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96화
초청된 가수들의 공연을 끝으로 개막식이 종료됐다.
제작진이 씨름 세트를 뚝딱뚝딱 만드는 동안 아이돌 멤버들은 저마다 대기실로 향했다.
그리고.
“흐하핫!”
“어딜 도망가냐, 선우주!”
“…….”
“그대는 우리 손바닥 안이에요~!”
대기실 복도에서 종종걸음으로 도망치던 나는 TNT의 두 녀석에게 곧바로 붙잡혀 버렸다.
양쪽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린 녀석들 때문에 더 나아갈 수 없었다.
“동생들아!”
“우리?”
“너희 말고. 이 선배님들아.”
‘선배님’ 소리에 두 녀석이 ‘으아아~!’ 하며 귀를 막는 동안 내가 애타게 손을 뻗었다.
“우리 동생들아. 어서 이 사악한 요괴들로부터 날 구해 줘!”
“제가여? 제가 왜여?”
“…….”
깐족거리는 막내를 보며 할 말을 잃을 때, 한태현이 능글맞게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지호와 녀석의 손이 마주쳤다.
“그죠? 아니, 지호 씨가 뭐 하러 구해 줘. 그냥 버려요. 이 형.”
“네. 그러려구여.”
“다들 배고프죠? 앨범 준비기간이면 다이어트 빡세게 들어갈 텐데…….”
한태현과 장한별이 바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초콜릿이나 사탕 같은 걸 꺼냈다.
정성 가득한 뇌물에 우리 동생들이 껌뻑 넘어갔다.
중현이마저 추파춥스에 눈이 돌아가서 ‘선배님들, 좋은 사람…’ 하며 감동하는 중이었다.
“…….”
매니저 형들에게 안 보이도록 주머니에 간식거리를 집어넣은 우리 애들이 환하게 웃었다.
“편하게 얘기 나누고 와요~”
“…….”
배신감에 뺨이 파르르 떨렸다.
깔깔 웃던 TNT의 두 멤버가 ‘잠깐 데려갈게요!’ 하며 나를 붙잡고 연행했다.
여기저기서 시선이 집중됐다.
복도를 돌아다니던 다른 그룹 사람들이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쟤네는 무슨 사이지 하는 듯한 느낌.
중간에 에이스의 멤버가 장한별과 인사를 나눴는데, 나와 어떤 사이인지 궁금해 하는 물음에 중국인이 답했다.
“소꿉친구예요.”
“그, 한별아.”
중현이가 이상한 말을 할 때마다 리혁이가 관자놀이를 주무르는 기분을 알 것 같다.
소꿉친구 드립에 웃음이 흘러나오자 중국인 장모 씨가 의아해했다.
“내가 뭐 잘못 말했나?”
“설명해 줘라. 태현아.”
내 원조 졸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어 뜻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아하.”
오늘도 새롭게 어휘를 하나 익혀가는 TNT의 외국인 멤버였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하며 걸어가는 동안, 마침내 한적한 휴게실에 도착했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하나씩 뽑아 건네주자, 싱글벙글한 얼굴들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지금부터 국민 체조를 하겠습니다. 흐앗!”
“호잇호잇!”
“흐하핫!”
누군가를 따라하며 웃어대는 녀석들을 툭 치며 웃었다.
“야. 나 안 그랬어.”
둘이 동그란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완전 똑같은데? 아까 백스테이지에서 볼 때 나 물 마시다가 뿜을 뻔했다니까.”
“맞아. 나도 숨넘어가는 줄.”
대기하는 동안 내가 국민 체조를 하는 광경을 보며 웃어댔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음료수를 홀짝이는 두 녀석을 보며 웃었다.
몸만 자란 어린애들 같다.
아까 다른 가수들이랑 있을 때는 늠름하게 ‘내가 선배라능’ 하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초딩들 같았다.
“형들이나 다른 애들은? 잘 있고?”
“늘 똑같지. 뭐.”
해외 투어가 끝나기 무섭게 각자 개인 스케줄을 소화하는 중이라고 들었다.
잠시 근황 토크를 나눴다.
지훈이도 새로운 드라마에 조연으로 들어간다고 하고, 선웅이 형도 믹스테이프 작업 중이라고 하고. 승제도 솔로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등의 가벼운 신변잡기였다.
“형네는 요새 뭐해? 콘서트 준비한다고 했었나?”
“어, 이제 얼마 안 남았어.”
2주 조금 넘게 남아 있었다.
