정된다는 보장은 없으니 알아두라고.」

「네. 알겠어요.」

내 대답에 이어서 나를 바라보던 동생들이 자신감 있는 얼굴로 감독에게 답했다.

「맡겨 주세요!」

「저희 자신 있습니다!」

어째 나보다 더 자신 있게 대답하는 멤버들이었다.

나도 저 정도로 확신은 못하고 있는데, 대체 그 자신감의 원천이 어디인지 궁금해 할 때.

네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

‘나?’ 하는 시선에 네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할 수 있지?’ 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힘내라. 도비.’

‘일해라. 노비.’

무임승차에 대한 꿈으로 환하게 부풀어 있는 졸개들을 보며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   *   *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겼다.

앨범 준비와 콘서트로 인해 안 그래도 촘촘한 스케줄이 더 촘촘해졌지만 우리는 제법 긍정적이었다.

“시간이 부족하면?”

“사람을 쓰면 된다!”

“어떤 사람을 쓴다?”

“전문가를 쓴다!”

그간의 경험으로 얻은 교훈이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좋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선 해당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고기 사 줄게요. 우리 회사 앞에서 모이기! >_<]

A&R팀과 작곡가들에게 고기를 사 줄 테니 나오라고 했더니, 아무도 답장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방식을 바꿔서 직접 찾아갔다.

“직접 찾아가는 서비스~!”

“……엇.”

“바쁘신 것 같아서 직접 왔어요!”

“배, 배 안 고픈……..”

그렇게 찾아간 사람들에게 새롭게 들어갈 뮤지컬 영화에 짧게 삽입될 OST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다들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미국 영화…? 잘 되면 해외 버전에도 너희 목소리가 실릴 수 있고?”

“네.”

“좋은 기회네. 커버할 곡은?”

“아직 못 받았어요. 곧 준다고 하더라고요.”

프로젝트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하니 A&R팀이고 작곡가들이고 모두 탐이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쉽사리 ‘나 할래!’ 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사가 있다고 해도 그런 OST는 대중음악과는 또 뉘앙스나 분위기가 달라서. 그 분야에 정통한 사람을 구하는 게 더 좋을 거야.”

“전문가요?”

“응, 대표적으로…….”

우리가 사온 간식을 우물거리던 이들이 적임자인 인물을 하나 언급했다.

바로 나와 함께 슬립의 OST인 ‘어제에 관한 시’를 작업한 강범석 음악 감독님이었다.

OST 분야에서 정말 잔뼈가 굵으신 분 중 하나였다.

-당연히 되지!

작곡에 대한 조언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니 그 자리에서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이런 재미난 게 있으면 바로 말하지 그랬어?

“바쁘신데, 괜히 전화로 이것저것 여쭤보면 피곤하실 거 같아서요.”

-에이.

“감독님, 힘드실 것 같아서…….”

그 대목에서 A&R팀 직원들, 작곡가들을 비롯해 동생들까지 모두 나를 노려보았다.

-새로 들어가는 OST 작업 중이긴 한데, 뭐, 반대로 나도 자네에게 의견을 물어볼 수 있으니까.

“저는 좋죠. 도움이 조금이라도 된다면…….”

-하하. 어우, 근데 노래 얘기할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설레지 않니? 하하하!

“저도 너무 설레요!”

음악적으로 성향이 잘 맞는 분이라 그런지 대화만 나눠도 화기애애했다.

다들 질린다는 눈으로 바라보긴 했지만.

자세한 스케줄에 대한 협의는 미뤄 두고, 일단 회사 사람들과 대강의 계획을 짰다.

영화 개봉은 한국이 9월 말이고 외국이 10월 초.

시간은 충분했고 준비해야 할 파트도 아주 짧았기에 그리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내 커버 곡은요?”

“아, 참.”

“아 참? 아 차아아암?”

우리가 귀를 후비적거리고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뭐. 리혁이가 알아서 잘하겠지…?”

“그럴 거예여.”

“리화. 리혁이 화이팅.”

“아! 진짜……!”

무관심하게 대응하자 복장이 터져서 ‘아! 아!’ 하며 짜증을 부리는 녀석의 모습에 깔깔 웃었다.

