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97)화 (297/1,031)

이번 생은 우주대스타 297화

34장. 1st Concert

레몬 엔터 사옥.

사무실과 작업실을 오가며 업무를 하던 A&R팀 직원들이 기지개를 켜며 뻐근한 몸을 풀었다.

“어으으… 뻐근해.”

“아구구, 우주가 준 홍삼이나 먹어야지. 죽겄다.”

“전 내일 못 일어날지도 몰라요…….”

눈 밑에 다크 서클이 퀭한 A&R팀 직원들이 홍삼 스틱을 하나씩 꺼내서 쭙쭙 빨아먹었다.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홍삼을 흡입하는 서로의 모습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A&R팀은 앨범 제작 부서.

스칼렛은 슬슬 음방 활동을 마무리하는 중이고, 뉴블랙은 이제 앨범의 발매만을 앞두고 있었다. 즉, 당분간은 앨범을 제작할 일이 없기에 여유로워야 마땅했다.

하지만 지금 A&R팀 사무실에선 곡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어우, 이거 진짜 어렵네.”

“리혁이 청소할 때랑 비슷한 거 같아. 리혁이가 다 청소해 놓으면 지호랑 중현이가 3초 만에 아수라장을 만들잖아.”

“그러니까요. 깔끔하게 정리를 다 해 놨다 싶으면 약간 불협화음 같은 게 눈에 띄고 그런다니까.”

그들이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건 우주의 신곡 작업이었다.

9월 말에 개봉하는 존 에드워즈 감독의 ‘노스탤지어’에 실릴 곡이었다.

본래 일부만 실릴 예정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앨범 수록곡이 아니기에 처음에 그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하지만 곡이 너무 좋았다.

“좋구나…….”

헤드폰을 쓴 A&R팀 직원이 눈을 감았다.

별빛이 반짝이듯 생동감 있는 리듬.

깊은 밤, 숲속에서 요정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는 듯한 멜로디를 듣다 보면 저절로 흥얼대곤 했다.

“필근이 허밍하네.”

“그거 듣고 있나 봐.”

“저거만 들으면 만화 속 공주님이 된 거 같다니까. 날아다니는 종달새랑 토킹 어바웃도 하고 싶고.”

파고들수록 감탄사가 나오는 곡이었다.

우주는 이걸 즉석에서 떠올렸다고 하던데, 대체 어떻게 만든 건지 의문이 들 만큼.

그런 퀄리티가 바로 그들이 이 곡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였다.

‘문제는…….’

좋아도 너무 좋았다.

지금은 불꽃놀이로 재탄생한 전설의 소스를 접했을 때와 비슷했다.

밑그림이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완성본을 만들면 안 될 것 같다고 할까.

하지만 그렇다고 스케치만 덜렁 보낸 채 ‘받아라! 이 할리우드 놈들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A&R 직원들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퍼즐처럼 조각을 끼웠다 빼기를 반복하면서.

그렇게 수작업으로 수없이 반복하다 보니 축 나는 건 그들의 몸이었다.

“흐어어어…….”

“아, 진짜 퇴근할 힘도 없네. 이따 숙직실에서 좀 자야겠다.”

“저녁 먹어야죠.”

좀비 같은 몰골로 의자에서 허우적대던 직원들이 ‘짜장면?’ 하며 시켜먹을 음식을 고민하던 때.

드르륵.

“뭐야? 뭔 수레 소리가 나네?”

“택배라도 왔나?”

뉴블랙 멤버들이 수레를 밀고 들어왔다.

“저희 왔어요!”

“왔습니다~ 신선한 뉴블랙이 왔어여~!”

“이 시간에 올 줄은 몰랐죠?”

왠지 모르게 A&R팀의 귀에는 수레 소리가 지옥의 악마들이 끌고 다니는 전차 소리처럼 들렸다.

“흐어어!”

A&R팀 직원들이 다급하게 일어나서 더 진입하지 못하도록 스크럼을 짰다.

“무, 무슨 일이야. 갑자기?”

“네?”

“아이돌 운동회, 그거 녹화할 시간 아니었어? 갑자기…….”

“아.”

가운데 서 있던 우주가 답했다.

“사실, 저희가…….”

“……?”

5명이 동시에 급격히 침울해진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저희 양궁에서 1차 탈락했어요.”

“탈락……?”

탈락이라니, 상상도 안 갔다.

몸으로 하는 거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인물이 우주 아니던가.

지난 설에 뉴블랙이 양궁에서 금메달을 땄다며 박규호 대표가 눈물을 글썽거렸던 기억이 있었다.