두 녀석이 축하의 박수를 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이고, 콘서트 축하드립니다. 행님.”
“감사합니다. 선배님.”
서로 고개를 꾸벅 숙이며 축하해 주었다.
태현이와 한별이가 허공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뉴블랙이 벌써 콘서트…….”
“형, 작년 여름에 데뷔하지 않았나? 진짜 빨리 하긴 하네.”
“왜 너희가 감개무량해 하는 거야?”
자기들이 더 감개무량해 하는 모습에 웃으니 녀석들이 대꾸했다.
“연습생 때부터 콘서트 얘기 나오면 제일 신났으니까 그러지.”
“콘서트 얘기하면 거의 ‘누구인가, 누가 콘서트 소리를 내었어’ 하는 수준으로 반응했잖아.”
“에이. 그 정도는 아니었다.”
태현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말했다.
“회사 자료실 가면 지금도 증거영상 남아 있을걸? 저는 군산에서 온 어린이……푸흡!”
“어유. 목이 말라 보인다. 음료수 마셔라. 많이 마셔라.”
“어푸푸!”
캔 밑을 손가락으로 들어서 한모 씨의 입에 음료수를 들이부었다.
한별이가 손을 들었다.
“나도 증거 영상 있음! 여기!”
“너도 많이 마셔라.”
“어푸푸!”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핸드폰을 뺏었다.
생일 파티 때였는지 고깔모자를 쓴 17살 선우주가 ‘야야! 초 꺼지기 전에 빨리 100주년 실버타운 콘서트 소원 빌어라!’ 하며 소리치는 동영상이었다.
부끄럽다.
두 녀석이 동영상을 같이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와. 진짜 추억이다. 이때.”
“야야~! 100주년 실버타운 콘서트~ 푸흡!”
TNT의 두 멤버가 에베베 하는 모습에 눈을 흘겼다.
그 정도까지는 아닌 듯했지만, 내가 어릴 적부터 콘서트 얘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반짝했다는 사실은 인정하기로 했다.
증거자료가 더 있다는 상대의 말 때문이었다.
“솔직히 콘서트 안 좋아하는 가수가 어디 있냐.”
둘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형이 유독 콘서트에 대한 그 마음이 좀 강했어.”
“맞아. 장난 아니었지.”
“그래서 콘서트 준비할 때 되면 가끔씩 연습생 때 생각나고 그랬는데.”
“해외에서도 꽃무늬 입은 외국 할머니들 보면 형 생각나더라.”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도 콘서트 준비를 하는 요즘에 종종 그때 생각을 하곤 했으니까.
‘콘서트!’ 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그렸던 연습생 시절이 드문드문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곤 했다.
그런 생각 때문일까.
눈앞에서 나를 바라보며 웃는 얼굴 뒤로 옛날의 앳된 얼굴이 스쳐 갔다.
“그러고 보니…….”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도 많이 늙었구나.”
“…….”
“역시 시간은 공평한 거였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아우성을 치는 두 녀석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예전 이야기를 하던 우리는 음료수를 다 마실 때쯤 일어났다.
피차 스케줄이 바쁘기 때문이었다.
좀 있으면 양궁 예선도 있고.
스페셜 앨범 준비에 들어간다는 두 녀석에게 응원의 말을 보내자, 화답이 돌아왔다.
“형도 콘서트 준비 잘해.”
“너희도 앨범 준비 잘하고.”
“고마워. 뉴블랙이 콘서트 한다니까 우리도 되게 기분 좋다. 더 잘 됐으면 좋겠어.”
그런 따스한 말을 건네던 태현이가 농담처럼 말했다.
“물론, 컴백 때는 겹치지 말고.”
“컴백?”
“형네 그룹이랑 컴백 겹치는 건 이제 사절이야. 노래 나올 때마다 대중픽으로 뜨는데 어떻게 이기냐.”
한별이도 거들어서, 지금 우리와 컴백이 겹친 틴스피릿도 어지간히 긴장 중일 거라는 말을 했다.
누가 들어도 띄워주는 말이라 웃으며 넘겼다.
“잘 가. 다음에 또 보자.”
떠나면서도 연신 콘서트를 축하한다고 해 주는 두 녀석에게 고마움을 담아 손을 흔들었다.
* * *
오전에는 여자 씨름이 진행됐다.
고기에 굶주린 4인조 걸그룹이 씨름판을 휩쓰는 동안, 우리는 실내 체육관 한켠에서 연습에 매진했다.