혼자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니 은근 부담되는 모양이었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무대에 올라갈 때도 다 같이 N분의 1로 나눌 때와 솔로로 나갈 때의 부담감은 비교가 안 되니까.

“잘할 거야. 아니다. 잘해, 너.”

“명령문이에요. 평서문이에요?”

“평서문.”

“…흠흠, 뭐,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가 안심을 시켜 줘도 10초를 못 갔다.

“아. 어떡하죠. 뮤지컬 느낌 나야 되는 노래인데, 웬 아이돌이 설치냐고 악플 500개 달리는 거 아니에요?”

“악플 되게 상세하네여. 달아본 줄.”

“리혁이는 앞에서 욕하는 애라 악플 같은 거 안 써.”

내 말에 다들 ‘그렇지…’ 하고 납득했다. 당사자만 ‘뭐가 그렇지야?’ 하며 고함칠 뿐.

내 몸이 울릴 만큼 쩌렁쩌렁한 발성을 보니 커버 곡에 대한 퀄리티는 걱정 안 해도 될 듯했다.

실시간으로 걱정거리를 하나씩 만들어 내는 녀석을 보며 우리는 결국 커버 곡에 대해서도 조언자를 구해 붙여 주었다.

바로 명곡단에서 함께 경연에 참가했던 리사 선배였다.

발성이라든가, 뮤지컬 넘버를 잘 살릴 수 있는 팁에 대해 조언을 해 주는 뮤지컬 배우 덕에 리혁이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긴 하다.

리사 선배가 우리에게서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떤 부분이요. 선배님?”

-노스탤지어라면 나도 알거든. 우리나라에서는 공연을 안 하긴 했는데 영미권에서는 되게 유명한 뮤지컬이야. 유명한 곡들도 많을 텐데, 굳이 메인 테마를 오리지널로 했다는 게 신기해서.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요.”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은연중에 품고 있던 생각이긴 했다.

유명한 뮤지컬이라면 기존에 좋아하던 팬층이 있을 텐데.

그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기존의 유명곡을 놔두고 굳이 영화판 오리지널 곡을 메인 타이틀로 삼는 모험을 한다는 것이.

원작의 넘버가 다 별로라면 모르겠지만, 미튜브에서 들은 뮤지컬 곡들은 대부분 명곡이라 불릴 만큼 퀄리티가 좋은 편이었다.

검색해 보니 서구권에서도 무슨 오리지널 곡을 만드냐며 비판적인 시선이 많아 보였다.

“이런 반응이면 곡이 되게 좋아도 본전일 것 같은데…….”

“말 그대로 좋아도 본전이에요.”

어차피 우리가 만든 노래도 아니고, 단순히 홍보 마케팅의 일환으로 커버 곡을 부르는 것이긴 했지만 좀 걱정되긴 했다.

기왕 프로젝트에 참여한 거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니까.

비주가 말했다.

“근데 바꿔서 생각하면 곡이 그만큼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너무 좋아서 타이틀이 됐을 수도 있잖아요.”

그것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미튜브에서 기존 넘버를 재생해서 들을 때마다 ‘이거보다 더 좋은 곡이 있다고?’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작곡가가 노스탤지어로 벌어들인 돈만 수백억이라고 하던데.

그런 의문을 품은 채 콘서트 준비와 새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는 와중에 마침내 곡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영화 배급사 ‘숲’의 사무실을 다시 한 번 방문했다.

“번거로운데 찾아와 주셔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그만큼 감독님이 보안을 철저히 해 주기를 바라고 있어서요.”

그만큼 보안을 철저히 하기 위함이라는 듯했다.

우리 매니저들과 일부 직원들이 회의실에 앉자, 기획팀 직원이 노래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곡 제목은 ‘Falling Stars’예요.”

“오, Falling Stars.”

“아마 듣자마자 마음에 들 거라고 하셨어요. 저희도 그랬고요.”

우리가 기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동안, 기획팀 직원이 오디오 파일을 재생했다.

어딘가 잔잔하게 깔리는 전주.

듣기 좋은 멜로디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노래에서 첫 소절이 시작됐다.

그리고.

“……!”

첫 소절을 듣자마자 우리는 왜 영화감독이 쟁쟁한 넘버를 밀어내고 오리지널 곡을 채택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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