‘우주가 탈락……?’

‘뭐지. 상대팀 귀라도 깨물었나.’

‘심판을 활로 후려치지 않는 이상은 떨어질 일이 없을 텐데.’

이내 행운의 화살과 그 이후 벌어진 일에 대한 이야기에 직원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그래서 졌구나.”

“아니여. 진 건 아니에여!”

막내의 강한 부정에 다른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1보 전진을 위한 3보 후퇴 정도에요.”

“다음 돌림픽에서의 위대한 도약을 위한 작전상 후퇴인 거죠.”

“……그리고 조기퇴근을 했으니 사실 진정한 승자는 저희인 거죠. 남들이 1등하고 금메달 딸 때 저희는 집에 가는 거예요.”

양 주먹을 꼭 쥐고 애타게 항변하는 우주의 마지막 말에 직장인들이 공감하는 표정을 지었다.

멤버들도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주가 가져온 행운의 화살에 시선이 팔린 것도 잠시, A&R팀 직원들이 물었다.

“그런데 수레에 있는 건 뭐야? 아까부터 음식 냄새가 진동을 하던데.”

“이거요? 도시락이에요.”

“도시락?”

“저희가 모델로 있는 올리브 하우스에서 준비해 준 도시락이요.”

리혁이 종이 상자를 개봉하자, 수북이 쌓여 있는 도시락 박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현이 손부채질로 고기 냄새를 널리 퍼뜨렸다.

“우와, 냄새…….”

“좋죠?”

원래 팬들을 위해 준비된 저녁 도시락이라는 듯했다.

그러나 예정에 없던 조기 퇴근에 저녁 물량이 붕 떠 버렸다나.

“그래서 저희가 직접 회사에 돌리는 중이에요.”

“오오…….”

‘당연히 A&R팀부터 왔어요~’ 하며 싱긋 웃는 우주의 모습에 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고마워. 잘 먹을게.”

도시락을 받아든 이들이 미소를 지었다.

이윽고 스테이크와 랍스터 등이 담긴 도시락을 보며 그들이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이야. 스테이크 진짜 오랜만이네.”

“맛있겠다.”

“너희 팬들도 아쉽겠네. 도시락 못 먹어서.”

“그러네. 너희 팬들은 어떻게 했어?”

그 질문에 멤버들이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나오기 전에 직접 만나서 포스트잇만 드렸어요.”

“포스트잇?”

“팬분들 이름이랑 같이 저희가 짧게 쓴 메모들인데, 원래는 저녁 도시락에 붙여서 드리려고 했거든요.”

“……포스트잇만 받아간 거야?”

“네. 그것도 ‘저녁 맛있게 드세요’ 라고 써진 거…….”

먼 산을 바라보는 우주의 대답에 그들이 폭소했다.

저녁 도시락은 없는데, ‘이거 저녁으로 맛있게 드세요’하는 포스트잇을 건네주는 멤버들의 표정이 상상이 갔다.

그것을 받아들 팬들의 얼굴도.

“그래도 팬분들은 좋아하셨어여.”

“맞아. 고슴도치도 자기 아들딸은 예쁘다고 하잖아요.”

“뭔가 급식 배식해 주는데, 돈까스 없이 돈까스 소스만 주는 느낌이었어요.”

말끝을 흐리는 비주의 말에 그들이 웃었다.

도시락을 하나둘 펼치고 먹는 동안, A&R 팀장이 사무실을 나가려는 우주를 불렀다.

“참, 우주야.”

“네?”

“네가 준 곡은 조만간 완성될 거 같아. 지금 작업 속도가 나름 잘 나오고 있는 편이라.”

“……감사합니다!”

상대의 얼굴이 밝아졌다.

안 그래도 묻고 싶었는데 분위기상 질문을 못한 듯한 표정이었다. 우주가 고개를 꾸벅 숙일 때.

직원들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 일어났다.

“참.”

“……?”

“나가기 전에 잠시만… 그 행운의 조기퇴근 화살 좀.”

우주가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하나로 포개진 화살을 건넸다.

“…….”

성스러운 것처럼 화살을 양손에 받아드는 팀장.

직원들이 진지한 눈빛을 교환했다.

엄숙한 분위기에 뉴블랙 멤버들이 눈을 끔벅일 때.

“우리도 조기 퇴근하게 해 주세요.”

“정시 퇴근 기원.”