“비주야. 턱을 조금 더 내리자.”
“이렇게요?”
“응, 그렇게 하고. 릴리스를 할 때는 좀 부드럽게…….”
비주와 지호가 활을 당길 때마다 붙어서 자세를 봐주었다.
그래도 지난 설에 양궁을 했던 경험 덕인지, 둘 다 자세가 조금 더 숙련되어 있었다.
화살을 날릴 때마다 8점, 9점 칸에 탁탁 꽂혔다.
그리고.
“우와아……!”
“인정하긴 싫지만 진짜 잘 쏘긴 하네요.”
내가 손을 퉁길 때마다 화살이 족족 10점 과녁에 적중했다.
근처에서 화살을 쏘고 있던 틴스피릿 멤버들이 ‘오오’ 하며 손뼉을 쳤다.
마지막 화살까지 10점 과녁에 안착하자, 동생들이 눈을 크게 뜨며 기뻐했다.
“이번에도 우승하겠는데여?”
“설레발치면 안 되겠지만, 예감이 좋아요.”
“중현아.”
“아, 죄송.”
우리가 핀잔을 주자 중현이가 뒤통수를 긁적였다.
하지만 중현이가 그 말을 해서 그렇지, 예감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10점 칸에 촘촘하게 모여 있는 화살들을 바라보던 내가 몸을 빙글 돌렸다.
“보이느냐. 중생들아.”
“보입니다!”
두 손을 모으고 답하는 멤버들에게 과녁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무엇이 보이느냐.”
“우승이 보입니다.”
“그렇다. 우승 각인 것이다.”
“그런 것이다~”
동생들과 함께 꺄르륵 웃으며 ‘뉴! 블랙~ 뉴블! 랙~ 뉴블랙~!’ 하며 조잡한 응원가를 불렀다.
엇박을 넣을 때마다 정신공격을 당한 틴스피릿 멤버들의 손이 흔들렸다.
다른 팀을 위해 조용히 하기로 결정한 우리는 카메라로 촬영 중인 원석이 형에게 다가갔다.
“우리 수플레 여러분.”
“기대해 주세요.”
“저희가 이번에도 양궁에서 금메달 한 번 또 도전해 보겠습니다.”
“도전~!”
다 같이 주먹을 쥐며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돌림픽 비하인드로 미튜브에 올라갈 영상을 찍고 난 후,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와아아아-
관중들의 함성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씨름이 끝나고 여자 양궁 예선이 한창 진행 중인데, 함성을 들어 보니 경기가 치열하게 전개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여자 예선에 이어서 시작되는 남자 양궁 예선 1차전이 바로 우리 경기였다.
팔을 꽈배기처럼 만들던 중현이가 물었다.
“형, 우리 양궁 첫 상대는 누구에요?”
“우리가 누구랑 하냐면…….”
내가 벽에 붙은 대진표를 훑었다.
그러곤 ‘뉴블랙’ 칸 바로 옆에 있는 신인 보이그룹의 이름을 찍었다.
* * *
“으흐음~ 이 공기 느껴지시나요?”
여자 경기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출입구에 서 있는데, 은성이가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무슨 공기?”
“승리의 공기요.”
은성이가 숨을 들이키며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이 습도, 온기, 모든 게 저의 승리를 가리키고 있어요. 병장님, 미안하지만 제가 이길 거 같아요.”
“너의 근자감은 언제 봐도 훌륭하구나. 후임아.”
“근거 있는 자신감이죠~”
양궁 활을 들고는 ‘님 제가 이겨드릴게요’ 하는 은성이를 보며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 찾아요?”
“너희 팬분들이 어디 있나 해서.”
“저기요.”
“저기?”
“아뇨. 쩌어어어어기요.”
“아.”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 할 만큼 먼 거리에 위치한 꼭대기 팬석이었다.
플래카드를 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팬분들이 많네.”
“저게 다 에이플비 팬은 아니구요. 올해 데뷔한 그룹 팬들을 다 저기다 몰아넣어서 그래요.”
“아하.”
“그런데 왜 찾았어요. 팬들은?”
내가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팬분들한테 잘해드려. 은성아.”
“?”
“이런 너를 좋아해 주는 분들이야.”
부들부들 떠는 상대를 보며 키득거렸다.
하지만 부들부들도 3초 뿐, 금세 뭔가 떠올랐다는 듯 군 후임이 조잘거렸다.
“맞다. 이따가 나갈 때 우리 팬들한테도 인사할래요?”
“……내가?”
“에이플비 팬들 사이에서 형이 꽤 유명하거든요. 우버지라고.”
“우버지?”
“우주랑 아버지랑 합친 말이에요. 저를 세상에 내보내 준 사람이라고 팬들이 부르는 별명이에요.”
그거 좋은 말인가.
은성이를 세상에 내보낸 사람이라니.
내 기준으로는 뭔가 해로운 것을 살포한 느낌인데, 감사해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신기했다.
태평양에다 크라켄을 풀었는데 감사 인사를 듣는 느낌이었다.
“뉴블랙, 에이플비. 나갈게요.”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FD의 지시에 따라서 우리와 에이플비가 경기장에 입장했다.
‘잘해’를 흔드는 수플레들에게 양손을 파닥파닥 흔들고.
은성이네 팬에게도 인사를 했다.
듬성듬성 앉아 있던 에이플비 팬들이 일어나서 배꼽 인사를 하는 모습에 우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웃음도 잠시.
멀찍이서 ‘잘해’를 흔드는 중현이와 ‘잘’을 흔드는 리혁이에게 나와 비주, 지호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요원의 말에 따라 양쪽에서 한 명씩 일어났다.
옆자리에서 에이플비의 막내이자 리더인 하루가 일어섰고, 우리 쪽에선 내가 일어났다.
“…….”
시작은 나였다.
심호흡을 깊게 하고는 서늘한 실내 체육관의 공기를 들이켰다.
한두 차례 정도 심호흡을 하며 가슴을 안정시키고는 활을 들었다.
활시위 끝에서 느껴지는 팽팽한 감촉을 느끼며 과녁을 바라보고는, 부드럽게 손을 놓았다.
탁!
10점 과녁 정중앙에 꽂힌 화살에 내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와아아아……!”
수플레들과 동생들이 ‘잘했어’ 슬로건을 열심히 흔들었다.
비주와 지호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웃었다.
멀찍이서 해탈한 미소를 짓는 카메라 감독님의 모습을 보니 정확히 정중앙에 꽂은 거 같다.
한편 내 10점 과녁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이던 에이플비의 하루가 쏜 화살은 8점을 기록했다.
뉴블랙 [10 10]
에이플비 [8 9]
그렇게 두 차례가 끝나고 3점 차로 앞서고 있을 때.
다시 내 순서가 됐다.
그리고,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 * *
“네, 여기는 2015 추석 특집 아이돌 운동회, 남자 양궁 예선이 시작되었습니다.”
“양쪽에서 리더 겸 에이스가 나왔네요.”
중계석 가운데 앉아 있는 아나운서 백상중이 말했다.
“이번에 처음 참여하는 신인 보이그룹이죠. 에이플비. 연습을 참 많이 하고 왔다고 들었어요.”
“예, 양궁장까지 빌려서 며칠 동안 맹연습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눈빛부터가 독기로 가득하네요.”
왼편에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세 얼굴이 보였다.
실제로 연습을 열심히 해 왔다는 말답게, 리더인 하루는 8점과 9점을 기록했다.
“잘하네요.”
“하지만…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네요. 하필이면 예선부터 작년도 우승자인 뉴블랙을 만났습니다.”
“작년에 우승후보였던 TNT를 탈락시켰던 팀이죠.”
오른편에서 진지하지만 다소 여유로운 분위기의 뉴블랙의 세 멤버가 보였다.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양궁 해설위원 양희선이 말했다.
“특히 우주 군은 제가 지난 설 특집에서 가장 주목한 멤버인데요. 자세가 너무 좋더라고요. 아까 연습하는 걸 몰래 구경했는데… 지난번보다 더 자세가 안정적으로 변했어요.”
“대단하네요. 과연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10점을 놓치지 않을지, 그것도 관전 포인트겠네요.”
지난 돌림픽에서 주몽 드립이 나왔던 뉴블랙의 비주얼 멤버가 활시위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활시위를 잡아당기기 위해 한쪽 눈을 감자 그늘을 드리울 만큼 긴 속눈썹이 도드라졌다.
한쪽 뺨에 올렸던 활시위가 앞으로 슝 하고 나갔을 때.
우주가 날린 세 번째 화살이 이변을 만들었다.
“오……!”
“오…? 오!”
실내 체육관에서 여기저기서 놀란 감탄사가 동시다발적으로 흘러나왔다.