화살을 매만지며 조기퇴근을 염원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에 뉴블랙 멤버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돌림픽에서 가져온 ‘행운의 화살’은 우리 작업실에 놓여졌다.

리혁이가 주문해 둔 거치대 위에 놓인 두 개의 이어진 화살을 보며 우리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걸 왜 여기다 전시하는 건데요?”

메인 보컬의 물음에 간단하게 답했다.

“숙소에 둘 데가 없어서?”

“그냥 버려요. 공간만 차지하는 거 같은데.”

“기념품인데 이걸 왜 버려?”

내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언젠가 뉴블랙 뮤지엄, 그런 곳이 생기면 전시할 거야.”

“……정말 그런 게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리혁이 형. 사람 일은 모르는 거예여. 나중에 우주 형이 활 쏘는 흑백사진 밑에 이 화살이 걸릴 수도 있어여.”

“그래. 리혁…. 야, 잠깐만. 지호야. 왜 사진이 흑백이야?”

이내 도망치기 시작하는 막내를 추격해 붙잡고 응징했다.

어쨌거나 역대급 광속 탈락으로 장식된 우리의 추석 돌림픽은 그렇게 끝이 났다.

끝나고 스보 멤버들로부터 후기를 들었는데 우승은 스칼렛이 있었던 빨강 팀이 거두었다고 한다. 마지막 여자 계주에서 1등을 했다는데, 눈빛이 활활 불타올랐다나.

그 외에 여러 그룹의 멤버들이 농구나 계주에서 부상을 입어서 객석 분위기가 엄청 싸했다고 들었다.

조기퇴근한 게 신의 한 수였다는 이야기에 우리도 공감했다.

한편, 돌림픽 이후 콘서트와 컴백이 다가오면서 홍보팀에서도 홍보 물량을 쏟아부었다.

-‘대세그룹’ 뉴블랙, 컴백 초읽기 “하반기 차트 또 휩쓸까?”

-뉴블랙, 미니3집 ‘Neon Black’ 프로모션 일정 공개

-“이번에는 힙합이다”, 새로운 도전 앞두고 포부 밝힌 뉴블랙

댓글은 안 읽고 제목과 내용 정도만 훑어보았다.

전반적으로 우리의 새로운 타이틀곡이 어떤 성적을 거둘지 그 포인트를 주목하는 듯했다.

9월에 음방에서 만나게 될 틴스피릿과의 치열한 1위 쟁탈전을 예측하는 글도 있었는데 우리와 틴스피릿을 동일선상에 놓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가 훨씬 더 우세하다고 예측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팬덤이야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틴스피릿이 더 크지만, 과연 그들이 음원 강자인 뉴블랙을 이길 수 있…….

“으아, 민망해.”

“2030이 가장 즐겨 듣는 음원계의 강… 으아으이! 형들 보여여? 손가락이 안 펴져여.”

“오. 우리 칭찬 받았네. 만족만족 대만족.”

왠지 모르게 민망했다.

‘바람꽃’으로 상반기 음원 결산에서 1위를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닌데, 뭔가 겸연쩍었다.

마치 초등학생이 존경하는 인물 1위, 이런 걸 듣는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우리의 민망함과는 상관없이 우리 이미지가 그런 쪽으로 정립된 건 맞는 듯했다.

카테고리는 아이돌이지만 컴백만 하면 가요계가 술렁술렁하는 발라드 가수나 인디밴드 같은 ‘음원강자’ 포지션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고 할까. 기사 뉘앙스가 대부분 그런 쪽이었다.

“음반 선주문량도 추이가 몹시 좋아.”

가끔 매니지먼트 팀 사무실에 들를 때면 석환 형이 앨범에 대해서 말해 주려고 했다.

“아아아아아! 안 들리, 안 들리!”

“……초등학생이니. 너희들.”

“아아! 안 들을래여!”

앨범에 대해 뭔가 말해 주려고 할 때마다 귓볼을 파파파파 누르며 외면하는 우리였다.

그저 ‘선주문’의 추이가 좋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보통 음반판매점에서 ‘이 그룹이면 이 정도 물량이 나가겠군’ 하며 팬들의 예약판매 추이라든가, 이전 판매량을 보고 예측해서 유통사에 주문을 넣는데.

그 수치가 몹시 좋다고 했다.

하지만 정확한 수치에 대해서도 안 듣기로 했다.

“괜히 들었다가 헛바람만 들라.”

“그 정도 헛바람은 좀 들어라. 떴는데 아직도 신인 마인드로 살고 있다니까.”