그걸 해낸 당사자도 ‘뭐임? 뭐시여?’ 하고 있을 정도로.
중계진이 웅성거렸다.
“화살이 화살에 꽂혔어?”
“뭐야. 어떻게 한 거야?”
세 번째 날린 화살이 두 번째 날린 화살에 겹쳐져 있었다.
소위 말하는 ‘화살 쪼개기’였다.
각도 때문에 두 개의 화살이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하나로 합쳐져 있었다.
“이야, 이게 무슨 일인가요?”
“해설위원님, 이건 무슨 상황인가요?”
양궁선수 출신 해설위원이 ‘호오’ 하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저걸 로빈훗 애로우라고 하는데요. 흔치 않은 상황인데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요.”
“오, 극히 드문 경우인가요?”
“선수촌에서 연습하다 보면 종종 나옵니다. 저도 올림픽에서 한 번 성공시킨 적 있고요.”
“…….”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때가 있었지’ 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양궁 국대 출신의 모습에 중계진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그럼 겁나 어려운 거잖아.’
이내 경기장용 마이크를 통해 관중들에게 해당 상황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점수 역시 동일한 10점 처리가 된다는 말에 수플레들이 ‘와악!’ 하며 슬로건을 흔들었다.
에이플비의 멤버들이 허탈한 표정을 짓고.
뉴블랙의 우주가 자신의 양손을 내려다보고 ‘이게 되네’ 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 동안.
카메라는 ‘와’ 하며 웃는 다른 아이돌 멤버들과 팬들의 표정을 담았다.
“검색해 보니 확률상으로도 굉장히 희박한 일이라고 하네요? 0.001퍼센트도 안 된대요.”
“이야. 그걸 해냈네요.”
“뉴블랙이랑 에이플비 멤버들 표정 봐요. 다들 가까이서 보고 신기해하고 있네요.”
두 화살이 하나로 합체된 광경에 과녁 근처에 다가선 뉴블랙과 에이플비 멤버들이 눈을 크게 떴다.
“어어, 그런데 뭘 하는 걸까요?”
“두 손을 모으네요.”
“소원을 비는 거군요. 이건 못 참죠.”
이윽고 화살을 바라보며 두 손을 모은 채 소원을 비는 두 그룹의 모습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곤 하나둘 소원을 웅얼거렸다.
실내체육관이 기복신앙의 진원지가 되는 동안, MC인 백상중이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멘트를 이어 갔다.
“3연속 10점! 뉴블랙이 흐름을 탔네요.”
“그죠. 이대로라면 뒤에 쏘는 팀원들이 아무리 못 쏴도, 뉴블랙이 이길 수밖에 없어요.”
그런 중계진의 말이 경기장에 들리진 않았지만, 화면 속에서 여유롭게 웃는 뉴블랙 멤버들도 승리를 직감한 듯 보였다.
* * *
경기장 바깥.
“……음?”
매점에서 핫도그를 먹고 있던 매니저 서민기는 터덜터덜 걸어오는 6인조의 모습에 눈을 깜빡거렸다.
도원석과 뉴블랙이었다.
“뭐야. 왜. 아니, 어떻게 이 시간에 나온 거야?”
“…….”
“무슨 일이야? 그 이상한 작대기는 뭐고?”
“…….”
부러진 나뭇가지 같은 작대기를 망연자실하게 들고 있던 우주가 대답을 했다.
“화살 쪼개기를 성공시켰어요.”
“뭐? 그런 걸 성공시켰어?”
“네. 그런데…… 졌어요.”
“졌어? 왜?”
뉴블랙 멤버들이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저랑 지호가 쏜 화살이…….”
“화살이……!”
말을 잇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에 리혁이 나섰다.
“그냥 내가 대신 말할게요. 저 둘이 쏜 화살 두 발이 저 행운의 화살에 부딪히는 바람에 백지에 꽂혔어요.”
“…….”
“과녁 옆에 하얀 부분이요.”
할 말을 잃은 서민기에게 도원석의 설명이 이어졌다.
“상대 팀이 더 당황하더라고요.”
“…….”
“아무것도 안 했는데 이겨서…….”
“…….”
눈가가 촉촉해진 멤버들이 ‘아이고오!’ 하면서 행운의 화살을 붙잡은 채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서민기는 눈을 깜빡거렸다.
‘이걸 기뻐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콘서트를 앞두고 조기퇴근이라는 최상의 결과를 받아냈지만 기뻐하기엔 뭔가 미묘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