“나중에 초동 판매량 나오면 그때 볼게. 지금은 연습이나 해야지.”

중요한 공연을 앞두고 있는 만큼, 이런저런 성적 지표에 일희일비하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신나게 노래 부르는 거야 본 공연에서 하면 될 일이고, 그 전까지는 냉정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싶었다.

그만큼 잘하고 싶었고 잘해야 했다.

“첫 끗발이 뭐다?”

“개끗발이다!”

첫 시작이 가장 중요하다는, 우리 김덕순 여사의 명언을 되새기며 콘서트를 준비해 나갔다.

디데이인 8월 28일 금요일까지 달력에 날짜를 하나씩 지워 가는 동안.

각자의 가족들과도 매일 연락을 주고받았다.

콘서트 준비를 하다가 머리가 지끈지끈할 때쯤이면 저마다 가족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나다.

“손자다.”

-옘병첨병하네. 건방진 놈.

“흐하하!”

아. 좋다.

구수한 욕설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할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으면 따스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뭐. 가끔 너무 뜨거워서 ‘아악!’ 하는 매운 맛이지만 마냥 좋다.

몸이 힘들 때는 백 가지 약보다 가족으로부터 듣는 한 마디가 더 소중하고 효과가 좋은 법이니까.

-근데 괜찮기는 한 겨? 목소리가 영 맛이 가서…….

“아닌데~ 좋은데?”

-속일 사람을 속여라. 으휴.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하며 쏟아지는 잔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준비는 잘하고 있어? 손자 콘서트에 오는데 멋들어지게 입고 오셔야지.”

-그날 입고 갈 거 다 꺼내 놨어. 근데 티켓은 안 오냐?

“첫날 오면 회사에서 줄 거야. 아마.”

우리 할머니를 비롯해서 멤버 가족들은 첫날 콘서트에 오게 되어 있었다.

가족들이 어디 있는지 알면 집중이 안 될 것 같아서, 어디 앉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다들 모여 앉을 거 같다.

-근데 나 같은 할망구가 가도 되나 모르겄네. 갔는데 젊은 것들이 아이구, 저 할망구 노망 났나 보다 그럼 민망해서 으뜩하냐.

“걱정 붙들어요. 할머니. 다 우리 할머니인 줄 알걸.”

-그걸 지들이 어떻게 아는데?

“아마 공연장에서 있는 유일한 70대라서……?”

-왜 나 한 명이냐. 숙자도 데리고 가는데.

“아, 그럼 장내의 유이한 6070… 으악!”

속사포 같은 욕설 폭격에 잠시 귀를 피신시켰다.

농담이라고, 다른 가족들도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다 데리고 올 거라는 이야기에 그제야 노기가 풀렸다.

한참 동안 콘서트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김덕순 여사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너 근데 지금 혼자 있냐?

“왜?”

-그, 흠흠… 리혁이 좀 잘 챙겨줘.

“리혁이?”

할머니가 말했다.

-지난번에도 여동생만 왔잖냐. 고것이 말을 잘 안 해서 그렇지, 지금도 니들이 부모님이랑 깔깔대고 그럼 얼마나 속이 문드러지겄냐.

“알았어요. 내가 잘 챙길게.”

그래서 통화도 이렇게 옥상에서 짧게짧게 하는걸.

몸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 마음 챙기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콘서트 전날.

리허설을 하기 위해 올림픽 공원으로 향하는 차가 시끌시끌했다.

“리혁이 형. 이. 거. 먹을. 래. 여?”

“…….”

“리혁아. 오늘 안색이 창백한데? 눈도 떨리고. 마그네슘이 부족해서 그런가. 마그네슘 영양제 사 올까?”

“…….”

“리혁아. 이 베개를 베게.”

“…….”

중현이가 리혁이의 목에 목베개를 뿅, 하고 끼워줄 때.

리혁이가 ‘크아악!’ 하며 불을 뿜었다.

“아, 진짜 뭐하는 거예요. 갑자기?”

“…….”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음… 챙겨줌의 미학?”

“배려?”

“어쩌면 형제간의 우애?”

차가 덜컹덜컹할 때마다 리혁이의 귀가 빨간불처럼 솟았다가 내려갔다.

우리 메인 보컬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무슨 다들 공익광고라도 찍는 줄 알았네.”

“그렇게 어색했나.”

“챙겨 주려면 꾸준히 챙겨 주던가요. 다들 거울을 봐요. 선거철 정치인들 같아.”

“야, 그 정도는…….”

상대가 셀카 모드로 된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그 속에 우리의 표정을 본 순간 깔끔하게 납득했다.

“…….”

머쓱해하는 우리의 모습에 리혁이가 목 베개를 쏘옥 넣고는 지호가 준 양갱을 깨작거렸다.

“뭐, 챙겨 주는 게 좋은데…….”

날카로운 눈이 가늘어졌다.

“내일 가족들 오는 거 때문에 그런 거죠?”

“……절대 아닌데여! 그냥 형이 초라하고 불쌍하게 생겨서 그런 건데여!”

“지호야…….”

“야!”

다급한 변명으로 우리의 거짓말도 박살내고, 동시에 리혁이 디스까지 일타이피를 해내는 막둥이였다.

우리가 머쓱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아니, 뭐 딱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어설프게 답하는 우리 모습에 리혁이가 헛기침을 했다.

“뭐, 배려해 줘서 고맙기는 한데. 그닥 신경 쓸 필요 없어요.”

“…….”

“가족들도 아마 올 거 같아서.”

“오셔?”

뭔가 물어보려고 할 때마다 확정이 안 된 듯해 보여서 제대로 묻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리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도 예인이랑 미국에서 같이 올 거 같고. 아버지도 잠시 들렀다 가기로 했어요.”

“잘 됐네.”

“안 올 수도 있고요.”

녀석이 덤덤하게 대꾸했다.

“뭐, 둘 다 바쁘면 못 올 수도 있다고 얘기는 들어서요. 시간이 되면 알아서 오겠죠.”

“…….”

“그러니까 비주 형, 벌써부터 눈물 좀 글썽거리지 말고요. 우는 건 내일 콘서트에서 해요.”

“……응.”

눈이 촉촉하던 비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에어컨 바람 소리가 들릴 만큼 차량에 침묵이 감돌 때, 막내가 표지판을 보고 말했다.

“오, 올림픽공원에 거의 다 왔나 봐여.”

“그러게.”

“안에 들어가면, 경기장까지 가는 길에 우리 콘서트 깃발 걸려 있고 그러겠지?”

설렘 가득한 시선을 교환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민기 형이 아마 5분 이내로 도착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바로 그때.

“고마워요.”

특별한 내용이 담긴 말은 아니었지만, 그 말을 꺼낸 화자 때문에 우리가 멈칫했다.

우리가 좌우로 고개를 돌리자 리혁이가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맙다고요.”

“저 위에 누군가가?”

“아이. 진짜.”

눈살을 찌푸리던 녀석이 우리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고맙다고요. 신경 써 줘서.”

“…….”

“콘서트 준비하는 동안 내내 나 신경 쓴다고 통화도 몰래 숨어서 하고 그랬잖아요. 가족들 얘기 나오려고 할 때도 일부러 나 생각해서 안 하기도 했고.”

“…….”

“뭐, 내일 가족들이 올지 안 올지는 모르지만 그냥 안 와도 괜찮을 거 같아요.”

리혁이가 웃으며 말했다.

“내일 우리끼리 있어도 좋을 거 같아서.”

“…….”

“비주 형, 지금 안아 주는 타이밍 아니에요. 자제해요.”

“……응.”

비주가 나비처럼 활짝 펼친 두 팔을 나풀나풀거리며 오므렸다.

한편 리혁이의 말에 우리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끼리 있어도 좋을 것 같다는 말에 몽글몽글한 공기가 감도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쟤가 저런 말을 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저 성격 나쁜 애가 그래도 우리는 자기 울타리 안의 사람이라고 생각해 주는구나 하며 감격하기도 하고.

‘감동의 물결이네여…….’

‘장관이네요.’

‘리혁아……!’

우리도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다 좋았다.

하지만…….

“리혁아.”

“왜요?”

“다 좋은데, 이런 이야기는 차 내릴 때쯤 돼서 해야지. 폴짝 내리면서 다들 바퀴벌레처럼 흩어지게.”

“……앗.”

민망하다.

영화라면 보통 속마음 공개씬 후에 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데 우린 장면이 안 넘어가는 현실이었다.

다섯 명이 동시에 차량 천장을 바라보았다.

“…….”

“…….”

그때 운전대를 잡은 민기 형이 백미러를 슥 보고는 나직하게 말했다.

“얘들아.”

“……네?”

“원래 5분 뒤면 도착인데.”

그런데?

“차가 막힌다.”

“…….”

“15분 정도 걸린다고 내비에서 그러네.”

그 순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모두가 오그라든 손을 흔들며 비명을 질렀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15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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